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7화]

일요일 저녁에 안무를 재정비하고 쓰려졌다가 깨니 다음 주가 됐다.

첫 주 앨범 판매량 집계를 확인할 타이밍이라는 뜻이다.

결과는… 무시무시했다.

"…67만 장이요?"

"그래!"

나는 매니저에게 한 번 더 되물었다.

"선주문량이 아니라 판매량이?"

"…그런 것도 아니? 아무튼 판매량 맞아!"

"…."

참고로, 선주문량은 앨범이 판매될 걸 예상하고 소매점에서 미리 주문해놓는 양을 의미한다.

'초동보다 많이 들여놓는 편이라 이쪽이 아닐까 의심했는데.'

진짜 67만 장이 나간 거라니.

'실감이 안 나는데.'

아무리 최근 앨범 판매량 인플레이션이 심하다지만, 정말 감각이 마비될 것 같은 판매량이다.

오디션 프로 출신답게 테스타의 팬층이 국내 위주로 형성되어 있다는점을 생각하면 더욱 어마어마했다.

심지어 본래보다도 늘었다.

'원래 60만 장 아니었나.'

분명 원래 아주사 로 데뷔하는그룹의 초동은 60만 장이다. 7만은 대체 어디서 튀어나와서 사주신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우리 남자 아이돌 데뷔앨범 판매량 신기록 갱신이라는데?"

"어, 어어어…."

"Holy moly."

다른 놈들도 기쁘다기보다는 어째 압도된 분위기였다.

한 30만 장이었다면 바닥을 구르고 기뻐했을 텐데, 더블 스코어가 뜨니 좀 겁을 먹은 것 같았다.

물론 곧 정신 차리는 놈이 튀어나왔다. 현실적 판단을 시작했다는 뜻이다.

"…이러면 우리 다음 주에 1위 할수도 있나?"

"…!"

순간, 긴장감이 쭉 차올랐다.

류청우가 입을 열었다.

"VTIC 선배님 이번 주 판매량이 얼마지?"

"확인해 보겠습니다."

김래빈이 즉시 검색을 시작했다.

앨범 차트에서 바로 주간 판매량을확인할 수 있었다.

[LONG NIGHT / VTIC 312,608]"

"…!"

"와."

2주 차라고 믿기지 않는 수치였다.

'아무리 초동 마지막 하루가 들어갔다고 해도 그렇지.'

웬만큼 잘나가는 남자 아이돌 총판매량급이었다.

이쯤 되니 정말 이놈들 이번 앨범 초동이 궁금해진다.

"…잠시만."

나는 김래빈의 스마트폰 화면을 몇번 터치해서 VTIC의 첫 7일간 앨범 판매량, 초동을 확인했다.

[1,872,863]

"…."

아, 글렀네.

"이야∼"

"하하."

"1위야 열심히 하다 보면 할 날이 오겠죠!"

긴장감이 확 사라졌다. 멤버들은 허허 웃으며 서로 격려하기 시작했다.

예상은 했지만, 이렇게까지 기본 스코어가 차이 나니 호승심도 사라진 것이다.

그나마 앨범 판매랑이 두 배 차이나는 이번 집계가 적기였으나, 음원에서 확 밀려서 힘들어 보였다.

'우리가 특별히 초동 이후에도 앨범 물량이 잘나갈 일은 없고…. 아마 2주 차에도 힘들겠군.'

음원 순위는 계속 슬금슬금 상승중이었지만, 1위에 붙박이 중인 VTIC을 밀어낼 수 있을지도 회의적이었다.

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나갈 준비나 할까요."

"그게 좋겠다."

"오늘도 화이팅∼"

멤버들은 주섬주섬 외출복으로 갈아입기 위해 흩어졌다.

매니저는 '이게 아닌데….' 같은 말을 몇 번 중얼거렸지만, 곧 현실을 받아들였는지 푹 한숨을 쉬었다.

'다른 생각이 있었나 본데.'

뭐, 알아서 하겠지.

매니저가 새롭게 운을 뗀 것은 차에 탄 직후였다.

"너희 팬 사인회 이틀 뒤부터인 거알지?"

"벌써요?"

멤버들이 바짝 긴장했다. 활동 시작할 때 이야기를 듣긴 했지만 스케줄이 바빠서 날짜를 잊고 있던 것이다. 매니저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앨범 이렇게 많이 사주시고 열성적으로 응원해 주시는데 잘하고와야지∼성의 있게 잘 대해드려∼"

"아, 그럼요!"

아마 앨범 판매량을 먼저 던진 것은 이렇게 빌드업하려는 생각에서였나 보다. 지금이라도 말해서 속 시원해 보이는군.

'팬 사인회라.'

한 번에 백 명과 연달아 대화하면서 실수하지 않으려면 좀 기합을 넣을 필요가 있긴 하지.

다만 이게 역효과로 작용한 멤버도 있어 보였다. 선아현은 단번에 얼굴이 새파래졌기 때문이다.

"나, 나, 나 못 할 것 같은데."

"왜요?"

"으응? 마, 말을 잘 못 해서…?"

"…? 형은 지금 한국어 잘해요."

차유진의 개소리에 말려든 선아현이 더 혼란스러워하기 시작했다.

나는 한숨을 쉬고 끼어들었다.

"넌 신중한 편이니까 오히려 실수안 할걸. 너무 걱정하지 마."

"…고, 고마워."

선아현은 희미하게 웃으며 대답했지만, 그다지 걱정 안 하는 얼굴은 아니었다.

'그럴 만도 하지.'

애초에 팬과 대화해 본 적도 별로없다.

스케줄 중에 오가면서 팬들을 근거리에서 가끔 보기도 하지만, 보통은인사나 팬서비스만 빠르게 주고받고 얼른 차를 타야 했다.

간혹 숙소 근처나 편의점에서 끈질기게 따라붙는 건 팬이 아니라 사생이니 표본에 넣기 어렵고.

'일대일로 각 잡고 대화하려니 멤비 중 누구든 긴장할 만…."

"시간이 얼른 가야 되는데∼ 우리팬들 얼굴 보게"

"…."

저놈 빼고.

앞자리의 큰세진이 콧노래를 부르며 스마트폰을 뒤적거리고 있다.

'자신 있다, 이거군.'

팬 사인회를 앞둔 아이돌 양극단 예시를 이렇게 확인할 줄이야.

…나는 어떻냐고?

'모르겠다.'

유명 아이돌 공개 팬 사인회라면 몇 번 돈 받고 대리로 사진 찍으러가본 적은 있다.

하지만 사인을 받으며 둘이 무슨 대화를 하는지는 들어본 적 없다.

생각보다 공간 자체가 왁자지껄 떠들썩하다 보니 웬만한 소리는 다 뭉개지기 때문이다.

'뭐… 머리띠 쓰는 건 많이 보긴했지.'

그런 거야 좀 민망하겠다만 못할 것도 없으니 넘어가고.

나는 순 이미지만 남아 있는 뇌를 돌려보다가 혀를 찼다. 실속이 없군.

'무슨 대화를 주로 하는지 정도는찾아둘까.'

마침 이동 중이라 차 안인데 리얼리티 카메라도 없다. 나는 곧장 스마트폰으로 SNS 접속해서 검색을시작했다.

[팬 사인회 후기]

'뒤에 '후기' 붙여뒀으니 홈마 사진은 대충 거를 수 있겠지'.

하지만 인기글 탭으로 이동하기도전에, 방금 뜬 최신글 하나가 눈에꽂혔다.

"…!"

잠깐.

[테스타 이번 팬싸 컷 120장ㅋㅋㅋ 평일인데 미쳤다 진짜! 난 광탈했으니… 팬 사인회 후기라도 많이올려 주세요ㅠㅠ (사진)]

글에 첨부된 이미지는 100장을 사고 떨어졌다는 인증글의 캡처였다.

"…."

120장?

솔직히 말하자면, 보자마자 이 생각부터 들었다.

'…이게 얼마지?'

테스타의 데뷔 미니앨범 정가가 15,000원이다. 공동구매 등으로 할인율을 끌어올렸다고 해도…11,000원 정도가 최저가겠지.

'그걸로 계산해도…'

132만 원이다.

"…허."

뇌가 팽팽 굴러갔다.

'대화가 길어도 1, 2분 컷일 텐데.'

테스타가 7명이니 인당 얼추 18만원 이상 값어치는 해야 한다는 뜻이다.

'이거 효율이 너무 낮지 않나?'

대화 1분으로 10만 원 값어치를 할 수 있냐고? 당연히 자신 없다.

'그냥… 해달라는 건 다 해줘야 하나.'

그 외에는 특별한 대책이 생각나지 않았다. 나는 스마트폰을 내리고, 미간을 눌렀다.

팬싸 컷이 100장 이상인 놈들을 찍으러 다녀본 적은 있어도, 당사자가 될 줄이야.

식은땀이 다 났다.

박문대의 첫 번째 홈마는 만반의 준비를 하고 팬 사인회가 열리는 목동 소재의 한 아트홀에 도착했다.

300명을 수용하는 아담한 무대와 관객석은 100명의 대기 인원을 무리 없이 받아들였다.

그리고 대기 번호가 배부되었다.

[07]

'앞번호 만세!'

문대가 지치기 전에 대화해볼 수 있겠다며, 홈마는 즐겁게 얼른 카메라를 세팅했다.

그리고 7시 30분 정각을 살짝 넘었을 때.

무대 옆에서 테스타가 입장했다.

순간 귀가 먹먹할 만큼 큰 함성이 작은 아트홀을 가득 채웠다. 본래는사진 찍는 소리가 먼저 들렸을 상황이나, 그보다 먼저 첫 팬싸의 설렘이 가득했다.

손을 흔들며 약간 쑥스러운 듯 입장하던 테스타는, 무대에 세팅된 사인용 테이블 앞에 서서 꾸벅 인사했다.

"Take your STAR! 안녕하세요,테스타입니다!"

"와아아아!"

아직 팬 사인회가 익숙하지 않은 신인다운 공식인사였다. 팬들이 열렬히 환호했으나, 속은 각자 응원하는 멤버를 부르짖고 있었다.

박문대의 홈마도 마찬가지였다.

'문대 흑발! 아 너무 좋아!'

사녹 등에도 몇 번 다녀오며 이미 박문대의 이번 흑발 실물이 처음은아니었으나, 볼 때마다 좋았다.

그녀가 처음 입덕하던 당시의 박문대가 흑발이어서일지도 몰랐다.

'금발도 좋았지만, 역시 흑발이야.'

그녀는 강경 금발파인 자신의 친구를 잠깐 떠올렸지만, 곧 지우고 얼른 카메라에 집중했다.

잘 찍어서 저 얼굴을 널리 알려야했다.

'볼 때마다 잘생겨지는 것 같아.'

앨범 컨셉 탓인지, 지금 무대의상인 하얀 하복을 입은 흑발의 박문대는 묘하게 청량한 분위기가 있었다.

'이건 주접이 아니라 진실이다…!'

그녀가 그렇게 중얼거리고 있을때, 인사를 마친 테스타는 슬금슬금 테이블로 돌아 들어가서 앉았다.

'문대가 제일 끝이네.'

혹시 몰라 다른 멤버들 선물도 하나씩 챙겨오길 잘했다고 홈마는 중얼거렸다. 문대가 있는 끝자리까지 손 가득 선물을 들고 가면서 아무도 안 주는 건 좀 그러니까.

"번호 순서대로 시작합니다∼"

곧 본격적으로 팬 사인회가 진행되었다.

그녀는 앞번호를 받은 탓에 얼마 기다리지 않고 사인을 받기 시작할 수 있었다. 문대가 첫 번째 번호의 팬과 만나기 직전이었다.

첫 타자는 류청우였다.

"안녕하세요!"

"아, 안녕하세요."

먼저 인사하는 류청우를 보고 홈마는 살짝 말을 더듬었다.

'얘도 잘생기긴 했다.'

SNS 등지에서 핫한 유교남 같은 별명으로 불리던 것은 봤었는데, 가까이서 직접 보니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웹툰에서 남주로 나올 체대생 같다…'

그녀는 몇 마디 가벼운 스몰 토크를나누고, 하이파이브 후에 작은 홍삼박스를 넘겼다.

"와, 감사합니다!"

"에이, 아니에요∼"

첫 번째 사인은 훈훈히 끝났다. 그리고 다음 순서.

"어디 사인해 드리면 되나요?"

아역배우 이세진이었다. 섬세하고 단정한 인상의 이세진은 특별히 적극적이진 않았지만, 무성의하지도 않았다.

"누구 보러 오셨어요?"

의외로 먼저 질문을 던지기도 했고 말이다.

"아 테스타 다 보러왔죠∼"

"그래요? 감사합니다."

이세진은 특별히 예민한 것 없이 무던히 대답하고, 깔끔하게 사인을 마쳤다.

'생각보다 산뜻하네.'

어째 한 명, 한 명 사인을 받을수록 갱신되는 이미지가 괜찮았다.

다음으로 사인받은 멤버들도 마찬가지였다.

"음, 그럼 얼굴을 가리지 않으면서 최대한 눈에 잘 띄는 여백을 찾아서해보겠습니다…'

날카로운 인상과 달리 바짝 긴장한 티를 내며 수줍게 사인을 한 김래빈도 좋았고.

"앨범 어떤 커버 제일 좋아요? 전 바이올렛이 제일 좋아요!"

사인받는 팬보다 더 신나서 자기사인 주변에 온갖 낙서를 넣고 질문폭탄을 던진 차유진도 귀여웠다.

'아주사 초반에는 진짜 얄미웠는데.'

그때 괜한 소리를 하지 않길 잘했다며, 그녀는 스스로를 칭찬했다.

그리고 큰세진이 등장했다.

"어서 오세요∼ 오늘 첫 팬싸 오시면서 어땠어요? 저는 진짜 긴장했는데!"

"저도 긴장했죠!"

"에이, 긴장 안 하신 것 같은데∼"

큰세진은 친근한 말투로 그날 그녀가 낮에 무엇을 했는지, 지금 기분과 상태, 고민까지 순식간에 술술 불게 만들었다.

게다가 말도 안 했는데 자동으로 하이파이브가 나왔다.

"다음에 또 봐요∼"

"네…!"

'…친해진 것 같은데?'

잘생긴 경영학과 과대와 혼자 내적친분을 쌓은 느낌이었다. 사실 상대는 어지간하면 모든 동기에게 친근하게 대해준다는 사실을 어렴풋이 짐작하면서도 말이다.

그녀는 겨우 2분 30초간의 대화로 느낀 인싸의 바이브에 감명을 받으면서도, 곧 올 문대의 차례에 바짝 기합이 들어갔다.

'이제 이 다다음이 문대…!'

그렇게 기대에 차서 선아현은 얼른 넘길 생각이었는데.

'…라고 말하기엔 너무 엄청난 얼굴이었다…'

"바, 반갑습니다…!"

선아현은 방긋방긋 웃으면서 정성껏 그녀의 말을 경청했다. 덕분에 그녀는 거의 홀린 듯이 사인을 받았다.

선아현은 그 밑으로 정성스러운 p.s까지 달아줬다.

[오늘 와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지원 님! 앞으로 더 열심히 활동해서 멋진 모습 보여드리겠습니다!*^^*]

'…천연기념물은 맞다.'

저 얼굴에 저런 성격. 캐릭터라도 유지하기 힘들 것이다.

…그리고 이제 남은 것은, 대망의 최애.

그녀는 침을 꿀꺽 삼키고 문대를 돌아보았다.

[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 078화]

옆자리의 문대는 약한 미소를 지은채, 이미 그녀를 쳐다보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

대화! 문댕댕과 근접거리에서 첫대화!

'허억.'

갑작스럽게 쭉 치고 올라오는 긴장 때문에, 방금까지 잘만 이야기하던입이 반 박자 늦게야 열렸다.

다년간의 팬싸 경험은 다 소용없었다….

"아, 안녕. 문대야."

"음, 누나?"

'미친!'

다짜고짜 반말을 때린 자신을 때리고 싶으면서 누나를 들은 자신을 칭찬하고 싶은 복합적인 심정이 그녀를 지배했다.

"맞아!"

"반가워요. …이거 드실래요?"

"…!?"

문대가 책상 아래에서 빠르게 뭔가를 꺼내어 내밀었다.

…막대사탕이다.

그것도 그냥 편의점에서 파는 공산품이 아니었다. 이쁘장한 동물장식이 붙어서 귀엽고 큼직한 게, 전문점의 냄새가 물씬 났다.

"나 주는 거야…?"

"네. 그거 맛있더라구요."

"…."

캐릭터에 어울린다 어쩐다를 떠나서, 어쩐지 눈물이 왈칵 돌았다.

'왜, 왜 네가 날 주고 있어…'

문대 사정에 아직 정산도 못 받아서 돈도 없을 텐데 뭘 이런 걸 준비했단 말인가.

'저것도 100개나 사려면 돈 좀 들었을 것 같은데…'

그녀는 사탕을 쥔 채로 순간 감정에 잠길 뻔했지만, 다행히 박문대가 쉴 틈도 주지 않고 바로 다시 말을 붙였다.

"그거 제 건가요?"

"어? 어어… 응!"

그녀는 자신이 문대 차례라고 반사적으로 화관을 꺼내둔 것을 깨달았다.

'자기소개 영상에서 닭발 대신 화관 아이템 쓰는 것도 보고 싶었다면서 부탁하는 대화를 짜왔는데…그럴 필요도 없었다. 박문대는 곧장 화관을 잡아다가, 자신의 머리에 호쾌하게 턱 얹었다.

"…!"

"…누나 사진 찍으시죠? 계속 쓰고있을 테니까 걱정 마시고."

박문대는 넋 나간 자신의 홈마에게 쓱쓱 사인을 해줬다.

"성함이?"

"어…. 내 이름."

홈마는 예상치 못한 상황에 당황한 나머지, 자신의 계정명이 아니라 본명을 말해버렸다는 것을 사인이 끝난 후에야 깨달았다.

'문대한테는 계정 이름으로 받으려고 했는데…!'

하지만 이 생각도 다음 문대의 말에 증발했다.

"와주셔서 고마워요. …제가 좀 더 재밌는 성격이면 좋았을 텐데, 입담이 좋은 편이 아니라… 뭐 궁금하신 거 있을까요."

"아니, 음…

아냐 문댕아! 너 성격 충분히 재밌어

…라고 대답해주고 싶었으나, 슬슬 '이동하실 게요'를 외치러 다가오는스탭을 보며 그녀는 반사적으로 빠르게 물었다.

스탭이 계속 빡빡하게 구는 것을 앞에서 목격했기 때문이다.

"M, MBTI 뭐야?"

"그건 해본 적이 없어서 모르는데, 해보고 알려드릴게요."

그 소득 없는 대화를 끝으로, 그녀는 스탭의 손짓에 강제로 책상을 벗어나게 되었다….

아니, 벗어나게 되었어야 했는데…?

"잠시만요."

그녀는 아직 책상 앞에 앉아 있었다.

박문대가 일부러 그녀의 앨범을 한손으로 꾹 누른 채 버티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어어…'

박문대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것처럼 다시 물었다.

"아까 건 대답 못 했으니까 무효로 치고, 다른 궁금한 점은 없으세요?"

순식간에 홈마의 뇌가 돌아갔다.

원래 준비해 왔던 대화 로그의 일부였다.

'문대야 너 웰시코기 탈 쓰고 광고 인증 돌 때 우리 만났었는데 혹시 기억나니?!'

하지만 입은… 본능과 공익에 충실하게 움직였다.

"그, 다, 닭발 말고 좋아하는 음식 하나 딱 들면 뭐야? 다 잘 먹는 건 아는데!"

박문대는 피식 웃었다.

"닭은 다 좋아해요."

"아, 진짜?"

"예. 다음에 한 번 살게요. 누나는뭐 좋아하시는데요? 닭발?"

바, 방금 얘가 뭘 또 산다고 하지않았나? 그리고 방금 닭발 이야기는나한테 장난 건 거지? 어어억.

하지만 시간이 없었기 때문에 홈마는 황급히 대답을 내놓았다.

"나도 닭 좋아해!"

"입맛이 비슷한가 보네요. 좋아요."

'그리고 문대가 더 좋다'고 말하려던 홈마의 뒷말은 박문대의 다정한 대답에 날아갔다.

준비한 모든 주접이 아이돌의 선제공격으로 차단되었다….

"이동! 하실게요!"

"음."

스탭의 재시도에, 이번에는 박문대도 순순히 팬에게 앨범을 보내주었다.

그녀는 간신히 정신을 차리고 한 손을 내밀며 사심을 가득 담아 외쳤다.

"악수 좀!"

"아."

박문대는 곧장 손을 들어서, 악수대신 손깍지를 끼워줬다. 그리고 웃으며 흔들었다.

"…!"

"잘 들어가세요."

"…어어."

세상에.

세상에…!

그녀는 흐늘흐늘 자리로 돌아왔다.

그리고 털썩 앉아서, 생각했다.

'미쳤다 진짜….'

왜 저렇게 침착하고 잘해준단 말인가.

심지어 발성도 좋아서 고함을 지르지 않아도 찰떡같이 대화가 잘 오갔다.

'첫 팬싸라서 성의가 있을 줄은 알았지만! 저렇게! 잘할 줄은!'

문댕이 이런 데 좀 무심한 타입 일거라고 각오한 건 정말 쓸모없는 짓이었다…!

그녀는 다 때려치우고 포효를 지르고 싶었지만, 초인적인 인내심으로참으며 그 대신 카메라를 들었다.

'화관, 무조건 베스트 컷은 내가 찍어가고 만다.'

전투력이 폭주했다. 그녀는 묵묵히 카메라를 조작했다.

뷰파인더 창 너머로 화관을 쓴 박문대가 보였다.

근데 어느새 팬 사인회 스테디 아이템인 토끼 귀도 하나 걸치고 있다. 쫑긋한 하얀 귀가 노란 꽃들 위로 솟았다.

"어!"

어울려!

이후 박문대는 자신을 똑 닮은 솜뭉치 인형까지 받았다. 홈마는 반사적으로 매의 눈으로 크기를 어림짐작했다.

'20cm 제작인가.'

문대는 약간 머뭇거리며 위치를 고민하는 듯했지만, 인형은 곧 어깨 위에 올라갔다.

귀여워!

셋 다 아주 끝내주게 잘 어울리는 아이템이었다. 사방에서 카메라 든 팬들이 문대를 외치며 카메라에 시선을 달라고 종용했다.

"문대야!"

"문댕!"

"박문대 여기!"

박문대는 다음 팬이 앨범을 들고오는 틈을 이용해, 자기 카메라만 귀신같이 찾아내서 눈을 맞춰줬다.

물론 전직에서 우러난 짬이었다.

'헐.'

하지만 그 시간은 순식간에 지나갔다.

박문대의 자기 카메라를 찾아내는 정확도에 놀란 덕분에, 홈마는 팬 몇 명이 사인을 받는 것을 보고 나서야 그 이유를 알아챘다.

'시간을 최대한 써주네….'

자신에게 사인을 받는 팬이 다음 사람 차례가 넘어오기 전까지 남는 자투리 시간을 다 쓸 수 있도록, 끈질기게 버텨준 것이다.

본인이 끝자리라는 것을 고려한 게 분명한 선택이었다.

'우리 문댕은… 아이돌의 별 아래에서 태어났다…. 반박은 받지 않는다…'

천년만년 아이돌을 해야 할 직업자세라고, 홈마는 감동했다.

뷰파인더 너머의 박문대는 이제 머니 건까지 받아서 쏘고 있었다. 흩날리는 가짜 돈 사이의 박문대를 보고 있자니, 정말 현금을 주머니마다 꽂아주고 싶었다.

'평생 은퇴하지 말고 돈길 걸어야돼.'

그녀는 큰세진과 박문대가 서로에게 책상에 떨어진 가짜 돈을 던지는것을 보며, 훈훈하게 생각했다.

문제는 그다음에 발생했다.

이번에 문대에게 사인을 받으러 이동한 팬이 내민 것은… 노란 웰시코기 모자였기 때문이다.

'슬슬 갈아끼려나.'

좀 아쉽지만, 화관 샷을 어느 정도찍었으니 만족할 때도 됐다. 그녀는입맛을 다시며 문대가 웰시코기 모자를 쓰는 것을 기다렸다.

예상대로, 문대는 화관과 토끼 귀를 벗고 모자를 썼다.

하지만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박문대는 자신이 모자를 쓴 것이몇 컷 찍힐 만한 시간이 지나자, 도로 화관과 토끼 귀를 그 위로 장착했다.

"…!"

순간, 홈마의 머릿속에 문대의 발언이 울렸다.

-계속 끼고 있을 테니까 걱정 마시고.

…그리고 정말 박문대는 팬싸가 끝날 때까지 아이템을 '단 하나도' 빼지 않았다.

"…."

"…흐"

팬 사인회가 끝나고 이동하는 차안이 조용했다. 100명과 연달아 떠드느라 지친 놈들이 다 뻗었기 때문이다.

덕분에 조용히 인터넷을 확인할 수있을 것 같다. 나는 작게 한숨을 쉬었다.

'…일단 할 수 있는 건 다 해봤는데.'

그래도 분당 10만 원어치만큼 했다고는 양심상 못 말하겠군.

나는 짧게 몇 사람을 회상했다.

-볼 찔러봐도 돼요…?

-문대야, 애교 삼종! 빠르게!

-이거 제가 달아드려도 괜찮을까요!?

-모닝콜! 모닝콜 한 번만 말해주면 안 될까?

음, 대부분 사전 조사를 통해 예상했던 요청들이었다. 덕분에 당황하지 않고 무사히 클리어한 것 같다.

'좀 민망했지만… 할 만했고.'

가끔 박문대를 별로 안 좋아하는지 시비 걸려는 사람도 나왔는데, 그것도 그냥저냥 괜찮았다.

뭐, 내 얼굴을 주먹으로 뭉개려고 한 것도 아니고.

도리어 자꾸 돈 주고 온 사람들이 역으로 박문대에게 감명을 주려고 시도해서 더 당황했다.

'돈 주는 쪽에서 굳이…?'

나는 웰시코기 탈을 쓰고 와서 '박문대'로 삼행시를 했던 학생을 반사적으로 떠올리다가, 곧 원래 하려던 일을 깨달았다. 반응 모니터링.

"음"

스마트폰이나 켜자.

일단… 테스타의 첫 팬싸는 SNS에서 실시간 트렌드에 들었다.

'이건 어느 정도는 예상했다.'

비공개였지만, 워낙 관심 가진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에 거의 생중계식으로 실시간 글이 올라왔었다.

-애들 팬싸 대응 미쳤어 나보다 애들이 더 많이 말함;; 나 차유진한테 호적 다 털리고 옴

-돌 말고 내 쪽에서 '아 진짜요'를 말할 날이 올 줄은 몰랐다…

-아 테스타 다들 엄청 긴장했엌ㅋ큐ㅠ 너무 귀여워! (짧은 인사 동영상)

-야 아현이한테 모노클 준 거 누구냐? 그저 감사합니다 삼대가 복 받으실 것 (사진)

-두루마기 걸친 청우 보고 가세요 당장 사극 오조오억부작 출연해야함.ㅠㅠ (사진)

대부분 분위기 좋은 첫 팬싸에 대해 즐거워하고, 못 간 팬들이 아쉬워하면서도 실시간 떡밥에 신난 분위기였다.

'포스트잇 금지하자고 건의했던 건 괜찮은 선택 같고.'

아주사 시청자가 많았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그룹에 대한 주목도가 높은 상황이다.

혹여라도 누가 자기 맘대로 조작해서 올릴 수 있는 여지는 안 주는게 맞았다.

'덕분에 쓸데없는 루머는 수면 위엔 없군.'

대신 내가 한 짓이 꽤 화제가 됐는지, 단독으로 트렌드에 하나 올렸다.

[#6 문댕댕 묘기대행진]

…가장 좋아요가 많이 된 글을하나 살펴보자.

: 아아아 여러분 다들 문댕댕 묘기대행진 좀 보세요 팬들이 준 거 자기 머리에 탑을 쌓아놓음ㅋ큐ㅠ 완전 본인 물건에 애착 형성된 댕댕이 재질 아니냐고ㅠㅠ (사진)

박문대가 팬 사인회가 진행될수록 온갖 소품을 머리와 몸에 계속 쌓는컷을 연달아 붙여 편집한 사진이 눈에 확 들어왔다.

'…막판에는 한 다섯 개쯤 겹쳐 쓴것 같은데.'

용케도 안 무너졌다 싶다.

132만 원을 너무 의식해서 쓸데없는 만용까지 부렸나 약간 후회했는데, 웃음이라도 줬다니 다행이다.

흠, 관련 인기 후기들을 좀 더 살펴보자.

-박문대 진짜 미친놈임 와 스탭이 넘기라는데 안 넘기고 끝까지 나하고 손깍지하고 있어줬다 와 청혼할뻔

-문대가 제 저녁밥까지 같이 골라줬다고ㅋㅋ 말씀드렸나요? 진짜 우리집 댕댕인 줄 알았잖아

-팬싸 후기 (7) 마지막으로 문대!

가위바위보해서 이긴 사람 소원 들어주기 하자고 했는데 내가 졌음.

근데 문대가 쓱 보더니 자기 걸 바꿔서 져 줌ㅠㅠ 심장 떨어지는 줄

-문대에게… 뭉댕 솜뭉치를 준 것은… 올해 최고의 순간… 문대가 말랑거린다며 신기해했다구여 자기 손으로 챙겨갔다구 으아악 (사진)

"…."

그… 솜뭉치라고 부르는 인형은, 촉감이 좋아서 스트레스볼처럼 주무르다 보니 얼결에 차까지 챙겨왔다.

지금은 가방에 잘 들어 있고.

어쩐지 오묘한 기분이 되었다.

'받은 사람이 감격해야 하는 거 아닌가…?'

왜 자체 제작까지 해서 만든 물건을 선물해 준 쪽이 감격하고 있냐는말이다.

어쨌든 고마운 일이니 감사하며 다음 글로 넘어갔다. 제일 공유가 많이 된 글이었다.

-아 문대가 첫 팬싸라고 인원수 맞춰서 사탕 준비해 왔어ㅠㅠ 아니 우리 댕댕이 언제 다 커서 이런 것까지ㅠㅠ 누나가 가보로 간직한다! (사진)

'…사인 끝나고 그냥 계속 앉아 있으면 심심할까 봐 요깃거리라도 하시라고 가져간 건데.'

어째 한 분도 안 드시더라.

어쨌든 즐거워하시니 좋은 일이었지만, 그 밑에 방금 달린 글이 문제였다.

└아… 난리나서 뭐 줬나 했더니 사탕이었어요? 전 또 대단한 거라도 준 줄…

└? 님 저 아세요?

└아니요 근데 안타까워서 달아봐요ㅎ 막 주식 사면서 돈 엄청나게 쓰셨을 텐데, 겨우 사탕 하나 준 가성비 아이돌한테 감격하시고…ㅠ 자존감 좀 챙기셔요

└별 이상한 사람 다 튀어나오네; 블락합니다∼

'흐음.'

나는 탭을 조작해서 인터넷 여기저기를 살펴보았다.

확인해보니 슬슬 커뮤니티 인기글마다 비슷한 익명 계정으로 개소리를 달기 시작했다. 타이밍으로 보아 조직적으로까지 느껴지는 행보였다.

-좀 이기적으로 느껴지는 거 나만 그래? 첫 팬싼데 멤버 중에 자기 혼자만 저렇게 준비해 올 줄은;

-겨우 막대사탕으로 가성비 챙기는 것 같아서 꺼림칙함 팬들 놀리나 싶고

-팬싸 온 사람들한테만 준 거지?ㅋㅋ 돌이 나서서 돈 쓴 사람 순으로 팬 계층화시키네… 하

-팬싸템 저렇게 쌓아서 한 게 무슨 의미가 있어? 예쁘지도 않고… 그냥 1위로 데뷔했는데 실제 팀 내 인기가 그만큼 안 되니까 되게 의식하는 느낌임

이럴 줄 알았지.

'어떻게 이 새끼들은 패턴이 한결같냐.'

다만 불지옥 같던 아주사 가 끝나니까 원색적인 말이 잘 안 먹히는 걸 확인했는지, 그나마 눈치 보면서 살살 긁는 것 같았다.

사실 오디션도 끝난 마당에 이런 놈들이야 무시해도 그만이다.

하지만 재밌어하던 사람들한테 초를 치니 문제다.

'빨리 해결해 두자.'

나는 혀를 차며 테스타의 SNS를켰다.

[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 079화]

테스타의 팬 사인회 후기로 SNS가 떠들썩해지자 뒤늦게 우두둑 붙은악성 계정들 때문에, 박문대의 몇몇 팬들은 아주사 PTSD가 도지고있었다.

-대체 왜 이러지?

-찐으로 정신 나간 것처럼 달려드네… 하

-어디서 작당하고 온 것 같은데

안티들은 온갖 커뮤니티에서 교묘하게 왜곡된 논리를 늘어놓으며 박문대에 대한 여론을 선동하려고 노력했다.

주요 논지는 '혼자서만 따로 선물을 준비하다니 이기적', '겨우 막대사탕으로 생색내는 기적의 가성비', 그리고 '팬싸템으로 쓸데없는 관종짓' 정도였다.

물론 제대로 통하는 곳은 거의 없었지만, 방어 자체가 심력을 소모할 일이었다.

팬이 감정적으로 나오면 꼬투리가 잡히기 때문이다.

-좋은 날 이게 무슨 일이냐

-빨리 정리하고 다시 팬싸 달리고싶어…

-매번 지친다 진짜

당황이 피로감으로 바뀌기 직전.

테스타의 계정에 알람이 들어왔다.

안녕하세요 여러분

저는 문대 (강아지 이모티콘)

이것은 오늘의 정산입니다 (사진)

첨부된 것은 받은 팬싸 소품을 따로따로 하나씩 걸친 박문대의 셀카들이었다. 배경을 보니 차 안인 것같았다.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곧바로 추가 알람이 떴다.

더 있어요 (사진)

다른 멤버들의 비슷한 컨셉 사진도 연달아 주르륵 올라온 것이다.

각자가 받은 팬싸 아이템을 바꿔 쓰기도 하며 색다름까지 챙겼다. 사진들이 하나같이 어찌나 구도를 잘잡고 전문성 있게 찍었는지 당혹스러울 정도였다.

-?

-문대야?

-아니 갑자기 이게 무슨 귀한…

팬덤이 갑작스러운 떡밥에 뭐라 반응하기도 전에 또 글이 올라왔다.

다음 타자는 #바로나! (사진)

p.s. 7명 다 할 거예요∼ 많관부

큰세진이 택배를 개봉하는 박문대를 배경으로 턱에 브이를 댄 채 찍은 셀카가 첨부된 글이었다.

택배 안에는 소포장된 색색의 막대사탕들이 들어 있는 게 잘 보였다.

-헐

-미친

그렇다. 애초에 박문대는 이걸 혼자 기획하지 않았다.

아직 개인 팬덤이 뭉친 기조인 테스타 팬덤에서 혼자 이벤트를 하는 걸 경계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물론, 가장 먼저 섭외한 건 팬싸에 자신감이 넘치던 큰세진이었다.

팬들은 순식간에 불타올랐다.

-셀카 폭탄 실화냐 더 터트려다오

-차래문큰 아주사 때 인형탈 이벤트할 때 생각난다ㅠㅠ 우리 애들 진짜 효자야… 사랑한드아!

-팬싸 못 온 팬들도 다 챙겨주는 묘기 좀 보세요 이게 바로 아주사에서 생존한 아이돌이다

-120장 살 걸 대 혜자였잖아 줴엔장ㅠㅠ

그리고 박문대의 팬들은 마음이 편안해 졌다.

이제 무슨 개소리가 나오더라도 두들겨 패서 쫓아낼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박문대 혼자만 저러는 거 난 보기 안 좋은 것 같아

└응 내일은 큰세진이가 해∼ 릴레이로 다 같이 기획했거든! 우리 테스타 팬사랑 넘치는 거 보기 좋지않니 (사진)

-저게 뭐야;; 팬싸에서 저러면 템준 사람들 기운 빠지겠다 그냥 막머리에 쌓네…

└하나씩 걸치고 찍을 시간 줬어! 그리고 템 하나하나 따로 착샷 올려줬다? 심지어 다른 멤버들도 다같이ㅠㅠ 같이 볼랭? (링크)

이러면 더 길게 말할 것도 없이 슬그머니 사라지거나 '이미 삭제된 댓글입니다'를 만나볼 수 있었다.

-아 사이다 맛 좋다

-문댕댕 여기 사이다 한 그릇 더 주소! (탕!

-샤따 내려 아 즐거웤ㅋㅋㅋㅋ

-문댕 천재 반박 안 받고 어쩌구

-문댕댕은 매일 셀카로 생존신고 해야하며 안 올리면 무슨 무슨 법에걸림 암튼 그럼

팬들은 다음 날 팬 사인회까지 신나게 달리고 난 뒤, 속 시원한 채로 달게 잘 수 있었다.

-큰세진이 비눗방울 장난감 줬엌ㅋㅋㅋ

-팬싸 현장 졸지에 마법소년 세트장 재질됨

-넘 귀여워 문대 사탕에 이어서 큰세도 꼭 자기 같은 것만 골랐네ㅠㅠ (사진)

그리고 그 축제나 다름없는 분위기 속에서 많은 이에게 엄청난 갈등이찾아왔다.

물 들어올 때 노 저어보겠다는 식으로 소속사가 추가 팬 사인회 일정을 발표한 것이다.

-다음 팬싸 일정 뜸 (링크)

└초동 다 지나고 잡는 거 실화냐 소속사 진짜 알못… 미칠 노릇

-아 추가 팬싸 주말이네 너무 가고 싶어ㅠㅠ

-팬싸 진짜 한번은 가봐야 하는거 아님?

-다음 앨범에는 컷 더 오를 듯 지금 아니면 적금 깨야 하지 않을까.

얼마 뒤, 180장으로 오른 추가 팬싸 컷에 팬 가수 할 것 없이 다들 기함하게 된다는 것은 아직 아무도 모르는 일이었다.

덜컹덜컹.

몸이 움직여 잠에서 깼다. 앞에서 잠긴 목소리가 들렸다.

"…흠, 도착한 건가요?"

"아직 좀 남았어."

"예…."

졸음에 잠긴 머리에 류청우와 매니저의 대화가 스치고 지나갔다.

'…맞다.'

지금 이동 중이었지.

조금만 생각을 멈췄다가는 다시 잠에 들 것 같아서, 몸을 움직였다.

일단 현대인의 친구 스마트폰을 켰다.

[금 AM 4:35]

'출발한 지… 두 시간 반짼가.'

정말 스케줄 한번 대단했다. 나는 지근거리는 머리를 훔쳤다.

'이번 주는 사전녹화 없다고 안심했더니, 예능을 새벽에 찍냐.'

그것도 경상도까지 가야 할 줄은 상상도 못 했다. 덕분에 어제 팬 사인회 정산은 손도 못 댔다.

'뭐 있는 거라도 올려야 하나.'

스마트폰으로 테스타 계정에 접속해서 약간 갈등하다가, 적당히 숙소에서 찍은 단체 사진을 몇 장 올렸다.

저는 문대 (강아지 이모티콘)

테스타는 잠옷을 맞췄습니다. (사진)

'…흠. 좀 과한가.'

올리고 보니 남의 잠옷이야 어찌됐든 무슨 상관인지 싶기도 하다.

아이돌에게 TMI를 알려달라는 사람은 많지만, 막상 풀었을 때 실망하는 경우도 많으니 정보를 잘 선택해야 했다.

'이번 반응을 보고 범위를 조정해야겠군.'

업로드를 마치자마자 옆에서 인기척이 났다.

"으으음…."

선아현은 비몽사몽 중에 눈을 뜨다가, 완전히 잠에서 깬 나와 눈이 마주치곤 화들짝 놀랐다.

"-! 도, 도착?"

"아니."

"어…."

"더 자라."

그렇게 말한 뒤 나도 도로 눈을감았다.

아직 도착까지 두 시간은 남았으니, 조금이라도 더 잘 생각이었다.

저놈 성격에 옆 사람 깨어 있으면 못 잘 게 분명하기도 했고.

"…."

하지만 눈 붙였다 떼니 이미 목적지에 도착해 있었다. 피로가 시간을 잡아 먹었다.

게다가 기상천외한 요구가 기다리고 있었다.

"안대요?"

"예. 어떤 직업을 1일 체험하시게 될지 알 때 리액션이 중요해서요."

"음, 알겠습니다∼"

매니저가 나서서 정리해버린 덕분에 선택지 없이 안대를 차게 되었다. 그 와중에도 밖이 보이지 않도록 철저히 막더라.

별 상관은 없다만, 안 그래도 졸린 놈들에게 안대를 채우니 몇 명은 제정신이 아닌 것처럼 보였다.

거의 졸기 직전이던 차유진은 옆구리가 찔리고 나서야 정신을 차렸다.

"으흐… 앗!"

"자, 가자!"

그대로 제작진의 안내에 따라 비척비척 이동했다.

"이제 안대를 벗어주세요∼"

"넵!"

그리고 안대를 내린 뒤 보인 광경웬 호수와 벌판이었다.

"…?"

'뭐냐.'

당황한 건 당연히 나뿐만은 아니었다.

"…저 깨어 있죠?"

"여기 어디예요?"

뭐라 더 말을 꺼내기도 전에, 웬 이동식 현수막이 스탭들에 의해 테스타의 정면에 등장했다.

[축! 국민주식 테스타 방문!]

[한국 조류가 당신을 환영합니다!]

[in 주남저수지]

오색찬란한 무지갯빛 새 그림이 펄럭 였다.

"…?!"

밑줄 쳐진 맑은고딕 폰트가 번쩍였다.

"…?"

고개를 돌리니 이세진까지 입을 벌리고 현수막을 보고 있었다. 상황을받아들이지 못하는 모습이다.

그리고 누가 무슨 말을 꺼내기도 전에, 웬 인자한 인상의 장년 남성이 허허 웃으며 나타났다.

"안녕하세요, 여러분∼ 조류 연구가 김정원입니다!"

"아, 안녕하십니까!"

"안녕하셔요!"

그간의 서바이벌 촬영 경험이 어디 가지는 않았는지, 다들 순식간에 정신을 차리고 열심히 고개를 박았다.

'…잠은 다 깼군.'

하지만 여전히 상황을 이해하지 못한 얼굴들이다.

조류 연구가는 허허 웃으며 악수를청했다.

"여러분이 오늘 여기서 조류 연구가 체험을 한다고 들었어요∼"

"예? 예. 저희가 1일 직업 체험을한다고…."

"예예. 그렇지요∼ 오늘 저와 함께 조류 연구가의 기본 작업을 해봅시다∼"

"조류 연구…?!"

상상도 못 했던 직업이 튀어나오자 이놈 저놈 할 것 없이 당황했다. 그러나 조류 연구가는 신경도 쓰지 않았다.

"아, 참 매력적인 친구들이죠. 오늘 그 친구들을 더 자세히 관찰해보는시간을, 저희가 가질 겁니다∼"

"어…."

"철새 촬영을 할 거예요!"

"헉"

순식간에 카메라가 배부되었다. 테스타는 현수막을 끌고 온 스탭들이일사불란하게 나눠주는 물건을 받아들고서야 정신을 차렸다.

"아, 아아!"

"새 좋죠!"

"열심히 하겠습니다!"

조류 연구가는 흐뭇하게 웃었다.

"하하! 젊은 친구들이라 기운이 좋습니다∼"

"하하하!"

드디어 화목한 웃음이 터졌다. 선아현이 안심한 듯, 약간 기대된다는 얼굴로 슬그머니 말을 걸어왔다.

"재, 재밌을 것 같지…?"

"그러게. 문대 너 사진도 잘 찍잖아!"

"…."

이놈들… 당연하지만 잘 모르는군.

하지만 카메라를 확인하고 간신히대답을 바꿨다.

"…보람 있겠네."

"하하, 그렇지!"

그래. 정말, 보람만 있을 것이다….

나는 이름도 기억 안 나는 동아리선배에게 들었던 눈물의 썰을 떠올렸다.

-X발, 철새 찍고 싶으면 무조건 겨울이야.

-여름에는… 철새 도래지도 별로없고.

-더워서 뒤질 것 같거든….

"…."

오후 음방에 이놈들이 제정신으로 출연할 수 있을지, 벌써부터 걱정되는군.

"하하하! 그럼 이동하죠!"

"넵!"

조류 연구가의 웃음소리가 슬슬 석사를 포획하는 교수처럼 들렸다. 뭣모르는 학부생 같은 테스타놈들은 졸졸 연구가를 따라 이동했다.

"와, 날씨 좋아요!"

"이제 해가 일찍 떠서 쨍쨍하네."

얼마 후면 그늘만 간절히 바라게 될 놈들의 대화를 들으며, 나는 묵묵히 발을 옮겼다.

그리고 계속 옮겼다.

…계속.

"…?"

끝나지 않는 행군에 당황한 놈들 사이로 류청우가 총대를 멨다.

"선생님?"

"예?"

"음, 저희 얼마나 더 이동하면 될까요?"

조류 연구가가 밝게 웃었다.

"하하! 철새가 보일 때까지 걸어야죠!"

"…!"

"아∼ 혹시 언제쯤 보일까요?"

큰세진이 얼른 치고 들어왔다. 조류 연구가는 허허 손사래를 쳤다.

"어허∼ 그걸 알면 신이지∼"

"…!"

슬슬 분위기를 파악한 놈들이 얼어붙기 직전, 큰세진이 얼른 다시 입을 열었다.

"역시 그렇죠∼? 그래도 신께서 보우하사 운이 좋아서 얼른 보면 좋겠네요∼ 하하! 그치?"

예능에서 분위기 망치지 말고 웃기나 하라는 신호였다.

"아하하!"

"맞는 말씀이십니다."

분위기는 억지로 다시 화기애애해졌다. 그리고 다시 행군이 이어졌다.

터벅터벅.

끝없는 저수지와 녹색이 이어졌다.

이대로 계속 걷기만 하다가는 예능이 아니라 체험 다큐멘터리가 될 분위기였다.

다행히 조류 연구가에게 끊임없이 큰세진이 말을 걸어서 분량을 뽑고있었다. 싹싹하다 보니 어르신 취향에 딱 맞았는지 대화가 잘 이어졌다.

"그래서 뱁새들이 여름에는 요롷∼게 홀쭉하죠."

"아∼ 그럼 저희가 인터넷에서 주로 보는 사진은 여름 건 아니겠네요!"

덕분에 리액션만 하면서 이동할 수있었다.

'제대로 밥값 하는군…'

하지만 무슨 말을 해도 답변이 뱁새 이야기로 돌아가는 통에 무슨 분량이 나올지는… 모르겠다.

그리고 어느 시점.

조류 연구가가 팔을 들었다.

"저∼기 버드나무 보이시죠? 새가 있네요!"

"오오!"

"와!"

드디어 행군이 끝났다는 생각에 순식간에 얼굴들이 밝아졌다. 차유진은 대놓고 그쪽으로 달려가려 했다.

"어어, 너무 가까이 가면 안 됩니다! 새들 도망가요!"

"오, 넵…."

조심조심 다시 걸어가려는 차유진에게, 조류 연구가가 벙긋 웃으며 어깨를 턱 잡았다.

"자, 앉아서 이동합시다∼"

"…."

잠시 뒤.

모두가 오리걸음으로 물가를 향해 이동하기 시작했다.

'무슨 훈련소 체험이냐.'

이 예능 왜 1화가 망했는지 알 것같다.

[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 080화]

제작진까지 다 같이 극도로 조심하면서 쭈그려 앉아 여름 철새 근처까지 이동한 결과, 드디어 카메라를 들 수 있었다.

하지만 이 '근처'라는 것은… 어디까지나 상대적인 개념이었다.

"아, 여기서요?"

"그럼∼ 더 접근 안 하는 게 좋아요."

육안으로 새가 제대로 보이지도 않는 거리던 것이다.

옆에서 카메라를 들어보던 류청우가 난감하게 중얼거렸다.

"음, 차라리 쏴서 맞추는 거면 하겠는데…."

"…?"

양궁 금메달 출신만 할 법한 발상이었다.

그 와중에 옆에서 덜컥덜컥 카메라를 만지던 차유진이 열심히 셔터를눌렀다.

'…저거 초점도 안 맞춘 것 같은데.'

모르겠다. 이미 개판이었다. 나는한숨을 쉬며 받은 카메라를 들었다.

'옛날 생각나는군.'

돈이 없었다 보니 동아리 공용장비 대여해서 찍고 다녔었다. 돈 좀 만진 다음에는 졸업하는 동아리 선배 중고 장비 싸게 받았고.

나는 보급형 카메라를 만지작거리며 노출값을 잡았다.

'어디… 좀 당기면.'

조작감과 해상도가 그렇게 구리진 않았다. 대충 쓸 만한 게 몇 컷 나온다.

배가 하얀 남색의 작은 새였다. 성격이 포악한지 부리로 나뭇가지를 던지고 있다.

…근데 대체 저 조류가 무슨 종인지는 모르겠다.

'차라리 카메라 기종을 맞추는 게 편하겠군.'

나는 한숨을 참고, 조류 연구가에게 다가가 작게 물었다.

"찍은 것 같은데, 이게 무슨 종인지 모르겠습니다."

"…?! 아, 아하∼ 그래요?"

조류 연구가의 눈이 휘둥그레지더니, 곧 빠르다며 칭찬을 주절거렸다.

'…이 사람 방금 놀란 것 같은데?'

하지만 뭘 더 생각하기도 전에 다른 놈들이 끼어들었다.

"오∼ 역시 문대!"

"저도 보고 싶습니다."

"어, 어때?"

나름대로 조용히 하겠답시고 몰려서 수군거리는 놈들에게 카메라를 넘겨주자, 신나서 자기들끼리 보면서 감탄하기 시작했다.

"자, 잘 나왔다. 귀, 귀여워."

"역시 문대야 금손이지."

"멋있어요!"

"선생님, 이건 무슨 새인가요?"

조류 연구가가 검지를 치켜들었다.

"…그걸 알아내는 것이 오늘 우리친구들의 목표입니다!"

"아하!"

"철새 촬영이 끝나면 사진을 보며 알아볼 시간을 가질 겁니다∼ 자, 그럼 또 이동해 볼까요∼"

"예?"

"시간이 많지 않으니, 다양한 곳에서 여러 철새를 찍어봅시다!"

"넵…."

그리고 다시 강행군이 시작되었다.

'망할 것 같군.'

재미는 눈 씻고 찾아봐도 없을 분위기였다. 나는 한숨을 쉬며 자리를털고 일어났다. 여전히 내 사진을들여다보던 선아현이 황급히 카메라를 돌려주었다.

"여, 여기."

"음."

나는 카메라를 받아들다가, 별생각없이 선아현을 한 컷 찍어봤다.

"…!"

"잘 나온 것 같은데."

선아현은 확실히 자연광을 잘 받았다. 나중에 갈 때 받아다가 SNS에 업로드나 해야겠군.

"나, 나도…."

"마음만으로 고맙다. 이동하자."

" 으,으응…."

슬슬 도로 졸리기 시작했다. 촬영에 그나마 가졌던 기대도 없어진 탓인 듯했다.

'이대로 걷다 끝인가.'

…라고 생각한 것이 화근이었나.

"자… 저기 보이는 새는 좀 더 접근해도 괜찮을 것 같네요. 가봅시다."

"넵!"

조류 연구가의 지시에 따라 물가의 커다란 허연 새에게 접근한 지 5초뒤.

갑자기 새가 퍼덕거리며 괴성과 함께 달려들었다.

"…!?"

"어어어억."

"자, 잠깐만!"

말 그대로 미친 듯이 쫓아오는 새를 피해 순식간에 사람들이 흩어졌다.

새는 가장 가까이 다가왔던 차유진과 김래빈을 쫓아 질주하기 시작했다.

'X발.'

이게 대체 무슨 난장판인가.

"선생님! 이거 어떡해요!"

"HELP!"

"아니, 보통 새들은 경계심이 많아서 이런 일은 드문데… 신기하네요!"

"으아아아!"

차유진이 거의 울 것 같은 얼굴로 새를 피해 굴렀다. 아비규환이 따로없었다.

그리고 나는 상황을 깨달았다.

새가… 달리네?

"…."

'조류 연구가'에게 다가가서 말을 걸었다.

"…이거 뻥이죠?"

"예?"

"저거 새 아니잖아요."

그 순간, 차유진을 덮친 큰 새가 외쳤다.

"잡았다!"

"…!"

순간, 새 모가지가 꺾이며, 안에서 사람 얼굴이 튀어나왔다.

"히이익!"

탈이 리얼해서 좀 징그러웠다. 차유진의 반응이 완전히 이해가 갔다.

"짠! 일하는 인간, 곽정원의 Prank 쇼였습니다!"

"흐어어어…."

차유진이 길바닥에서 녹아내렸다.

모가지 따인 새 탈을 뒤집어 쓴 여성이 깜짝 놀라 외쳤다.

"아이고, 어떡해!"

잠시 뒤, 히죽히죽 웃는 제작진의 안내에 따라 저수지 근방 카페로 이동했다.

MC는 세팅된 자리에 앉자마자 사과부터 했다.

'이런 쇼 국룰이지.'

"아니, 제일 겁 없어 보이는 친구들이라 쫓아갔는데… 둘 다 너무 놀란 것 같아서 미안해요."

"…괜찮습니다…."

"무서워요."

김래빈은 넋 나간 표정으로 사과를 받았지만, 차유진은 여전히 MC와최대한 멀리 떨어져 앉아서 멤버들의 뒤로 숨었다.

다만 내 옷은 잡아당기지 말았으면좋겠다. 목이 졸렸다.

'공포영화는 잘 보더니.'

역시 체험은 또 다른 이야기였나보다.

어쨌든, MC는 충분히 상황이 정리됐다고 생각했는지 촬영 진도를뺐다.

"이제 다들 깨달으셨겠지만, 저희 일하는 인간 은 사실 본격 깜짝카메라 방송이었습니다∼"

"아아아…."

신음과 함께 박수를 쳐주는 테스타를 보며 MC가 껄껄 웃었다.

"그, 그럼 원래 1화는…?"

"그 선공개화로 시청자분들까지 낚은 거죠! 사실 일하는 인간 도 그냥 줄임말이고요, 본래 타이틀은…1절만 하는 인간 입니다!"

"…?!"

선아현은 입을 떡 벌렸다. 그리고 나도 혀를 깨물뻔했다.

'저건 들어본 이름 같다.'

하필 이름까지 바꿔서 낚이는 최초 출연자가 될 줄이야.

"자, 일하는 인간 의 진정한 타이틀, 1절만 하는 인간 을 처음 체험해 보신 느낌 어떠신가요?"

순식간에 봇물 터지듯이 말이 튀어나왔다.

"그 현수막! 그거 일부러 그렇게 만드신 거죠!"

"너무 걸어서 왜 그럴까 고민했는데!"

"오리걸음도 필요 없던 건가요?"

"아하하! 다 맞아요∼ 다 맞아∼"

MC가 웃으며 즐겁게 커피를 들이켰다. 나는 한숨을 참으며 한마디얹었다.

"조류 연구가분도 가짜셨나요."

"당연히! 우리 멋진 연기자분이시죠∼"

"어쩐지 이상했어요! 계속 뱁새 이야기만 하시더라고!"

큰세진의 말에 제작진까지 모두 웃음이 터졌다.

"아니, 애초에 여기 겨울 철새 찍는 곳이에요∼ 여름 철새 찍으러 굳이 여기까지 안 와. 걔네 퍼져서 살아. 경기도에도 있어!"

"아아…."

류청우가 저렇게 대놓고 민망함에 고통스러워하는 꼴은 또 처음 본다.

나는 묵묵히 음료를 마셨다. 아니면 나도 저러고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다행히 소속사가 바보는 아니었는지, MC는 이후로 테스타의 앨범과 활동에 대해 꽤 길게 잡담을 이어줬다.

류청우는 괴로워하면서도 홍보를 위해 성실하게 대답했다.

'내가 리더가 아니어서 다행이지.'

역시 의무만 있는 감투는 피하고봐야 했다.

어쨌든, 그 잡담 후에는 타이틀 곡중 하나도 촬영할 수 있었다.

시골 감성 카페에서 공연한 뒤 스탭들의 박수를 받는 것은 나름대로 독특한 경험이었다.

"세상에, 너무 멋있어요! 역시 오디션 합격자네!"

"후, 감사합니다!"

사방으로 고개를 꾸벅꾸벅 숙이는 테스타를 보며 MC가 밝게 웃었다.

"오늘 프로그램 스타트 재밌게 끊어줘서 고마워요!"

"저희야말로 감사합니다!"

"재밌었습니다!"

마무리는 훈훈했다. 예능인데 안 훈훈하게 끝낼 수는 없겠다만.

막판 가서는 차유진도 정신 차리고 꾸벅 인사는 했다.

"새 무서워요."

"하하하!"

MC는 농담인 줄 알고 웃었겠지만, 차유진은 깨끗한 진심일 것이다.

'뭐… 꼬투리 잡힐 정도는 아니니상관없겠지.'

저게 말한다고 눈치껏 할 놈도 아니니까.

그때, MC가 제작진으로부터 신호를 받더니 손바닥을 치며 말을 이었다.

"자, 여러분! 원래 드리기로 했던 일당은 그대로 드립니다∼"

"네?"

"비싼 점심밥! 여러분 일당만큼 잔∼뜩 가져왔습니다∼"

"…어어어!"

"헐!"

불판과 한우가 등장했다.

그리고 모든 악감정은 깨끗이 씻겨 내려갔다. 소고기의 위력이었다.

"많이 드셔요!"

"가, 감사합니다!"

멤버들은 얼떨떨한 표정으로 소고기 앞에 앉았다. 이것도 낚시는 아닌지 의심하는 기운이 남아 있었다.

그러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고, 한우 등심은 최근 반년 동안 먹은 것 중 가장 맛있었다.

'…괜찮네.'

출연료까지 받은 걸 생각하면 알찬 스케줄이었다.

'직접 당한 차유진은 좀 다를 수도 있겠다 싶다만.'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차유진이 속삭였다.

"좋은 사람이에요."

"…그렇지."

배부른 차유진의 진지한 말에 맞장구를 치자니, 이 모든 촌극이 어떤 예능으로 구성될지 감이 오질 않았다….

'…모르겠다.'

욕먹지만 않으면 됐다. 나는 소나 입으로 가져갔다.

앞에서 매니저가 제발 그만 먹으라는 신호를 멤버들에게 보내고 있었지만, 선아현 외에는 아무도 신경쓰지 않았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일요일 오후.

테스타의 음방 2주 차가 끝났다.

팬들은 슬슬 MV에 나오지 않은 의상들이 음악방송과 행사 등지에서 등장하는 것을 보며 즐거워하고 있었다.

-뮤직밤 연핑크 하복은 전설이다… (캡처)

-발카를 뚫고 나오는 검은 야구복의 박력을 보고 얼른 테스타에 입덕하세요 여러분 지금 입덕하면 주식살 필요 없이 덕질 가능 (동영상)

-테스타 박문대 2X0630 오성 기업행사 (사진)

오성 베어스 야구 유니폼 입었어요ㅠㅠ 등번호도 11로 야무지게 챙겼다!

일 못하는 소속사에 대한 불만이 간헐적으로 터져 나왔지만, 전체적으로 즐겁고 큰 사건 없이 컨텐츠 많은 활동을 즐기는 분위기였다.

다만 예능에 목마른 사람들이 많았다.

-리얼리티 좋은데 대형 예능도 좀 나왔으면 좋겠다

-토크쇼 같은데 나와서 귀여움 받는 게 보고 싶어….

-아 우리 애들 다 캐릭터 있어서나오기만 하면 대박인데 왜 소식이 없냐ㅠㅠ

이 상황에 웬 듣도 보도 못한 예능에서 '테스타'의 출연 소식을 기사로 뿌린 것이다.

[국민 주식 테스타, 첫 예능은 TVC 신작 일하는 인간]

[일하는 인간 의 첫 번째 게스트는? 아주사 의 테스타]

-?

-이게 무슨 예능인데요?

-오보인가

-신작?

하지만 곧 위튜브로 선공개된 1화를 보고 온 사람들의 분노로 SNS가가득 찼다.

-ㅋㅋㅋㅋㅋ T1이 새끼들 지들 프로그램 홍보용으로 우리 애들 쓰려는 거네

-1화 X노잼이던데 미쳤나?

-예능 보는 사람들 사이에서 망작으로 이미 입소문남ㅠㅠ

- 진짜 일 못 한다… 하…

물론 길게 가지는 않았다. 공개적으로 한탄해 봐야 쓸데없이 어그로들에게 먹잇감만 주는 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수면 아래에서만 검색이 안되는 한탄글이 넘치고, 기사 댓글에서는 이런 반응이 대세가 되었다.

-와! 테스타가 나와서 이 프로그램도 흥하겠다!

-테스타 드디어 리얼리티가 아니라 다른 프로에서도 보겠네

-본방사수 갑니다∼

물론 이 일은 차곡차곡 적립되어서, 만일의 경우 활화산처럼 터질것이다.

그러나 팬들의 열받음이 가시기전, 그날 밤에 일하는 인간2화 선공개가 떴다.

[테스타 나오는 일하는 인간 2화 선공개]

: 떴다 (링크)

-벌써 뜸?

-이거 목요일 방송 아니야?

의아해하는 사람들이 링크를 클릭하자, 이런 제목이 떴다.

[미안하다! 사실 이름도 1화도 낚시였다! I 낚는데 진심인 PRANK쇼 1절만 하는 인간I 첫 번째손님은 테스타! I 2화 선공개]

썸네일은 저세상 감성의 현수막을 보고 굳은 테스타의 멤버들이었다.

-?

-이거 뭐야

-?ㅋㅋㅋㅋㅋㅋㅋ

사람들은 혼란스러워하면서도 황급히 재생을 클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