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ke of Rage.
A/N
English translation of this will be the next chapter. I'll upload... soon...
나는 그 때 분노의 호수에서 너를 처음 보았다. 너는 이성을 잃고 날뛰고 있는 빨간 갸라도스를 손쉽게 제압하고 잡기까지 했다. 내가 멍하니 그 광경을 바라보자, 너는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나를 향해 다가왔다. 나는 그 날, 로켓단이 수상한 전파로 포켓몬들의 진화를 조작하고 있다는 소문을 듣고 조사하러 찾아온 것이다. 나는 너에게 너도 그 소문을 듣고 찾아온 것이냐고 물었다. 너는 웃으며 그저 빨간 갸라도스가 거기 있었기에, 고통스러워하기에 치료해 주려고 잡은 것이라고 대답했다. 마음에 드는 녀석이었다. 나는 이어서 황토마을이나 분노의 호수 주변에 이상한 낌새가 느껴지지는 않냐고 물었다. 너는 잠시 고민하는 듯하다가, 이곳으로 오는 길에 로켓단의 조무래기들이 길을 막고 통행료를 받고 있었기에 풀숲이 많아서 사람이 잘 안 다니는 길로 돌아서 왔다고 했다. 그러면서 너는 기력의조각을 사느라 돈을 다 써버려서 통행료가 없었다며 헤헤 웃었다. 너는 이전에도 로켓단과 싸워봤던 것 같구나, 라고 물어봤더니 그렇다고 했다. 너는 로켓단이 어딜 가든 있었다고 했다. 야돈의 우물에도, 라디오타워 앞에도, 전통무용수의 무대에도...
너는 로켓단을 싫어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로켓단의 계획을 산산조각내자는 내 말에 기쁜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만날 때마다 시비를 거는 친구이자 라이벌이 있다고 너는 말했다. 심지어 그 친구조차도 로켓단을 싫어한다면서, 자신은 곧 따라갈 테니 나보고 먼저 가서 조사해달라고 말했다. 나는 알겠다고 하고 망나뇽의 공중날기를 써서 황토마을로 돌아갔다.
황토마을에는 전부터 눈여겨봤던 수상한 가게가 하나 있었다. 파는 거라곤 싸구려 상처약뿐인 의미 없는 곳이었다. 가게 문을 열고 들어가자 주인이 친절한 미소로 나를 반겼다. 저 미소 뒤에 무엇이 숨겨져 있을지, 알아내고 싶었다. 알아내려면 말로 해선 안 되겠지. 나는 망나뇽을 불러냈다. 주인은 화들짝 놀라 뒤로 한발짝 물러났다. 순순히 이 가게의 비밀을 알려 준다면 평화롭게 끝날 것이라고 말해두었지만, 주인은 두려움에 떨면서도 입만은 꾹 다물고 있었다. 나는 최후의 방법을 쓸 수밖에 없었다.
"망나뇽, 파괴광선!"
겁만 줄 용도로 약하게 파괴광선을 쏘려고 했는데, 그 순간 네가 문을 열고 들어와서 나와 망나뇽의 집중력이 살짝 흐뜨러졌다. 다행히 정통으로 맞지는 않고 빗겨갔지만, 원래 의도했던 것보다 강하게 나가서 가게 주인은 충격파로 인해 벽까지 밀려났다. 역시 이상하다. 이 정도 위력의 파괴광선이면 웬만한 벽은 무너져 내린다. 그러나 이 가게의 벽은 끄떡없었다. 로켓단은 이 건물을 안전가옥 용도로 쓰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너는 놀란 표정으로, 아니 거의 경악하며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아무렇지 않게 어깨를 으쓱하며 너에게 왜 이렇게 늦었냐고 물었다. 너는 분노의 호두과자를 파는 잡상인에게 붙잡혔다며 다시 아까의 그 웃음을 지었다. 우리의 대화를 멈춘 건 공격당하지 않은 나머지 로켓단원이었다. 그는 포켓몬을 불러내려는지 몬스터볼을 꺼냈다. 그러나 망나뇽과 눈이 마주치자 흠칫하며 다시 집어넣었다. 그가 뒤로 물러날 때, 바닥을 밟는 소리가 좀 이상했다. 아래에 공간이 있는 것 같았다. 나는 녀석을 밀치고 장판을 들어냈다. 놀랍지도 않지만, 역시 그 아래에는 지하와 통하는 사다리가 있었다. 당황하여 어쩔 줄 몰라 하는 로켓단원을 뒤로 한 채, 너와 나는 사다리를 타고 아래로 내려갔다.
우리는 둘로 나눠져서 조사하기로 했다. 너는 페르시온 동상 쪽으로 향했고, 나는 졸고 있는 조무래기 하나를 처리하고 수상해 보이는 장소로 들어섰다. 이쪽이 지름길인 것 같았다. 눈앞에 지하 2층으로 내려가는 계단이 보였기 때문이다. 나는 미리 내려가서 지친 너와 포켓몬들에게 회복약이라도 주려고 걸음을 빨리했다. 기력의조각을 사려고 돈을 다 써버렸다던 너의 말이 마음 한구석에 계속 남아 있었다.
파직, 하고 무언가 밟혔다. 전기가 통하는지 살짝 따끔했다. 여러 개의 시선이 느껴졌다. 망나뇽도 주위를 경계하며 공격할 준비를 했다. 그리고 예고도 없이, 폭발이 일어났다.
"배리어!"
자욱한 검은 연기 사이로 언뜻 찌리리공의 무리가 보인 것 같았다. 나는 함정에 빠진 것이었다. 폭발은 매우 강해서 나와 망나뇽은 계단 쪽으로 튕겨나갔다. 바닥에 착지하려고 했으나 손이 미끄러져서 넘어져 버렸다. 다행히 배리어 덕분에 화상 같은 건 입지 않은 것 같았다. 망나뇽이 나를 일으켜세웠다. 오른쪽 팔 언저리에 통증이 느껴졌지만 무시했다. 나중에 생각하자. 결국 계획대로 지름길을 통해 오긴 왔다. 그 과정이 이상했을 뿐이지...
나는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아직 다른 조무래기들은 보이지 않았다. 대신 거대한 기계가 있었는데, 전자 도어락으로 잠겨 있었다. 특별한 번호키 같은 것이 없는 걸로 보아 음성인식인 것 같았다. 자세히 보니 그 기계장치 앞을 조무래기 하나가 지키고 있었다. 그에게 다가가려는 순간, 네가 계단으로 내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너는 내가 밟았던 함정을 밟지는 않았는지, 폭발에 휘말린 흔적은 없었다. 다행이다. 너는 페르시온 동상들을 끄는 비밀 스위치를 찾았다면서 의기양양해 했다. 코일을 데리고 있는 어떤 연구원이 지키고 있었는데, 그를 이겼다더라. 그러나 네 옆에 있는 블레이범은 전투로 인해 상당히 지친 것 같았다. 포켓몬들은 괜찮냐고 물어보니 해맑게 '두 마리는 기절했어요!'라고 너는 말했다. 가방에서 약을 꺼내려는 너를 말리며, 나는 내 기력의덩어리와 회복약을 건네줬다. 너는 어쩔 줄 몰라하면서도 그걸 받아서 포켓몬들을 회복시켰다. 너는 2층의 조무래기들을 처리할 테니 나보고 3층으로 내려가 잠긴 문을 열 방법을 찾아달라고 부탁했다. 나는 그렇게 하겠다고 하며 너에게 2층을 맡기고 내려갔다. 살짝 걱정되긴 했지만, 너 정도면 이젠 믿을 수 있을 것 같았다.
3층의 조무래기 하나를 이기고 망나뇽이 위협하자, 그는 포기한 듯이 2층의 도어락을 여는 방법을 알려주었다. 로켓단의 간부 중 하나인 람다의 목소리로만 문을 열 수 있다고 했다. 현재 그는 자신의 사무실에 있다는데, 사무실도 암호로 잠겨 있어 맘대로 들어갈 수 없다고 했다. 암호를 알려달라고 하니 자신은 더 이상은 모른다고 했다. 암호를 알고 있는 다른 조무래기를 찾기 위해 더 안쪽으로 들어가려고 할 때, 네가 나한테 다가와 2층에서 처리할 수 있는 조무래기들은 모두 때려눕혔다고 말했다. 너의 재능은 정말 대단해서 나를 놀라게 했다. 너와는 나중에 꼭 싸워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3층에서 알아낸 사실을 너에게 알려주었다. 너는 람다의 사무실 암호를 스스로 알아내겠다며, 당당하게 조무래기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다가갔다. 네가 싸우는 걸 지켜보고 싶었다. 나도 같이 싸워주고 싶었지만, 너의 힘을 보고 싶다는 생각이 더 강했다. 눈에 띄지 않는 곳에서 너의 활약을 지켜보고 있는데, 누군가 나에게 다가왔다. 붉은 머리가 인상적인 소년이었다.
소년은 한참 동안이나 나를 빤히 쳐다보더니 로켓단은 아닌 것 같다고 말했다. 나는 그렇다고 했다. 그랬더니 그는 갑자기 포켓몬 시합을 하자고 했다. 나는 너를 흘깃 곁눈질했다. 가볍게 조무래기들을 처리하고 있는 것 같았다. 조금 여유를 부려도 괜찮을 것이라 생각하고 시합을 받아들였다. 대신 내가 해야 할 일이 있어서 1대 1의 짧은 시합으로 하자고 했다. 소년은 알았다면서 장크로다일을 내보냈다. 그의 실력은 분명 훌륭했다. 망나뇽이 조금만 더 느렸더라면 냉동펀치에 당할 뻔했다. 그래, 너의 실력과 거의 비슷했다. 혹시 전에 네가 말했던 '만날 때마다 시비를 거는 친구이자 라이벌'이 이 녀석이 아닌가도 의심될 정도였다. 그러나 소년은 포켓몬을 너무 혹독하게 다뤘다. 나에게 패배하자 그는 장크로다일을 한번 사납게 째려보고는 몬스터볼로 불러들였다. 이 아이의 태도에도 무언가 사정이 있겠지,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나는 그에게 포켓몬을 조금 더 소중히 다뤄도 충분히 승부에서 이길 수 있다고 충고해주었다. 그는 기분 나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더니 말없이 2층으로 올라갔다. 마침 그 직전에 너도 3층을 다 정리하고 2층으로 올라간 터였다. 정말 소년이 네가 말하던 그 친구가 맞다면 너희는 아마 만나서 무슨 이야기라도 나누지 않았을까.
네가 람다의 사무실에 가 있는 동안, 나는 혹시나 남아 있는 조무래기가 있어서 너의 뒤를 노릴까봐 3개의 층을 샅샅이 뒤졌다. 예상대로 열댓 명이 숨어 있었다. 그들은 조무래기 중에 나름 정예멤버였는지, 여러 명이 한꺼번에 덤비니까 망나뇽 하나로 막아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내 파트너를 잠시 몬스터볼에서 쉬게 하고, 나는 나머지 5마리의 포켓몬으로 그들을 상대했다. 조무래기들은 승부에 집중하기보다, 나를 노렸다. 내 포켓몬 4마리가 쓰러지고 리자몽 하나 남았을 때, 싸울 수 있는 로켓단원의 수는 3명으로 줄어 있었는데 나는 2명만 남은 줄 알았다. 방심했다. 리자몽의 화염방사로 내 앞의 2명을 처리했을 때, 뒤에서 남은 한 명이 명령하는 소리가 들렸다.
"이판사판태클!"
레트라가 나에게 돌진하고 있었다. 피할 수가 없어서 두 팔로 얼굴을 감싸고 공격을 맞았다. 아까 다쳤던 팔에 정통으로 맞은 것 같았다. 나는 뒤로 쭉 밀려나 리자몽과 부딪혔다. 리자몽은 분노로 가득찬 얼굴로 레트라를 무자비하게 공격했다. 너무 아파서 기술을 지시할 수도 없었지만 고맙게도 알아서 잘 싸워주었다. 이제 조무래기들은 모두 전투 불능이 되었고, 한 명의 주머니에서 바다회오리의 비전머신도 얻어냈다. 이들은 그 비전머신을 이용해 빨간 갸라도스를 회오리 속에 가둬놓고 붙잡을 생각이었다고 했다. 네가 갸라도스를 데려간 것은 정말 잘한 일이었다.
나는 힘겹게 2층의 기계 앞으로 다시 걸어갔다. 그 앞을 지키던 녀석은 네가 이미 처리했는지 보이지 않았다. 이걸 멈출 만한 스위치 같은 것이 없나 찾아보았지만 없는 것 같았다. 어쩌면 있었지만 나의 흐트러진 집중력 때문에 찾지 못한 것일지도 모른다. 이 상황에서 또 로켓단원들을 떼로 마주친다면 곤란할 것 같아서 나는 기계와 벽 사이에 몸을 숨겼다. 곧 누군가 다가오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마지막 남은 망나뇽이 들어 있는 몬스터볼을 꼭 쥐었다. 발소리는 기계의 문 앞에서 멈췄다.
"비주기님 만세!"
누군가 이렇게 말을 하자 문이 열렸다. 이것이 암호인 것 같았다. 그런데 네 목소리가 아니라 낯선 성인 남자의 목소리였다. 너는 어떻게 된 거지? 온갖 생각이 들었지만 내 앞으로 니로우 한 마리가 날아가자 나는 이제서야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눈치챘다. 니로우를 여기까지 몰고 온 건 다름아닌 너였다. 니로우는 람다의 목소리를 흉내낸 것뿐이다. 너는 문 안으로 들어와 기계를 살펴봤다. 아니, 살펴보려는 순간 로켓단의 다른 간부와 마주쳤다. 간부는 조무래기 하나를 데리고 있었다. 간부가 꺼낸 사악한 눈빛의 아보크가 너를 위협하고 있었다. 그들은 강해 보였다. 네가 혼자 싸우게 놔둘 수는 없었다. 나는 고통을 참으며 숨을 한번 크게 들이마셨다. 그리고 너에게 달려갔다.
"잠깐!"
2대 1의 시합이라니, 로켓단은 여전히 치사하군, 이렇게 말하자 너는 희미하게 미소를 지었다. 너는 온몸에 시커먼 재를 묻히고 있었는데, 숨쉬는 것이 힘들어 보였다. 독성이 있는 것 같았다. 나는 너를 걱정스럽게 바라보았다. 너는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해독제는 많이 주웠으니까요, 너는 그렇게 말하고는 간부에게로 다시 시선을 돌렸다. 간부는 자신을 아테나라고 소개하며, 여기서 포기한다면 목숨만은 살려주겠다고 했다. 너는 고개를 저으며 블레이범을 불러냈다. 너희의 분노가 여기까지 느껴졌다. 나도 망나뇽을 불러냈다. 내가 몬스터볼을 살짝 힘없이 던진 걸 네가 눈치채지 않기를 바랐다. 나는 팔짱을 끼는 척하며 너에게서 상처를 숨겼다. 다행히 너는 싸움에 집중해서 눈치채지 못했다.
아테나와 그 옆의 조무래기는 생각했던 것보다 쉬운 상대였다. 네가 잘 싸워 준 덕도 있었지만. 우리는 호흡이 척척 맞았다. 내 포켓몬이 한 마리밖에 남지 않았었는데도, 네가 나머지 5마리의, 아니 그 이상의 힘을 보여줬다. 아테나는 우리에게 지고 나서, 어차피 실험은 성공했으니 이 기지는 필요없다며 그냥 떠나 버렸다. 나는 너에게 괴전파를 멈추는 장치를 따로 찾지 못해서 전력을 공급하는 붐볼을 기절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붐볼에겐 아무 잘못도 없지만, 어쩔 수 없었다. 우리는 양쪽의 붐볼들을 모두 기절시켰다. 그러고 나서 나는 너에게 아까 주웠던 바다회오리의 비전머신을 주었다. 너는 주춤하며 이걸 정말 가져도 되겠냐고 물었다. 나에게는 이미 있는 거니까, 난 이렇게 말하며 너의 손에 비전머신을 꼭 쥐어 주었다. 너는 이미 체육관 배지를 6개나 땄으니 이제 곧 이향과도 싸울 것이다. 이향의 자존심을 생각하면 너처럼 강한 트레이너에게 배지를 순순히 넘겨줄 리가 없었다. 분명 이 비전머신이 필요할 때가 올 것이다.
"너는 포켓몬 마스터가 되고 싶다고 했지. 그 길은 멀고 험난하다는데, 계속할 자신이 있어? ...그래, 중간에 포기할 것이었다면 애초에 시작도 하지 않았겠지."
너는 내 말을 잠자코 듣고 있었다. 챔피언의 자리에 있었지만, 나도 포켓몬 마스터가 어떤 존재인지 가늠조차 할 수 없는데, 내가 이런 조언을 해 줄 자격은 있는 건가? 어쩌면 챔피언을 그만두고 은빛산으로 갑자기 떠나버린 그 아이라면 답을 찾았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아직 답을 찾지 못했다. 너는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대답했다. 의지가 담겨 있었다. 나는 너를 한번 더 돌아보고는 로켓단의 기지를 빠져나왔다. 다음에 너와 다시 만난다면 왠지 그 장소는 석영고원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Fin.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