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6화]
'…댄스 중심으로 각 잡고 해보겠다는 거군.'
일단, 발상은 알겠다.
이번 콘서트 유닛 무대는 위튜브자체 컨텐츠로 홍보가 들어가고 공개 영상까지 뜰 예정이니, 팬들의 주목은 확실했다.
여기서 정말 차유진보다 잘한다?
아마 다시는 포지션 관련 뒷말은 안나올 것이다.
근데 그게 가능하냐는 말이다.
"…차라리 이번 앨범에서 네가 댄스 브레이크를 받으면?"
"하하. 내가 어지간히 잘해도… 아현이나 유진이가 했으면 더 좋았겠다는 말이 나오겠지?"
큰세진이 곧바로 대답했다. 아무래도 제법 오래 이 상황을 곱씹어본 모양이었다.
'…그래도 차유진이랑 진검승부는 좀.'
큰세진의 능력치가 별로라는 뜻은아니었다.
' …상태창.'
나는 오랜만에 큰세진의 상태창을 확인했다.
[이름: 이세진]
가창 : C+ (B+)
춤 : A (S)
외모 : A- (A+)
끼 : A- (A+)
특성 : 정숙하세요(B)
!상태이상 :
상태창은 대단히 준수했다. 이번시상식 시즌에 '끼' 항목이 A 등급에 진입하면서 성장이 더 눈에 띄었다.
'어디 내놔도 튈 능력치지.'
…문제는 종합적으로 차유진 능력치에서 약간 하위호환이라는 점이다.
동급인 가창을 제외한 모든 스탯이 차유진보다 약간 아래였다.
차라리 한두 개쯤 등급이 벌어져도 뭐 하나 더 높은 항목이 있으면 낫겠는데, 이건… 애매했다.
'어지간해선 차유진한테 잡아먹힌다.'
그놈은 이제 끼가 S-였다. 거기에 미친 개사기 특성인 블랙홀까지 달고 있다고.
게다가 남에게 시너지 효과를 주는 타입도 아니었다. 그냥 자기 혼자만 미친 듯이 눈에 띄는 놈이다.
솔직히 완전히 포지션이 다른 나도 차유진이랑 단둘이 하는 무대는 썩내키지 않았다.
'…박곰머 저 새끼 아직도 뚝딱거린단 소리 듣긴 딱 좋지.'
포인트 다 처박아서 춤 스탯 올려놓은 보람이 싹 사라지는 소리가 벌써 들리는군.
나는 한숨을 참으며 큰세진을 쳐다봤다.
"…다 거르고 솔직하게 말한다."
"그래."
"너든, 선아현이든, 아니, 누굴 붙여놔도 일대일이면 차유진보다 눈에 띄는 건 거의 불가능할 것 같은데."
"…."
"아마 너도 생각은 했을 거야."
차라리 3번에 와서 어떻게든 본인이 주목받을 만한 파트를 뽑아내는게 나았을 것이다.
그런데도 굳이 차유진을 골랐다는건… 자기 증명에 대한 욕심과 공포가 어지간히 큰 모양이었다.
큰세진은 바닥을 보고 허탈하게 물었다.
"…영 불가능할 것 같냐?"
"내 생각에는… 차유진을 이기겠다는 것 말고, 다른 방향으로 접근해야 할 것 같다."
그나마 가장 가능성 있어 보이는 상황이 있긴 했다.
"그냥, 무대 자체를 잘 뽑아. 너랑 차유진이랑 누가 더 잘하는지 각 잡고 비교할 마음 자체가 안 들게."
'저 댄스 유닛 무대 진짜 좋다' 같은 이야기만 미친 듯이 튀어나와야한다는 뜻이다.
"그 상태에 네 파트에서 밀리지 않으면, 댄스 포지션 인상은 확실하겠지."
어려운 일이겠지만, 듀오 무대에서 차유진 이기는 것보다는 할 만할 것이다.
"차유진이 무대에서 협조하게 만들어야 돼."
"…그래."
큰세진은 제법 침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깍지 낀 양손은 얼마나 힘을 준 건지 허옇다.
'…손까지 떠는데.'
이놈이 이렇게까지 긴장하고 신경쓰는 건 아주사 파이널 직전에도 못 본 모습이었다.
'거의 학폭 루머 터졌을 때 수준이잖아.'
좀 과하지 않나.
"너 무슨 다른 일도 있냐?"
"뭐라고?"
"지금 말 나오는 게 팬들 전반적인 여론도 아니야. 그냥 물 밑에서 좀떠드는 거지. 너도 알 텐데, 과하게 초조해하는 것 같아서."
"…."
큰세진은 한참 말이 없었다.
그리고 허탈하게 웃었다.
"이런 것까지 말하게 되나… 야,내가 예전에 데뷔조에서 빠진 게 뭐때문인 줄 알아? 포지션이 애매해서야."
"…!"
"하필 딱 출범 직전에, 부모님 두분이 전부 배우인 애가 새로 들어왔거든? 인지도가 있어서 팀에 넣어야겠는데… 윗분이 꼭 7명으로 내겠다는 거야. 어쩌겠어? 한 명 잘리는거지."
"…."
"그런데 팀에 나보다 춤 잘 추는놈, 어린 놈, 잘생긴 놈, 노래 잘하는 놈, 랩 하는 놈이 하나씩 있었거든. 리더는 리더라서 못 빼고, 결국 애매한 내가 적임자였다 이 말이야."
큰세진은 허벅지를 손으로 탁탁 내려 쳤다.
"그래서 잘린 거지. 뭐, 별수 있나… 아무튼, 그래서 손 놓곤 못있겠다는 말이야. 이러다 말 커져서 내가 빠져도 안 아쉬운 분위기 되면 너무… 웃기잖아. 재계약 때 나만 딜이 별로거나… 하, 별말을 다 하네 진짜…."
큰세진은 혀를 차며 고개를 숙였다. 평소 상태였다면 말할 리 없는것까지 떠든 모양이었다.
'…이건 진짜 술 들어가야 할 이야긴데.'
맨정신에 들으려니 나도 좀 아찔했다.
'아무튼, 상황은 이해했다.'
처음 데뷔 직전에 팀에서 빠졌던게 상당히 충격이 컸던 모양이다.
아마 아주사 에서 내내 '리더'나 '메인 댄서' 포지션에 신경 썼던 것도 방송 분량 챙기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었겠구나 싶다.
'근데 뭐라고 반응해야 하냐.'
나도 너무 많이 들어버려서 좀 당황했다.
이런 과거사 이야기에 뭐 해결책을 제시할 건 아니지 않은가. 그렇다고 내가 위로에 썩 재능이 넘치는 것도 아니고.
…별수 없었다. 그냥 하던 대로 긍정적인 팩트나 나열하자.
나는 한숨을 참으며 입을 열었다.
"일단… 포지션, 뭐 그런 걸 떠나서… 그냥 팀에 네가 필요하긴 해."
"뭐, 예능용으로?"
"아니, 구설수 자르는 용으로."
"…!"
슬프지만 진실이었다.
"알겠지만, 우리 팀의 절반은 눈치가 없고, 절반 이상은 마음이 여리지. 생각해 봐라, 너 없었으면 과연 이 팀이… 어떤 상황에 처했을지."
"…."
데뷔 전 한 달 러쉬부터 최근 오닉스 사태까지 돌아보는 듯, 큰세진은 잠시 말이 없어졌다.
하지만 곧 고개를 저었다.
"의견은 너 혼자 거의 다 냈잖아. 큰 변화는 없었을걸."
"음, 그거 말인데, 사실 널 좀 믿고 질렀다."
"뭐?"
"아니… 일단 쓸 만한 의견이면 네가 무조건 분위기 몰아줄 줄 알았거든"
"…."
좀 머쓱했다. 나는 헛기침을 하고 말을 이었다.
"리더는 청우 형이긴 하지. 근데 가장 팀플레이에 적합한 사람을 고르라면 너라고 생각한다. 무대든, 방송이든, 팀 내부든, 외부든… 모든상황에서 다 제 몫 하는 사람은 정말 드무니까."
말을 마무리했다.
"그렇게 육각형 밸런스가 좋은 멤버도 아이돌 그룹에 꼭 필요한 포지션이잖아. 뭐… 그렇다고."
"…."
내 말을 끝까지 들은 큰세진은 입 을 다물고 고개를 반대 방향으로 돌렸다.
'설마 우냐.'
안 울었으면 좋겠다. 정말 분위기 이상해질 테니까.
그리고 잠시 뒤, 큰세진을 정말 참지 못하고 터뜨렸다.
울음이 아니라 웃음을.
"으하하! 너 지금 오글거려서 죽을것 같지!"
"…웃어?"
"큽, 야, 너라면 이 상황에 안 웃겠냐?! 박문대 같은 놈이 위로 좀해보겠다고 별소리를 다 하는데!"
이 새끼가 기껏 칭찬을 해줘도 지랄이야.
목베개로 후려갈기기 전에 큰세진은 웃음을 멈췄다.
"하하하, 진짜…. 후, 아무튼 알겠어. 웃긴데 좀… 마음에 위로가되네. 야 대단한데?"
큰세진은 싱글벙글거리더니, 또 갑자기 자신의 팔짱을 끼며 일부러 과장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근데 세진이가 이렇게 대단한 아이돌인 걸 팬들이 모르면 아무 소용없는 거 아닐까? 청우 형 리더 자리라도 받아야 하는 게 아닐까?"
농담인 척 진심 말하지 말아라 새끼야.
나는 최대한 침착하게 대답했다.
"이미 대부분은 다 알걸. 넌 네가 본 의견이 다른 팬들한테까지 번질까 봐 걱정하지만… 사실 난 반대로 장기전으로 갈수록 네가 유리하다고 생각한다."
"…그래?"
"어. 약점이 없는 건 연차가 쌓일수록 더 잘 드러나니까."
실제 데이터 시장에서 확인한 경향성이기도 했다.
한 멤버씩 돌아가면서 수요가 떡락하는 시기가 찾아올 때, 유독 방어가 잘 되는 타입이 그런 쪽이더라고.
큰세진은 이 말을 완전히 신뢰할수는 없다는 눈치였다. 하지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렇게 생각하면서 무대 잘해볼게∼"
그래도 저건 진심인 것 같았다.
어쨌든 자기 마음에서 결론이 난 것 같으니, 특성 효과는 받을 것 같았다.
[정숙하세요 (B)]
: 토 달지 맙시다!
-추진력 +100%
명칭만 봤을 때는 큰세진 성향상 여론 관련 특성이 아닐까 했는데, 까보니 저래서 약간 놀랐었다.
'뭐, 저것도 어울리긴 하지.'
아마 토 달지 말라는 건 본인과 주변 모두를 가리키는 게 아닌가 싶다.
이번 유닛 무대 준비하면서 차유진한테도 비슷한 스텐스겠지.
'…살살 어르고 달래서 원하는 요소만 싹싹 뽑아 먹겠군.'
과연 어디까지 통할지 궁금했다.
"그럼 난 이만 올라간다. 정리되면 올라와."
"자기가 다 정리해 놓고 뭐래. 야, 같이 올라가자!"
"…."
큰세진은 앞으로 기지개를 켜며 차에서 나갈 준비를 했다.
그 손을 보고 있자니, 문득 카드를 조작하던 모습이 떠올랐다.
"…그러고 보니, 카드는 어떻게 표시했냐?"
"어 ?"
"그 유닛 정하는 카드. 조작했던 거."
"아∼ 헐? 잠깐."
큰세진이 킬킬 웃었다.
"야, 나 조작은 안 했어!"
"…!"
"카드 만지다가 뒷면에 스크레치모양을 기억해 버린 걸 어떡하냐∼ 내가 머리가 좋아서… 아이고, 내 머리가 잘못했네!"
조작까지 간 건 아니라니 다행이긴한데… 어쩐지 열 받는군.
차 밖으로 나와 대기실로 걸어가면서도, 큰세진은 몇 번 더 키득거렸다.
그리고 대기실 앞에서 약간 진지하게 말했다.
"아무튼… 그럼 더 고맙네. 조작했다고 생각하면서도 내 사정 들어보려고 했다는 거 아냐."
"…콘서트 잘 끝나면 소 사든지."
큰세진이 빵 터졌다.
"그래. 그러면 그냥 소가 뭐냐? 한우 살게."
"그래라."
"…너도 고민 있으면 말하고."
"…."
내 고민이라.
나는 잠시 이놈들에게 내 사정을 설명하는 것을 떠올려보았다.
…음, 그날부로 활동 중단당하고 정신과 상담 예약을 잡아야 할 것 같군.
역시 이건 그냥 없는 셈 쳐야겠다.
"어. 생기면."
"오∼ 아직은 없다는 자신감!"
큰세진은 웃으며 대기실로 들어갔다.
매니저는 그새 상황을 파악했는지, 컨디션이 돌아온 큰세진을 확인하고 나에게 작게 엄지를 치켜들어 보였다.
'큰세진한테도 다 보이겠는데요.'
어쨌든, 이후 대기시간은 별일 없이 평화로웠다. 김래빈을 제외한 모든 멤버가 자이롭과 눈도 마주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테스타는 이날 4분기 앨범본상과 신인상을 챙겼다.
"정말 감사합니다! 저희가 지난주에 데뷔 200일을 맞이했었는데…."
마이크를 잡고 청산유수처럼 말하는 큰세진의 다음 차례를 기다리다가, 나는 드디어 기다리던 소식을받았다.
[성공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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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 127화]
생각보다 빠르게 신인상 관련 상태이상이 풀렸다.
'2월까지는 가야 할 줄 알았는데.'
마지막 대형시상식에서 상을 받자마자 풀렸다는 건… 그만큼 현재 여론이 압도적이라는 뜻일 것이다.
신인상 논란으로 난장판이었을 때정면 돌파한 영향이겠지. 이게 상태이상 해제 시기에까지 미칠 줄은 몰랐다.
'뭐, 빨리 확인할 수 있는 건 좋은일이지만.'
어차피 한동안은 '진실 확인'을 클릭할 생각이 없었으니, 빨리 달성됐다고 해서 새 상태이상을 너무 이르게 맞을 일도 없었다.
"감사합니다!"
생각하는 사이, 소감을 마친 큰세진이 자리를 비켜서 스탠드 마이크 앞자리를 내줬다.
내 차례라는 뜻이었다.
나는 천천히 걸어 나와서 마이크 앞에 섰다.
정면의 번쩍이는 물결이 시야를 어지럽 혔다.
멀리서도 눈에 잘 띄는 발광력, 테스타의 응원봉이다.
'…다른 시상식보다 압도적으로 많은데.'
아마 VTIC이 불참이라 그런 것 같았다. 나는 그 광경을 확인하며, 마이크에 입을 댔다.
"우선, 저도 감사하다는 말로 소감을 시작하고 싶습니다."
수상소감을 말하는 걸 꺼릴 것은 없다만, 그렇다고 나서서 하고 싶다고 느낀 적도 없었다.
'그냥 돌아가면서 하는 거니까 했던 거지.'
하지만 지금 보니… 감사를 표현하는 방법으로는, 괜찮은 수단인 것같다.
"…테스타는 오랜 기간 한 팀으로 준비한 그룹은 아닙니다. 팀으로서 검증되지 않은 저희가 짧은 준비 기간을 거쳐 그룹으로 데뷔하기 위해, 많은 고민과 노력을 했습니다."
물론 고민만 한 건 아니고 회사욕도 했지만, 어쨌든 거짓 없는 진실이었다.
그리고 다음 말도 그랬다.
"그리고 그 원동력은… 기다려 주시는 분들이 계셨다는 점인 것 같습니다."
…데뷔 준비만이 아니었다.
이번 신인상 논란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상황이 반전되면, 바로 호응해줄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그런 원초적인 방법도 고를수 있었다.
좋은 결과물을 내놓기만 하면 그걸 좋아하려고 기다려 주는 사람이 있다는 건 참 이상하고 대단한 일이지 않은가.
"믿고 기다려 주셔서, 기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피곤한 여론과 짜증 나는 상황에서도 기대를 포기하지 않아 줘서 고마웠다.
"테스타의 내일을 생각하실 때 걱정보다 설렘을 드릴 수 있는 그룹이 되도록, 앞으로도 지금의 마음을 잊지 않고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나는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약간오래, 인사를 계속했다.
머리 위로 찬란한 함성이 쏟아졌다.
응원봉의 발광력만큼 박력 넘치는 그 소리가 어쩐지 뜨겁게 느껴졌다.
그리고 등을 두드리는 손들이 느껴졌다.
'멤버들이겠지.'
좋은 그림일 것이라고 긍정적으로 생각하려던 찰나, 약간 당황한 속삭임도 들렸다.
'무, 문대 괜찮아?'
'너 울어?'
안 운다.
다른 놈이 진지하게 속삭였다.
'고개 바로 들기 그런 거면 얼굴가리고 뒤로 돌아.'
대체 왜 우느라 쪽팔려서 고개를 못 든다고 생각하는 거냐.
'감동과 감사로 인사가 길어진다고 생각하는 게 보통 아니냐고.'
나는 한숨을 참으며 고개를 들었다.
그러자 함성만큼 찬란한 응원봉이 수없이 흔들거리며 물결쳤다.
어쩐지 아까보다도 거대해 보이는게 은하수 같았다.
"…."
'큰일 날 뻔했네.'
아무 생각 없이 대가리 들었다간 진짜로 나 혼자 뽕 차서 눈물 짤 뻔했다.
우냐고 오해한 놈들 덕분에 짜게 식어서 중화된 덕분에 도리어 웃긴 꼴을 면했다.
'식은땀이 다 나네.'
그리고 동시에 몇 달 전, 내가 보자마자 버린 특성이 생각났다.
[특성 : 눈 밑 수도꼭지 (B)]
-편하게 열고 잠그세요!
: 눈물 제어 능력 MAX
약간 등골이 서늘해졌다.
'…설마 필요해지는 건 아니겠지.'
버리자마자 필요해진 부동심 꼴이나는 건 아닐까, 잠시 의심했으나…곧 내심 고개를 저었다.
'아무리 그래도 이런 걸로 다른 특성을 포기할 순 없지.'
여차하면 좀 쪽팔리고 말면 그만이다.
그리고 뭐, 그런 일이 자주 일어나겠는가? 오늘처럼 복합적인 사정이겹친 날이나 그런 거지.
'손이나 흔들자.'
나는 '운 줄 알았는데!'라고 말하는듯한 태도로 옆구리를 찌르려 드는 놈들과 함께 관객석을 향해 손을 흔들고 고개를 꾸벅였다.
불빛은 여전히 뜨거웠다.
시상식 시즌이 다 마무리된 뒤, 본격적인 콘서트 준비가 진행되었다.
그중에는 물론 카메라와 함께하는 유닛 무대 준비 과정도 있었다.
[마법소년 테스타의 마법 같은 인공지능 비서!]
"이젠 위튜브까지 나오냐."
"청우 형이에요!"
차유진의 말대로, 위튜브와 연결된 TV 화면에서는 류청우가 나오고 있었다.
새 날개 그림이 어깨 위로 합성된 류청우는 웃으며 윙크와 함께 검지와 엄지로 살짝 쏘는 동작을 취했다.
[캐치, 큐리어스!]
류청우가 쾌활한 미남으로 나오는, 굉장히 멀쩡한 광고 장면이었다.
"뭐야!"
"왜 형만 멋있는 거 해요?"
"…동물이, 아니네?"
마지막 배세진의 질문은 거의 음산하게까지 들렸다.
하지만 류청우는 이것마저도 민망했던지 웃으며 머리를 털 뿐이었다.
"하하, 멋진 건 아니고… 팬분들이 나를 '새'랑 많이 비교해 주셔서, 맞추다 보니까 이렇게 된 것 같네."
그러나 멤버들의 반응은 차가웠다.
"삐약삐약 병아리로 할 수도 있었는데 멋진 거 했잖아."
"스킵 눌러 드리려고 했는데 그럴 필요도 없었습니다."
"아니, 내가 정한 것도 아니잖아 얘들아!"
류청우는 잠깐 당황했지만, 곧 가벼운 억울함에서 나온 반응이라는것을 깨달았는지 웃으며 상황을 귀엽게 보고 넘겼다.
'…이미지 동물이 매라서 좋겠군.'
누군 강아지를 밀다가 그 꼴이 됐었는데 말이다.
나는 떠오르는 내 광고 컷을 빠르게 떨쳐내고, 재생되는 영상에 집중했다.
[Je te donne des fleurs que…]
화면에서는 느릿하고 아름다운 샹송이 흐르고 있었다. 바로 김래빈과 류청우가 선택한 유닛 곡이었다.
큰세진이 관성적으로 감탄하며 물었다.
"오, 저 곡 쓰려고?"
"예."
김래빈이 고개를 끄덕이며 눈을 반짝였다.
"청우 형 음색과 잘 어울리는 멜로디라고 생각합니다. 건반악기 소리만 남기고 리듬을 키치하게 바꾸면 굉장히 감각적인 Inst 가 될 겁니다…!"
"그래. 래빈이가 재밌어하는 것 같아서 나도 기대된다."
류청우가 허허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 팀이 대충 어떤 분위기로 진행중인지 짐작이 갔다.
'김래빈이 폭주하는 걸 그대로 두는군.'
어차피 유닛 한 무대니까 류청우도 보수적으로 판단하지 않고 김래빈의 아이디어를 전면 수용해 주는 모양이다.
'재밌는 그림이 나오겠는데.'
꽤 흥미로웠다.
그리고 다음으로는 차유진이 신나서 동영상을 검색해 틀었다.
갈색 앨범 커버를 바탕으로 올드 팝송이 흘러나왔다.
'…굳이 팝송을?'
재미교포인 차유진에게 너무 유리한 선곡이 아닌가 싶었으나, 곧 그럴 리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마 큰세진은 차유진을 배려하는 구도만 챙긴 뒤 자신이 원하는 곡을 골랐을 것이다.
'이 판에 저놈이 양보했으면 성을 간다.'
이미 갈린 성이지만 한 번 더 걸어 봤다.
큰세진은 나와 눈이 마주치자 보일듯 말 듯이 눈썹을 찡긋거렸다. 아마 저 팝송이 본인이 유도한 곡이 맞는 듯싶었다.
"저 이 곡 좋아요! 완전 기대해요!"
"맞아, 우리 멋진 무대 만들자구∼"
"만들어요!"
차유진이 신나서 손을 들자, 큰세진이 신나는 하이파이브로 응답했다.
'뭐, 둘 다 만족한다니 됐군.'
아직까진 별문제 없어 보였다.
"그, 그럼… 저희가 고른 곡을 재생하겠습니다…!"
"오오∼"
마지막은 나와 배세진, 그리고 선아현의 조였다.
선아현이 대본대로 앞으로 나와서위튜브 화면을 조작했다.
그러자 촌스럽고 느긋한 밴드 반주가 흐르기 시작했다.
[우! 마음이 들려요∼]
"어?"
약간 당황한 다른 조의 놈들을 보고, 나는 웃으며 설명했다.
"미소 선배님의 그대는 놀라워 입니다."
80년대 후반에 왕성히 활동했던 ,여성 솔로 가수의 곡이었다. 적당히 밝고, 적당히 감성적인.
이 곡의 '우우우∼ 놀라워!'라는 후렴구는 아마 10대나 20대도 예능등지에서 한 번 정도는 들어봤을 정도의 인지도를 가졌다.
하지만 딱 그게 전부였다.
아마 최신 콘서트에서 쓸 곡이라기엔 임펙트와 분위기 모두 어울리지않아 보였겠지.
류청우는 약간 충격받은 얼굴이었다.
"이 곡을 너희 셋이 하게?"
"네."
나는 태연하게 고개를 끄덕였고,나머지 두 팀원도 약간 상기된 얼굴로 긍정했다.
류청우는 그 면면을 살핀 뒤, 겨우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문대가 고른 거지?"
"…? 아뇨. 선아현과 세진 형이 골랐습니다."
둘이 먼저 후보곡에 올려서 상의후에 같이 고른 것이다.
"…음. 그렇구나."
류청우는 곧장 고개를 끄덕였지만, 걱정을 숨기는 게 느껴졌다.
'카메라만 없었으면 벌써 정말 이걸로 괜찮겠냐고 물어봤겠군.'
그 기색을 알아차리지 못한 선아현은 그냥 들뜬 얼굴로 중얼거렸다.
"저, 저희랑 잘 어울릴 것 같아서, 벌써 기대돼요!"
배세진도 말할까 말까 주저하는 표정이었지만, 결국 카메라를 보며 입을 열었다.
"…멋진 무대가 될 것 같으니까,기대해 주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드물게 적극적인 두 사람의 의견 표명을 보던 류청우의 얼굴이 점점 편안해졌다.
저렇게 좋아하니 자신은 모르겠지만, 이 곡에 무슨 매력이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나 보다.
류청우는 마지막으로 쓱 나를 쳐다보았다. 그리고 마지막 확신을 바라는 얼굴로 물었다.
"…문대도 자신 있고?"
"어떤 무대든 무조건 자신 있기는힘 들죠. 최선을 다해서 완성해 보겠습니다."
"…."
"저희 모두 힘내죠!"
"힘냅시다!"
"테스타 화이팅!"
류청우는 촬영이 끝나자마자 '정말괜찮겠냐'는 질문을 세 번쯤 했고, 나는 세 번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그제야 류청우는 다소 안심한 얼굴로 커피를 내리러 사라졌다.
'괜히 장난쳤나.'
혼자 광고 러시안룰렛을 피해서 좀 놀려줄 생각이었는데, 원체 책임감 강한 놈이라 예상보다 더 잘 먹혔다.
'사실 내가 걱정하는 건 다른 부분이긴 한데.'
내 걱정은… 신곡 무대였다.
'음원이 나오기도 전에 콘서트에서 첫 무대라.'
타이틀 곡과 서브 곡. 관객들에게 생소하며 대중에게 검증되지도 않은것을 두 곡이나 즐겁게 감상하도록 만들어야 했다.
분위기가 처지지 않도록 끌고 나가는 게 중요했다.
"…흠."
나는 고민하다가, 짧고 명쾌한 답을 내놓았다.
'자본을 쏟자.'
다행히 회사가 돈이 많았다.
테스타가 한창 콘서트와 새 앨범준비에 매진하고 있을 시점.
드디어 콘서트 날짜가 공지되었다.
[콘서트 공지 떴다]
: 3월 30일∼31 일 주말 양일 일정
(공지 이미지)
-미친미친 드디어 콘서트
-으아아악
-헐 대관 뜬 거 맞았구나
-아 제발 내 자리 하나만ㅠㅠ
-데뷔 9개월 만에 콘서트라니 세상에 우리 애들 무슨 일이야
-많은 걸 바라진 않을게 진짜 갈수만 있다면 좋겠어ㅠㅠ
-벌써 응원봉 들고 팬송 부르는 상상함
이미 팬들은 소속사가 체조경기장을 대관했다는 소식을 알음알음 확인했기 때문에 기대감에 부풀어 있었다.
그리고 기대가 현실로 이뤄지는 순간, 사람들은 기쁨의 비명을 내지르며 즉시 티케팅 준비를 시작했다.
-콘서트 갈 지방 러뷰어는 빨리 숙소부터 잡아 느긋하게 하다간 예약 금방 차고 가격 엄청 오름ㅠㅠ
-애프터파크 서버 시간 어디로 확인해?
-팬클럽 선예매 따로 준비할 거있을까?
-스탠딩 잡고 싶다 정말 간절하다
하지만 그들이 침착하게 티케팅 준비를 시작하기도 전에, 새 소식이 쏟아져 들어왔다.
-헐 우리 새 앨범 다음 달부터 예약받는다는데? (공지 링크)
└? 뭐야
└갑자기?
└4월 1 일 컴백을 벌써 공지해?
└헐 콘서트 다음 날이네
└콘서트 끝나자마자 컴백? 떡밥 많아서 좋긴 한데… 어…
팬들은 거기서 이미 당황했지만, 뉴스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기사 떴다… 콘서트에서 신곡 최초 공개한다고 함 (기사 링크)
└네…?
└아니 이게 무슨 일이야
└그럼 뮤직비디오 나오기도 전에 콘서트에서 첫 무대부터 하는 거임?
└헐 미친 콘서트 못 가면 돌아버릴 듯…
더 있었다.
-테스타 첫 콘서트에서 유닛 무대를 하는데, 무대 제작기를 위튜브에 리얼리티 컨텐츠로 공개한다고 합니다. (인터뷰 링크)
└예?
└잠깐 갑자기 너무 많은 일잌ㅋㅋㅋㅋ
└유닛 무대를 하는데 리얼리티도 만들어준다고?
└너무 좋아서 의심이 멈추질 않는다 티원이 일할 리가 없는데…?
팬들은 정신없이 소식들을 소화하려 안간힘을 쓰면서도, 한 가지 사실만은 확실히 굳히고 있었다.
'콘서트 경쟁률 미치게 높겠구나!'
그리고 이 혼란과 긴장의 소용돌이 속에서. 테스타는 SNS글을 하나 올린다.
[테스타가 드디어 첫 콘서트를 하게 됐습니다! _ 다들 저희 보러와주실 건가요?ㅠㅠ 저희도 러뷰어와 함께 콘서트 예매를 도전해 보려는데!]
도전장이 따로 없었다.
[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 128화]
"다들 준비됐어?"
"당연히 다 됐죠∼"
"바로 해요!"
류청우의 질문에 자신감 넘치는 대답들이 돌아왔다.
이 '테스타가 직접 해보는 콘서트 예매' 컨텐츠를 위해 통으로 빌린 PC 방에는 우리와 스태프들뿐이었다.
그리고 각자 PC를 하나씩 꿰찬 놈들은 그냥 '우리 콘서트 곧 한다!'라고 외치는 듯한 좋아죽겠다는 얼굴로 앉아있었다.
"저희가 오늘 예매하는 자리는 추첨을 통해 사인과 함께 러뷰어에게 보내드립니다!"
"좋은 자리 잡아볼게요!"
긴장감은 있어도 비장함은 찾아볼수가 없었다.
'최악의 경우라도 구석 자리 정도는 잡겠거니 하는 생각이겠지.'사실 이놈들 생각으로는 그럴 만도 한 게, 이번에 양일 동원 가능한 수용 인원이 26,000명이다.
다른 말로 하자면 콘서트 하루당 예약 가능한 자리가 만삼천 석이라는 뜻이다.
'설마 각 잡고 최신형 컴퓨터로 예매를 시도하는데 13,000개 중에 하나도 못 건지겠느냐'는 기묘한 확신이 놈들 사이를 감돌고 있었다.
하지만 당연히 나는 회의적이었다.
'이놈들 다 망할 것 같은데.'
대화만 들어도 알겠다.
"오, 8시에 열리는 거니까… 8시딱 돼서 들어가면 되는 거겠죠?"
"그런 것 같네."
"1층 할래요!"
"…."
좌석 화면도 못 보고 입구에서 로딩으로 끝날 것 같군.
기껏해야 얼결에 뒷자리 잡는 놈이나 한둘 나오겠지.
'…역시 내가 잡아야 하나.'
다 망해도 그림이 이상할 테니까.
다양성을 위해 한둘은 성공하는 게 나을 것 같다.
하지만 사실, 나도 직접 콘서트에 가본 적은 거의 없다. 기껏해야 일대일 수주 받고 가서 데이터 뽑아준적이나 몇 번 있던가.
다만 대리 티케팅이라면 시도해 준적이 꽤 있다.
그리고 승률이 괜찮았다.
'비싼 밥 얻어먹기 좋았지.'
그 이상 본격적으로 해 먹기엔 법망에 걸릴 확률이 높아서 그만뒀다.
암표 팔이는 회색지대도 아니고 그냥 범법이라서 말이다.
어쨌든, 그러니 이번에도 적당히건지는 수준으로는 가능하겠다 싶다.
그때, 옆자리의 선아현이 슬그머니 말을 걸어왔다. 화면을 보니 이제야 겨우 예매 사이트에 접속한 것 같다.
"무, 문대야. 어느 구역, 고를 거야?"
"음… 2층 8구역 정도 해볼까 하는데."
"2, 2층?"
"문대 너무 쉽게 하려는 거 아니야∼?"
"1층 같이해요!"
주변에서 대화를 들은 놈들이 참견해 왔다. 현실을 모르는 용감한 발언이 쏟아졌다.
다만 선아현만은 열심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 그럼 나도… 2층 할까? 어, 어떻게 하면 돼?"
본인의 경험 없음을 인정하고 조언을 구하는 자세가 돋보였다.
'…내가 아는 선까지는 말해둘까.'
나는 간단히 서버 시간과 사이트세팅 관련 조언을 했다.
"일단 이 사이트에 들어가서 애프터파크 주소를 클릭하면…."
"오, 문대 뭐 알려준다!"
"저도 경청하고 싶습니다!"
"알려줘요?"
"…예매 사이트의 서버 시간이 나오는데, 예매 시간은 그걸 기준으로 생각하면 돼."
방해가 많군. 나는 일단 말을 마쳤다.
"아, 알겠어!"
선아현은 곧바로 자신의 PC를 조작했고, 곧 서버 이름과 함께 애프터파크 서버 시간이 나타났다.
[마법소년 테스타의 마법 같은 이선좌]
[02월 26 일 19시 47분 49초]
"오오!"
주워들은 놈들이 신나서 사이트를 베꼈다. 그리고 류청우와 배세진까지 기웃거리며 방법을 배워가기 시작했다.
'흠, 맨땅에 헤딩하는 것보다야 낫겠지.'
예매 시작까지 10분만 남았다. 나는 빠르게 아는 내용을 털었다.
"그리고 예매 사이트는 웹 브라우저별로 여러 탭 띄운 다음에, 정각이 되기 직전 59초부터…."
요약된 설명이 다 끝났을 때쯤엔 놈들에게 약간 비장함이 생기기 시작했다.
"마, 많은 준비가 필요하구나…."
"문대가 조사 안 해왔으면 우리 다 실패할 수도 있었겠는데?"
생각보다 팁이 세밀하고 뉘앙스에서 절박함이 묻어나는 탓인 듯싶었다.
그리고 공지된 시간이 다가올수록 그 분위기는 강화되었다.
"앞으로 3분 남았다."
"헙
"우리 꼭 좋은 자리 잡아서 러뷰어한테 보내줍시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화, 화이팅…!"
본인이 안 잡아도 그대로 러뷰어에게 갈 자리라는 것은 이미 잊어버린것 같다.
뭐, 잘못하면 암표상한테 갈 수도 있으니… 확률적으로 보완의 가능성은 있군.
나는 어깨를 으쓱하고 마우스를 고쳐잡았다.
카메라 사각지대에서 스탭이 손짓으로 카운트다운 신호를 주었다.
"10! 9! 8! …3! 2! 1!"
입으로 숫자를 따라 말하며, 나는 정각이 되기 직전부터 탭을 하나씩 새로고침하기 시작했다.
"…!"
그리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화면이 멈췄기 때문이다.
'조졌다.'
아니, 정말 이거 외에는 설명할 방도가 없다.
모든 탭에서 끝없는 로딩이 계속되었다. 트래픽이 좀 풀리면 변할까 싶어서 7분쯤 브라우저를 왔다갔다하며 상황을 더 지켜봤지만 변하는건 없었다.
주변도 시끄러웠다. 누구 하나 페이지를 본 놈은 없는 것 같았다.
'이거 아무래도 서버 터진 것 같은데.'
나는 PC를 버리고 모바일 앱을 켜보았다.
[대기인원 41,502명]
패배 선고였다.
"…."
촬영 중이라 폰을 자제하려다가 앱을 확인하는 게 늦었던 것이 패착인듯 싶었지만….
'…내가 망했다고?'
다른 놈들도 아니고 내가… 한 자리도 못 건졌다고?
믿기지 않았다.
'…VTIC 콘서트도 성공해 봤는데.'
비록 지금보다 3년 전 시점이긴했지만, 그때도 그 새끼들은 탑티어였단 말이다…!
당시에도 서버가 터졌는데 어떻게 탭 바꿔서 비비고 들어갔던 기억이 멀쩡했다.
근데 왜 하필 지금 그게 안 먹혔는지 모르겠다.
'…내 콘서트 예매인데.'
솔직히 좀 당혹스러웠다.
나는 몇 번 더 PC와 앱을 다시 확인한 뒤에야 허연 화면 앞 현실을 받아들였다.
'어쩔 수 없지.'
…티켓을 보내줄 수 없는 건, 좀 아쉽긴 하지만 말이다.
아마 나까지 속수무책으로 안 됐으니 다른 놈들이 해낼 가능성은 지극히 낮….
"어, 어어?"
그 순간, 옆자리의 선아현이 소리를 지르며 마우스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슬쩍 보니, 화면이 결제창까지 넘어가 있었다.
"…!"
"헐, 아현이 했어?"
"대체 어떤 묘수로 들어가셨습니까?!"
"나, 나도 모르겠…. 무, 문대가 알려준 대로 했는데…!"
선아현은 우르르 몰려든 놈들에게 당황한 얼굴로 대답하면서도 알려준대로 착실히 단계를 밟아가기 시작했다.
미리 복사해둔 개인정보를 입력한뒤, 결제 수단도 무통장 입금을 잘선택해서 다음 페이지로 넘어갔다.
심지어 위치도 예정했던 2층 중앙이었다.
"와 대박!"
"아현이가 성공하는구나."
"…다행이다. 한 명이라도 해서."
멤버들이 선아현의 어깨를 두드리는 등의 행동을 하며 벌써 축하 분위기에 돌입했다.
"…."
그러나 나는 씁쓸하게 선아현의 화면을 들여다보았다.
큰세진이 다짜고짜 등을 쳐왔다.
"헐 문대문대, 열심히 준비했는데 아현이만 성공해서 서운해?"
선아현이 화들짝 놀랐다.
"무, 무, 문대가 잘 알려줘서…! 무, 문대가 한 거나 다름없…."
"아니, 그게 아니라…."
내가 설명하는 것보다 먼저 선아현의 PC화면이 변했다.
거기엔 예상 그대로의 문구가 떠있었다.
[결제 진행 중 오류가 발생하였습니다.]
"…."
"…."
죽음같은 침묵이 흘렀다. 이럴 줄알았다.
'…로딩이 너무 길었어.'
로딩이 너무 짧거나 길면 보통 이꼴이 나더라고.
선아현은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 하고 굳어있었다. 다른 놈들도 썩 정신 차린 것 같지는 않았다.
'…결제 단계에서 튕긴 표가 꽤 많을 것 같은데.'
나는 혹시 모를 기대에 다시 예매 페이지를 몇 장 확인해 봤다.
여전히 하얀 화면만 떠 있었다.
'시 X.'
이거 성공한 사람이 있기는 한 건가?
트레픽 예측에 실패한 예매 사이트 때문에 서버가 다운된 것 같은데, 그럼 다들 똑같은 화면을 보고 있을수도 있었다.
나는 침착하게 추측했다.
'제대로 예매한 사람이 아직 얼마 없을 수도 있다.'
물론 아니었다.
3분 뒤에 드디어 접속된 예매 페이지가 증명했다.
[0석]
"…."
놀랍도록 많은 사람이, 이 쓰레기같은 서버를 뚫고 예매에 성공했던것이다.
"진짜?"
"이렇게 끝이라고…?"
끝이었다.
그리고 거짓말처럼 매진 기사가 뜨기 시작했다.
[테스타 첫 콘서트 전석 매진]
[2만6,000석 매진… 서버 장애까지 부른 테스타의 콘서트]
[테스타의 첫 콘서트, 양일 전석매진까지 단 10분]
그렇다.
나는 그냥… 티켓팅에서 팬들에게 진 것이다.
그것도 좌석 한번 보지 못하고 맞은 처절한 완패.
데이터 팔이 1 패… 추가.
테스타의 첫 콘서트.
팬들이야 기대와 행복에 부풀어있었으나 대중적으로 큰 소식은 아니었다. 보통은 아이돌 콘서트에 갈 생각 자체를 하지 않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테스타는 컴백 일자까지 발표한 상태였다. 그 소식에 주목이 쏠린 나머지, 콘서트 자체는 큰 반항없이 조용히 지나가는 듯 싶었다.
…테스타의 망한 티케팅 영상이 올라오기 전까지는 말이다.
[본인들 콘서트 티켓팅 도전했다가 전멸 당한 아이돌ㅋㅋㅋ.jpg]
: 결제창까지 갔던 선아현도 오류맞고 끝ㅋㅋㅋ
테스타 전원 넋부랑자 됨 (캡처)
-세상엨ㅋㅋㅋ
-얘네 거의 오열하는데?ㅋㅋㅋㅋ
-이거 영상으로 보면 더 웃겨 테스타 미치려고 함
-마지막에 보내드릴 티켓이 없다고 사과하는 게 제일 웃김 무슨위튜버 사과 영상 썸네일인 줄ㅋㅋㅋㅋ
-서버가 잘못했네ㅠㅠㅋㅋㅋ
-그저께 자신만만했던 테스타의 SNS 선전포고(캡처)
└ㅋㅋㅋㅋㅋㅋㅋㅋㅋ
└현실: 전원광탈
-아니 너무 귀엽고 공감됨ㅋㅋㅋ
-우리 애들 겪은 게 나랑 너무 똑같아! 그거 근데 너희는 콘서트에 있겠지? 나는… 표가… 없는데…
└아아…ㅠㅠ
└취소표 꼭 성공하길…
테스타의 대환장 티켓팅 실패기는 너무 화려하게 망했기 때문에 웃긴 의미로 화제가 되었다.
특히 정성을 다한 것 같은 준비성에도 불구하고 대차게 망한 한 멤버에 대한 반응 쏟아졌다.
바로 박문대였다.
-근데 박문대는 진짜 할 만큼 했다 멀티 브라우저에 앱까지 켜볼 줄은 몰랐음ㅋㅋㅋㅋ
└그러게 웬만하면 잡았을 것 같은데 서버 때문에 운이 안 좋았지… 근데 충격받은 거 귀엽더라ㅎ
-박문대 닭발 때부터 그러더니 대충 할 것처럼 생겨서 왜 이렇게 모든 활동에 진심이냐고ㅋㅋㅋ
└침착한 척하다가 실패하면 고장나는 게 최고로 씹덕ㅠ
└일부러 그러는 듯
└존잘 메보가 뭐하러 그렇게까지하겠니 정병아…
-문댕은 잘못이 없다 잘못은 애프터파크 서버에 있다
-박문대 자기 조사한 거 신나서 공유할 땐 눈 반짝반짝 댕댕이였는데 망하니까 티벳 여우행ㅋㅋㅋ
└ㅅㅂㅋㅋㅋㅋㅋ
└역시 댕댕은 대외용일 뿐 찐은 티벳여우다 이모티콘만 나오면 곧대세는 뒤집힐 것
사람들은 팬들과 뒤섞여서 제법 오랫동안 박문대, 그리고 테스타의 귀여움에 대해 이야기했다.
팬들은 간만에 통한 훈훈하고 귀여운 분위기의 영업에 즐거워하면서도 동시에 거지같은 티켓팅 서버와 실패에 울었다.
그러자 의외의 효과가 나왔다.
테스타의 콘서트 관련 컨텐츠가 덩달아 관심을 슬쩍 흡수한 것이다.
-오 유닛 무대 위튜브 공개도 함?
뜨면 여기도 올려줘 아주사 생각나서 추억팔이하고 싶어짐
-신곡도 첫 공개구나 테스타 콘서트 준비 많이 했나 보닼ㅋㅋㅋ
└그래서 이벤트 망하고 더 멘붕했는듯ㅋㅋㅋ
└티켓 보내주려고 했는데 티켓이없어…!
└아 진짜 웃기네ㅋㅋㅋㅋㅋ 콘서트어떻게 하는지 기대하겠음ㅋㅋㅋ
그리고 그 분위기가 잦아들기 전에, 콘서트 트레일러 영상과 유닛무대 제작 리얼리티가 위튜브에 쏟아졌다.
심지어 VOD 서비스 공지까지 일찌감치 뜨며 넘치는 콘서트 수요를 잘 흡수했다.
분위기는 최고로 달아올랐다.
-티원이 계속 일을 한다 이게 무슨 일이냐
-콘서트 기대로 미칠 지경…
-본부장 바꾸길 잘했어ㅠㅠ
덕분에, 팬들은 심장이 터질 것 같은 기대와 흥분 속에서 콘서트 첫날을 맞이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