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9화]
류청우는 애매한 얼굴로 되물었다.
"…말을 타고 활을… 쏜다구요?"
"그래!"
"우와∼"
"말 좋아요!"
"…혹시 청우 때문에 섭외된 건가요?"
배세진의 질문에 매니저는 고개를저었다.
"아니야. 이거 그 뭐냐… 종방한 아이돌 올림픽 비슷하게 KBC에서 만든 거라 그런 포맷이야. 아마 웬만한 아이돌들 다 나올걸?"
"아하∼"
안 나가면 음방 출연에 지장이 있을 거란 뜻이군. 잘 알겠다.
"어, 근데 명절 다 지나갔는데 지금 해요?"
"뭐, 방송사 내부 사정이 있었나봐."
" 으음∼"
대부분의 멤버는 납득했지만, 류청우는 여전히 오묘한 표정이었다.
"형. 문제 있어요?"
"응? 음… 좀 걱정이 되네."
아, 후유증 때문인가.
통증이 없어도 그냥 상황 자체가 꺼림칙할 수도 있겠다 싶었다. 이런 사람 우르르 불러서 육체노동 시키는 예능은 언제나 부상 위험이 있으니까.
하지만 이번엔 매니저가 애매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음… 그게 말이다."
"…?"
"청우는… 출전 금지야."
"…!"
"게임이 안 될 거라고 방송 쪽에서 거절했어. 대신 시범만 한번 보여달라네."
"허 억."
믿을 수 없이 상식적인 판단에 멤버들이 경악했다. 은근히 믿는 구석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게 분명했다.
하지만 류청우의 표정을 나아지지 않았다.
"차라리 제가 하는 게 나을 것 같은데… 형, 저희 이거 안 나갈 순 없는 거죠?"
"…으음, KBC에 계속 출연하려면 아무래도 힘들겠지? 왜?"
류청우가 고개를 저었다.
"너무 위험해서요. 말을 타는 것도 힘든데, 그 위에서 활까지 쏘는 건더 위험하죠. 훈련 기간은 얼마나 확보됐어요?"
"…가서 배울 거라고 하던데…."
"…."
"…잠시만."
매니저는 우리를 일단 차에 태운뒤, 주차장에서 회사와 꽤 긴 통화를 하는 것 같았다.
그러곤 꽤 밝은 얼굴로 다시 차에탔다.
"아, 걱정 마 얘들아. 준비 다 잘됐대."
"오…."
"그래도 KBC 공영방송이잖아. 무리한 일이나 위험한 일 안 시킨다니까 해보자!"
저렇게까지 호언장담하는 것을 보니 뭘 듣긴 한 모양이다. 구체적으로 설명 안 해주는 걸 보니 리액션이 필요한 것 같고.
'승마 국가대표라도 불렀나.'
설마 후유증으로 국대 은퇴한 아이돌 앞에 현직 국대를 데려오는 X신짓거리를 훈훈함으로 포장하지는 않겠지.
하도 Tnet의 어마어마한 방송국놈들을 만나다 보니 내 쪽에서 사서각을 재고 있다.
"그리고 다른 종목도 다양하게 한다더라, 청우는 거기서 활약하면 될것 같다!"
"음, 알겠습니다…."
류청우는 여전히 찝찝하다는 얼굴이었지만, 결국 수긍했다.
그리고 촬영 당일, 엄청난 꼴을 보게 된다.
촬영지는 무려 대관령이었다.
더 재밌는 건 여기까지 상상도 못한 복장을 하고 갔다는 것이다.
"화랑이요?"
"그래. 이 프로그램 컨셉이 신라 화랑끼리 경합하는 거래!"
"와…."
아이돌 올림픽하고 차별화하려고조상님까지 동원했을 줄은 몰랐다.
덕분에 서울에서 화랑 복장 챙겨서 메이크업과 헤어까지 받고 대관령으로 실려 갔다.
-머리 망가지니까 너무 팍 기대면 안 돼요!
목 부러지는 줄 알았다.
그리고 도착한 촬영지.
분홍색 회전목마가 돌아가고 있었다.
"…?"
"저기?"
"여러분이 탈 말입니다!"
"…!"
멍한 표정이 된 멤버들의 얼굴을 카메라가 열심히 따갔다.
그리고 잠시 뒤, 활이 보급되었다.
알록달록한 장난감 활이었다.
이 사극 복장에 그 활을 들고 있는 모습이 언밸런스의 극치였다.
"…."
"…조상님 화내시는 거 아니냐?"
그러게.
어쨌든, 덕분에 촬영은 KBC의 약속대로 안전하게 진행되었다.
화랑 의상을 정성껏 차려입은 아이돌들이 블링블링 빛나는 회전목마에 타서 장난감 활로 동물 캐릭터 인형을 맞히는 건 정말 희한한 삼중 복합 개그였다.
'대체 왜 대관령까지 사람을 불렀냐.'
그냥 아무 테마파크에서나 해도 상관없지 않은가.
그 꼴을 구경하던 큰세진이 킬킬 웃더니 기지개를 켰다.
"그래도 여기까지 팬분들은 안 불렀네. 그거 진짜 서로 고생이라던데."
"아아."
기억난다. 스케줄 안 맞아서 찍으러 가본 적은 없는데, 그것도 찍어다 팔던 놈들 꽤 있었다.
"문대문대, 러뷰어 소식 업로드용으로 사진이나 쟁여두자."
"그럴까."
흠. 이건 꽤 괜찮은 제안이다.
"오∼ 적극적인데? 사실 문대도 화랑 복장이 마음에 들었던 거구나∼자기가 좀 멋있게 느껴지는 느낌? 그런 건가?"
이건 짜증이 좀 난다.
"나, 나도…."
"사진 찍으십니까?"
"저 머리 볼래요!"
끼어드는 놈들까지 포함해서 단체컷을 몇 장 찍고 있자니, 주변에서 시선이 느껴졌다. 다른 아이돌 팀이다.
'음악방송 복도랑 똑같군.'
여긴 대놓고 다 같이 대기하다 보니 더 사적 친목을 쌓기 좋은 방향이었다. 심지어 팬석도 없으니까.
다만 이놈들은 썩 다른 그룹에 관심이 없어 보였다.
심지어 큰세진까지도 그랬다. 아마 여기 참가한 아이돌 중에 테스타랑 지표가 비슷한 수준도 없으니 깔끔히 손 턴 것 같았다. 인사만 싹싹하게 하고 이후로는 쳐다도 안 본다.
'진정한 성적충이라고 해야 하나.'
나도 남 말할 처지는 아니다만…이 새끼는 진짜 대단한 난놈이다.
뭐, 덕분에 말 거는 사람이 없는건 편하긴 했다.
그렇게 평화로운 대기시간을 보내고 난 뒤.
"이번 조는∼ 아 유명하죠, 국민 주식! 테스타 화랑들입니다!"
공영방송에서 타 케이블의 극한 자본주의 캐치프라이즈를 써도 되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우리 차례가 호명되었다.
형평성 때문에 제외된 류청우와 5명 정원상 자진해서 빠진 배세진은 대기로 남았다. 다음 종목에 참가하겠지.
"잘하고 와. 조심하고."
"…네."
저 회전목마를 보고도 조심하라는말이 나오냐는 생각이 들었으나 류청우의 사연 빔을 맞고 사라졌다.
"갑시다∼"
그리고 회전목마에 올랐다.
안전띠를 착용하고, 문제 발생 시신호를 주면 회전목마를 중지시킬수 있다는 설명 뒤에 회전목마가 돌기 시작했다.
-따랑땅땅따라라랑 차르르∼ 땅따라랑∼
깜찍한 오르골 소리가 울리며 회전목마가 오르락내리락 돌기 시작했다. 자괴감이 든다.
그리고 여기서 룰 하나가 더 추가된다.
"자 테스타 화랑 여러분∼ 활 쏘려면 뭘 해야 하죠?"
"퀴즈!"
"정답을 맞혀야 합니다!"
그렇다. 활을 무한으로 쏠 수 있는게 아니라, 문제를 맞히면 10초간 쏠 수 있다.
그래서 가장 짧은 시간 내에 다섯개를 맞히는 그룹이 우승하는 구조였다.
"그렇죠, 문무를 모두 갖춘 화랑의 낭도로서 여러분은 정답과 표적, 타이밍까지 모두 맞혀야 합니다∼"
"타이밍은 맞히는 게 아니라 맞추느…."
"하하하! 문제 주세요!"
큰세진의 말에 MC를 맡은 탤런트가 바로 손을 들고 외쳤다.
"자 첫 번째 문제, 인물 맞히기입니다! 가장 유명한 화랑 출신 중 한명으로, 신라의 삼국 통일을 이끈 장군입니다. 황산벌 전투에서 계백이 이끄는 군대를 물리친 이 장수의이름은?"
"…?"
갑자기 문제 난이도가 왜 이래.
특별히 어렵다는 건 아니지만, 직전 그룹에게는 지금 우리가 있는 곳의 지명을 말해보라는 수준의 문제만 냈었다.
'케이블 출신이라고 엿 먹어보라는건가…?'
KBC가 얼간이도 아니고 그건 아니겠지. 그냥 운 문제일 것이다.
그 와중에 환장하게도 차유진이 제일 먼저 손을 들었다는 게 문제다.
"황산벌은 어떤 벌…."
"정답! 김유신 장군님!"
"아, 박문대 화랑∼ 정답입니다!"
다행히 '황산벌'에서 오디오가 물리게 만들었다.
'살았다.'
한숨을 쉬며 활을 들었다.
"자, 지금부터 10초! 시작합니다!"
"어어어?"
그리고 농담처럼 회전목마가 빨라졌다. 거북이처럼 움직이던 목마는 갑자기 단체 사이클 타는 헬스장처럼 폭주하기 시작했다.
아까 기다리면서도 봤지만 정말 웃기겠다는 열망이 넘쳤다.
"이거 생각보다 너무 빠른데요?!"
"하하하! 자∼ 하나!"
그리고 거짓말처럼 차유진은 곧바로 인형 하나를 맞혔다.
"하나!"
나는 한숨을 쉬며 장난감 활을 겨누었다.
그리고 당연히 못 맞혔다. 젠장.
"아, 재밌었다!"
"좋아요!"
큰세진과 차유진이 싱글벙글 웃으며 회전목마에서 내려와서 카메라에 손을 흔들었다.
놀랍게도 2분 7초 만에 끝내서 신기록을 세웠다.
더 놀라운 건 두 번째 문제 정답을 차유진이 맞혔다는 것이다.
-자, 두 번째 문제∼ 주소창에서흔히 보는 WWW는….
-World Wide Web!
-…? 정답입니다!
의외의 선방이었다.
참고로 이때는 나도 인형을 맞혔다. 요령 잡는 게 중요하더라.
"고생했어. 잘하던데?"
"잘해요∼"
"큰 어려움은 없었습니다!"
"저희가 좀 하죠∼"
번데기 앞에서 주름잡는 놈들 옆에서 배세진이 조용히 물었다.
"…재밌었어?"
나는 어깨를 으쓱거렸다. 재밌었겠냐는 뜻이다. 배세진은 말없이 납득했다.
"이, 이번에 우리, 잘한 것 같아."
"그러게. 우리 앞으로도 한번 제대로 해봅시다∼"
"오∼"
한번 해보니 몰입했는지 다들 신났다. 이 틈에서 나 혼자 적당히 했다가는 은은한 초심 논란에 휩싸일 것같은 불길한 예감이 든다.
'리액션을 신경 쓰자.'
참고로 다음에 시범으로 나선 류청우는 폭소를 터뜨리며 첫 10초 안에 혼자 다섯 개를 모두 맞히는 미친 묘기를 보여주었다.
대체 우리나라 양궁 국가대표는 어떤 자리인지 가늠도 안 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왜 넣은 건지알 수 없는 양털 깎기부터 대형 윷놀이를 지나 마지막 종목까지 왔다.
"다음은∼ 색칠 전투입니다!"
"오∼"
말은 그럴싸한데, 그냥 페인트볼 서바이벌을 활로 하는 것이다. 서로 물감 쏘다가 안 맞고 마지막까지 살아남는 사람 팀이 이기는 거 말이다.
이번에는 7명 팀전이라 류청우와 배세진이 끼었다. 운 영역이 크게 작용하는 판이라 이번에는 류청우도 시범으로 빠지지 않았다.
'딱 떨어져서 편하군.'
다른 팀 보니 섞인 곳도 꽤 많더라고.
"이거 저희는 가만히 있으면 청우형이 다 쏴서 이기는 그림인가요∼?"
"저도 쏴요!"
"…잘 부탁한다."
자신이 없는지, 드물게도 배세진이 비장한 얼굴로 류청우에게 말했다.
류청우는 당황한 얼굴로 멋쩍게 말했다.
"그냥 재밌게 하자 얘들아, 탈락할수도 있지."
"약해요!"
"이기고 싶습니다!"
"화, 화이팅!"
선아현까지 이렇게 나오니 류청우는 결국 기세에 밀렸다.
"하하, 그래. 이기자!"
"와!"
카메라가 열심히 그 광경을 찍고 있었다.
'음, 이러고 정말 이겨 버리면 썩좋은 그림은 아닌데.'
테스타가 여기 출연한 그룹 중에 제일 성적이 좋다 보니, 이 이상 종목에서 이기는 건 피하는 게 나을지도 몰랐다.
'이미 윷놀이도 준우승했다.'
여기서 더 가면 다른 절실한 그룹이 분량을 받을 기회를 뺏는 것처럼여기는 사람들이 나올 게 분명했다.
그렇다고 대충하면 대충하는 대로 욕먹으니, 제일 좋은 건 미친 듯이 몰입해서 하는데 망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류청우의 말에 감명받은 것처럼 고개를 끄덕이며 양 주먹을 흔들었다.
'구르자.'
실질적인 도움은 주지 말고, 그냥 열심히 하는 척만 하자.
이 옷 입고 바닥을 굴러다니면 열심히 했다고 쳐줄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리고 오 분 뒤, 이 결심대로 정말 바닥을 구르게 되었다.
"문대야 괜찮아?!"
"…예."
다 탈락하고 류청우와 나만 남았기 때문이다.
물감 맞히는 데 몰입한 다섯 놈들이 자기가 안 맞는 것을 신경 쓰지않는 덕분에 이런 사태가 도래했다.
졸지에 내가 존버한 꼴이 된 것이다.
그리고 류청우는 하나 남은 팀원을 살리려고 화살이 오면 열심히 좌로굴러 우로 굴러 지시를 내리고 있다.
본인도 구르고 있어서 대충 얼타다 맞을 수도 없다.
'와…."
이제 눈치껏 좀 탈락하자 새끼야.
하지만 류청우는 생각보다 과몰입상태였다.
[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 110화]
"오른쪽에서 온다. 기어서 이동하자."
"…."
아니… 이렇게까지 해야 하냐?
하지만 류청우는 이미 진지한 얼굴로 포복하기 시작했다.
'화랑 복장에 가발까지 쓰고 풀 바닥에서 포복…'
끔찍한 혼종이었다.
그 와중에 머리 위로 화살이 날아가서 목책에 맞았다.
팡!
나무판자에 시퍼런 색소가 묻었다.
그러자 류청우가 날카로운 눈으로 화살이 날아온 곳으로 활을 겨누었다.
물론 유아용 장난감 활이다.
휘익
"와악!"
"아웃∼!"
"어우 아까워!"
주홍색 머리띠를 두른 팀의 최종 탈락자 둘이 목책 뒤에서 어깨가 노란 색소로 범벅이 된 채 나왔다.
목책 끝에서 위아래로 머리만 내놓고 쏘던 놈들이다.
'…하나 쏴서 둘을 맞췄잖아.'
이 정도면 생태계 파괴급이다. 다이아가 부계정으로 브론즈에서 양민 학살하는 걸 같은 팀으로 직관하는것 같다.
"세 팀 남았네. 왼쪽부터 친다."
그만해라 좀.
"…형, 인원이 좀 줄어들 때까지 기다리는 건 어떨까요."
"아."
류청우는 그제야 선 넘은 자신을 깨닫고 좀 민망한 얼굴이 됐다. 애들 사이에서 이 악물고 눈싸움하다 정신 차린 어른 꼴이다.
"그렇지… 우리 저 뒤에서 대기하자."
"옙."
"흠, 오랜만에 이런 거 하니까 재밌네."
류청우는 약간 시원한 얼굴이었다.
아무래도 이런 원초적인 경쟁 컨텐츠를 이기는 데서 스트레스가 풀리는 타입인 것 같았다.
'RoR 안 하나?'
패드립에도 타격 안 받을 놈이니 딱일 텐데.
어쨌든, 류청우의 권유대로 근처의 가장 큰 목책 뒤로 기어서 이동했다.
하지만 도착하기도 전에 다시 화살이 날아오기 시작했다. 머리에 초록띠를 두른 놈들이었다.
'저쪽도 벌써 정리됐나.'
심지어 인원도 4명이나 남아있다.
'이제 슬슬 맞고 탈락하면 되겠군.'
류청우가 둘쯤 더 탈락시키면 딱 그림 좋게 저쪽이 이기고 마무리 될것 같다.
하지만 상황은 예상대로 흘러가지않았다.
"위험…!"
"헐!"
"됐나?"
"어어어억!"
류청우가 둘쯤 더 탈락시킨 건 맞았다.
그러나 그 직후 결국 물감에 맞으면서 탈락했는데, 다른 팀의 남은 한 명도 동귀어진 식으로 탈락시켜 버렸다.
그래서 졸지에 초록 띠 두른 놈 하나와 나만 남아 일대일 매치가 성사되었다.
"…."
"…."
실화냐?
문제는 저쪽도 일단 류청우를 탈락시켜야 한다는 걸 알았는지 류청우를 집중포화했고, 류청우도 자신을 맞출 것 같은 놈부터 쐈다는 것에 있었다.
즉, 살아남은 두 놈이 모두 존버 메타의 최약체였다.
저쪽도 당황했는지 '어, 어?'를 연발하며 화살을 놓쳤다.
"…허."
졸지에 X밥 싸움이 됐네.
그때, 목이 물감 범벅이 된 류청우가 빠르게 외쳤다.
"문대야, 나 엄폐물로 써서 얼른 맞춰!"
"…."
아까 적당히 하자고 암묵적 합의본 건 어디다 팔아먹었냐?
어쨌든 대충하는 모습을 보일 수는 없으니, 나는 몸을 숙이고 적당히 활을 겨눴다.
"헉!"
웃기는 건 그 와중에 저쪽이 쏜 물감이 진짜 류청우 등에 맞았다는점이다.
'이게 통해?'
나는 떨떠름해하며 화살을 날렸다.
사실상 안 맞을 걸 예상한 샷이었다.
아마 머리 위로 지나가겠지.
"…우악!"
"…?"
근데 이게… 맞았다?
"아! 진짜!"
하필 마지막 남은 놈이 화살 뽑으려고 손을 들다가, 내가 쏜 화살에 직접 가져다 댄 꼴이 된 것이다.
뭐 이런 일이 다 있냐.
"우아아아아!"
"문대 승리!"
탈락하고 대기하던 놈들이 쏟아져 나와서 기뻐하기 시작했다.
류청우도 함박웃음을 지으며 등을두드렸다.
"잘했어!"
"…와!"
나는 카메라를 보며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이긴 건 별수 없으니 태도 논란이나 막자 X발.
하지만 해설진 부스에서 뛰쳐나온 MC가 희소식을 전했다.
"아아∼ 테스타 화랑들! 탈락입니다!"
"…?!"
"왜요!?"
"탈락한 화랑은 바로 전투장을 나오셔야지, 생존한 화랑을 도와주시면 안 되죠!"
"…!"
우승은 그렇게 초록 띠 팀에게 돌아갔다.
"색칠 전투 우승은… 오닉스입니다!"
"와아아아악!"
"됐다!"
그리고 테스타놈들은 솜사탕 씻은라쿤 표정이 되었다.
"…."
"청우 형 잘못이에요?"
"미안…."
"괜찮아요."
차유진의 풀 죽은 대답을 끝으로 아이돌 화랑 대격돌 촬영은 마무리되 었다.
그리고 아이돌 화랑 대격돌 은 화려하게 망했다.
가학성이나 논란 탓은 아니었다.
그냥 더럽게 재미가 없었기 때문이다.
-눈에 하나도 안 들어오네
-테스타 컷본 나오면 말해주세요
-편집 진짜 감 없다
-자막 너무 오글거려 왜 이렇게 올드해 개노잼이야ㅠ
-어떻게 저 구성으로 이렇게 지루할 수 있지…? 나 진짜 이해가 안 감
-류청우 진짜 진기 명기 미친 국대 바이브 뽑는데 왜 맛을 저것 밖에 못 살리냐구요 아 쉬벌 답답하네
편집과 자막이 너무 올드한 탓에 컨텐츠의 병맛을 하나도 살리지 못했다.
게다가 홍보 역시 자극적으로 하지 못한 나머지 방영 전 테스타로 입소문 자체가 나지 못했다.
제작진이 '아이돌 올림픽'을 너무 의식한 나머지 프로그램 포맷에만 집중해서 보도자료를 뿌렸기 때문이다.
덕분에 테스타에게 적당히 호감만있는 사람 중에는 아예 테스타가 나오는지도 모르는 경우도 제법 있었다.
-그냥 애들 리얼리티에서 대관령가서 양들이랑 놀게만 해줬어도 이것보단 재밌었을 것
-남은 건 애들 화랑 복장과 류청우의 금메달 리스트 증명뿐임
-위튜브 금손이 재편집한 테스타 컷본 나옴 (링크)
└헐 이렇게 보니까 존잼이잖아
└그래 애들 1등 못 한 거 다큐로 편집하지 말고 이렇게 해줬어야지 진짜 훨씬 귀엽고 웃기네ㅠㅠ
화랑 분장을 한 각종 아이돌의 사진과 동영상만 남아 좋은 영업자료로 활용되는 것으로 아이돌 화랑대격돌 은 그 쓰임새를 다했다.
그리고 정규로 편성되지 못하고 쓸쓸히 종영했다.
그러나 별개로, 이 망한 프로그램에 출연했던 테스타의 주가는 계속 상승 중이었다.
[테스타 초동 뜸]
: 78만장으로 마감 (일주일 동향정리표)
-와 미친
-돌았네
-근데 진짜 기세 무섭더라 단톡 들어가면 테스타 프사 꼭 하나 이상있음
-슬슬 아주사 뽕 다 빠졌을 텐데 이게 가능한 수치야?
-얘네 해외 물량도 거의 없을 텐데 흠…
└해외 공구 좀 터졌어 (영수증 사진) 데뷔 활동 때 국내에서 워낙 잘 나가니까 해외 쪽에도 입소문 좀 난듯?
└해외팬들 이런 거 귀신같이 알아채더라ㅋㅋ
-팬싸 엄청 많이 잡아서 영향 크겠다… 암튼 축하해∼
└엥 테스타 팬싸 그렇게 많이 안잡았어 평균정도인데…
└ㅋㅋㅋ응∼
-남돌 삼대장에 넣어줘야 할 듯 솔직히 삼대장 중에 테스타만큼 음원 못 나오는 경우도 있잖아 국내만 따지면 테스타 거의 브이틱 다음 수준 아니야?
└응 아니야 올려치기 안 받아
└젠가질 그만하자
└테스타 팬들은 절대 테스타가 1군이라고 주장하지 않습니다 저희그냥 애들하고 행복합니다
팬들은 아직도 몸을 사리고 있었지만, 자신들의 초동 기록을 10만 장 이상 차이로 갱신하고, 음원 차트에서도 선방 중인 테스타는 '잘나가는아이돌'로 완전히 자리 잡았다.
덕분에 첫 주 성적으로 너끈히 공중파 1위를 달성하기도 했다.
[애들 뮤직가요 1 위 소감 + 앵콜영상]
: 얘들아 너무 죽하해ㅠㅠ
+1위 공약은 파트 바꿔 부르기ㅋㅋ 귀요미들…
-테스타 1위 축하해 우리 비행영원해
-드디어 우리도 수상소감에서 이름 들어본다!ㅠㅠ
-얘들아 마이크 잡을 때마다 러뷰어 염불해줘서 너무 고마웤ㅋㅋ큐ㅠ
-아 래빈이 소감 똑 부러지게 말하네 뿌듯해 하는 거 너무 귀여워 우리 토끼 사랑한다ㅠㅠ
-뭐야 박문대 왜 랩도 잘해ㅋㅋㅋㅋㅋ
└문댕댕 너무 잘해서 유진이 신났엌ㅋㅋㅋ
-후렴구 떼창 진짜 너무 훈훈하고 좋다
팬들은 혹시라도 다른 팬덤의 견제로 이상한 일이 터지지는 않는지 긴장하면서도, 커리어하이의 즐거움을 누리며 즐거운 덕질을 이어갔다.
그리고 테스타와 콜라보한 게임 127 섹션 이 출시된 것은 그쯤이었다.
사실 팬들은 이 게임에 대해서는 크게 경계하고 있지 않았다. 테스타의 컴백 활동에는 이 게임과 관련되어 있어 보이는 요소가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우리 서브곡에서 따서 게임 콜라보곡 만들어준 정도로 끝나는 듯?
-컨셉 비슷하긴 한데 서브곡으로 쓴 베러미는 좀 디스토피아 느낌이고 게임은 포스트 아포칼립스라 좀 결이 다름. 그냥 앨범 곡 중에 분위기 비슷한 거 따서 해준 것 같아.
-트레일러에 나온 요소들에는 큰의 미부여 안 하는 게 나을지도 모르겠어
-마법소년 세계관 연결은 딱 봐도타이틀곡 비행기임ㅇㅇ
처음 트레일러가 나왔을 때의 분석들도 시들해지며, 비행기 뮤직비디오 분석에 밀려 줄어들었다.
게임 광고가 떴을 때도 분위기는비슷했다.
테스타 멤버들이 트레일러의 복장으로 게임을 홍보하는 사진 정도로 광고가 뽑혔기 때문이다.
-그냥 다른 연예인들 찍는 게임광고 수준이네ㅋㅋ 하 괜히 걱정했다
-청우에게 저격수 복장을 입혀준 의리상 한번 플레이는 할 예정임
-위튜브에서 광고로 테스타 트레일러 나와서 놀랐네 겜 광고였구나;; 좀 더 보니까 게임 플레이 영상 나옴
게임 마니아들의 반응도 괜찮았다.
-지하철 광고…? (눈 돌아가는 이모티콘)
-흑우들 돈 빨아먹을 준비가 됐누
-저는 그만 정신을 잃고 말았습니다…
-물 들어올 때 노 저어야 함 서버관리 잘해라 공장새끼들아
-출시될 때까지 숨 참음
-앞으로 만두는 T1 군만두만 구매한다
-홍보비 너무 붓는데 이 새끼들설마 겜 쪼개서 DLC 이지랄하는건 아니겠지
└그럼 죽음뿐
이들은 불안해하면서도 일단 판이 커지는 것을 반겼다. 혹시 회사가 X신 짓을 했더라도 당장 망하진 않을 확률이 늘어나기 때문이다.
-제발 갓겜으로 나와라
-이번에 망하면 회생불가 아니냐고 머기업한테 손절각이자너
-홍보 동영상 게임 플레이 장면 확인했다 일단 베타 때 느낌은 살아있다 갓스타 유입만 제대로 소화하면 이번에는 된다
└X발… 제발!
그리고 게임이 출시된 날.
테스타 팬덤과 게임 커뮤니티가 모두 뒤집어졌다.
"어, 다 됐다."
박문대의 첫 홈마는 편집하던 박문대의 화랑 영상을 잠시 놓고 스마트폰을 확인했다.
게임 127 섹션 이 다운로드가 완료되어 앱 아이콘이 바탕화면에 추가되었다.
'이런 게임은 해본 적 없지만… 그래도 한번은 해봐야겠지.'
일단 문대가 광고를 했으니까. 다운로드 수와 플레이 수 하나는 챙겨줄 생각이었다.
물론 이런 게임을 하는 취미는 없기 때문에, 적당히 튜토리얼만 하고끌 생각이었다. 그녀는 어플을 실행시켰다.
'빨리하고 끝내자.'
추가 설치 시간이 잠깐 걸린 뒤, 바로 튜토리얼이 시작되었다.
[당신은 127 섹션에서 눈을 떴습니다.]
그리고 5분 뒤. 게임 속에서 이 대학생은 한 동료 캐릭터와 만나게 된다.
바로 드론을 쓰는 검은 후드 티의소년이다. 드론을 조종할 때마다 눈이 보랏빛으로 빛난다.
"…!?"
컴백 트레일러 영상의 박문대였다.
[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 111화]
"이거 문대야? 문댄가?"
박문대의 홈마는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리며 화면을 터치했다. 외양의 특징이 컴백 트레일러와 유사했기 때문에 의심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대화가 넘어가며, '?'으로 뜨던 캐릭터의 이름이 소개되었다.
그리고 그건 '박문대'는 아니었다.
[? : …그래.]
└B11 : 난… B11이라고 불러. 그거면 됐어.]
그리고 동료추가 컷 씬이 들어가며, 야광 드론을 회전시키는 검은 후드의 소년이 운용 가능 캐릭터로 들어왔다.
'아, 그럼 반대로 문대가 이 캐릭터를 따라 한 건가?'
그런 컨셉의 광고도 몇 가지 본적 있었기 때문에 그녀는 적당히 넘어가 보려고 했으나, 또 과몰입한 머리가 팽팽 돌아가며 상황을 분석하기 시작했다.
'잠깐만. 하이파이브 때 문대 야구복 뒷번호가 11이었잖아. 그럼 B는 성인 '박'에서 따온 거라고 생각하면…!?'
얼추 맞는 것 같은 추리에 대학생은 침을 꿀꺽 삼켰다.
'어, 어쨌든 계속 플레이를 해보자…!'
상상도 못 한 떡밥에 놀라면서, 대학생은 계속 플레이를 해나갔다.
게다가, 안 그래도 이 게임이 제법 재밌었다.
게임은 완전한 1인칭으로, 주인공이 외출 도중에 싱크홀에 빠지면서 평행세계의 반쯤 멸망한 서울로 이동하며 시작했다.
[이상합니다. 당신은 분명 아침 일찍 외출했는데, 싱크홀 밖으로 보이는 하늘은 붉고 어둡습니다.]
[저 위에서 누군가 우는 소리와 신음하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지만, 확실하지 않습니다』
[당신은 몹시 당황했지만, 그대로 있다가는 싱크홀이 더 무너질까 봐 걱정되기도 합니다. 어떻게 할까요?]
-올라갈 방법을 찾는다.
-구조를 기다린다.
-고함을 질러 구조를 요청한다.
-소리를 더 자세히 들어본다.
다소 피폐한 분위기였으나, 잘 구성된 세계관을 처음으로 모험하고 탐색하는 재미, 그리고 풍성한 선택지 덕분에 흥미롭고 재밌었다.
텍스트 위주로 돌아가면서도 전투와 선택지마다 시선을 끄는 그래픽이나 일러스트를 넣어줘서 지루하지 않았다. 그리고 적당한 운과 전략을 복합적으로 요구해서 긴장감이 넘쳤다.
'음, 계속하게 되네. 뒷내용도 궁금하고.'
다만 아직 이 문대로 추정되는 동료 캐릭터나, 계속 합류하는 다른 테스타와 비슷한 캐릭터들에게 스토리 비중을 크게 주지는 않았다.
그래서 도리어 앞으로 하나하나 캐릭터 스토리가 나오지 않을까 생각해보게 되는 것이다.
'아, 혹시 테스타 세계관 떡밥도 나오려나?'
게임까지 하게 만드냐며 욕하는 사람도 나오겠지만, 일단 게임을 계속하기로 마음먹은 사람의 입장에서는 좀 두근거리는 일이었다.
게임은 계속 진행되어, 대학생이 움직이는 캐릭터는 반쯤 무너진 채 이상한 붉은 덩어리에 잠식된 지하철역에 도달했다.
[역사는 어두컴컴하고 비상등만 깜박거립니다. 이상한 비린내 같은 것이 올라오는 것 같기도 합니다. 지하철은 운영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만, 계속 열차가 진입 중이라는 안내방송이 흘러나오고 있습니다.]
[B11 : …내가 수색해 볼까?]
- 승낙한다.
-거절한다.
-면박을 준다.
-함께 들어간다.
"같이 가! 같이 가야지!"
대학생은 완전히 과몰입해서 신나게 게임을 즐겼다.
그때 였다.
[갑작스러운 진동이 사방을 울리기 시작했습니다!]
[지하에 박힌 거대한 붉은 덩어리가 불길하게 번뜩이더니, 끔찍한 소음과 함께 덩어리에서 이상한 것들이 솟구치기 시작합니다…]
강제로 전투가 진행되었다.
그리고 모든 동료가 붉은 덩어리에서 나온 끔찍한 무언가에 의해 사망했다.
마지막으로 남은 것은 박문대를 닮은 B11이었다.
[B11 : …넌 살아.]
박문대가 주인공을 세차게 밀치는 컷 씬이 삽입되었다.
스마트폰의 진동과 함께 화면이 검게 변했다.
…다시, 내레이션이 떴다.
[…그리고 정신을 차렸을 때, 당신은 혼자가 되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남은 것은 동료들이 남긴 짐과 무거운 목숨뿐.]
[이제 당신은 홀로, 이 폐허가 된 서울, 127 섹션 을 헤쳐나가야 합니다.]
그리고 그때야 게임 오프닝 화면이떴다. 어두운 화면에 127 SECTION 로고가, 생물재해 표지 마크를 바탕으로 떠올랐다.
"…?"
대학생은 잠시 방금 일어난 일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멍하니 스마트폰을 바라보았다.
짧은 오프닝이 끝나고 로딩 중 화면에 짧은 도움말이 떠 있었다.
[※전투에서 사망한 동료는 돌아오지 않습니다. 영원히.]
"…?!"
대학생은 그제야 기겁했다.
"이게 뭐, 이, 이게 뭐야?"
뭔가 잘못된 게 분명했다.
'무슨 게임이 시작하자마자 동료를 다 죽여!?'
그녀가 겨우 멘탈을 다잡은 것은 로딩이 끝나고 시작된 CHAPTER2 컷 씬 중간이었다.
[당신은 결국 혼자 모든 것을 해낼수 없다는 것을 인정합니다.]
[동료가 필요합니다. 전략적 우방이든, 임시 동맹이든.]
'그래, 이렇게 끝날 리가 없지!'
대학생은 주변 겜덕 지인에게 들었던 하소연들을 떠올렸다.
'모든 게임 진행을 현질해서 캐릭터를 뽑으라는 쪽으로 연결하는 놈들도 많다고 들었다!'
그렇다면 그녀도 '날 ATM 취급하는 거냐, 돈 뽑아먹으려는 의도가 너무 악랄하지 않냐'고 욕하면서도 울면서 돈을 써줄 용의가 있었다.
'문대만, 문대만 뽑고…'
하지만 컷 씬이 끝난 뒤, 마침내 팝업으로 뜬 캐릭터 뽑기에는 주의사항이 붙어 있었다.
[※당신이 동료로 맞이했던 캐릭터는 다시 나오지 않습니다.]
"야!"
이 미친놈들이 왜 돈이 있는 데도왜 못 쓰게 하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그녀는 황급히 인터넷을 켰다.
'혹시 내가 선택지를 잘못 선택해서 죽은 걸 수도 있어…!'
그렇다면 이번에는 공략을 보고 제대로 진행하면 되지 않겠는가! 그녀는 약간의 희망을 가지고 SNS에 접속했다.
그리고 불구덩이를 구르는 팬들을보았다.
-으아아아아아
-어떡해 이거 뭐예요? 왜 문대 죽어요?ㅠㅠㅠ
-127 섹션 플레이 소감 : 개발자가 아주사 제작진만큼 악마임
-아니 가운 입은 배세가ㅠㅠ 나살라고 하고 죽었단 말이야ㅠㅠ 근데 왜 못 살려 이거 이상하지 않아요? 이상하잖아 왜 뭘 골라도 죽냐고ㅠㅠ
-정리해봤습니다… 튜토리얼에서 받는 7명의 동료… 트레일러에 나온 테스타랑 비슷한 그 친구들은 무슨짓을 해도 챕터 1이 끝나면 다 몰살당합니다…
다만 가장 호감도가 높은 캐릭터가 가장 마지막에 죽는 것 같…. X발이게 게임이냐고요ㅠㅠ으어엉ㅠㅠ
"…."
대학생은 정신이 아득해졌다.
그리고 정신이 혼미해진 사람은 그녀만은 아니었다.
테스타의 트레일러 영상에는 벌써부터 최신 댓글에 한글이 무서운 속도로 달리기 시작했다.
-ㅠㅠㅠ아이고 얘들아ㅠㅠ
-이 애들의 엔딩을 알고 나니…도저히 트레일러를 예전처럼 볼 수가 없다구요… 살려줘… 내 돈 가져가고 애들을 돌려줘요ㅠㅠ
-이래서 가사에서 안 죽겠다고 한거냐고ㅠㅠ 아니 다시 보니까 날 살리겠다고 하고 있네 미친
-설마 이래서 별책부록이 제목이야? 외전으로 빼서 타격감을 줄여주려는 테스타의 큰 그림이야? 하지만심약한 덕후는 이미 망신창이라구…살아나란 말이야!ㅜㅜ
게임 스포일러하지 말라며 말리거나 싸우는 사람들도 간혹 보였으나, 대부분 쏟아지는 댓글에 밀려 쓸려내려갔다.
다행히 팬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이성을 되찾았고, '테스타 팬들이신작 게임에 끼친 민폐' 같은 저격글을 우려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울거나 비명만 지르는 댓글이 주로 달렸다.
그리고 상황을 모르는 외국인들은 'What happened?', 'Someone tell me why' 같은 말을 남기며 당황해했다.
웃기고 슬픈 것은, 그 와중에 게임은 재밌어서 욕을 퍼부으면서도 계속하는 사람들이 속출했다는 점이다.
게다가 이들을 유인하는 요소도 불쑥불쑥 튀어나왔다.
바로 챕터 2의 중반쯤 가면 추가되는 코스튬 상점이었다.
[동료들에게 새로운 모습을 선물하세요!]
이 팝업을 클릭하면, 현재 특별구매가 가능한 코스튬들이 뜨는 식이었다.
그리고 지금, 게임 런칭 시즌에 파는 코스튬들이… 바로 챕터 1에서 무참히 사라진 동료들의 코스튬이었다.
비록 죽은 고정 동료들은 캐릭터 뽑기에서 뽑을 수는 없지만, 그들의 외양을 덧씌울 수 있도록 만들어준것이다.
게다가 이런 설명 문구가 붙었다.
[보랏빛 드론 소년 코스튬]
[: 아련한 기억을 불러일으키는 누군가의 코스튬. 한때 당신을 지켰었다.]
덕분에 어떻게든 유사한 능력치, 성격 스크립트의 캐릭터를 뽑아서 코스튬을 덧씌워 플레이하는 사람들이 속출했다.
참고로 이 증상은 게임마니아들에게도 동일하게 발생했다.
다만 이들은 좀 더 침착했다. 전작에서 이미 당해봤기 때문이다.
-머기업 붙어도 통수는 포기할 수 없다는 폐허공장의 뚝심
-하루이틀도 아니라 오히려 기대했음
-이 새끼들 갓스타 유입들한테 욕처먹고 즐거워했을 놈들임 코스튬 풀어서 환불런 막고 기분 좋았냐 새끼들아
└기분 째졌을 듯 플레이스토어 매출 1위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싯발 아 짜증나네 비일이 살려내라고∼
└갓스타 트레일러 보고 맥주 땄다ㅅㅂ 저격수 X나 마음에 들었는데 내가 남캐 코스튬이나 사야겠냐 공장새끼들아
-2년 지나고 겜 퇴물되면 백프로 초기 동료 뽑기 준다 머기업의 운영 노하우를 전부 받아서 흑우들 주머니를 마지막까지 털어줄 거 아니냐
└지금 갓스타 빨 받을 때 하는게 낫지 않음?
└고건 맞는 말씀이네 하지만 이미 코스튬으로 달달하게 뽑고 있는데 그럴 리가
└장기 캐시 흑우 모델된 거임
그리고 이들의 예상대로, 폐허공장은 빗발치는 문의에도 초기 동료 캐릭터 뽑기를 열어주지 않았다.
유저들이 게임의 세계관에 좀 더몰입해야 할 시점이었기 때문에, 스토리 흐름을 깨는 동료를 인위적으로 주지 않겠다는 개발자의 뚝심이었다.
동시에, 그게 아니어도 이미 매출이 미친 듯이 잘 나오고 있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7명 전원 동일 능력치, 유사 성격캐릭터 복원 성공. 이제 우린 영원히 함께야… (게임 스크린샷)
└세상에
└얼마 쓰셨어요…?
└뭘 상상하시든 그 이상으로 썼습니다. 하지만 만족합니다.
이런 일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났다.
게임에 완전히 몰입한 몇몇 테스타의 팬들과 게임 마니아들은 쭉쭉 매출을 올려줬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대부분의 127 섹션 게임 플레이어들은 테스타에게 친근감을 느끼게 되었다.
-3차원에서라도 아이돌로 잘살고있어서 다행임
└뭔가 이상하지 않냐…? 보통 반대 아니냐…?
└무슨 말임 애들 2차원에서 죽어서 환생한 거잖아
└와 이 새낀 진짜다
-비일이 이번 생 이름이 문대라고? 어쩐지 B11 같은 코드네임을 대더라 그때도 본명이 구렸던 듯
└명동성당 가면 이스터에그 있음. 한 회차쯤은 확인해보는 거 추천
└오ㄱㅅ
게임의 이후 챕터들에서도 간간이 초기 동료들에 대한 작은 떡밥들을 찾아볼 수 있었기 때문에, 이 관심을 꽤 오랫동안 지속되었다.
그리고 예상치 못했던 테스타의 컨텐츠 하나가 갑자기 발표되었다.
[테스타(TeSTAR) 'BETTER ME' Official Music Video]
테스타의 이번 활동 서브곡, BETTER ME의 뮤직비디오가 나온것이었다.
그리고 이 뮤직비디오의 시작은…게임 콜라보 트레일러의 마지막 장면이었다.
[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 112화]
BETTER ME 뮤직비디오를 재생하면, 가장 먼저 카메라를 응시하는박문대의 얼굴이 보였다.
검은 후드에 보라색 안광, 트레일러의 모습이다.
[….]
박문대는 말없이 카메라를 향해 손을 뻗었다.
그리고 카메라를 조작했다.
달칵.
지지지지직.
영상이 되감기며 트레일러의 장면들이 거꾸로 지나가기 시작했다.
물탱크. 하수도. 마네킹, 떨어지는총. 생물재해 마크.
그리고 화면은 드디어 톱니바퀴가 달린 다 낡아빠진 천 인형을 비추기 시작했다.
작 장면, 거기서 되감기가 멈추었다.
그리고 곡이 시작되었다.
-Do not trust it
There no justice
Oooohh….
그 순간, 낡은 천 인형이 아닌, 새것처럼 깨끗한 인형을 쥐고 있는 차유진으로 컷이 바뀌었다.
그리고 화면이 쭉 밀려나며 주변 전체를 풀샷으로 잡았다.
학생들이 수업을 듣고 있는 평범한 교실이었다. 그리고 교실 곳곳에 앉아 있는 테스타 멤버들이 보였다. 수업을 듣고 있는 것 같은 일상적인 표정과 외관이 카메라에 잡혔다.
하지만 직후 리듬감 넘치는 뭄바톤 반주가 흘러나오기 시작하자, 교실의 분위기는 완전히 달라졌다.
지지직.
테스타를 제외한 모든 학생들이 사라지고, 그 책상마다 흘러내리는 그라피티용 야광물감으로 X자가 쳐졌다.
그리고 어두운 교실을 배경으로 강렬한 단체 안무 컷이 시작되었다.
-돌이켜봐도 알 수가 없어
Umm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안무 장면 사이사이, 멤버들이 각자 자신의 파트마다 학교의 음악실, 체육관 등 특징적인 장소에 홀로 있는 컷이 삽입되었다.
다만 각 공간은 '마법소년' 때부터 드러난 테스타 각각의 능력과 연관된 기묘한 분위기로 변해 있었다.
그래서 컨셉 포토에서 봤던 것과 유사한, 테크웨어 의상을 입은 테스타는 마치 게임 중간보스의 방처럼 각자 영역을 조성한 것처럼 보였다.
-Target Target Target
GOT IT
달려가는 대로 잡아채는 대로
자신들의 공간에 엮여 노래를 부르는 그들은 컨셉추얼하고 권태로워 보였다.
그러나. 트레일러의 천둥 같은 리프멜로디가 떨어지는 순간, 분위기가 일변했다.
DDVVViiiii-!
교복을 입은 괴물들을 피해 도망치거나 달려드는 테스타의 모습이 빠른 컷씬으로 급박하게 휘리릭 지나가더니, 칠판 위 급훈에서 화면이멈췄다.
상투적인 검은 글자 위로 거친 빨간 그라피티가 덧칠되어 있었다.
[WINNER-TAKE-ALL :)]
[LOSER? Good bye :(]
'잘 가'라는 뜻의 영어 단어 위로 피가 튀었다.
그리고 후렴구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BUT,
It's just confusing
언제부터였는지
I'm just confused
Umm
어디까지 가는지
멜랑꼴리한 코러스와 어울리지 않는 처절한 생존게임이 계속되었다.
그 뮤직비디오 속에서, 가사는 완전히 구체적인 의미를 담기 시작했다.
그리고 곡이 진행될수록 테스타의 행보는 점점 과격해졌다.
함께 행동하는 것보다 싸우는 컷씬이 빈번해지더니, 마지막 괴물이 쓰러지는 순간 그 긴장감은 최고조가되었다.
[…]
김래빈이 뒤를 돌아보며 송곳을 들어올리는 순간, 류청우가 등을 쏘아버렸다.
-Umm
이후 뮤직비디오는 더 강렬해진 퍼포먼스 컷을 중심으로, 서로를 사냥하는 컷씬이 간접적으로 섬뜩하게 튀어나오는 구성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곡의 브릿지.
2절이 진행되는 동안 별로 컷을 받지 못한 배세진이 클로즈업되었다.
배세진은 자신의 파트를 부르는 도중, 갑자기 일어나 자신의 공간인학교 현관 앞을 벗어났다.
-감당 못 할 우리의 Paradox
선을 자를 때
더 크게 Payback
스스로 만든 번복을 벗어나
배세진은 복도를 달려서 맨 끝 문앞에 섰다.
문을 열자, 멀쩡한 교실이 나타났다.
하지만 카메라가 돌아가자, 급훈위에서 떨어지는 빨간 그라피티 물감이 잡혔다.
배세진이 손에 든 무언가를 던지는 순간, 마지막 후렴구가 터져 나왔다.
-BUT,
It's NOT confusing!
내가 누군지
I'm NOT confused
Oh!
찾아낼 BETTER ME
배세진의 손에 있던 것은 묵직한 금속 자물쇠였다.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간 자물쇠는 급훈을 박살 내며 떨어졌다. 산산조각나는 급훈 액자가 슬로우 모션으로 잡혔다.
그리고 액자가 바닥에 떨어지는 순간, 뭄바톤 반주가 흐르기 시작했다.
배세진이 씩 웃었다.
-BETTER ME
화려한 안무와 함께 영상 속 타임라인이 고쳐지기 시작했다.
마지막 괴물이 쓰러진 뒤에 들어올리던 김래빈의 송곳은 박문대의스마트폰 셔터 세례로 저지되었고, 테스타는 서로 짜증을 내며 해산했다.
그들의 얼굴은 홀가분해 보였다.
그리고 다시 화면은, 낡은 천인형을 들고 있는 차유진의 컷으로 돌아갔다.
[…]
하지만 이번엔, 차유진은 톱니바퀴를 돌리지 않았다.
[ ∼]
차유진은 휘파람을 부르며 인형을 구석에 던져 버리고는, 박살 난 복도를 뚜벅뚜벅 걸어가기 시작했다.
그 경쾌한 걸음걸이를 뒤에서 고정카메라가 잡으며, 화면 위로 'BETTER ME'가 하얀 자막으로 떠올랐다.
-BETTER ME
그 마지막 훅을 끝으로 영상이 끝났다.
그리고 테스타 팬덤은 예상도 못한 MV 대해석 시대를 맞이하게 되었다.
"형 뭐 봐요?"
"우리 뮤비 해석."
"해석 왜 해요?"
"…흠. 너도 볼래?"
"네!"
끝없는 문답의 굴레에 갇히는 것보단 차유진을 끼워주는 게 나았다.
나는 TV에 보던 위튜브를 연결해 띄웠다.
화면에 웬 빵실한 오리 캐릭터 하나가 떴다.
[안녕하세요, 위튜브 친구들! 뮤직비디오 해석해 주는 오리, 해오리감자입니다.]
[오늘은 화제의 그 게임, 화제의 그 그룹! 새롭게 공개된 테스타의 'BETTER ME' 뮤직비디오 해석을 준비해 왔습니다.]
[사실 저도 열심히 게임을 하다가 오열해서 이번 해석에 약간 사견이들어갈 수 있다는 점ㅠㅠ 미리 양해를 구해봅니다.]
[※ 127 섹션 스포일러 주의!]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오리는 'BETTER ME' 뮤직비디오의 간단한 줄거리를 소개하고, 전체적인 스토리를 풀어서 설명했다.
[뮤직비디오 중간에 등장하는 교복을 입은 괴물들은, 테스타와 같은 교실에 있던 학생들이 변한 모습인것 같습니다.]
[이렇게 괴물들의 교복에 전부 이름이 적힌 명찰이 붙어 있었는데요. 같은 색, 같은 이름의 명찰을 평화로운 교실 컷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주로 이런 식이었다.
'관찰력이 좋네'
나는 제법 흥미롭게 오리의 말을 경청했다.
그러나 이 오리는 뮤직비디오 내용정리가 끝나자마자, 대뜸 엄청난 소리를 던졌다.
[사실 제가 '비행기' 때부터 내심추측하던 테스타의 세계관 이론이있었는데요, 이번 'BETTER ME' 뮤직비디오를 보고 정말 확신이 생겨서 말씀을 드려봅니다.]
[테스타의 세계관에서 박문대, 그리고 배세진은 아마도 동일 인물일것입니다.]
"푸흑."
커피를 마시며 주방을 빠져나오던 배세진이 사레가 들렸다. 차유진이 눈을 번쩍이며 오리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마법소년' 때부터 둘은 상반된 행보를 보여왔는데요. 박문대는 학교 현관문에 자물쇠를 채워 잠그고, 배세진은 그 문을 부숴 버립니다]
[그리고 이번 'BETTER ME' 뮤직비디오에서도 박문대는 카메라를 돌려서 시간을 닫고, 배세진은 이 끔찍한 시간을 상징하는 급훈 액자를 부숩니다]
[이렇게 보면 완전히 정반대의 능력인데 왜 동일 인물이냐구요? 그건, 이 둘의 능력이 사실 같은 선상에 있기 때문입니다.]
[둘 다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다루고 있습니다만, 박문대는 제약을 거는 쪽. 배세진은 제약을 파괴하는 쪽으로 능력을 씁니다.]
"성상이 뭐예요?"
"선상. 같은 선 위에 있다고."
배세진이 대답하며 소파 옆에 털썩주저 앉았다. 해석 영상에 흥미가 생긴 모양이다.
[지난번 영상에서도 말씀드렸다시피, 박문대의 마법 소품은 책인 것처럼 구색을 맞추고 있지만 사실은 '잠'입니다. 박문대는 자거나, 자는것으로 상징되는 시야를 가리는 행위 등을 통해 과거로 돌아갑니다.]
화면에서는 카메라를 가렸다 떼는 손과 학교 정문에 선 박문대, 내가 나오고 있었다.
그리고 문을 열고 학교 안으로 달려가는 것까지 영상이 이어졌다.
비행기 뮤직비디오의 장면이었다.
[그런데 이 컷, 어딘지 익숙하지않나요? 맞습니다. 이번 BETTER ME 뮤직비디오에서도 나왔죠.]
[하지만 박문대가 아니라 배세진입니다.]
학교 복도를 달려가는 배세진의 컷이 영상에서 반복되었다. 확실히 구도가 동일했다.
[게다가 이다음, 배세진이 던져서 급훈 액자를 깬 물건이 무엇일까요? 바로 '마법소년'에서 박문대가 현관에 채운 그 자물쇠입니다.]
저건 알아차리라고 넣어둔 디테일이긴 했다.
[이런 부분들을 바탕으로, 저는 이 둘이 사실 동일 인물의 서로 다른 인격이라는 가설을 세워보았습니다.]
그리고 증거가 쭉 이어졌다.
[방금 보셨나요? 비행기 뮤직비디오에서 기숙사 침대는 6개뿐입니다. 그리고 BETTER ME 뮤직비디오에서 박문대는 홀로 제일 구석 뒷자리에 앉아 있습니다. 사실 학생이 없어도 이상하지 않을 위치죠.]
[그리고 박문대에게 배세진 외의 인물이 직접 말을 거는 컷은 지금까지 단 하나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멤버들이 감탄했다.
"오오."
"… 그럴싸하네."
맞는 말이었다.
하지만 문제는 그냥 오해라는 것이다.
자물쇠는 현관문에서 따왔는데 시간상 잘려 나간 거고, 복도 구도도 우연히 감독이 좋아해서 똑같이 들어갔을 뿐이다.
내가 다른 멤버들과 대화한 컷이 없는 건… 아니 애초에 선아현도 없었건 것 같은데?
다만 팬들은 이 이론이 상당히 재있었는지 조회수와 댓글이 대단했다.
'…다음 앨범부터는 그냥 저 설정을 살려보자고 건의할까.'
원래 파는 놈 맘에 드는 게 아니라 사는 사람 맘에 드는 걸 내놔야하지 않겠는가.
어쨌든, 뮤직비디오는 '박문대 배세진 동인인물설'을 마무리하고 세계관 연결에 대한 설명으로 돌아갔다.
[타임라인은 박문대의 꿈을 통한 타입슬립을 고려했을 때, '비행기'- '마법소년' - 'BETTER ME',그리고 트레일러 영상인 'BONUSBOOK' 순으로 이어집니다.]
[다만 트레일러 영상은 정식 흐름에 포함시키진 않을 생각인지, 이번 'BETTER ME' 뮤직비디오에서 배세진이 사건을 막으며 '일어나지 않는 일'로 마무리했죠.]
화면은 차유진이 인형을 폭파시키는 트레일러 영상과 폭파시키지 않는 이번 뮤직비디오 영상을 분할로보여주었다.
'이건 정확히 추측했군.'
게임과 너무 엮이지 않기 위해 만든 장치였다.
우리가 게임 스토리에 끌려다니기도 싫고, 게임 쪽에서도 우리 세계관에 아예 쪽 빨리기는 싫었을 테니까.
'IF 버전으로 처리했지.'
지금 사람들의 게임 반응을 보니 괜찮은 선택이었던 것 같다. …안그래도 넋 나간 사람들 제법 있던데 더 큰 충격을 줄 순 없지.
[127 섹션 에서 이들이 맞는 결말을 생각하면 좋은 일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앞으로도 우리 첫 동료들의 미래를 볼 길이 요원하다는 건정말 슬프네요ㅠㅠ]
그리고 밑에 자막으로 [B11이 죽는 순간 오열한 오리]가 떴다.
"…."
생각보다도 영향력이 더 강했던 모양이다.
[다만 트레일러에서 사용한 멤버들의 능력은 차후 세계관에도 반영될수 있을 것 같아서 이 오리도 기대중입니다! 꿱꿱!]
[그럼 여러분, 다음 뮤직비디오 해석으로 만나요∼]
"만나요∼"
"오리가 똑똑하네."
나는 TV를 차유진에게 넘겨주고, 스마트폰으로 영상 댓글을 확인했다.
-와 진짜 테스타 미쳤다 세계관 돌았다
-둘이 같은 인물인 거 ㄹㅇ인듯 소름 쫙 돋음
-해오리감자님 언제나 양질의 해석 감사합니다∼ 덕분에 뮤직비디오 머리 안 쓰고 편하게 보고 있습니다!
-배러미 볼 때부터 배틀로얄 느낌이라고 생각은 했는데 이렇게 보니더 흥미롭네요. 재밌게 보고 갑니다∼^^
보아하니 거의 이 사람 것이 정설로 굳어진 모양이다. 최신댓글로 정렬해도 비판하거나 꼬집는 사람이없다.
'재밌네.'
누구도 의도하지 않은 부분까지 깔끔하게 맞아떨어져서 새롭게 해석되는 걸 보고 있으니, 흥미로웠다.
그리고 중간중간 어쩌다 흘러들어온 게임 마니아들도 눈에 띄었다.
-그래서 비일이 보려면 뭐해야하나요?
└문대 SNS 자주 오니까 팔로우해두시면 좋아요∼ㅎㅎ
└아뇨 저 겜덕인데 혹시 문대님 B11로 다른 거 하신 거 없나해서댓글 달아본 겁니다 어쨌든 답글은감사합니다ㅠㅠ
└앗 넵ㅠㅠ
"흠."
이걸 보니 생각났다. 그러고 보니 이번 주 중으로 추가로 풀리는 게있었다.
그냥 팬서비스로 공개하는 컨텐츠인데, 의외로 이쪽에서도 반응이 올지 모르겠다.
'좀 민망할 수도 있겠는데.'
나는 목 뒤를 만지며 스마트폰을 껐다.
그리고 다음 날 저녁 10시 31분, 또 새로운 동영상이 테스타의 공식 위튜브 채널에 업로드되었다.
[테스타(TeSTAR) 'BETTER ME'안무 영상 Late Halloween Ver]
바로 할로윈 코스튬 버전으로 127 섹션 의 초기 동료 복장을 하고 있는 테스타의 안무 동영상이었다.
[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 113화]
요 며칠, 127 섹션 커뮤니티에서는 몇몇 하드 플레이어들이 'BETTER ME' 뮤직비디오를 분석중이었다.
트레일러와의 연관성 때문에, 게임관련 떡밥이 있을 것이란 기묘한 믿음이 형성된 게 이유였다.
[갓스타 이번 영상 확인했다]
: 중간에 나오는 교복 괴물들 생김새가 떡밥이다.
강남문고 마굴 가면 운석 떨어질때 생존자들 기록 나오는데 거기 나오는 운석 때문에 변이한 사람들 묘사랑 똑같음 (게임 스크린샷)즉 갓스타 영상은 7년 전 운석 떨어질 시점에 대한 떡밥임.
-콜라보 침투가 여기까지?ㄷㄷ
-야 그럴싸해
-이 겜 하려면 남돌 뮤직비디오까지 봐야 하냐
-이게 과몰입 씹덕인가 하는 그거지?
-개소리ㄴㄴ 그럼 7년이나 지났는데 얼굴 그대로란 뜻이자너 공장변태들 이런 거 안 놓침
└이미 다들 운석 감염된 탈 인간상태라면? 갓스타 초능력자 컨셉이라는데 그 초능력이 운석 변이 때문이라면?
└이 새끼 머리 좋네
└뇌가 공장에 저당 잡혔냐 머리가 좋긴 씹덕 망상이구먼 하지만 이미 공장 로동자인 내 귀에는 솔깃하게 들린달까? 나쁜 생각같지 않달까?
└미친놈들ㅋㅋㅋㅋㅋㅋㅋ
논란의 소지가 있었지만, 사람들은 뮤직비디오를 뜯어볼수록 의심스러운 요소를 찾아냈다.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인 식이었지만 일단 떠들고 보자는 식이었다.
-교실 뒤 달력 보이냐 2030년이다. 127섹션은 2037년 배경, 운석사태 7년 전. 빼박이쥬? (흐릿한 MV 배경 캡처)
-갓스타 팬들이 비일이랑 박사 동일 인물 설 밀던데 이러면 왜 비일이만 코드네임인지 해명됨 비일이 드론 연동 안드로이드 클론인 거임
└ㅋㅋㅋㅋㅋㅋ이 새끼들 진짜 웃기네
하지만 큰 증거가 튀어나온 건 아니었고, 공식 콜라보로 지정된 영상도 아니었기 때문에 이야기는 의심선에서 맴돌았다.
그리고 평소처럼 초기 동료 염불외는 사람들이 간혹 출몰하는 분위기가 이어졌다.
-아 모르겠고 저격수나 돌려달라고 폐공장 새끼들아ㅋㅋㅋ 아님 동료 개명권이나 팔아라 저격수 이름 달아주게
└히익 오따끄…!
└너 그런 거 하니?
-저 방금 시작했는데 급해서 여쭤보는데 왜 다 죽어요? 이거 공략좀 주세요
└그런 거 없어
└공식 카페 가면 너 같은 놈 시간마다 출몰한다ㄱㄱ
이렇게 아직도 초기 동료들이 뜨거운 감자인 시기에, 테스타가 늦은 핼러윈 기념 안무 영상을 업로드한것이다.
심지어 이 영상은 썸네일부터 테스타가 전부 바닥에 쓰러져있는 채로 시작했다.
그리고 'BETTER ME'의 전주가 흐르는 순간, 스르륵 일어난 멤버들은 각자 본래 안무와 다른 시작 자세를 취한 것이다.
바로 게임에서 전투에 돌입 시 뜨는 일러스트의 자세였다.
상당히 본격적으로 분장한 탓에 트레일러와 똑같은 멤버들은 표정까지 흡사하게 지으며 분위기를 돋웠다.
심지어 차유진은 도입부까지 바꿨다.
-Do you trust me?
It's ME
Oooohh-.
이후 모든 멤버들은 자신의 파트중 가장 인상적인 부분이 나올 때마다, 캐릭터를 상징하는 작은 소품을 가지고 나와서 전투 하이라이트 컷씬을 짧게 따라 했다.
대부분은 모자, 플라스크, 기껏해야 불빛을 내줄 꼬마전구 무더기 정도로 타협하며 안무를 살리는데 때문에 분위기는 가볍고 유쾌했다.
다만 김래빈은 자신이 부르는 후렴구, 카메라 사각지대에서 마네킹을끌고 나오다가 넘어뜨리고 당황했다.
-It's just confusing
언제부터였는지
I'm just confused
Umm
어디까지 가는지
당황한 김래빈과 웃음을 참고 같이 마네킹을 옮겨주는 멤버들까지, 우울한 노랫말이 어쩐지 밈처럼 웃기게 들리도록 만들었다.
게다가 이런 일을 아주 뻔뻔스럽게 소화하는 멤버부터, 과장된 전투 모션 등을 좀 멋쩍어하거나 부끄러워하는 멤버들까지 게임에서 캐릭터들이 보여줬던 인상과 일치했다.
덕분에 영상을 보던 사람들의 과몰입은 더욱 심화되다가, 마지막 파트에서 절정을 찍었다.
-감사합니다!
-또 봐요∼
-다시 만나요!
원래도 우울한 분위기가 풀어지고절정으로 치닫던 막판 댄스 브레이크였다.
그런데 즐겁게 춤을 춘 멤버들이손을 흔들며 저렇게 말하기까지 하는 순간, 완전히 게임에서 그들이 맞는 엔딩이 겹쳐진 것이다.
멤버들은 그냥 좀 쑥스럽고 재밌는 촬영에 신나서 한 행동이었으나, 후폭풍은 무서웠다.
댓글은 우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심지어 상단 노출에서 영어 코멘트가 밀릴 정도였다.
-ㅠㅠㅠㅠㅠㅠㅠㅠ으아아악
-다시 보는 거 맞지? 맞지 얘들아?ㅠㅠ 또 콜라보 하는 거지!?
-아 PTSD 씨게 오는데 행복한 이 기분은 대체 뭐죠?
-얘들아 기다려 지금 지르러 간다 우리 애들 다 맞출 때까지 멈추지않을 거야ㅠㅠ
-우리 애들 저기 잘 살아있는데 내가 게임에서 엉뚱한 애들한테 집착했었네… 걔들 놔주고… 우리 테스타 돌아올 때까지 기다려야지…
상반된 의견이 동시에 추천을 받아 댓글에 올라오며 대댓글로 울고 웃는 사람들이 속출했다.
심지어 이 동영상이 공유된 게임 커뮤니티에서도 분위기는 똑같았다.
-죽은 동료들이 할로윈이라고 돌아왔네
└ㅅㅂ
└이딴 댓글 달지마라 슬프니까
└ㅋㅋㅋㅋㅋㅋㅋ아 우리 비일이 안 죽었다고 내 덱에 멀쩡히 살아있음 개명만 시켜준 건데 무슨 말임
-갓스타라고 불러줄 때 이런 유치한 장난 치지 마라 (눈물을 참지 못하는 이모티콘)
- 악마 같은 공장새끼들보다 갓스타가 낫다
덕분에 댓글에서 울고 웃는 러뷰어들의 행렬에 팬이 아닌 게임 플레이어들까지 합류해 버렸다.
애꿎은 외국 팬들은 상황을 파악하지 못하고 또 당황했으나, SNS에서 번역으로 상황을 파악한 후엔 더 고통스러워졌다.
127 섹션 이 글로벌 서비스를 아직 런칭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I really want to play that game(웃으며 우는 이모티콘)
-PURE JEA└OUS└Y (불타는 이모티콘)
슬퍼할 기회도 받지 못한 외국 팬들의 괴로움과 함께, 핼러윈 기념안무 영상은 성공적으로 게임 마니아들의 유입 통로가 되었다.
그렇게 게임 콜라보와 함께하는 폭풍 같은 10월이 끝났다.
11월 초. 게임 콜라보 컨텐츠 공개가 다 끝났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그룹 일정은 더 바빠졌다. 이번 컴백 때 데뷔보다성적이 더 잘 나오며 주가가 확 뛰었기 때문이다.
마침 그 증거 같은 스케줄을 뛰는중이다.
단가 센 광고 말이다.
"입꼬리 더 올려서 웃어요∼"
나는 응원봉을 들고 최대한 미소다운 미소를 짓기 위해 노력했다. 다행히 감독이 만족했는지 다음 지시가 나온다.
"여기서 고개 갸웃!"
갸웃….
참고로, 이 위로 강아지 귀 그림이 합성될 것이란 말을 들었다.
'…너무 갔지 않나?'
심지어 이 광고 타이틀이 이거다.
[마법소년 테스타의 마법 같은 인공지능 비서, 큐리어시!]
여기다 이 인공지능 캐릭터가 강아지라 박문대를 좀 더 적극적으로 써먹을 모양이었다.
과연 이대로 TV에 송출되어도 괜찮은가 싶은 생각이 좀 들긴 했으나….
3개월에 3억 5천짜리였기 때문에입 다물고 광고주의 지시를 따르기로 마음먹었다. 알아서 하겠지.
"네. 됐습니다∼"
"감사합니다."
어쨌든 촬영은 순조롭게 끝났다.
기다리고 있던 멤버들이 오늘 스케줄 끝의 기쁨을 표출했다.
다만 큰세진은 스마트폰에서 눈을 안 떼고 웃는 얼굴로 손만 흔들었다.
흠, 저거 저럴 놈이 아닌데 어째느낌이 별론데.
"뭐 하냐?"
"아, 미안. 별거 아냐."
큰세진은 어깨를 으쓱거리고는 스마트폰을 집어넣었다.
그리고 옆에서 멀뚱멀뚱 나와 큰세진을 번갈아 보던 차유진이 눈을 빛내며 불쑥 말했다.
"여자친구예요?"
"…!"
"뭐?! 아니, 절대 안 되지! 야, 너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으와악!"
"너나 연애할 생각 마세요!"
"없어요!"
큰세진은 차유진을 몇 번 짤짤 흔들고 놓아주었다. 그리고 씩 웃더니 적당한 해명을 붙였다.
"예전에 데뷔한 녀석들이 갑자기 연락했더라고. 음∼ 새삼 신기해서?"
선아현이 옆에서 감탄했다.
"세, 세진이는, 친구가 정말 많구나!"
"아하하, 뭐 친구까지는 아니고∼그냥 좀 아는 사이?"
큰세진은 싱글벙글 웃으며 선을 그었다.
'이제 와서 연락하는 게 같잖다 이거군.'
큰세진은 어깨를 으쓱하며 말을 마무리했다.
"어차피 다음 달이면 얼굴은 볼 거기도 하고∼"
"으, 으응?"
"아, 연말 시상식 말이구나?"
류청우의 말에 큰세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이제 첫 시상식까지 한 달도 안 남았잖아요∼"
"와…."
"벌써 시간이 그렇게 됐네."
그 말에 다들 나름대로 여운에 잠긴 것 같았다. 아마 아주사 부터 시작해서 이번 앨범까지 다사다난했던 한 해를 떠올리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그리고 나는 직감했다.
'스케줄이 더 미쳐 돌아가겠군.'
자는 시간 빼고는 여유 시간이 거의 없는 일정이다. 여기다 연말 시상식 준비까지 병행해야 한다?
소속사가 지금도 가장 돈 되는 스케줄만 솎아내서 잡으려고 노력하는건 눈에 보였다.
아마 그쪽을 더 줄이기는 힘들겠고 우리 자는 시간을 줄여야 하겠지.
거기까지 생각한 건 나뿐만은 아니었는지, 김래빈이 쓱 손을 들고 말했다.
"그럼 연말 시상식용 무대 준비도곧 시작하겠군요."
"으음."
"…따로 준비할 게 많아?"
가요시상식과는 별 연이 없었던 배세진의 조심스러운 질문에 여기저기 케이팝 고인물들에게 격한 반응이 튀어나왔다.
"특별무대 해요!"
"아무래도 편곡도 아마 세 버전 정도는 따로 만들지 않을까 합니다. 저희가 얼마나 참여할지는 또 미지수이긴 합니다만…."
"아, 안무도, 새로운 걸 많이 만들지 않을까요…!"
"…."
스탯이 제일 낮은 배세진은 벌써 질린 표정이었지만, 곧 고개를 끄덕였다. 상황을 파악한 얼굴이 비장해보였다.
"…아, 알았어. 열심히 해야겠네."
"그래. 열심히 해서 시상식 많이 참석하자."
"상 좋아요!"
"아, 받으면 진짜 좋지∼"
산뜻하게 라이프를 포기한 놈들의 대화가 화기애애하게 이어졌다. 문제는 나도 그랬다는 점이다.
'신인상 신경 써야지.'
잠이야 나중에 자도 그만이다. 나는 상태이상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상이 아니면 죽음을']
: 정해진 기간 내로 가장 권위 있는 '국내 시상식에서 신인상을 받지 못할시, 사망
저 '가장 권위 있는'이란 표현의 기준이 모호한 이상, 웬만하면 가장 이름난 세 시상식에서는 다 신인상을 챙겨야 한다는 뜻이다.
'당일 시상식 무대하고 직접적인 연관은 없지만, 막상 무대가 성의없으면 투표하던 사람도 기운 빠지지.'
한 달은 이어질 시상식 시즌을 생각하면 무대도 최대한 신경 써봐야한다는 뜻이다.
'뭐, 성적으로는 경쟁자가 없긴 하다만.'
확실히 전보다는 마음이 편했다.
"일단 우리 라이브는 문대가 책임져 줄 거야. 너무 마음이 편하지 않니?"
"저, 정말!"
"언제나 감사합니다."
"…그래. 고맙다."
"하하!"
생각을 정리하는 사이 대화 소재가됐군. 어쨌든 팀 분위기는 좋았다.
그리고 그날 밤, 차에 실려 이동하는 도중에 톡 하나를 받았다.
[VTIC 청려 선배님: 다음은 신인상이죠?]
"…."
이 새끼 아직 투어 중 아닌가?
어쨌든 굳이 낚여줄 마음은 없다.
나는 빠르게 답장을 보냈다.
[어떤 상이든 받으면 정말 기쁠 것같습니다. 선배님께서도 좋은 결과 있으시길 바랍니다.]
약간 시간이 흐른 뒤에 답장이 돌아왔다.
└VTIC 청려 선배님: 네^^]
'정말 차단하고 싶다.'
나는 톡 알림을 끄고 인터넷을 켰다.
그리고 시상식 관련 브라우징 중에 눈에 띄는 글 하나를 발견했다.
[테스타가 신인상은 좀 그렇지 않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