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 114화]
'테스타 신인상이 또 왜.'
대충 무슨 이야기일지 짐작은 간다만, 한번 클릭해 줬다.
[테스타가 신인상은 좀 그렇지 않나?]
: 정상적으로 데뷔한 신인이 아니라 아주사 연장선으로 봐야 하는 거 아니야?
예능 프로젝트로 봐야 한다고 생각해. 솔직히 다른 신입 그룹들 기회 뺏는 거잖아.
역시.
'이 반응도 대충 예상했다.'
VTIC하고 활동 겹쳤을 때도 듣던소리 아닌가. 생태계 망치는 놈들이라고.
솔직히 이해는 간다.
' 아주사 가 좀 떴어야지.'
그 정도 잘나가는 오디션 프로그램 후광으로 데뷔한 그룹이니 방송사나 대기업의 횡포 같은 말이 나와도 이상하지 않았다.
다만 참가자들이 그 예능 찍으면서 더럽게 고생했고, 시즌 3는 애초에 윗분들도 망할 줄 알고 거의 손 놨었으니 무작정 욕먹기는 좀 억울하긴 하다만.
'어차피 시류를 바꿀 정도로 강한여론도 아니다.'
댓글을 보니 벌써 싸운다고 말하기도 민망한 일방적인 분위기였다.
-그 예능이 아이돌 오디션이었는데 무슨 소리야;
└아이돌 오디션이라 더 반칙 아닌가…?
└무슨 반칙이야 누가 보면 아이돌 오디션이 불법인 줄 알겠네ㅋㅋㅋ
-아 뭐야 진지하게 답변하려고 길게 쓰고 있었는데 어그로여?
-오디션 프로그램 출신 돌이 얼마나 많은데 그럼 걔네 다 부정 데뷔로 처 리해야 되냐?ㅋㅋㅋ 아주사가 잘 돼서 그런가 별 이상한 주장이다 나오네
-올해 신인상 밀린 그룹 좋아하는구나 화이팅!
-나도 아주사 프로그램 자체는 기형적이라고 생각하는데, 그렇다고 테스타 애들이 신인 자격이 없는 건아닌 듯.
-너무 갔다ㅉㅉ
후반 댓글들은 거의 글쓴이에 대한 조롱으로 끝났다.
'흠, 너무 이런 분위기도 썩 좋진 않은데.'
이 글이 어그로인 건 맞는 것 같았으나, 올해 데뷔한 신인 그룹의성적을 비웃는 댓글이 간간이 등장했다는 게 문제였다.
테스타 팬분은 아닌 것 같고, 그냥 누굴 조롱할 수 있는 상황이 재밌는 사람들 같았다.
-음 올해 신인 중에 제일 잘 나온애들도 8만도 간신히 팔았던데…ㅋㅋ
└ㅋㅋㅋ헐 게임도 안 되는 수준
└이 성적으로 신인상 아까워하긴 좀 그렇지 않아?ㅋㅋㅋㅋ공감성 수치 옴ㅠ
'이런 식으로 괜히 올해 데뷔한 신인 그룹 팬들하고 척 질 여지를 주는 건 안 좋지.'
그 점이 약간 찝찝했으나 큰 문제는 아니었다.
특별히 인기 글로 뜰 정도로 관심받은 글도 아니었고, 누군가 아니꼬워한다고 못 받을 만큼 테스타의 성적이 고만고만하지 않았다.
나는 어깨를 으쓱하고 그냥 다른페이지로 나갔다.
그리고 그다음 주, 연말 연습 준비에 한창일 때까지도 신인상에 대한 큰 걱정을 하진 않았다.
안무연습실 거울에 습기가 찼다.
"쉬고, 후, 다시 갑시다∼"
"허억…."
"저허, 죽어요."
차유진이 저런 말을 할 정도면 다른 놈들 상태는 말 안 해도 다 설명했다고 생각한다.
'차유진이… 제일 힘들 만은 하다만.'
지금 연습하는 곡에 차유진이 단독 안무를 소화하는 부분이 꽤 길기 때문이다.
중간에 공중 장치 타는 것까지 넣는 바람에 아마 완성작은 멋질 것 같은데… 문제는 하는 사람은 더럽게 힘들다는 점이다.
"물 줘?"
"네…."
나는 챙기던 생수병 하나를 차유진에게 던져줬다.
"…나도, 좀,"
"나도 제발 문대 자비를."
멀리 있던 두 세진에게 모두 물을 던졌다. 그리고 일시적으로 연습실이 조용해졌다. 모두가 주둥이에 물을 꽂아 붓고 있었다.
꽤 시간이 흐른 후에야 선아현이 눈치를 보며 말했다.
"그, 그래도… 할 때는 멋있을 것같아."
"맞아."
"카메라만 제대로 잡아주신다면 근사한 무대가 될 것 같습니다."
김래빈의 말에 여기저기서 키득거림이 터져 나왔다. 그리고 김래빈은 왜 사람들이 웃는 건지 알 수 없는지 살짝 당황했다.
'웃긴 놈.'
나는 헛웃음을 흘리며 스마트폰을 꺼내 들었다. 막간을 이용해서 신인상 투표 경과나 확인해 볼 생각이었다.
그러나 매니저가 음료를 잔뜩 든채 안무 연습실 안으로 들어오며, 자연스럽게 폰을 내려놓게 되었다.
"형!"
"커피!"
"아이스로 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매니저는 음료를 넘기며 물었다.
"그래…. 얘들아. 연습은 잘돼가고?"
"예!"
"이대로 쭉 연습 일정 유지하면, 시상식 때는 잘 소화할 것 같습니다."
"흠, 잘됐다! 근데 얘들아, 좀 앉아봐."
"…?"
대표로 진행 상황을 전달하던 류청우가 약간 당황했지만, 곧 침착하게 멤버들을 불러 모았다.
"왜요?"
"…추가 스케줄이 있나요?"
"아니, 그런 건 아니고. 음…."
매니저는 난감한 얼굴이었다. 몇번 주저하더니, 곧 진지하게 말을이었다.
"내일… 기사가 뜰 것 같다고 하신다. 아주사 관련해서."
"…!"
"티넷 쪽에서 최대한 막아보려고 했다는데 잘 안 됐나 봐. 우리 쪽에서도 대응 기사 준비 중이니까 너무 걱정은 말고."
"…무슨 기산데요?"
"음, 아주사 참가 관련해서 유언비어 도는 건데, 이미 반박 자료 다있으니까 괜찮을 거야. …특히 청우한테 꼬투리 잡은 것 같으니까, 청우는 당황하지 말고."
나는 간신히 침음성을 참았다.
'터질 게 하필 지금 터졌군.'
이건 100% 작가와의 친인척 논란이다.
'작가도 입 틀어막길래 한 1년은 별일 없을 줄 알았는데.'
그룹이 워낙 잘돼서 캐는 놈들이 많이 붙은 모양이다.
류청우도 이 건을 짐작했는지, 어두운 얼굴이었지만 당황한 것처럼 보이진 않았다.
다만 조심스럽게 물었다.
"…제가 따로 뭐라도 더 말씀드려야 합니까?"
"그런 이야기는 못 들었는데….잠깐."
매니저는 당황한 얼굴로 다시 통화하러 나갔다.
그리고 남은 멤버들의 분위기는 당연히 축 처졌다. 연습의 피로를 상쇄시켜 주던 아드레날린이 방금 소식으로 사라진 탓이었다.
큰세진이 진지하게 물었다.
"형님, 피곤하시겠지만 무슨 일인지 저희도 간단히 설명 들을 수 있을까요?"
"…물론이지."
류청우는 지난번 술자리에서 나에게 자초지종을 말했던 것처럼, 같은 말을 멤버들에게 반복했다.
정리하자면, 작가가 종친회를 통해얼굴도 거의 본 적 없는 먼 친척인자신에게 섭외 연락을 했다는 것이다.
해명만 잘되면 큰 문제로까지는 번지지 않을 것처럼 느껴졌는지, 대부분은 안도했다.
"음, 그럼 아무 사이도 아니신 거네요∼"
"그렇지….해명이 들어가면 크게 번지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해."
류청우는 그래도 씁쓸한 얼굴이었다.
"중요한 시기에 괜한 논란을 만들어서 미안하다."
"괘, 괜찮아요! 혀, 형 너무 걱정마시고…."
"뭐, 이미 일어난 걸 어쩌겠어요∼저희 잘 해결되길 바라봅시다!"
배세진이 슬그머니 말을 얹었다.
"…류청우 네가 그러면 난 벌써 탈퇴했어야지."
"…!"
이놈도 이젠 자학개그까지 하는군.
그리고 차유진이 해맑게 대답했다.
"그건 그래요!"
"야!"
"하하!"
발끈한 배세진이 웃겨서 분위기가 좀 풀어졌다.
"뭐 걱정한다고 되는 일도 아니고∼ 연습이나 계속할까요?"
"현명한 판단이십니다."
통화를 끝내고 돌아온 매니저는 도로 연습을 시작한 우리를 보고 다소 황당해했지만, 안심하며 돌아갔다.
그리고 피로 때문에 걱정이고 뭐고 그냥 자버린 다음 날 아침, 줄줄 기사가 떴다.
[테스타의 류청우, 아주사의 작가가 '친인척 찬스'로 섭외해]
[오디션 프로그램의 불편한 진실, 테스타도 혈연의 힘?]
[아주사로 데뷔한 테스타. 작가의 친척은 전 메달리스트 류청우였다.]
예상했던 라인업이었다.
연예가 아니라 사회면에 뜬 기사몇에 순식간에 댓글이 불어났다.
"댓글 보지 마세요."
"…알았어."
류청우는 근심하는 얼굴이었다.
"…팬분들 힘들어하시겠는데."
다행히, 반박 기사도 연이어 바로떴다.
[T1 스타즈 '작가가 친척? 류청우는 얼굴도 본 적 없던 사람']
[아주사 작가는 류청우와 15촌보다 먼 사이… 친척도 아니었다.]
보통 이 경우 반박 기사는 제대로 주목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워낙 짧은 시간 안에 바로 대응이 이루어졌고, 류청우의 기존 이미지가 좋았기 때문에 포털 뉴스탭 상위에 오를 수 있었다.
물론 팬들의 노력이 컸다.
-그냥 어떻게든 류청우 컨택해보려고 하다가 종친회까지 간 거 같은데? 저 타이밍이면 작가가 대박 난거지 류청우는 망주사에 속은 것ㅋㅋㅋ (👍11026 👎1501)
-9촌부터 남인데 15촌이면 원수수준인데요 (👍8490 👎422)
-15촌? 이건 솔직히 트집같아요 내가 작가라도 국대 출신 있으면 섭외함 (👍6178 👎759)
테스타 그룹 팬들은 대부분 납득했고, 대중 여론도 빠르게 회복세로접어들었다.
회사 언론홍보팀에서도 따로 연락이 왔다.
"큰 문제 없을 것 같대. 그래도 한동안 SNS는 자제하자 청우야."
"…예. 감사합니다."
류청우는 안도한 내색이었지만, 팬들에게 사과나 감사 등 뭐라도 글을 올릴 수 없어 다소 심란한 것 같았다.
나는 한숨을 참았다.
'…이건 말하긴 좀 그렇겠군.'
사실, 인터넷 몇몇 커뮤니티에서 전면적인 여론 회복에는 실패한 걸확인했다.
[류청우 해명 기사 봐도 쎄한 건 나뿐인가?]
: 단순히 먼 친척이라 혈연 아니다∼ 하고 넘기기엔 류청우가 아주사에서 편집을 너무 잘 받았잖아.
예선 제대로 안 보고 섭외로 들어온 것부터가 반칙이라고 생각해. 섭외 과정에서 무슨 딜이 있었을지 모르잖아.
-본문 다 받음
-아니 류청우가 섭외됐을 때는 아주사 시즌3 다 망할 거라고 했을때잖아… 너무 간 거 아니야?
└아주사 대흥행 성공한 후에도 류청우 분량은 꾸준히 좋았잖아. 솔직히 류청우만 계속 비련의 조장 이미지인 거 이상하지 않았어?
-의심스러운 건어쩔수 없다고생각함
-류청우 국대 출신 방패 아주사때부터 싸했다니까 이제야 좀 제대로 말 나오네
-섭외…ㅋㅋㅋ 아마 최종까지는 어떻게든 보내준다고 했겠지 짜증난다 누구는 분량도 제대로 못 받았는데류청우는 섭외?ㅋㅋㅋㅋㅋㅋ
류청우에 대한 의심과 비난은 점점 수위가 강해지더니, 결국 테스타 전체로 화살이 향했다.
-난 솔직히 다른 멤버들도…ㅋㅋ흠 팬들 무서워서 더 말 못 하겠음└ㅋㅋㅋ내가 해줄게! 아니 류청우만 그랬냐∼ 사실 데뷔조 다 편집 수혜 받았지∼
└ㅋㅋㅋㅋㅋㅋ속시원
└곧 팬들이 발작할 자리입니다.
└예상 : 누구누구는 나쁜 편집 받았는데? 분량 별로 없이 무대로 올랐는데?
└ㅋㅋㅋㅋ존똑
└그 나쁜 편집도 나중에 다 수습해준 건 눈가리고 아웅이지 진짜 꼴뵈기 싫어 그팬 그가수들…
물론 이 분위기가 정상은 아니었기 때문에, 길게 가지 못하고 어느 정도 가라앉았다.
이럴 정도까지의 일이 아니라고 피곤해하는 사람들이 후반에는 대세를 잡았기 때문이다.
회사는 이런 곳들이야 다른 이슈하나 터지면 금방 옮겨갈 거라 생각했는지, 일단 주류 언론 수습에 주력하느라 우선 순위에서 미룬 것 같았다.
그래서 테스타의 정당성을 의심하는 여론은 당장 사라지지 않고 불편하게 남게 되었다.
그리고 얼마 안 가서, 결국 이 이야기까지 다시 나오기 시작했다.
[테스타 신인상 말이야]
: 성적은 사실이니까 인기상이나 본상은 어쩔 수 없지만… 신인상이라도 다른 그룹 주고 싶다ㅠㅠ 뺏긴애들이 너무 안 됐어…
지난번과 다른 점이라면 적극적으로 호응하는 사람들이 생겼다는 것이다.
[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 115화]
테스타에게 신인상을 주면 안 된다는 댓글들 주장은 이전보다 논리가 꽤 정교해졌다.
초점을 테스타 자체가 아니라 신인으로 옮겨 버렸기 때문이다.
-진짜ㅠㅠ 마음이 안 좋아 작년 기준이면 충분히 받을 만한 성적인 애들이 체념했을 걸 생각하면…
-애초에 예능 출신 자체가 판 교란이야 테스타도 그냥 나왔으면 과연 신인이 이 성적일까? 절대 아니라고 생각함
└ㅇㅇ 아주사 공정성 문제도 나오고 있는 판국에 신인상까지 낼름 가져가겠다는 건 진짜 선 넘었지
-와 너희야말로 선 넘은 것 같은데? 테스타가 무슨 사재기라도 한줄 알겠어;
└솔직히 사재기보다 심한 일이라고 생각해
└아니 사재기는 범죄거든요 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범죄가 아니라 더 문제라는 생각 안 들어? 그래서 지금까지 막을 방법이 없었잖아
-이 기회에 프로그램 빨로 성적내는 케이스 분리해야 하지 않을까ㅠ 신인상은 진짜 신인이 받아야지.
'잘 엮네.'
아무래도 그룹 성적으로는 도저히 물고 늘어질 수 없으니, 상징성 있는 신인상이라도 안 주고 싶은 것 같다.
이게 통해서 혹시라도 진짜 신인상을 못 받으면, 또 그걸 바탕으로 '오죽했으면 신인상도 못 받았겠냐'는 말 꺼내서 역으로 써먹을 수도있고.
하지만 그럴 일은 없을 것이다.
여기서 떠들어봤자 실제 수상 집계 기준에는 영향이 없기 때문이다.
'뭐, 아주사처럼 마이너스 투표가 가능한 것도 아니고.'
어차피 메인 여론은 다 잡혀서 심사위원 점수에서 문제가 생길 확률도 낮았다.
부득불 신인상 타간다고 몇몇 커뮤니티에서 욕 좀 먹고 축하 못 받는 정도야 가능하겠다만… 당장 수상에 문제가 생길 것 같지는 않다.
당장 이 글도 시간이 흐를수록 밀리고 있기도 했다.
-하다하다 사재기까지 들먹이냐 진짜 열폭에 넹글 돌아버린 듯
-뭐 한 20만쯤 판 혜성 같은 루키 있었으면 나도 설득당했겠는데… 안타깝게도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기 때문에…ㅋㅋㅋㅋㅋ
-기분은 이해하겠음 근데 니들이 뭐라고 신인상 기준을 재창조하고계세요ㅋㅋ
이런 댓글이 꽤 많아지더라고.
'연말 무대 연습이나 하고 있자.'
나는 일단 모니터링을 중지했다.
쓸데없이 영향을 받지 않기 위해서였다.
'…팬들도 너무 스트레스받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일단 SNS 등 소통 활동이 중지된 상황이라 뭘 해보기가 어려웠다.
사실 좀 무리하면 '그럼 테스타 대신 누가 신인상 받아야 한다고 생각해?' 같은 글로 논란을 돌려 버릴순 있겠다만….
그러다 혹시라도 박문대라는 게 걸리면 진짜 스캔들감이다.
'무대나 제대로 해야겠군.'
결국, 다시 연습으로 생각이 돌아왔다. 나는 한숨을 쉬며 결론을 받아들였다.
"한 번 더."
"넵."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다른 놈들도 유독 연습 분위기가 비장해졌다.
'다 찾아봤군.'
아무래도 논란 선동 글이 제법 퍼진 모양이었다. 팬분들이 한탄하는 말이라도 본 게 아닌가 싶다.
그 덕에 뭔가 보여주겠다는 기세가 거의 아주사 팀전급이었다.
거의 탈진 직전인 류청우가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을 다잡는 것처럼 중얼 거렸다.
"지금 우리가 연습하는 게… SBC용이었나?"
"맞습니다."
김래빈의 대답을 들으며, 배세진이 허연 얼굴로 중얼거렸다.
"…이게 가장 어려운 것 같은데."
"맞아요! 재밌어요!"
"…."
배세진은 쾌활한 차유진의 면상을 딱 한 대만 때리고 싶다는 얼굴로 잠시 쳐다보았다.
류청우가 웃으며 상황을 정리했다.
"그래. 우리 열심히 해서 재밌게 보여드리자."
"네, 네!"
"저희 다 힘냅시다∼"
소속사가 혹시 모를 추가 논란을 의식해서인지, 11월 대외 스케줄이 조금 줄어든 덕에 연습 시간이 좀늘어났다.
그래서 각종 시상식 무대에 대해 제법 만반의 준비가 끝난 뒤에야 연말 시상식 시즌이 다가왔다.
첫 시상식은 ToneA였다.
ToneA. T1에서 주최하는 자칭 아시아 최대 규모 글로벌 뮤직 어워드다.
이 말이 무슨 뜻인가 하면, 테스타를 밀어줄 마음이 가득한 모기업에서 주최하는 시상식이란 뜻이다.
당연히 테스타는 성적대로 상을 챙겼다.
"수상자는… 테스타! 축하드립니다!"
이 말을 오늘만 네 번 들었다.
우수상, 인기상, 심지어 뮤직비디오상까지 챙겼다.
그리고 물론… 신인상도 받았다.
"정말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초심잃지 말라는 의미에서 주신 상으로 알고, 더 조심하고, 더 노력해서 정진하겠습니다."
신인상 수상소감은 일부러 큰세진이 했다. 류청우와 상의 된 사항이었다.
내용도 회사와 이야기해서 논란이 안 될 만한 소지에서 잘 마무리했으니, 원래 먹을 욕 정도만 먹겠지.
…다만, 예상대로 내 상태이상은 풀리지 않았다.
'기대도 안 했다.'
Tone A 가 아시아 최대규모 같은소리를 해도 별 권위는 없다는 건보는 사람들도 다 알 것이다.
어쨌든, 멤버들은 일단 첫 시상식이 무사히 끝나니 제법 홀가분해진 모양이다.
"수고하셨습니다∼"
다만 상을 탔는데도 기쁨보다는 '해냈다'는 안도감이 더 큰 것 같았다.
'하필 지금 터져서 맘고생만 했군.'
이놈들이 일 년간 개고생한 보람을 가장 진하게 느낄 타이밍을 놓치는게 썩 기분이 좋진 않았다.
"얘들아, 정말 고생 많았다."
"히히."
"자, 잘 끝난 것 같아서, 다행이에요."
"다른 변수를 제외하고 저희만 두고 판단한다면, 무대도 준비한 만큼 잘 소화한 것 같습니다."
김래빈의 말에 잠시 침묵이 흘렀다.
'…열심히는 했지.'
여기 무대는 대충 8분쯤 받았다.
Tnet에서 구성을 '테스타가 이렇게 많은 히트곡을 냈다' 자랑으로 해달래서 네 곡을 메들리로 묶어서 했고.
덕분에 추가 동작이 거의 없어서 연습은 비교적 쉬웠다. 중간에 쉴틈이 없으니 무대 내려와서 산소 호흡기를 찾아야 하는 게 문제지.
그래도 실수 없이 잘 소화했다고 생각은 한다만, 문제는… 카메라였다.
후반부만 겨우 모니터링했는데 대체 뭘 한 건지도 모르게 잡았더라.
심지어 화면이 너무 어두워서 집중도 잘 안 됐다.
'열 받네.'
데이터 팔이라도 좋으니 누가 고정캠으로 잘 찍어뒀길 바란다. 나중에 위튜브에서 찾아봐야겠군.
"…음, 현장에 있던 분들께는 잘 전달됐겠지."
"함성이 좋았죠∼"
일단 무대 뒤 복도에서 카메라를 성토할 수는 없었기 때문에 다들 열심히 얼버무렸다.
더 각잡고 준비한 무대가 많이 남아있어서 아쉬움을 참을 만 한 듯 싶었다.
'…대기실에서 스마트폰이나 찾아오자.'
혹시라도 다른 문제가 튀어나온 건없는지 살펴볼 생각이었다. 아마도 인기글 한둘에서 욕이나 좀 먹고 끝일 것 같긴 했지만.
그리고 그대로 대기실 앞으로 돌아갔을 때, 전혀 예상치 못하고 반갑지도 않은 얼굴을 만났다.
"안녕하세요."
"헉! 선배님!"
"안녕하십니까!"
…청려였다.
'신인 대기실 문 앞에 대상 수상자가 서 있어?'
관계자들한테 보라고 시위하는 것 같은 꼴이었다.
'못 피하게 만들려는 건가.'
어쨌든, 상상도 못 해본 상황에 당황한 멤버들은 꾸벅꾸벅 고개를 숙이며 축하의 말을 쏟아냈다.
"대상 2관왕 정말 축하드립니다, 선배님!"
"축하드립니다!"
"아, 감사합니다."
청려는 웃으며 인사를 받았다. 김래빈이 눈을 번쩍이며 물었다.
"어쩐 일로 저희 대기실에 방문하셨습니까?"
"축하 겸 후배 얼굴이나 볼까 하고요."
청려는 나와 눈을 마주쳤다.
"신인상 축하드립니다. 별 의미는 없었겠지만."
"…!"
"예?"
청려는 약간 얼이 빠진 김래빈에게 멋쩍은 듯이 덧붙였다.
"4관왕이나 했으니 이미 신인이라고 보기에는 너무 잘나가는 후배분들이란 뜻이죠. 앞으로도 활약 기대하겠습니다."
"아, 감사합니다!"
"그럼 얼굴도 봤으니 이만 가볼게요. 일정이 있어서."
"넵, 잘 들어가시길 바랍니다!"
청려는 살짝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
"고생하세요."
그리고 복도를 성큼성큼 걸어 사라졌다.
나는 내심 혀를 찼다.
'…완전히 신인상으로 특정했군.'
본인도 비슷한 조건이었던 게 분명했다. ToneA 신인상으로는 의미가 없다는 것까지 던졌으니까.
'찝찝한데.'
소득 없이 일방적으로 정보가 넘어간 것 같아 뒷맛이 좋지 않았다.
'본인이 겪은 상태이상 목록으로 딜 걸어올 수도 있겠고.'
추측하고 있자니, 옆에서 다른 놈들이 말을 걸었다.
"올∼ 문대, 예능으로 인맥 생긴 거야?"
"마, 많이… 친해?"
선아현 질문에 정색할 뻔했다.
"…그냥 안면 좀 튼 거지."
"그, 그럼 질문 하나만 부탁드려도 되겠습니까…!"
마지막은 선아현이 아니라 대화에 끼어든 김래빈이다. 과도한 흥분 탓에 말을 더듬은 것 같다.
'그러고 보니 이놈이 VTIC 언급하는 경우가 많았던가.'
팬인가 짐작하자니, 곧 정신을 차린 김래빈이 진지한 얼굴로 간절히말했다.
"VTIC 선배님들께서 지난 앨범 타이틀 작업에 쓰신 편곡 프로그램이 정말 궁금합니다…!"
"…."
제보다 젯밥에 관심이 많았군.
"기회되면 물어볼게."
"감사합니다!"
기회가 영영 안 올 수도 있다는 의미를 전혀 캐치하지 못한 김래빈이 행복해했다. 뭐, 한 명이라도 즐겁다니 다행이군.
'시청자 반응이나 확인하자.'
나는 연습실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 SNS 등지와 커뮤니티를 가볍게 돌았다.
그래도 여론이 악화되진 않았는지, 축하한다는 의견이 은근히 비꼬는 의견보다 많은 상태였다.
'…팬들이 참고 있네.'
어떻게든 꼬투리를 주지 않기 위해 살살 긁는 소리들을 최대한 무시하고 축하로 글을 밀어버리려 노력 중인 게 보였다.
감정싸움에 말려들면 결국 정체가 분명한 그룹 쪽만 손해를 보기 때문이다.
물론 SNS 개인 계정에서는 성토글이 이어졌다.
-결국 남는 건 기록이다 반년 만지나도 사라질 개소리 신경 쓰지말고 투표나 해야지
-아 ㅅㅂ 개쌉소리들 다 처 패야하는데 참으려니까 사리 나올듯
-라이징 때리는 거 맛들인 새끼들개많네 이 와중에 발카까지ㅋㅋㅋ환장하겠다
-ㄹㅊㅇ무매력 머글픽 때문에 이게 다 무슨 일이냐 ㅇㅈㅅ에서 팀 다 말아먹고 또 리더 완장 찰 때부터 싸했다
그룹 팬부터 악성 개인팬까지 누구하나 빠짐없이 피로감을 호소하는 중이었다.
부채감이 차올랐다.
'…차라리 안 받아도 된다고 해버리고 싶은데.'
돌연사 피하겠답시고 입 싹 닦고있으려니 좀 씁쓸했다.
'그래도 죽을 것 같진 않군.'
다행인 것은, 여론에서 밀리지 않았기 때문에 앞으로도 이 수위를 오가다가 시상식 끝물쯤에는 흐지부지될 것 같다는 점이다.
'ToneA에서도 딱 받을 만한 부분만 챙겼고.'
혹시라도 더 과하게 챙겨줄까 봐 약간 걱정했는데 눈치는 있는지 적정선에서 끝냈다.
누구든 우호적인 시상식에서 챙길수 있을 만한 정도라 비난 여론이 물 위로 오르진 않았다.
'무대에서 별 소득이 없는 건 아쉽다만.'
그건 직캠을 기다려 보면 어느 정도는 해결이 될 것 같았다. 다음 무대도 계속 남아있고.
'좀 안 풀리긴 했다만, 이런 때도 있는 거겠지.'
일 좀 진정되면 뭐라도 팬들이 스트레스를 풀 만한 컨텐츠를 올려야겠다.
나는 머리를 정리하고 스마트폰을 껐다.
아니, 끌 생각이었으나… 막 커뮤니티에 최신 인기글로 등록된 게시글의 제목을 보고 말았다.
[Tnet 예능 출신이 4관왕하는 동안 박수만 쳐야 했던 신인 남돌]
"…."
당장 제목을 클릭했다.
그러자 카드뉴스 형식으로 된 이미지 게시글이 쭉 나타났다.
'X발.'
이 새끼들 작업 들어갔네.
청려는 스마트폰으로 시선을 내렸다. 신인상으로 아수라장이 된 모 인기글이 떠 있었다.
"궁금하네."
"…네? 뭐가요?"
청려는 멤버의 말에 대꾸하지 않았다. 그냥 화면에 자신의 SNS 계정을 띄웠을 뿐이다.
'어떻게 되려나.'
청려는 오늘 찍은 사진 여러 장을 코멘트와 함께 SNS에 차례대로 올렸다.
그리고 그 사이, 대수롭지 않게 지나간 것처럼 사진 하나를 골라 추가했다.
열심히 하는 후배들
연말에도 좋은 결과 있길
그리고 업로드를 눌렀다.
도화선에 불이 붇었다.
[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 116화]
카드 뉴스 형식 게시글은 눈에 잘 들어오는 큼직한 폰트와 이미지로 구성되어 있었다.
[혹시 오닉스를 아시나요?]
[올해 데뷔한 신인 아이돌 그룹]
그 밑으로 오닉스의 성적이 첨부되었다. 초동 8만, 해외 공연 등 괜찮게 자리 잡은 신인 아이돌이 이룰만한 성적이었다.
[그러나 오닉스는 올해 어떤 신인상도 기대할 수 없습니다.]
[신인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성적을 낸 그룹이 있기 때문입니다.]
게시글은 다음 페이지 한 장을 다 할애해서 상을 받는 '테스타'의 모습과 명칭, 성적을 강조했다.
그리고 그다음 페이지부터는 테스타에 대한 일방적인 설명이 들어갔다.
[테스타는 예능에서 만들어진 그룹입니다.]
아이돌 주식회사 가 얼마나 방송국의 관여가 심한, 예능 색채가 강한 프로그램인지에 관한 이야기가나왔다.
그리고 이번에 논란이 된 작가의 친인척 섭외와 편집 이야기까지 기사 제목을 따와 주르륵 나열되었다.
[예능국, 매스미디어의 힘이 가요계의 흥행을 좌지우지하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예상 질문 방어 페이지도 놓치지 않고 넣어줬다.
[Q : 지금까지 수많은 아이돌 오디션이 있었는데요?]
[A : 오디션 '예능'이 문제입니다.]
[소속사의 자체 오디션이 방영되는게 아니라, 예능국 PD와 작가들이 만든 '본격적인 예능'이라는 점이 문제입니다.]
[Q : 오디션 예능으로 데뷔한 솔로 아티스트들이 많지 않나요?]
[A : 프로그램을 통해 결성된 것이 아니라, 기존 아티스트들이 발굴되는 형식이었습니다』
[Q: 예능에서 음원 내고 활동하는 프로젝트도 많았는데요?]
[A: 그들은 '신인상' 항목에서 평가받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픽토그램과 함께 신인 아이돌들이 고군분투하는 사진들이 나왔다.
[불공정한 플랫폼에서 그저 앨범만으로 부딪히는 신인들]
마지막으로 추가 페이지가 붙었다.
[올해 ToneA 시상식]
[테스타는 신인상을 포함한 4개 부문 상과 4곡의 무대 시간을 받았다.]
[다른 신인들은 단 하나의 상도, 단 한 곡을 전부 보여줄 기회도 얻지 못했다.]
박수치는 다른 신인들의 이미지가 뒷배경으로 들어갔다.
[ToneA을 후원한 대기업은 테스타를 만든 예능을 후원한 그곳이었다.]
카드 뉴스는 베스트셀러 '공정하다는 착각'의 인용으로 마무리되었다.
사람들이 권위 있다고 생각하는 이미지까지 이용하며 아주 충실하게 구성을 다 챙겼다는 뜻이다.
게다가 논조를 또 슬쩍 돌려놨다.
'…예능국의 가요계 침투와 엮었군.'
물론, 정신 차리고 보면 개소리다.
예능에서 하는 무대 프로젝트들은 단발성이고, 에피소드를 만드는 용도이기 때문이다.
'반면에 아주사 는 애초부터 아이돌 그룹 만들려고 출범한 예능이지.'
성격이 아예 달랐다.
게다가 원래부터 이 판은 불공정한곳이다.
대형 기획사 출신일수록 주목도와 기회 면에서 출발선이 다른 문제는 이미 고질적이었다.
'테스타만 아주 특별한 문제를 가진 건 아니다.'
하지만 문제는 원래도 테스타 자체를 아니꼬워하는 사람들이 많았고, 친인척 이슈로 떠오른 공정성 이야기로 커뮤니티 여론이 좋지 않은 상태라는 것이다.
거기다 글은 테스타의 성적이 부당하다는 것이 아니라 '신인상'만으로 한정시켜 놔서 거부감을 낮춰놨다.
그래서 원래라면 씨알도 안 먹혔을소리가 '믿고 싶은 사람'들이 많은덕에 살살 먹혔다.
-테스타 애들이 잘못했다는 게 아니라 지금 방식이 이상하다는 말이잖아. 난 동의.
└맞아 가요계에서 너무 기형적으로 예능 방송국 힘이 커진 것 같음
└이런데 러뷰어들 오닉스 8만 주제에 신인상 욕심낸다고 비웃는 거 너무 하더라ㅠ 내가 다 마상
-진짜 질린다 대체 이렇게까지하는 이유가 뭐야?
└예능 빨 맞잖아ㅋㅋ 러뷰어들 개거품 물지 말고 정독부터 하고 와∼
-이건 또 무슨… 아주사 뽕은 딱 데뷔앨범 낼 때 관심받는 걸로 끝났지 지금은 자기들이 잘해서 성적 내는 거임
└신인상이 그렇게 아까워?
-? 오디션 프로그램들 다 예능국 PD, 작가들이 만들던데? 아주사만 그런 거 아니야
└그래서 아주사만큼 어그로 끌고 예능스러운 아이돌 오디션 이름 하나만 대봐
덕분에 댓글에서는 동조하는 사람들과 말도 안 되는 소리 말라는 사람들로 도리어 난리가 났다.
극단적으로 의견이 갈리니 더 화제성이 생긴 것이다.
'X발 진짜.'
이거 분명 오닉스 팬들이 만든 건 아니다.
테스타와 체급 차이가 열 배에 가까운데 척지고 싶을 리 없기 때문이다.
그냥 테스타 엿 먹이고 싶어 하는 놈들이 만든 거지.
'이렇게까지 한다고?'
카드 뉴스까지 만든 건 보통 정성이 아니었다. 동시다발적으로 온갖 SNS와 커뮤니티에 올린 부지런함은 말할 것도 없고.
대체 얼마나 싫으면 이런 짓까지할 수 있는 건지 모르겠다. 나라면 그냥 안 보고 말 텐데.
솔직히, 좀… 소름 끼치는 일이다.
'설마 이것 때문에 신인상을 못 받는 건…'
아니, 그래도 무리수다.
'사회면 뉴스에 나올 정도로 커져야 뺏을 수 있다.'
웬만한 규모의 시상식이라면 이런 일로 원래 받을 놈한테 안 줄 수는 없을 것이다.
'그냥 테스타 이미지가 X 됐으면 싶은 거지. 팬들이 피곤해서 나가 떨어져 줬으면 하는 거고.'
머리가 도리어 차가워졌다.
'…좀 극단적인 방법을 써야 하나.'
애꿎은 놈들 말려들까 봐 보류했는데 이젠 그놈들보다도 팬들의 위장이 문제다.
그리고 길게 고민할 것도 없었다.
더 환장할 글이 올라왔기 때문이다.
[청려 인하트인데 이거 각인가?]
: 티원에이 시상식 후기 사진들인데 오닉스 있음.
(청려 인하트 캡처)
연말에도 좋은 결과 있길 바란대;
나만 시그널 느꼈냐
댓글은 헛소리 말라고 밀어버리는 브이틱 팬들로 가득 찼지만, 사실 글이 올라온 것부터 끝났다.
기사까지 초읽기 선고였다.
'이건 또 왜 지랄이야.'
분명 일부러 올린 것이다. 쉽게 변명 가능한 선에서 수위 조절한 게 한두 번 해본 솜씨가 아니다.
'무슨 생각이냐고 개새끼야.'
나는 밀려오는 빡침에 문자 메시지 어플을 열었다가…, 다음 순간 껐다.
'반응하지 말자.'
어차피 저 새끼도 뭘 더 얹기는 부담스러울 것이다.
이런 민감한 문제에 참견하는 걸 팬들이 좋아할 리가 없으니까. 나중에 꼬투리가 될 수도 있고 말이다.
'그냥 나랑 기싸움 해보겠다는 거지.'
널 X 되게 만들 수 있으니 협조적으로 감추는 거 다 털어놔 보란 뜻 아니겠는가.
지금 연락해 봤자 나만 분노 때문에 손해 볼 가능성이 크다.
'…일 해결되고 맑은 정신으로 접촉한다.'
나는 청려를 차단했다. 내 쪽에서 빡쳐서 연락하는 걸 원천 봉쇄한 셈이다.
하지만 멀지 않은 시기에 이 새끼를 처리해 버릴 방법을 고민해 봐야겠다.
'먼저 이 건부터 처리하고.'
나는 아직 SNS 등지를 보지 않아 평온한 멤버들을 불러냈다. 이제 잠들 준비를 하던 놈들은 얼떨떨한 얼굴로 거실에 모였다.
"다, 다들 부른 거였구나…."
"아, 혹시 첫 시상식 기념으로 뭐 선물 준비한 거야? 난 제일 큰 거 받을게. 고맙다."
"큰 게 가장 좋은 선물이라는 편견을 이용하여 작은 것에 좋은 선물이 들었을 확률도…."
"…선물 아니다."
"넵."
갑자기 긴장감이 훅 사라지는군.
나는 유일하게 약간 심각한 얼굴인 류청우를 보며 제안했다.
"우리 SBC 무대 말인데요."
"응?"
"편곡 바꾸면 어떨까요."
일동이 당황했다.
"지금?"
"특별무대 한 곡만요."
"…이유 있어?"
배세진은 당장 거절하고 싶지만 참고 말이라도 들어보겠다는 얼굴이다.
나는 고민하다가, 상황을 설명했다.
설득하려면 이야기 안 할 수도 없고, 어차피 늦어도 내일이면 알 것같았기 때문이다.
"사실 지금 인터넷 쪽에…."
설명이 이어질수록 멤버들의 얼굴이 굳었다.
"아주사 때 생각나네."
"같은 사람들이 아직도 그러나 보다. 음… 근데 편곡은 왜 바꾸게?"
큰세진의 질문에 나는 가감 없이말했다.
"충격을 주려고."
그리고 어떤 방향으로 바꾸고 싶은지 말했다.
"…!"
멤버들은 약간 당황한 것 같았다.
"조, 좀… 너, 너무하지… 않을까?"
"저도 약간 걱정됩니다."
하지만 일단 큰세진에게 찬성표가나왔다.
"진짜 각오하고 해야 할 것 같지만, 음∼ 그래도 난 일단 찬성."
"…!"
이러면 사실 설득은 반쯤 끝난 거나 다름없었다.
"지금 상황에 제일 효과적인 대응 같거든요. 혹시 싫은 분?"
"…."
배세진은 큰세진을 노려보는 것 같았으나, 나와 눈이 마주치더니 한풀 기세가 꺾였다.
"…?"
아니, 싫으면 일단 의견은 들어볼 생각이었는데.
하지만 반대 의견은 나오지 않았다. 심지어 류청우도 그냥 고개를 끄덕였다.
"하자. 지금 내가 너희 말고 다른사람들 입장까지 생각해 줄 수가 없겠다."
"형…."
아무래도 류청우는 자신 때문에 여론이 쭉 꼬인 것 같아서 계속 신경이 쓰였던 것 같다.
"원래 그럴 사람들이에요. 형 일아니었어도 다른 건수 만들었을 거니까 신경 쓰지 마세요."
물론 그랬다면 이 타이밍은 아니었을 거란 진실은 굳이 말해주지 말자.
놀랍게도 선아현에게서 맞장구가 나왔다.
"…마, 맞아요. 그, 그런 사람들은 변하지 않으니까, 에, 에너지를 쓸 필요가 없지 않을까요…!"
아마 상담하면서 들은 말을 옮긴듯싶었다.
"오∼ 아현이 멋진 말!"
"멋진 말!"
"아, 아니…."
선아현이 얼굴이 발개졌다. 류청우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야지. 고마워."
배세진은 훈훈한 분위기에 눈치를 보다가 움츠러든 채로 말을 꺼냈다.
"…그럼 이대로 편곡 바꾸는 걸로된…."
"바꿔요!"
"반대 의견 있는 분∼?"
차유진의 선창과 큰세진의 재창에 누구도 의견을 내지 않았다.
그리고 배세진은 체념한 눈치였다.
찬성하고 싶은 자아와 반대하고 싶은 육체의 싸움에서 전자가 이긴 모양이다.
"강행군이 되겠군요. 힘내야겠습니다."
"힘냅시다∼"
그렇게 편곡을 바꾸는 것이 합의되었다.
그리고 다음 날, 회사에도 회의 끝에 컨펌이 내려왔다. 덕분에 딜레이없이 곡을 받아서 재연습을 시작했다.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김래빈은 본인이 하지 못해서 살짝 아쉬워 보였지만, 상황상 납득한 것같았다.
그리고 일주일이 살짝 넘는 기간동안 동선과 안무를 고쳤다.
그동안 인터넷에서는 예상대로 별 이야기가 다 나온 것 같았다. 기사도 슬쩍 떴던 모양이다.
심지어는 테스타가 참석하지 않은 작은 시상식에서는 오닉스가 신인상을 받았다는 소식을 들었다.
[오닉스, '서울러 초이스 어워드'에서 눈물의 신인상 수상]
100% 투표로 이루어졌는데, 커뮤니티마다 생중계하면서 '정의구현' 같은 소리와 함께 투표를 몰아준 모양이었다.
게다가 VTIC 팬들이 대상 투표하면서 은근히 함께 투표해 줬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그런 시상식이야 아무래도 상관없지만, 팬들의 탈력감이 가속화되고 어그로들이 신났다는 게 문제였다.
팬들이 투표에 참여하면 '테스타 나오지도 않는데 이 신인상까지 뺏고 싶냐' 같은 프레임을 짜니까.
덕분에 무대 준비가 아주 순조로웠다. 무대 형식 때문에 약간 갈등하던 몇몇 멤버들도 눈에 불을 켜고하더라.
그리고 SBC 가요대전 당일.
아주 결정적인 사건까지 일어났다.
"안녕하십니까∼"
"안녕하십니까!"
오닉스와 마주쳐서 웃으며 인사하고 지나가는 순간, 그 단어를 들었다.
"…쟤네 지금 정의구현이 어쩌고하지 않았냐?"
"저도 들었습니다."
"나, 나도 들었어."
…솔직히, 자기들끼리 있을 때야 할 수 있는 이야기였다.
뭐, 당연히 지금 상황이 기분 좋을수도 있지. 상 챙겼고 경쟁자는 살짝 X 됐고.
근데 하필 귀 좋은 놈들이 있어서 이쪽도 들었다는 게 문제였다.
"와, 무대 얼른 하고 싶어졌어."
"저도요."
"…나도."
덕분에 모두가 내적 갈등을 다 버린 채 설레는 마음으로 무대를 기다릴 수 있었다.
죄책감을 없애고 내부결속까지 시켜주다니, 정말 좋은 놈들이었다.
SBC 가요대전은 보통 크리스마스 저녁에 방영되는 경우가 많았으나, 올해는 특집 프로그램 편성으로 앞으로 밀렸다.
덕분에 12월 중순 금요일 밤이라는 애매한 시간에 편성되었다. 드라마가 종영되며 뜬 시간이었다.
-날짜 왜 이래
-드라마 스페셜 할 줄 알았는데 개뜬금 듣보 아이돌;
-스브씨는 맨날 아이돌만 불러서 노잼임 시청률 버리고 위튜브만 노리나
-누구 나왔어요?
-와 누군지 모르겠다
물론 주류는 올해 첫 연말 가요 프로그램을 기다린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종영된 드라마가 인기 드라마였던 덕에, 관성적으로 SBC를 튼 사람들이 제법 많았다.
팬이 아닌 사람들의 무심한 발언들이 툭툭 댓글에 던져졌다.
-두근두근
-올해는 특별무대 같은 거 안 함?
-솔리에 다 존예다
-2부는 가야 볼 만한 애들 나올 듯
-1부에 무슨 루키즈 특별무대 있지 않았나? 광고 봤던 것 같은데
-또 캐롤 편곡 지겹다 매년 저렇게 구리게 하는 것도 신기함
-브이틱 3부에만 나오나요?
-다른 거 보러 감ㅅㄱ
사람들은 저마다 떠들면서 1부를 듬성듬성 넘기고 있었다.
오프닝을 제외하면 주로 3년 차 이하 신인들이나 이제 막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그룹이 주로 나왔기 때문이다.
그때, 짧은 VCR이 등장했다.
[KPOP 루키즈의 무대!]
[테스타 박문대 : 제비뽑기로 서로의 무대를 직접 경험해 봅니다.]
[솔리에 민정 : 와! 재밌을 것 같아요!]
[오닉스 Pox : 저 진짜 해보고 싶은 곡 있어요!]
-오 1부에 나오는 특별 무대가 이건 듯
-테스타가 이럴 급은 아니지 않나?
-'신인'이시라 하시나 봐요ㅋㅋㅋㅋㅋ
-공중파가 확실히 케이블 출신한데 좀 짠 것 같다
-맞다! 테스타는 케이블 예능 출신이셨구나∼
-테스타 곡 빼고는 다 모를…
-이렇게 5팀인가? 제발 완곡하지마라 지루하니까
실시간 댓글들이 무슨 말을 하든, VCR은 제비를 뽑고 비명을 지르는 그룹들을 보여준 뒤 마지막 자막을 띄우고 끝났다.
[과연 이들의 무대는?]
그리고 어딘가에서 한번 들어본 것같은 곡들의 무대가 이어졌다.
다들 최대한 히트 비슷하게라도 한 곡을 골라온 것이다.
-그래도 후렴은 알겠다
-걍 유명 돌 커버나 시키지 쓸데없는 짓 하네
-테스타 곡 걸린 애들 가슴 쓸어내렸을 듯ㅋㅋㅋㅋ
-누가 테스타보다 잘하면 개꿀잼이겠지?
-어허 예능빨이 아니라 '실력'이시라잖아 그런 말 함부로 하는 거 아님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사람들이 웃고 떠드는 사이, 세 팀이 짧은 무대를 마치고 들어갔다.
그리고 어두운 무대 밑으로 자막이떴다.
[테스타 -즐기는 자(오닉스)]
-헐 테스타 나왔다
-하필 오닉스곡ㅋㅋㅋㅋㅋㅋ
-둘이 서로 뽑았나 보네ㅋㅋㅋ
-이 무슨 운명의 장난
-SBC 주작한 것 같은데?
-아 궁금햌ㅋㅋㅋㅋ
하지만 짧은 전주가 흐르고 도입부가 들어가는 순간, 댓글들은 약간 당황했다.
-편곡을 안 했잖아?
그렇다.
테스타는 오닉스의 데뷔곡을 가져왔다.
하나도 건드리지 않고, 원곡 그대로.
[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 117화]
어두운 무대 위로 시끄러운 사이렌 소리가 울렸다.
Wee-oww Wee-oww Wee-oww
그리고 유리가 깨지는 경쾌한 파열음과 함께, 사이렌 소리는 비트 멜로디가 되었다.
[HaHaHa!]
어린아이의 웃음소리가 샘플링으로 들어간 순간, 현란한 조명이 들어오며 무대 위에 앉은 7인의 모습이 드러났다.
하나같이 광택 도는 검은 후드집업을 불량하게 뒤집어쓴 테스타였다.
하얗고 빨간 페인트로 그려진 각종 이모티콘이 마구잡이로 집업을 뒤덮고 있었다.
그리고, 번개처럼 차유진이 튀어나오며 도입부가 시작되었다.
[여기 보세요∼]
어린이의 내레이션에 차유진이 턱에 브이자로 손을 댔다.
[내가 부를 때마다
MIC 위에 손이 애가 타
오늘은 보여줄 게 진짜를
빌어줘 내 건투를]
차유진이 장난스럽게 송곳니를 드러내며, 박자에 맞춰 멜로디를 탕탕 찍었다.
차유진의 움직임에 맞추어 두 명씩 대형에 합류한 테스타는, 손뼉을 치며 거친 군무를 췄다.
여유롭고 기세가 등등한 삐딱함이 묻어났다.
차유진은 테스타에게 어깨를 붙잡혀 뒤로 끌려가면서도 카메라를 보며 제스처를 했다.
[끙끙 앓아 (그것도 병이지)
음 그런 당연한 말씀을
쓸데없는 생각 말고
날 위한 환성이나 잔뜩
질러줘 Shout out loud]
눈을 찡긋거린 큰세진이 손을 들어올리자 양옆의 두 멤버가 마샬아츠같은 동작과 함께 허공을 넘었다.
그리고 각자 현재 돌아가는 카메라에 가벼운 눈짓을 하고 들어갔다.
[Shout out to me
감사는 일시불만 받아]
댓글들은 즐거운 당혹스러움으로 가득 찼다.
원곡을 아는 사람과 모른 사람이 섞여서 저마다 감상을 늘어놨지만,결론은 하나였다.
'재밌다.'
-존잼
-와 개잘해
-그래 이래야 보는 맛이 있지
-이게 클라스 차이인가 앞에 한 애들하고 좀 다르긴 한 듯
-카메라 찾는 거 봐;;
-이거 원래 되게 같잖은 양아치 느낌이었는데 차유진 X나 잘하넼ㅋㅋ
-너무 좋은데?
-헐 진짜 편곡 하나도 안 했어
-원곡 무대 개오글거렸는데… 헐… 왜 좋지 의상도 거의 똑같은데
흥분해서 말을 쏟아내는 댓글들을 뒤로하고 무대는 계속 진행되었다.
휘익.
멤버들에게 팔다리가 붙잡혀 허공을 가르고 무대 앞으로 나온 박문대가 핸드 마이크를 들었다.
[여기 지나가려면
선수금 있어요
그냥은 못 가 여기 앉아
이 무대 보고 즐겨]
갑자기 높아진 프리코러스의 음이 박문대의 입에서 아무렇지 않은 듯, 능청스럽게 나왔다.
그 순간, 대형이 바뀌며 멤버들이 바닥을 돌고 일어났다.
그들은 돌아가며 박문대의 얼굴 옆에서 끼어들 듯 카메라 샷을 받고 밀려나듯 자리를 비켜주었다.
그 모두가 흥겨운 개구쟁이 같으면서도 어딘지 날 티가 났다.
멤버들을 하나씩 노려본 박문대는 웃으며 카메라에 손가락을 댔다.
[즐기는 자만 보내줘
Shout out to me
일시불만 받아]
목을 긁으며 시원하게 올리는 고음이었다.
일부러 작고 티 나게 깔아둔 AR위로 쨍한 목소리가 확 울리며 라이브 맛을 살렸다.
-진짜 잘 노네
-이런 게 안 숙연할 수 있었구나
-박문대 노래 X나 잘한다 진짜
-하 시원해
-AR이 성량에 압사당한 듯ㅋㅋㅋㅋㅋ
-편곡 안 한 거 맞죠? 뭐지? 왜 이렇게 차이가 나는 것 같지?
-그냥 자기들 곡 같음
그사이, 무대에서는 곡의 하이라이트가 펼쳐지고 있었다.
[Shout out to me]
[Shout out to me]
곡이 드랍되며 살짝 여유롭고 묵직해진 비트 위로, 사이렌 소리가 중동풍 리프 멜로디로 변형되어 화려하고 시끄럽게 흘렀다.
강한 후렴구였다.
[즐겨야 살아
Shout out to me]
잔박이 많고 다리 동작이 복잡한, 뛰어오르는 안무가 이어졌다.
리듬을 타며 분위기를 살리는 것을 잊지 않는 멤버들이 어려운 동작을 너끈히 매만지며 끼를 즐겼다.
신난 악동 같은 그 느낌이 무대위로 가득 튀었다.
그리고 사람들은 깨달았다.
-맞아 얘네 다 개잘해서 뽑힌 거였지ㅋㅋㅋㅋ
-무대 능력치 오졌다
-쾌감 쩐다
-그래 이거야 이 맛이야
-진짜 눈 못 떼고 보게 되네
아주사 는 봤지만, 음악방송이나 클립을 챙겨볼 정도의 관심은 없던 사람들이 공중파 연말 프로그램 특수로 테스타의 무대를 다시 보게 된것이다.
그리고 하필 그 첫 무대가 말 많은 다른 신인의 곡이었다는 것이 더 사람들을 떠들 게 만들었다.
-이거 원곡 무대 아는 사람 있어요? 그냥 곡이 명곡인가 싶어서요
-테스타 편곡 안 한 거 맞음? 원곡도 이런 느낌임?
그 순간, 안무 절정 부에서 머리를 흔들며 뛰어오르던 멤버들의 후드집업 위로 무언가가 흔들렸다.
동물 귀였다.
테스타는 후드의 정수리 옆 부분에 각자를 상징하는 동물 귀와 유사한모양의 천을 덧대 모양을 잡아둔 것이다.
그것이 격렬한 후렴 안무를 맞아 파닥거려 형태를 드러내며 존재감을 뽐냈다.
-헐 뭐야
-동물 귀ㅠㅠ 후드에 귀 달렸어
-아이디어 보소
-X나 귀엽네
-아 그래 아이돌이 이런 맛이 있어야지
-귀염뽀작 애니멀 갱스터…?
-이거 테스타 신곡이에요? 왜 1부에 나와요?
너무 강해서 부담스러울 수 있는 컨셉은 막판에 귀여움이 섞이며 살짝 중화되었다.
[HaHaHa!]
그리고 곡 마지막에 나오는 클라이맥스가 이어졌다.
보컬 파트도 없는 후렴, 한 사람씩 ,안무 중간중간마다 다른 동작을 넣어서 끼를 부리며 안무가 점점 빨라지는 파트였다.
군무를 소화하며 단독 샷이 들어올때마다 끼를 주체하지 못하는 테스타의 모습이 인상적으로, 곡이 마무리되 었다.
[Shout out to me]
센터에 앉은 김래빈이 하품과 함께 입가를 손등으로 닦는 것으로 컷이 끝났다.
그리고 오닉스의 무대가 송출되려 카메라가 전환되었지만, 댓글에서는 테스타 무대 반응이 폭주 중이었다.
-미친
-잘한다는 말 외에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음
-뭐야 왜 이렇게 짧아
-1절에서 끊었네 특별 무대라서 그런가 봐요ㅠ
-앞에 애들도 다 1절만 했는데 사람들 반응 봐ㅋㅋㅋㅋ
-이거 테스타곡 아닌 거죠?
-오닉스 거 보고 와야겠다
-댓글 달려고 생각은 했는데 화면보느라 까먹음
그리고 오닉스의 무대가 송출되는 순간, 분위기는 애매해졌다.
오닉스도 테스타의 데뷔곡, '마법소년'을 골랐으나… 무대가 너무 밍숭맹숭했던 것이다.
-으음
-준비 별로 못 했나
-존못인데
-마법소년 대체 키를 얼마나 낮춘거임 곡에 하나도 매력이 없어ㅠ
-립싱크인 듯? 아 AR이 너무 큰건가
-몰라 노잼이야ㅠㅠ
사람들의 흥이 순식간에 식었다.
동시에, 테스타가 한 오닉스 곡 무대의 원조 무대를 찾아보려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오닉스의 다음 무대를 보는 순간, 직감했던 것이다.
'이거 혹시 테스타가 오닉스 원곡보다 훨씬 잘하나?'
그리고 오닉스의 즐기는 자 무대를 틀어본 사람들 대다수는 탄식했고, 몇몇은 비명을 지르며 글쓰기를 클릭하게 된다.
가요대전 1부의 특별 무대는 끝나자마자 각종 커뮤니티와 SNS에 클립으로 올라왔다.
[SBC 루키즈 특별 무대]
: 원곡 무대도 첨부했어!
(영상)(영상)
그리고 즉시 댓글은 테스타와 오닉스에 대한 이야기로 도배되었다.
이미 특별 무대 내내 나오던 말들이기도 했다.
편곡 하나 하지 않은 완전한 일대일 매치에 대한 반응은 적나라했다.
-야 어떻게 된 거야 테스타가 오닉스 원곡보다 잘하잖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 주주들 안목이 맞네∼ X발 예능 이 지랄 개소리였잖아ㅋㅋㅋㅋ
-너무 실력 차이가 나서 당혹스러울 지경
-테스타 연습 시간도 별로 없었을텐데 와….
-이렇게 붙여놓냐 글 쓴 놈 진짜잔인햌ㅋㅋㅋㅋ
-아주사 X나 잘 된 이유가 있었지 이런 새끼들이 나왔으니 무대가 떡상할 수 밖에ㅋㅋㅋ
게다가 단순히 실력 차이만도 아니었다. 곡 해석에서부터 깊이 차이가났다.
오닉스의 데뷔곡 즐기는 자 는 기세 넘치는 힙합풍의 곡으로, 누가봐도 강렬한 퍼포먼스를 노리고 만든 곡이었다.
보통 신인들은 짧으면 몇 달, 길면 반년이 넘게 데뷔곡을 연습한다.
그리고 오닉스는 당연히, 이제 막 데뷔라는 생각에 비장함과 긴장감을 가지고 이 곡을 연습했었다.
곡에 대단히 어울리지 않는 정서는 아니라 무난히 넘어갔지만, 사실 곡의 느낌은 그보다 더 장난스럽고 날티 나는, 기 센 느낌에 가까웠다.
그리고 테스타는 정확히 그렇게 곡을 해석했다.
-테스타 표현력 실화냐 역시 미친 망주사 아수라장을 헤쳐나온 놈들이군
-이런 말 미안하지만… 솔직히 테스타 무대 쪽이 원곡 같음…
└그러게 오닉스 무대가 오히려 존경하는 선배님 곡 커버한 느낌이얔ㅋㅋ
└뭔가 원곡의 쫀득한 맛은 잘 못살렸지만 열심히 하는 기특한 친구들 보는 느낌이다.
└이게 딱이네ㅋㅋㅋ
오닉스의 팬덤 층이 얕았던 탓에, 사람들은 더 거르지 않고 거침없이 감상을 뱉었다.
물론 테스타의 논란에 집착하던 사람들이 무대 한 번으로 모두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어휴 또 포기를 모르고 몰려왔네…
-그래봤자 예능 프로젝트 그룹이 신인상 받는 건 부당하다는 걸 왜 모르지?
-이렇게 신인 물고 늘어지는 거 창피하지 않나 몰라ㅠ
-팬들이 아무리 기를 써도 머글들은 테스타 찝찝해할 듯
그러나 이렇게 대놓고 비교해서 절대 우위가 나와버리면, 그 전의 담론이 우스워지기 마련이었다.
승자와 패자가 극명한 이 드문 상황이 재밌는 사람들이 우르르 붙어서 어그로를 비웃었다.
-야 머글은 눈이 없냐 웃기네 이새끼들ㅋㅋㅋ
-계급장 다 떼고 붙어서 이겼구만 작작해라 추하다ㅋㅋㅋ
-몰려온 건 본인들 아닌지ㅋㅋㅋ
-응 다 걸고 테스타 빠 아닌데 오닉스 원곡 X됐어∼ 테스타 난놈들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야 잘한 놈이 받아야지 무슨ㅋㅋ
-지금 보니 그냥 아주사 없이 데뷔했어도 테스타 신인상은 받았을것 같은데ㅋ
└맞아 얘네 심지어 데뷔앨범 자기들이 프로듀싱했잖아ㅋㅋㅋ
그러자 약간 방향이 달라졌다.
-너무 못됐다… 편곡도 안 하고 이렇게 한 거 솔직히 노린 거 아냐?
하지만 이것도 통하지 않았다.
└이게 노려서 된 일이면 그게 더 쪽팔린 거 아니냐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진짴ㅋㅋㅋㅋㅋ
└테스타가 못된 게 아니라 느그 오닉스가 못하는 게 아닐까
└누가 보면 테스타가 오닉스 무대 못하게 다리라도 부러트린 줄 알겠다ㅋㅋㅋㅋ
심지어 오닉스의 원곡 무대 영상의 댓글을 최신순으로 정렬하면, 가요대전의 영상을 보고 온 사람들의 외침으로 가득 차 있었다.
아직 테스타의 즐기는 자 공식영상이 업로드되지 않아서 꿩 대신 닭으로 보러온 사람들이었다.
-아 이 맛이 아냐… 그… 날티하고 양아미가 묻어나는 여유로운 느낌이 없어…. 그 기X나쎔 느낌이 없다고ㅠㅠ
-아… 열심히는 하시는데ㅠㅠ
-전 이 버전도 좋아요! 힘내세요!
-학교에서 개 잘나가는 애 만나러가는 길에 안 친한 애가 아는 척하는 느낌이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목소리가 안 시원하네…ㅅㄱ
팬이 아닌, 그냥 대중들이 달고 가는 잔인한 댓글들이 더 확연히 여론을 보여주었다.
판정까지 갈 것도 없었다. 테스타의 K.O 승리였다.
그리고 그다음 날, 박문대는 예상치 못한 축하 선물을 받게 됐다.
[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 118화]
SBC 가요대전이 끝났다.
이후 스케줄 문제로 새벽 내내 차안에서 자면서 이동했지만, 컨디션이 지난 한 달 중에 제일 괜찮았다.
매니저가 방송 끝나자마자 너무 신났는지 미주알고주알 현재 여론을 다 말해줬기 때문이다.
-완전 다 뒤집어졌다!
그때 멤버들 표정이 볼 만했지.
어쨌든, 그 후엔 이놈 저놈 할 것없이 긴장이 풀렸는지 차 안인데도 푹 잔 것 같다.
덕분에 이 아침에 회사가 불러서나 혼자 숙소가 아니라는 점도 참을 만했다.
그런데 왜 날 부른 건지 영 짐작가는 이유가 없었다.
'뭐, 표정 보니 나쁜 일은 아닌 것같고.'
개인 스케줄이라도 새로 잡혔나 싶다.
그리고 회사 건물 뒤쪽 현관에 들어가자마자 호출의 원인을 볼 수 있었다.
관계자용 작은 현관이 터져 나가도록 많은 상자가 쌓여 있던 것이다.
하나같이 정성스러운 포장에 리본까지 맞춘 그것들은… 선물 상자였다.
지난 휴가 때 숙소 현관에서 봤던 것과 비슷한 모양새였지만, 규모는훨씬 컸다.
'어?'
잠깐.
나와 있던 직원 중 한 분이 웃으며 말했다.
"문대 씨, 생일 선물 왔어요∼"
"…!"
…그랬군.
오늘은 12월 15일.
박문대의 생일이었다.
'…짐작도 못 했다.'
끝없는 스케줄과 연습이 반복되며 날짜 감각이 사라진 탓에 완전히 잊고 있었다.
최근에는 일부러 SNS도 확인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쪽으로 알아차리지도 못했다.
'…애초에 원래 생일도 아니니까.'
아니, 내가 박문대의 몸에 들어오기 전에도… 특별히 생일을 유별나게 챙긴 적이 드물었다.
'밥이나 좀 비싼 재료로 해 먹는정도였지.'
덕분에 두 벽을 가득 채운 선물 상자들을 보니 저절로 발이 굳었다.
이게 다 나한테 온 거라고?
"숙소에 두기는 힘들 것 같은데…문대 씨 본가… 음."
직원은 말하다가 박문대의 가정사를 깨달았는지, 급격히 뒷말을 흐렸다.
그리고 친절하게 다시 정정했다.
"일단 회사 창고에 둘까요? 전자기기나 명품 같은 건 숙소로 보낼게요. 가서 뜯어보시면 되겠네."
"…이거 가져오신 분들은, 별다른 말 없으셨나요."
척 봐도 포장 형태가 다른 게 서너 군데에서 따로따로 넣은 것 같았다.
'적어도 한두 팀 정도는 직접 전달하려고 했을 것 같은데…'
"아, 전문 배달 업체 이용했더라구요. 그저께 배송 연락받았어요."
직원은 어깨를 으쓱했다.
"그리고 문대 씨한테, 특별히 인증 안 해도 된다고 전해달라 했던 것 같은데…. 맞아. 그랬어요."
"…!"
그제야 상황을 깨달았다.
'…일부러 조용히 전달만 했구나.'
그저께면 인터넷에서 신인상으로 테스타를 걸고 넘어지는 것에 한창이었다.
어제 SBC에서 전면전 안 했으면 당연히 지금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그 상황에 이런 대형 선물 서포트를 수령한 인증까지 하면 혹시라도 또 꼬투리 잡힐 여지가 될까봐 걱정했겠지.
'그런 걸 의식해서 직접 찾아오지도 못했나…'
기분이 이상했다.
제대로 교류하지도 못하는 남을 위해 이렇게까지 마음을 쓰고 공을 들이는 사람들이 있다는 게 이상했다.
그 대상이 나라는 건 정말… 더,이상했다.
"안 열어보세요? 그냥 일단 창고로 옮기는 걸로 할까요?"
"…잠시만요."
나는 그제야 발걸음을 옮겨서 상자들로 다가갔다.
내 사진을 인화해서 만든 액자, 브랜드 쇼핑백을 묶은 리본 너머로 같은 포장지로 일괄 포장된 상자들이 보였다.
각 포장 리본에 태그가 붙어 있었다.
"…."
수많은 옷, 전자기기, 액세서리가 태그마다 보였다.
'…어쩌지.'
거의 압도당할 지경이었다. 뭘 어떤 기준으로 숙소에 우선 가져가야할지 모르겠다.
'…일단 인증이 쉬운 물건으로, 각 포장지 디자인마다 세 점씩만…'
고민하던 중, 한 태그가 눈에 들어왔다.
다른 것보다 상대적으로 크기가 작은 상자에 붙어 있던 태그였다.
[메시지 북]
"…."
나는 머뭇거리다가, 그 상자를 들어 올려 포장지를 풀었다.
직접 제작한 것 같은 황금색 양장본이 드러났다.
별똥별처럼 마음에 내려온 너
양장본을 펼치자, 단정한 디자인 속에 편집된 문장들이 드러났다.
-새로운 세상으로 무대 보는 순간 알았어요. 저 친구가 바로 내 아이돌이구나!ㅎㅎ
언제나 최선을 다하고, 계속 발전해 나가는 문대를 응원해요. 하지만 혹시 그러지 않더라도 괜찮아요. 언제나 문대의 행복을 응원할게요
-오래오래 보고 싶은 나의 별
-문대 만나고 내 불면증이 사라졌어! 보고만 있어도 즐겁고 볼 생각만 해도 설렌다… 앞으로도 사랑해
-언제나 뭘 할 때도 팬들 신경 써주는 문대에게 고마우면서도 미안한 마음이야ㅠㅠ 우리 문대 하고 싶은거 다 하자. 진짜 문대는 그래도 된다!
긴 줄글들 사이로 절제한 듯한 문장들이 튀어 올랐다. 정제된 마음까지 비집고 나오는 것 같았다.
-누나는 아직도 티벳여우를 잊지 않았어 문대야… 강아지 문대도 사랑하지 만 티벳문대 도 사랑한단다ㅠ
"하하."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정말로… 특이한 사람들이었다. 믿을 수 없을 정도의 다정함이었다.
물론 감정은 영원하지 않다. 이 사람들도 '언제까지나, 오래도록, 영원히' 같은 단어를 쓰지만, 사람인 이상 그럴 수 없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그런 생각을 해주는 사람들이 어딘가 있다는 것 만으로도 왠지 참을 수 없는 기분이 들었다.
뭐라도 하고 싶었다.
"…."
"문대 씨?"
"…아, 죄송합니다."
나는 겨우 정신을 차렸다. 그리고 선물 상자 몇 가지를 빠르게 챙겼다.
계획했던 대로, …아니, 계획했던것보다 좀 많이.
"…숙소 가져갈 수 있겠어요?"
"차 있어요. 괜찮습니다."
매니저가 동행했다. 지금쯤 건물앞 로비 쪽에서 음료를 사 마시거나 담배를 피우고 있을 것이다.
"음… 알겠어요. 잘 들어가세요. 생일 축하드리구요!"
"감사합니다."
나는 두 손 가득 선물을 챙겨 들고 주차장으로 향했다.
중간에 만난 매니저는 기겁했다.
"그걸 너 혼자 다 가져왔어?! 호출을 하지!"
"괜찮아요. 가까운 거리고."
"어유… 어쨌든, 선물 축하한다. 생일 축하하고. 뭐 형이 커피라도 사주리?"
"다음에요."
"어쭈, 거절 안 하는구만."
나는 그냥 웃고 말았다. 머리에 헛바람이라도 들어갔는지, 별게 다 유쾌하게 느껴졌다.
"잘 들어가라∼"
"예. 감사합니다."
나는 숙소 건물 앞에서 매니저와 헤어졌다. 그러곤 다시 선물을 가득 챙겨 들어 숙소로 올라갔다.
그리고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는 순간이었다.
묘한 냄새가 숙소 문 앞에서 느껴졌다.
"…?"
이거 탄내 아닌가?
'설마.'
나는 선물을 복도 한편에 쌓아두고, 당장 현관 도어락을 해제했다.
그리고 소화전을 열어둔 뒤에 문을개방했다.
"…?!"
"안 돼요!"
…그리고 웬 냄비를 들고 거실을 질주하는 차유진과 선아현을 목격했다.
냄비에서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나는 힘겹게 물었다.
"…너네 뭐하냐?"
"무, 문대야! 벼, 별건 아니고…."
"영혼을 위한 닭고기 스프!"
차유진이 그렇게 외치며 냄비를 도로 부엌으로 들고 도망치기 시작했다.
얼떨결에 거실에 남겨진 선아현에게서 지독한 침묵이 흐르기 시작했다.
"…."
"…."
"…새, 생일… 추, 축하해."
"고맙다."
축하는 고마운데 대체 무슨 일인지 설명이나 좀 듣고 싶다.
"…생일 선물?"
"네!"
"아, 아니… 서, 선물을 따로 있고! 그, 그냥 고맙다는 뜻으로…."
"저도 선물 더 있어요."
차유진과 선아현 둘이 떠드는 걸 들어봤자 하나도 정리가 안 됐다.
둘끼리도 대화가 잘 안 되는 것 같더라.
냄비 대소동에 얼결에 깨어난 다른 멤버들이 도리어 정리를 시도했다.
"그러니까, 문대 생일이고 마침 우리가 오전에 시간이 있으니까 맛있는 걸 해줄 생각이었다는 거지?"
"예!"
"…그 인원으로?"
배세진이 조용히 혼잣말을 중얼거리자, 선아현이 침울한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
"레, 레시피가 확실해서… 하, 할수 있을 줄 알았어요."
"…확실한 레시피 맞아?"
의심 가득한 배세진의 물음에 차유진이 즐겁게 대답했다.
"우리 엄마 레시피예요! Chicken soup!"
"…!"
배세진은 동공지진 하다가, 황급히 덧붙였다.
"그… 레시피가 훌륭해도, 초보자는 못 할 수도 있고."
"다시 해봐요!"
"잠깐, 앉아."
나는 벌떡 일어나려는 차유진을 도로 앉혔다. 그리고 부엌에서 봤던 냄비를 떠올렸다.
'…시커멓게 탔지.'
게다가 도마나 싱크대 꼴을 보니 조리 과정 자체가 정상은 아니었을것 같다.
"그러고 보니, 유진이 요리 잘한다고 하지 않았나∼?"
"굽는 거 잘해요. 끓이는 거 처음이요…."
"저런."
만담이 따로 없었다. 큰세진은 혀를 차더니, 나와 눈이 마주치자 손을 흔들었다.
"아, 문대 생일 축하∼ 나는 기프티콘 보냈다?"
"…치킨?"
"닭. 그것도 두 마리."
8월에 줬던 걸 그대로 돌려받았군.
셈 빠른 놈다운 결과였다.
"고맙다."
"나, 나도! 잠깐만…!"
죄인처럼 앉아 있던 선아현이 갑자기 벌떡 일어나더니 우당탕 발을 구르며 자기 방으로 향했다.
그리고 잘 포장된 조그만 선물 하나를 가져와서 내밀었다.
"새, 생일 축하해!"
"어… 고맙다. 열어봐도 돼?"
"으, 응!"
열어보니, 백화점 상품권이 들어있었다.
이거… 무슨 친구비라도 수거하는기분인데.
하지만 선아현은 뿌듯해 보였다.
"도, 도저히 사러 갈 시간이 없어서…. 지, 직접 보고 고르는 게좋으니까!"
"…음, 그래. 고마워. 시간 나면 가봐야겠다."
"으응!"
다음에 가면… 적당히 선아현 것도 사야겠다. 친구든 직장 동료든 받기좀 과한 액수였다.
'그러고 보니 큰세진 생일에도 좀 비싼 걸 준 것 같던데.'
그럴 필요 없다고 언제 한번 말이라도 해줘야 되나 싶다.
"아, 나도 하나 샀어."
선아현만큼 예상 못 한 항목은 없었지만, 그 후로도 의외로 한두 명에게 선물을 받았다.
일단 차유진은 거대한 젤리 한 통을 줬다.
'자기가 절반은 먹겠군.'
아마 본인이 주문한 것에서 떼어준 것이 분명했다.
그리고 의외로 배세진이 남의 생일을 기억하는 타입인지, 후드 티를 하나 줬다.
"잘 입을게요. 감사합니다, 형."
"…뭐, 그래."
그렇게 선물 증정식이 끝났다.
솔직히, 인생에서 당일에 이렇게 축하 선물을 많이 받아본 적은 처음이었다.
'느낌 이상한걸.'
나는 팬들에게 받은 상자를 챙겨와서, 멤버들에게 받은 선물과 함께 내 방으로 옮겼다.
"못 챙겨서 미안하네. 다음에 내가 밥이라도 한번 살게. 뭐 먹고 싶어?"
"안 미안하셔도 되고, 음, 그때 먹고 싶은 걸로 먹을까요."
"그래. 그러자."
모르는 게 정상인 판인데 모른다고 미안해하는 류청우와 적당히 밥으로 퉁 치고 있자니, 옆에서 김래빈이 비장한 목소리로 외쳤다.
"생신 몰라서 죄송합니다…!"
"…괜찮다니까."
"제가 최근에 찍은 비트가 있는데… 그걸 형 솔로곡으로 쓰시면…!"
여기서 홀라당 자기 곡을 내밀면 어쩌냐.
…그래도 일단은 수긍해 주자.
"그래. 좋은 곡일 것 같다. 시간나면 확인해 보자."
"예!"
김래빈은 그제야 마음의 짐을 덜었는지, 크게 안도의 한숨을 쉬며 자신의 방으로 비틀비틀 사라졌다.
"…."
쟤도 저러다 큰일 나지 싶은데, 나중에 너무 저자세로 나오지 말라고 말이라도 해둬야겠다.
나는 침대 옆에 박스들을 정리하고나서 침대에 누웠다.
그리고 오랜만에, 스마트폰의 데이터를 켰다. 그러자 제일 먼저 톡이 들어왔다.
큰세진의 선물이었다.
[큰세진님의 선물]
: 오림 토종 생닭 1.5kg
"…."
그리고 잠시 뒤에 'ㅋㅋㅋㅋㅋㅋㅋㅋ'으로 도배된 큰세진의 톡이 도착했다.
'이 새끼가 진짜.'
나는 반사적으로 진심을 쳤다.
[죽을래?]
즉시 답문이 왔다.
[큰세진 : ㅎ싫음]
"…."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서 큰세진의 방으로 달려가려다가, 참았다.
그게 바로 이 새끼가 바라는 반응일 것이다.
대신 침착하고 이상적인 타격을 주자.
[넌 앞으로 사진 업로드가 없다.]
[큰세진 : 죄송합니다]
역시 이게 직방이군.
나는 스마트폰을 종료하고 잠을 청했다.
눈을 감자, 오늘 받은 선물의 형태와 메시지 북의 문장들이 머릿속을 유유히 배회했다.
…어쩐지, 지금 낮잠에서는 좋은 꿈을 꿀 것 같았다.
하지만 기분 좋은 숙면 이후, 다시만난 매니저에게서 반갑지 않은 소식이 기다리고 있었다.
"문대야, 너한테 전화가 왔는데?"
"예? 누구요?"
매니저는 자신의 스마트폰을 내게 건네며, 입 모양으로 중얼거렸다.
'브이틱 청려!'
이런 X발.
[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 119화]
대체 청려 저 정신 나간 놈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X 돼보라는 식으로 SNS에 글 을리더니, 며칠 지나지도 않아서 또 이 지랄이냐.
'회사에까지 전화를 돌려?'
심지어 하필 지금 샵이었다. 저녁스케줄 준비 중이었기 때문이다.
옆에서 드라이를 받던 김래빈이 눈을 휘둥그레 뜬 게 보였다. 매니저의 입 모양을 읽은 게 분명했다.
온갖 관계자들이 가득 찬 이 장소라 더 꺼림칙했다.
'저게 무슨 말을 할 줄 알고.'
이 와중에 내 머리를 잡고 있던 헤어디자이너가 흔쾌히 상황을 재촉했다.
"받아, 받아∼ 괜찮아요. 거의 끝났어."
아마 내가 머리 손질에 방해가 될까 봐 머뭇거린다고 생각한 듯싶었다.
'받기가 싫은 겁니다만…'
나는 한숨을 참았다. 그리고 일단 매니저에게 말했다.
"…제가 나중에 연락드리겠다고 전해주시면 안 될까요."
"어, 네가 번호를 모른다는데? 번호 바꿔서 이쪽으로 전화 줬대. 문대 너 모르는 번호 안 받잖아."
"…."
문자로 하면 되는 걸 굳이 회사까지 거쳐서 전화하는 건 뻔했다.
'내가 차단한 걸 알았다 이거지.'
이렇게까지 한다면 어쩔 수 없다.
매니저한테 계속 뭐 해달라고 전달하는 것도 보기 안 좋았다.
빨리 끝낸다.
"예. 그럼."
나는 매니저에게 스마트폰을 받아서 귀에 가져다 댔다.
"전화 바꿨습니다. 박문대입니다."
-아, 드디어.
웃음기 가득한 목소리가 들렸다.
내가 이게 실실 쪼개는 것까지 듣고있어야 하나.
"번호 바꾸셨다고 들었습니다. 이번호 저장해 놓겠습니다."
-네. 그러세요. 그리고 신인상 축하합니다.
의자 손잡이를 잡은 손에 저절로 힘이 들어갔다.
"…아직 시상식이 다 진행된 것도아니고, 모르는 일이죠. 그럼…."
즉시 말을 마무리하려는 찰나, 틈도 안 주고 청려가 대답했다.
-거의 확정이죠. 음, 이다음에는 무슨 일이 일어날지 궁금하지 않아요?
안 궁금하다 개새끼야.
어차피 이대로 이놈이랑 교류해 봤자 제대로 된 정보를 얻을 것 같지도 않다.
뒤통수 때려놓고 어디서 사람을 살살 낚으려고 들어.
"그다지요. 어쨌든 번호는 잘 저장해 두겠습니다. 연말 활동 잘 끝마치시길 바랍니다. 선배님."
이만 끊겠다는 의미였다.
-…아, 이렇게 되나.
그러자, 갑자기 놈의 말투가 약간 난처하다는 식으로 바뀌었다.
-음, 오해가 생긴 것 같은데… 내가 다짜고짜 후배에게 해가 될 일을 하진 않아요. 나도 선이 있거든.
선 같은 소리 하네.
"그러시군요. 알겠습니다."
-연말 활동하면서 계속 만날 테니까… 흠, 그때 설명해 줘야겠네요. 전화로 하긴 좀 그렇고.
"기회가 돼서 뵈면 좋죠. 그럼 죄송하지만, 일정이 있어서 끊겠습니다."
청려는 농담처럼 대답했다.
-그래요. 이번에는 실수로 차단하지 말고.
"예. 그럼."
나는 얼른 전화를 끊었다. 아마 숙소였으면 못 참고 한마디 했을 것 같은데, 샵이라 참았다.
그리고 폰을 매니저에게 돌려줬다.
"여기요 형. 감사합니다."
"그래∼ 아, 이분 번호 너한테 문자로 보내둘게."
"…."
일의 전말을 모르는 매니저의 친절을 욕할 순 없는 노릇이다. 나는 한숨을 참으며, 도로 의자에 기대면서 눈을 감았다.
'귀찮다.'
처음에는 뭐라도 이득을 볼 수 있을까 싶었는데, 이 새끼 순 트롤러가 따로 없었다.
게다가 갑자기 태세 전환하는 게 진짜 정신 나간 놈 같아서 예측이 안 됐다.
'역시 답은 손절이다.'
긁어 부스럼 없이 조용히 끝낸다.
어차피 2년만 지나면 내가 아는 미래도 끝이다. 그럼 저놈도 써먹을게 없으니 자연스럽게 떨어져 나가겠고.
그때까지 살살 상황 피하면서 안엮이면 그만이다.
테스타도 다음 앨범쯤엔 탑티어에 발이라도 걸칠 것 같고, 저놈도 자기 지위가 아까우면 이번보다 더 노골적으로 나올 순 없을 것이다.
제정신이 아닌 것과는 별개로, 아이돌로서 자신의 지위에는 상당히 집착하는 것 같았으니까.
'그럼 서로 죽자는 식의 악감정만 안 쌓으면 된다.'
음, 원래는 너무 빡쳐서 어떻게든 보내 버릴 생각이었는데, 일단 일이 해결되고 이성적으로 생각해보니 내 리스크가 너무 크다.
'트롤러 잡겠다고 목숨 걸 필요는없지.'
이건 혹시 모를 예비안으로 챙겨만간다. 나는 그렇게 생각을 정리하며 눈을 떴다.
그리고 옆에서 눈을 빛내고 있던 김래빈이 말을 걸었다.
"…혹시 편곡 프로그램은,"
"기밀 사항이래."
"알겠습니다…."
미안하지만 내가 그걸 물어볼 날은 안 올 것 같다.
나는 시무룩한 김래빈에게 포도당 캔디를 하나 던져주었다.
연말 행사를 몇 개 뛰고 나니, 또 금방 새 연말 무대를 할 날이 왔다.
이번에는 KBC 가요대축제였다.
올해 제법 활약했던 가수들만 불러서 진행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다른 공중파보다 무대 분량을 잘 받았지만….
문제는 다른 데 있었다.
"우리 나와요!"
"헐, 그때 그 광고네! 그 인공지능!"
"맙소사."
…1, 2부 사이 중간광고로, 3개월 3억 5천짜리 광고의 실물을 확인하게 된 것이다.
화면에서는 누가 봐도 세트장 같은 하얀 거실에 앉은 테스타가 각자 다른 소품을 들고 있는 모습이 송출되었다.
참고로 나는… 응원봉이다. 그것도 번쩍거리는 마법봉 형태.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는 점만은 변명해 두고 싶다.
어쨌든, 이번에 광고 계약한 인공지능 비서는 조그매서 여기저기 탈부착이 가능하다는 게 장점인 듯했다.
[내 감성을 보여주는 아이템에 커넥트.]
[사용자를 이해하는 너만의 비서, 네가 생각한 딱 그 노래를 틀어줘.]
그리고 갑자기 화면이 눈깔 마감이 애매한 캐릭터형 인공지능 스피커를 비췄다.
차유진이 웃으며 스피커를 톡톡 두드렸다.
[나 비행기 듣고 싶어∼]
그러자 스피커가 난데없이 저음질의 '떴다 떴다 비행기'를 힘차게 내보내기 시작했다.
[…?]
놀라는 차유진의 컷 다음에, 침착한 얼굴의 박문대가 튀어나왔다.
박문대는 응원봉을 흔들며 웃었다.
[큐리어스, 비행기 틀어줘]
그러자 테스타의 노래 '비행기'로 오디오가 가득 찼다.
깨끗한 음질의 BGM 위로, 테스타 멤버들이 제스처를 하는 컷이 지나갔다.
[마법소년 테스타의]
[마법같은 인공지능 비서!]
…거기서 뜬금없이 강아지 귀 그림을 단 박문대가 강아지 흉내를 내며 '큐리어스'를 외치는 것으로, 광고는 순식간에 끝났다.
[큐리어스! 멍멍!]
그리고 대기실은 폭소로 가득 찼다.
"으하하하학!"
"크흡."
저건… 아무리 생각해도 자기는 피했다는 안도감에서 나온 웃음소리군.
"…."
나는 한숨을 참았다. 제일 먼저 웃음을 멈춘 류청우부터 헛기침을 하며 그제서야 위로를 시작했다.
"크흠, 1위라 그런 거 같아 문대야. 광고에서 분량이 많다는 게 얼마나 좋은 일이야?"
"그, 그럼요…!"
"맞아맞아∼ 청우 형님이 좋은 말씀 하셨네."
아, 그러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게요. 맞는 말씀이네."
"그렇지?"
"예. 다른 사람들 버전도 빨리 보고 싶네요."
"…?"
"다른 사람들…?!"
배세진이 경악하는 멤버들에게 조용히 진실을 말해주었다.
"…이거 콘티에 버전 7가지라고 적혀 있었어."
"…!"
한동안 TV 시청할 때마다 짜릿한 러시안룰렛을 즐기게 생겼다.
멤버들은 각자 자신의 콘티를 떠올리는지 얼굴에 긴장감이 찼다.
뭐, 그래도 오래 걱정할 시간은 없었다. 2부 마지막쯤에 우리 무대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번 무대가 중요했다.
SBC 이후 첫 연말 무대였으니까.
'돌아선 여론에 쐐기를 박아야 한다.'
뭐하나 어설퍼 보였다가는 '테스타 실력 모를… 그 특별 무대만 이 악물고 했나 봐' 같은 말이 올라오는건 필연이었다.
여기서 무조건 잘해야 했다.
덕분에 놈들은 금세 다른 의미의 긴장으로 빠릿해졌다.
그리고 무대에 올라가기 직전, 모여서 기합까지 넣었다.
"아 테스타 오늘 뭔가 보여준다!"
"가자!"
꼭 이 문구를 써야 했는지는 의문이었지만… 뭐, 분위기는 살았으니 됐나.
테스타는 그대로 리프트 장치를 타고 무대 위로 올라갔다.
와아아아아아!
온갖 불빛이 관객석에서 물결쳤다.
저 불 하나하나가 사람이라는 게아직도 그다지 실감은 나지 않았다.
그래도 유독 눈에 띄는 응원봉은 있었다. 예상했겠지만, 테스타의 응원봉이다.
…발광력이 남다르기 때문이다.
'반딧불 사이에 손전등 둔 것 같군.'
어쨌든 곧바로 알아볼 수 있는 건 좋은 일이었다. 생방송이라 대단한건 못해도 들어갈 때 인사정도는 저쪽으로 할 수 있겠지.
그사이, 입장용 인트로가 끝나고있었다.
나는 가운데로 걸어나와 자리를 잡았다.
그러자 연말 무대용으로 편곡된 '마법소년'의 전주가 흐르기 시작했다.
오케스트라 라이브 버전이었다.
무대 아래에서 울리는 생 바이올린 멜로디에 맞춰, 나는 도입부를 시작했다.
"내일 만난 너를 오늘 내내 생각해, 낮처럼 파란 꿈을 꿔-."
현악기와 관악기의 합주가 화려하게 홀을 가득 채웠다.
실시간으로 진행되는 완전한 생음악이었다.
이게 무슨 뜻인가 하면, 라이브 밴드 느낌을 살려보겠다고 패기 있게 AR을 아예 안 깔았다는 뜻이다.
'도입부가 나라서 편했지.'
들어갈 때 음정, 박자 못 맞추면 그대로 대참사다. 실패 확률 제일 낮은 놈이 맡는 게 맞았다.
그리고 이후로는 다들 라이브를 곧잘 해서 안정적이었다.
"Cast a spell"
"Make a wish come true, true,true∼"
화려한 연주에 맞춰서 안무에도 약간의 현대무용 동작을 섞었다. 몽환보다는 판타지 대서사시 같은 분위기가 됐지만, 그것 나름대로 맛이 있었다.
의상이 좀 너무 치렁치렁해서 민망하긴 했지만 사람들은 좋아할 것 같았고.
'선아현 날아다니네.'
이런 컨셉을 제일 잘 받는 놈이라 평소보다 더 신난 것 같았다. 바이올린 독주와 타악기만 남은 댄스 브레이크 파트에선 예술성까지 느껴졌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비행기' 후렴구로 노래가 넘어가는 부분이었다.
-Airplane
끼이잉-!
'인이어 진짜.'
귀에서 칠판 긁는 것 같은 소리가 튀었다.
함성이나 울림 때문에 박자를 놓치는 것을 방지하려고 달아둔 장치가 도리어 집중을 방해했다.
끼이 끼이 끼이이잉!
…볼륨이 너무 크거나, 뭐가 안 들린 적은 있어도 이 난리는 처음이다.
'돌겠네.'
더 참지 못하고 반주가 나오는 쪽 인이어를 거칠게 뽑았다. 옆에서 몇멤버가 동일한 행동을 하는 걸 보니 송출 오류였다.
'연말에 공중파 한번 참 잘 돌아간다.'
근데 더 환장할 일은 다음에 벌어졌다.
배세진이 뽑은 인이어가 몸을 눕히는 안무 때 주르륵 흘러내리더니 무대에 떨어졌던 것이다.
고정 작업해 주는 사람이 실수한게 분명했다.
'…다음 파트에 발로 처낸다.'
하지만 그 순간, 하필 동선을 바꾸며 가운데로 오던 선아현이 줄을 잘못 밟고 미끄러졌다.
그것도 머리부터 바닥을 향하게!
"…!"
반사적으로 선아현의 등을 잡았다.
그리고 반대편에서 나랑 똑같은 짓을 한 류청우와 눈이 마주쳤다.
'일으켜 세우고 바로 복귀한다.'
이런 일은 어쩔 수 없었다.
순식간에 벌어진 상황, 찰나에 판단이 끝났다.
그런데 손에 힘을 주려던 찰나, 도리어 선아현이 미끄러지던 그대로 발을 박차며 몸에 반동을 주기 시작했다.
"…!"
관성을 이용한 선아현은, 자신의 등을 잡은 나와 류청우의 팔에 두손을 기댄 채 양 다리를 모두 피고 우아한 백덤블링을 했다.
그리고 그림처럼 착지하며, 자신의 파트를 이어불렀다.
"…저 멀리 fly high, 날아가는 내맘이- 은하수를 넘어 빛나는 별이되길 바래."
"…!"
경악한 심정과 달리 몸에선 연습한대로 변형 안무가 튀어나왔다. 정말 다행이었다.
마지막 소절이 이어질 순간, 멤버들은 자연스럽게 원래의 동선으로 복귀했다.
배세진이 헤드 마이크를 누르며 노래를 불렀다. 얼굴과 목소리는 멀쩡했으나, 손가락이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두 손이 맞닿기를 원해-"
둥글게 선 7명이 하늘을 향해 한손을 모았다 펼치는 안무로 곡이 마무리되었다.
"…."
아아아악!
환호 소리와 함께 카메라 온에어등이 꺼졌다.
그리고 조명까지 꺼지고 나서야, 식은땀에 흠뻑 젖은 것 같은 표정이 멤버들의 얼굴에 떠오르기 시작했다.
'…수습된 건가?'
일단 무대가 제대로…, 아니, 선아현 저놈 상태부터 봐야 하지 않나?
'무슨 미친놈이 거기서 연습도 없이 넘어지다 백덤블링을 해.'
자칫 잘못되면 머리가 깨질 수도있는 상황이었지 않은가.
하지만 방송 진행상 여기서 더 미적거릴 틈은 없었다. 우리는 얼른 팬석에 손만 흔들고 무대에서 내려왔다.
그리고 가타부타 말을 나눌 시간도없이, 즉시 모니터링 화면부터 마주하게 됐다.
"…!"
[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 120화]
얼마 지나지 않아 모니터링 화면에서 문제의 그 파트가 나오기 시작했다.
나를 포함한 멤버들이 반주 인이어 뽑는 컷이 지나가고, 그다음.
'…미끄러지는 게 너무 부각되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선아현이 그걸 수습이라고 불러도되나 싶을 정도로 대단한 일을 해놨다만, 전후 그림이 어떻게 잡혔을지는 또 다른 문제라서 말이다.
하지만 쓸데없는 걱정이었다.
"…!"
"우와."
백덤블링하는 선아현과 그 등을 잡은 양옆의 둘은… 완전히 의도된 퍼포먼스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숙련도의 문제인가.'
연습 없이 했다고는 믿을 수 없는 수준이었다.
공중돌기의 인상이 워낙 강력해서 앞서서 미끄러진 것도 동작의 일환처럼 보였다.
바닥이 어두워서 발에 걸린 인이어가 잘 보이지 않았다는 점도 한몫했고.
게다가 전체 안무를 잡는 정면 컷이 때마침 들어가는 덕에, 놀라서 굳은 표정들이 잘 보이지 않았다.
…원래 저 파트는 안무가 잠깐 멈춰서 클로즈업이 들어가야 맞았다는 점은… 넘어가자.
'어쨌든, 잘 나오긴 했어.'
최상의 결과였다. 큰세진이 휘파람을 불었다.
"오∼ 아현이 임기응변∼"
"멋져요!"
선아현의 얼굴이 시뻘게졌다.
"정말 대단하십니다! 혹시 이런 문제가 생길 때는 대비해서 미리 준비해 두신 동작입니까?"
"그, 그런 건 아니고. 그, 그냥…너, 넘어지면 안 되겠다, 해서, 해봤어…!"
"대단해요!"
선아현이 계속되는 칭찬에 상기된 얼굴로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흠, 일단 나도 칭찬부터 해두자.
"의도한 것처럼 나왔어. 우리 원래 안무보다도 멋있는 것 같다."
"…! 그, 그 정도는 아니지만…고, 고마워, 더 열심히 할게…!"
"박수∼"
멤버들이 박수 세례를 보냈다.
주변의 몇몇 스탭들까지 웃으며 따라 치는 시늉을 하자, 선아현은 부끄러움과 뿌듯함으로 제정신이 아닌것 같은 얼굴이 되었다.
'좀 더 즐기게 놔두자.'
대기실에서 일부러 약간 더 시간을보냈다.
그리고 소강상태에서 선아현에게 다시 말을 걸었다.
"선아현."
"으, 응?"
"아까 수습해 준 거 정말 고맙긴한데, 앞으로는 이렇게까지는 안 해도 괜찮을 것 같다."
선아현의 얼굴이 즉시 새파래졌다.
"왜, 왜…?"
생각 이상으로 반응이 과민했다.
방금 넘치게 칭찬 들은 뒤라 괜찮을 줄 알았는데.
'말을 잘 골라야겠군.'
"심각하게 다칠 수도 있으니까. 즉흥적으로 하기엔 너무 위험한 것 같아서."
그러자 복잡한 표정이던 류청우가 결국 말을 얹었다.
"그래 아현아, 정말 고맙고 잘하긴했지만… 우리 부상은 조심하자. 머리부터 부딪히면 정말 큰일 날 수도 있어."
부상 후유증 때문에 은퇴했던 만큼 이쪽도 신경이 쓰였던 모양이다.
"죄, 죄송해요."
선아현이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들뜬 기색이 싹 사라진 게 자괴감이 고개를 든 모양이다. 류청우는 당황했다.
"사과할 거 아니야! 아현아, 그냥 걱정돼서 하는 말이야."
상황 보던 큰세진이 끼어들었다.
"음∼ 뭐 그럴 것까지 있을까요? 아현이 무용 전공자였잖아요∼ 딱 자기 몸 확인하고 한 거였겠죠. 안그래?"
"…으, 응."
아닐 것 같은데.
선아현은 압박감이 들면 좀 자기파괴적으로 무리하는 경향이 있었다. 아마 이번에도 일단 수습해야 한다는 생각에 리스크 고려 안 하고 제일 멋질 것 같은 동작을 해버렸을것이다.
하지만 달랠 타이밍이긴 했다. 나는 고민하다가 입을 열었다.
"…당연히 이번에 넌 상상 이상으로 잘했고. 그냥, 내가 걱정해서 하는 말이야. …건강하게 오래 하는게 좋잖아."
"…! 으, 으으응! 조, 조심할게!"
"그래."
다행히 선아현은 '걱정'에 초점을 맞추자 감동으로 코드가 넘어간 모양이다. 사소한 대인관계에 감명받는 스타일이라 다행이었다.
하지만 이번엔 배세진이 어두운 얼굴로 팀원들에게 사과했다.
'넌 또 왜.'
"…미안해. 내가 인이어를 떨어뜨려서."
왠지 이럴 것 같긴 했다.
"그건 사고지! 놀랐을 텐데 마무리까지 잘했잖아 세진아."
"맞습니다. 고정이 잘못된 거니까 완전히 운의 영역이었다고 생각합니다."
"형 인이어 줄 이상했어요. 형 말고 인이어가 사과해요!"
"마, 맞아요! 인이어가 사과…?"
당황한 선아현이 맞장구를 치려다가 차유진의 문법 오류에 말려들었다.
그리고 슬슬 이 흐름이 짜증 나는지 큰세진이 대화를 끊었다.
"하하, 우리 그냥 잘 수습한 걸 축하하고 넘어가는 게 어떨까요? 잘 끝났는데 분위기 왜 이래∼"
그렇긴 했다.
류청우가 웃으며 말을 받았다.
"그래, 오늘 다들 너무 잘했어! 몸챙기면서 앞으로도 잘해보자. 5년 길잖아."
"어허∼ 형님 우리 재계약까지 같이 가는 거 아니었나요? 10년 하죠, 10년∼"
"하하! 그러게. 10년 잘해보자!"
"옙!"
"좋아요!"
배세진이 기겁할 소리를 아무렇지 않게 하면서, 팀원들은 자축으로 대화를 끝냈다.
그리고 나도 만족했다.
'어쨌든, 무대는 좋았다.'
이걸로 인터넷 반응도 일단락 되겠다 싶었다.
아마도 '테스타 역시 무대 잘하네' 정도로 결론 나지 않았을까.
나는 그렇게 기대하면서 엔딩 무대로 나갈 준비를 했다. 원로가수와 함께하는 출연진 단체 무대였다.
"할머니께서 좋아하시는 곡입니다!"
김래빈이 유독 신나 했다는 것만 말해두겠다.
그리고 방송이 다 끝난 후 자정이가까운 시간.
차에 타서 확인한 인터넷 여론은 상당히 재밌게 흘러가 있었다.
테스타의 KBC 무대가 끝난 직후의 반응은 박문대의 예상대로 호평일색이었다.
[방금 끝난 테스타 KBC 가요대축제 마법소년 +비행기 무대]
(동영상)
-와 라이브
-이런 컨셉도 잘하냐
-중간에 공중돌기 보고 헉함
-오졌다 진짜 저게 쌩라이브로 된다는 게 신기할 뿐;
-뭐야 립싱임?
└오케스트라 라이브에 그럴 리가
└뭐래 라이브 반주에도 AR 깔수 있어
└아 그래? 그럼 립싱일 수도 있겠다∼ㄱㅅㄱㅅ
└차유진 중간에 랩 일부러 한 박늦게 들어가는데 무슨 개소리야 얘네 영상도 안 보고 댓글 막 다네ㅋㅋㅋ
└이쯤 되면 정병들 망상 속에 동명이팀 테스타가 있는 듯
-개잘하네
-선아현 공중제비 머선일이고
-연말 편곡 중에 이게 가장 좋은듯 음원 내줬으면 좋겠다
-우리 아현이 천사인 건 알았지만 이렇게 공중파에서 인증까지 할 줄은 몰랐어 하늘을 날다니… 이제 오피셜이구나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주접 봐
-배세진 매번 아쉽네 엔딩 주지말지
└엥 이번 건 잘하지 않았어?
└생각보다 쌩 라이브 잘해서 오히려 놀랐는데;
└세진이가 파트가 적어서 그렇지 자기 파트 못 소화한 적은 없어ㅠㅠ
중간중간 어떻게든 긁어 내리려는 시도가 깔끔히 막혔다. 완전한 굳히기였다.
다만 박문대가 예상하지 못했던 점은, 인이어를 뽑는 것의 반응이 좋았다는 것이다.
그것도 무척.
-인이어 뽑는 거 진짜 설렌다 신인 안 같고 뭔가 엄청 전문적인 느낌이야ㅋㅋㅋ
-아마 지금 슨스 들어가면 보정 다른 짤 오조오억개 나와쓸 듯ㅋㅋㅋ
└ㄹㅇ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멤버별로 볼 듯ㅋㅋㅋㅋㅋ
└팬도 아닌 내 계정 타임라인에 벌써 들어오고 있어… 박문대 잘생겼네 내 망태기에 넣어두겠음
└ㅋㅋㅋㅋㅋㅋㅋㅅㅂ
-각자 느낌이 살짝씩 달라서 계속보게 된다ㅋㅋ
└맞아!ㅋㅋ
-내 픽은 약간 찡그리는 것처럼 웃으면서 빼는 키 큰 멤버야 눈웃음이 매력적이라ㅋㅋ 혹시 이름 알려줄 사람?
└큰세진
└? 큰씨가 있어…?
└엌ㅋㅋㅋ 이세진이야! 우리 애크고 귀여워서 큰세진이 별명이거든 좋아해 줘서 고마워! (큰세진 사진)
테스타 멤버들이 한쪽 인이어를 잡아 뽑는 장면은 대부분 카메라에 선명히 찍혀서 좋은 컨텐츠가 되어주었다.
'비행기'의 후렴 안무 파트였기 때문에 멤버들이 골고루 다 잡힌 덕이었다.
그리고 팬들은 오랜만에 즐겁고 마음 편한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케비씨야 멤버별 직캠을 내놓아라 인이어 빼는 짤 다른 각도도 보게ㅠ
-발음향을 이기는 천재 아이돌 라이브를 보고싶다구? 잘 찾아오셨습니다 (영상)
-KBC 무대 컨셉 정말 맘에 든다 스케일 큰 동화 느낌이라 SBC의 까리한 무대하고 붙여놓으면 서사 생성기가 따로 없음 (비교 짤)
-마법소년에서 비행기로 넘어갈때 문대랑 배세가 마주 보고 고개젓는 안무가 있네. 혹시 다음 앨범의 스포일러일까? (짤)
-문대 KBC 출근길 차림 머리부터 발끝까지 생일 서폿 인증임… 세상에 (정리 사진)
시비를 걸거나 비아냥거리는 말들이 툭툭 튀어나오지 않는 이 분위기에 팬들은 더없이 기꺼워했다.
무대 영상을 돌려보던 사람들이 이상한 점을 발견한 건 딱 그때쯤이었다.
첫 시작은 영상 자료 등을 보정하는 팬의 잡담용 계정이었다.
-클로즈업 움짤 찌다가 발견했는데, 아현이 공중제비 돌기 전에 미끄러진 것 같아서… 잠만.
└?
└선생님?
└뭐야
-다시 돌려보고 왔다… 맞는 듯. 아현이 발밑에 뭐가 있어서 걸려 넘어질 뻔한 거 청우랑 문대가 잡아줌. (캡처)
-거기서 아현이가 미끄러질 뻔한거 만회하려고 공중제비 돌아버린거야. 보면 청우랑 문대 둘 다 표정굳음. (캡처)
└미친
└그게 사고 수습이었다구요…?
순식간에 팬들은 영상의 미세한 부분까지 돌려보며 분석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문제의 원인까지 발견했다.
-배세 인이어가 떨어졌네… 담당이 고정을 잘못시킨 듯 (바닥 캡처)
└세상에
└아 미치겠다
└아 뽕 차는데 동시에 개빡치네 애들 다쳤으면 어쩌려고…
└잘 보니까 세진이 엔딩에 손 떨고 있어 아ㅠㅠㅠ
└미친 그럼 아현이 공중제비 애드립이야?;; 사람이 그런 게 가능해?
난리 난 팬들의 소식은 곧 일반 연예 커뮤니티들로까지 퍼졌다.
[테스타 KBC 무대 사고 났던 듯]
: (정리글 링크)
한 줄 요약 : '인이어∼엔딩'까지 전부 테스타가 무대 사고 수습한 결과
-헐
-뭐야 이거 진짜야?
-끼워 맞추기 같은데…
-너무 침착하게 처리해서 팬들도 지금 알아차린 거면 진짜 대단한 일임
-무대 실수 수습하느라 공중제비도는 남돌이 어딨어 그냥 안무한 거겠지ㅋㅋㅋㅋ
└실수 아니고 사고임 그리고 테스타는 아주사 때부터 행적 보면 충분히 그럴 만한 놈들 같은데…
└자기들이 인이어 뽑다가 바닥 떨어진 거면 실수 맞잖아 제발 팬들 망상에서 깨어나세요ㅋㅋㅋ
└지나가던 타팬인데 인이어 원래 빼도 바닥에 안 떨어지는 게 정상이고 이거 소품 사고 맞아
-바닥에 인이어 확실해? 그냥 착시 같은데…
└인이어 맞아 여기 (밝기 더 조절한 캡처 사진)
└헐 진짜네
└미친 걸려 넘어진 거네
-애들 표정 보니까 맞는 듯?
-선아현 백덤블링은 원래 안무 같아 침착하게 소화한 건 맞지만└나도 이거에 한표
└근데 멤버들이 넘어질까 봐 잡아주는 동작부터 들어가잖아 우연히 동작 맞은 거라고 보긴 애매한데
SNS와 관련 커뮤니티마다 '맞다,아니다'의 의견이 난무하며 난장판이 되었다.
-으아아 미치겠다 누가 빨리 테스타 계정에 물어봐ㅋㅋㅋㅋㅋㅋ
-결론이 안 나네ㅋㅋ
그리고 재밌게도, 바로 직후에 테스타와 실시간 소통 가능 창구가 생겼다.
[헐 테스타 덥앱 왔다]
: (링크)
바로 테스타의 W라이브였다.
신인상 논란 이후 오랜만의 실시간 소통은, 거창한 타이틀과 함께 시작했다.
[테스타의 연말 기념 저녁 식사 만들기! 오늘의 메뉴 : 영혼을 위한 닭고기 스프 (고양이 이모티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