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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2

반장 전용 욕실의 유령


이후 녹초가 된 론과 함께 방으로 돌아온 해리는 침대에 누워서 생각에 잠겼다. 앞으로 어떻게 될지 도저히 알 수가 없었다. 헤르미온느에게 털어놓으려고 했던 그의 고민은 이미 등 뒤로 던져버린 후였다. 지금 그의 머릿속에 가득차 있는 건 헤르미온느와 말포이에 대한 생각뿐이었다. 앞으로 전개될 상황을 상상해보려고 해도 아무런 생각도 나지 않았다. 해리는 잠이 들 수 없었다. 그래서 그는 자리를 박차고 나왔다.

자리에서 일어난 해리는 반장 전용 욕실로 발을 옮겼다. 비록 반장뱃지는 없었지만 트리위저드 시합 이후로 잠이 잘 오지 않을 때마다 종종 그곳을 이용하곤 했던 것이었다. 그리핀도르의 반장인 론과 헤르미온느 역시 그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그를 제지하지 않았다; 론은 친구들의 규칙 위반에 대해 관대한 편이었고, 헤르미온느는 비록 그가 반장은 되지 못했지만 마땅히 반장 욕실을 이용할 권리가 있다고 말하곤 했다.

"오, 해리, 오랜만인걸? 고민이라도 있나 봐, 여길 또 찾은 걸 보니?"

항상 욕실에서 상주하는 유령인 크리스틴 퍼스였다. 학생들의 알몸을 훔쳐보는 그녀의 음흉한 시선은 이미 악명이 높았다. "전혀." 해리는 속옷을 벗지 않은 채로 대답했다. 유령이라고 해도 누군가 자신의 알몸을 보는 것은 딱히 기분 좋은 일이 아니었고, 그 상대가 크리스틴 퍼스라면 더욱 더 싫었다.

"아닌데?"

크리스틴은 비누를 풀어놓은 물처럼 뿌연 몸으로 해리의 주변을 빙빙 돌며 소리내어 킁킁댔다. "냄새가 나는걸." 어쩌면 고민거리를 곰곰히 생각해보기 위해 이곳에 온 게 잘못된 선택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미 늦은 후였다. 욕조로 향하는 해리에게 유령의 흥미롭다는 시선이 따라와서 불편한 기분에 그는 발걸음을 재촉했다.

"뭔가 있잖아, 너, 그렇지? 말해 봐. 난 무려 13년 동안이나 이곳에서 학생들의 고민을 상담해줬다고. 사실 이제 슬슬 지겨운 것 같기도 해. 그렇지만 가끔 이렇게,"

크리스틴이 해리를 향해 얼굴을 불쑥 들이밀었다.

"너처럼 귀여운 애들이 올 때가 있어서 도저히 그만둘 수가 없는 거 있지?"

그리고는 높은 목소리로 깔깔깔 웃어대는 것이었다. 해리는 그 틈을 타 얼른 욕조 안으로 들어가 거품 수도꼭지를 틀었다.

"그리고 13년 동안이나 그 고민들을 소문내고 다녔겠지."

"뭐? 너 정말 무례하구나."

기분이 상한 크리스틴이 인상을 찌푸렸다. 그녀의 반응에도 불구하고 해리가 관심 없다는 듯 시선을 돌리자, 그녀는 검지 손가락을 들어올려 그의 얼굴 가까이에 가져다 대며 강조했다.

"나는, 절대, 지금까지, 아이들의 고민을 소문낸 적이 없어."

"…."

"그러지 말고. 말해 봐. 내가 얼마나 아끼는지 아니, 해리? 네가 저번에 오간 뒤로 네가 또 오길 얼마나 기다렸는데."

해리는 소름이 끼쳤다.

"넌 정말 귀여워. 난 귀여운 아이들이 고민하는 거 좋아하지 않는단 말이야."

그리고는 해리의 볼을 꼬집었지만 해리는 약간 차가운 감촉 외에는 아무런 느낄 수가 없었다. 그녀의 계속된 시도에, 망설이던 해리는 결국 마지못해 입을 열었다. 영 내키지 않긴 했지만 사실 이런 이야기를 털어놓을 상대란 아주 한정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무한테도 말하지 않겠다고 약속할 거야?"

"당연하지. 나의 왼쪽 눈을 걸고 맹세할게. 내 오른쪽 눈의 시력이 영 꽝인 건 너도 알고 있지?"

유령한테 고민상담이라니, 해리의 마음 한 켠이 찝찝해지는 걸 느끼며 유난히 무겁게 느껴지는 입을 열었다.

"너 헤르미온느 알지?"

"오, 그럴 줄 알았어! 연애 상담이구나, 그렇지?"

"그런 거 아냐."

되려 더 설레여하는 그녀에게 해리는 아니라며 일축했다. "적어도 나한텐 아니야." 라고 말하는 해리의 말투는 어쩐지 제 귀에도 씁쓸하게 들려 느낌이 이상했다.

"헤르미온느는 내 제일 친한 친구야."

"오, 그럼, 알고 있지 다. 호그와트 학생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걸?"

"제발 입 좀 닫고 그냥 내 얘기만 들어주면 안 돼?"

"알았어, 알았다구."

그녀가 입술을 삐쭉 내밀었다. 해리는 그 모습을 잠깐 보더니 다시 말을 이었다.

"헤르미온느는 내 제일 친한 친구야."

해리가 반복했다, 마치 누군가가 그 사실을 부정하기라도 한 것처럼.

"그리고 나는 걔가 누군가와 사귄다는 걸 최근에 알아냈어. 그것도 내가 세상에서 제일 싫어하는 상대랑."

"으흠."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넌 그게 맘에 안 드는 거야?"

"당연하지. 내 말은, 난 헤르미온느가 누구랑 사귀든 축하해줄 수 있어. 그치만 갠? 걘 아니지. 절대 아니야. 무엇보다도 항상 헤르미온느를 괴롭혔던 녀석인데. 어째서 그런 녀석하고 만나는 건지 이해할 수가 없어!"

자신의 생각을 입 밖으로 꺼내자 감정이 더 격해지는 것 같았다. 해리는 조심스럽게 그녀의 반응을 살폈다. 이런 자신의 모습이 웃기긴 했지만, 그녀는 지금 해리가 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는 유일한 상대였다. 자신이 잘못된 것인지 제 3자의 눈에서 판단을 내려줄 유일한 상대.

"음, 그렇구나."

그녀의 대답에 해리는 맥이 빠지는 기분이 들었다. 고민 상담 어쩌구 할 땐 언제고 털어놓는 게 저런 대답이라니. 하지만 해리가 뭐라고 대꾸하기도 전에 크리스틴은 다시 입을 열었다.

"그렇지만 그건 헤르미온느의 자유가 아닐까? 그녀가 자신의 의지를 가지고 말포이와 만나는 거라면, 그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이라는 거 아니겠어?"

"하지만 걘 정말 아니라고."

이야기에 푹 빠진 해리는 그녀가 말포이의 이름을 꺼냈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었다.

"그렇지만 그녀가 선택한 사람이잖아. 나는 네가 그들에게 기회를 줘야 한다고 봐."

"'그들'이 아니야!"

그가 버럭 지른 소리가 욕실 안에서 윙윙 울렸다. 해리는 둘의 비밀을 알게 된 이후에도 결코 헤르미온느와 말포이를 '그들'이라고 부르지 않았다. 그리고 그건 앞으로도 마찬가지일 거였다. 헤르미온느는 헤르미온느였고 말포이는 말포이였다. 해리에게 있어 둘은 결코 '그들'이 될 수 없는 대상이었다.

"솔직하게 말해 봐. 정말로 상대가 말포이라서 그래? 다른 사람이었다면 네가 쉽게 받아들였을까?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거야?"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네 마음을 잘 들여다 보라는 거야. 그리고, 맞네, 연애 상담."

그리고 크리스틴은 낄낄 웃었다. 그 말을 듣자 해리는 불쾌한 기분을 느꼈다. 피가 몰려 벌개진 얼굴이 뜨거워졌다. 그래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더 이상 이곳에 있고 싶지 않았다. 속을 들여다 보는 것처럼 꾸며대는 그녀의 말투도 그렇고 욕조에 담긴 물도 너무 뜨거운 것 같았다. 지금 붉어진 얼굴도 욕조에 담긴 물 때문일 거였다.

"어디 가는 거야, 해리?"

등 뒤로 그녀의 물음이 들려왔다. 하지만 해리는 뒤돌아보지 않았다. 방으로 돌아가는 내내 그녀의 웃음 소리가 그의 귓가에 맴도는 듯 했다.


주말의 호그스미드에 유난히 사람이 붐볐다. 그들은 스리브룸스틱에서 각자 버터맥주 한 잔씩을 앞에다 두고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해리는 자신의 앞에 앉은 론과 헤르미온느의 대화가 익숙한 양상으로 흘러가는 것을 지켜보고 있었다. 론이 의자에 몸을 기대며 일부러 들으라는 듯 ― 아마도 그의 사정에 공감하는 누군가를 찾으려는 심산으로 ― 크게 투덜댔다.

"아, 학교로 돌아가기 진짜 싫다. 숙제가 쌓였어."

"뭐? 쌓일 숙제도 없었잖아."

곧바로 헤르미온느의 눈이 번쩍였다. 공부와 숙제에 대한 주제를 헤르미온느가 놓치는 법은 절대 없었다.

"너한테나 그렇겠지."

그리고 론은 이미 헤르미온느의 반응을 예상했었다는 듯이 눈을 굴렸다.

"그럼 오늘은 일찍 들어가야겠다."

"뭐?"

"네가 숙제를 해야 하니까, 일찍 가야지."

"안 돼! 네가 내 스케줄을 짤 권리는 없어, 헤르미온느!"

절규를 한 론은 몸을 숙여 해리에게 "얠 데려오지 말았어야 했는데."라고 익숙하게 중얼거렸다. 해리는 씩 웃었다. 론과 헤르미온느의 대화를 지켜보는 건 거의 대부분, 그러니까 엄청난 싸움으로 일이 커지지 않는 한에서는 재밌었다.

"해리한테 투덜거려봤자야."

론의 모습을 보고 있던 헤르미온느가 덧붙였다. 그리고는 그 갈색 눈에 응당 그래야 하듯 신뢰를 담아 해리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해리는 항상 꾸준히 해서 오늘 해야 할 숙제도 없다고, 그렇지?"

해리는 당황했다. 호그스미드에 갔다 왔다가 하기로 한 변신술과 마법의 약 에세이가 책상에 쌓여 있는 모습이 눈 앞에 플래시백처럼 지나갔기 때문이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해리는 헤르미온느를 실망시키는 데에 서툴렀고 때문에 시선을 피하여 최소한으로 필요한 각도만큼만 고개를 끄덕였다.

"봤지?"

헤르미온느는 의기양양해져선 충격을 받은 론의 등을 톡톡 두들겼다.

"이건 거짓말이야. 해리는 항상 나랑 같이 놀았는데!"

"왜냐하면 해리는 성실하고 또 숙제를 미루지 않을 만큼 분별력 있으니까."

해리는 자신의 등에 땀이 흐르는 걸 느꼈다. 헤르미온느는 언제나 그를 그녀자신 급으로 치켜세우는 경향이 있었다. 헤르미온느의 눈엔 정말 그렇게 보이는지는 몰라도 해리가 생각하기에 자신은 헤르미온느에겐 부족해도 한참 부족했다. 그래도 아무튼 여전히 해리는 가만히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헤르미온느를 실망시키기 않기를 하고 있었다.

"불공평해. 넌 해리가 반장이 되었어야 했다고 생각하지?"

"뭐?"

열등감에 론이 던진 주제에 헤르미온느의 얼굴이 살짝 빨개졌다. 셋 모두 알고 있었지만 결코 입으로 꺼내지 않던 주제였다.

"뭐? 난…저…,"

보기 드문 헤르미온느의 당황한 모습에 론은 정말로 기분이 상한 것 같았다. 해리는 자신이 조금 긴장한 걸 느꼈다. 헤르미온느의 대답이 어느 정도 예상되기는 했지만 그래도 헤르미온느의 입을 통해 직접 듣는 것은 처음이었다. 그는 최대한 관심이 없는 척하며 귀를 쫑긋 세우고 있었다. 결국 헤르미온느는 숨을 훅 들이키곤 다시 정신을 차려 마치 그것이 세상에서 최대한 합리적이고 타당하다는 투로 ― 그러니까 평소의 말투 그대로 ― 말했다.

"해리뿐만이 아냐. 공부를 열심히 하고 책임감이 있는 사람이 반장이 되어야 한다는 건 모두의 일반적인 생각이라고. 그러기만 하다면야 난 아무나 상관 없어."

좋아. 아무나 상관 없어 부분은 조금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그래도 결국은 해리가 반장이 되어야 했다는 말이었다. 좋았어. 해리는 자신이 왜 이 질문에 집착을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게 심지어 말포이라도."

뒤이은 말에 해리는 자신이 눈썹을 찌푸리는지도 몰랐다. 하지만 급격히 찡그려지는 론을 보고 자신도 아마 저런 얼굴을 하고 있을 것임을 깨달았다.

"뭐? 너 제정신이야? 그래서 말포이가 반장이란 게 좋다고?"

"론! 요점은 그게 아니잖아. 내 말은… 내 말은, 책임감 있는 사람이 반장이 되어야 한다는 거지."

론이 헤르미온느의 요점을 눈치채지 못했을지는 모르나 해리는 눈치챘다. 헤르미온느는 거짓말에 끔찍하게 서툴렀기 때문에 그걸 못알아채기란 론만큼이나 둔하지 않은 이상 불가능했다. 해리는 다시 한 번 참기 힘든 기분이 들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셋이서 즐거웠는데, 말포이와 자신의 관계를 잘 받아들일 수 있도록 일부러 우리 들으라고 말포이에 대한 좋은 말을 하다니. 그건 정말 고일의 폴리주스만큼이나 끔찍했고 해리는 무언가가 자신의 뱃속을 헤집어 놓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앞에 놓인 버터맥주엔 손조차 가지 않았다. 그리고 마침내 그녀의 뺨에 자리잡은 홍조를 보는 순간,

망할

해리는 자신의 몸 안에 불이 붙은 것 같았다. 자신이 느끼는 감정에 당혹해하며 해리는 버터맥주로 시선을 떨어뜨렸다. 자신이 왜 이런 감정을 헤르미온느에게 숨기려는지도 알 수가 없었다. 차라리 보여주고 헤르미온느가 죄책감을 느끼는 편이 낫지 않나? 그럼 말포이와 헤르미온느가 그만 만나게 될지도 모르잖아. 하지만…. 헤르미온느가 자신의 이런 상태를 알아차린다면 몹시 부끄러울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대체 부끄러울 게 뭐가 있는지 스스로도 이해가 잘 가지 않았다. 혼란스러운 것 투성이라서 누군가에게 묻고 싶었지만 이런 질문에 믿을 만한 대답을 해주는 사람은 헤르미온느뿐이었다. 헤르미온느를 제외하고 누구한테 이런 말을 한단 말인가? 크리스틴 퍼스?

'난 네가 그들에게 기회를 줘야 한다고 봐.'

반장 욕실의 그 유령의 조언은 최악이었다. 해리는 그녀의 조언을 떠올리며 생각했다. 해리가 말포이는 싫어하는 것은 거의 본능적인 것과 다름이 없어서 기회를 주려고 해도 줄 수도 없을 뿐더러 주고 싶지도 않다.

자신만의 세계에 빠진 해리는 이런 이야기를 다른 사람에게 하는 것을 상상해보았다.

론? 절대 안 되지.
다른 친구들? 너무 눈치가 빨라서 어쩌면 말포이와 헤르미온느의 얘기라는 것을 알아챌지도 몰라.
맥고나걸 교수님? 음… 그건 좀 아냐.
해그리드는? 해그리드라면 분명히 실수로 헤르미온느한테까지 말을 전하게 될 거야.
덤블도어 교수님은? 이런 사소한 일로 바쁘신 덤블도어 교수님을 방해할 수 없어.

그렇다면 누구밖에 없는가? 일기? 일기라도 써야 할까? 하지만 이내 비밀의 방을 열게 만들었던 지니의 일기가 떠올라 고개를 휘휘 저었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

헤르미온느를 바라볼 자신이 없었기에 일부러 그곳에서 시선을 피하며 론을 향해 고개를 저었다.

"혹시 흉터가 아프니, 해리?"

낮춘 목소리로 묻는 걱정스러움이 가득 묻어나는 헤르미온느의 시선이 해리의 눈을 마주했다. 고통을 받을 때마다 마치 세상에 존재하는 게 해리밖에 없다는 것처럼 관심을 기울이는 헤르미온느의 행동이 그의 가슴을 꾹 눌러왔다.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는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헤르미온느의 눈이 자신이 지금, 그리고 앞으로도 그의 안을 헤집고 있는 생각과 감정들을 눈치채지 않길 기도하는 것뿐이었다.

'맞네, 연애 상담.'

왜 하필 이 순간에 그 말이 떠오르는 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