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헐, 저기가 3위?"

"아니 그렇게 잘했는데?"

"애초에 등수도 제일 높고…."

"반응도 장난 아니었잖아."

우리가 3위를 하자, 주변의 다른팀 참가자들이 도리어 수군거렸다.

고맙지만 사실 방청객이 인당 두표 행사할 수 있다고 했을 때부터 이 사태는 예견된 일이었다.

'다 견제 표로 넣었군.'

여기에 방청까지 올 정도면 대부분 미는 참가자가 있는 헤비 시청자라는 뜻이다.

그 방청객들은 일단 자기가 가장 좋아하는 참가자가 있는 팀을 찍는다.

그리고 그다음으로 '등수는 낮고 실력이 좋은' 팀에 한 표를 넣었겠지.

자기가 주력으로 미는 참가자의 경쟁 상대가 될 만한 이 팀에게 표를 줄 일은 없다.

그렇게 생각해 보면 솔직히 3위를 한 것도 선방이었다.

미는 참가자가 이 팀에 있는 방청객에 더해서, 그냥 보러온 몇몇 사람들 표는 다 쓸어 담았다는 소리니까.

그러나 팀원들은 제법 충격을 받은 모양이다.

"…감사합니다!"

한 박자 늦게 대답한 류청우가 힘차게 허리를 숙이며 인사했다.

팀원들은 열심히 감사 인사를 따라했지만, 담담하게 보이려 애쓰는 표정인 게 훤히 보였다.

"감사합니다."

나도 고개를 주억거렸다.

1, 2위 발표는 또 순위 발표식으로미뤄졌다. 그중에는 최원길이 모은 '1차 팀과 비슷한'팀도 있었다.

"그럼 주주님! 재상장! 아이돌 주식회사, 팀전 1위 소식과 함께 순위 발표식으로 찾아뵙겠습니다!"

MC의 마무리 멘트 후에 어쩐지 최원길이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이쪽을 슬쩍 본 것 같다.

'바본가…'

쟤는 매번 저러네.

아직 편집의 매운맛을 보지 못해서인가?

어쨌든 이 팀은 그런 걸 눈치챌 정신머리가 없는 상태였다. 풀이 죽은 채로 박수를 보내는 팀원들을 류청우가 한 명씩 어깨를 토닥였다.

"고생했어. 우리 최선을 다해서 멋있었을 거야. 걱정하지 말자."

"예…."

"맞아요. 우리 잘했어요!"

뭐, 차유진 말대로 무대를 잘한 건 확실했다.

그러니 이걸로 동정표를 받으면 모를까, 욕을 먹지는 않겠지.

어차피 이 팀에는 당장 다음 순위발표식에서 탈락할 것 같은 놈도 없겠다, 차라리 최상의 결과였다.

문제는 편집인데, 류청우만 살리고 다른 놈들 다 죽이는 편집이 또 들어가지 않는 이상은 평타는 칠 것이다. 무대가 잘 나왔으니까.

다들 벌써 팬덤이 붙은 놈들이니 어지간한 악편은 여론전에서 무마될것이다.

1차 팀전 방송을 말아먹었지만, 팬들이 끈질긴 여론 싸움을 통해 도로 순위권에 안착시킨 김래빈이 그 예시였다.

아, 마침 본인이 말을 거는군.

"저… 박문대 형."

"어, 왜."

김래빈이 고개를 꾸벅거렸다.

"여러모로 정말 감사했습니다. 연락처 좀 교환할 수 있을까요?"

"그래."

나는 순순히 번호를 알려줬다.

친분이 있어서 나쁠 건 없는 참가자였다. 그놈의 개사기 작곡 특성 덕분에 편곡을 날로 먹기도 했고.

게다가 성격 보니 시도 때도 없이 연락하는 큰세진 놈과는 달리, 필요할 때 용건만 빠르게 전화로 끝낼것 같았다.

김래빈은 번호를 받고 고개를 다시꾸벅 숙였다.

"가끔 안부 인사드리겠습니다."

"…좋지."

내가 아이돌 지망생하고 대화하는 건지 후임하고 대화를 하는 건지 모르겠다.

'어, 그러고 보니…'

이건 소위 말하는 '묶이는 참가자무리'를 갈아탈 수 있는 기회인가.

이번 팀전도 성공적으로 끝났으니, 다음 화 방영에 맞춰서 친분 목격담 몇 개만 흘리면 알아서 팬덤이 재편성될 가능성이 있었다.

'박문대'와 초반에 묶인 놈들이 미래에 마약부터 최종 순위까지 위험요소가 많긴 했다. 게다가….

'기왕이면 최종 등수 더 높을 놈이랑 묶이는 게 생존율이 높지 않나?'

김래빈하고 묶이면 차유진 미는 쪽의 내 평판이 좀 덜 적대적이 될 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었다.

' 거참.'

이딴 계산까지 하려니 현타가 이만저만이 아니었지만, 돌연사 당한다는데 체면 따지는 놈이 어딨겠는가.

"수고하셨습니다∼"

"고생 많으셨습니다!"

퇴근 준비 겸 짐을 챙기면서도 간간이 머리를 굴리는데, 뒤에서 누군가 톡톡 등을 건드렸다.

"저, 저기."

"음'?"

고개를 돌리니, 선아현이 비장한표정을 짓고 있었다.

근 일주일 바빠서 인사만 했던 놈이 갑자기 결심한 얼굴로 말을 걸러온다?

'뭐 나쁜 소문이라도 도나?'

선아현은 주변을 둘러보더니, 사람들이 쳐다보지 않는 것을 확인하고는 곧 눈을 부리부리하게 뜨며 속닥였다.

"최, 최원길 있잖아,"

"…? 어, 최원길이 왜."

갑자기 최원길 이야기는 또 왜 나오냐.

'또 파트 먹겠다고 지랄해서 욕하러 왔나?'

놀랍게도 이 막 던진 생각은 반쯤 맞았다.

"너, 너, 너무 못된 애야…!"

선아현은 거의 씩씩거리고 있었다.

아니, 대체 무슨 인성질을 해야 이 호구를 이렇게까지 빡치게 만들 수있지.

"왜, 무슨 일 있었어?"

"으, 응!"

선아현은 세차게 고개를 끄덕이더니, 조심스럽게 지난 팀전의 일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처, 처음에는 막… 자, 자기 파트달라고 하다가,"

오, 내 예측 샷이 완전히 맞았군.

"자, 자꾸 네 얘기 꺼내고! 막 비,비꼬고…."

최원길의 행적에 대해 이어진 설명을 정리하자면 대충 이랬다.

'내가 1차 때 카메라 분량을 못 받았으니까 이번에는 좀 받아야 맞다.

팀도 내가 꾸렸는데 고마워해야 하는 거 아니냐.'

'왜 문대 형한테는 파트 몰아주더니 나도 메인보컬 됐는데 안 주냐.

친분으로 차별하는 것 같다.'

심지어 후자는 제작진과의 인터뷰에서 울면서 이야기한 모양이다.

'선빵이 승리한다는 걸 지난 팀전에서 배운 모양이군.'

아닌 밤중에 뒤통수 맞은 팀원들이 어버버 거릴 때, 큰세진이 눈치껏 최원길을 살살 달래서 상황을 정리했다고 한다.

'방송을 생각하면 현명한 선택이지.'

하지만 덕분에 제대로 말해보지 못한 팀원들의 빡침은 오갈 데 없어진모양이다.

선아현의 조심스럽던 태도는 말이 끝날 때쯤에는 완전히 분기탱천한 상태로 변했다.

더듬는 게 열 받아서 더듬는 것 같이 보일 정도였다.

"조, 조심해야 돼…! 네, 네 이야기 이상하게 할까 봐… 아, 알려주려고."

볼이 시뻘게진 선아현은 그 와중에도 박문대를 신경 썼는지, 결국 걱정으로 말이 돌아왔다.

아마 본론은 이쪽이었나 보다.

상황이 웃기긴 한 데, 이거 참…그렇다.

'좀 고맙기도 하네.'

자기 것 챙겨 먹기 바쁜 이 서바이벌 오디션 속에서, 나를 인맥 관리가 아니라 진짜 친구처럼 대우하려고 하는 놈이라니.

애들 데리고 그룹 서열 나누던 내가 얼간이처럼 느껴진다.

'이게 무슨 중학교 반 배정도 아니고 말이지.'

이미 1 차 팀전에서 내 팀이 떡상하면서 내 미래 지식은 싹 갈리는중인데, 같잖게 편집증처럼 굴었나싶기도 하고.

나는 피식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어, 그래. 고맙다."

"아, 아니야…."

선아현은 화들짝 놀라더니, 황급히 손사래를 치며 평소의 소심한 모습으로 돌아왔다.

그 틈을 치고 어느새 나타난 큰세진이 어깨동무를 해왔다.

정말 대화가 있는 곳은 어디든 낄수 있는 이상한 능력이라도 가진 것같은 놈.이다.

"얍∼ 친구들, 뭐 해?"

"그, 그… 알려주고 있었어."

"뭐? 아… 걔."

큰세진은 어깨를 으쓱했다.

아무래도 최원길은 이름 대신 대명사로 통할 만큼 트롤로 찍힌 모양이다.

"다음에는 같이 안 하면 되지 뭐∼스트레스 받는 쪽이 지는 거야. 이거 좀 봐봐. 좋은 거 보기도 바쁜 세상이다."

"으, 으응?"

큰세진은 자연스럽게 화제를 넘겨버리더니, 스마트폰 화면에 뭔가를 띄워서 나와 선아현 쪽으로 돌렸다.

지하철역 광고판 사진들을 올린 SNS 글이었다.

아, 벌써 이럴 시기가 됐군.

대중시설에 광고를 걸어주는 것은 아이돌 팬들의 대표적인 서포트 중 하나다. 내가 찍은 사진도 몇 번 걸려봐서 기억한다.

'물론 데이터 사간 팬 계정 이름으로 올라갔지만.'

어쨌든 큰세진 본인 광고판이 걸렸다고 보여주려는 건가 싶었는데, 그것뿐만은 아니었다.

"짠! 이거 우리 셋이다?"

"음?"

다시 보니, 확실히 서로 마주 보고있는 인근의 광고판 셋을 각각 찍은 사진이다.

사진 밑에는 같이 등록된 글이 보였다.

[홍대입구역인데 악토버 동갑즈 같이 걸렸어 존귀ㅠㅠ 포스트잇 붙이고 왔다!]

큰세진이 히죽 웃으며 말했다.

"야, 진짜 신기하지 않아? 어떻게 이렇게 주르륵 광고 걸어주셨지? 상의하고 하셨나?"

아니. 자리싸움 하셨을걸.

목 좋은 환승역 대형 광고판 잡으려고 얼마나 돈과 시간을 쓰셨을지 생각해 보면 미안할 지경이었다.

'음, 박문대의 생존 가능성에… 투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새로운 고민이 생겼다. 데뷔해서 돌연사를 면해도 계약 기간은 성의껏 채워야 지옥행을 면할 것 같다는 점이다.

내가 기묘한 부채감에 혼란스러워할 때, 큰세진이 본론으로 들어갔다.

"우리 이거 보러 갈래? 팬분들이 메시지도 붙이셨다는데 한번 가봐야하는 게 도리 아니냐∼"

그 도리, 각자 지켜도 되지 않나?

그러나 선아현은 눈을 번쩍번쩍 빛내며 단번에 오케이를 외쳤다.

"조, 좋아"

"굿굿. 문대도 가는 거지? 언제로 잡을까?"

같이 가는 걸 기정사실로 박고 시작하는 게, 어째 3화 단체 관람 때낚였던 방식이랑 똑같았다.

그래도 뭐… 어차피 큰세진의 말대로, 광고판은 도리상 한번 보러 가긴 해야 했다. 사람들이 알아봐도 혼자보다는 대처하기 편하겠지.

나는 잠시 두 놈을 번갈아 살펴보다가, 그냥 고개를 끄덕였다.

"갈 거면 이번 주 내로 가는 게 낫겠는데."

"빠를수록 좋지!"

"조, 좋아!"

희희낙락하는 두 사람이 열심히 날짜를 잡는 것을 들으며, 짐을 도로챙겼다.

뭐, 기분이 나쁘진 않았다.

그리고 이틀 뒤.

나는 지난번에 편의점에서 구매했던 검은 색 면마스크를 다시 꺼내썼다.

목적지는 홍대입구역.

촬영 시기가 아닐 때는 집에만 처박혀 있었기 때문에, 외출은 오랜만이었다.

[선아현 : 우리 광고판 보고 점심먹지 않을래? 맛있어 보이는 음식점을 몇 곳 찾아뒀는데 혹시 너희만 괜찮으면…(더보기)]

선아현에게 메시지톡이 왔다.

'여전히 장문이군.'

이모티콘을 남발하는 큰세진의 반응을 확인하면서, 밖으로 나와서 버스를 탔다.

싼 맛에 계약한 방이라 도보 20분거리 내에 지하철이 없었으니까.

'이대로 홍대입구역 근처 정류장에서 조용히 이동하면 되겠지.'

…라고 생각했던 것은, 오산이었다.

"헉."

"박문대 아냐?"

"헐…. 야, 야 저기!"

버스에서 내려서 횡단보도를 건너자마자 이렇게 되었기 때문이다.

아직 약속 장소에 도착한 것도 아닌데 이미 사람들이 몰리고 있었다.

날 바로 알아본 사람은 몇 사람 안 됐지만, 번화가라서 인파가 인파를 부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누구야?"

"연예인이야? 아이돌?"

'이거 안 되겠는데.'

나는 고민하다가, 허리 숙여 인사하고는 뛰었다.

웬만하면 좀 더 반응을 해주고 싶었는데,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이시점에서 제일 흥하는 오디션 프로그램의 파급력은 놀라웠다.

하기야 연예 뉴스란을 켜면 랭킹에 무조건 아이돌 주식회사 관련 뉴스가 하나 이상 있는 시기다. 내가 밖에 안 나가서 안일했던 거지.

'이렇게 된 이상, 광고판만 빠르게 보고 사라져야 한다.'

빠르게 지하철역 안으로 달려 내려가는 중에 스마트폰에 진동이 왔지만, 일단 인파를 따돌리고 확인할 생각이었다.

그리고… 나는 세 명의 광고판이걸린 위치에 도착하자마자 사태를파악했다.

이미 광고판에 도착한 두 사람이 스마트폰에 둘러싸여 있었기 때문이다.

'이미 도착했는데 이 지경이라는 연락이었나 보군.'

이 바보들은 마스크도 안 쓰고 나왔다.

그 와중에 박문대를 알아본 사람들이 환호했다.

"문대야!"

"문대도 왔어!"

난감한데 고맙긴 했다. 이거 참.

[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 032화]

'일단 빠르게 할 일부터 해치운다.'

우선 광고판 주변에서 사람들의 질문과 요청에 어버버거리는 선아현을 잡았다.

"폰 줘."

"어, 어?"

"인증 사진 찍어야지."

선아현은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는 슬금슬금 자신의 광고판 앞으로 향했다. 나는 건네받은 스마트폰의 카메라를 켰다.

사람들은 즉시 반응했다.

"아, 사진!"

"저희 좀 비킵시다∼"

"애들 사진 찍어요!"

놀랍게도, 격정적으로 몰려들던 사람들이 자진해서 거리를 두고 물러나기 시작했던 것이다.

…내가 너무 목숨 걸고 사진 건지려는 사람들을 많이 봐서 그런지, 좀 걱정이 과했나 싶기도 하다.

"어깨 펴고."

"으, 으응!"

"아현아 너무 잘생겼어!"

마지막 말은 내가 한 게 아니라, 선아현 팬으로 보이는 분이 외친 말이다.

선아현은 고장 난 것처럼 얼굴이벌게졌다.

"아, 아, 아아니에요…."

그렇게 몇 번 중얼거린 선아현은 삐걱삐걱 몸을 폈다.

어쨌든 나는 기계적으로 구도를 맞춰서 사진을 찍었고, 스마트폰을 내리는 순간 옆에서 큰세진이 외쳤다.

"문대! 나도 나도!"

나는 선아현의 스마트폰을 쥔 그대로 몸을 돌려서 큰세진의 인증 사진도 찍어주었다.

큰세진이 몇 번이나 포즈를 바꾸는 통에 찍기 귀찮았다.

하지만 사람들은 열심히 스마트폰으로 그 광경을 또 촬영하고 있었다.

"귀여워…."

"다른 포즈도 해줘∼"

'…이러면 인증 사진 굳이 내가 찍을 필요가 없었던 게 아닌가?'

그냥 오늘 들어가서 인터넷에 뜨는거 아무거나 다운로드 받으면 됐지않나.

"문대야 너도!"

"아."

일단 나만 안 찍는 것도 이상하니, 나도 내 광고판 앞으로 이동했다.

사람이 다 물러가고 완전히 드러난 광고판을 코앞에서 보니, 그 크기에 위압감까지 느껴졌다.

박문대의 광고판 사용된 사진은 제작발표회 때 찍힌 것이었다.

다행히 볼 콕이나 손가락 하트 사진은 아니었지만, 대문짝만한 얼굴이 좀 민망했다.

'…눈 마주치지 말자.'

쓱 고개를 돌리니, 배경에 적힌 문구가 보였다.

[박문대]

[혜성처럼 나타난 우량주!]

맨 밑에 작은 글씨로 '많은 매수부탁드립니다 '까지 붙어 있었다.

"…."

굉장히 임팩트 넘치는 문구라는 점은… 부정할 수 없겠다.

'고생하셨겠네.'

나는 묵묵히 인증 사진을 찍었다.

이건 이 정도 성의는 보여야 했다.

그리고 사진을 찍고 광고판에서 떨어지자마자, 다시 사람들의 말이 쏟아졌다.

"광고 보러온 거야?"

"아, 어떡해…."

"촬영 잘했어요?"

"저 투표하고 있어요!"

슬슬 통행에 방해될 만큼 사람이 불어나고 있었다. 확실히 내가 혼자 버스정류장에서 내렸을 때보다 심했다. 셋이서 온 단점이었다.

이거 잘못하면 민폐라고 까이겠는데?

뭘 좀 해주고 가고 싶었는데, 힘들것 같다.

'셋이 온 장점을 써먹어야겠군.'

나는 다른 두 사람에게 눈짓했다.

다행히 신호를 알아들은 표정이다.

우리는 꾸벅꾸벅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그리고 곧바로 가장 가까운 출구로뛰었다.

키 큰 남자 셋이 한꺼번에 뛰니 자연스럽게 길이 열렸다.

"저희 들어가 볼게요∼ 감사합니다!"

큰세진이 돌아보면서 손을 흔들며 외쳤다. 눈치껏 따라 하니 대답하는 목소리가 여럿 들렸다.

"어? 얘들아!"

"잘 들어가!"

"화이팅!"

다행히 무례하다고 느낀 사람은 없었는지, 밝은 목소리들이었다.

그렇게 많은 응원 소리를 들으면서 달리는 건 처음이었다.

기분이 굉장히… 오묘했다.

튀어나온 입구에서 곧바로 택시를 잡아탔다.

"아! 진짜 좋았다!"

택시가 출발하자마자, 큰세진이 히죽히죽 웃으며 한 말이다.

선아현도 고개를 마구 끄덕이는게, 어지간히 신이 난 기색이었다.

'그렇게 좋았나?'

물론 고맙다 못해 부채감이 느껴지긴 했다. 그러나 많은 사람이 알아본다고 특별히 기분이 고조되지는않았다.

기질의 문제일까? 아니면….

'…나이 문제일 수도 있지.'

저놈들은 다 21살이니 말이다.

혼자 떨떠름하게 생각할 때 즈음, 큰세진이 갑자기 '아!' 하는 감탄사와 함께 자신의 스마트폰을 꺼냈다.

그리고 곧바로 내 폰에 진동이 왔다.

[(사진) (사진)]

박문대의 광고판 앞에서 찍은 내사진이었다.

노출값이 잘못됐는지 색이 다 날아가서 허옇게 뜬 광고판 위로 다 흔들려서 뭉개진 내 얼굴이 떠 있었다.

"…."

이 새끼 사진 더럽게 못 찍네.

"야, 흔들려서 오히려 현장감이 살아 있지 않냐?"

현장감이 너무 넘쳐서 현장감 외에는 아무것도 알아보지 못할 사진이다.

말없이 놈을 쳐다보니, 큰세진이 웃음소리를 내며 모른 척 선아현에게 말을 걸었다.

"하하… 맞다, 아현아! 내 인증샷도 네 폰에 있지?"

"으응! 자, 잠깐."

선아현이 허둥지등 자신의 스마트폰을 켜더니, 단체방에 사진을 올렸다.

내가 찍은 큰세진과 선아현의 사진들이었다.

'네 사진은 왜 올리냐.'

아마 당황해서 한꺼번에 올린 모양이다.

"오∼ 문대가 찍어준 사진은… "

유쾌한 척 화면을 들여다보던 큰세진은, 잠시 말문이 막힌 듯 입을 멈췄다.

그리고 약간 당황한 얼굴로, 이번에는 진짜 같은 감탄사를 내기 시작했다.

"어, 오…. 너 사진 진짜 잘 찍네."

몇 년 그걸로 밥 벌어 먹었었는데 당연한 일이었다.

나도 힐끗 화면을 봤다.

수평 구도가 완벽하고 인체 비율이 어색하지 않으며 표정과 포즈를 잘 잡아낸 사진이 인당 네댓 장씩 올라와 있었다.

실력이 녹슬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약간 뿌듯해하고 있으니, 큰세진이 머쓱한 말투로 덧붙였다.

"…음, 다음에는 나도 좀 잘 찍어줄게. 미안하네."

이것도 진심인 것 같았다.

비즈니스의 맛이 안 나는 큰세진이라니 오늘은 별걸 다 보는군. 나는 그냥 어깨를 으쓱했다.

"뭐… 현장감 살아 있는 사진도 괜찮아."

큰세진이 잠깐 놀란 얼굴을 했다가, 얼른 씩 웃고 화제를 돌렸다.

"그치? 아, 그러고 보니 아현이가 추천한 맛집은 이렇게 물 건너가나? 아쉽네."

"괘, 괜찮아. 다, 다음에 같이 오면…."

"…흠 "

그래. 그 이야기도 했었지.

지금 선아현이 찾아온 음식점들을 가는 건 무리였다.

SNS에서 유행하는 곳들만 뽑아온지라 이 인원으로 갔다가는 식사를 남의 SNS로 생중계하게 될 판이다.

게다가 선아현이 그다지 서치에는 재능이 없는지, 바이럴 마케팅의 냄새가 나는 곳들이라 가성비가 별로였다.

나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이대역을 지나던 내비게이션을 확인했다.

"기사님, 저희 연희동으로 꺾어주실 수 있을까요."

"되기는 하지요∼"

"예, 그럼…."

나는 뒷자리의 둘을 돌아보았다.

"나 아는 조용한 집 있는데, 거기갈래?"

"올∼ 당연히 찬성!"

"조, 좋지!"

됐네. 나는 기사분께 양해를 구하고 내비게이션을 조작해 음식점을 찍었다.

그리고 식사가 다 끝난 후에야, 굳이 할 필요 없는 짓을 자진해서 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맙소사. 친해지고 있잖아!

"흐으으음"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던 여성은 고통스러운 침음성과 함께 고민의 고민을 거듭했다.

화면에는 그녀를 번뇌의 늪에 빠뜨린 선택지가 떠올라 있었다.

[아이돌 주식회사의 주식 패키지대할인! ∼80%]

커다란 배너 아래에는 아주사 가 방영되는 채널인 Tnet의 그룹사에서 파는 온갖 서비스와 묶인 주식들이 보였다.

가령 여기 Tnet의 음원사이트 패키지를 사면, 50% 할인된 3개월 스트리밍 이용권과 아주사 주식 20주 매수 권한도 받는 것이다.

한마디로, 문대에게 20표를 더 줄수 있었다.

이 방송국 놈들은 하루에 한 표씩 더 줄 수 있는 월정액권 외에는 전부 이딴 식의 패키지 형태로 주식을 팔았다!

무서운 건 이 패키지가 할인율이 높아서, 기존 서비스 이용자들이 할인받으려고 이 패키지를 샀다가 아주사 에 빠지는 이중 구조로 되어있다는 점이다.

'진짜 상술 지독하다…'

여성은 한숨을 쉬며 페이지 스크롤을 달각거리다가, 방금 온 메시지가 팝업에 뜬 것을 보았다.

방청 신청으로 자신의 입에 박문대를 떠먹여 준, 그 친구의 메시지였다.

[연주 : 미친미친ㅠㅠ 문대 목격담떴어!(링크)]

'허억.'

황급히 클릭한 링크는 SNS 게시글로 연결되었다.

[오 나 방금 혈육이랑 밥 먹으러나왔다가 아주사 참가자 봤다 그 말랑달콤 노래한 애들인 듯? (사진)]

첨부된 사진에는 칸막이 처진 테이블에서 삼계탕이 든 뚝배기를 받는 박문대와 선아현, 큰세진이 보였다.

사진 아래로 길게 반응글이 이어졌다.

-삼계탕 보는 눈 좀 봐 얘들아 튀어나오겠다ㅋㅋㅋ

-역시 근본 없는 치킨보다는 K-삼계탕이지 뭘 좀 아는군

└치킨차별을 멈춰주세요ㅠ

-얘네 셋 계속 친하게 지내는 거저는 찬성입니다.

-아 광고판 보고 이거 먹으러 갔나봐ㅠㅠ 귀여운 놈들 사랑한다ㅠㅠ

'광고판?'

여성은 혹시 하는 마음에 '박문대 광고판'을 검색해 봤다.

그 즉시, 만 단위로 공유되고 있던 몇 시간 전 글이 상단에 떴다.

문대 광고판 인증샷 찍고 갔어ㅠㅠ 사람 넘 많이 몰려서 오래 못 있었는데도 귀엽고 친절해서 수니심장 박살냈음 마스크 썼는데도 잘생김이 뚫고 나옴 실물 존잘ㅠㅠ (짧은 동영상)

첨부된 동영상을 재생하자, 청바지에 검은 후드, 검은 야구모자를 쓴 박문대가 자신의 광고판 앞에서 사진을 찍는 모습이 나왔다.

[잘생겼어요!]

[주식 많이 살게 문대야!]

[으음, 감사합니다….]

박문대는 사람들의 쏟아지는 말에 약간 부끄러운 듯이 대답했다.

그리고 다른 참가자 두 사람과 함께 유쾌하게 질주해서 사라지는 것으로 영상이 끝났다.

-귀여워

-문대 생각보다 사교적인걸?

-ㅠㅠ역시 문댕댕은 뇌피셜이 아니라 공식이다ㅠㅠ 뭐, 티벳여우? 이단이다!

-눈새로 편집한 피디놈 죽어 제발 우리 애 그냥 차분한 거였잖아

-금발이 모자 써도 개찰떡

'귀여워…! 너무 귀여워!'

발을 구르던 그녀는, 문득 박문대의 광고판 사진이 익숙하다는 걸 깨달았다. 친구가 자신이 찍었다며 보여준 사진이었다!

그녀는 얼른 메시지를 작성했다.

[민소 : 와 이거 니가 건 거 아니야? 축하해 문대가 보고 갔대! (링크)]

[연주 : 안 그래도 그거 보고 혼절해 있다가 지금 정신차렸음… 내가 건 거는 아니고 팬 연합에서 한 거긴 한데 그래도 너무 설레… 벅차…]

'왜 이거부터 알려주지 않았느냐'고 묻자, '너무 심장이 떨려서 타자가 안 쳐짐'이라는 대답이 나왔다.

여성은 키득거리며 축하 이모티콘을 보냈다. 그리고 생각했다.

'나도 뭔가 해주고 싶다.'

박문대가 잘돼서, 멋진 무대를 많이 보고 싶었다.

결국, 그녀는 방금의 구매 페이지로 돌아가서 음원 패키지를 구매했다.

흐뭇하게 문대의 주식을 매수한후, 다른 내용은 없나 확인해 본 삼계탕집 목격담 글에서는 어느새 싸움이 터져 있었다.

-사진 내려주세요. 스토킹은 범죄입니다.

└아니 어쩌다 우연히 본 건데요 무슨 스토킹;; 걍 목격담임

└남 밥 먹는 거 도촬이 목격담 인가요? 상식적으로 말이 되는 소리를하세요.

└응 차단했음 ㅅㄱ

이 대화 이후, 불타오르던 사람들의 반응은 머쓱하게 흐지부지되었다. 박문대의 소식을 접하기 힘들었기에 드문 목격담에 반사적으로 흥분했다가, 사생활 침해일 수도 있다는것을 깨달은 탓이었다.

여성도 머쓱해하며 창을 껐다. 아직 문대가 데뷔도 하지 않았다는 것을 깜박했던 것이다.

'그거야… 그렇게 잘했으니까…!'

그녀는 다시 생각해도 정신이 멍해지는 직전 방청 경험을 떠올리다가, 문득 잊고 있던 것을 생각해 냈다.

"헉! 아주사 본방!"

그렇다. 애초에 아이돌 주식회사 방영을 기다리며 막간을 이용해 주식구매 페이지를 살펴보고 있었던것이다.

그녀는 허겁지겁 채널을 틀었고, 다행히 막 시작하는 방송의 로고를볼 수 있었다.

"휴…."

안도하며 마음을 놓은 것도 잠시, 갑자기 MC의 의미심장한 얼굴이 방송을 탔다.

[여러분, 혹시 재상장! 아이돌 주식회사 의 약속, 기억하십니까?]

마치 토의실 책상 앞에 앉아 발언하는 것처럼, MC가 진지하게 책상을 쳤다.

[모든 것을 여러분의 뜻대로 진행하겠다, 약속드렸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저희 홈페이지에서 최종 데뷔 인원수, 평가 선곡 등 수많은 투표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참고로, 슬슬 '초반에 최종 데뷔 인원수를 너무 작게 투표해 버렸다'며 우는 사람들이 나오고 있었다.

[그리고 오늘, 그 약속을 하나 더 실행하려고 합니다. 여러분. 지금까지 시청하시며 보기 싫은 참가자가 생기셨습니까?]

방송 시작하자마자 갑자기 이게 뭔지 혼란스러워하는 시청자의 앞에, 제작진은 거대한 똥을 투척했다.

[그럼 그 참가자의 주식을 팔아버리십시오! 새롭게 도입된 주식 매도, 주주 여러분은 앞으로 보고 싶지 않은 참가자의 주식을 깎을 수있습니다!]

[주주 여러분께서 구매하시는 '주식 매수권'은, 앞으로 '주식 매도권'으로도 이용하실 수 있습니다. 즉! 특정 참가자의 주식을 사는 대신 팔아서 마이너스로 만들 수 있는 겁니다!]

바야흐로 지옥의 도래였다.

[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 033화]

아이돌 주식회사 에 참가자의 득표수를 깎을 수 있는 신제도가 도입된 후.

-장난해?ㅋㅋㅋ 제작진 미쳤어?

인터넷은 아비규환이 됐다.

-진짜 제정신 아니네 누가 나쁜 맘 먹으면 어떡하려고 헤이트 투표를 열어

-이제 매운맛이 아니라 불지옥임

-아 진짜 다음 순위 발표식 괴로워서 못 볼 것 같아 이 쓰레기 새끼들아 애들한테 무슨 짓이야

-이쯤 되면 불매해야 하는 거 아니냐?

제작진과 프로그램을 비난하는 글이 우선 온갖 커뮤니티를 덮었다.

당연한 반응이었으나, 이 비난이 기본 정서로 자리 잡은 후에는 슬슬 이런 글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이번 마이너스 투표가 이득일 참가자와 손해 볼 참가자 정리.jpg

참가자 품평이었다.

여기서 더 나가면, 슬슬 자신이 밀지 않는 참가자에 대한 비방글 난무하게 될 것이다.

"흐음."

나는 7분 만에 베스트 게시판에 뜬 그 글을 훑어보았다.

슬슬 스크롤을 내리자, 찾던 이름이 보였다.

[박문대 등수하락 위험도 ]

: 얘 이야기 나오면 악편이냐 천편이냐 가지고 맨날 개싸움 남. 정병걸린 수준으로 물어뜯는 애들이 있음. 수치 꽤 깎일 듯.

'별 두 개면 양호하네.'

솔직히 이럴 줄 알았다. 방송에서의 박문대 놈은 호불호 탈 수밖에 없이 극단적인 캐릭터이기 때문이다.

'PR 라이브나 1차 팀전 편집이 잘뽑혀서 그나마 만회한 거겠지.'

게다가 1차 팀전에서 뜬 악토버 31의 참가자들은 현시점에서 후발주자다. 기존 강세 참가자의 악성 팬들에게 얻어터질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스크롤 내려보니 큰세진 빼고는 다 하락 위험에 넣어뒀더라.

'물론, 이 글 하나만 믿을 수는 없지만.'

일단 글이 사람들에게 무시당하지 않고 인기글로 올랐다는 것만으로도 어느 정도는 대세 여론과 유사하다는 뜻이었다.

물론 댓글에서는 개싸움이 났지만 말이다.

-뇌피셜 길게도 적어뒀네 알못 새끼가 아주사에 통달한 척 인터넷 여론을 지배하는 척 오지죠?ㅋㅋㅋㅋㅋ

-벌써 피곤하다 이런 거 그만했으면 좋겠네 진짜…

-ㅋㅋㅋㅋ이 악물고 내리라고 부들거리는 애들 누구 빠인지 X나 투명함 그러게 왜 욕먹는 놈을 빨어?ㅋ

-대충 맞는 말인데? 현실을 인정하세요ㅎㅎ

그리고 이런 댓글들 사이사이로 글에 올라온 참가자에 대해 떠드는 사람들도 보였다.

주로 하락할 것 같은 참가자를 씹고 뜯고 맛보며 즐기고 있었다.

-ㅋㅋㅋ이세진 떡락 확정∼

-ㅠㅠ래빈이 어떡해? 더 하락하겠다… 팬들 힘내야 할 것 같아!

물론 '왜 얘가 안정권이라고 적어놨는지 모르겠다'는 식으로 여론몰이를 하려는 시도도 제법 눈에 띄었다.

-류청우 전 국대라고 올려치는 것도 적당히 해야지 팬들부터 방송까지 다 부둥부둥 해주니까 오히려 짜증 나서 주식 파는 애들도 많을듯?

'벌써 밑밥을 치는군.'

물론, 박문대의 이야기도 제법 있었다.

-문대 까는 애들은 제발 노선을 하나로 정해줬으면 좋겠음. 실력은 편집빨이니까 못 믿겠다면서 성격은 편집된 방송본 가지고 와서ㅋㅋ

└응 빠들은 실력은 방송 믿고 성격은 악편이라고 안 믿자나∼ 그게그거 임

└미치겠다 PR 라이브에서 문대 무반주로 노래한 거 들어봐 방송보다 더 잘함. 그리고 왜 인터뷰 짜깁기한 편집본은 믿고, 실제로 문대가 다른 참가자들한테 잘해준 영상은 못 본 척하는 거야?

└자기 혼자 주절주절;; 으휴 아이돌에 목숨 걸지 마세요 아줌마!

└신고했음 ㅅㄱ

'이건… 좀 미안한데.'

괜히 박문대의 주식을 잡아서 고통받는 사람들을 보고 있자니 말문이 막혔다.

내가 뭘 더 잘한다고 해서 방송방향을 바꿀 수 있는 건 아니니까.

'사실… 이미 알고 있었다.'

이 마이너스 투표가 도입되는 것은, 하도 논란이 됐었기 때문에 공시생이었던 나도 알고 있었다.

재상장! 아이돌 주식회사 가 미친 화제성과 X망 사이에서 정신 나간 듯이 줄타기를 했던 적이 두세 번쯤 있었는데, 이게 바로 첫 번째 사건이다.

어차피 지금 추세로 봐서는 어지간히 득표율이 깎이더라도 탈락하지는 않을 것 같아서 크게 신경 쓰지 않았는데, 막상 닥치니 좀… 신경 쓰인다.

'박문대'를 응원하는 사람들이 말이다.

'너무 스트레스받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나는 머뭇거리다가, 일단 창을 껐다.

사실 주식 매도 보다 새로 방영된 6화의 반응을 살펴볼 생각이었는데, 여기에 묻혀서 그다지 많지 않았다.

'애초에 6화에는 내 분량이 적기도 했지.'

내가 속했던 팀의 무대가 다음 화로 배정된 것이다.

팀 편성과 선곡 장면도 아주 부분적으로만 나온 탓에, 별 반응이 없었다.

-으윽 곰머 왜 래1빈이랑 같은 팀이야 개시러ㅠㅠ 김래1빈 제발 자선사업 그만해 지난 팀도 거지 같았잖아 진짜 얼굴 빼면 머가리는 볼 거없다… 어휴 어쩌다 이런 걸 잡아서는…

-문대야 유진이한테 들러붙지 말자 그냥 죽어

주로 이런 악성 팬의 반응만 남아있었다. 아니, 이걸 팬이라고 봐도될지 모르겠다.

'…잘 보니 김래빈도 욕하고 있는데?'

데이터 팔던 시절에도 가끔 봤던 부류였다.

왜 욕하면서 팬이라고 주장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중요한 건 박문대와 같은 팀이 된 걸 싫어하는 반응이 좋다는 반응보다 더 적극적이라는 점이다.

심지어 '박문대'를 괜찮게 보는 시청자들도 1차 팀전의 팀원들과 같이 못 한 게 아쉽다고 하는 마당이니까.

나는 팔짱을 끼고 웃었다. 과연 7화가 방영되면 여론이 어떻게 바뀔지 궁금했다.

무대는 확실히 좋았고, 그건 편집으로 건드리는 것에도 한계가 있었으니까.

'그럼 그때까지 상태창 팝업이나정리하면서 연습 업적을…'

드르르륵.

생각하는 도중 스마트폰이 울렸다.

아마 그놈의 동갑내기 단체방이겠지. 나는 무심코 스마트폰을 열었다.

복사한 뒤 붙여넣기를 했는지, 거의 동시에 두 메시지가 도착했다.

[김래빈 : 형 잘 지내고 계신가요. 저 김래빈 참가자입니다. 이렇게 연락드린 이유는 다름이 아니라 여쭤볼 것이 있어서입니다.]

[김래빈 : 저랑 차유진 내일 강남역에 팬분들께서 올려주신 광고를 확인하러 갈 일정인데, 혹시 형도광고 확인하러 같이 가실… (더보기)]

"…."

강남역에도 내 광고가 올라갔던가?

검색해 보니 오늘부터 개시되었다는 SNS 글이 떴다. 놀랍다. 김래빈 이놈 서치 좀 치는데?

하지만 이 타이밍은 좋지 않았다.

'싫은 놈 찍는 제도가 막 도입됐는데 굳이 튈 필요 없다.'

여기서 괜히 행복한 목격담이 나왔다가는 '박문대 자신 있는 듯?' 같은 개소리가 무조건 나온다.

게다가 김래빈, 차유진과 함께 간다? 벌써 욕 하나 뚝딱 머릿속에서나왔다.

-마이너스 투표 개쫄리나 봐 잘나가는 애들한테 X나 친한 척 하네ㅋㅋ

이딴 잡음을 굳이 만들 필요가 없지. 박문대를 응원하는 사람들의 위를 가능한 한 지켜주도록 하자.

일단 7화가 방영될 때까지 두고보는 게 낫겠다.

나는 곧바로 답장을 입력했다.

[박문대 : 일이 있어서 힘들겠다. 다음에 보자.]

[김래빈 : 예… 그럼 또 연락드리겠습니다.]

촬영에서나 보겠군.

나는 그렇게 짐작하며, 운동에 들어가기 앞서서 스트레칭을 하기 시작했다.

'체력이나 만들고 있자.'

이때는 김래빈이 다음 촬영까지 매일 안부 인사를 보낼 줄은 꿈에도몰랐다.

그것도 그냥 안부 인사가 아니라, 어르신들이 만든 것 같은 오색찬란 안부 이미지 파일로 말이지.

[김래빈 : (웃으면^^ 복이 옵니다∼ 즐거운 아침으로 행복한 오늘을 만듭시 다∼)]

"…?"

분야가 예체능이라 그런가, 근래 만나는 청소년마다 정말 유니크한 감성의 소유자들이다.

그리고 드디어 돌아온 금요일 저녁

[김래빈 : (행복한 금요일 되세요 -장미꽃에 마음을 담아^^행복과 건강을 나눕니다)]

어째 이놈의 어르신 짤이 점점 업그레이드돼 간다. 이젠 반짝이 효과도 있네.

[박문대 : 그래 너도 잘 지내라]

[김래빈 : 감사합니다.]

어쨌든 김래빈의 이미지 파일 속 문구대로 '행복하고 건강한' 금요일이 되려면, 오늘 7화가 잘 빠졌어야할 테다.

나는 맥주를 마시며 7화를 시청하기 시작했다.

내 분량은 7화가 끝날 때 즘에 나올 확률이 높았다.

제작진이 등수 평균이 제일 높은팀을 분명 방송시간 맨 뒤로 미뤘을테니까.

예상대로 다른 팀이 줄줄 나왔다.

별 관심은 없지만, 치고 올라올 만한 놈이 있을지 확인해야 하니 주의깊게 보았다.

'별놈 없네.'

특별히 눈에 띄게 우호적이거나 적대적인 편집은 없었다. 그냥 평범한 파트 갈등과 실력 부족으로 헤매다 극복하는 스토리 라인이다.

그러다 중후반부에 최원길이 고른팀이 나왔다.

선아현과 큰세진을 포함해 지난 1차 팀전의 같은 팀 참가자들이 대거포진한 팀이었다.

편집 포텐셜은 여기서 터졌다.

[최원길 : 왜 저한테만 그러시는건지 모르겠어요….]

[하일준 : 뭐…?]

우는 최원길의 인터뷰 컷과 당황한팀원들의 모습이 교차 됐고.

[최원길 :(노려보며)문대 형 너무 하시는 거 아니에요?]

최원길은 완전히 떡락했다.

"와…."

이걸 이렇게 보내네.

제작진은 1차 때 최원길의 비협조적인 태도를 여기서 터뜨린 것이다.

솔직히 1차 때 어지간히 귀찮게 굴기는 했지만, 이렇게 원기옥으로 쌓여서 터질 줄은 몰랐다.

근데 이 업보 스택을 나한테만 쌓은 게 아니었다.

[권희승 : …말을 안 받아주니까요.]

1차 때부터 골드 2가 욕 좀 본 모양이었다. 카메라 없을 땐 말도 제대로 안 받아줬더라.

[권희승 : 제가 나이도 제일 어리고…(등수도)제일 낮으니까 그런가.]

물론 그걸 고정 캠으로 잡아서 송출한 제작진도 징그러운 놈들이었다. 시청률 떡상 각 보려고 또 참가자 하나 멍석말이하네.

[큰세진 : 자, 자! 원길아. 마음은잘 알겠어. 여기 앉아 봐봐.]

선아현에게 들었던 그대로, 갈등은큰세진이 나서서 봉합한 것으로 방송을 탔다.

[최원길 : 제가 좀 감정적이었던건 맞으니까요.]

저 인터뷰와 함께 열심히 연습한 팀이 무대에서 좋은 모습을 보이는 훈훈한 모습으로 끝났지만, 눈 가리고 아웅인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벌써 인터넷 페이지는 욕으로 도배되고 있었다.

-최원길 인성 실화냐

-지가 좀 감정적이랰ㅋㅋㅋ 지랄한다 니가 한 건 분노조절장애급임

└근데 또 만만한 사람한테만 저지랄하는 것 같아서 더 기분 나빠

-희승이 무시하는 거 봤어? 나 진짜 학교에서 힘들 때 생각나서 PTSD 올 뻔…

-박문대 재평가해야 함 저 꼴 보고 파트를 그냥 주다니 보살이었음

'음, 박문대가 거론되는 건 곤란한데.'

자기들 마음대로 인성을 치켜세우다가, 또 의심스러운 점이 생기면 괘씸죄로 욕이 두 배가 된다.

다행히 이 팀 무대가 괜찮았었기 때문에 무대에 대한 감상이 지분을 먹으면서 최원길에 대한 화제는 좀 밀려 나갔다.

다시 이야기가 올라올 때는 아마 최원길을 비난하는 것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을 것이다.

'멘탈 안 좋아 보이던데, 고생 좀하겠군.'

나는 혀를 차면서 댓글 페이지를 껐다.

이제 남은 건 두 팀. 곧 내 분량이 나올 차례였다.

물론… 다른 놈이 다 처먹지 않았다는 가정 아래에서 말이다.

'등수 높은 놈들이 워낙 많아야지.'

나는 기대를 내려놓고 시청을 계속했다.

그리고 놀랐다.

두둥!

화면에는 김래빈의 인터뷰가 웅장한 배경음과 함께 재구성되어 나오고 있었다.

황금빛으로 번쩍이는… 뭔가의 오마주 같은 자막과 함께.

[김래빈의 팀원 모으기 여정]

[김래빈 : 일단 박문대 참가자님을 모실 생각입니다.]

"쿨럭."

나는 마시던 맥주를 뿜었다.

[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 034화]

화면 속 김래빈은 침착하게 연유를설명했다.

[김래빈 : 박문대 참가자님은 곡을 타지 않는 가창력의 소유자이기 때문에, 선곡의 측면에서 부담이 없습니다.]

[김래빈 : 또 단체활동에서 다른 팀원을 유연하게 받아주시는 장면을 많이 목격했습니다. 1순위 팀원입니다.]

직후, 김래빈이 순식간에 미니게임을 이기고 '박문대'를 지목하는 장면이 교차 되었다.

그리고 멍한 표정의 박문대 인터뷰가 나왔다.

[박문대 : …?]

[박문대 : 고맙긴 했지만… (대체왜?)]

BGM과 추가 자막 덕에, 김래빈에게 합류하여 꾸벅 고개 인사를 하는 박문대는 굉장히 당황한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김래빈이 두 주먹을 꾹 쥐고 작은 승리감을 표출하는 장면이 또 한 컷.

무슨 위튜브용 콩트 같았다.

제작진이 리액션을 창조하는 거야 한두 번이 아니다만, 이렇게 속마음을 정확히 집어낸 건 또 처음이다.

[김래빈 : 다음은 차유진 참가자입니다.]

[김래빈 : 그리고 류청우 참가자님.]

김래빈이 자기만의 논리로 한 치의 망설임 없이 팀원들을 뽑아가고, 팀원들이 아리송해 하는 장면이 계속이어졌다.

나름대로 귀여운 맛이 있는 연출이었다.

'김래빈은 살려주려나 보군.'

1 차에서의 살벌한 모습을 대놓고 중화시켜주는 편집이었다.

그러나, 그 분위기는 길게 가지 않았다.

'하지만' 이라는 시뻘건 자막이 화면에 뜬 뒤, 백색소음만 가득한 숨막히는 분위기의 장면이 송출되었다.

[며칠 후 중간 평가]

[영린 : 편곡 누가 했나요.]

고개를 떨구는 김래빈과, 김래빈을 돌아보는 몇몇 팀원들의 모습이 교차 되었다.

커다란 자막이 다시 떴다.

[대체 무슨 일이?]

그리고….

중간광고가 들어갔다.

"…흠."

나는 남은 맥주를 목에 털어 넣었다.

어떻게든 시청률을 뽑아내려는 저모습이… 이젠 감탄이 나온다. 대단하다, 아주사 제작진 놈들.

막간을 이용해 확인한 인터넷에서는 온갖 추측이 판치고 있었다.

중론은 '김래빈 또 팀전 망한 거 아니냐'였다.

-박문대 뽑은 이유 나올 때부터사람 보는 눈 존나 없구나 싶었음ㅋㅋㅋ

"아니…."

여기서까지 박문대가 먼저 까이냐.

맥주가 들어가니 사람이 좀 풀어졌나, 평상시보다 좀 더 열 받았다.

나는 떨떠름하게 화면을 끄고, 다시 Tnet을 틀었다. 막 광고가 끝나고 있었다.

예상대로, 곡이 결정된 후 토의 장면부터 화면에 송출되었다.

[류청우 : 우선 세진이부터 의견 들어볼까?]

대체로 사회성 떨어지는 팀원들까지 잘 챙겨가는 류청우를 부각하는 편집이었다.

특히 이세진의 신경질적인 반응에 침착하게 대응하는 것이 그대로 스크린을 탔다.

'이세진도 텄고.'

이거 또 류청우가 다 먹는 그림으로 가나?

안무 짜는 차유진의 천재성을 매력있게 조명해 주는 장면이 몇 컷 들어갔고, 김래빈이 편곡에 시간을 쏟는 장면이 몇 컷 들어가긴 했지만 아직까지는 류청우의 판정승이었다.

상황이 변한 것은 중간 평가 때부터였다.

[원곡을 이것저것 많이 건들긴 했는데, 원곡보다 못한 느낌이에요.]

심사평은 본래의 미적지근했던 분위기보다 더 심각하게 편집되어 나왔다.

원곡자의 뜬금없는 뒷북 발언이 짜깁기되어 심사평 중간에 끼워진 효과였다.

[여러분의 무대에는… 태양처럼타오르는 곡이 가진 힘이 느껴지지 않았어요.]

이 개소리가 촌철살인이라도 한 것처럼 방송을 탈 줄은 몰랐다.

어쨌든 심각한 분위기에서, 한 팀원이 편곡 당사자로 김래빈을 지목했다.

[(곧장)래빈이가 진행했어요.]

팀원들이 김래빈에게 시선을 휙휙놀리는 것이 노골적으로 강조되어 방송을 탔다.

등골이 싸해지는 편집이었다

'망할….'

이걸 커버치겠다고 그 쇼를 벌였는데, 설마 다 같이 나가리 되나?

그 순간, 화면은 갑자기 '박문대'를 클로즈업하기 시작했다.

"어?"

'설마.'

화면의 박문대는 어쩐지 곰곰이 생각하는 표정이더니, 갑자기 회상 컷이 들어갔다.

[키를 낮춘 다음에 하는 게 좋을것 같아요.]

[랩도 좀 넣으면 어때요?]

[편곡은 응원단 컨셉에 어울리게.]

[…예.]

김래빈에게 몇몇 팀원들이 안 어울리는 편곡 요소들을 넣어보라고 이야기하는 장면이었다.

박문대가 그것을 유심히 관찰했던것처럼, 시선이 연출되어 들어갔다.

그리고 다시 돌아온 중간 평가 시점의 화면.

박문대는 아무렇지 않게 입을 열었다.

[네. 래빈이가 편곡이 가능하니까 편곡자님과 상의해 줬고, 편곡 방향은 저희가 다 같이 의견 내서 정했습니다.]

놀란 표정의 김래빈 얼굴이 클로즈업 됐다.

그리고 박문대의 인터뷰가 들어갔다.

[Q : 왜 김래빈 참가자를 감싸줬나요?]

[박문대 : (의아함) 그냥 사실대로말했던 거라서요.]

저건… 1차 팀전 때 했던 편곡 관련 인터뷰를 잘라 넣은 컷이다.

…허.

'자연스럽게 말 돌려 버리려고 일부러 덤덤히 이야기했었는데.'

편집의 마법을 거치고 나니, 남 눈치 안 보는 박문대가 그냥 사실을 말해버린 것처럼 방송에 나왔다.

'아무리 겪어도 황당하군.'

내가 그렇게 떨떠름하든 말든, 방송은 계속 진행되었다.

[전하는 진심]

[김유준 : 미안해….]

팀원이 김래빈에게 사과를 한 뒤에는 분위기가 급격히 희망차고 훈훈하게 바뀌었고, 김래빈의 감동 인터뷰로 방점을 찍었다.

[김래빈 : 팀원분들을 잘 모은 것같습니다.]

그렇게 말하며 희미하게 웃는 김래빈의 얼굴은 의외로 성격 나빠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새로운 편곡은… 어처구니없게도, 김래빈과 박문대가 잡담 중에 갑자기 자기들끼리 신나서 후다닥 만든 것처럼 나왔다.

[류청우 : 둘이서 쉬는 시간에 무슨 이야기를 나누는 건 봤어요.]

[류청우 : 그런데 돌아가 보니까…래빈이는 이미 건반에 가 있고, 문대는 우리 (삐-)할 거라면서 신나있던데요?]

류청우의 인터뷰가 내레이션으로 깔리며 배속 처리된 편곡 의논 과정은 정말 그렇게 보여서 더 어이가없었다.

[류청우 : 천재들은 원래 그런가? 하하.]

이후, 마치 류청우가 비사교적인 두 천재를 귀여워하며 팀이 잘 융합된 것처럼 짧은 컷들이 이어지며 무대준비 분량은 끝났다.

이걸 이렇게 풀 줄은 진짜 상상도 못 했다.

어쨌든 악편은 아니었으니, 이 정도로 먹힌 것으로 만족해야겠지.

게다가 무대는 원래도 개중 제일 잘했다고 생각했었는데, 제작진에서 대놓고 신경 써서 편집해 준 덕에 아주 만족스러웠다.

엔딩도 괜찮았다.

[3위?]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상황]

이 팀의 3위를 중간광고까지 넣어가며, 굉장히 의아하고 충격적인 것처럼 조명해 줬기 때문이다.

뽑을 건 다 뽑았다고 볼 수 있다.

깔끔한 이득이었다.

"괜찮네."

나는 곧바로 이부자리를 정리했다.

긴장이 풀리니 피로가 몰려왔다.

'인터넷 모니터링은 내일 해도 되겠지.'

이때 곧바로 반응을 살펴보지 않은 탓에, 7화에서 내 분량이 가져온 여파가 예상보다 훨씬 컸다는 것을 알아차린 것은 다음 날 점심 즈음이었다.

-박문대 품기로 했음. 개빻은 1차팀전 놈들하고 비교하니 선녀였다

-문대 다시 보니 얼굴도 괜찮네 래빈이랑 합 괜찮은 듯 계속 같이 팀 해라

-토끼와 댕댕이는 환상의 조합인데 중세 토끼와 시고르자브종이기까지 하니 금상첨화야ㅠㅠ

-오이오이, 이 조합 떡상할 날이올 줄 알았다구? (으쓱)

-의외다 싸울 줄 알았는데 친해졌네:;

"…오."

놀랍게도 7화가 방영되자마자, 김래빈의 팬들 사이에서 박문대의 여론이 급격히 돌아섰다.

다른 참가자를 비방하지 않던 정상적인 팬 계정이 대부분이었으나, 일부는 어제까지만 해도 '박문대'를 멸칭으로 부르며 낄낄거리던 계정도 있었다.

정말 태세전환이 대단했다.

박문대의 팬 계정들은 마이너스 투표 걱정을 덜어 안심하는 것 같았지만, 화가 난 사람들도 몇 분 보였다.

-그렇게 욕할 때는 언제고 입 싹닦고 저러는 걸 보면 진짜… 할 말을 잃게 만든다. 그 와중에 안도한 내가 싫어지기도 하고ㅠㅠ

-둘 다 데뷔하면 저런 애들이랑 같이 덕질할 걸 생각하니 한숨부터나옴… 문1대만 보고 가야지 뭐…

-문대가 멋진 태도를 보여주고 멋진 아이디어를 내고 멋진 무대까지 했는데, 왜 내가 다른 걸 신경 써야하냐구요ㅋㅋ

'너무 스트레스받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돈 쓰면 재밌어야 하는데, 이분들은 그러지 못한 것 같아서 마음이 썩 좋지 않았다.

이 프로로 데뷔를 하게 된다면 같은 팀이 된다고 하더라도, 현재 오디션 중인 참가자들은 다 경쟁 관계니 어쩔 수 없는 부분일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대부분은 무대가 잘 뽑힌것을 즐거워하는 분위기였다.

본방이 끝난 직후 자정부터 오늘 아침, 점심까지 내내 7화가 하나 걸러 하나꼴로 방송 스케줄에 편성되어 있는 덕분에 유입 효과도 보고 있었다.

무대 영상은 위튜브 실시간 인기순위에도 곧바로 진입했다.

-이런 미친 컨셉을 이렇게 잘 소화하다니 이런 미친 놈들;;;

-내 학점을 조지러 온 히어로들이지만 사랑합니다

-야구장 응원가를 히어로물 테마곡처럼 바꾸다니. 무대는 물론이요 그 발상과 편곡 능력까지 모두 비상하기 짝이 없다.

-아아아 애들 자기 색깔도 맞췄나봐요 깔별로 아이템 하나씩 끼고 있네! 이런 디테일에 덕후 심장이 뛴다ㅠㅠ

-이 무대가 3위? 견제표 부끄럽지않나요?ㅋㅋ

-정리글입니다. 0:06 차유진(레드), 0:16 민정훈(그린), 0:24 류청우(블루) … [더보기]

새벽에 공개된 개인 직캠들도 무섭게 조회수가 불어나고 있었다.

1차 팀전보다 판이 커진 것도 있지만, 그걸 감안하더라도 '박문대' 직캠의 조회수는 메인보컬치고 엄청나게 빠르게 늘어나고 있었다.

댓글도 1차보다 호의적이고, '싫어요' 비율이 낮아졌다.

-천재인 건 부정 못함

-문대야 금발 해줘서 고마워 덕분에 누나가 힘내서 사직서를 참았다 우리 문대 주식 많이 살게ㅠㅠ 꼭 데뷔해서 은발도 하고 핑발도 하자ㅠㅠ

-호러에 이어서 히어로 컨셉까지 떠올리다니, 이 친구 대단하네요! 많이 응원합니다. 데뷔하시길! ㅎㅎ

-왜 볼 때마다 더 잘생기고 더 잘하지? 이러다가 데뷔하면 승천하는거 아니야?ㅠㅠ

쑥스러웠지만 좀 뿌듯했다.

어쩔 수 없이 하는 일이긴 하지만, 성취감이 있다는 건 부정할 수 없을것 같다.

그렇게 생각하는데, 마지막 베스트 댓글이 눈에 들어왔다.

-나이 어리고 외모 귀여운데 춤도 괜찮은 메보는 좌완 파이어볼러 같은 거임. 지옥에서라도 잡아 와야하는데 자기 발로 돌판에 걸어 들어와줘서 너무 고맙다 문대야 이제 못나감^^

"…."

솔직히 조금 무서웠다.

'설마 데뷔하면 '은퇴 못 함' 같은 상태이상이 걸리는 건 아니겠지.'

나는 하등 이득도 없는 불길한 망상을 얼른 털어내고, 마음을 정리했다.

어쨌든 이 정도면, 다음 순위 발표식 때도 걱정할 건 없어 보였다.

'이제 남은 건 두 단계인가.'

앞으로 두 번의 팀전을 더 거치면 이 프로그램이 끝나는 것이다.

벌써 중후반에 접어들기 시작했다는 생각에 기분이 묘해졌다.

이 쓰레기 같은 상태이상을 떼어낼 날이 가까워지면 시원할 줄 알았는데, 꼭 그런 것만은 아니었다.

아마 내 예상보다도 훨씬 성적이 좋아서일 것이다.

지난 몇 년간 공시생으로 방구석에 처박혀 있으면서 아무 성취감도 느끼지 못했기 때문에, 이 성공의 맛이 상당히 자극적이었다.

'물론 기 빨려서 피곤한 게 더 크긴 하지만.'

돌연사를 피하고… 한 몇 년 뒤에돌아보면, 의미 있는 경험이었다고 생각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물론 그건 뒤지지 않았을 때의 이야기니, 일단 생존부터 생각하자.

지이이잉.

다짐하는 순간, 메시지가 들어왔다.

[큰세진 : 문대문대 잘 지냄? 촬영날 같이 가쉴? 아현이 포함ㅎㅎ]

그래서 촬영 날 만난 놈들의 얼굴이 완전 죽상이었다.

아니 트롤짓을 일삼던 최원길도 보내 버렸는데 왜 죽상이냐. 누가 꼴받게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