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과 영혼의 불협화음이라는 것은 원래 있을 수 없었다. 영혼과 몸은 서로 적응하는 관계이기 때문이다. 또한, 보통 영혼과 몸이 함께 성숙하는 까닭이기도 하고.
하지만 굳이 어느 쪽이 우위에 있는가 따져보자면 '몸'이었다. 몸의 감각기관이 전하는 정보를 영혼이 받아들여 자아와 영성을 키운다. 한 사람의 '자신'을 정의하는 것이 몸에 집약되어 있어, 저승에서는 세상이 인정하는 업적을 세운 사람의 영혼은 특별히 몸을 가짐으로써 자아를 확고히 유지하는 것을 허락 받고 이 상태를 우화등선이라고 한다.
그것과는 정반대로 악업이 큰 나머지 그 자체가 자아가 되어 몸이 없음에도 저승에서 생전의 모습을 유지하고 몸을 가진 것처럼 움직일 수 있는 경우도 있다. 그리고 그들은 전부 지옥으로 처박혀 나오지 못한다.
자, 그럼 문제다. 생명을 바쳐 대마왕을 봉인하였으나 '몸'을 가지지는 못하고 천국으로 향한 정순한 영혼이 생전 모습을 유지할 만큼의 악업과 힘을 가진 마왕과 종족 학살자와 우주적 스케일의 폭군들의 사념으로 범벅인 몸에 쑤셔 넣어졌다면?
'자아'가 망가지는 것 이외 달리 무엇이 있겠나.
=x=x=x=x=x=x=x=x=x=x=
트랭크스는 '셀'의 조금 앞에서 날면서 그의 이야기를 주의 깊게 들었다. '이야기'라고 해도 그가 하는 질문에 셀이 짧게 대답하는 것을 주워 모으는 것에 불과했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것보다는 나았다.
"당신은 무엇인가요, 셀 씨?"
"흠?"
셀이 말 없이 눈썹-에 해당하는 부위의 부드러운 갑각을 조금 휘면서 더 자세하게 질문하라고 종용했다. 유리알처럼 무정한 눈의 소유자가 지극히 인간적인 몸짓으로 말 없이 의사를 전달하는 위화감에 으슬으슬한 거부감이 일어났지만 트랭크스는 무시했다.
"일단 인간은 아니신 것 같고, 그렇다고 제가 아는 외계인 중에도 셀 씨 같은 분은 없어서 말이지요."
"인조인간이다."
트랭크스가 일순간 멈추고, 셀이 지나쳐서 앞서나갔다가 멈추고 그를 돌아보았다. 인조인간이라는 단어에서 조건반사적으로 솟는 적의를 억누른 트랭크스가 크게 숨을 몰아쉬었다.
"닥터 게로의?"
셀이 팔짱을 꼈다.
"그래."
트랭크스는 경계심을 안고 자세를 낮추었다.
"당신은 나의 적인가요? 닥터 게로가 프로그램한 대로 무고한 사람들을 죽이고 괴롭힐 건가요?"
"약한 것에는 관심 없다. 하지만 만약 나를 죽일 수 있는 강자라면…."
말끝을 흐린 셀의 입가가 천천히 옆으로 늘어나면서 미소를 그렸다. 무정함이 환희로 녹아내리면서 차분하게 가라앉아 있던 그의 기운이 몸을 일으키는 거인처럼 솟아 올랐다. 그 잔인하고 흉포한 기운은 그가 처음으로 완전체가 되었을 때보다 훨씬 억제되어 지구에만 영향을 끼치고 있었지만, 기감의 범위가 지구 전역에 이르는 트랭크스에게는 월식과 일식이 동시에 일어난 것 같은 어두움을 선사했다.
트랭크스는 마른 침을 꿀꺽 삼켰다. 그가 당장에 기운을 풀어내면서 칼을 뽑지 않은 유일한 이유는 셀이 자신을 억누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검은 등딱지 날개를 완전히 접어 가능한 한 몸을 굳히고 왼손의 팔짱을 풀고 머리를 쥐어 짜듯이 부여잡으면서.
셀이 얼마나 강하게 자신을 잡아 누르고 있었는지, 머리가 악력에 우그러지고 그 깨진 틈으로 보라색 피가 흘러내렸다. 흘러내린 피는 손을 타고 내려가다가 손목 즈음에서 셀의 얼굴로 떨어져서 뺨을 타고 내려가 선을 그렸다.
잠시 후 광기를 억누른 셀이 머리에서 손을 떼고 다시 팔짱을 끼면서 얕게 숨을 내쉬었다.
"현재 이곳에 나보다 강한 자는 없구나. 다행스럽게도."
어느 새 잡고 있던 칼의 손잡이에서 손가락을 하나씩 떼며 펼친 트랭크스는 등을 흠뻑 적시고 있는 땀이 식으며 떨어지는 체온에 가볍게 몸을 떨었다. 그러고는 등을 돌리고 다시 셀을 인도하기 시작했다.
거리낌 없이 자신에게 등을 보이고 앞서는 트랭크스의 행동에 셀은 이상한 우울함을 느꼈다. 그의 얼굴이 웃는 것도 아니고 찌푸리는 것도 아닌 미묘한 형태로 일그러졌다.
한편, 트랭크스의 심기도 복잡하긴 마찬가지였다. 입가의 미소를 더해, 재판대에서 사형 선고를 언도 받고서 오히려 피눈물을 흘리며 기뻐하는 죄인을 연상케 한 셀의 기운은 틀림없이 사악하고 잔인했으나, 그 악의가 향하는 방향은 오로지 셀 그 자신을 향하고 있었다. 심지어 자신보다 강한 자를 괴롭히다가 죽이고 싶다고 할 때도 자신의 죽음을 더 기대하고 있었다.
타인의 고통과 죽음을 기대하든, 자신의 비참한 최후를 기대하든, 어느 쪽도 셀의 진심이었다.
시한폭탄. 계왕의 평가는 지당했다.
트랭크스는 셀이 그를 따라잡자 다음 질문을 건넸다.
"저보다 먼저 도착한 17호와 18호는 당신이 처치한 거죠?"
"그래. 전투력만으로는 나는 그들에 비해 나약하기 짝이 없지만, 게로에 의한 선천적 상성은 그들도 어쩌지 못했다."
"확실히, 처음에 당신의 기운은 저보다도 조금 약한 정도였습니다. 상성이라고 했죠? 특별한 기능이라도?"
셀은 고개를 저었다.
"나의 기능이 아니라 그들의 기능 때문이다. 나는 지구의 강력한 전사들의 유전물질을 조합하여 만들어진 인조인간이다. 하지만 완전한 개체는 아니야. 부품인 그들을 흡수해야 비로소 지금처럼 완전해지지."
트랭크스의 안색이 조금 질렸다.
"부품…. 그렇다면, 당신 안에 그들이 아직도?"
"그래. 아직은 의식이 있군. 하지만 얼마 걸리지 않아 완전히 동화하여 사라지겠지."
"그래도 위험하지 않을까요? 혹시 그들이 안에서 저항한다면…."
"내 꼬리의 흡수기관에 닿는 순간, 그들은 내장된 안전장치로 인해 즉시 부품으로서의 기능 이외 전부가 정지하게 된다. 그들의 의식이 남은 이유는 두뇌 사이버네틱이 나에게 적응하여 조정될 때까지 시간이 가장 많이 소모되는 탓이지 그들이 저항하고 있기 때문이 아니야."
"하아, 그거 다행이네요. 그런데 꼬리요?"
트랭크스가 호기심에 고개를 뒤로 조금 내빼는 행동에 셀이 내면에서 소용돌이 치는 광기조차 잊고 어처구니가 없어서 코웃음 쳤다.
"완전체가 된 순간 퇴화했으니 앞이나 봐라."
그에 트랭크스가 멋쩍게 웃으며 다시 앞서나갔다. 얼빠진 그의 행동에 셀이 미간을 조금 모았다.
잠깐 침묵의 때가 지나고, 이번에는 셀이 물었다.
"왜 나를 데려간다고 결정했지?"
트랭크스는 어깨를 으쓱했다.
"당신을 피하거나 내버려 둔다고 해서 안전할 거라고 생각지 않았으니까요. 처음에는 당신이 외계인인 줄 알았습니다. 만약 외계인 침공자라면 지구라는 행성 자체를 파괴해도 이상하지 않을 테니까, 차라리 직접 마주하자고 생각했습니다. 지금도 당신이 위험하다는 생각은 바뀌지 않았어요. 단지 어차피 맞서 싸우지 못할 만큼 커다란 힘의 차이가 있는 당신을 두고 보는 편이 차라리 나을 것이라고 판단했을 뿐이죠."
"요컨대, 대책이 없단 거군."
평탄한 어조임에도 질책하는 듯이 느껴지는 셀의 요약에 트랭크스가 어색하게 웃었다.
"아, 아하하…. 뭐, 지금은요?"
셀은 눈을 감았다.
"너 또한 사이어인. 강해지고자 하겠지. 맞나?"
"네."
트랭크스의 대답은 망설임 없고 도전적이었다.
셀은 웃었다.
"그럼 단숨에 나를 압도적으로 뛰어넘는 힘을 기르는 편이 좋을 것이다. 애매한 힘으로는 너를 괴롭히기 위하여 나의 손에 살해 당할 목숨을 구하지 못할 테니."
그것은 경고였다. 그를 충동할 여지가 없도록 아예 힘을 기르지 말던가, 그게 아니면 어떠한 수를 쓰든 자신을 죽이라는.
트랭크스는 그를 흘끗 돌아보며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후기: 여기의 트랭크스는 원작의 트랭크스입니다. 여기의 셀 육체에 무태두 영혼이 떨어져 내리는 바람에 셀이 7년 빨리 깨어났으니 '원작'의 시간선에서는 완전히 탈선했군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