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3화]

"…새 팀원을 영입하겠습니다."

"아! 박문대 참가자의 선택이 나왔습니다!"

MC의 외침에 전광판에 상금 항목이 사라지고 새로운 멤버 영입!글자가 꽉 차게 확대되었다.

방청객들이 환호하는 모습, 심사위원들이 손바닥을 치며 즐거워하는 모습이 다른 전광판에 흘러갔다.

이 악물 뻔했다.

'삼천구백만 원이…'

허공에 날아갔네.

그래도 길게 보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참가자가 하나 더 붙는다는 건 그룹을 좋아하는 팬도 늘어난다는 뜻이었다. 그리고 이런 건 보통 덧셈이 아니라 곱셈으로 불어난다. 벌 수 있는 돈의 규모가 달라진다는 것이다.

장기적으로 봤을 때 5000보다 더 벌 수 있는 투자였다.

문제는 이다음이었다.

"그렇다면 박문대 참가자가 선택한 마지막 멤버는 과연 누구입니까?"

남은 참가자들이 다시 긴장하는 것이 전광판에 비쳤다.

"제가 선택한 참가자는…."

누굴 골라도 아깝게 떨어진 참가자의 팬들에게 반감을 사기 딱 좋은 시간이다.

그러니 회피한다.

"주주님들께서 선택하신 7위 참가자입니다."

"아!"

사람들의 웅성거림이 커졌다. 대부분 납득하거나 안도하는 것 같았다.

'… 제작진도 즐거워하는군.'

저건 좀 열 받네.

"주주님들께 선택을 맡긴 박문대 참가자!"

MC는 프롬프터를 힐끗거리며 열심히 진행을 끌었고, 곧 전광판에 7위 후보가 떴다.

그리고 붙은 놈은…

"축하합니다! 이세진 참가자!"

사레들릴 뻔했다.

'무슨 수로 떡 상했냐.'

아마 아역배우 활동 때문에 대중 인지도가 높아서 마지막 화만 슬쩍 문자 투표한 사람들 덕을 본 것 같았다.

'… 별수 없지.'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나는 비틀거리며 단상으로 올라오는 이세진에게 자리를 비켜줬다.

"…감사합니다."

이세진은 간신히 소감을 짜내듯이 이어서 몇 마디하고는 고개를 푹 숙였다. 예상을 못 해서 혼이 나간 것이라고 팬들이 커버쳐 줄 정도는 됐다.

MC 이세진을 합격 자석에 합류하도록 안내했다. 이세진은 나를 스쳐 지나가며 작게 중얼거렸다.

"…고마워."

나는 그냥 고개를 끄덕였다. 되고는 싶었나 보군.

'나도 들어가고 싶다.'

슬슬 다리에 경련이 날 것 같았다.

대체 언제까지 세워둘 생각이지?

그러나 MC는 여전히 나를 옆에 세워 둔 채로 진행을 이어갔다.

"이제 남은 건 하나! 재상장! 아이돌 주식회사 로 데뷔할 참가자들의 그룹명입니다!"

인터넷으로 주주들의 의견을 수렴했다는 뻔한 설명이 이어졌다.

그리고 전광판에 휘황찬란한 로고가 떴다.

대문자 'T'와 위가 맞닿지 않은 삼각형이 교묘하게 합쳐지며, 화려한 반짝이 이펙트가 양옆과 상단에서 튀다가 작은 다이아몬드 마크로 눌러앉았다.

-검증된 당신의 투자.

-당신의 아이돌, 당신의 별

-TEST + STAR

-TeSTAR

"주주 여러분께서 선정해 주신 그룹명은… 테스타(TeSTAR)입니다!"

"…."

이름이 바뀌었잖아.

내가 알기론, 원래 이 프로그램으로 데뷔할 남자 아이돌의 이름은 'STier', 스티어였다.

보니까 홈페이지에 'Star + Tier'로떡하니 설명까지 붙은 채로 후보에 떠 있어서 이번에도 그 게 될 줄 알았는데.

멤버가 나를 포함해 꽤 변했기 때문인가, 다른 이름이 나왔다.

아무래도 지난번에 간발의 차로 이름이 정해졌던 모양이었다.

'… 스티어가 낫지 않았나?'

대놓고 스타가 이름에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그룹명을 가지게 될 줄은 몰랐다.

좀 얼떨떨했지만… 뭐, 그룹명이야 어지간히 이상하지 않으면 됐다.

"TeSTAR의 일곱 멤버들에게는 그룹 로고가 새겨진 트로피가 수여됩니다!"

그리고 영린이 올라와서 내게 트로피를 건넸다. 하늘로 치솟는 그래프를 형상화한 트로피는 단 하나였다.

'이걸 시키려고 세워뒀었군.'

저걸 운반해서 애들한테 전해주면 끝인가 보다.

"축하합니다."

"감사합니다."

나는 영린과 가볍게 악수한 뒤, 트로피를 방석 채로 건네받았다.

영린은 잔잔한 눈으로 미소 지은채 나를 마주 보았다.

"앞으로 좋은 활동 하길 바라요."

"예. 감사합니다."

나는 연거푸 감사를 중얼거렸다.

그리고 그대로 합격자들이 서 있는 곳을 향해 빠르게 걸어갔다.

분위기에 취했는지 합격자들은 이미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상태였다.

"와!"

"트로피도 줘?!"

나는 미련 없이 제일 앞에 보이는 놈에게 트로피를 넘겼다.

그러자 이번에는 트로피를 둘러싸고 다 같이 어깨동무를 하며 호들갑을 떨기 시작했다.

'어깨가 아파.'

차유진과 큰세진에게 번갈아 얻어맞은 등 주변이 아렸다.

어깨부터 발까지 안 저린 곳이 없는데, 아드레날린 덕에 뇌만 쌩쌩했다.

좀 떨어진 곳에서 MC의 목소리가 들렸다.

"TeSTAR 여러분의 데뷔를 축하합니다!"

무대 효과용 폭죽이 화려하게 터졌다. 나는 트로피와 합격자들 틈에 낀 채로 사람들의 환성을 들었다.

그리고 그 순간.

상태창 팝업이 떴다.

[성공적 데뷔!]

당신은 유명 오디션 프로그램을 통해 데뷔에 성공했습니다!

! 제한시간 : 충족 (대성공)! 상태 이상 : '데뷔가 아니면 죽음을' 제거!

: 진실 확인 👈 Click!]

'…진짜?'

상태창을 켰다. 상태 이상이 없어져 있었다. 끝났다.

어쩐지 실감이 안 났다.

상태창의 목적을 모르겠으니, 어떻게든 억지를 써서 상태 이상이 연장될지도 모른다는 불길한 예측에 시달려서 그런가.

'이렇게 깔끔하게 사라질 줄이야.'

나는 멍하니 상태창을 껐다. 그러자 남은 팝업에 최하단 글 이 눈에 들어왔다.

본래는 보상이 적혀 있어야 하는 위치.

'… 잠깐.'

이게 뭐지.

[진실 확인 👈 Click!]

진실?

나는 반사적으로 그 문구를 클릭했다.

"문대야?"

순간, 시야가 어그러졌다.

그리고 암전.

비쩍 마른 고등학생이 낡은 스마트폰을 들고 매트리스 위에 누워 있었다.

몸을 움직일 때마다 매트리스에서 삐걱거리는 소리가 울렸다.

스마트폰의 깨진 액정에서는 위튜브 화면이 재생되고 있었다. 공용 와이파이를 간신히 연결해 쓰는 탓에 화질은 좋지 않았다.

하지만 카메라를 잡은 이가 솜씨 좋게 찍은 덕에 화면의 가수가 발산하는 매력은 여전히 눈을 끌었다.

'재밌었어.'

고등학생, 박문대는 다 돌아간 동영상 화면을 아쉽게 바라보았다.

지금 이 계정에 올라온 최신 직캠들은 방금 본 '2X0412 리로던 한강수 축제'로 끝이었다.

이 계정, 'Gun1234'는 가수, 아이돌들의 직캠을 주로 업로드하는 계정이었다.

특히 인지도가 낮은 사람들을 위주로 올렸는데, 그것마저도 멋있어 보이기도 했다.

'알아봐 주는 것 같잖아.'

별 볼 일 없어 보이는 사람을 응원해 주는 것 같아서 어쩐지 기분이 좋았다.

'자주 올려줬으면 좋겠다.'

돈이 들지 않으면서 행복하게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것은 이제 많이 남지 않았다.

광고만 보면 시청할 수 있는 위튜브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자꾸 끊기는 와이파이에서 저화질로 보는데도 가슴이 두근거리며 볼 수 있는 영상은 거의 없었다.

듣기로는 직캠의 광고 수익은 다 본 가수에게 돌아가기 때문에 수익이 거의 없다는데, 그래도 꾸준히 올려주는 것이 고마웠다.

고민하던 박문대는 스크롤을 내려서 댓글을 하나 작성했다.

-큰달 : GUN1234님, 언제나 직캠 즐겁게 보고 있습니다. 올려주셔서 감사해요.

이 계정은 지금까지 시청자에게 특별히 피드백을 준 적이 없다는 건 알았다.

하다못해 영린의 직캠이 대박이 났을 때도 댓글 하나 단 적 없었다.

하지만 보고 있을지도 모르니까, 박문대는 맞춤법을 틀리지 않았는지 확인하고 작성 버튼을 눌렀다.

-이분 매번 출석하시네ㅋㅋ

-찐 팬인 듯

대댓글이 몇 개 달려서 약간 부끄러웠다.

답글을 달까 하다가, 갑작스럽게 내키지 않아서 그만뒀다.

'달아도 할 말이 있는 것도 아니고…'

자신에 대해 말하려고 하면 말문이 막혔다.

집, 아니, 집이라고 부르기 민망 한방 안이 적막했다.

일상이랄 게 없었다.

뭐든지 의욕적으로 해본 게 언제였는지 떠올려보면, 모든 게 정상이었던 때가 떠올랐다.

부모님이 계시던 때.

바로 어제였던 것 같은데, 사실 몇 년이나 지났다.

그리고 자신은 몇 년째 어딘가에 처박혀 있는 것 같았다. 아니면 사실 꿈을 꾸는 중이거나.

그래서 저 계정이 올려주는 영상에 집중하게 되는 걸지도 모르겠다고, 소년은 생각했다.

상황이 좋아질 기미가 없는데도 열정적으로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는 사람들을 보고 있자면 위안이라고 할까, 대리만족이 됐다.

'…자자.'

내일은 아마도 월요일일 것이다.

박문대는 꿈적거리며 매트리스에서 그대로 눈을 감았다.

그리고 시간이 또 흘렀다. 흐르고 흐르는 주변과 달리 어쩐지 박문대 본인은 계속 변하지 않았다.

학교에서 끔찍한 일이 벌어졌다. 그만두면 되니까 그렇게 했다. 그만둬도 달라지는 건 없었다.

음, 그럼 사는 것도 그만둬도 그만 아닌가?

'그러게.'

하지만 딱히 죽고 싶지도 않았다.

박문대는 아르바이트를 구했지만, 곧 일감이 끊겼다.

그리고 'giml234'의 동영상 업로드도 끊겼다.

'왜…?'

박문대는 고민하다가, 결국 계정 정보로 쪽지를 보냈다. 아르바이트를 새로 구하는 것에 실패 한 날이었다. 당연히 답장은 오지 않았다.

그리고 얼마 뒤, 계정의 동영상이 모두 사라졌다.

텅 빈 페이지엔 짧은 글만 남아있었다.

[게임하느라 접습니다. ㅅㄱ]

게임.

박문대는 모바일 게임을 하나 깔아보았다. 데스크톱이나 게임기를 살 돈은 없었다.

그러나 낡은 스마트폰은 모바일 게임을 제대로 돌리지 못하고, 끔찍한 발열 뒤에 고장이 났다.

박문대는 어쩐지, 굉장히 지친 것처럼 느껴졌다.

아무것도 한 게 없으니 지칠 것도 없는데 말이다.

'지친다.'

사는 게 지쳤다.

박문대는 고장 난 스마트폰을 해지했다. 그리고 낡은 단칸방도 계약을 연장하지 않았다.

오랜만에 제대로 된 밥을 한 끼 먹었다. 그러니 수중에 남은 돈이 딱 맞았다.

모텔 하나 잡고, 수면제를 사면 끝이라는 뜻이었다.

'모텔에서는 죽는 사람이 많다고 하니까.'

날이 너무 추워서 차마 물에 빠지거나 산을 오를 수가 없었다. 중간에 포기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자신의 방에서 죽으면 한 달 이상 방치되어 썩을 것 같았다.

'죄송합니다.'

박문대는 방을 잡으며, 퉁명스러운 주인 아저씨에게 속으로 연거푸 사과했다.

그리고 방으로 들어간 뒤, 침대에 누워서 수면제를 삼켰다.

죽음처럼 잠이 찾아왔다.

잠시 뒤.

지저분한 모텔 침대 위에서 숨을 들이켜면서 눈을 뜬 것은….

나였다.

"허억."

나는 숨을 뱉었다.

"괘, 괜찮아?"

옆에서 누군가 등을 두드렸다. 고개를 돌리니 선아현의 걱정스러운 얼굴이 보였다.

"…잠깐, 지쳐서."

나는 간신히 얼버무리고 몸을 폈다.

시간은 거의 흐르지 않은 것 같았다. 덕분에 나는 잠시 비틀거린 것처럼 보인 모양이다.

합격자들이 에워싸고 있는 탓에 다른 사람들은 아예 눈치채지도 못했는지, 분위기는 여전했다.

나는 식은땀을 훔쳤다. 머릿속이 난잡했다.

원래 박문대가 좋아하던 동영상 계정 주인, 'giml234'.

'나잖아.'

내가 공시 생활 시작하면서 삭제한 계정이었다.

[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 064화]

박문대가 보던 동영상들이 내가 찍은 것도 맞았고, 그때 위 튜브 직캠 계정을 삭제하며 붙인 문구까지 똑같았다.

-게임하느라 접습니다.ㅅㄱ

굳이 공시를 준비한다 어쩐다, 주절주절 개인 정보를 써놓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때 섬광 같은 깨달음이 머리를 스쳤다.

'설마 그래서 상태창이 떴나…!'

게임으로 핑계를 대서 게임 시스템으로 업보가 돌아왔던 건가!

'…돌연사 당할만큼 잘못한 것 같지는 않은데.'

막말로 이 정도로 내가 찍은 직캠에 의미 부여하는 놈이 있을 거라 생각하는 게 오히려 이상한 것 아닌가.

그래도…영 뒷맛이 안 좋긴 했다.

아까 본 괴상한 회상이 정말 '진실'이라면, 정말 숨이 잠깐 끊어졌다가 내가 깨어났다.

그러니까 예전에 이 몸에 살던 박문대는 정말 죽었다는 뜻이다.

그놈도 저렇게 죽을 만큼 뭘 잘못한 놈은 아니지 않은가.

'누가 좀 도와줬으면 좋았을 테지만… 힘들지.'

의외로 사람들은 남한테 관심이 없다. 물론 욕할 때 빼고.

어쨌든 내가 이 몸에 들어온 과정은… 솔직히 현실적으로 불가능하지만, 어떤 당위성으로 이루어진 건진 알겠다.

'그나마 박문대가 감정적 연대감을 가진 게 나였군.'

그런데 계정 삭제하고 날랐으니 돌연사 같은 상태 이상이 포함된 거겠지.

이 상태창을 만든 놈이 뭐 박문대가 안타까워서 해준 것이든, 사후 메커니즘이든 상관없었다.

'이걸로 이놈도 만족했겠지.'

덕분에 네가 좋아하던 직캠 찍던 놈이 네 몸으로 직접 아이돌이 돼서 직캠에 실컷 찍히게 생겼다.

나는 안쓰러움과 시원함을 동시에 느꼈다. 반이라도 상황이 명확해지니 살 것 같았다.

"주주 여러분께서 투자해 주신, TeSTAR 7명의 멤버입니다! 앞으로도 많은 응원과 투자를 부 탁드립니다!"

저 멀리서 외치는 MC의 말에, 위에서 꽃가루가 터져 날려왔다.

"파이팅!"

"고생 많았다!"

"잘해보자∼"

합격자들이 웃으며 악수와 포옹을 주고받는 가운데, 방송 카메라에 불이 꺼졌다.

엔딩이었다.

다리가 풀렸는지 주저앉는 사람이 속출했다.

탈락자들에게 다가가 축하와 위로를 주고받는 합격자, 우는 참가자들까지 다양한 군상이 무대 위에 나타났다.

그리고 끝없는 환성과 슬로건의 물결.

나는 숨을 들이켰다.

'이제 활동만 남은…'

띠링.

[돌발!]

상태 이상 : '1위가 아니면 죽음을' 발생!

"…."

['1위가 아니면 죽음을']

: 정해진 기간 내로 공중파 음악방송에서 주간 1위 하지 못할 시, 사망남은 기간: D-365

개새끼야.

이 시스템 만든 새끼를 만나면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 반드시…!

박문대가 인생 최고로 열 받은 그 시점.

인터넷 온갖 커뮤니티와 SNS에서는 아주사 의 데뷔 멤버 확정 글이 올라왔다.

[아주사 데뷔 멤 확정(7명)]: 순위 순서대로 박문대, 차유진, 선아현, 김래빈, 류청우, 이세진(큰),이세진(배우)

데뷔 그룹명 TeSTAR(테스타)

아주사 는 지지부진한 3시간 전개에도 최종화에서 또 시청률을 갱신하며 화제성이 폭주했었다.

덕분에 방송을 시청한 사람과 미처 시청하지 못하거나 안 한 사람 모두 신나게 댓글을 달아댔다.

당연히 박문대의 급상승 및 1위에 대한 이야기도 제법 많았다.

-박문대가 이김?

-헐

-와 막판에 대박ㅠㅠ 내가 눈물 난다

-기세 보니 할 만했음 ㅊㅋㅊㅋ

-축하해요 문대 잘 됐으면 좋겠어ㅠㅠ

-캬 역시 감성팔이가 통하네ㅋ

└그러게 주민등록 초본 사실 박문대 본인이 유출한 거 아님? ㅋㅋㅋ

└? 돌았나;;

대부분은 축하해 주는 분위기였으나, '가정사 팔아서 1위 했다'라며 빈정대는 사람이 간헐적으로 튀어나왔다. 심지어는 사태를 분석했다는 글까지 슬금슬금 올라왔다.

[박문대 1위 이유]

: 가정사 폭탄으로 팬들 코어화 十머글픽 응집.

거의 우주가 도와준 수준임.

차유진은 무대로 팬 쓸어 담는 타입. 머글이 좋아하는 갬성 스토리가 없는 놈이라 머글이 박문대보다 적게 붙은 듯.

그리고 초창기부터 최상위권 알박이로 인한 '차유진이야 데뷔지ㅋ'- 이런 방심이 불러온 사태라고 본다.

물론 승리의 감격에 잠겨 있던 팬들이 정신을 차리자마자 칼처럼 분탕 글을 잘라내기 시작했다.

-둘 다 데뷔했고 표수 차이도 별로 안 나는데 올려치기 후려치기 골고루 진짜 잘하네

-박문대 오디션용 프레이밍, 차유진 팬들 방심 프레이밍 지겹고요∼팬들은 둘 다 붙어서 그냥 행복하니 말 얹지 말아 주세요∼ 우리 애들 무대 합도 좋고 친하니까ㅋㅋ

팬들이 싸우는 사이, 특별히 목매는 참가자 없이 그냥 방송을 즐긴 라이트 시청자들은 마지막 화의 감상을 올리며 낄낄거렸다.

-어떻게든 인원을 늘려보겠다는 제작진의 눈물겨운 노력 잘 봤음

└ㅋㅋㅋㅋㅋ평균 내놓고 1위 혜택으로 한 명 추가 실화냐 앞뒤가 안맞잖아ㅋㅋㅋ

└것도 그렇고 상금은 그냥 주지ㅠㅠ 문대 사정 안 좋아 보이던데 신경 쓰여…

└딱 봐도 앞으로 개 많이 벌 거니까 괜찮음ㅋㅋㅋ

이쪽에서는 박문대의 선택에 대한 말이 자주 나왔다.

-박문대 머리 좋더라 7위 딱 찍는데 나도 거실에서 박수 침ㅋㅋ

-쓸데없이 다른 참가자들한테 주절주절하는 거 없이 깔끔하게 시청자한테 판단 맡겨서 오히려 멋있었다!

└맞아! '이 짜식 우리 안목을 믿는 군(코 쓱)' 이런 느낌ㅋㅋㅋ

└솔직히 그게 상식적인 선택이긴 하는데, 거기서 자기 친한 참가자 안 부르기 힘들지.

└그러게 나 희승이 부르지 않을까 생각했음ㅋㅋㅋㅋ문대 자기가 불려서 나갈 때도 희승이 좀 챙겨주던데

└박문대가 공사를 구분할 줄 아네

대부분은 호의적이었다. 박문대의 순간 판단력이 승리하는 순간이었다.

그 와중에 탈락자의 악성 팬과 합격자의 안티들은 어떻게든 데뷔 멤버끼리 이간질하기 위해 은근한 글을 흘려댔다.

-박문대 이세진 붙고 잠깐 표정 관리 안 되는 것 같던데ㅋㅋ 사이 별로인 듯

└사이 문제가 아니라 이세진 실력이나 태도 때문 아님?

└이 거지. 박문대도 차라리 열애설 터진 놈이 낫다고 생각했을 듯. 아니면 권희승 고를 걸 그랬다고 후회했거나ㅋㅋ

└추측성 발언 좀 그만해 문대 표정 그냥 그대로더만 무슨…

└우리 문대 느그 까질에 이용하지 마라

팬들이 막아도 한계가 있었고, 분위기를 망치는 글은 계속해서 올라왔다.

특히 마지막에 1위 혜택으로 간신히 붙은 이세진에 대한 공격이 거셌다.

-까놓고 이세진 지금 데뷔조 라인업에 혼자 옥의 티잖아ㅋㅋ 다들 무대로 뜬 애들 사이에 혼자 사이다밈으로 떴지

└솔직히 이세진은ㅋㅋ 쿨찐들이 자아 의탁해서 빠는 거 아냐?

└맞아 그냥 싹수없는 거였는데 팬들이 짤로 영업하면서 초반 이미지 이 악물고 잘 민 덕이죠

└아이고 미친놈들

수많은 신고와 차단 덕에, 며칠 정도 지난 후에는 수면 위에서 합격자에게 욕을 퍼붓는 일은 많이 줄어들었다.

대신 데뷔 멤버들의 활동을 기다리는 팬들의 설렘이 이곳저곳 넘쳐흘렀다.

[테스타 데뷔곡 초읽기, 국민 보이그룹 되나?(기사)]

: 기사 떠서 가져왔어요! 한 달 안으로 활동 예정이라고 합니다(링크)

-헉 너무 좋다ㅠㅠ 애들 빨리 보고 싶어요!

-가서 좋은 댓글 달고 옵시다.

-T1그룹 산하 소속사로 가는 거 맞죠? 대기업의 자본 맛 기대합니다!

└진짜! 뮤직비디오랑 곡 모두 부내 나게 해 줬으면…

└이번에 프로그램 시청률, 화제성 모두 피크 찍어서 T1도 많이 기대 중이라네요. 새로 전담 소속사 만든다고∼

└와∼ 투자 빵빵하게 들어가서 애들하고 싶은 거 다 했으면!

대흥행한 오디션 프로그램을 통해 새롭게 아이돌 팬덤에 유입된 사람들은 상식적인 희망 예측을 하며 데뷔 앨범을 기다렸다.

그리고 이 판이 늘 그렇듯이, 상식은 희망이 아니라 꿈에서나 볼 법한 일이었다.

덕분에 아이돌 덕질 경험이 깊은 사람들 사이에서는 긴장감이 오갔다.

-데뷔곡 한 달 만에 내겠다는데 실화인가…?

└이미 준비한 띵곡 있다고 생각하자 그게 정신 건강에 좋다

-ㅋㅋㅋㅋ아직 소속사도 안 나왔다며. 얘네 너무 잘 돼서 내부에서 기싸움 중인 듯

-T1에서 테스타 용으로 신 소속사 런칭한다던데 미친놈들 아니냐? 우리 애들 맨땅에 헤딩하게 생겼네…

└T1덩치만 크지 가뜩이나 아이돌 소속사 경력도 없는 놈들ㅋㅋㅋ

└하… 그룹명 테스타로 지어 놓고 진짜 테스터로 쓰려고 하네;;

-누구 경력 주려고 경영진 끼워 넣기하는 중인 것 같기도 함… 아 개 싸하네

전체적으로 노하우 없이 덩치만 큰 대기업이 돈과 경력에 미쳐서 헛짓할까 봐 경계하는 분위기가 다분했다.

-뭐 다른 소식 없냐… 애들 단체사진이라도 좀 올려줘…

-열흘째 다른 소식이 없네. 애들 얼굴이나 좀 보자.

-아주사 비하인드 말고 테스타 결성 이후가 보고 싶다고ㅋㅋ 아주사지긋지긋함

다행히 사람들이 지칠 때쯤, 반짝 새로운 콘텐츠가 떴다.

[테스타(TeSTAR)의 계정입니다!]

: 안녕하세요, 여러분! 저희는 이번에 새롭게 데뷔하는 신인 그룹 테스타입니다! 잘 부탁드려요_ (사진)

테스타의 공식 SNS 계정이 개설된 것이다.

올라온 첫 글에 첨부된 사진은 거실 같은 배경에 단체로 앉아서 웃고 있는 테스타의 모습이었다.

복장이 자유롭고 자세가 편한 것을 보아서는 새 숙소가 분명했다.

-!

-애들 숙소 입성했나 봐

-소속사 잡힌 듯

-아 벌써 데뷔 앨범 성공했다 저 얼굴 합으로 성공 못 하면 비리 있는 거임ㅠㅠ

팬들은 겨우 SNS 글 하나에도 크게 안도했다.

순식간에 테스타의 SNS 팔로워와 공유가 분마다 몇천 단위로 뛰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나노 단위로 사진을 즐겼다.

-문대 노랑 후드 너무 귀엽다 어디서 그런 귀여운 걸 찾아왔어ㅠㅠ

-문댕 맨날 천 쪼가리 티만 입어서 걱정했는데 새 옷을 장만한 것 같아서 이 할미는 너무 안심이다…ㅠㅠ

-래빈이 귀 뚫었다.

└미미미친 헐 미친 개 잘 어울려

└제발 활동 때 겁나 화려한 귀걸이 해주세요 제발

-유진이 소파에 누웠어 벌써 자기 집임ㅋㅋㅋㅋ

└ㅋㅋㅋ그 웃으면서 확인하다가 다리가 너무 길어서 기겁함…

오디션으로 결성된 그룹이기에, 아직은 자신들이 좋아하는 멤버만을 언급하는 사람들이 훨씬 많았다.

함께 팀전을 많이 했던 멤버들은 그나마 호감을 나눠서 받기도 했다.

하지만 그 결에 따라서 애초에 좋아하는 묶음이 살짝 나뉘기도 했다.

-얘들아 앞으로도 업로드 많이 해줘! ㅠㅠ

그렇게 설렘과 기대가 가득하지만 동시에 몇 가지 불안 요소를 안은 채로, 테스타는 본격적인 활동을 개시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당사자들은 이미 이 불안요소들을 마주하고 있는 상태였다.

"후"

어떻게 숙소 입성은 했군.

현관에 들어가며 한숨을 참았다.

일주일간의 지지부진한 회사들의 알력싸움에 그룹 숙소 계약도 어영부영했던 걸 생각하면 한숨부터 나왔다.

물론 티를 내면 안 된다.

여기서부터 침실까지 카메라 밭이었다.

"야! 너무 좋아!"

"멋있어요!"

"와…."

우리 리얼리티 계약부터 했거든.

[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 065화]

서바이벌로 데뷔하는 그룹이 리얼리티 프로그램을 찍는 것이야 흔한 일이었다.

오디션 프로그램으로 얻은 캐릭터와 화제성을 어느 정도 가져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이렇게 미팅 한 번 만에 바로 촬영까지 들어갈 줄은 몰랐다.'

심지어 미팅 때도 별 이야기 못 들었다.

멤버끼리 뭘 하고 싶은지 인터뷰나 따간 정도였지.

'그나마 숙소가 좋아서 다행인가.'

촬영을 의식한 건지 생각보다 숙소가 휘황찬란했다. 이렇게 보안 좋은 큰 평수의 신축 아파트에 묵는 건 처음이다.

물론, 모서리마다 카메라가 달려있긴 했지만.

"아, 카메라!"

"안녕하십니까…?"

현관에서 신발을 벗고 거실로 달려가던 놈들이 카메라를 보고 알은척했다. 사전에 당부받았던 행동이다.

'너무 카메라 의식 안 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도 부자연스럽다고 했던가.'

애초에 이 정도로 많으면 의식하지 않는 게 더 어려울 것 같다.

심지어 거실에 진입하니 무인 카메라 사각지대에 카메라맨과 제작진도 몇 사람 대기 중이었다.

듣기로는 리얼리티 초반 진행 컷을 위해 오늘만 잠깐 있다가, 무인 카메라만 두고 사람들은 철수할 거라고 한다.

"우선… 다들 합격을 축하합니다∼"

"와∼!"

"우리 인증샷!"

거실에 둘러앉은 합격자들은 박수를 치며 다 같이 사진을 한번 찍은 후, 리얼리티 진행을 시작했다.

"이야, 이렇게 있으니까 새로운 팀전이 시작된 것 같네요."

"그 팀전이 5년이라는 것만 빼면 맞는 말씀 같습니다."

"오∼래빈이 잘 받는데?"

다행히 다들 자연스러워 보였다.

' 아주사 에서 맨날 카메라와 함께 생활한 덕을 이렇게 보는군.'

게다가 합격의 기쁨에 분위기가 화기애애했다.

오디션 촬영 당시보다 세 배는 덜 예민하고 너그러워진 놈들은 덕담과 농담을 주고받으며 헤헤 웃었다.

"다들 참 고생 많았다."

"맞아요. 이제 웬만한 건 다 즐겁게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즈, 즐겁게 지내자…!"

그리고 적당할 때, 카메라 사각지대의 제작진으로부터 불쑥 로봇 청소기가 튀어나왔다.

이번 리얼리티 프로그램 마스코트 겸 주요 PPL이었다.

"어?"

"쟤 뭐 가지고 있어!"

청소기의 헤드 부근에 반짝이 풀이 잔뜩 붙은 카드가 대롱거렸다.

손 빠른 차유진이 번쩍 청소기를 들어 올려 카드를 뽑았다.

"뭐 적혀 있나?"

"맞아요!"

차유진이 옆구리에 여전히 로봇 청소기를 낀 채로, 신나게 카드 내용을 읽었다.

"음음, '여러분은… 앞으로 카드를 통해 미션을 받습니다! 여러분이 진정한 그룹이 될 수 있도록, 미션을 클리어-하세요!'"

"앗."

"미, 미션."

살짝 분위기가 숙연해졌다. 트라우마 반응이 따로 없었다.

류청우가 해탈한 것처럼 웃었다.

"하하, 오디션도 붙었는데 미션이 끝나질 않는구나…."

나는 떨떠름하게 생각했다.

'…진정한 그룹이 되려면 소속사부터 정신 차려야 할 것 같던데.'

불과 사흘 전까지만 해도 하루에 세 번쯤 소속이 바뀐다고 통보했다 취소하는 것을 반복한 Tnet이 떠올랐다.

예감이 좋지 않았다.

'아무래도 괜한 헛바람이 든 것 같단 말이지.'

이번에 워낙 프로그램이 흥하다 보니, 아예 T1 차원에서 새로 직영 소속사를 만들어서 테스타를 굴리고 싶은 모양이었다.

하지만 기존에 Tnet 자회사와 계약된 사항이 있다 보니, 쉽사리 뺏어오기가 힘들었던 것 같다.

그래서 자기들끼리 알력 싸움하느라 정신이 없는지 도리어 그룹은 방치 상태였다.

심지어 한 달 내로 데뷔곡 낼 거라는 소식은 오늘 아침에 기사로 접했다. 근데 우린 아직 매니저도 만나지 못한 상태다.

'돌아버리겠네.'

나는 한숨을 참았다.

그때, 차유진이 손을 번쩍 들었다.

"오? 더 있어요! '오늘의 미션은… 자유시간'!"

"오오!"

순식간에 분위기가 풀렸다.

나도 '오늘 얻은 휴식 시간이 무척 즐겁습니다.' 리액션용으로 주변 사람들의 하이파이브를 받아주었다.

'생각하지 말자.'

어차피 T1의 새 소속사로 들어간 건 이제 거의 확정된 상태.

짬 없는 신인은 권한이 없다. 그냥 받아들여야 했다.

'…제발 기획 파트에 친인척 꽂아 넣기만 하지 말아라.'

제발 높으신 분들이 영업, 회계, 운영은 알아서 해 드시고 기획만 건들지 말아 줬으면 좋겠다. 부디 경력직을 써주길 바란다.

"우리 방 구경! 방 잡자!"

합격자들은 '자유시간' 카드를 든 채 일어나서 집을 투어 하기 시작 했다.

방 세 개에 화장실 세 개. 넉넉히 나눠서 쓸 수 있는 좋은 구성이었다.

그리고 각 침실 앞에 번호가 적힌 팻말이 붙어 있었다.

"테스타의 첫 번째∼ 미니게임! 주제는 방 정하기!"

"똑같아."

"저, 정말."

자원해서 아주사 MC를 성대모사한 김래빈이 웃기다기보다는 PTSD를 자극할 만큼 비슷해서 또 숙연해졌다. 그래도 게임은 문제없이 진행되었다.

그렇게 랜덤 요소가 짙은 몇 가지 보드게임을 통해 결정된 순서대로 박스에서 쪽지를 뽑았다.

"얘도 묘한 데자뷔가…."

"그러게…."

아주사 가 겹쳐질 때마다 애들이 아련 해지는군.

어쨌든, 나는 차유진에 이어 두 번째로 쪽지를 뽑았다.

1번이었다.

'3번은 피했군.'

안방인 3번 침실은 세 명이 함께 쓰는 구조였다. 세 명보다야 두 명이 훨씬 나은 건 당연했다.

'좀 조용한 놈이랑 같이 썼으면 좋겠는데.'

일단 차유진은 피했다.

'큰세진만 피하면 되겠군.'

그렇게 생각하기가 무섭게, 다음 순서였던 이세진이 1번 쪽지를 뽑았다.

"…."

마가 뜨기 직전에 큰세진과 류청우가 치고 들어왔다.

"오∼ 문대랑 세진 형님 같은 방∼"

"둘 다 딱 부러지는 타입이라 잘 지낼 것 같다."

"그렇죠?"

눈치 빠른 놈들이 있어서 다행이었다.

"잘 부탁드립니다."

나는 얼른 손을 내밀었고, 이세진은 천천히 손을 내밀어서 악수를 받았다.

'이거 촬영은 좀 걱정되는데.'

보아하니 조용할 것 같은 점은 마음에 들었다.

하지만 카메라가 2 ∼ 3주는 돌아갈 텐데 그동안 과연 이놈이 훈훈한 척이라도 해줄지가 관건 이었다.

'제작진이 알아서 하겠지.'

오디션도 아니고 리얼리티인데 어련히 편집이 잘 들어가겠거니 싶었다.

논란이 나 봤자 제작진에게 좋을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우리도 얼른 뽑자∼"

남은 방 배정은 극과 극으로 끝났다.

김래빈과 선아현이 한방.

"자, 잘 부탁해."

"저야말로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인사 배틀을 하는 안 친한 두 놈을 보자니 저쪽도 나름 불편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나보다야 사정이 훨씬 낫다.

일단 둘 다 성격이 이세진 같지는 않으니까.

"오∼ 우리 방 진짜 재밌겠는데요?"

"큰 방 좋아요!"

"그래! 잘 지내보자."

그리고 3명이 쓰는 3번 방은…큰세진, 차유진, 그리고 류청우가 함께 쓰게 되었다.

벌써 시끄러웠다. 하지만 류청우는 그럭저럭 만족하는 얼굴이었다.

'그러고 보니 류청우 위치가 좀 떴군.'

류청우는 합격자 중에 차유진을 제외하면 사적으로 만나는 사람이 없었다.

차라리 사람 많은 방에 들어가서 빨리 상황 잡는 편이 나을 것이다.

붙임성 좋고 연상한테 깍듯한 큰세진이 있으니 금상첨화겠지.

제작진의 사인에 따라, 짐을 풀고 쉬는 컷을 위해 곧바로 침실로 이동했다.

"침대 어느 쪽 쓰실래요?"

"아무거나 상관없어."

"그래요?"

그러시다면야.

나는 곧바로 왼쪽 침대로 가서 짐을 풀었다. 거실 반대편이라 벽에 울리는 소음이 적을 것 같은 위치였다.

참고로 이세진도 이 침대를 보고 있었다. 덕분에 또 말이 없어졌다.

"…."

서바이벌도 아니고 내가 뭐하러 네 비위를 눈치껏 맞춰주겠냐?

책 잡히지 않을 선에서 편한 대로할 생각이다.

이세진은 말없이 이쪽을 보다가, 반대편으로 가서 짐을 풀었다.

나는 평온한 마음으로 짐 정리를 시작했다. 사실 별로 가진 게 없어서 정리할 것도 없긴 했다만.

아, 옷은 너무 없어서 좀 샀다. 결승에서 간소한 차로 내 팀이 이겨서 번 상금이었다.

듣기로는 결승전 시간 배분 문제 때문에 프로그램 끝나고 인터넷으로 공지해서 욕 좀 먹었다는데, 뭐 나야 돈은 줬으니 됐다.

참고로 김치냉장고는…아직도 못 받았다. 사기꾼 새끼들이 따로 없었다.

'좀 열 받는데.'

한숨을 참으며 마지막 옷을 갤 때쯤, 고요하던 방이 사람 말소리로 가득 찼다.

"짠!"

"역시 1번 방이 좋군. 1등이 묵어서인가."

3번 방에서 온 놈들이었다.

류청우가 국대 출신이라 짐 푸는 요령을 알려줘서 순식간에 정리가 끝났다며, 차유진과 큰세진이 희희낙락 방을 휘젓고 다니는 것 같았다.

"저녁에 먹고 싶은 거 있어?"

류청우가 웃으며 침대에 걸터앉았다.

"갈비!"

"족발!"

차유진이야 그렇다 쳐도, 큰세진 저 놈은 일부러 분량 뽑으려고 더 저러는 것 같다.

…나는 문득, 리얼리티가 진행되는 동안은 이 소란스러움의 굴레를 벗어날 수 없을 것 같다는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저녁은 굳이 같이 요리해서 먹어야 했다. 덕분에 오랜만에 2인분 이상을 요리해 봤다.

'장 보러 가는 것보다야 요리가 낫지.'

일단 외출하면 말을 더 많이 해야 한다. 인원이 더 소수니까.

게다가 세 대의 카메라와 함께 대형 마트에 입장하는 일은 제법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다.

어쨌든, 그래도 요리는 제법 성공적이었다. 의외로 보조가 잘 들어오더라.

선아현 빼고.

"미, 미미안…."

"미안할 건 없고."

나 말고 본인 손한테는 좀 미안해도 될 것 같았다.

나는 세 번째로 자기 손을 자를뻔한 선아현을 부엌에서 쫓아냈다.

불안해하던 선아현은 대신 식탁을 세팅하는 일을 주자 그제야 안심했다.

'…자취 집에 아주머니가 오시더니.'

집안일을 곧잘 하던 놈한테 왜 일하는 사람을 붙였나 했다. 요리를 괴멸적으로 못해서였군.

어쨌든 찜닭은 잘 완성되었다. 가위바위보에서 이긴 류청우의 픽이었다.

'외식비 아까워서 생일날 해봤던 건데 이렇게 써먹어 보는군.'

나는 데이터 팔이로 돈 벌었던 첫해 생일을 떠올리며 어깨를 으쓱거렸다.

"맛있어 보입니다."

"그러게."

"…."

이세진은 김래빈의 말에 특별한 대꾸는 하지 않았지만, 의외로 요리에서는 협조적이었다.

'칼을 들어서 그런가.'

나는 아직 들고 있던 식칼을 정리했다. 그사이 찜닭은 장보기 조의 손에 들려 식탁으로 이동되었다.

"오∼ 찜닭 진짜 맛있다!"

"간장 양념이 잘 뱄고 부드럽습니다."

식사는 성공적이었다.

"나도 요리나 배워볼까."

"저 요리 잘해요."

"어? 그럼 요리하지!"

"근데 장 보는 거 더 좋아요."

차유진의 해맑은 발언으로, 리얼리티 도입부는 마무리되었다.

"수고하셨습니다∼"

촬영팀은 철수하면서 거실에 인형 뽑기 기계를 하나 설치하고 갔다.

안에 든 인형들이 전부 뒤통수 가위로 향하게 놓여 있었다.

'밤에 보면 약간 섬뜩하겠는데.'

어쨌든, 내일 거실에서 보고 놀란 다음에 저 인형 중 하나를 뽑아달라고 한다.

'콘텐츠 뽑기군.'

내일 매니저도 만나고 드디어 소속사랑 앨범 미팅도 시작한다는데 저것까지 하려면 빠른 숙면은 물 건너갔다.

오늘 많이 자두겠다는 일념으로 얼른 방으로 들어갔다.

이세진은 이미 침대에 들어가서 스마트폰을 보는 중이었다.

"안녕히 주무세요."

"…너도."

밥을 잘 먹어서 그런가. 아침보다 좀 사람이 누그러들었다.

나는 곧바로 귀마개를 장착하고 취침을 시작했다. 마지막으로 본 시야에서는 구석에 카메라가 혼자 돌아가고 있었다.

'내일 만나는 관계자들이 제발 개소리만 하지 않았으면 좋겠군.'

그리고 이 바람은 딱 반만 이루어진다.

매니저는 괜찮은 사람이었다.

"뭐 필요한 거 있으면 얘기해 주고!"

서글서글하고 임계점이 높아 보였다. 그냥 봐도 애한테 손은 안 올리는 부류인 것 같았다.

'하기야, 신인이라고 굴리기엔 이미 너무 떴긴 했지.'

"앨범 활동 본격적으로 시작하면나 말고도 매니저 한 명 더 올 거니까, 걱정하지 말고!"

"넵!"

일단 먼저 온 사람이 잡아둔 분위기로 갈 확률이 높으니, 저 건에 대해선 일단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그리고 소속사 미팅.

이게….

"곡은 우리, 능력 좋은 테스타가 맡아서 꾸려보는 겁니다?"

"…? 예?"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X 됐다.

[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 066화]

처음 소속사 관계자를 만나서 이야기할 때부터 느낌이 싸했다.

T1 다른 계열사 기획마케팅팀에서 일하다 온 사람인데 이번에 본부장으로 발령받았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이 사람이 소속사 사업본부장인데, 엔터 사업 경력이 전무했다.

'X발.'

다행히 그 밑에 콘텐츠 제작팀 사람들은 경력자로 꾸린 것 같은데, 이 새끼가 무슨 큰 뜻을 품었는지 이상한 소리를 한다.

"세계관이요?"

"요새 글로벌 팬덤 노리는 웬만한 아이돌들 다 세계관 가지고 있잖아요. 응? 어린 친구들 다 그거… 만화영화 같은 거 좋아하잖아."

"…."

단단히 헛바람이 들었다.

세계관? 좋다.

그런데 한 달 안에 신곡 낸다면서 세계관 이야기부터 하면 되나? 싱글이라도 당장 곡 이야기부터 나와야 한다.

그리고 테스타는 세계관이 급하지 않았다.

'오디션으로 캐릭터, 스토리 다 만들어놨는데 무슨 얼어 죽을 소리를…'

내가 알기론 세계관은 팬들이 몰입하고 놀 콘텐츠를 주는 거라던데, 이미 아주사 자체가 그런 콘텐츠를 소화하는 중이다.

게다가 멤버들은 이미 데뷔 과정을 거치며 각자 대중적 인지도를 챙기고 포지셔닝이 끝난 상황이었다.

소속사에서 대중성 좋은 곡하고 세련된 안무, 의상만 챙겨 와도 된다는 뜻이다.

세계관은 대충 틀만 잡고 다음 앨범 준비하면서 천천히 쌓아도 상관없었다.

'무슨 강연이라도 보고 왔나.'

근래 소속사들이 주식 문제 때문에 자기들만의 독자적 역량을 어필하다 보니, 세계관을 무슨 엄청난 백년대계처럼 자꾸 들먹여서 이놈도 혹한 것 같았다.

'본인 경력이라 이거지.'

더 미치겠는 건 잘 모르면서 열심히 한다는 점이다.

"…저희가요?"

"그래! 방송 보니까 잘하던데요."

본부장은 아주사 를 열심히 '정주행'했다며, 각 멤버들을 칭찬하더니 폭탄 발언을 꺼냈다.

"음, 지금 딱 말해둡니다. 우리 활동 곡 두 개로 할 거예요."

"…?!"

"근데, 회사에서는 한 곡만 쭉 맡아서 할 거야. 나머지 한 곡은 우리, 능력 좋은 테스타가 맡아서 꾸려보는 겁니다?"

물론 컨펌과 수정은 자기가 할 거란다.

"우리 세계관에 맞춰서, 이렇게 딱∼ 하면 좋잖아, 안 그래요? 셀프 프로듀싱!"

자체 제작 아이돌이 대세고, 어쩌고 저쩌고….

남들이 좋다고 하는 건 다 하고 싶다 이거다.

'자율적이고 힙한' 신진 소속사의 이미지가 탐나는 것 같았다.

당연히 멤버들은 당황했지만, 권모술수가 난무하는 아주사 를 무사히 끝마친 놈들 답게 그다지 티가 나진 않았다.

"아, 정말 감사한데… 저희 역량만으로는 힘들 수도 있지 않을까요."

"으음∼ 당연히 직원들이 다 같이하죠. 여러분은 자유롭게! 어, 아티스트의 창의성, 영감, 이런 걸 잘 발휘해 봐라, 그런 말입니다."

"예…."

스무 살 이상 차이 나는 높으신 분이 단호하니, 수습해 보려던 류청우도 쓴웃음과 함께 말을 삼켰다.

김래빈은 벌써 표정이 멍하다.

'넋이 나갔군.'

뭘 해야 할지 떠올리다가 기간 대비 턱없는 작업량에 넋이 나간 모양이었다.

"자자, 우리 할 일도 많은데 이만 일어나야겠죠?"

"예, 예."

본부장은 자기 할 말만 실컷 하고는 자리를 떴다. 본인이 직접 시간을 내서 '테스타'를 챙겨줬다며 흐뭇해하는 것이 눈에 보였다.

'…대표이사도 T1 오너 조카였던가.'

벌써 미래가 그려졌다.

'…이번에 오픈 빨로 1위 못하면 힘들겠군.'

돌이켜보니, T1에서 아주사 데뷔 그룹 가로채겠답시고 갑자기 새 소속사 만들 때부터 짐작 했어야 했다.

'싸워서 뺏어오는 마당이니… 당연히 원래 예정 소속사에서 진행했던 데뷔 앨범 준비는 이어 받아오기도 못했을 테고.'

덕분에 당장 앨범을 새로 만들어야 하는 꼴이 됐다.

게다가 업계 사정을 잘 모르는 사람이 실무진 위에 앉아있으니 개소리가 난무하고 데드라인도 턱없이 짧다.

'음, 정말 퇴사하고 싶다.'

…다시 한번, 이 회사에 별 기대를 하지 말자고 다짐했다.

콘텐츠 제작팀, 프로듀싱실 산하 A&R 팀 사람들 몇 명과의 이후 미팅에서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이 사람들도 아직 결과물이 나온 게 없더라고.

…사실 그럴 만도 했다. 이 소속사가 출범한 지 2주도 안 됐으니까.

"음… 일단, 저희 세계관은 '학교' 모티브로 갈 거예요."

"아… 넵."

"그걸 중심으로 생각해 주시면 될 것 같고요. 음…."

그냥 세계관이 학교 관련이라는 말 외에는 별 실익이 없었다.

"물론, 여러분께서 아예 곡을 만들라는 말은 아니에요. 저희 최종 컨펌 나면 바로 후보곡 보내드릴 테니까, 한번 살펴 봐주세요."

"넵!"

"기간이 어떻게 될까요."

"아, 음… 이틀 내로는 갈 거예요."

다행인 점이라면, 이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테스타 멤버들에게 호감이 있었다.

'전국적으로 흥한 오디션 덕을 이렇게도 보는군.'

일단 기본적으로 본전은 보장된 그룹에 개인적인 호감까지 더 해지니 대우가 한결 인격적이었다.

"되게 우리 의견 많이 물어보네."

큰세진이 미팅을 끝내고 나오며 이렇게 말할 정도였다.

"워, 원래는 아, 아닌가?"

"네!"

"예!"

의외로 차유진과 김래빈 쪽에서 격한 반응이 터져 나왔다. 선 아현이 화들짝 놀랐다.

"말 안 들어요!"

"아예 발언권을 안 줍니다. 그냥 지시대로 열심히 하는 게 미덕이라는 분위기가 너무 공고합니다!"

"으, 으응…."

차유진과 김래빈은 전 소속사에서 데뷔곡을 녹음까지 했다가 엎어진 놈들이라 쌓인 게 많은 것 같았다.

'그 소속사가 한창 잘 나갔는데. 아마… 간판 아이돌이 부정 계약으로 소송 걸고 나가서 망했던가.'

저 둘도 그 과정에 휘말리면서 소속사를 나와 오디션 프로그램에 나오게 된 모양이었다.

"걱정스러운 부분도 있지만, 열심히 해보기 좋은 환경이야. 잘해보자."

"넵!"

"예!"

류청우가 웃으며 멤버들 머릿수를 확인하고 차를 탔다.

별 이야기는 없었지만, 류청우가 리더인 것은 거의 확실한 분위기였다.

일단 최연장자 동갑인 이세진이 리더를 할 만한 인물이 아니었고, 소속사에서는 웬만하면 연장자가 리더를 하는 것을 선호하기 때문이다.

리얼리티를 통해서 그럴싸한 과정을 거치겠지만… 뭐 거의 확정이지.

나야 불만 없었다.

"집 좋아∼…오?"

"왜?"

"인형 뽑기!"

차유진이 맨 처음 거실로 들어가다가 인형 뽑기 기계를 보고 달려갔다.

본부장 놈이 새벽같이 사람을 불러서 비몽사몽 중에 나가느라 저게 있다는 것 자체를 까먹었던 모양이다.

'덕분에 리액션은 리얼하군.'

나도 근처로 가서 살폈다. 기계 안과 밖 모두 카메라가 설치되어 서 돌아갔다.

로봇 청소기가 다시 재등장해서 카드를 건네줬다. 대충 인형 뽑아서 안에 든 미션을 수행하라는 말이다.

"으음, '각 인형에는 테스타 멤버의 익명 미션이 붙어 있습니다'…오, 궁금하네."

"뽑자!"

멤버들은 대부분 신나서 기계에 들러붙었다. 일단 제일 먼저 조종대를 잡은 차유진이 조종했다.

"이얍!"

결과는 처참한 실패였다.

"…기계 이상해요."

"저한테 맡겨보시죠∼"

큰세진은 풀 죽은 차유진에게 조이스틱을 넘겨받아서 신나게 움직여댔다. 그리고 마찬가지로 실패했다.

"그러네. 기계가 이상하네."

이후로도 무수한 실패의 향연이 이어졌다.

결과를 승복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구차한 변명이 이어지는 가운데, 나는 정중히 다음 타자를 사양했다.

'귀찮다.'

돌다 보면 누군가는 뽑겠지.

그리고 조이스틱을 잡은 건 이세진이었다.

"…뭘 뽑으라고?"

"토끼!"

"가, 강아지…."

그리고 이세진은 한 번에 뽑기에 성공했다.

"…!"

털이 복슬복슬한 갈색 토끼의 뒤통수가 배출구에 툭 떨어지는 순간, 사람들은 결과에 승복했다.

"와, 와아아!"

"형님 손재주 대단하시네."

"이게 한 번에 뽑을 수 있는 거였네요."

"다른 것도 뽑으면 안 됩니까?"

그러나 인형 뽑기 기계는 이미 작동이 중지된 상태였다.

아마도 하나가 뽑히면 자동 중지되도록 설계된 가정용 기계인 것 같았다.

내일은 꼭 뽑을 거라며 중얼거리는 김래빈 뒤로 멤버들이 우르르 토끼 인형에 붙었다.

인형을 뒤집자 배 부분에 카드가 붙어 있었다.

"자, 그럼 과연 누가 무슨 말을 적었…."

[다 같이 공포영화 보기∼*^^*]

"…."

"…너지?"

"야, 설마."

큰세진이 손사래 쳤다. 자기는 더 쓸 만한 콘텐츠를 적었다는 자신감이 넘쳐흘렀다.

그리고 류청우가 온화하게 대답했다.

"아, 나야."

"…와! 재밌겠네요. 공포영화!"

"기, 기대돼요…!"

별로 안 친한 연장자의 자수는 긴급히 온화한 분위기를 조성했다.

결국, 그날 저녁은 공포영화를 보면서 시간을 보냈다. 나는 팝콘에 집중하며 영화를 대중 흘렸다. 비명이 골을 울렸다.

시간 낭비였지만 몸이 편하긴 했다.

그리고 다음 날, 새벽같이 데뷔 타이틀곡 후보 데모들이 도착했다.

몸이 괴로울 시간이었다.

"귀가 아파요."

볼륨을 있는 대로 올려둔 채로 모든 데모곡을 20번쯤 돌려 들은 후차 유진의 발언이었다.

그 말에 김래빈을 제외한 거의 모두가 희미하게 동의했다. 겨우 고개만 끄덕였다는 뜻이다.

자기 곡이라는 생각에 설레서 의욕적으로 들러붙은 놈들은, 몇 시간이나 과하게 신경 써서 곡을 듣느라 심력을 다 소모한 후였다.

"…더 들어도 이제 큰 변화는 없을 것 같으니, 1차 거수를 해보자."

"예∼"

"그럼 1번부터."

그렇게 마지막 11번까지 갔다.

대충 경향성이 보였다. 이미 아주사 를 진행하면서 어느 정도 봐왔던 것과 비슷했다.

일단 선아현과 류청우는 미디엄 템포를 선호했다. 특히 선아현은 서정적인 곡을 좋아했다.

그리고 김래빈, 차유진은 베이스 가강하고 리드미컬한 곡을 선호했다.

큰세진은 일단 유행하는 장르를 골랐다. 그리고 멜로디가 키치한 것에만 손을 들었다.

이세진은 한 곡에만 손을 들어서 모르겠고. 남은 건 나인데… 나야 그냥 듣기 좋은 걸 골랐다.

그래도 되는 상황이었다.

아주사 마지막 화 생방송 때 띄운 '성공적 무대' 팝업으로 이 특성을 뽑았기 때문이다.

[특성 : 잡아채는 귀 (A)]

-이 곡은 잘될 것 같은데?

: 명곡 감별 능력 +200%

등급이 무려 A였다.

슬롯에 열 칸 당 하나꼴로 있던 백금색 칸에 멈추며 떴다.

'등급을 생각 안 해도 이건 무조건 킵해둬야 했다.'

음악 사업할 거라면 이것만큼 쓸만한 특성이 없었으니까.

덕분에 끼 스탯을 한 단계 올려주는 '센터가 되고 싶어' 특성을 버렸지만 그럴 가치가 충분했다.

사실 '듣고 보니 맞는 말이군'을버릴까 고민도 했는데, 이건 다양한 상황에서 쓸 수 있을 것 같아서 일단 킵했다.

'떨어진 끼 스탯도 파이널 때 연습이랑 무대 업적으로 레벨 업하면서 채웠으니 됐고.'

그래서 현재 내 상태창은 이렇다.

[이름 : 박문대 (류건우)]

Level : 13

칭호 : 없음

가창 : A

춤 : C+

외모 : B+

끼 : B-

특성 : 잠재력 무한, 듣고 보니 맞는 말이 군(C), 바쿠스 500(B), 잡아채는 귀 (A)

! 상태 이상 : 1위가 아니면 죽음을

남은 포인트 : 1]

문제라면 이번에 얻은 곡 감별 능력이 정액으로 더해지는 것이 아니라 정률로 더해진다는 점이다.

'애초에 내가 막귀면 상승치가 애매하다는 뜻이지.'

그다지 의식해본 적이 없는 분야라 잘 모르겠지만, 그래도 300%로 증폭됐으니 엔간하면 어느 정도는 먹히겠다 싶었다.

그래서 내가 고른 곡은….

"그럼 문대도 7번 하나만 고르는 걸로?"

"예."

7번 하나뿐이다.

이 곡은 다소 몽환적이었는데, 비트가 트렌디하고 멜로디가 대중적이라 독특하게 듣기 좋았다.

'나머지는 약했어.'

전개가 지지부진하거나 빨리 질렸다. 내가 음악 이론을 아는 건 아니고 그냥 '귀'만 믿고 판단한 거긴 하지만.

그래도 그럴싸했는지, 김래빈이 눈을 빛냈다.

"확실히 형이 듣는 귀가 좋으신 것 같습니다. 7번이 제일 완성도가 있죠."

"야, 래빈이 너무하네∼ 형은 별로고?"

"아, 아니, 그런 뜻은 아니고…."

큰세진의 농담에 김래빈이 진땀을 뺄 때, 류청우는 빙긋 웃으며 상황을 정리했다.

"그럼 동률로 2번, 7번이 남았네. 이 두 곡 중심으로 연구해 보자."

"옙∼"

2번은 알앤비 스타일의 듣기 편한 곡이었다.

'빨리 질려서 난 손 안 들었지.'

어쨌든, 다들 지쳤는지 군말 없이 수긍했다.

'다음 타임에 7번을 좀 더 제대로 밀어 봐야겠군.'

그렇게 오전 시간을 다 보내고 나자마자 다시 호출이 들어왔다.

콘텐츠제작팀과의 미팅이었다. 듣기로는 회사에서 만드는 타이틀곡이 선정되었다고 했다.

'…보통 곡은 A&R팀 하고 논의해야 맞지 않나?'

이번에도 예감이 안 좋았지만 피할 수는 없었다.

그리고 그들이 들고 나온 곡은…

"어때? 괜찮죠?"

"…예."

곡은 좋았다.

문제는 디스코곡에 야구부 콘셉트를 가져왔다는 점이다….

미치겠다.

[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 067화]

갑자기 야구부 콘셉트가 튀어나온 이유는 본부장 때문이었다.

실무진들이 가져온 기존 콘셉트를 어제저녁에 반려했다고 한다.

"본부장님께서 만화영화 같은 세계관 쪽으로 가닥을 잡으셔서요. 학교 배경 만화면 스포츠라고 하셔셔, 음, 야구부로 결정됐어요."

참고로 기존 콘셉트는 복고풍이었다.

'이쪽도 학교 관련 세계관으로 하기엔 무리수 아닌가.'

그래도 그쪽은 최소한 디스코곡에는 어울렸다.

디스코와 야구부는… 죽도 밥도 아니었다.

그걸 아는지 직원들도 곡 이야기만 계속 떠들고 있었다.

아무래도 자기들도 억울해서 본부장 이야기가 튀어나왔지만, 괜히 했다고 후회하는 중인 게 분명했다.

"좀 시일이 촉박하게 작업하긴 했지만, 저희 생각에도 곡이 잘 나왔거든요."

"음, 예."

그러고 보니 어디서 들어본 곡이긴 했다. 원래 아주사 합격자들의 데뷔곡도 이것이었기 때문이다. 편곡이 좀 다르고 아직 가사가 없긴 했지만.

"여러분도…이런 청춘 스타일의 학생하고 너무 괴리감 없는 콘셉트로 잡아주셨으면 좋겠어요."

"예. 열심히 해보겠습니다."

"하다가 잘 안 되면 그냥 곡만 골라서 주셔도 괜찮아요!"

"아…. 네."

"괜히 걱정 마시고, 그냥 빨리 말씀만 해주시면 돼요∼"

'별로 기대가 없군.'

그냥 얼른 데드라인을 맞춰야 한다는 직장인의 절박함만 느껴졌다.

'시간이 정말 얼마 없긴 하지.'

아마 더 급해지면 '테스타의 참여'는 마케팅용으로만 써먹고, 회사가 다 알아서 할 느낌이었다.

그렇게 황급히 준비한 앨범이 어떨지는… 흠, 그다지 기대되는 전망은 아니었다.

"감사합니다!"

미팅을 마치고 나오는 멤버들의 분위기가 애매했다.

다들 본능적으로 느낀 것이다. 데뷔 활동평이 끝내주긴 글렀다는 것을.

류청우가 입을 열었다.

"… 할 수 있는 데까지는 해보는 걸로 할까?"

"그래요."

"작업실이나 좀 쓰겠다고 하죠!"

놀랍게도, 일단 밤을 새워서라도 빨리 결과물을 뽑자는 쪽으로 의견이 모였다.

오디션에서 죽도록 달리던 버릇을 잊지 못한 이놈들은 결과부터 뽑고 고민하는 것에 익숙해진 것이다.

"얘들아, 잠깐만!"

매니저가 급하게 리얼리티 제작진들에게 연락하는 것을 확인하며, 나는 강렬한 예감을 느꼈다.

'한동안 5시간 이상 자긴 글렀다.'

한 달 안에 데뷔 활동을 꾸리는 대환장 행군은 이제 시작이 었다.

리얼리티용 카메라가 급하게 설치된 작업실은 회사 근처 건물 지하였다.

'아직 회사 내에 여분 작업실도 없고 안무 연습실도 없다던데.'

정말 정신적으로든 물리적으로든 체계라는 게 없는 소속사였다.

"안녕∼"

"저희 이제부터 일합니다!"

카메라에 대고 적당히 반응을 해주고 난 뒤, 곧바로 토의가 시작되 었다.

"2번 하고 7번 중에 고르자. 일단 다수결?"

"넵!"

내가 밀고 싶은 것은 7번.

결과는 4:3.

"그럼 2번으로?"

"네∼"

2번의 승리였다.

'… 어렵게 됐는데.'

2번에 표를 던진 놈은 류청우, 큰세진, 선아현 그리고 이세진이었다.

"아무래도 회사 곡이 신나는 디스코니까, 우리 쪽은 좀 더 듣기 편한 곡을 고르는 편이 좋을 것 같아."

"2번 같은 미디엄 템포가 듣기 편하긴 하죠. 아련한 청춘 느낌이라고 할까? 학교 콘셉트로 쓰기도 괜찮을 것 같은데요?"

"저, 저도… 2번으로."

정리하자면 회사 곡을 의식했고, 학교 콘셉트를 고려했다는 뜻이다.

'흠.'

설득을 해보고 싶긴 하는데, 처음부터 다수결로 때려 버리니 말 꺼낼 타이밍이 애매했다. 결과에 승복 못하는 것처럼 보이면 설득력이 떨어지니까.

'조금 있다 다시 운을 떼 봐야 하나.'

그리고 잠시 뒤. 하나도 달갑지 않은 소식으로 타이밍이 도래했다.

"어? 헐!"

"아…."

저녁을 먹으며 잠시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다가, 이 기사가 뜬 것을 봤기 때문이다.

[6월의 컴백 전쟁, VTIC부터 차 돌체까지]

기사에서는 다음 달인 6월에 컴백하는 가수들을 정리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중 '6월 둘째 주 예정'항목에 VTIC이 있었다.

우리 예정일이 딱 저 근처였다.

'X발.'

그러니까… 아주사 를 등에 업은 테스타의 데뷔 첫 주 성적을 밀어버릴 수 있는, 손가락에 꼽을 만한 가수가 하필 동발 한다는 뜻이다.

"기사가 맞으면… 활동 주가 VTIC 선배님들이랑 딱 겹치겠는데?"

빠르게 계산을 마친 큰세진이 중얼거렸다.

"… 사인은 받을 수 있겠네."

"으, 으음…."

멤버들은 어색한 소리를 내며 쓴웃음을 지었다.

정말 이대로 일정이 픽스된다면, 사실상 공중파 1위는 포기하라는 선고나 다름없었다.

게다가 지금까지 회사 하는 꼴을 보니 대충 각이 나왔다.

'본부장 놈 뽕 찬 거 봐서는 VTIC한테도 승산 있다는 개소리나 하겠지. 실무진이 설득해 봤자 한 주나 미룰까.'

최선의 케이스로 생각해도 VTIC 2주 차하고 붙는다. 그래도 체급에서 밀렸다.

'거기 지난 앨범 총판이 분명 180만 장 넘었다.'

그러니 활동 곡을 제대로 뽑아야 1위 윤곽이라도 보일 상황이라는 뜻이다.

'돌연사 회피 기회를 허망하게 날릴 수 없지.'

지금이 말을 꺼낼 타이밍이었다.

"…잠시만요."

나는 곧바로 태세를 전환했다.

"합의 끝난 상황에 이런 말 꺼내서 죄송한데, 아무리 생각해도 7번을 밀고 싶습니다."

"어?"

멤버들이 소스라치게 놀랐다.

'…?'

다 끝난 이야기 물고 늘어진다고 짜증 낼 줄 알았는데, 느낌이 좀 다르다.

"왜, 왜?"

"오, 나 문대 이러는 거 처음 봐. 감정적인데?"

"정말 데모곡 7번이 마음에 드셨나 봅니다."

"VTIC 선배님과의 동시 활동이 문대를 각성시킨 건가?"

"…."

이놈들 신기해하고 앉아 있네.

마음대로 말해라. 어쨌든 7번을 해야 하니까.

"음, 문대야. 아쉬운 건 알겠는데, 이미 결론이 난 건 뒤집기는 어렵지. 다수결이고 시간이 별로 없잖아."

류청우는 다른 멤버들을 보고 피식 웃었지만, 상황을 바로 정리하려 들었다.

'안 되지.'

혹시 간발의 차로 1위를 놓치면 다음 앨범을 기다리면서 얼마나 화날지 상상만 해도 머리가 아팠다.

'게다가 혹시 폼 떨어져서 다음 앨범도 1위 못 하면 정말로 돌연사 위기다.'

"5분만 주세요. 설득 시도라도 해보고 싶습니다."

"… 지, 진짜?"

"문대가 이렇게까지 한다고?"

"이상해요!"

의도하지 않았으나 도리어 멤버들이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 대체 박문대를 어떻게 생각했던 거냐?'

어쨌든 동요를 불러일으킨 건 좋은 도입이었다. 나는 빠르게 상황을 정리했다.

'어차피 다수결로 갈 거라면, 설득하기 쉬운 한 명만 잡으면 된다. 스코어는 4 대 3이었으니까.'

"일단, 큰세진… 그리고 청우 형은 콘셉트 용이성 때문에 2번 선택한 거 맞죠."

"아, 그건 맞아."

"그래."

둘이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들어볼 마음은 있다는 거군.

5분 넘어가면 류청우에게 또 정리당할 것 같으니 빨리 내용을 전개해야 했다.

"콘셉트 빼고 곡만 객관적으로 비교하면 7번도 괜찮았죠?"

"난 7번이 약간 더 좋았어. 근데 그것만으론 안 되지 않아?"

큰세진이 곧바로 대답했다.

'걸렸군.'

"회사 쪽 타이틀곡 하고 안 어울리니까?"

"맞아."

"그럼 회사 걸 바꾸면 어때."

"…?"

순간, 멤버들이 단체로 시끄러워졌다.

"형, 그건 좀…."

"불가능해요!"

"…해줄 리가 없잖아."

"근데 바꾸고 싶긴 하다."

"잠깐."

류청우가 다시 대화를 잡았다.

"문대야. 생각해 봐. 회사 곡 이야기를 빼도 7번 자체가 학교, 청춘…이런 거에 어울리는 곡은 아니야."

"맞습니다."

본인도 7번을 골라놓고 김래빈이 시무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7번은 딥하우스 곡입니다. 게다가 칼림바로 리프 멜로디를 찍었기 때문에 다소 몽환적이라… '청춘' 같은 테마를 살리긴 힘듭니다. 편곡으로 그 부분을 없애면 곡 매력이 사라질 겁니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안 없애도 그 콘셉트 살릴 수 있어."

"…!"

나는 회사에서 콘셉트 이야기를 하는 동안, 내심 생각했던 구상안을 입 밖으로 꺼냈다.

그리고 멤버들은 조용해졌다.

"…."

'그럴싸하다는 얼굴이군.'

김래빈은 멍한 게 이미 머릿속에서 뭘 만들고 있는 얼굴이었다.

"아니, 그… 좋은 아이디어긴 한데."

류청우가 힘겹게 입을 열었다.

"회사 분들이 설득이 될지, 모르겠다. 시간도 너무 부족하고."

"…."

저 생각을 안 할 수가 없었다. 당연히 말 안 통할 본부장이 걱정되겠지.

'이 말만은 하고 싶지 않았건만.'

나는 침을 삼켰다.

어쩌긴.

본부장 입맛에만 맞추면 된다.

"…제가 PPT 만들겠습니다."

"…!"

"내일 아침까지."

"…!"

노오력과 열정을 보여주는 수밖에 다른 길이 있겠는가.

'대학 다닌 보람이 여기서 나오나.'

나는 한숨을 삼켰다.

박문대는 그날, 숙소에서 밤을 새웠다. 그리고 다른 멤버들도 못 잤다.

발언자에게 모든 일을 미루기에는 양심과 의리가 잠을 깨웠기 때문이다.

덕분에 발표자료는 다 같이 만드는 그림이 되었다.

"뭘 찾아야 돼?"

"여긴 내가 적을 게."

"이거, 이미지 좋아요! 딱 맞아요!"

그러나 밤샘 PPT 제작을 발의한 당사자는 그다지 달갑지 않았다.

'사공이 많으면 산으로 갈 텐데.'

박문대는 대충 아침에 완성본 보여주고 피드백이나 받을 생각이던 것이다.

애초에 발표자료를 별로 만들어본 적도 없는 20살 언저리들의 도움은 작업에 그다지 필요하지 않았다.

'김래빈이 자료조사는 좀 하던데, 나도 못 하는 편은 아니니 상관없고.'

게다가 약간의 노림수도 있었다.

'…이렇게까지 하는데 2번 하고 싶다고 엎진 못하겠지.'

소수파가 된 2번 투표자들의 입을 부채감으로 막을 의도였다.

대표적으로 선아현이 있었다. 순수하게 2번 곡이 본인 취향이라 그것을 선택했던 멤버였다.

"무, 문대야. 이, 이거 마실래?"

그러나 선아현은 되려 PPT 완성을 도우려고 안간힘을 쓰는 쪽 이었다.

양심상 깨어 있다고 하기에는 지나치게 열정적이었다.

"…?"

박문대는 괴리감에 떨떠름해하다가, 결국 물어보았다.

"너 괜찮겠어? 이거 결국 7번 밀려고 만드는 건데."

선아현은 열심히 고개를 끄덕였다.

"마, 많이 생각하고 결정했잖아. 2,2번은… 음, 다, 다음에 하면 돼지!"

"음… 고맙다."

"으응, 아, 아니! 다, 다 같이 하는 거니까…!"

"…."

'왜 내 쪽이 부채감을 느끼는 구도가 된 거지.'

박문대는 선아현에게 좀 더 친절히 대하기로 마음먹었다.

"차유진 어디 갔냐?"

"부엌에서 자더라∼"

어쨌든 밤은 술술 넘어갔다.

그리고 해가 떠오른 아침.

"안녕하십니까."

박문대와 멤버들은 회사의 오전 회의에 PPT를 들고 들어가게 되었다.

"열정이 넘치네."

"감사합니다."

아직 발표 내용을 모르는 본부장은, 일단 속도와 태도가 마음에 든다며 호의적이었다.

애초에 미래가 불확실한 무명 신인도 아니고, 황금알 낳는 거위가 되어줄 그룹이었으니 당연한 호의였다.

그리고 5분 뒤.

본부장은 극도로 당황하게 된다.

"본부장님, 만화영화에서 레퍼런스를 가져오면서 야구부 콘셉트가 만들어졌다고 들었습니다."

"그렇죠."

"확실히 학교와 관련된 만화라면, 스포츠물이 대세인 것 같습니다."

"음음."

"그리고 하나 더, 학교 관련 만화에서 스포츠물과 동급으로 스테디셀러인 장르가 있습니다."

"오∼ 뭔가요?"

박문대가 PPT 화면을 넘겼다.

마법봉이 스크린 가득 떠올랐다.

"마법소녀입니다."

"…?!"

회의실은 혼란의 소용돌이에 빠져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