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volution

1.

용의 굴에는 우리 가족의 비밀 낚시터가 있다. 이 곳에선 가끔 희귀한 포켓몬인 미뇽이 낚인다고 한다. 나는 그 사실을 알게 된 날, 바로 낚싯대를 들고 그 곳으로 향했다. 할아버지에게 받은 미뇽에게 친구를 만들어 주고 싶었다. 이향도 미뇽을 잡을 거라며 나를 졸졸 쫓아왔다. 자기가 나보다 먼저 잡을 거라고 큰소리를 뻥뻥 쳤다. 나는 그러던지, 하고 발걸음을 재촉했다.

아무래도 나는 낚시에 재능이 없는 것 같았다. 몇 시간이 지나도록 미뇽은커녕 잉어킹 한 마리도 잡지 못했다. 심지어 이향은 옆에서 쏘드라를 5마리나 잡고 4마리를 놓아주었는데도 말이다. 점점 허리도 아프고 눈도 감겨왔다. 낚시란 이렇게 지루한 거였구나. 아무나 도전한다고 되는 게 아니었다. 대체 뭐가 문제지? 내가 만든 미끼가 맛이 없나? 이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 눈앞에 붉은 형체가 보였다. 그것은 물 위에 떠 있었다. 내가 헛것을 보는 건가 해서 눈을 비비고 다시 확인했지만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다. 그것은 기절한 잉어킹이었다. 물살에 떠내려온 것 같았다. 잉어킹은 힘겹게 숨을 내쉬고 있었다. 이대로 놔두면 곧 죽을지도 몰랐다. 나는 낚싯대를 이용해 녀석을 살살 물가로 끌고 왔다. 몸에 상처도 엄청 많고, 수염도 반쯤 접혀 있었다. 마치 누군가 딱딱한 바닥에 집어던진 것처럼.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이런 짓을 한 사람이 정말 원망스러웠다. 나는 잉어킹을 안고 급히 포켓몬센터로 달려갔다.

포켓몬센터 직원은 잉어킹을 치료해 주며, 나에게 왜 이때까지 진화시키지 않았냐고 물었다. 나도 떠내려온 걸 주운 거라서 모른다고 했다. 직원은 이 잉어킹이 진화할 시기가 훨씬 지났다고 했다. 문득 옛날에 들은 이야기가 떠올랐다. 어떤 트레이너가 이브이를 부스터로 진화시키려고 했는데, 이브이가 진화를 거부하자 기둥에 매달아 불꽃의돌에 발을 내밀 때까지 굶겼다는 끔찍한 이야기. 설마 이 잉어킹도 진화를 거부하다가 버려진 건가? 그것도 바닥에 내동댕이쳐져서?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이 불쌍한 잉어킹을 내가 돌봐주고 싶었다. 진화하지 않아도 괜찮아, 그런 나쁜 트레이너는 다시 만나지 않게 해 줄게.

잉어킹을 몬스터볼에 넣은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는, 내 명령을 듣지도 않고 딴청만 피웠다. 그렇다고 싸움을 못 하는 건 아니었다. 내 미뇽과 함께 훈련했을 때는 몸통박치기 하나만으로 미뇽을 쓰러뜨렸으니까. 단지 제멋대로 쓰러뜨렸을 뿐이다. 잉어킹은 강해질수록 점점 내 말을 안 들었다. 왜 이러는 거야, 나는 널 구해줬는데, 넌 그저 예전의 그 나쁜 트레이너에게 돌아가고 싶은 거야? 한번은 잉어킹을 붙잡고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녀석은 그냥 나를 멀뚱히 쳐다보며 입을 뻐끔거리기만 했다. 그 때, 뒤에서 누가 나를 툭툭 쳤다. 할아버지였다. 체육관 배지가 없어서 네 말을 듣지 않는 거란다, 할아버지는 그렇게 말씀하시며 나에게 더 넓은 세상으로 나아갈 시기가 되었다고 했다. 나는 두 주먹을 꽉 쥐며 꼭 배지 7개를 따고 할아버지와 시합하겠다고 다짐했다.

할아버지 말씀대로, 배지 하나를 따자 잉어킹은 나를 따르기 시작했다. 여행하면서 새 친구들도 생겼다. 화석 연구소에서 탈출했다는 소문의 프테라도 잡았고, 가끔 배틀 때면 용의 굴로 돌아가 낚시를 하며 머리를 식히기도 했다. 전에는 없었던 근성이 생겨 결국 미뇽을 두 마리나 낚았다. 무려 일주일이나 걸려서 말이다. 그때까지도 잉어킹은 진화하지 않았다. 낚은 미뇽들을 잡기 위해 싸우다가 오히려 새로운 기술인 바둥바둥을 배웠다. 나는 지금까지 잉어킹은 튀어오르기와 몸통박치기밖에 못 쓰는 줄 알았는데, 세 번째 기술을 배우니까 신기했다. 무언가 대단한 걸 발견한 것 같았다.

이제 내 포켓몬은 5마리가 되었다. 하나만 더 낚으려고 갈고리에 미끼를 끼우고 있을 때였다. 갑자기 굉음이 들리더니 비밀 낚시터의 물이 솟구쳐 올랐다. 밑바닥에서 잠자고 있던 포켓몬들이 공중으로 날아올랐다. 심지어 미뇽도 몇 마리 있었다. 그물 같은 것을 든 사람들이 순식간에 미뇽을 모두 채갔다. 나는 진동이 사그라들 때까지 바닥에 납작 엎드리고 포켓몬들을 불러들였다. 왜 하필 이런 순간에 용의 굴에는 아무도 오지 않는 거야?

"후후, 이게 그 희귀하다는 포켓몬, 미뇽이란 말이지?"

"이번엔 돈이 좀 되겠는데."

밀렵꾼들! 저들에 대한 소문은 전에도 들은 적이 있었다. 희귀한 포켓몬들만 골라서 잡아 비싼 값에 암거래를 한다는 사람들이었다. 멀쩡한 트레이너에게 팔면 다행인데, 대부분은 잔인한 실험을 하는 연구소에 팔려간다고 한다. 저 포켓몬들이 그렇게 되도록 놔둘 수는 없었다. 나는 앞뒤 안 가리고 무작정 그들에게 덤벼들었다. 밀렵꾼들은 강했다. 내 포켓몬들은 처참하게 당했다. 순식간에 프테라와 3마리의 미뇽은 쓰러져버렸다. 나는 잉어킹을 불러내려고 마지막 남은 몬스터볼을 던졌다. 어, 이상하다. 몬스터볼 안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아무래도 아까 포켓몬들을 불러들일 때 빼먹은 모양이었다.

"뭐야, 꼬맹아. 그게 끝이냐?"

밀렵꾼의 링곰이 나에게 펀치를 날리더니 날 잡아서 물 속으로 던져버렸다. 숨이 막혀왔다. 눈앞이 흐려지려고 했다. 안 돼, 이대로 내가 쓰러지면, 미뇽들은 나쁜 사람들 손에 들어가게 될 거야. 막아야 해. 이렇게 생각한 순간, 무언가가 나를 툭 쳤다. 그러나 그게 뭔지 확인할 만한 기력이 없었다. 그것은 나 치더니 갑자기 눈부신 빛을 내기 시작했다. 거대한 푸른색의 형체가 나타났다. 나는 본능적으로 그것을 붙잡았다. 우리는 물 위로 솟아올랐다. 그제서야 제대로 보였다. 내가 붙잡고 있는 푸른 형체는, 갸라도스였다. 갸라도스는 커다란 몸을 버둥대며 밀렵꾼들을 하나씩 쓰러뜨렸다. 밀렵꾼들이 놓친 그물에서 미뇽이 풀려났다. 방금 그 기술, 분명 바둥바둥이었다. 그렇다는 건...

"갸라도스, 너 설마...?"

갸라도스는 화난 표정이었지만, 언뜻 눈웃음을 짓는 것 같기도 했다.

"날 지켜주기 위해서?"

진화하기 싫어하는 녀석인데, 나를 지키기 위해서 진화해준 건가. 이럴 때 포켓몬의 생각을 알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대답이 없어도 좋다. 나는 갸라도스를 꼭 안아주었다.

2.

나는 지금 네 앞에 서 있다. 내가 꺼낸 갸라도스를 보더니, 너는 조금의 고민도 없이 전룡을 내보냈다. 전룡의 번개펀치에 맞아 갸라도스는 순식간에 엄청난 데미지를 입었다. 절대적으로 불리한 싸움이었다. 그러나 나는 갸라도스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불리한 싸움이면 어때, 우리는 목숨을 나눈 사이잖아?

"갸라도스, 바둥바둥!"

F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