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망상력에 불을 지펴주신 단호박님께 이 글을 바칩니다.
공기가 차가웠다. 살을 저미는 싸한 추위였다. 또 밤사이에 히터가 나간 듯 했다. 오후로 익어가는 햇살이 침대 위에 펼쳐져 있었으나 그 조각 같은 온기로 추위를 물리치기에는 무리였다. 데릭이 이불을 몽창 긁어 모아 몸에 둘둘 말자 졸지에 이불 바깥으로 쫓겨난 스타일즈는 싫은 소리를 투덜거리며 머리맡의 탁상시계를 더듬었다. 어정쩡하게 상체를 비틀어 억지로 뜬 눈으로 시계를 노려보는 폼새가 어지간히도 일어나기 싫은 모양이었다.
"벌써 여덟 시 반이야." 시계를 팽개치고 다시 늘어진 스타일즈가 중얼거렸다. 그와 동시에 그는 데릭이 훔쳐간 이불을 어떻게든 되찾으려 안간힘을 쓰기 시작했다.
"오늘 토요일이잖아?"
"일요일이거든. 어제 스콧네 집들이가 토요일이었지."
"Even better. 난 아홉 시까지 안 일어날 건데."
데릭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스타일즈는 곧 이불을 되찾는 걸 포기하고 대신 이불 밑으로 꿈지럭거리며 손을 집어넣었다.
"으- 너 손 왜 이렇게 차가워?" 데릭이 화들짝 놀라며 몸을 움찔거렸다.
"글쎄? 누구누구씨가 이불을 다 가져가서?"
"내려가서 히터 좀 켜고 와."
데릭이 베개에 머리를 파묻으며 말했다. 다 죽어가는 목소리였다. 스타일즈는 콧방귀를 뀌며 데릭의 목에 얼굴을 묻었다. 아직도 술 냄새가 희미하게 났다. 얼굴은 보나마나 부어 있을 게 뻔하고 수염이 덥수룩하게 자라났을 테지만 스타일즈는 그런 것보다 데릭이 어리광을 부린다는 사실이 더 좋았다.
"언제는 손에 물 한 방울 안 묻히게 해준다며? 리디아가 그런 말 믿지 말라고 했을 때 들었어야 했는데."
"그건 네가 나한테 한 말이고. 그리고 히터 켜는데 물은 왜 묻혀?"
"어쨌든, 누군 숙취 안 오냐!"
투덜거리던 스타일즈가 버럭 소리를 지르며 손가락으로 데릭의 배를 간질이자 데릭이 비명을 지르며 이불을 튕겨냈다. 스타일즈는 낄낄거리며 잽싸게 이불 아래로 파고들어가 데릭을 끌어안았다. 데릭은 한숨을 내쉬며 이불을 코 아래까지 덮었다.
"이러면 히터 필요 없잖아."
"코 시려."
"늑대는 추위에 강하지 않나? 이렇게 추위를 타면서 그 불탄 집에서는 어떻게 살았대? 문이고 창문이고 구멍이 숭숭 뚫려 있던데."
"좋아서 살았던 건 아니지." 데릭이 스타일즈 머리에 얼굴을 부볐다. "너 머리에서 냄새 난다."
스타일즈가 콧방귀를 뀌며 무릎으로 데릭의 배를 콱 찼다.
"그럼 니 몸에선 꽃향기가 나는 줄 아냐, Sourwolf? 내려가서 빵이나 먹어, 나중에 숙취 때문에 고생하지 말고."
"히터."
"아 진짜 그 놈의 히터 타령."
사실 이불 속이 따듯해서 그냥 이대로 잠이 들었으면 했다. 데릭은 스타일즈의 엉덩이를 톡톡 두들기며 다시 눈을 감았다. 히터 돌아가는 소리만 빼면 사방이 고요했다.
…응?
"히터, 돌아가는데?" 스타일즈가 멍하니 중얼거렸다. 둘의 눈이 마주쳤다. 무슨 소리냐고 콧방귀를 뀌려던 데릭은 웅웅거리는 소리가 들리자 고개를 들어 첝장을 보곤 끙끙거리며 몸을 일으켜 침대 바로 위에 자리한 히터 아래에 손을 갖다 댔다. 따듯한 바람이 입김처럼 손에 부딪혔다. 방은 여전히 차가웠다. 스타일즈가 몸을 일으켜 이불을 몸에 둘둘 말고 침대 위에 선 데릭의 다리를 툭툭 쳤다.
"고장?"
"아니."
"근데 왜 이렇게 춥지?"
그 때 창문에 뭔가가 퍽 날아왔다. 눈뭉치였다. 깔깔거리는 웃음소리가 자지러지게 피어났다. 그와 동시에 데릭의 얼굴이 방금 창문으로 날아와 뭉개진 눈뭉치처럼 새하얗게 변했다. 오늘 바깥은 영하라고 했는데.
"로라!"
스타일즈가 말릴 새도 없이 데릭은 잠옷 바람으로 – 그것도 웃옷은 안 입고 바지만 입은 채로 – 침대를 박차고 나갔다. 말 그대로 박차고 나가는 바람에 매트리스가 프레임에서 반쯤 밀려나가 스타일즈는 악 하는 비명과 함께 제풀에 바닥으로 나가 떨어져 버렸다. 프레임이 안 망가진 게 다행이었다. 지금까지 격렬한 밤일로 부숴먹은 프레임과 매트리스가 몇이던가. 작년에는 프레임 살 돈이 도저히 모이질 않아 몇 달이고 싸구려 매트리스만 달랑 놓고 잔 것을 생각하면 – 잠깐.
이번에는 스타일즈의 얼굴이 백지장처럼 변했다.
"세상에, 난방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