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 00

"-!-!"

어둑한 그 공간은 미처 '말'이 되지 못한 음성이, 신음으로서의 구실조차 못한 채 낑낑대며 애처롭게도 목구멍을 울려대는 한 존재를 강하게도 옥죄이고 있었다.

모든 것을 얼리려는 듯한 날카로운 냉랭함이 그 공간을 지배하며, 신음조차 제 마음대로 낼 수 없는 가련한 한 소녀의 배 위에서 유람 중이었다.

그 날카로움은 강렬한 통증과 함께, 그만큼의 쾌락을 소녀에게 선사하고 있었다.

"..."

소녀의 배위에 앉아있는 정복자는 말 그대로 정복자였으며, 조금의 자비도 없었다.

그 손길은 마치 선두를 내달리는 기사의 말발굽 마냥 거칠었으며, 소녀의 몸은 말발굽에 짓이겨질 때마다 거칠게도 일어오르는 흙먼지처럼 이리저리 퉁겨 올라올 뿐이었다.고급스러우면서도 지나치리라 단출한 그 침전위에서, 단정히 땋아내린 백금발의 정복자와, 그 아래 깔린 채 헝클어진 붉은머리카락 속에 얼굴이 파묻힌 피지배자만이 희미한 달빛을 아슬아슬하게도 피해가며 그렇게 있었다.

"-!-!"

고통조차 마음껏 외치지 못하는 그 괴로움의 목 울림은 오히려 정복자의 말발굽을 더욱 거세게할 뿐이었고, 정복자의 표정은 한층 가혹하게 변해갔다.

새하얀 그 손가락이 길게 뻗어지며 소녀의 둔덕을 거칠게도 긁어내리자, 이미 화상을 입은 듯 민감해져 약해진 소녀의 몸이 이상할 정도로 크게도 반응하며 비척거렸다. 물론-그 비척거림은 이미 소녀의 배위에 자리잡은 정복자의 체중에 강하게 제지 되고 있었으며, 오히려 그 꿈틀거림은 배위의 정복자에게, 그 배에 닿아있는 정복자의 하반신을 자극하여, 말이 더욱 날뛰게 만드는 채찍일 뿐이었다.

"짖지 마라-"

정복자의 명령이었다. 처음부터 변하지 않는 그 명령.

소녀가 방안에 끌려와 정복자 앞에 바쳐졌을 때, 아니 그전부터 있었던 명령.

그 명령은 소녀의 입에 그녀 자신의 속옷이 쑤셔 넣어져 틀어막혔을 때에, 이미 선택 없이 따라야 하는 명령이었지만, 이 정복자는 소녀의 신체가 애처롭게도 자신의 목구멍을 긁어대는 그-신음조차 될 수 없는 안타까운 목울림 마저도 귀에 거슬려 하며 역정을 냈다.

"...!"

소녀의 몸이 이윽고 절정에 닿으려는 듯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정복자는 말 그대로 정복자로서 그저 말발굽으로 내리찍어댈 뿐이었으며, 형식적인 입맞춤은 커녕, 소녀의 몸을 짓밟아가는 수단에조차 자신의 입술은 커녕 입김조차 닿게하지않았다. 그러나 그럼에도 소녀의 몸은 날카롭고도 무자비한 그 손길만으로 이미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

이윽고, 공성전처럼 둔덕을 긁어대던 손가락이 성벽을 훌쩍 뛰어넘더니 왕좌를 단숨에 내리 찍었다.

"-!"

신체 가운데 가장 연약하고 다치기 쉬운 그곳이 다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소녀의 몸은 정복자의 손가락을 품은 채 높게도 허리를 퉁겨올렸다. 그리고는 그대로 쿠션 속에 그 몸을 가라앉혔다.

지배자는 자신의 손가락을 꺼내어보았다. 오물들로 가득차여 보이는 자신의 더러운손을 보며 '여왕'이 미간을 찌푸리는 사이, 끙끙거리는 움직임이 다리아래서 느껴졌기에 돌아보았다.

"...-...-"

"..."

추욱 늘어진 상태 이면서도,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을 상태 임에도..

소녀는 부들거리는 팔을 뻗어 올리며, 쾌락에 젖은 표정으로 지배자의 손길을 바랐다.

거칠었던 행위조차 잊고 쾌락에 젖어든 그 말도 안되는 상황 속에, 소녀는 지배자의 사랑을 요구하고 있었다. 지배자의 입술을 원하고있었다. 낑낑거리며, '여왕'의 아름다운 입술이 닿기를 바랐다.

지배자는 그것을 꽤 불쾌하게 바라보는가 싶더니, 이내 입술을 열었다.

"치워라-"

소녀의 팔에조차 닿기를 더럽다 여기는 표정으로, 지배자는 낮게 '명'하더니, 이미 땀과 그 이외의 것으로 눅눅해진 비단보에 자신의 손을 닦아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