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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전혀 예상치 못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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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남자애한테 호그스미드 데이트 신청했다!" 호그스미드 외출일이던 토요일 아침에 소차가 자랑스레 말했어.
나는 소차가 또 우리 아빠한테 팬레터를 썼다느니 하는 얘기를 하는구나 싶었는데, 의외로 멀쩡한 말이라 솔직히 놀랐어.
"후플푸프에 올리버 캠벨이라는 남자애야."
음, 소차가 올리버라는 애를 만난다고...? 나만 좀 이상하다고 생각하는 건가? 나는 잔뜩 놀란 표정으로 크리스틴을 흘끗 쳐다봤어. 그 답으로 크리스틴은 어깨를 으쓱이며 "나한테 묻지 마," 라고 속삭였어.
"정말 잘 됐다, 소차!" 겜마는 소차를 꼭 안아주며 말했어. "그래, 존슨 그 자식은 이제 다 잊은 거지? 아무리 봐도 네가 너무 아까웠다구."
오, 저번에 소차가 겜마한테 제임스는 절대 널 좋아하지 않을 거라고 했던 일을 생각하면 놀라운 반응인데. 겜마도 그 때 일은 이제 다 잊었나 봐.
잠깐만... 소차가 진짜 현실세계의 사람을 좋아한 적이 있었어? 물론 아빠가 현실세계 사람이 아니란 말은 아냐, 분명히 존재하잖아. 다만 현실적으로 생각했을 때 아빠는 유명인이고 나이도 많고 유부남이니까 '그런' 식으로 좋아하는 대상이 될 수가 없다는 거지. 소차가 우리 또래 남자애들의 존재를 아예 모르진 않았다는 게 난 제일 놀라웠어.
물론 내가 소차의 연애사를 다 알진 못하겠지, 눈치를 못 챈 부분도 많을 거고. 하지만 소차가 내게 하는 얘기라고는 열이면 열 백이면 백 우리 아빠 얘기뿐이었단 말이야. 자기 마음을 너무 떠벌리고 다니는 애라고 생각했는데, 최소한 연애사까지 다 입 밖으로 늘어놓는 사람은 아니었던 모양이야.
아냐, 어쩌면... 내가 소차를 너무 부정적인 애로 단정지어 버린 걸지도 몰라. 그냥 연예인을 좋아하는 소녀의 마음이었을 수도 있는 건데. 사실 그런 사람들이 소차만 있는 것도 아니지, 이유는 모르겠지만 우리 아빠가 정말 잘생겼고 매력적이라고 생각하는 여자들은 수도 없이 봤으니까. 내가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이상한 편지를 수도 없이 받았는걸. 최대한 절제해서 표현하자면, 토 나올 것 같아. 이유는 모르겠지만 엄마는 그런 편지를 재밌어하는 것 같긴 하더라만.
"올리버는 우리보다 한 학년 아래야, 그래도 너무 좋은 애구." 소차는 즐거운 표정으로 계속 말을 이었어. "사실 처음 걔한테 관심이 갔던 건 이름 때문이었어, 올리버 우드와 이름이 같잖아! 내가 정말 좋아하는 사람인데!"
아, 방금 그 생각 전부 다 취소. 소차는 그냥 정신이 나간 거야.
침대 옆 거울로 난 내 모습을 흘끗 확인했어. 크리스틴이 하도 잔소리를 한 덕분에 머리를 반묶음으로 올렸거든. 평소에 자주 하던 스타일이 아니라 불편하고 어색했어. 보통은 그냥 풀어놓거나 하나로 올려 묶는단 말야. 호그스미드 외출일이니 조나단한테 잘 보여야 한다거나 뭐 그런 뜻에서 반묶음을 권한 것 같더라.
"에바, 오늘 머리 예쁘게 묶었네." 록산느가 뜬금없이 그런 말을 했어. "새삼 그 갈색도 참 예뻐 보여, 웨이브 넣은 부분은 살짝 금발이나 적발 끼도 보이고. 예쁘다."
"어..." 난 어떻게 대답해야 할 질 몰라 말끝을 흐렸어. "아, 고마워."
"저번에 누가 에바 머리카락 참 예쁘다고 한 적 있었는데, 누구였더라..." 록산느는 빨간 스웨터를 뒤집어 쓰면서 곰곰이 생각을 하는 듯 말끝을 흐렸어.
"준비 다 했으면 아침 먹으러 가자." 겜마가 옆에서 그런 록산느를 재촉했어. "배고파 죽을 것 같아."
"근데 제임스는 보통 일찍 밥 먹고 순식간에 나가버리잖아, 지금 가도 못 보지 않을까." 소차는 무신경하게 중얼거리듯 대꾸했어.
"제임스!" 순간 록산느가 손가락으로 딱 소리를 내며 소리쳤어. "맞아, 에바, 제임스였어. 걔가 네 머리카락이 참 예쁘다고 그랬다니까."
"걔가 밥을 일찍 먹는지 늦게 먹는지 네가 어떻게 알아?" 겜마는 불만이 살짝 들어간 목소리로 소차에게 물었어.
소차는 손에 든 빗을 슬쩍 내려놓고는 옷장 문을 닫으며 말했어. "그냥 어쩌다보니 행동 양식을 알게 됐을 뿐이지. 별 거 없어."
그리고 잠시 불꽃이 퐁 하고 일더니 어느새 겜마의 베개에서 연기가 스멀스멀 올라오고 있었어.
"우린 이제 나가자." 난 그렇게 말하며 크리스틴을 질질 끌다시피 하며 방에서 나왔어.
학교 복도는 아침을 먹으러 가는 학생들과 호그스미드에 가려는 학생들이 뒤섞여 복잡하게 꽉 차 있었어.
"있지," 대연회장으로 가는 길에 난 곰곰이 생각에 잠겨 말했어. "생각을 해 봤는데, 겜마가 불을 낼 때마다 어디다 적어 놓을 걸 그랬어. 6년하고도 반년동안 대체 몇 번이나 일을 낸 건지."
크리스틴은 싱긋 미소를 지으며 한 손으로 내 팔짱을 꼈어. "사실 나 다이어리에 다 적어 놓고 있었어, 2학년 때부터."
나는 그 말에 마주 미소를 지었어. "역시 넌 내 친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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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다음은 또 어디야?" 톰스앤스크롤 서점 문을 나오자마자 키에런이 물었어. 막 서점을 나온 우리 중 키에런과 조나단은 책이 잔뜩 든 가방을 하나씩 들고 있었고, 난 새로 나온 스파이 4권을 드디어 손에 넣었지.
"이따 퀴디치 용품점에 잠깐만 들리자." 난 바로 그렇게 대답을 했어. "빗자루 광택제도 거의 다 떨어졌고, 무릎 보호대도 새로 사야 할 것 같아. 다음 연습 때까진 우리 선수들 장비를 전부 새 것처럼 닦아 두고 싶어서 여유 있 두려고."
"맞아, 그러는 편이 좋지." 조나단이 그렇게 맞장구를 쳐 줬어.
"트로피를 그렇게 닦아대고도 아직 더 닦을 게 남았단 말야?" 키에런이 도저히 믿기지 않는다는 듯 웃음소릴 내며 말했어. 저건 내가 한동안 트로피 전시실의 트로피들을 닦는 벌을 받았던 걸 얘기하는 거야. 그렇게 상기시켜주다니 참 고마워 어쩔 줄 모르겠어. 내가 그 생각을 안 하려고 얼마나 노력했는데!
"나랑 키에런은 잠깐 더비시앤뱅스 쪽으로 갔다 와도 될까?" 크리스틴이 물었어. "다른 건 아니고 퀴디치 용품점에서 네가 꽤 오래 있을 테니까. 살 거 다 사면 스리 브룸스틱스로 와, 너희 자리 잡아 두고 있을게."
사실 호그스미드의 가게는 다이애건 앨리의 퀴디치 용품점만큼 좋지는 않지만 그래도 완전히 퀴디치 용품만을 취급하는 가게가 있다는 것만 해도 정말 다행이었어.
가게 문에 달린 종을 딸랑딸랑 소릴 내며 난 조나단과 가게 안으로 들어갔어. 광택제 냄새, 장비 가죽 냄새, 나무 냄새까지 내게 너무나도 익숙하고 편안한 곳이었지.
"여기 냄새 너무 좋지 않아?" 난 잔뜩 황홀경에 빠져 숨을 들이쉬었어.
"뭐랄까... 특이하네."
옆에 선 조나단을 흘끗 보니 그 냄새가 영 불편하다는 듯 살짝 찡그려진 표정을 짓고 있더라. 아무리 봐도 이해가 안 가는 반응이었어.
광택제 판매대에서 고완 브랜드의 광택제를 보고 있는데 다시 벨이 딸랑딸랑 울리는 소리와 함께 제임스 포터의 목소리가 들렸어. "퀴디치 가게 냄새보다 더 좋은 냄새가 또 어디 있을까,"
봤지? 다른 사람들도 퀴디치 가게 냄새 좋아한다구. 내가 특이하다거나 그런 게 아니라니까.
"글쎄... 난 여기보다 허니듀크가 더 좋아." 그 뒤로 알버스의 목소리도 들렸어. "형도 초콜릿 냄새라면 퀴디치보다 더 낫다는 말은 못할 걸."
"그럼 넌 나가."
알버스는 그 말에 작게 웃음을 터뜨리기만 했어. 나는 싱긋 미소를 지었지.
"혹시 내가 다른 냄새를 못 맡아서 그런가?" 조나단이 잔뜩 심각한 얼굴로 물었어. "무슨 냄새인지 잘 모르겠는데."
나는 그런 조나단을 빤히 쳐다봤어. 충격이라는 단어로 표현할 수가 없는 그런 기분이었어. 무슨 냄새인지 모르겠다는 말이 대체 무슨 뜻이야? 여긴 그냥 천국 그 자체인데!
"필요한 건 이제 거의 다 산 거지?" 조나단이 물었어.
난 다시 충격적이다 못해 공포스런 기분에 입을 동그랗게 벌렸어. 그 순간 조나단과 내가 더이상 '우리'로 남아있어야 할 필요가 전혀 없겠다는 생각이 머릿속에 스치고 지나갔어. 왜 더 일찍 이 생각을 못했을까, 내가 정말 둔치에 멍청이었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어. 이제 문제는 조나단에게 헤어지자는 말을 어떻게 해야 하냐는거야. 나중에 크리스틴이랑 얘기를 해 봐야겠어.
"에바!" 곧 알버스가 날 보고는 인사를 건네며 내 쪽으로 걸어왔어.
제임스는 평소와 같은 능글맞은 미소를 짓고는 그 뒤를 졸졸 따라왔어. "에바 우드... 여기 와 있을 줄 알았지, 내가." 제임스는 가까운 진열대에 몸을 편하게 기대고 한 손으로 머리카락을 잔뜩 헝클어놓았어.
"안녕, 알버스." 내 옆에서 조나단이 밝은 미소와 함께 인사를 했어.
"응, 안녕," 알버스도 대답을 했어. "아, 나 형한테 할 말 있었는데, 다음 주 순찰 순서를 좀 바꿔줬으면 해서. 천문학 시간에 망원경을 부수는 바람에 나머지 벌을 받게 됐거든."
아, 맞아, 그러고보니 알버스랑 조나단이 아는 사이겠구나. 알버스가 반장이니까.
"하이, 그랜트." 제임스는 조나단을 훑어보듯이 빤히 쳐다보며 말했어.
아, 또 저렇게 기싸움을 붙이는구나.
"응, 제임스." 조나단도 마주 대꾸를 했어, 평소처럼 기쁘게 반기는 기색이라곤 전혀 찾아볼 수가 이번엔 뭐랄까, 좀 더 힘을 준 것 같아, 제임스 기세에 자기도 맞서겠다는 것처럼. 한 마디로 이상해.
"다음 연습 땐 장비들 전부 한번 손을 볼 생각이라," 난 제임스를 보고 말했어. "여러모로 준비를 해 놔야지."
"이게 이번에 새로 나온 건데 혹시 써 봤냐?" 제임스는 내 손에서 고완 광택제를 집어 들며 몸을 가까이 숙였어. 그 움직임에 조금은 거칠면서도 따뜻한 감촉으로 제임스는 내 손을 쓸었고, 동시에 양 볼이 살짝 달아오르는 바람에 굳어버리려던 표정을 애써 감춰야 했어.
전에는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그런 기분이야. 뭔가 이상했어. 물론 그동안 내 인생 하루하루 이상하지 않은 날은 없었다지만ㅡ소차 패터슨과 한 방을 쓰는데 이상할 일이 없다면 기적이겠지ㅡ 그래도 이상했어.
"아니, 아직." 그렇게 대답하는 내 목소리가 평소보다 더 작아져버린 것 같아. "이번엔 이걸 한번 써 볼까 생각중이었는데."
"아, 맞아," 순간 알버스가 뭔가 떠올랐다는 듯 손으로 딱 소릴 내며 말했어. "있잖아, 에바, 그 '계획' 말이야, 이제 슬슬 본격적으로 시작해 볼 생각이야."
"계획?" 나는 알버스가 무슨 말을 하는 지 몰라 재차 물었어. 그 계획이란 게 내가 알아야 하는 종류의 계획인 거야? "무슨 계획?"
"우리 동생 릴리랑, 우리가 걔한테 꼭 맞게 선발한 남자를 이어주려는 계획." 제임스는 가게 안의 다른 학생들이 듣지 못하도록 목소릴 낮춰 말했어.
"오늘은 라이산더 스캐맨더랑 같이 왔더라고." 이어 알버스가 조금은 기분 나쁜 듯 한 표정을 하고 말했어. "뭐, 가족들도 다 친하고, 좋지, 그래도 걘 좀 뭐랄까..."
"존나 또라이지." 그 말을 제임스가 끼어들어 받아쳤어.
알버스는 대답을 잠시 망설이는 듯 하더니 곧 동조의 의미로 고개를 끄덕였어. "그래서 이젠 그 계획을 실행에 옮겨야겠다고 생각한 거야."
무슨 일인지는 몰라도 재밌겠는데. "오, 그럼 너희가 뽑은 그 대단한 남자가 누군지 나한테도 드디어 말해주려는 거야?"
제임스와 알버스는 잠시 서로를 흘끗 쳐다보다가 날 다시 돌아보고는 동시에 입을 열었어.
"리처드."
잠깐, 뭐? 그러니까... 저 형제가 예뻐 죽는 자기들 여동생이랑 이어주려고 했던 남자가, 내 동생이란 말이지?
두 사람은 조금은 불안한 표정으로 내 눈치를 살폈어. 내가 뭐라고 반응을 보일 지 확신이 서질 않는 모양이야.
"그걸 왜 이제서야 나한테 말해주는 건데?" 나는 그렇게 따지고 들었어. 솔직히 리처드랑 릴리를 이어주려고 한다고 해서 내가 화를 내거나 하진 않을 거 아냐? 저 자식들은 대체 날 뭘로 본 거야?
"다들 너무 김칫국부터 마시는 건 아닐까?" 조나단이 이번엔 입을 열었어. 순간 제임스나 알이 한 말에 너무 정신이 팔려서 조나단이 옆에 같이 있다는 것도 사실 잊고 있었어. "릴리나 리처드 본인들은 서로에게 크게 관심조차 없을 지도 모를 일이잖아."
"리처드 쪽은 아닌데. 걘 릴리 좋아하는 게 보이거든." 제임스가 의미심장한 미소를 씩 지어올리며 말했어. 조나단한테 네 말이 틀렸다고 하는 걸 되려 즐기는 것 같아.
"리처드가 릴리를 좋아한다고?" 순간 놀란 난 그렇게 소리를 질렀어. 목소리가 너무 컸던 것 같기도 하고.
"쉿!" 제임스와 알이 동시에 똑같은 자세로 가게를 휙 둘러보며 말했어. 멀린께 감사하게도 가게 안의 다른 사람들은 다들 자기 일 보는 데 바빠 내 목소린 듣지도 못한 것 같았어.
"리처드는 내 동생이잖아, 근데 왜 나만 빼고 다들 알고 있는 거야?"
제임스는 두 눈을 빙글빙글 굴리며 느릿느릿 대꾸했어. "그거야 당연하잖아, 네가 보통 눈치가 없어야 말이지. 바로 코앞에다 들이밀어줘도 직접 말만 안 하면 하나도 모르는 사람이."
음, 방금 그 말은 좀 심했던 것 같지 않아?
알버스는 짜증나게도 제임스가 한 말에 소리내어 깔깔 웃음을 터뜨렸어. 내가 째릿 하고 적당히 하란 시선을 쏘아보내자 급하게 기침소리로 바꿔버리긴 했지만.
나는 내가 전혀 놀라거나 하지 않았다는 걸 보여주려고 두 형제를 빤히 쳐다봤어. 그 둘은 각자 나랑 똑같은 표정을 하고 날 도로 쳐다볼 뿐이었지만. 물론 제임스는 평소와 다름 없는 그 트레이드마크의 미소도 띠고 있었어.
그래, 내가 누굴 속이고 말고 하겠어, 이 우주에서 가장 눈치 없는 인간이 말이야.
"그래도 퀴디치에서만큼은 안 그래." 나는 손가락을 치켜들고 두 사람을 가리키며 말했어.
"그래, 그 부분은 인정." 제임스는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를 했어. "퀴디치만큼은 대단하다고 해야지."
아까 그 말보다 훨씬 나은걸. 맞는 말이기도 하고.
"그나저나 너희 둘은 리처드가 누굴 좋아하는지 어떻게 안 거야?" 나는 내가 뭔가 놓치고 있다는 생각에 그렇게 물었어.
"리처드가 툭하면 릴리랑 붙어있으려고 하던데, 누나는 정말 하나도 몰랐어?" 알버스가 정말 못 믿겠다는 목소리로 되물었어.
물론 두 사람이 붙어 있는 모습이야 날이면 날마다 봤지. 그래도 리처드가 뭔가 평소와 다르게 행동하는 것 같지는 않던데. 보통 여자애들이랑 친하게 지내질 못하는 애가 릴리랑은 친한 친구로 잘 지내나보다 하고 생각했을 뿐이었지.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가로저었어.
"너만 빼고 전부, 말 그대로 전부가 눈치챌 정도로 엄청 티를 냈다고." 제임스가 되받아쳤어.
그래,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일단 좋아, 나도 도울게." 나는 싱긋 미소를 지어 보이며 긍정의 대답을 했어.
"그래도 네 동생이 다른 남학생이랑 데이트를 왔다며. 그럼 리처드 말고 다른 애한테 벌써 관심이 있다는 뜻 아닐까?" 조나단이 다시 입을 열었어.
"릴리 걘 그냥 거절을 못해서 그래." 이번엔 알버스가 잔뜩 확신에 찬 목소리로 대답했어. "우리가 라이산더를 모르겠어, 릴리한테 걘 친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고."
조나단은 이번엔 내게로 질문을 돌렸어. "에바, 넌 동생이 네 삶에 너무 간섭을 한다고 싫어했잖아, 그럼 너도 동생 연애에 크게 개입할 수 없는 입장 아니야?"
나는 무거운 한숨을 내쉬었어. 방금 그 질문은 남매간의 복잡한 관계를 처음부터 끝까지 설명해보라는 말과 다르지 않잖아. 외동으로 자란 애가 뭘 알겠냐만은.
"자, 들어 봐," 나는 조곤조곤 말을 시작했어. "동생들이 내 인생에 간섭하는 게 짜증이 나는 건 맞아. 걔네들이 이제 그만 좀 해 줬으면 하는 것도 맞아. 정말 진절머리가 나. 그럼 그 동생이 똑같이 한번 느껴 볼 수 있는 일생일대의 기회가 눈앞에 있는데 이걸 놓쳐버리면 되나? 안 될 말이란 거지. 그리고 리처드는 릴리를 좋아한다며, 나랑은 얘기가 다르다구."
저렇게 설명을 했지만 조나단은 여전히 이해를 못 하겠다는 표정이야. 사실 그 말을 더 이해하질 못하는 것 같아.
"남매들간에는 역시 그런 게 있지." 제임스가 그렇게 말하며 내 말에 동조해줬어.
나는 그대로 제임스와 알버스를 돌아보고 섰어. "그나저나, 그럼 계획이 뭐야?"
"생각을 해 봤는데, 네가 언제 한 번 시간을 내서 릴리를 데리고 그걸 좀 해 봐, 왜 여자애들끼리 밤에 모여서 비밀 얘기도 하고 장난도 치고 하는 거 있잖아. 로즈랑 릴리랑 록산느까지 다 모아서 릴리가 리처드한테 조금의 관심이라도 있는지 알아봐 주면 그 다음은 우리가 진행할게."
나는 멍한 표정으로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두 사람을 쳐다봤어. 내가 그런 어린애들이나 하는 놀이를 아직도 할 거라고 생각한단 말야?
"여자애들은 그냥 편하게 그러고 논다고 하잖아." 알버스가 내 표정을 어떻게든 돌려 보려 입을 열었어. "서로 머리 땋아주면서, 좋아하는 사람이 누군지 같은 거 얘기하고."
설마 저걸 진담으로 하는 소리는 아니겠지? 여자 형제가 없는 것도 아니고, 사촌 중에도 누나가 수두룩한 애가 저렇게 모를 리가 없는데.
"그런 진실게임 같은 건 4학년 때가 마지막이었어, 겜마는 내 머릴 엉망진창으로 만들어놨고 소차의 로맨스 판타지 얘길 들었었지, 알고 싶지도 않았는데." 나는 잔뜩 가라앉은 목소리로 투덜거리듯 말했어.
그 말에 제임스와 알버스가 동시에 히익 하고 몸을 떨었고, 반면 조나단은 무슨 애길 하는지 도저히 모르겠단 표정으로 고개를 갸우뚱거렸어.
"아, 그럼 이렇게 하자," 잠시 뒤 제임스가 새 의견을 내놓았어. "록산느한테도 도와달라고 해 볼게, 모임은 걔가 주도해서 딱 몇 명만 부르면 되잖아."
나는 잠시 말을 멈추고 그 말을 곰곰이 생각해봤어. 소차나 겜마만 없다면 꽤 재밌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
"그럼 그 문제는 록산느한테 얘길 해 봐, 난 참가만 할게." 나는 그렇게 제임스의 제안에 동의를 했어. 어찌됐건 내 동생이 좋아한다는 여자애랑 잘 되도록 도와주는 일이잖아? 소차만 없다면 그렇게 불편한 자리도 아닐 테고.
"우린 이만 가서 프레드 형이나 찾아보자," 알버스가 손목시계를 들여다보며 말했어. "아까 마담 퍼디풋 카페 앞에서 또 수잔나 피터스한테 달라붙어 있던데."
"어우, 그 소름돋는 데를 누가 가겠어." 나는 마담 퍼디풋 카페란 이름에 아무 생각 없이 말했어. 방금 전에 조나단이 잠깐 거기 가서 차나 한 잔 하는 게 어떻겠냐고 물었던 일은 새까맣게 잊고 있었지.
제임스는 내게 평소와 다르지 않은 미소를 지어 보이고는 돌아섰어. "새로운 소식 들리면 바로 말해 줄게. 나중에 봐, 에바."
"응, 나중에 봐." 나는 마주 제임스에게 활짝 웃음을 지어보이며 인사를 건넸어.
"네가 제임스 포터랑 그렇게 친한 줄은 몰랐는데." 조나단이 두 형제가 가게를 나가자마자 던진 말이었어.
나는 잔뜩 놀란 표정으로 조나단을 올려다봤어. 그 초록 두 눈에는 평소와 다르게 불편한 기색이 역력했어.
"어... 어쩌다 보니 친해지게 됐어. 졸업할 때가 다가와서 그런가, 내가 생각했던 것만큼 재수없는 놈은 아닌 것 같단 생각이 들더라구. 아, 물론 멍청한 애긴 하지, 전이랑은 조금 다른 의미긴 하지만. 지금 보면 가끔씩 정말 따뜻한 사람이란 생각이 들 정도야. 내 성질을 건드는 데는 역시 일가견이 있는 애긴 하지만, 날 웃게 하는 일도 정말 많은걸. 꽤 괜찮은 애야. 아, 내가 이런 말을 했다는 건 제임스한텐 비밀이야."
조나단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어. 그 옆에서 난 고완 광택제를 한번 써 보기로 결정을 내렸어. 설명을 보니 꽤 괜찮아 보였거든.
가게 밖으로 걸어나오면서 조나단은 내 팔을 부드럽게 쿡 찌르고 물었어. "잠깐 다른 데 앉아서 얘기하다 갈래?"
사실 난 그러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었어. 그저 빨리 스리 브룸스틱스에 갔다가, 점심을 먹고, 크리스틴이랑 단 둘이 있을 시간을 내서 남자친구랑 헤어지려면 어떻게 말해야 할 지 조언을 구하고 싶을 뿐이었거든.
"그치만, 스리 브룸스틱스에서 크리스틴이랑 키에런을 만나기로 했잖아."
"잠깐이면 돼, 할 얘기 있어." 조나단은 차분하면서도 낮고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어.
그렇게 우린 퀴디치 가게 옆으로 늘어선 낮은 돌벽에 잠시 앉았고, 조나단이 먼저 입을 열었어. "있지, 에바... 생각만큼 잘 안 되는 것 같아."
그게 무슨 말이야? 생각만큼 잘 안 된다고? 뭐가?
"우리 말이야. 이 관계, 너와 나." 조나단은 우리 사이로 손짓을 해 보이며 말을 이었고, 난 그런 조나단을 멍한 표정으로 쳐다보고만 있었어.
순간 나는 조나단이 무슨 얘길 하고 있는 건지 쉽게 눈치를 챌 수 있었어. 우리 관계가, 그러니까...
"아," 나는 그렇게 멍청해 보이는 대답을 했어. 순간 얘가 지금 나랑 헤어질 작정이란 생각에 할 말을 잃었나 봐.
"솔직히, 우리가 그렇게 잘 어울리진 않는 것 같아." 조나단은 왠지 모르게 조금은 속상한 목소리로 조곤조곤 말했어. "나는 너한테 진심이야, 정말 좋아했고, 좋아해. 그런데 요즘따라 넌 날 좋아하지 않는다는 게 계속 느껴졌어. 이해해보려고 정말 많이 노력했어. 내가 그냥 바보같이 질투나 하고 있는 게 아닐까 생각했어. 넌 아무것도 아니라는 말만 계속했고, 난 네 말을 믿었지.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그것뿐이었으니까, 하지만... 더 이상은 부정하지 못하겠어, 사실은 사실인걸."
나는 무슨 말을 하려고 입을 열었지만 내가 할 수 있는 말이 아무것도 없다는 걸 곧 깨달아버렸어. 무거운 침묵이 지나가는 몇 초 동안 내뱉지 못한 말들은 우리 사이의 차가운 겨울 공기 속으로 흩어져갔지.
"알아, 너도 날 좋아해보려고 많이 노력해줬다는 거." 조나단은 옅은 미소를 짓고 말을 이었어. "근데, 내 생각에, 이미 다른 누군가에게로 마음이 기울고 있는데 다른 사람을 좋아하기란 노력한다고 해도 절대 쉬운 일이 아닐 것 같아."
"내가 다른 누굴 좋아한다고? 아니야," 나는 드디어 내 마음대로 말을 할 수 있게 됐어. 내가 다른 앨 좋아한단 말을 들었던 게 자극이 됐는지 나는 하고 싶었던 말들을 천천히 내뱉을 수 있었어. "그래도 네 말이 틀렸다고는 못 하겠어. 사실... 맞아, 내가 널 좋아하는 건 아냐. 미안해, 난... 난 그저..."
정말 뻔하고 진부한 대사긴 해, 아니면 내가 그냥 진부한 사람인지도 모르겠어. 당장 누구든 와서 이 무겁고 어색한 분위기를 좀 깨 줬으면 하고 바랄 뿐이었어. 아무나 좋으니까 당장, 제발. 무슨 말을 해야 할 지도 모르겠고 어색해서 견디기도 힘들 정도였어.
조나단은 평소 성격에 전혀 어울리지 않게 체념한 듯이 웃고는 말했어. "참 운이 좋은 놈이야, 제임스 포터 말야. 그럼 약초학 시간에 보자, 에바."
그대로 자리에서 일어난 조나단은 뒤 한번 돌아보지도 않고 그대로 걸어갔어. 난 그대로 돌벽에 혼자 앉아 있었지. 그대로 조나단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방금 쟤가 내게 무슨 말을 하고 간 건지 이해가 가질 않아 고개를 갸우뚱거렸어. 조나단이 질투를 했다는 건 무슨 말이고, 제임스가 운이 좋은 놈이라는 건 또 무슨 말이야?
아, 제임스... 오, 그제서 같았어, 조나단이 무슨 말을 한 건지. 그 합리적이고 차분하고 질투라는 것도 해 본 적이 없을 완벽한 조나단이, 내가 제임스랑 친구 이상의 관계라는 소문을 믿어 버렸나 봐. 나는 그대로 쓴웃음을 짓고 고개를 세차게 내저었어.
아냐, 결국 조나단이 내게 헤어지자고 한 건 제임스 때문도 아니었고, 나랑 제임스가 그렇고 그런 사이라는 뜬소문 때문도 아니었어. 그저 조나단이 날 좋아하는 것만큼 애정을 되돌려받지 못해서, 서로와는 맞지 않는 사이라서 헤어졌을 뿐이었지. 우리 사이가 조금이라도 더 나아질 가능성은 전혀 없었어, 그걸 아는 조나단은 그대로 끝을 낸 거고.
화가 난다거나 하진 않았어. 물론 차였다는 게 재밌는 일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슬프거나 속상한 감정도 없었어, 전혀. 슬프긴커녕 왠지 모르게 마음이 홀가분하더라. 정말 솔직히 말하자면 지금 이 상황에서 마음이 편하다는 게, 내가 먼저 조나단과의 관계를 끊을 생각을 하지 못했다는 게 나 스스로도 이해가 가질 않고 부끄러웠어.
"에바 루이즈, 너 괜찮냐?"
그러다 내 위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 땅바닥을 보던 시선을 위로 돌렸어. 프레드 위즐리가 내 코앞에 서서는 조금은 불편한, 그러면서도 조금은 걱정스런 표정을 하고 날 쳐다보고 있었어.
"어," 난 그렇게 대답했어. 난 정말 괜찮으니까. 조나단과는 헤어졌지만 마음은 홀가분했으니까.
"진짜?" 프레드는 방금까지 조나단이 앉아 있던 자리에 앉으며 물었어. "원래 이별이란 게 힘든 건데 말이야."
나는 그 말에 얼굴을 팍 찌푸렸어. "방금 그 얘기 들었어? 어떻게? 어디서?"
프레드는 장난스레 입꼬리를 올리고는 어깨를 으쓱였어. "그렇게 묻지 마, 거짓말하기 싫으니까. 해 줄 수 있는 말이 거기에 너무 마음 쓰지 말라는 것밖에 없다." 그렇게 말하는 프레드의 목소리는 (내가 기억하는 한 처음으로) 꽤나 진지했어. 물론 그 뒤에 따라붙은 말이 산통을 깨긴 했지만. "그래도 아직 너한텐 제임스가 남아 있잖아?"
아, 멀린, 그냥 여기서 콱 죽어버릴 순 없을까?
"찾았다, 에바!" 순간 크리스틴의 목소리가 낭랑히 들려왔어. "하도 안 오길래 걱정하던 참이었어. 혹시 무슨 일이라도 있는 거야?" 그러고는 내 옆에 조나단도 아니고 프레드가 앉아 있는 걸 보고 물었어.
"아, 나도 정말 듣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지만 그래도 둘이 오붓한 대화를 나눠야지, 난 이만 가 줄게." 프레드는 그 말을 하면서 슬쩍 윙크를 지어 보였어. "네 동생들한테도 이 기쁜 소식을 알려야 하지 않겠냐. 엄청 좋아라 할 거야."
두말 할 필요 없지. 그 말을 듣자마자 엄마아빠한테 내 연애사에 대해 처음부터 끝까지 다 적어 편지를 보내도 모자랄 애들인데. 아빠도 크리켓이나 좋아한다는 애가 시야에서 사라졌다니 아마 한결 마음을 놓으실 거야. 그 생각을 하니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올 뻔했어.
"기쁜 소식이란 게 대체 뭐야?" 크리스틴은 빠르게 자리를 뜨는 프레드와 풉 웃음을 터뜨려버린 날 보며 도무지 뭐가 뭔지 모르겠단 표정으로 물었어. "그것보다, 조나단은 어디 가고 너 혼자 있어?"
나는 한번 숨을 들이마시고 크리스틴의 담갈색 눈동자를 똑바로 마주봤어. "방금 나한테 헤어지자고 하고 갔어."
크리스틴은 날 도로 빤히 쳐다봤어. 그리고는 눈을 깜빡였지. "설마, 아니지?"
나는 분명히 맞단 뜻으로 고개를 가로저었어. 맞잖아? 직접 말을 하진 않았지만 그 말이 그 말이지, 뭐.
"아니, 근데..." 크리스틴은 말을 이으려 입을 열었다가, 다시 닫았다가, 다시 열었어. "누가 먼저 헤어지잔 소릴 해도 네가 할 줄 알았는데!"
뭐? 잠깐만... 뭐라고?
"넌 내가 조나단을 먼저 차 버리길 바랐던 거야?" 나는 방금 크리스틴이 한 말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 지 몰라 어리둥절했어. 나의 가장 친한 친구가, 내가 남자친구를 먼저 찰 거라고 생각했다니!
"아냐, 그런 건," 크리스틴은 그렇게 말을 이었어. "그런 게 아니라, 그냥 딱 보면 보이잖아? 조나단이 널 훨씬 더 많이 좋아했으니까, 넌 조나단한테 별 관심 없었고. 시간이 지나도 넌 조나단을 좋아한다거나 하게 될 것 같지도 않고, 소차가 걜 사랑하느냐고 물어봤을 때 표정이 당혹스러움, 경악, 뭐 그런 거였고... 결론은, 조만간 헤어지겠구나 하고 생각하고 있었단 말이야."
"그럼 넌 내가 걜 좋아하진 않았다는 걸 알고 있었단 말이야?"
항상 보면 이 세상 사람들 전부 다 아는 일을 대체 왜 나만 모르는 걸까.
크리스틴은 작은 미소를 지어 보였어. "사실 너한테 그 얘길 해 볼까 생각도 했었는데, 네가 혼자 스스로 판단해서 행동하는 편이 더 좋을 것 같아서 말하려다 말았어. 조나단이랑 안 어울린다는 말은 이미 다른 사람들한테서 수도 없이 들었을 거 아냐? 나까지 보탤 건 없었으니까. 네가 어떻게든 조나단한테 관심을 가져 보려고 노력하는 모습은 분명히 보였고 말야."
"정말 좋은 애긴 했어," 나는 그렇게 답을 시작했어. "그렇게 멋진 사람한테 좋아한다고, 사귀자고 고백받았다는 게... 뭐랄까, 자신감을 줬다고 해야 하나. 정말 기분 좋은 일이었단 말야. 걔가 진심으로 맘에 들긴 했어. 처음 사귈 땐 그런 조나단한테 조금이나마 끌렸던 것도 맞아, 지금 생각하면 이해가 안 가지만. 생각해보면... 그냥 가끔 키스도 하곤 하는 친구, 그 정도였던 것 같아." 나는 거기서 잠시 말을 멈췄어. "내가 걔한테 너무 큰 상처를 준 걸까?"
크리스틴은 두 팔로 날 끌어안고 달래주었어. "그럴 지도 모르지. 그렇다고 너무 미안해할 필요는 없어, 처음부터 찬 것도 아니고 한번 기회를 줬잖아? 마음이 안 가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니까."
"그래도... 그래도, 내가 걜 먼저 꼬셔 보려 했거나 한 것 같잖아, 일부러는 아니더라도. 난 그냥 마음을 주고 싶었던 건데. 조나단은 정말 좋은 사람인데."
나는 또 반복적으로 조나단을 묘사하는 데 '좋다'는 단어를 쓰고 있었어. 물론 좋다는 말이 나쁜 건 아니지. 하지만 내가 말하는 '좋다'는 그 단어 하나로 모든 묘사의 끝이잖아? 뭔가 다른 형용사가 더 있어야 할 것 같은 상황에서도 말야.
조나단이랑 있으면 왠지모르게 편하긴 했어, 하지만 편안한 감정이 맞는 거였을까? 남녀가 사귀면서 결국 어느 시점에는 서로가 편한 단계에 들어가겠지, 하지만 사귄지 얼마지 않은 사이에 편안함 말고는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다면 뭔가 잘못된 게 아니었을까? 처음 사귀자는 말을 들었을 때도 난 설렘 같은 건 전혀 없이 그저 긴장되기만 했는데.
"중요한 건 내가 아까도 말했듯이, 한번의 기회를 줬다는 거야." 크리스틴은 그렇게 말을 이었어. "똑똑하고 좋은 남자한테도 자기 맘에 안 든단 이유로 기회조차 주지 않는 여자들도 수두룩하잖아."
"고백을 받고 사귀기 시작한 거야 너도 마찬가지잖아."
크리스틴은 한 손을 내저으며 내 말을 무시했어. "나는 좀 다른 경우지. 나는 나도 그런 책벌레한테 마음이 있었으니까 서로 좋아했던 관계고, 넌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철벽의 퀴디치 주장이잖아."
뭐라고? 범접할 수 없는 철벽? 내가? 크리스틴은 대체 뭘 근거로 저런 말을 하는 건지 모르겠다, 정말.
"음, 퀴디치 경기 중에 한해서라면 인정." 나는 입을 비쭉 내밀고 그렇게 대답했어.
크리스틴은 두 눈을 빙글빙글 굴리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어. 물론 난 지금 크리스틴의 품에 안겨 있으니 두 눈을 굴리는 걸 직접 보진 못했지만 그래도 목소리에서부터 알아. 몇 년을 친구로 지냈는데, 빤히 보인다구.
"있지," 나는 다시 조용히 입을 열었어. "난 조나단이 헤어지잔 말을 했다고 해서 그렇게 속상하거나 하진 않아. 내가 지금 속이 상하는 건 그 말을 먼저 꺼낸 게 내가 아니었다는 부분이야, 물론 조나단도 헤어지잔 말이 진심은 아니었겠지만. 내가 조금 더 빨리 나 자신에게도, 조나단에게도 솔직해졌어야 맞는 건데. 내 행동이 조나단에겐 희망고문이나 마찬가지였던 거잖아, 그렇게 오래 끌지 말고 그냥 끝냈어야 했는데... 멀린, 크리스틴, 난 눈치가 없어도 너무 없나 봐, 대체 뭐가 문제인건지... 난 정말 천하에 나쁜 놈이야! 난 그냥, 절대..."
"에바, 네가 나쁘긴 왜 나빠. 뭐가 문제긴, 아무 문제없어." 크리스틴은 단호한 목소리로 그렇게 날 달랬어. "이 세상에 나쁜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 눈치 좀 없는 것쯤이야 아무것도 아니야."
뭐, 그렇다고 해도, 지금 이 상황에서 내 기분이 조금이라도 더 나아지는 건 아니잖아.
"있지, 조나단은 내가 제임스를 좋아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어."
"그래? 넌 어떤 것 같아?" 크리스틴의 목소리에는 조금의 놀란 기색도 없었어.
다시 불편하게 속이 뒤틀리는 듯 한 기분이 들었어. "솔직히 요즘 좀 끌리는 건 사실인데... 있지, 사실 지금 이 말 하기 전까진 나도 내가 제임스한테 마음이 있는 줄 몰랐거든? 근데 멀린, 그 때 어쩌다 걔가 웃통을 벗은 걸 봐 가지고..."
"뭐? 언제?" 크리스틴은 잔뜩 놀란 목소리로 소리치다시피 물었어. 그러고보니 이 얘기를 크리스틴에게 하는 건 처음이었어. "뭔진 몰라도 뭔가 엄청난 사건이었을 것 같은데."
"아, 뭐, 그렇지." 나는 싱긋 미소를 지었어. 아직도 그 때 기억이 생생한걸. 눈을 감으면 바로 떠올릴 수도 있을 것 같아. 그대로 난 잔뜩 신이 나서는 그 때 락커룸에서 봤던 상의탈의 제임스 얘길 전부 털어놨지.
"그럼, 넌 걜 '좋아하는' 거야?" 크리스틴은 내 얘길 끝까지 듣고 다시 물었어.
"그런 것 같진 않아." 나는 정말 솔직하게 대답을 했어. "내가 좋아하는 건 걔가 아니라 걔 복근인 거지."
"흠..." 크리스틴은 그렇게 말을 흐렸어.
"내 말 안 믿는 거야?"
"음," 이 크리스틴에게서 받은 대답의 전부였어.
"그래, 안 믿는다 이거지," 난 장난스레 화난 목소릴 냈어. "알겠지만 내가 누구 얼굴에 주먹 날리는 거 하나는 잘 하니까, 네 반응 보니 내가 범접할 수 없는 사람인건 맞나 봐?"
크리스틴은 그저 작게 웃음을 터뜨리기만 했어. 내 모습이 웃겨서였겠지만, 아무렴 어때.
그대로 난 크리스틴이 키에런과 점심식사하던 걸 마저 끝내고 올 수 있도록 스리 브룸스틱스로 돌려보냈어. 크리스틴은 한사코 나더러 같이 와서 점심 먹고 가라고 했지만 내가 누구야, 차라리 성으로 돌아가서 잠깐 운동장이나 한 바퀴 날고 싶다고 대답했지. 잡념을 지울 뭔가가 필요한 시점이었으니까.
성으로 돌아온 난 퀴디치 경기장으로 곧장 달려갈 생각이었지만, 그러고보니 저번 팀 연습 끝나고 나서 운동복을 기숙사 빨래통에 넣어 버리고 왔더라구. 적당히 마법을 쓸 수 있는 위치도 아니고 침대 구석 트렁크에 처박혀 있는 옷인데 어떡하겠어, 먼저 방에 가서 운동복부터 갖고 와야지. 어차피 월요일 아침에도 또 입어야 할 옷이니까.
그리핀도르 탑으로 향하는 길에 보니 하필이면 소리의 요정 피브스가 기사 갑옷에 막대기를 던져 대면서 길을 막고 있었어. 그 막대기에 괜히 찔리고 싶지 않았던 나는 평소 본, 빙 둘러 돌아가는 낯선 길을 골라 걸었어. 덕분에 일전에 골목을 잘못 돌아서 사람도 없고 처음 보는 이상한 길로 빠져버렸던 일이 생각나버리더라.
다행일지 이번엔 이 복도에 있는 사람이 나 혼자만은 아니었어. 먼지만 쌓인 텅 빈 복도 한편에서 남녀학생 두 명이 서로 바짝 붙어 안고 서 있더라구, 완전 자기들 세상에 빠져 버린 것처럼. 내가 시선을 흘끗 그쪽으로 돌렸을 때 마침 남자애가 한 손으로 여자의 목덜미를 부드럽게 안더니 그대로 고개를 숙여 부드럽게 입을 맞추기 시작했어.
"미친, 뭐야, 어떻게 된 거야!" 순간 그 두 사람이 키스하는 광경을 내 눈으로 목도한 순간 나는 나도 모르게 잔뜩 놀란 외침을 뱉어버리면서 두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어.
그 순간만큼은 진심으로 호그스미드에서 그냥 크리스틴이랑 키에런이나 점심밥이나 먹고 올 걸 하는 후회가 간절해졌어. 둘 사이에 끼여 있는 게 어색해봤자 지금만큼 어색하진 않을 거 아냐.
멀린, 대체 왜 나한테 이런 일들이 자꾸 일어나는 거야?
~...~...~...~...~...~...~...
안녕하세요 역자입니다
에바가 맞닥뜨린 저 광경이 뭘까요 두구두구두구 여튼그래서 다음챕터가 굉장히재밌습니다 대유잼
그나저나 에바는 결국 이렇게 조나단과 헤어졌네요:( 에바 감정선과 스토리라인을 보면 분명 좋은일이지만 조나단에겐 안타까워요 저아이도 어울리는 사람 만나서 사랑받고사랑하며 살 수 있었으면
그리고 번역하면서 들었던 생각이
1 에바가 소차를 보는 시각이 정말많이 편향돼있구나 소차는 에바랑 나름 공감대형성하려고 올리버우드얘기를 주로 꺼내는 것 같은데 그게 어째 에바에겐 징그럽게들려서 역효과가난것같네요:(
2 알버스는 어쩌다 천문학시간에 망원경을 부숴먹었을까..
3 키에런 성격 노잼인 줄 알았는데 오늘 장난거는거보니 재밌는친구네요 키에런이 좋아지기 시작함
좌우간 다음챕터는 시작부터 대유잼이라 기대가 됩니다:) 점검마치는대로 업로드할게용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