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ent
1.
눈밭에 파묻히는 끔찍한 꿈을 꾸고, 잠에서 깨어났다. 불길했다. 있어야 할 무언가가 없어진 느낌이었다. 나는 지금 포켓몬리그의 내 방에 있었다. 어제 도전자를 상대하고 너무 피곤해서 그냥 여기서 잠들어버린 것이었다. 옆방이 너무 조용했다. 사천왕 국화 씨의 방이 아니라, 그 반대쪽 옆방 말이다. 레드가 집으로 돌아가는 일은 드물었다. 리그에는 생활에 필요한 편의시설이 전부 갖추어져 있기 때문에, 굳이 집에 갈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레드가 자신의 방을 나올 때는 뭔가를 사러 가거나(그나마 이것도 리그 내의 프렌들리숍에 가는 것이다), 새로 상록체육관의 관장이 된 그린을 만나러 갈 때뿐이었다. 그린을 만나러 간 거겠지, 하고 생각하면서도 불길한 기분을 떨쳐낼 수 없었다. 나는 조금 더 기다려 보기로 했다.
하루, 이틀, 3일이 지나도 그는 돌아오지 않았다. 이상했다. 나는 그의 방문을 두드렸다. 역시나 안에는 아무도 없는 것 같았다. 살짝 밀어보자 문이 열렸다. 공허했다. 마치 처음부터 이 방의 주인이 없었던 것처럼, 서늘한 기운이 감돌았다. 나는 급히 밖으로 나와 경찰과 리그위원회에 실종신고를 했다. 챔피언이 사라졌다고.
레드의 실종은 중대 사건이었다. 경찰은 관동과 성도 전역을 샅샅이 뒤졌고, 범죄의 가능성도 열어 두어 사천왕 전원이 조사를 받았다. 나도 경찰서에서 진술을 하고 왔다. 최초 발견자라서 더 철저히 조사한다고 했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누가 감히 현직 챔피언을 납치한단 말인가. 레드는 스스로 떠난 게 분명하다. 나는 혹시나 실마리를 찾을까 해서 그린을 찾아갔다. 그러나 자신도 아무것도 모른다고 했다. 그린은 나만큼이나, 아니 그보다 더 괴로워하고 있었다. 이대로 영영 찾을 수 없는 것 아니냐며 두려워했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레드를 찾을 수 없을까봐 매우 불안했다.
몇 주가 지나 은빛산 정상을 제외한 모든 곳의 수색이 완료되었다. 그러나 레드는 찾을 수 없었다. 관동과 성도를 잇는 리니어 기차를 탈 때는 출국 기록이 남지 않지만, 비행기나 배를 타고 다른 지방으로 갈 때는 기록이 남는데, 레드는 출국 기록도 없었다. 그렇다면 남은 곳은 은빛산뿐이었다. 그는 은빛산에 있는 것이다. 은빛산은 매우 험준한 산이어서 일반적으로는 출입이 금지되어 있다. 포켓몬의 생태를 연구하는 연구원들이 리그위원회 또는 학계에서 인정받은 박사들의 허락을 받고 산중턱까지만 올라갈 수 있는 정도였다. 아무도 정상에 무엇이 있는지 알지 못했다. 열두 살짜리 아이가, 아무리 챔피언이라 해도, 그 곳에 있다고 생각하니 걱정부터 밀려왔다.
나는 오박사를 찾아갔다. 그분 역시 레드의 행방은 모르고 있었다. 그러나 나처럼 그가 은빛산에 있을 것이라는 추측은 하고 있었다. 나는 박사님께 은빛산으로의 출입을 허락해 달라고 부탁했다. 그분은 고개를 끄덕이며, 내 포켓몬이 추위에 약하니 연구소의 리자몽을 데려가라고 했다. 순해서 누구의 말이든 잘 듣는 아이라고 했다. 나는 리자몽을 타고 은빛산으로 향했다. 듣던 대로 은빛산은 정말 험한 산이었다. 조금만 방심하면 야생 포켓몬이 달려들었고, 잠깐 정신줄을 놓으면 길을 잃어버렸다. 특히 연구원들도 들어가지 못한 고산 지대로 들어가니 눈보라가 휘몰아쳐서 한치 앞도 보이지 않았다. 리자몽이 열풍으로 시야를 확보해주고 있었지만, 몇 초 정도 잠깐 보이는 정도였다. 우여곡절 끝에 정상까지 날아오는 데 성공했다. 저 멀리 익숙한 아이의 실루엣이 보였다. 분명히 레드였다. 분명히...!
그를 발견한 순간 강한 바람이 나와 리자몽을 덮쳤다. 우리는 공중에서 거꾸로 뒤집혀 추락했다. 오랜 비행으로 지친 리자몽은 중심을 잡지 못하고 그대로 나와 함께 떨어졌다. 떨어지면서 정신을 잃었던 것 같다. 일어나 보니 은빛산의 입구에 있는 포켓몬센터였다. 오박사님도 와 계셨다. 아무래도 걱정되어 조수 몇 명을 보냈다고 한다. 나는 그분에게 레드를 봤다고 보고했다. 박사님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 아이라면 은빛산 정상에서도 잘 지내겠지, 이렇게 말씀하시고는 나보고 좀 더 쉬라고 했다.
며칠 뒤, 내 앞으로 리그위원회의 직인이 찍힌 서류 하나가 도착했다. 나를 석영리그의 챔피언으로 임명한다는 내용이었다. 이전 우승자인 그린에게 먼저 보냈었는데 그가 체육관 관장을 계속하겠다며 거절했다고 한다. 나도 정중히 거절하려고 답장을 쓰고 있는데, 오박사님의 편지가 도착했다.
-자네가 챔피언 자리에서 내려올 때까지 그 리자몽을 맡기도록 하지.
2.
너에게 패배하고 나서, 몇 달 뒤에 나는 오박사님께 리자몽을 돌려주러 갔었다. 그분은 재미있다는 듯이 슬쩍 미소를 지었다. 그러면서 너에게 은빛산의 출입을 허가해줬다고 말했다. 나는 놀라며 왜 그런 위험한 곳에 들여보냈냐고 물었다. 뼛속까지 스며들어오는 추위를 난 아직도 잊지 못하겠는데, 너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길까봐 걱정된다고, 그렇게 말했더니 오박사님은 네가 원해서 들여보내 줬다고 했다. 너는 정점에 서고 싶다고, 정상에 서 있는 사람과 승부하고, 곧 돌아오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너와 처음 만났던 날이 떠오른다. 너는 포켓몬 마스터가 되고 싶다고 했지. 이제 그 꿈을 이루러 가는 거니? 이기적인 생각이지만, 네가 무사히 돌아오기만 하면 네가 꿈을 이루든 말든 나에겐 상관 없어. 제발 무사히 돌아와 줘. 기다리고 있을게.
Fin.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