Title: 10.5
10.5/로즈/10.
결코 모든 것은 제자리로 돌아오지 못한다; 너는 그것을 알고 있다. 이따금 모든 것들이 이전과 같다고 느낄 때가 있다; 익숙한 갈색 코트의 무게를 느끼며 입가에 장난스러운 미소를 걸 때에, 머릿속에 있는 것들을 여과 없이 입 밖으로 내다가 지나가듯 과거의 일을 들추어낼 때에, 맞닿는 손가락, 웃을 때 느껴지는 눈 옆의 주름과 끌어안을 때 오히려 널 감싸는 따뜻함을 느낄 때에 ― 그럼 그녀가 웃는다. 그 순간, 너는 그녀와 네가 함께 있다는 사실을 안다.
하지만 그 잘게 부서진 순간들은 너무나 짧아서. 대개 그것은 너의 괴로운 표정으로 끝이 난다. 그녀 자신도 모르게 무너져 내리는 미소를 너는 알아챈다; 너는 몇 년이나 봐 와서 그녀가 미소 짓는 방식을 알고 있고 그래서 너의 숨을 누군가가 잡아채는 느낌을 피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오래지 않아 너는 이제, 그녀 역시 알아챘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녀와 함께 있지 않을 때 너는 네 존재에 대해 골몰하여 생각한다. 너는 그가 맞다. 처음 그녀를 만났던 자신을 기억하기 때문이다. 말을 타고 거울을 깨뜨리며 등장하던 것도, 문 너머의 늑대로부터 그녀를 지켜내던 것도, 얼굴 없는 그녀를 보며 내부를 집어삼키는 화를 억제하지 못했던 것도 다름아닌 네 자신임을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다. 모든 기억은 고스란히 머릿속에 남아 있고 그게 자신을 끊임없이 정의 내린다, 너는 닥터가 맞다고.
하지만 그녀의 눈이 더 이상 너를 바라보고 있지 않을 때에 ― 그 순간 너와 그는 완전히 분리되고 넌 더 이상 그가 아닌 무언가가 되어버린다. 무언가, 그가 아닌, 그녀가 매일 그리워하는 대상이 아닌, 기억하는 대상이 아닌. 그때마다 과거와 현재의 괴리의 무게가 견딜 수 없이 무거워져서 너를 짓누른다. 이대로 스스로가 소멸해버릴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너는 자비롭게 행동하려고 노력한다, 마치 그가 그러했듯이. 위협이 되는 외계인에게 보답 받지 못할 자비를 베풀던 자신의 행동을, 보잘것없는 인간을 다른 무엇보다 아꼈던 마음을. 공감하지 못하는 과거의 흔적을 이해하려 애를 쓴다. 하지만 우연히 묻은 인간의 DNA는 결코 쉽게 떨어지지 않기에 마치 앵무새처럼 따라 하는 것뿐인 스스로의 모습을 보며, 너는 이제 더 이상 네가 너임을 확신하지 못한다.
그래서 너는 그녀에게 입맞춘다. 과거의 자신은, 그는 절대 하지 못할 것들을 할 때. 거기엔 어떠한 안도감 같은 것이 있다. 달빛 아래서 그녀의 등에 흔적을 수놓는 동안, 너는 하나뿐인 심장이 멎을까 걱정한다. 그녀를 품에 안을 때, 그 온기가 오로지 자신만을 위한 것임을 느낄 때 넌 온몸의 털이 바짝 서는 느낌이다. 그건 유일하게 네가 그녀를 그와 공유하지 않는 순간이다. 그곳엔 오직 너와 그녀밖에 존재하질 않고, 그것이야말로 네가 계속해서 그리워하던 것이다.
너는 결코 모든 게 제자리로 돌아오지 못할 것임을 알고 있다. 이따금 모든 것이 그런대로 괜찮다고 느낄 때가 있다. 인간이 됨으로써 비로소 온전히 그녀와 하나의 생을 마칠 수 있게 되었으므로. 그리고 그 끝에서는 오직 너와 그녀뿐이길, 그녀의 곁에 누운 너는 기도한다. 그녀를 향해 기도한다; 온 세상이 뒤집혀도 네가 믿음을 가지는 대상은 단 하나뿐이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