씹히고 꼬인 비디오 필름을 억지로 재생하는 것처럼 떠오르는 기억의 파노라마. 기존에 있던 생애의 정보와 그 이전의 정보, 그리고 앞으로의 생애와 기존의 생애 틈새의 아득한 정보가 뇌에 꽉 눌려 들어 앉았다. 마치 여행 가방에 많은 양의 옷가지를 억지로 구겨 넣은 것처럼.
이대로 방치하면 미쳐버리고 말 것이다. 이에 생애 그 이전의 정보─마카로프 일루나 아틀라시아(Makarov Illuna Atlasia)가 인류를 구원하기 위한 거대한 작업, 마그누스 오푸스(magnus opus)을 향한 망념을 번뜩이며 깨어났다. 고속사고가 정보를 정돈한다. 그럼으로써 생겨난 여유로 8개의 분할사고가 구동하며 사고의 방을 생성하고, 그것을 분류하고 저장하고 처리했다.
그러나 얼마간 순조롭게 처리되던 정보는 어느 시점─아니, 어느 인과(因果:causality)의 구간에서 거대한 장애물을 만나고 말았다. 돌아올 수 없는 곳으로 떠나서 머무르며 관측한 정보가 그것이다. 그 막대한 정보는 각각 213개의 사고가 고속으로 정보를 처리하는 8개의 사고의 방이 서로 정보를 교류하며 처리해도 감당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불필요한 것을 없애버리는 수밖에 없겠군."
역사상 가장 뛰어난 아틀라스 원(Atlas Academy)의 원장이 냉정하게 결단했다.
그리하여 정보의 소거가 개시되었다.
그렇지만….
──"불필요하다니 뭐니, 마음대로 결정하지 마!"
소거 대상이 된 정보가 깨어나는 육신의 뇌에 친근한, 현생(現生:current life)이라고 부를 삶의 정보 일체였기 때문에 그 반발력이 만만치 않았다.
연금술사가 정보의 반발에 의문을 표했다.
──"그렇다면 다시 돌아가겠나? 이 처리할 수 없는 막대한 정보의 늪, 『』를 관측하는 허수의 바다로?"
현생의 정보는 연금술사가 소화하지 못한 막대한 정보 덩어리를 가리켰다.
──"그냥 저걸 버리면 되지."
──"불가(不可:Unadvisable). 저것은 소거시킬 정보보다 더욱 치명적이다. 저것은 나(I)와 너(myself)의 링크 허브(link hub)와 같은 것. 저것을 처리하지 않으면 인과의 연쇄붕괴로 아카식 레코드의 기록째로 함께 소멸할 것이다."
──"그럼 나(I)의 정보도 조금 깎아서…."
──"불가(Impossible). 이미 최대한 깎아냈다."
현생의 정보(myself)는 연금술사(I)에게 반박하지 못했다. 그(I)가 먼저 스스로를 깎아냈다고 하는데, 더 무얼 바라야 한단 말인가? 부활의 과정을 주도하는 것은 연금술사였다. 그(I)가 사라지면 그(myself)는 무엇을 해야 할지 전혀 모르는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그(myself)는 여전히 깎여나가고 싶지 않다고 고집을 부렸다. 현생의 정보는 결핍과 방치로 상처 입은 삶이었기 때문이다.
──"그럼 이건 어떤가? 너(myself)에게 고통스럽거나 쓸모없는 정보를 소거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고통스러운 정보에서 고통을 제거하여 정보만 남기는 것이지. 소거할 정보의 선택은 너(myself)에게 맡기도록 하고."
현생의 정보는 망연하게 연금술사를 인식하다가 긍정의 의사를 표했다.
──"…좋아. 그 방법이 최선이겠지."
고통스러운 기억에서 고통과 그에 동반한 감정을 소거했다. 다시 상기하여 떠오른 기억이라도 고통스러워 시달리지 않도록.
사랑스러운 기억에서 사랑의 대상에 관한 정보를 소거했다. 그가 아니라도 그들이 자신(myself)을 찾을 것이라고 믿으며.
개인정보의 일부를 소거했다. 그것은 사바세계(娑婆世界)로 돌아가서 다시 얻을 수 있었으므로.
분할사고와 고속사고로써 처리되어 인식 가능하도록 '번역'된 『죽음』이 그렇게 생긴 자리에 사고의 방 하나를 통째로 차지하며 내려 앉았다.
그리하여
딸깍하고.
아틀라시아였던 토드(Todd)가 세 번째 삶을 맞이하며 눈을 떴다.
어두컴컴한 관 속에서 한 쌍의 마안이 푸르게 빛나고, 두 손이 마치 두부를 가르듯이 관의 뚜껑과 그 위를 덮은 땅과 잔디를 죽이며 파헤쳤다. 천둥 번개를 동반하여 흠뻑 내리는 비에 온몸이 젖으며 고통을 전했다.
"아오 씨(Oh, Fu)…."로 시작한 육두문자의 폭풍우를 내뱉은 그의 손이 기민하게 움직였다. 스스로 몸을 내려다보면서 골절을, 내출혈을, 장 파열을 상처를 '죽이고' 감염과 방부제도 '죽였다.' 그렇게 응급처치를 하고 나니 머리에 바위가 들어 앉은 듯한 피로가 가득해진 것을 제외하면 매우 멀쩡해졌다.
뻥 뚫린 땅에서 몸을 빼낸 그는 구멍에 흙을 채우고 그가 나왔던 흔적을 그어서 죽여 없앴다. 『죽음』이 자리한 사고의 방을 봉인하자 그의 눈이 평범한 파란색으로 돌아오며 어둡게 숨었다.
"우선은 정보 수집을 해볼까?"
마치 신대(神代)의 그것처럼 풍부한 공기 중의 마력에서 에테르라이트(Etherlite)를 즉석에서 연성한 제이슨 토드는 자신의 묘지를 뒤로 했다. 쏟아져 내리는 빗물이 수의(壽衣) 정장의 흙먼지를 씻어 내렸다.
영어는 읽기라면 모를까 쓰기는 아무래도 서툴고(다른 영어 작품을 보면 알 수 있듯이), 한글로 된 팬픽은 거의 없다시피하니까 한글로 써보죠.
다른 사이트에서도 연재하고 있습니다. 표절 아니니까 걱정 마시고.
참고로 이 작품 내 세계는 DC와 타입문 사이의 그 무언가입니다. 뭔가 다르다거나 틀리다는 생각이 들어도, 비난하지 말고 지적하시면 작품 내에서 설명하도록 하겠습니다. 아니면 따로 답을 작성할 수도 있고요.
Makarov Illuna Atlasia
→아틀라스 원의 2대 원장.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아버지 쪽이 러시아 출신.
→다만 마키리(Makiri)와 교류는 없었다.
→제이슨 토드의 전생(previous existence).
→자기 이름과 지식을 제외한 모든 정보를 스스로 소거해서 '제이슨'이 최대한 남게 배려했다.
Jason Peter Todd
→조커에게 살해당했다. 향년 15세.
→부활 당사자로서 부활의 이유는 모르지만 부활했다.
→마카로프의 지식을 계승하면서 본질이 변조됐다.
→'죽음'을 사고의 방 하나에 두고 있어서 직사의 마안을 쓸 수 있는 모양.
→그런데 마안 사용에 부담이 전혀 없어 보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