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6화]

"자, 활짝∼"

셔터 소리가 울렸다. 풀장 위에 앉아 있던 테스타가 어깨동무를 한 채 카메라를 향해 웃었다.

물론 나도 거기 포함되어 있었다.

"사진 잘 나오네. 고생했습니다∼"

"감사합니다!"

미국까지 온 김에 썸머 패키지(Summer package)를 촬영 중이다.

화보와 간단한 리얼리티 영상 컨텐츠를 함께 묶어 내는 그거 말이다.

그리고 이 영상 컨텐츠에서 '평소 그다지 보지 못했던 조합을 찍자'는 제작진의 요청 아래, 룸메이트가 배정되 었다.

그래서 박문대와 류청우가 같은 방을 쓰게 되었다는 뜻이다.

아, 마침 말까지 거는군.

"문대야, 수건."

"…예."

수건을 낚아채서 목을 닦아냈다.

속이 울렁거렸다.

'후.'

최대한 자제는 하는데, 이게 카메라에 잡힐지 안 잡힐지 모르겠다.

'…망할.'

나도 안다.

류청우 잘못은 없지.

근데 X발 생각나는 걸 어쩌라는 말인가. 저걸 볼 때마다… 떠오른다고.

덕분에 룸메이트 컨텐츠는 완전 초토화 수준이다. 방에선 대화도 제대로 안 하니까.

이게 내 한계였다.

모로 가든 불화설만 안 떴으면 좋겠는데. 일단… 일단, 한국 돌아가서 좀 떨어지면, 나아지겠지.

'…미치겠다.'

나는 쉬는 시간 선언이 떨어지자마자 자리에서 일어났다.

잠시 후에는 룸메이트끼리 무슨 워터 슬라이드까지 타게 만들 것 같으니, 그동안이라도 떨어져 있을 생각이었다.

근데 또 꼬리가 붙었다.

"저, 저기…."

"왜."

"이, 이거."

따라온 선아현이 테이크아웃 잔을 내밀었다. 김이 피어오르는 음료가 들어 있었다.

자기 손에도 한 잔 들려 있는 걸보니 스탭이 나눠준 모양이었다.

"…."

나는 잔을 받아들었다. 안 받으면 계속 말을 걸 테니까.

선아현은 음료를 준 후에도 떠나지 않고 애매한 거리에 앉았다.

하지만 말을 거는 대신, 슬쩍 내 눈치를 보면서도 자신의 음료를 홀짝거렸다.

조용했다.

"…."

어깨에 힘이 빠졌다.

나는 대충 화단에 걸터앉은 그대로, 뜨거운 음료를 입에 가져다 댔다.

'핫초코였네.'

더럽게 달았다.

무슨 상어 수족관을 가로지르는 워터 슬라이드를 타고 나니, 모여서 문답을 주고받는 컨텐츠가 진행되었다.

참을 만했다.

"좋아요∼ 그럼 질문을 뽑아보겠습니다!"

큰세진이 웃으며 통에서 질문을 뽑았다.

"음, '최근 가장 많이 친해진 멤버'라, 이거 저는 몇 표 못 받겠네요. 저는! 원래 친한 멤버니까∼"

빨리 끝내자.

"저는 이세진이요."

"헉! 문대 최근에 나한테 많이 의지하는구나? 정말 감동적이야! 저도 문대 뽑겠습니다∼"

순식간에 태세를 전환한 큰세진이 웃으며 등을 두드렸다.

"자, 그럼 우리 유진이는?"

"배세진 형이요! 저는 룸메이트 좋아요."

바로 다음 사람으로 넘어갔으니, 더 말하지 않아도 되겠지. 적당히 웃기게 대답했으니 이상해 보이지도 않을 것이다.

"하하하, 또 나야?"

웃으며 떠드는 소리가 또 한참 계속되었다.

몇 번의 질문이 지나가고…, 슬슬끝날 무렵.

마지막 질문이 나왔다.

"마지막 질문 카드입니다. '힘들었지만 극복해 냈던 인생 경험은?'입니다. 흠, 많은 사례가 떠오를 수있는 질문인 것 같습니다."

"…아∼ 마지막 치고는 좀 우울한가? 하나 더 뽑을 기회, 어떠세요?"

"…? 저는 뜻깊고 좋은 것 같습니다!"

김래빈의 대답과 함께 문답이 돌아갔다.

…류청우부터.

"음, 극복 경험. 사실 제가 양궁을 그만두게 된 게… 자의는 아니었어요. 어릴 때 가족 여행 중에 교통사고가 났었다는데,"

그만.

"그때 후유증 때문이었습니다."

…아니, 촬영 중이다. 다른 생각을하자.

"하지만 여러분을 만나서 이렇게 데뷔하고 활동할 수 있어서, 지금은 그냥 인생의 변환점을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고맙다 얘들아. 감사합니다, 러뷰어!"

"좋아요!"

"…이런 이야기 해도 괜찮겠어?"

"하하, 이런 이야긴 카메라 앞에서 처음 해보는 것 같은데, 팬분들이 보실 거니까 한번 해봤어."

"오, 청우 형 경험이 너무 세다∼우리 그냥 승복하고 새 걸 하나 뽑죠? 유진이도 하나 뽑아봐야 하니까!"

"저 뽑아요!"

토할 것 같다.

"…박문대!"

"잠깐. 화장실."

나는 소파에서 벗어나서 조명이 가득한 방을 나갔다. 연결된 어두운 복도를 달려서 화장실에 들어갔다.

"허억."

다행히 목구멍에 올라오는 건 없었다. 아니, 다행이 아닌가? 행위에 집중하면 그만 생각할 수 있….

"닥쳐."

나는 세면대에 물을 틀고, 머리를 박았다.

찬물이 편했다.

"…문대야!"

"문대 씨, 괜찮아요?"

"형!"

밖에서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자체 제작 컨텐츠라 다행이었다. 일반 방송이었으면 수습이 안 된다.

'나가야지.'

하지만 머리를 못 떼겠다. 좀 더있다가… 조금만 더….

"그만."

나는 물에서 머리를 들었다.

그리고 물기를 대충 닦아낸 뒤에, 화장실 문을 열었다.

스탭과 멤버 몇 명이 문밖에 서있었다.

"…죄송합니다. 좀, 속이 안 좋아서."

"아니에요. 괜찮으세요? 지금 촬영 가능해요?"

"…예."

큰세진이 끼어들었다.

"박문대. 여기 촬영 좀 미뤄도 괜찮대. 좀 쉬어야겠으면…."

어차피 똑같아. 그냥 해."

나는 남은 물기를 털어낸 뒤에, 촬영을 계속했다.

그리고 이번에는 큰 문제 없이 마무리 되었다.

"또 봐요 러뷰어∼"

하지만 깨달았다.

이러다 X발 큰일 나겠다는 것을.

'대책을 세워야 한다.'

본격적인 촬영들은 다 마무리된 저녁.

나는 류청우가 있을 방으로 돌아가는 대신, 호텔 뒤편 정원으로 가서 상황을 정리했다.

일단 내 상태는 대놓고 PTSD다. 더 논할 여지도 없다.

문제는 이게 시간이 지나면 가라앉을 줄 알았는데, 이 지경이 되니 과연 그때까지 얼마나 걸릴지 슬슬 회의감이 든다는 점이다.

'…답이 없군.'

혹시 내 회복에 두세 달 이상 걸렸다간 차후 테스타 활동에 문제가생길 지경이다.

그럼 정말 상태이상으로 죽어도 재시작이 가능하길 바랄 수밖에 없다.

'…다 끝장나도 괜찮겠다는 생각이드는 게 더 문제지.'

정신머리가 어떻게 된 건 분명했다. 나는 한숨을 쉬었다.

지이이잉-

그 순간, 주머니에 넣어둔 스마트폰에서 진동이 울렸다.

꺼내서 확인하니, 예상 못 한 이름에게 전화가 걸려오고 있었다.

[VTIC 청려 선배님]

청려 였다.

"…후 "

평소라면 그냥 안 받고 만다. 하지만 지금은 좀 받아봐야겠다.

이 X 같은 상태이상 보상을 받은적 있는지 안 물어볼 수가 없군.

"…여보세요."

전화를 받자, 약간 의아한 목소리가 대답했다.

-흠, 바로 받을 줄은 몰랐는데.

"예. 그렇군요. 용건은?"

-오랜만에 연락한 건데 너무 그러지 말고… 잘 지내요?

"용건 없으시면 제 용건부터 말합니다."

-하하, 그래요.

"혹시 무슨 환영 같은 거 본 적 없습니까?"

-…환영?

"미션 하면서요."

-….

전화 너머에서는 한동안 말이 없더니, 곧 대답이 들렸다.

-아, 무슨 문제 생겼구나.

"…!"

-성적? 회사? 아니지, 그런 건 아닐 테고… 좀 더 제어할 수 없는요소인가. 그럼 인간관계?

"…."

-인간관계구나.

뭐 이런 새끼가 다 있나.

-스트레스가 극심한 상황 같은데, 음… 내가 말하면 더 스트레스 받는다고 하니, 조언하기도 그렇고요.

내가 스트레스 때문에 환영을 본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그렇다면, 일단 이 새끼는 상태이상 보상은 받은 적이 없는 상태고.

조언이라.

"하세요."

-그래요?

어, 그래. 어차피 지금은 이놈한테 무슨 이야기를 들어도 아무 생각 안들 것 같다.

재시작 관련해서 떠들게 놔둬 보자.

그러자 전화기 너머에서 차분한 목소리가 들렸다.

-스트레스를 받을 필요가 없어요.

"…."

-어차피 처음으로 돌아가면, 지금하는 감정 소모는 아무 의미가 없거든. 그냥… 다음에는 제외하고 해야지. 그렇게 생각해요.

"…."

-어차피 없어지거든요.

…없어진다고.

나는 처음으로, 뚜렷하게 가정해보았다.

진짜 돌아갈 수 있다고 치자.

나도 실패하면 20살 박문대 생일날로 돌아간다고 가정해보자.

그래서 지금까지의 22살 박문대는 전부 없던 일이 되고, 처음부터 다시 만들어 보는 것이다.

한 번 해봤으니 확실히 편하겠지. 로또 번호라도 하나 들고 가면 처음부터 보안 괜찮은 곳에서 살 수 있다.

그리고 처음부터 더 잘할 수 있었다. 이미 다 아니까.

아주사 첫 촬영부터 데뷔 후까지 터졌던 온갖 피곤하고 민망한 일들은 미리 피하면서, 더 괜찮은 인원으로 그룹이 만들어지도록….

'아냐.'

…그러고 싶진 않았다.

웃기지만, 그렇게 해서 상태이상을 다 극복한다고 해도….

지금보다 마음에 들 것 같지가 않았다.

그 고생과 귀찮음이, 이 나이 어린 코찔찔이들과 함께 만든 모든 것들이… 어느새 내 성취라고 생각하게 됐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시 만든다고 해도, 절대 지금과 같은 의미일 수가 없었다.

물론 당장은 상황이 좀 거지 같았다. 그래도 이것 때문에 지금을 포기하기엔 수지타산이 안 맞았다.

머리가 좀 깨끗해졌다.

나는 입을 열었다.

"없어질 수도 있으니까, 더 잘 해봐야겠군요."

-…그건.

"조언 감사합니다, 선배님."

-후회할 텐데.

"뭐, 하겠죠. 누가 뭘 한들 안 하겠습니까. 그럼 이만 들어가 보겠습니다."

나는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이 새끼가 도움이 되기도 하는군.'

놀랍게도, 집 나갔던 이성이 청려와의 통화로 돌아온 것 같다.

그럼 객관적으로 현 상황에서 제일 좋은 선택을 찾아보자.

일단 이대로는 회복 기미가 안 보이면… 답은 하나뿐이지.

'건강 문제로 활동 중단.'

경험상 약 먹으면서 한 달쯤 혼자 은둔 생활을 하면 좀 괜찮아질 것이다. 불화설보단 이쪽이 낫다.

회사에서 거절하면, 뭐… 불화설을 감수하는 수밖에는 없다.

다른 놈들한테 대충 류청우 얼굴을 보면 사이코패스가 될 것 같다고 설명하면 박문대와 류청우의 접점을 최대한 없애줄 것이다.

서로 불편하겠지만, 요양하겠다는 놈 잡은 회사 탓이니 회사에 항의하라고 말해둬야겠다.

그래도 최대한 피해가 없는 쪽으로하고 싶으니, 웬만해서는 활동 중단을 회사 측에서 받아줬으면 좋겠다.

'이 정도인가.'

나는 정원을 벗어나서 방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좀 진정됐으니, 그놈과 인사 정도는 가능할 것 같았다.

'이 썸머 패키지 촬영이 끝날 때까지는 어떻게든 버틴다.'

다른 수가 없고, 어차피 내일 떠날때 엔딩 컷만 따면 끝이니까.

참으면 그만이다.

하지만 방문을 열고 들어가자 상상도 못 한 광경이 보였다.

"…왔어?"

류청우가 탁자에 넘치도록 술병을 올려둔 채로 의자에 앉아 있었다.

"…."

나는 천천히 뒷걸음질 쳐서 문밖으로 나간 뒤, 도로 문을 닫….

"카메라 다 수거해갔어. 마셔도 돼."

"…."

그 순간, 나는 내가 술을 간절히마시고 싶었다는 걸 깨달았다.

'망할.'

이 상황에서 술을 마셔봤자 좋을게 없다는 걸 알긴 한다. 근데….

"자."

나는 손을 뻗어 술병을 받았다. 그리고 위를 땄다.

그대로 입에 꽂았다.

그때야 내 주둥이가 벌벌 떨리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이빨이 딱딱병 입구에 부딪히는 소리가 났다.

"…."

나는 몸을 돌려 선 채로, 계속 술을 목에 들이부었다.

아무 생각도 안 들었다.

그때, 목소리가 들렸다.

"너 나한테 뭐 참고 있지."

"…."

"참다가 터뜨렸을 때 돌이킬 수 없는 상태가 될까 봐 그냥 참는 거야. 맞지?"

탄산이 새는 소리가 들렸다.

"그냥 말해. 난 이런 걸로 상처 잘안 받으니까."

그러니까 X발 내가 말해도 넌 모르는 상황이란 말이다.

이건…, 이건 도저히 상식으로 이해될 상황이 아니지 않은가.

심지어 이 새끼 잘못은 전혀 없다.

애초에 내가 이놈 이름도 몰랐던걸 보니, 안면도 별로 없는 먼 친척이다. 풍산 류씨들이 워낙 같이 뭘 많이 해서 얼결에 같이 갔겠지.

'그리고 애가 그렇게 큰 사고 났으니 저놈 부모님도 다른 일을 신경 쓸 겨를도 없었을 거고. 그러니까, 장례식에서도, 못 봤…'

나는 다시 술을 목에 꽂았다.

견딜 수가 없었다, X발.

새 병을 집어 들었다. 다시 침착한 목소리가 들렸다.

"…좋아. 그럼 네가 용납 가능한 선에서만 말해봐. 절대 말 안 할 테니까."

"…."

"회사니 병원이니 하는 소리도 안할 거야."

그 순간, 생각도 안 해본 소리가 입 밖으로 튀어 나갔다.

"부러워서."

"'?"

"부럽다고."

그리고 말하면서 동시에 깨달았다.

난 이 새끼가 부러웠던 것이다.

내가 류청우처럼 그날 여행에 따라가서 다쳤다면, 그래서 부모님이 날따라 앰뷸런스에 타느라 그 망할 펜션에 안 갔으면 하고.

단순히 그 사고가 연상돼서가 아니라, 이 새끼가 얄미웠다.

인생 최대의 행운을 시련으로 이야기하는 꼴을 보니 배알이 뒤틀렸던 것이다.

"부모님 멀쩡하고 하고 싶은 거 다하면서 살아서… 부럽다."

"…!"

나는 다 마신 술을 내려놓고, 숨을몰아쉬었다.

이딴 미친 소리를 지껄였는데…이상하게, 속이 시원했다.

류청우는 한참 대답이 없었다.

그리고 잠시 후에, 술병을 하나 더건넸다.

"그때 자다가 기억났어?"

"뭐?"

"래빈이한테 들었어. 네가 자다가 예전 기억 떠올리는 것 같다고."

"…."

"내가 교통사고 후유증 이야기 꺼낸 게… 배부른 소리 같았겠구나."

…아무래도 '박문대'의 부모님이 교통사고로 돌아가신 것으로 오해하는 것 같았다.

가족이 교통사고로 죽은 놈 앞에서,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징징댄 것처럼 느껴졌나 보다.

…비슷, 하긴 했다.

"미안하다, 그런 말 해서."

"사과할 건 아니잖아."

"그래도 사과 들으니까 기분 좀 괜찮잖아. 봐라, 너랑 오랜만에 대화하네."

"…."

"문대야. 좀… 편하게 이런 이야기해도 괜찮아."

류청우가 술병을 하나 더 땄다.

"사람이, 공포와 고통 앞에서… 원래 좀 화내고 남 탓도 하고, 그래도 괜찮거든."

"…."

"나는 겨우 양궁 그만둘 때도 그랬어. 아마 그런 진상이 없었을 거야."

류청우가 희미하게 웃었다.

"근데 넌 못 그러는 것 같다. 괜찮으니까 지금이라도 좀 해놔. 사람이 어떻게 매번 합리적으로 살겠어."

"…."

나는, 병을 내려놓았다.

손이 좀 떨렸다.

"…안 힘들게 살고 싶었는데."

그럭저럭 괜찮게 지냈다고 생각했다.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는 여기저기서 지원도 받았고, 손재주가 좋아서 생활비도 어떻게든 구해왔고.

그렇게 최악은 아니었다고 생각했지만, 사실 별수 없으니 참은 거지, 참 싫었나 보다.

"근데 그렇게 못 살아서 X 같다."

"…그래."

"좀, 버겁고."

새 술을 뜯었다.

이런 걸 말하고 나면 당연히 찝찝할 줄 알았는데, 의외로 괜찮았다.

술이 들어가서 일지도 모르겠지만… 어쨌든, 당장은 그랬다.

나는 천천히 목을 축였다.

취해서 확실하진 않지만, 그 후로도 맥락 없이, 단어나 문장만 늘어놓은 것 같다.

류청우는 특별히 끼어들지는 않았지만, 가끔 반응했다.

그러다가 마지막에서야 말을 꺼냈다.

"병원 이야기 안 하기로 했지만…그래도, 한국 돌아가면 상담은 받는게 낫겠어. 아현이랑 같이."

"…."

"정신이 이상해 보여서가 아니라, 힘들어 보여서 하는 말이야."

"그래."

"돈도 많이 받았는데, 널 위해서 좀 써."

"그래."

나는 술을 삼켰다.

"근데 아직도 너 보기 힘든데."

류청우는 잠깐 얼빠진 얼굴이더니, 곧 처음으로 소리 내서 웃었다.

"하하, 천천히 가자. 우리가 한두달 얼굴 볼 것도 아닌데, 좀 거리두고 시간 보내도 괜찮겠지."

"…그래."

맞는 말이었다.

"근데 문대야. 존댓말은 좀 써라. 너 갑자기 반말이다?"

"…!"

완전히… 잊고 있었다.

나는 요청대로 존댓말을 회복한 채로, 술을 계속 마셨다.

대화 화제는 약간 비껴갔고 마주 앉지는 않았지만, 그렇게 거북하지는 않았다.

그 술병들이 모두 룸서비스라 미친 가격이 청구되었다는 것을 다음 날 알았으나, 그다지 아깝진 않았다.

그리고 한국에 돌아온 뒤에는, 다행히 일정 중간중간 혼자 시간을 보낼 만한 새 스케줄이 기다리고 있었다.

미국에 오느라 미뤄뒀던 개인 출연이었다.

[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 147화]

"형 정말 죄송합니다. 제가 섣부르게 임의로 상황을 판단하기 위해 형이 공유해 주신 사적인 경험을 함부로…."

"괜찮다니까."

한 번만 더 들으면 다섯 번째다.

나는 김래빈의 사과를 약간 진절머리 내며 받았다.

'누가 보면 누명이라도 씌운 줄 알겠군.'

이놈이 한 일이라곤 '문대 형이 취침하다가 예전 일을 기억해 냈다고 말했다'라고 멤버들에게 알려준 것뿐이었다.

아마 그것도 겁에 질리거나 긴장해서 했을 확률이 높았다.

그걸 토대로 내 지랄발광을 어떻게든 해석해서 대응해 보려고 했던 것일 테니 말이다.

'…나름 잘 감췄다고 생각했는데.'

착각이었다.

한국 와서 썸머 패키지 촬영분을 확인해 보니, 내 분위기는 더럽게 어색하고 우중충했다.

'나라도 뭔 일 날까 봐 취급 주의했을 몰골이었어.'

이놈들이 걱정하거나 긴장하는 기색이 간간이 카메라에까지 잡혔다.

촬영이 무사히 진행된 건 전적으로 혼자 두 배쯤 더 떠든 큰세진 덕이었다.

'…류청우는 자제했지.'

촬영 초반부터 내가 본인에게 거북함을 느낀다는 것을 깨달은 게 분명했다.

나는 침음성을 참으며, 김래빈에게 말했다.

"그러면 나야말로 사과해야지. 분위기 흐려서 미안하다."

"예'? 절대 아닙니다! 애초에 촬영이 연속적으로 진행되는 상황에서 발생한 돌발상황을 사과하실 필요가…."

"그래. 같은 의미로 너도 사과할필요 없어."

"…!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왜 사과할 필요가 없는지' 납득을 시켜주니 드디어 김래빈이 말을 멈추고 인사 후 나갔다.

"들어가 보겠습니다. 편안한 휴식시간 보내시길 바랍니다."

"그래. 너도."

즉시 방이 조용해졌다. 룸메이트 하나는 스케줄로 부재중이고 남은 하나는 취미가 얌전한 덕분이었다.

'세상이 고요하군.'

나는 한숨을 쉬며 침대에 몸을 묻었다.

그러나 옆 침대에서 또 소리가 났다.

'…조용하다고 한 지 3초도 안 지났다.'

배세진이었다.

"…좀, 괜찮아?"

"예? 예."

뻔한 대답이지만, 실제로도 내 상태는 제법 안정적이었다.

막판에 술 마시고 좀 털어서 그런지, 아니면 일 터졌던 낯선 나라를 떠나 익숙한 숙소의 방으로 돌아와서 그런지는 모르겠다.

어느 쪽 덕이든, 직전처럼 못 견디겠다는 느낌까진 아니었다.

그냥 문득 기억나면 식은땀이나 나는 정도다. 그래서 나는 흔쾌히 설명을 덧붙일 수 있었다.

"이제 촬영 방해할 일은 없을 겁니다. 걱정 마세요."

"그, 그런 걱정은 안 했어!"

배세진은 소리를 빽 지르더니, 자기가 놀랐는지 읽던 책을 도로 휙 치켜들었다.

"…!"

뭐 어쩌라는 거지.

어쨌든, 그래서 썸머 패키지 촬영분을 확인한 뒤 바로 오늘을 체크해놨다. 바로 썸머 패키지가 시중에 풀리는 날 말이다.

'혹시 모르니까.'

나는 스마트폰을 들어서 드디어 쭉모니터링을 개시했다.

"…흠."

혹시 했는데, 다행히 별문제는 없었다.

편집의 마법을 거치고 나자, 내 태도가 적당히 소극적인 정도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반응도 나쁘진 않았다.

-문대 진짜 몸 안 좋았나보다 티 안 내려고 노력하는 게 보여서 더 마음 아파ㅠㅠ

-박문대 눈깔 동태 다 됐네 의욕박살 초심 박살 으휴

└응 아냐 X나 아파 보이는데 무슨 개소리

└아파서 덥라에도 못 나온 애한테 못 하는 말이 없어 미친 새끼가

-애들이 문대 챙겨주는데 진짜 마음 따뜻해짐 테스타 영원해

-썸패에서 조곤조곤 얌전 댕댕쓰(문대 GIF)

'역시 날카롭게 리액션하느니 리액션 자체를 줄이는 게 맞았어.'

최대한 다른 멤버나 상황에 반응과 내 감정 표출을 줄인 쪽이 올바른 선택이었던 것 같다.

물론 드문드문 '박문대 초심 어딨어' 같은 류의 어그로 계정이 보이긴 했지만, 호응을 얻지 못하고 두들겨 맞은 뒤 사라지는 추세였다.

단발성인 데다가 촬영 전에 W라이브까지 빠졌던 덕에, 정말 아팠다는 쪽으로 여론이 잡힌 덕이었다.

…약간, 양심에 찔리긴 했다.

'특별히 아팠던 건 아닌데 말이지.'

아프다는 변명을 이미 한 번 써먹었으니, 앞으로 반년쯤은 몸 관리를 정말 제대로 해야겠다.

또 아프면 그때부턴 단발성이 아니게 되고, 그럼 괜한 소리가 제대로 나올 수도 있었다.

이런 썸머 패키지들은 팬들만 구매해서 보는 편이라 대충 넘어간 것 같지만, 앞으로는 알 수 없다.

'조심해야겠군.'

나는 어깨를 으쓱하며 스마트폰을껐다.

깔끔한 인터넷 상황을 보니, 당시에 좀 무리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때 약속한 것도 지키는 중이다.

삐삐비빅

[상담시간]

마침 스마트폰에서 울리는 알람을 끄자, 또 슬그머니 배세진이 말을 걸었다.

"…가게?"

"예."

"잘 생각했어."

"뭐, 그렇죠."

선아현이 상담받으러 가는 시간에, 나도 상담을 받기로 한 것 말이다.

덕분에 오늘도 스케줄에서 돌아온 선아현과 맞춰서 외출했다.

"무, 문대야. 끝나고 나올 때 연락하자…!"

"어… 그래 "

그런데 솔직히 말하자면, 큰 소용은 없었다.

"그럼, 최근에 하신 가장 큰 걱정이 어떤 걸까요?"

"…남들 다 하는 걸 저도 하죠."

"그래요∼ 어떤 예시가 있을까요?"

"음, 일을 제대로 할 수 있을지에 대한 걱정도 있고."

상담사에게 '상태이상 해결 못 하면 뒈지는데 이 새끼가 이상한 환영까지 보여줘서 PTSD 증상이 발작처럼 튀어나온다'고 말할 수는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다.

그냥 보여주기 식으로 하는 것이다.

"문대 선생님. 지금도 충분히 잘하고 계시거든요. 혹시, 본인한테 좀더 너그러워도 괜찮겠다는 생각은 해보신 적 없나요?"

"…약간은, 하죠."

뭐, 그래도… 전문가에게 털어놓는다는 감각 자체가 주는 안정감이있긴 했다.

곤두선 신경이 좀 수그러들고, 내면의 침착함이 견고해지는 느낌.

여기에 국내 활동기가 아닌 덕에 그렇게까지 과하진 않은 스케줄이 바탕이 되자, 드디어 '그것'을 재시도해 볼 생각이 들었다.

상담을 마치고 돌아온 숙소의 화장실 안.

나는 숨을 들이켰다.

"…상태창."

등골에 소름이 쭉 돋았지만, 때려치울 정도는 아니었다.

나는 그렇게, 오랜만에 상태창을 확인했다.

…새 상태이상을 제대로 확인하기 위해서.

['관객이 아니면 죽음을']

: 정해진 기간 내로 20만 명 이상의 관객과 만나지 못할 시, 사망달성 인원 : 2,219 / 200,000

남은 기간 : D-339

'미쳤나.'

이번에도 수치가 양심이 없다.

'이건 무조건 해외 투어를 해야 하는 숫자다.'

그나마 행사 덕에 지금 이천이 찍혀 있긴 한데, 이것도 한계가 있었다. 1년 내내 행사가 있는 것도 아니니까.

계획대로라면 가을쯤에는 국내 콘서트를 시작으로 투어를 할 것 같으니 시기상의 문제는 없긴 한데… 이젠 규모의 문제였다.

아예 일찌감치 포기할 수준은 아니고, 행사 등등 합치면 얼추 도전 해볼 만한 정도다.

'결국 앨범을 잘 내는 수밖에 없군.'

다시 원론적인 이야기로 돌아왔다.

…그래도 이게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니, 좀 평온이 돌아오긴 했다.

'대상이 아닌 게 어디냐.'

나는 약간 후들거리는 손으로 상태창을 돌려보내려 하다가, 문득, 손을 쓸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머리가 제대로 안 돌아가고 있다는 뜻이다.

'…정상이 아니군.'

상태창이 사라졌다. 나는 세면대에 또 고개를 처박고 싶은 충동을 참았다.

그리고 생각했다.

'…대체 뭘 바라는 거야.'

이 상태창이라는 게 왜 저러는 건지 도저히 모르겠다.

첫 보상으로 박문대… 그러니까, 진짜 박문대의 사정이 떴을 때나, 두 번째로 청려의 사정을 구구절절 알려줬을 때는 좀 달랐다.

나는 그것들이 현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에 대한 힌트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내가 미국에서 본… X발,아무튼, 그건, …아니지 않은가.

어떤 해명도, 어떤 도움도… 아니지 않은가.

"…후 "

그만하자.

나는 심호흡을 하고, 머리를 비웠다.

어차피 더 생각해 봤자 답이 나오는 것도 아니다. 그냥 할 일을 하자.

그게 최고였다.

'우선, 당면한 가장 큰 스케줄부터.'

바로 내 개인 스케줄이다. 류청우랑 술 처마시고 털었을 때부터 떠올렸던.

'혼자 일하는 시간이 좀 있는 것도나쁘지 않지.'

…사실, 한국에 오고 나서 류청우와 각 잡고 대화한 적이, 없다.

인사나 가벼운 잡담, 카메라 앞에서 대본 정도는 이제 큰 무리 없이 말하는데 그 이상은… 전적이 있다보니 섣불리 시도하기 좀 그렇단 말이지.

'거리두기를 이걸로 해야겠군.'

나는 기껍게 개인 스케줄 일정을 받아들였다.

-문대야, 괜찮겠어? 너무 빠르지않아?

-괜찮습니다.

그리고 실은, 다소 기대가 되는 부분도 있다.

지난번에 찍었던 스탯이 바로 이 예능을 위해서였기 때문이다.

'오히려 생각보다 늦게 하게 됐어.'

기분 전환으로 도전하기 딱 좋은 상황이었다.

나는 쓸데없는 찌꺼기를 머릿속에서 몰아내고, 깨끗한 사실만을 생각하며 픽 웃었다.

이건 노래 부르는 예능이다.

그리고 현재 내 가창 스탯은…

S-였다.

내가 만든 가수님

최근 MBS에서 크게 히트를 치고있는 예능이다.

정체를 감춘 유명인들이 나와서 노래를 부른 뒤, 서바이벌로 우승자를 뽑는다는 이 프로그램의 포맷은 어쩌면 다소 식상했다.

당장 MBS 당사에서도 그 포맷으로 대히트를 쳤던 종영 예능이 있었다.

하지만 이 내가 만든 가수님 에는 독특한 차별점이 있었다. 바로…출연진들이 직접 나오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그렇다. 그들은 홀로그램으로 스테이지에 등장했다.

그것도 자신을 그대로가 아니라, 본인들이 설정한 '캐릭터'로.

출연진들은 외양부터 성격, 취향, 나이까지 프로필을 만들어서, 마스코트 가수 캐릭터를 제작했다.

그러면 대기업의 지원을 받은 홀로그램 기계가 스테이지에 그 캐릭터를 구현해 줬다.

무대 아래 링크된 출연진의 모션까지 구현하는 최첨단 테크놀로지의 맛에 시청자들은 신기해하면서, 익숙한 포맷 덕에 위화감 없이 빠져들었다.

그래서 여기 채널을 뒤적거리며 돌리던 고등학생도 이 예능의 익숙한 스테이지 화면을 보고 리모컨을 멈췄다.

"오∼ 짭가수∼"

속된 별명을 부르며 킬킬대던 남고생은 별생각 없이 화면을 주시했다.

그의 누나는 테스탄지 테스턴지 하는 놈들 본다고 자기 방에 들어갔다.

아마 한동안은 뺏길 걱정 없이 편하게 TV 앞에 누워있을 수 있을 것이었다.

마침 프로그램은 중간광고가 끝나고 막 2부를 시작한 참이었다.

[상상력이 현실로 이루어지는 서바이벌 무대!]

[내가 만든 가수님! 그 다섯 번째 무대에 올라올 '가수'가 지금! 준비 되었습니다!]

[와아아아아!]

야구선수부터 삼각김밥까지, 종을 가리지 않는 스펙트럼의 예측 불가 캐릭터가 뜬금없이 등장하는 신은 언제나 꽤 재밌었다.

'이제 공룡 한 번 더 나올 때 됐지∼ 아 노잼 나오지 말아라!'

지난번 우승자인 붉은 외눈박이 앞발 짧은 공룡, '티라노사우론'을 떠올리며 고등학생은 히죽 웃었다.

MC가 활기차게 외쳤다.

[이번 가수∼ 등장합니다!]

[그의 이름은…]

두구두구, 드럼롤과 함께 스포트라이트들이 어지럽게 무대를 오갔다.

그리고, 무대 위로 키 큰 인영이 스르르 구성되어 나타나기 시작했다.

하얀 예식용 정장을 입은 맵시 좋은 몸 위로 흰 면사포가 덮여 있었다.

그 뒤로 하얀 나비들이 스르륵 날아가는 홀로그램이 인영을 휘감고사라졌다.

'아 또 인간이야∼'

라고 고등학생이 야유하려던 찰나, 클로즈업되는 면사포 너머가 보였다.

얼굴이 있어야 할 자리에는, 대신화려한 색색의 꽃들이 부케처럼 자리 잡고 있었다.

"헐."

[환영해 주십시오, '5월의 신랑'입니다∼]

인위적으로 삽입한 것 같은 환호와 박수가 화면에서 울렸다.

[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 148화]

관객들의 박수와 함께, '5월의 신랑'이라는 이름의 가수 캐릭터 홀로그램 앞에 마이크가 나타났다.

스탠딩 마이크였다.

현실에 존재할 일 없는 대리석 스탠드 마이크에는 화려한 꽃 덩굴과흰 레이스가 얼기설기 엮여 있었다.

'5월의 신랑'은 정중하게 허리를숙였다.

그리고 하얀 장갑을 낀 두 손으로 스탠드 마이크를 잡았다.

[과연 '5월의 신랑'은 어떤 목소리를 들려줄 것인가!]

화려한 꽃 부케의 오브젝트 헤드가 주는 충격에서 겨우 벗어난 고등학생은 발바닥을 턱턱 쳤다.

"컨셉충 뭐냐."

여자애들한테 멋있어 보이려는 것 같아서 슬쩍 반감이 들었다.

하지만 웨딩의 화려하고 청순한 이미지를 뚫고 나오는 약간 으스스하고 기이한 느낌이 재밌었다.

'가오 잡는 놈들이 원래 노래는 X니 못하는데.'

고등학생은 그 호감을 애써 부정하며 화면을 봤다.

반주가 시작되고 있었다.

영롱한 두 대의 피아노 소리와, 밝고 경쾌한 브라스 소리가 드럼 박위로 피어올랐다.

-가장 아름다운 마음으로

당신에게 건넬 나의 고백

"어?"

아주 유명한 청혼가였다.

본래 총 10명이 나오는 1차 예선전에서는, 이렇게 캐릭터 컨셉에 충실한 곡을 부르는 것이 룰이었다.

그래서 당연히 예측 가능한 선곡이었으나, 단 하나 시청자가 예측하지 못한 지점이 있었다.

노래를 정말 잘했다.

-꽃 핀 5월에

흐드러지는 우리의 청춘

더없이 선량한 마음으로

당신에게 드릴 나의 사랑

단정하고 청초한 목소리가 낮고 풍성한 음을 냈다.

미친 듯이 전율이 이는 고음이나 테크닉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 곡에 더없이 어울리는 목소리였다.

마치 이 곡은 원래 이렇게 불러야하는 것처럼 들리는.

-사랑이 들리면

나를 생각해줘요

오늘도 내일도

그대를 사랑해요

삐걱거리거나 아쉬운 부분 없이, 이대로 계속 듣고 싶은 아름다운 노래 였다.

그리고 예선전에서는 1분 30초의 시간만 허락되었기에, 딱 감질날 시점에 곡이 끊겼다.

[달콤한 청혼의 노랫소리]

박수와 자막 너머로, 곡을 마친 '5월의 신랑'은 다시 한번 정중히 허리를 숙였다.

"오올."

좀 하네?

고등학생은 고개를 까닥거렸다. 아마 배우나 모델은 아니고 가수인 것같았다.

'발라드 가순가?'

폭발적인 가창력은 아니었지만, 무난히 1차는 통과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울림이 풍성한 게, 내공이 느껴진달까?]

[너무 아름다운 목소리였어요∼]

[확실히 가수신 것 같습니다.]

심사위원으로 초청된 음악인들이 뭐라도 말을 하든 '5월의 신랑'에게선 특별히 반응이 없었다.

그냥 단정한 자세로 서서, 질문에 고개를 기웃거렸을 뿐이다.

즉, 부케가 흔들거렸다는 뜻이다.

"아 컨셉충 아 씨."

예능 출연하는 옛날 가수 아니냐며, 고등학생은 진절머리를 냈다.

동작이나 분위기가 그럴싸해서 자꾸 몰입되는 게 자괴감이 들 지경이었다.

[잘 들었습니다∼]

이윽고, 심사평을 다 들은 '5월의신랑'은 무대 위에서 스르륵 사라졌다.

그리고 이어진 1차 무대들은 한두개 빼고는 고만고만했다.

중간광고 이후 발표한 본선 진출자의 명단이 뻔했다는 뜻이다.

[본선에 진출할 세 번째 가수는…'5월의 신랑'입니다!]

'그럴 줄 알았지.'

고등학생은 6명의 진줄자를 한 명빼고 다 맞춘 자신의 안목에 스스로 감탄했다.

'나 진짜 쩐다.'

이때까지만 해도 고등학생의 머리에 '5월의 신랑'의 다음 무대에 대한 기대는 없었다.

1차에서 보여준 게 한계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음색빨로 미는 놈에 천원 건다.'

"…?!"

그리고 잠시 뒤.

그의 천원은 무참히 사라진다.

[아아아아악!]

고등학생은 입을 떡 벌렸다.

…일이 이렇게 된 것에는 몇 가지 배경이 있다.

6명이 진줄한 본선에서는 지정곡을 불러야 했다. 그래서 출연진들은 제작진이 제시한 세 곡 중 하나를 본선용으로 미리 연습해 왔다.

원래는 어떤 캐릭터가 어떤 곡을 선곡했는지 보는 맛, 그리고 같은 곡을 선곡한 출연진들을 비교하는 재미가 있었다.

다만, 이번에는 이변이 일어났다.

무려 4명이 같은 곡을 고른 것이다.

바로 '겨울밤'이라는 90년대 발라드 명곡이었다.

그리고 '5월의 신랑'도 이 확률을 피해 가지 못하고, 해당 곡을 선곡했다.

4명이나 되는 탓에 편곡도 겹칠수밖에 없는 상황.

하지만 '5월의 신랑'은 약간의 편법을 썼다.

-이 새벽에 취하여

노래를 불러도

겨울밤은 여전하네

눈바람이 세차네

그는 이별의 슬픔이 애절했던 발라드곡을 비장미가 넘치는 뮤지컬 스타일의 고급스러운 오케스트라로 편곡해 버렸다.

무슨 뜻인가 하면, 클라이맥스의 고음이 무지막지했다는 뜻이다.

-눈물 흘린 밤이 가면

눈 시린 아침이 오면

창가의 햇살로 다시

찾아올 나를

원래는 저음으로 마무리되는 음도 쭉 끌어올려서 초고음으로 당겨 버렸다.

다정하고 조곤조곤한 첫 곡과 대비되는, 넘치도록 휘몰아치는 고음과 심지 단단한 발성이 충격적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라이브 무대에서 이런 성대묘기 대행진은 유구하게 잘 먹혔다.

[와아아아아!]

끝난 뒤 박수와 환호가 첫 무대와 비견될 바가 아니었다.

본래는 여운을 망칠 만큼 과한 고음도, 웅장한 편곡 덕에 전율만 주고 끝났다.

콜로세움에서 1:3 맨몸 결투로 승리한 꼴이었다.

"개쩐다."

고등학생은 육성으로 감탄했다.

예능이나 나오는 퇴물가수라고 추측했던 것은 어느새 '시대에 밀려빛을 보지 못하는 진짜배기 가수'로 탈바꿈되었다.

'보정 감안해도 탑티어에 비비는거 아니냐?'

저 정도면 컨셉충이어도 인정이다.

고등학생은 고개를 끄덕였다.

예술병 걸린 인디 가수나 저런 걸로라도 멋있어 보이려는 아재로 추측을 구체화하고 있는데, 문득 뭐가 보였다.

자신의 생물학적 연장자 여성이었다.

"…너 뭐 하냐?"

고등학생의 누나, 김래빈의 팬은입을 떡 벌린 채로 TV를 보고 있었다.

아무래도 '5월의 신랑'이 노래를 부르는 것을 오며 가며 들은 모양이다. 아니면 듣다가 너무 대단해서 뛰쳐나왔거나.

고등학생은 괜히 으쓱해져서 말했다.

"크, 봤냐? 이런 게 진짜 가수지!"

누나도 결국 그 춤추는 비리비리한남자 아이돌들이 아니라 이 진가를 알아본다고, 고등학생은 오랜만에 나타난 공감 거리에 뿌듯해했다.

김래빈의 팬이 외쳤다.

"저거 문대잖아…!"

"…?!"

고등학생은 잠깐 귀를 의심했다.

박문대라면… 누나가 좋아하는 남자 아이돌 중 하나였다!

"개소리 마세요, 저런 목소리 아니었다∼ 저렇게 부른다고?"

"그냥 들어도 문대라고 멍청아!"

"아 X나 쪽팔리게 왜 그러냐고!"

남매는 서로 삿대질하며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 대화는 인터넷상에서도 그대로 이루어지고 있었다.

"잘 들어가세요, 문대 선생님∼"

"감사합니다."

이번 주 상담을 끝내고 돌아오는길.

선아현은 화장품 단독 광고 촬영 때문에 이미 문자로 인사 후 촬영장으로 떠났다.

[문대야 어제 스케줄 때문에 네가 출연한 내가 만든 가수님 모니터링 못 해서 아쉬웠는데, 나는 오늘도 스케줄이 촘촘해서 나중에야 보게 될 것 같아 더 아쉬워. 내가 어떻게든 시간 내서 꼭 보고… (더보기)]

'…이번에도 장문이군.'

거의 편지다.

나는 '정말 괜찮으니 쉴 때 쉬어라'는 내용을 넣어 적당히 답장했다.

'그러고 보니, 확인하기 좋은 타이밍인가.'

내 무대… 그러니까, 내가 만든 '5월의 신랑'의 무대 말이다.

어젯밤에 본방송이 끝나자마자 인터넷에 클립도 업로드 되었을 테니, 슬슬 충분히 반응이 쌓였을 것이다.

'지금 봐두자.'

나는 위튜브에 접속했다.

[신부를 찾습니다. I '5월의 신랑'. 5월의 어느 날 I 내가 만든가수님 예선 무대 I 202X0611]

다행히 두 무대 모두 조회수가 꽤괜찮았다.

'첫 무대는 좀 적을 수도 있다고생각했는데.'

아무래도 특별히 고조가 없는 곡을 불렀으니 말이다.

하지만 캐릭터의 조형에 더 관심을 가진 사람들이 은근히 많았나 보다.

-X발 부케 헤드 미쳤나 개좋아ㅠㅠ

-솔직히 꽃대가리 좀 무서운데 노래 부르는 순간 다 날아가고 미남으로 합성됨

-청혼 감사합니다 식장은 어디인지?

-캐릭터 몰입한 것 좀 봐 꽃이 귀엽고 잘생길 일이냐고ㅋㅋㅠㅠㅠ

-하얀 정장에 면사포? 꽃 달린 스탠드 마이크? 미남이 아니면 용납할수 없는 조합임 고로 미남일 것이다

"오…."

설정한 캐릭터랑 어울리는 곡이라그런지 생각보다도 몰입한 사람들이종종 보였다.

'재밌다면 됐지.'

나는 어깨를 으쓱하고, 다음 영상을 확인했다. 본선에서 부른 '겨울밤' 영상에 달린 댓글은 이런 기조였다.

-진짜 X나 잘한다 속이 뻥 뚫림

-하루종일 틀어놓고 있다 음원 내줘ㅠㅠ

-다음 주 우승각 봅니다∼

-누군지 참∼ 궁금하네요^^ 움직임만 봐도 가슴이 콩딱거리게 잘생긴것이… 참 기대가 됩니다…

-머리는 괴상한데 노래는 천하일품입니다.

-신부가 요절해도 참으로 저승까지 가서 찾아올 명가수 신랑이다.

…아무래도 어르신들의 취향에 잘 맞았나 보다.

'좀 예스럽게 편곡해서 그런 건가.'

아무튼, 전체적으로 호평과 기대로 댓글이 넘실거렸다.

나는 등을 폈다.

'전략이 괜찮았나.'

첫 번째, 두 번째 무대가 같은 화에 방영된다는 점을 고려했다.

'어차피 한 화 안에 다 나오면 둘다 첫인상이 된다. 그럼 빌드업 구성이 맞지.'

첫 무대가 약해도 한꺼번에 뒷무대까지 보게 되니 말이다.

그래서 첫 무대는 약간 약해도 캐릭터를 살리는 쪽으로 하고, 강한 편곡을 뒤로 뺐다.

'잘 통한 것 같아 다행이군.'

나는 피식 웃었다.

그러나 무대 반응을 최신순으로 정렬하면, 약간의 갈등이 드러났다.

추려내 보면, 이런 식이다.

-박문대 맞는 것 같은데…

-박씨도 노래를 잘하긴 하지만 아닌 것 같아요 음색도 다르고∼

-바보들아 아이돌들 이런데 나오면 일부러 정체 감추려고 웃긴 캐릭터 만듬 대놓고 멋진 캐릭터 만든거 보니까 아이돌 아님ㅇㅋ?

└그 발상을 역으로 찔러서 아이돌일지도?

└노래 잘하는 아이돌 많긴 한데… 흠 아주사에서 본 박문대가 이 정도수준 아니었음

└미국 프로그램에서 부른 거 한번 보세요 진짜 잘해요 전 박문대맞는 듯 (링크)

└오 잘하긴 하는데 목소리가 다름 신랑이는 아닌 듯

이런 식으로, 박문대라고 의심하는 의견을 낸 사람들이 소수파로 밀리는 판이었다.

그나마 '박문대'가 노래를 잘하는 것은 제법 알려진 덕에 특별히 비웃는 분위기는 아니라 다행이었다.

"흠."

노린 상황은 아니다.

사실 이렇게까지 '5월의 신랑'이 박문대라는 추측이 힘을 얻지 못할줄은 몰랐다.

물론 추리하는 재미와 긴장감을 유지하면 더 좋을 것 같아서 일부러 목소리를 좀 다르게 내려고 노력하긴 했다.

평소 그룹에서 부를 때하고는 발성도 좀 다르게 해봤고.

'…그래도 긴가민가 헷갈리는 수준으로 잡으려고 했는데.'

박문대가 노래를 부르는 것을 많이 들어본 사람들은 눈치챌 수준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캐릭터가 너무 강해서 그런가, 여론이 예상보다도 완고했다.

'적당히 이족보행 고양이나 할 걸그랬나.'

나는 마지막까지 후보에 있던 괴도 고양이를 떠올리며 살짝 후회했으나, 곧 정리했다.

'이쪽이 더 마음에 들었어.'

사실 이건, 상담하면서 받은 조언을 좀 의식해 봤다.

-객관적으로 가장 좋은 선택 말고, 문대 선생님이 좋아하는 쪽을 고르는 연습을 해보는 건 어떨까요? 일주일에 한두 번이라도요.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가'에 대해서 리스트를 작성해보는 게 이번에 드리는 숙제예요.

뭐 전문가가 그렇다니, 한번 스케일 크게 해본 것이다.

'이번 상태이상과 크게 관련 있는 문제도 아니니 괜찮겠지.'

아무래도 고양이 발보단 인간 팔다리가 내 움직임을 따라 하는 게 보기 편했다.

'사람들도 좋아하는 것 같고.'

나는 어깨를 으쓱하고는, 도착한 숙소 앞에 내려서 발을 옮겼다.

'다음 주에 캐릭터 프로필이 공개되지.'

나는 미리 제작한 프로필을 훑으며, 혹시라도 수정하고 싶은 부분이 있는지 확인했다.

그와 동시에, 도착한 숙소 문을 열고 들어갔다. 마침 거실에 앉아 있던 사람이 아는 척을 했다.

류청우였다.

"왔어?"

"네. 형."

"거기 아이스크림 사놨다. 먹어."

류청우는 가볍게 냉장고를 가리키며 말하고는, 앉아 있던 소파 밑에서 자연스럽게 일어나서 몸을 돌렸다.

그 순간 알았다.

'지금 자리 피해주는 거냐.'

본인이 거실에 있으면 불편할까 봐 일어난다. 내가 거실에 마음 편히 있을 수 있도록 말이다.

'…허이고.'

어쩐지 어깨에 힘이 빠졌다. 남아있던 거북함은 솟은 매듭이 풀리는 것처럼 수그러들었다.

나는 냉장고를 열며, 류청우를 불렀다.

"형도 아이스크림 드시죠. 무슨 맛드릴까요."

"…아, 그럴까?"

"네."

소파에 다시 걸터앉은 류청우가 씩웃었다.

"그럼 난 오렌지 맛으로 줘."

그러자 뒤에서 누군가 신나게 달려왔다.

"저도 아이스크림 주세요!"

'어디서 튀어나왔냐.'

본능적으로 문법이 자연스러워진 차유진에게도 아이스크림을 하나 던져준 뒤, 소파로 가서 앉았다.

그리고 함께 내가 만든 가수님 재방송을 시청했다.

"머리가 꽃이에요! 멋져요!"

"고맙다."

"너 진짜 노래 잘 부른다. 문대야."

"별말씀을요 "

그다지 불편하지 않았다.

내 무대가 전부 끝난 순간, 류청우가 물었다.

"다음 화, 방금 촬영하고 온 거지?"

"네."

"어땠어?"

"…재밌었죠."

나는 피식 웃었다.

다음 주 방영분이 상당히 기대됐으니까.

[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 149화]

내가 만든 가수님 의 준결승전과 결승전이 펼쳐질 다음 화가 방영되기 전주.

오랜만에 등장한 인상적인 홀로그램 캐릭터 덕분에, 인터넷상에서는 가볍게 이야기가 오가고 있었다.

-요새 쓸만한 캐릭터 소재 다 떨어졌는지 온갖 운동선수 뇌절이나보다가 간만에 신박한 거 보니 재밌네요

-이번 주에 프로필이랑 컨셉 아트나오지? 기대된다 나 공중파 보고 가슴 뛰는 거 너무 오랜만이야 당혹스럽다…

-음색 너무 좋아서 놀랐는데 그다음 무대는 아예 찢어발겨 놓더라 부케 머리에 두근거릴 일인가

-봄날 신랑을 그대로 상징화 해놓은 듯한 첫 무대와 비극의 미가 살아 있는 다음 무대까지. 모두 좋았습니다. (링크)

-노래 진짜 잘한다 이건 무조건우승이ㅋㅋㅋㅋ

아쉬운 부분 없이 전방위로 퀄리티가 좋았기 때문에 당연히 호평이 대세였다.

그리고 물론, 박문대의 팬들은 대부분 짐작했다.

'5월의 신랑'이 박문대일 것이라고말 이다.

-솔직히 빼박이다

-빠인데 모르면 고막이 없는 거임

-아니 실력 더 늘었더라 그 미국 프로 때부터 확 목소리 질 좋아진 티 났는데 대체 어떻게 이게 가능한거지

└천재라는 게 학계의 정론

-솔직히 캐릭터도 누가 봐도… 그 취향임 보자마자 혹시 했는데 목소리 들으니 역시나ㅋㅋㅋㅋ

└ㅇㄱㄹㅇ마법소년 만든 짬 어디 안 갔다고 진짴ㅋㅋㅋ

하지만 수면 위로 나오지는 않았다.

하도 지랄 맞은 여러 견제를 겪어본 덕에, 일단 여론과 다르면 적극적으로 주장하지 않는 기조가 잡혔기 때문이다.

어차피 정체가 드러나면 끝날 일, 팬들은 그 후 반응을 기대하며 자기들끼리도 발언을 삼갔다. 간혹 캡처해서 조롱하려 드는 미친놈들을 피하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대망의 내가 만든 가수님 후반부 방영일.

'5월의 신랑'을 기대하는 이 사람들은 오랜만에 해당 예능 프로그램의 본방송을 기다렸다가 시청하기도했다.

그중에 이 남매도 있었다.

"봐라. 박문대다."

"응 망상 오졌죠∼"

바로 김래빈의 팬인 대학생과 그녀의 남동생이었다.

남동생은 깐족거리자마자 누나의 욕설이 날아올 것을 각오했으나,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후"

대학생은 한번 참더니, 그냥 비웃음으로 넘겼다.

결과를 아는 자의 자신감이었다.

"너 뭐냐?"

"어 됐어. 방송이나 봐."

괜히 열받은 고등학생은 씩씩거리며 TV로 얼굴을 돌렸다.

그래도 방송이 시작되는 순간, 남매는 싸움을 잊었다.

남은 출연진 3명과, 지난 회차 우승자 1명이 치르는 준결승전의 첫경기부터 '5월의 신랑'이 나왔기 때문이다.

[웅성거리는 관객들]

[야∼ 기대되는데?]

[어떤 무대를 보여줄지 모르겠어요!]

지난 두 무대로 상황을 학습한 관객들과 심사위원들의 기대 어린 리액션이었다.

자막과 멘트가 교차하는 가운데, 무대 위에 드디어 '5월의 신랑'이 모습을 드러났다.

"헐 "

"나왔다."

날아가는 나비들, 그리고 면사포와 장갑의 무늬가 더 정교하고 자연스러워진 것이 대학생의 눈에 포착되었다.

홀로그램을 약간 보강한 듯싶었다.

'반응 오니까 돈 좀 써줬나 보지?'

1군 아이돌 메인보컬이 나왔는데 당연한 거 아니냐며, 대학생은 코웃음을 쳤다.

"야, 한다, 한다!"

"조용히 해!"

어두운 무대 위, 홀로그램만 홀로빛났다.

그리고 반주가 흘렀다.

달콤하고 맑은 바이올린과 오보에 소리가 공간을 채웠다.

무대는 밝고 화사한 빛으로 가득찼다. 꽃들이 흔들리며, 신랑은 오른손을 들어 마이크 위에 부드럽게 올려 놓았다.

-나의 세상은

슬픔이 없는 곳

오롯한 기쁨만

그대와 나눠요

"어? 저거…."

"쉿!"

감미로운 한 소절 뒤로, 좀 더 낮고 간절한 한 소절이 붙었다.

-나의 세계에는

어둠이 없어요

밝은 별빛이

당신을 비추리

"와…."

이번에는 방해가 된다며 서로 말릴 생각도 잊은 채, 남매는 입을 벌리고 화면을 봤다.

'5월의 신랑'은 남녀가 함께 부르는 듀엣곡을 혼자 부르고 있었다.

동화적인 노랫말과 서정적인 멜로디로 유명한 곡으로, 대단히 낭만적인 곡이었다.

그리고 한 가지 특징이 더 있다면, 결혼 축가로 많이 쓰인다는 것이다.

-때론 슬픈 날도

우릴 찾아오겠지만

이 세상에 머물러줘요

-나의 사랑이

당신의 세상을

따스히 안아서

지킬 수 있도록

본래 원곡은 두 사람이 서로 멜로디를 주고받으며 가사가 쌓이고 견고해 졌다.

하지만 '5월의 신랑'이 혼자 부르는 이 축가는 완전한 구애의 뉘앙스로 변해 있었다.

단아했던 예선 무대의 청혼곡과 달리, 구애하는 공작새 꽁지깃처럼 화려하게 남녀의 키를 넘나드는 구성이 귀를 홀렸다.

'진짜 듣기 좋다.'

'개촌스러운 곡인데 왜 좋냐.'

남매는 곡에 완전히 몰입해서 쥐죽은 듯이 조용히 남은 곡을 감상했다.

자막도 난리였다.

[5월의 신랑이 전하는 사랑]

[달콤한 목소리에 빠져든다…]

눈을 감은 심사위원과 눈을 크게뜨고 무대를 뚫어지게 보는 심사위원의 얼굴이 교차 되었다.

"결승 각이지?"

"무조건이다."

노래를 마친 '5월의 신랑'이 또다시 허리를 숙여 인사한 뒤 스르륵 사라지는 것을 보며, 남매는 오랜만에 같은 의견을 냈다.

그리고 그들의 예상대로, '5월의신랑'은 결승에 진출한다.

[두 번째 결승 진출자는… '5월의신랑'!]

"예에쓰!"

"야 안 가면 조작이지."

무슨 스포츠 경기 보는 것처럼 남매는 신나서 TV에 리모컨을 휘둘렀다.

그리고 준결승 진출자들의 프로필이 조금 길게 소개되었다.

시간 채우기용 컨텐츠였으나, 잘만든 캐릭터 프로필은 그것만으로도 제법 재밌는 경우가 있었다.

'5월의 신랑'이 그러했다.

-미친… 신부를 만나기 전까지는 사랑 노래만 부를 수 있대;; 컨셉뭐야

-그럼 본선 때 부른 겨울밤은 신부 만나고 사별한 시점이라 드디어 이별 노래를 부를 수 있던 건가

└헐

└이런 해석 개조아

-부케 헤드에는 다 5월에 피는 꽃들만 있단다… 5월의 신랑이라… 다른 달에 결혼하면 꽃이 바뀐데

└제발 6월의 신랑까지는 뇌절해주라 마침 지금 6월이잖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결혼하면 꽃 대가리가 신부 이상형으로 바뀐답니다 설정 과다인데 맛있긴 하네

대학생은 프로필이 뜨자마자 SNS를 훑으며 뿌듯한 기분이 들었다.

'박문대가 이런 거 진짜 잘한단 말이야!'

그리고 다시 한번 확신했다. 이건 박문대가 아닐 수 없다!

"너 박문대 맞으면 어쩔래?"

"계속 이러다 개쪽당해도 난 모른다."

"야 진 쪽이 10만 원 콜?"

"와 용돈 감사."

남매는 결승 무대 직전, 고액의 내기까지 체결해 버렸다.

돌이킬 수 없는 두 사람은 진중한 얼굴로 TV를 응시했다.

"여기서 어지간히 망해도 우승이겠지?"

"내가 보는 견지에선 그럼."

둘은 대충 결승전 첫 무대를 흘려보냈다. 은박지 리본을 곱게 단 옛날 통닭이 신나는 삼바를 불렀으나 큰 감흥은 없었다.

그리고 드디어… 그 차례가 왔다.

'5월의 신랑'이 다시 스테이지로 등장했다.

[와아아아!]

붉은 나비가 날아가며, 하얀 면사포 너머로 꽃다발이 비쳤다.

'5월의 신랑'은 자신의 스탠딩 마이크를 하얀 장갑을 낀 두 손으로 잡았다.

그리고 무대가 어두워졌다.

철컹.

사방에서 가는 조명 불빛 여러 개가 홀로그램으로 쏘아져 내려왔다.

어두운 붉은빛이었다.

"…!"

불빛들은 일그러지듯이 흔들렸다.

그리고, 불길한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쉬이이익- 쉬이이잇-

바람처럼 새는 소금(小等) 소리가 정신없이 음을 오가는 피리 소리와섞여 이상한 분위기를 조성했다.

느릿한 북소리가 울렸다.

둥…둥…둥…

싸늘했다.

그 섬뜩한 기운 속에서, '5월의 신랑'이 노래를 시작했다.

흰 정장이 얼룩덜룩한 붉은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사월 그믐날

달도 보이지 않는다

님은 오지 않고

사랑은 썩어 간다

약간 쉰 듯, 긁는 소리가 느리게 무대를 울렸다.

조명이 떨리기 때문인지, '5월의신랑'은 꽃을 흔드는 것처럼 보였다.

금방 시들 것처럼.

-연모는 이리 긴데

삶은 마땅치 않고

문득 창을 여니

길도 자국만 남았다

불안한 단조 위로 숨 쉴 틈 없이 노래가 달려 나갔다. 금방이라도 뛰어내릴 것처럼 가파르게, 음이 올라갔다.

그리고, 떨어졌다.

-그래도 기다리리

그 저음에 맞춰, 반주가 폭발했다.

"…!"

폭주하는 단조의 국악기들 속에서, '5월의 신랑'은 고개를 숙인 채, 스탠드 마이크에 꽃을 파묻었다.

-마음이 다 썩어

앙상한 연심 녹을 때까지

땅 아래 묻혀

기억 다 문드러질 때까지

그래도 기다리리

우울한 멜로디가 지극히 저음으로 시작하여 미친 듯이 음을 타고 높아졌다.

반복되는 가사 속에서, 수 없는 비유의 끝은 모두 하나의 단어로 끝났다.

'기다림'

화면에서는 관객들의 반응도 보여주지 않았다. 오로지 붉게 질척한 무대 위 '5월의 신랑'만을 비추었다.

보일 리 없는, 그 면사포와 부케 너머의 눈빛이 보이는 듯했다.

스크린 너머로도 압도당할 것 같은 처절함이 느껴졌다.

그리고 도착한 마지막.

부르짖는 것 같은 고음이 마지막후렴 가사를 올렸다.

-마침내 오신 날

참 어여쁘다 하실 날까지

숨을 쉬지 않는 것처럼 마지막 음이 이어졌다.

그것을 쫓아 음울한 반주가 정신없이 달려가다가… 뚝, 멈추었다.

-기다리리

"…."

가냘픈 소금 소리 한 줄기가 곡을 마무리했다.

공포와 광기가 떠난 자리에, 아릿하고 애절한 여운이 남았다.

멈춰선 '5월의 신랑'은 스탠딩 마이크에 부케를 댄 채, 움직이지 않았다.

그리고 완전히 반주가 끊긴 순간.

무대에서 꺼지듯이 사라졌다.

[허어어어!]

[와…!]

그제야 박수와 감탄으로 관객석이 가득 찼다.

입을 가리고 있는 심사위원이나 관객들의 유난스러운 모습을 잡는 카메라가 드디어 전면에 등장했다.

[압도된 관객석]

[입에서 손을 떼지 못하는 사람들]

그리고 TV 앞에 굳어 있던 남매도정신을 차렸다.

"…미쳤다 진짜."

"X나 소름 끼침."

"문대 우승이네."

"또 선 넘네."

돌아오지 않는 신부를 기다리다가 돌아버린 것 같은 '5월의 신랑'의 무대는 엄청난 여운을 남겼다.

자칫하면 과하다는 생각이 들 수있는 무대를 섬뜩할 정도로 딱 맞는 가창으로 끌고 나가 버렸기 때문이다.

'다다음 주도 무조건 본방 본다.'

'5월의 신랑'의 우승을 확신한 고등학생이 내심 결심했다.

이런 건 봐줘야 했다.

심지어 정체가 공개되면 앨범도 사서 들어볼 생각까지 들었다.

'이번까지 각 보니까 밴드 보컬이다. 개마이너한 곡 쓸 듯.'

그래서 직후 '5월의 신랑'이 정체를 공개했을 때, 그 충격에 완전히 굳어버렸다.

['5월의 신랑', 이 홀로그램 캐릭터를 만든 사람의 정체를… 지금 공개합니다!]

우승자를 발표하기 직전, 출연진이 직접 무대에서 홀로그램과 함께 발표를 기다리는 그림을 위해 출연진의 정체가 선공개되었다.

모션 링크가 풀린 '5월의 신랑'의 홀로그램은 무대 위에 얌전히 서 있었다. 방금 전 그토록 처참한 곡을 불렸다고는 생각되지 않는 다소곳함이었다.

우렁찬 MC의 목소리가 들렸다.

[자, 등장해 주세요!]

그 순간, 무대 아래가 열리며 사람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사람들이 이상한 감탄사를내기 시작했다.

"…!?"

올라오는 것은… '5월의 신랑'이었기 때문이다.

"뭐야?"

끝까지 다 올라온 실물 '5월의 신랑'은 부케를 갸웃거렸다.

홀로그램이랑 똑같아서 소름이 돋았다.

"으헉."

지금까지 동물이나 음식을 장난스럽게 인형옷으로 재현한 적은 있어도, 이렇게 똑같은 경우는 처음이었다.

보통 자기가 못하는 걸 캐릭터로 만드니까!

'뭐 하는 새끼야 대체?'

웅성거림으로 가득 찬 관객과 심사위원들 사이에서, MC만 쾌활하게 외쳤다.

[이분은… 바로!]

새로 올라온 '5월의 신랑'은, 오른손으로 머리의 부케를 뜯어냈다.

"…!"

꽃으로 뒤덮인 두터운 망사 복면이 목으로 흘러내리며, 땀에 젖은 얼굴과 머리카락이 드러났다.

[대세 아이돌, 테스타의 박문대입니다!]

[!]

비명을 지르는 관객들과 일부러 더 놀란 척하는 심사위원들의 모습이 화면에 계속 리플레이되며 잡혔다.

그리고 고등학생도 넋을 놨다.

"…."

"야, 야."

대학생은 툭툭 자신의 동생을 발로 건드렸다.

"10만 원 내놔."

참고로, 비슷한 상황이 인터넷에서도 실시간으로 벌어지고 있었다.

[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 150화]

[방금 나온 내가수5월의 신랑 정체]

: 테스타 박문대

홀로그램이랑 똑같이 입고 등장

(캡처)

-미친

-보다가 내 눈을 의심함

-세상엨ㅋㅋㅋㅋㅋㅋ

-박문대 맞았잖아 개새끼들아ㅠㅠ

'역시 실시간으로 올라오는군.'

나는 불어나는 댓글들을 잠깐 확인하다가, 결국 도피를 포기하고 도로 TV를 쳐다보았다.

눈앞의 숙소 거실 TV에서는 한창 '5월의 신랑'의 정체가 방영되고 있었다.

[테스타의 박문대라고?]

[국민 주식 아이돌의 깜짝 등장….]

[충격에 빠진 관객과 심사위원]

저 자막과 편집 꼴을 눈 뜨고 보기 힘들어서 스마트폰 좀 켜봤다.

혼자면 대충 보겠는데, 문제는 지금… 단체 관람 중이라는 점이다.

"괘, 괜찮아 문대야, 멋있어…!"

"인상적인 연출입니다!"

"이야 문대∼ 작정했는데? 의상까지 준비했어? 크∼"

큰세진이 어깨를 쿡쿡 찔렀다. 그와중에도 TV의 박문대의 말 밑에 또 자막이 떴다.

[자기소개 좀 부탁드립니다!]

[네. 안녕하세요. 저는 그룹 테스타에서 메인 보컬을 맡고 있는 박문대입니다.]

[5월의 장밋빛 미소… 녹아내리는여심]

"장밋빛…!"

"와 자막 진짜…."

주변에서 더 견디지 못하고 고개를 처박은 채로 웃음을 참기 시작했다.

과장되게 편집된 테스타의 활동기가 짧게 화면에 나오자, 좀 민망하기까지 했는지 고개가 올라올 생각을 안 한다.

'이게 모니터링의 의미가 있냐.'

다 같이 보겠다고 할 때부터 이 꼴을 짐작은 했다만, 슬슬 혼자 들어가서 보고 싶다.

다행히 곧 우승자 발표로 분량이 넘어갔다.

[내가 만든 가수님, 가장 최고의 가수 캐릭터는….]

[박문대의 '5월의 신랑'님입니다!]

화면에서 꽃가루가 튀었다.

"WOOOOW!"

"그렇게 불렀는데 당연히 우승이지!"

배세진이 흥분해서 외쳤다.

"…?"

쟤 뭐 하냐.

배세진은 나와 눈이 마주치자 헛기침을 하며 슬그머니 고개를 돌렸다.

지난주에 더없이 굳은 얼굴로 '겨울밤 잘 들었다'고 말한 게 떠오른다.

'저런 극적인 창법이 취향인가 본데.'

무슨 경주라도 보는 줄 알았다.

마침 화면에서 MC가 그만큼 호들갑을 떨고 있긴 했다.

[아∼ 문대 씨, 소감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음… '5월의 신랑'을 움직이는 동안, 굉장히 재밌었습니다. 그것만으로도 의미 있는 경험이었는데…좋아해 주시는 분들이 계셔서 정말 기뻤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저 말은 사실이었다.

머리 비우고 시작한 일인데, 생각보다 결과가 좋아서 좀… 놀라웠다.

'운이 좋았어.'

계속 저런 요행을 기대할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신선한 경험이었다.

"문대 형, 저 '5월의 신랑' 홀로그램과 체격이 굉장히 유사하신데 애초에 이 공개 퍼포먼스를 기획하신 일인 겁니까?"

"얼굴 꽃들 안 불편해요?"

…나는 가까스로 순순히 대답했다.

"…어, 기획했고, 당연히 불편했다."

"역시!"

"불편은 안 좋아요!"

좀 부담스럽지만, 이 정도는 받아줘야 했다. 근 한 달 동안 내 컨디션 나쁜 걸 알게 모르게 참아줬을 것 아닌가.

"이거 보니까 얼른 새 앨범 활동하고 싶다∼"

"마, 맞아."

모니터링에 자극받은 놈들이 떠드는 소리와 함께, 화면의 내 분량은 거의 끝났다.

[아쉽게도… 우리 '리본 든 통닭'님은 준우승입니다!]

'저거 골드 1 그룹 놈이었지.'

준우승한 옛날 통닭이 이어서 인터뷰하는 사이. 류청우가 물었다.

"그럼 문대는 다음에도 나오는 건가?"

"네. 다다음 주 준결승부터 나올겁니다."

"좋네. 축하한다. 음… 그럼, 잠깐만."

류청우가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자 제일 어린 둘이 따라서 벌떡 일어났다.

"…?"

누가 봐도 부자연스러웠다.

'…아, 설마.'

부엌으로 사라졌던 셋은, 순식간에 다시 나타났다.

차유진의 손에는 웬 케이크가 들려있었다.

[경 테스타 1 주년 축]

[장하다! 멋지다!]

"…!"

역시.

…사실 오늘은 6월 18일. 테스타의 데뷔 1 주년이다.

'이제 한 시간도 안 남긴 했지만.'

벌써 밤 11시 20분이었다.

기념 컨텐츠는 편집 시간 때문에 이미 예전에 찍어서 지난 자정에 업로드 되었기 때문에, 순간적으로 잊고 있었다.

"자정에 영상 공개하긴 했지만…우리끼리도 한번 하면 좋을 것 같아서 말이야."

류청우가 웃으며 막내 둘의 머리를 휘저었다.

"이 녀석들 데리고 준비 좀 했어."

"케이크 좋아요!"

"상단에 적힌 문구는 함께 상의해서 정했습니다."

이 셋의 센스로 나올 법한 문구긴 했다.

하지만 중요한 건 문구가 아니기도 했다.

'…내 모니터링 끝날 때까지 기다린 건가.'

이거 참…. 기특하다고 해야 하나.

묘한 감상이 들 무렵, 큰세진이 끼어들었다.

"잠깐, 잠깐! 일단 사진은 찍어놓읍시다∼ 문대야!"

"…."

뭘 천연덕스럽게 폰을 내밀고 있냐.

"에이, 문대가 사진을 잘 찍으니까∼ 어? 설마 셀카라 자신이 없나? 그런 거야?"

"내놔."

"오오∼"

봐준다.

나는 큰세진의 손에서 폰을 낚아채서 셀프 카메라 모드로 돌렸다.

손을 끝까지 뻗어서, 일곱과 케이크가 모두 화면 안에 담기도록 조절했다.

"찍습니다."

"네∼"

찰칵, 찰칵, 찰칵. 자연스럽게 일이초 간격으로 여러 장을 찍었다.

그리고 잠시 후.

"자, 케이크 먹자!"

"…이거 먹어도 되는 거 맞아? 이 위에 색소가…."

"맛있어요!"

"차유진! 형들 먼저 드시고 먹어!"

"…."

배세진은 포기했는지, 입에 케이크를 처넣었다.

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맛 괜찮네.'

디자인 케이크치고는, 정말 괜찮았다.

그렇게 6월 18일이 끝나기 30분전. 단출하게 케이크를 씹어먹으며 1주년이 지나갔다.

"일 년 동안 고생 많았어. 우리 앞으로도 잘해보자."

"아, 물론이죠∼ 대상 받을 때까지 해봅시다∼"

"활동기도 아닌데 팍팍 좀 먹어."

"네, 네…!"

그 조촐함이 나쁘지 않았다.

박문대와 멤버들이 평화롭게 케이크를 나눠 먹고 있을 무렵.

박문대의 팬들은 승리의 포효를 내지르고 있었다.

-아 5월의 신랑 박문대다! (쩌렁 쩌렁)

-샤워기 밑에서 사이다 폭포수 맞는 기분 고맙다 내돌

-허 진짜 답답해 죽는 줄 알았네 드디어 제 남편을 소개하는군요 신랑 박문대입니다

└아 줄 서세요 님 차례 한참 뒤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간 입 다물고 자제했던 기간이 답답했던 만큼 미친 듯이 SNS과 커유니티에 글이 쏟아졌다.

『5월의 신랑'과 박문대 동작 비교]

[알만한 사람은 다 알았던 5월의 신랑 정체.jpg]

[개소름 돋는 내가수 이번 결승무대]

한풀이하듯이 몰아친 팬들은 한 타임이 지나자 그제야 제대로 박문대의 새 컨텐츠를 대놓고 앓기 시작했다.

-박문대 미친놈 진짜 어떻게 그런 생각을… 브레이크를 몰라 내 새끼! 그래서 사랑해!

-신랑 프로필에 신부 만나면 꽃머리가 이상형으로 변한다고 넣어 놓고는 자기가 뿅 나타난 거 실화냐고 서사 어쩔 거야

└청혼이지? 청혼 맞는 듯 혼인 신고하러 가야 됨

-뭐가 꽃이고 뭐가 얼굴인지 모르겠어ㅜㅜ박문대와 부케는 동의어 아닌가?

-5월의 문댕댕? 이거지 (꽃을 단 시골 강아지)

-진짜 뽕찬다… 박문대 노래 듣고뽕이 안 차면 한국인이 아니다

그리고 팬들이 다 놓고 폭주하는 만큼은 아니었으나, 내가 만든 가수님 의 애청자들 사이에서도 '5월의 신랑'은 깊은 인상을 남겼다.

워낙 예선부터 결승까지 무대들이 전부 좋고, 정체 공개의 임팩트와 짜임새까지도 완성도가 있었기 때문이다.

-짭가수 이렇게 진지하게 하는 출연진 오랜만이었음 그동안 대충 동네 야구 마스코트 같은 거나 하다가는 새끼들을 너무 많이 봤나

-노래 그렇게 하는 놈이 아이돌하긴 좀 아깝구나 댄스곡만 줄창 할것 아닌가

└아이고 아재요 요새 다들 아이돌로 시작함 짬 차면 솔로 하겠지ㅇㅇ

- 결승전 무대 원곡이 없던데 혹시 자작곡이면 지렸다

-예선 좀 약한 것 빼곤 진짜 흠잡을 데 없는 우승자임 이견 없을 듯

└예선을 캐릭터 구축에 썼으니 전략적으론 훌륭한 선택. 궁금하네 누가 디렉해줬나? 자기가 한 거면 ㄹㅇ 탈아이돌급인데.

└일단 성대는 본인 거자너 그것만으로도 인정 쌉가능이지ㅋㅋㅋㅋㅋㅋ

└맞네ㅋㅋㅋㅋㅋㅋㅋ

애청자들이 호평 일색이었던 것처럼, 일반 시청자들도 그 캐릭터에 취향은 갈릴지언정 하나는 확실히 인정했다.

'쟤 노래 정말 잘한다.'

시청률이 10% 내외로 나오는 공중파 황금시간대 가요 예능에서 압도적으로 우승한 것은 대중적 인식에까지 가벼운 영향을 줬다.

위튜브에 업로드된 '5월의 신랑' 정체 공개 영상의 몇몇 댓글에서부터 나타났다.

[낭만과 전율의 무대, '5월의 신랑'! 그 놀라운 정체는? I 내가 만든 가수님 I 202X0618]

-결승무대 정말 소름이 촥! 돋았습니다. 최고!

-그야말로 나라의 홍복 청년입니다…기가 막힌 목소리의 명창이구나! 어찌 그리 노래를 잘하는지.^^

-박문대군! 다음 무대를 기다리지요∼ㅠㅠ

-얼굴도 참 훤하고 잘생겼다. 예쁜 얼굴이라 예쁜 목소리가 깃들었나보다.

중장년층들이 박문대를 인식한 것이다.

아주사 가 워낙 흥했기 때문에 그들도 어쩌다 '박문대'의 얼굴 정도는 본 적 있지만, 이렇게 각 잡고 노래를 들어본 사람은 많지 않았었다.

거기에 '5월의 신랑'이라는 캐릭터 자체가 몹시 마음에 들었던 사람들의 반응도 가세했다.

-청혼-이별-구애-집착. 이번 무대까지 서사적으로 갓벽했다

-지난주부터 온갖 망상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음 5랑이 주인공으로 영화 오조오억편 만든 듯

-님은 오지 않고 사랑은 썩어간다. (5월의 신랑 팬아트)

-오랜만에 좋은 인외 캐릭터였다… 아이돌 중에도 컨셉충 동지가 있었을 줄이야

└ㅋㅋㅋㅋㅋ갑자기 차오르는 친밀함!

└홀로그램이랑 똑같이 하고 온 거 진짴ㅋㅋㅋ 확신의 찐인 것 같더라

-나 진짜 부케 헤드 벗는 거 계속 생각나서 미치겠어

└너도? 나돜ㅋㅋㅋㅋㅋ 솔직히 5랑이 너무 마음에 들어서 진짜 사람머리 나오면 환상 와장창 날 줄 알았는데 의외로 괜찮았음

└역시 얼굴이 답이구나

-제발 문대씨가 5랑이 TMI 더 풀어줬으면 좋겠다

아무리 박문대가 만들었고 박문대의 목소리와 모션을 따왔더라도, 캐릭터와 박문대는 완전히 동일할 수는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호감은 빠르게번졌다. 워낙 공통점이 많았기 때문이다.

-다다음주 무대 벌써 너무 기대돼ㅠㅠ

많은 사람이 보는 프로그램에서 끝내주는 무대를 하고, 그 정체가 막 공개된 때였다.

박문대에 대한 온갖 칭찬과 주목이 가장 휘몰아칠 시점.

물론 그걸로 끝나진 않았다.

[박문대 솔로 하면 되겠네ㅎㅎ]

예정된 어그로였다.

참고로, 곧 박살 날 예정이다.

[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 151화]

나는 휙 스크롤을 내렸다.

'벌써 튀어나왔군.'

첫 주 촬영분이 방영됐을 때부터 짐작했던 어그로가 인터넷에서 날뛰기 시작했다.

'이런 건 보통 가벼운 떠보기부터 던진다.'

마치 칭찬인 것처럼 말이다.

'찾았다.'

나는 글을 클릭했다.

[박문대 솔로로 나오면 어떨 것 같아?]

: 아주사 1 위라 팬덤도 크고 메보에 컨셉 소화력도 좋아서 솔로하기 좋을 듯 남솔 희귀종인데 박문대 잘할 것 같아서ㅋㅋㅋ

이런 밑밥은 본래 팬들에 의해 빠르게 무마되는 편이나, 지금은 약간 상황이 다르게 돌아갔다.

예능으로 호감이 막 피크로 차오른 상황이기에, 아이돌 팬층을 잘 모르는 일반 시청자들이 대놓고 호의적으로 반응해 주기 때문이다.

-내가수 보니까 괜찮을 듯

-나중에 솔로 활동할까? 좀 기대된다ㅋㅋ

-노래 많이 듣고 싶어 그 컨셉? 같은 것도 멋지고ㅠㅠ

-솔직히 망하진 않았을 것 같아거ㅋㅋㅋㅋ

언 듯 보기엔 좋지만, 평소보다 확연히 좋아서 문제였다.

'땔감으로 쓰기 좋았겠어.'

이후 이런 글을 올릴 때 말이다.

[솔로 하고 싶은 티 오지게 내는 테스타 멤버]

: 바로 박문대

단독예능 나오기 직전 한 달 동안 건강 핑계로 스케줄 불참 + 각종 그룹 스케줄마다 리액션 없음

(W라이브 불참 공지)

(썸머 패키지 영상 GIF)

이 와중에도 혼자 찍는 건 또 열심히 함ㅋㅋㅋㅋㅋ

(인터뷰 영상)

한두 번도 아니고 한 달 내내 이래서 쎄하다는 팬들 많았는데, 이번에 내가수 나오면서 다 터짐ㅋㅋ

최근 솔로로 하는 것만 혼신의 힘을 다해서 열심히 하는 게 보여서 빼박이라는 게 정설

그리고 팬들도 못 숨김

(캡처)

타팬인 척 관심 없는 척 솔로 염불하는데 제발 티 나니까 그만해 (기도하는 손 이모티콘)

이런 게시글에 '박문대 솔로' 떠보기 글의 반응 캡처 잘 짜깁기해 함께 올리는 것이다.

그리고 메인은 태도 논란.

'…안 그래도 찝찝했지.'

내 상태가 안 좋을 때 찍은 컨텐츠들이 언젠가 먹잇감이 될 수도 있다는 건 알았다. 이게 그걸 정석처럼 잘 써먹은 글이었다.

하지만 사실, 여기서 겨냥하는 건 일반 대중 여론이 아니다.

'막말로 내가 솔로를 하든 말든 큰 문제 없지.'

차라리 진짜 솔로로 나왔을 때 성적이 나빠서 조롱한다면 모를까, 제일 호감을 사는 중인 지금은 어지간하면 옹호를 받는다.

이런 식이다.

-? 박문대 솔로하면 안 됨?ㅋㅋ 실력도 좋던데 진짜 별ㅋㅋㅋㅋ

-아팠다는 애한테 이런 열폭은 너무 추하다 테스타 갠팬들 정병 많다더니 딱 그 꼴…

-박문대 잘 나가니까 왜 이렇게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야 몸 안 좋은게 컨디션 문제면 한 달은 가는 경우 많잖아

-나라도 이런 악개 붙은 그룹하느니 솔로하고 싶었겠다ㅅㅂㅋㅋㅋㅋㅋ

- 테스타는 매 번 올라오는 글마다 개피곤함 제발 전시하지 말고 니들끼리 싸우세요

싸움이 나서 댓글이 길어지고 인기글로 분류 될지언정, 여론이 뒤집히진 않는다.

그러니까 여기서 겨냥하는 대상은… 테스타 팬덤 내부의 불화다.

그룹 자체를 좋아하는 팬덤 분위기를 경직시키고, 멤버의 악성 개인팬들이 서로 견제하고 훼방하기 편한 분위기를 잡으려는 것이다.

그래서 여기서 또 논지 하나를 가져 왔다.

박문대의 내가 만든 가수님 두번째 촬영분이 방영된 날짜가, 테스타의 1주년 기념일과 동일하다는 점이다.

-1주년 기념일인데 박문대 글만 도배하는 건 진짜 너무했어 눈치가없는 건지 안 보는 건지

-5월의 신랑이든 신부든 나는 관심이 없어요 그룹 컨텐츠에 피해만 주지 말라고 곰머야

-박문대 썸패 내내 애들 뭐 할 때마다 죽상이던데 내가 다 마상이었음 특히 청우한테 왜 그래? 리더라 더 꼴 보기 싫어?

-좀 피해서 스케줄 잡았으면 안됐어? 이렇게까지 배려 없이 할 줄은 몰랐다ㅋㅋㅋㅋ

이렇게 내가 만든 가수님 의 반응이 좋을 줄 알았으면 그랬을 것이다.

'…적당히 팬들이 재밌는 정도를 노렸던 건데.'

설마 그룹 1주년보다 그게 더 화제가 될 줄은 누가 알았겠냐는 말이다. 겹경사가 될 줄 알았지.

어쨌든 여기서 약간 더 시간이 흐르면, 좀 더 통괄적으로 논란이 흐른다.

그룹 활동 자체에 대한 회의감을 부추기는 것이다.

-문대야 솔로가 하고 싶어?ㅋㅋㅋㅋ초심 어디 갔냐고 아티스트 병 걸려 가지고 잘하는 짓이다 제발 정신차려

-요새 선아현도 단독 광고 찍고 어째 다들 개인 스케줄 늘어났다 했더니 박문대가 분위기 잡아놨네ㅎ

-이렇게 된 거 따로 가자 SNS도 따로 만들어 진짜… 관심도 없는 남소식 듣는 거 지겹다

1주년이 그렇게 중요하면 1주년 다음날부터 멤버들 각자 따로 가자는 글을 올릴 리가 없다.

'그러니까 이걸 올린 건, 애초에 그룹 팬이 아닌 사람들이다.'

물론 테스타가 그동안 개인 투표를 받는 서바이벌 출신이라는 걸 많이 털어내긴 했다.

앨범 세계관과 각종 컨텐츠를 통해 그룹으로서의 정체성이 많이 공고해진 편이라는 뜻이다.

하지만 개인 팬이 여전히 적지 않았고, 이런 식으로 흔들면 흔들리는 사람들이 분명 있을 것이다.

…라는 것까진,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모두 아는 사실이다.

그러니 당연히 대응책을 준비해 놓는 게 기본적인 사회인의 자세겠지.

나는 스마트폰 화면을 전화로 바꿨다.

"네, 안녕하세요. …예. 감사합니다. 다름이 아니고, 문의드릴 게 있어서요."

그렇게 회사와 짧게 대화한 후, 마침 옆에 앉아 있는 당사자에게 말을 걸었다.

"래빈아."

"예?"

본인의 곡을 듣느라 정신이 팔려있던 김래빈이 화들짝 놀라며 돌아보았다.

"인터뷰, 저녁에 바로 나간대."

예정대로였다.

"아!"

그 순간, 김래빈의 얼굴이 환해졌다. 음, 그래도 여전히 살벌해 보인다.

"굉장히 뜻깊은 인터뷰였기 때문에, 벌써 기다려집니다!"

"그러게."

나는 등받이에 등을 기댔다.

이런 일은 불안 축에도 안 꼈다.

대외적으로는 아직도 '5월의 신랑'으로 인해 박문대의 지명도가 올라가 있고, 팬덤 내부적으로는 어그로가 날뛰고 있는 저녁.

위튜브에 인터뷰가 하나 떴다.

바로 내가 만든 가수님 을 제작한 MBS의 산하 위튜브 채널에서 운영하는 인터뷰 컨텐츠였다.

[혼인신고서 가져왔습니다… 5월의 신랑님 제작자분들을 모셨다! 《티티의 스윗터뷰》 EP.47 byMBS2]

썸네일에는 박문대와… 김래빈이 떠 있었다.

'김래빈?'

'끼워팔기…?'

갑자기 등장한 타 멤버에 약간 당황하며 클릭한 사람들은, 곧 일의 전말을 알게 된다.

일단 라운드마다 김래빈이 박문대의 편곡에 조언을 줬다는 훈훈하고 뻔한 이야기 나왔다.

본론은 그다음이었다.

[티티 : 와! 그럼 그 결승전 곡이 래빈 씨 작곡이었던 건가요?]

[래빈 : 예. 물론 저 혼자 모든 제작 과정을 단독으로 처리한 것은 아니고, 제가 주도적으로 작업을 총괄하고자 노력했다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래서 저작권 지분이 가장 크기에 문대 형의 생일 선물로 드릴수 있었…]

[끝나지 않는다…!]

더 견디기 힘들었는지 빨리 감기가 들어갔다. 팬들도 인정할 길이었다.

그리고 큼직한 자막이 떴다.

[래빈쓰… 생각보다 TMI 체질]

[요약 : 래빈 씨 주도로 작곡했고 문대 씨 생일 선물이었다는 뜻]

어쨌든, 내용 전달은 확실했다.

'5월의 신랑'이 결승전에서 부른곡은 테스타 멤버가 작곡한 곡이었단 것이다.

즉, 미공개 자작곡이었다.

그렇다면 이 곡이 왜 미공개였는가.

[문대 : 사실 저희가 곧 컴백을 하는데… 그 앨범의 곡입니다.]

[티티 : 허어어억!]

그렇다.

해당 곡, '꽃 그믐'은 테스타의 다음 앨범의 곡 중 하나였다.

[문대 : 이번 앨범에 각 멤버들의 솔로곡이 들어가는데, 정말 멋진 곡들이라서 빨리 소개를 할 겸… 불러봤습니다.]

[티티 : 와! 그럼 앨범이 나오면 지금 음원 사이트에 있는 곡을 살짝 다른 녹음 버전으로 들을 수 있겠네요?]

[문대 : 맞습니다.]

[PPL 짬밥이 나오는 티티]

한마디로, 그룹 앨범 홍보도 겸해서 그 곡을 불렀다는 뜻이다.

[문대 : 사실 다른 멤버들 곡도 정말 다 좋거든요. 제가 기회가 돼서 먼저 부르긴 했지만… 그렇지?]

[래빈 : 객관적으로 문대 형이 가장 가창력이 뛰어나시기 때문에 단순 음원만 비교하자면 우위가….]

[문대 : (황급히) 네. 곧 나올 앨범의 다른 곡들도 많이 기대해 주시기바랍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박문대의 고군분투에 자막이 폭소했다.

[티티 : 아∼ 두 분 정말 재밌으시네요! 크게 웃었습니다!]

[래빈 : 감사합니다! (맑음)]

[문대 : 감사합니다. (티벳)]

인터뷰는 그렇게 무례하지 않은 선에서 가볍고 유머러스하게 진행되며, 적당한 신변잡기식 대화도 끌어냈다.

[티티 : 아, 내가수 에 출연하시기 전에 상당히 몸이 아프셨다고…?]

[문대 : 네…. 제가 출국하면서 한달쯤 컨디션 관리를 실패해서, 멤버들이 많이 챙겨줘서 굉장히 미안했어요. 그래서 이번 내가수 에 출연한 게 굉장히 뜻깊었습니다. 오랜만에 그룹에 뭔가를 기여할 수 있어서….]

[래빈 : 형….]

[티티 : 뭐야 뭐야 이 감동 분위기! 지금은 몸 괜찮으신 거 맞죠 문대씨?]

[문대 : 이보다 더 건강할 수 없는상태입니다』

[튼튼 문댕댕]

사실, 이 부분은 박문대가 노린 것도 아니었다.

그저 한 달간 혹시 걱정했을 사람들을 안심시키기 위해 넣었던 질문이었으나, 추가 잭팟이 된 것이다.

어쨌든 아무렇지 않게 해당 화제를 털어낸 출연진과 인터뷰어는 슥슥 문답을 이어서 주고받은 뒤, 짧은 12분짜리 인터뷰 영상을 끝냈다.

[문대 : 테스타 다 같이 출연할게요.]

[래빈 : 벌써 기대됩니다. 굉장히 화목할 것 같습니다.]

[티티 : 예에∼∼! 그럼 제 영혼의 쌍둥이라는 큰세진 씨와의 인터뷰를 기다리며∼ 인터뷰 마치겠습니다! 혼인신고서 챙겨가세요, 신랑님!]

[문대 : 좋죠.]

인터뷰는 웃으며 혼인신고서를 챙겨 드는 박문대로 끝났다.

그리고 동시에, 여기저기서 기사가 터졌다.

준비해 둔 것 반, 인터뷰에 반응한 것 반이었다.

[테스타 컴백 초읽기… '5월의 신랑' 박문대의 곡은 앨범 예고]

[테스타의 여름 컴백. 컨셉은 공포?]

[대세 그룹 테스타의 컴백, '이미 일정은 다 나왔다']

당연한 말이지만, 컴백 소식에 팬들의 주목은 순식간에 돌아갔다.

-으아악 테스타 컴백!

-헐 문대 곡 새 앨범 수록곡이야 헐

-문대는 다 계획이 있구나

-미친 래빈이 곡이었어? 어쩐지 심장이 뛰더라 주인을 알아본 거지

-설마 앨범 다 저런 분위기야? 도랏다 테스타 컴백할 때까지 숨 참음

화룡점정으로, 테스타는 계정에 자신들의 1주년 기념 파티 사진을 업로드했다.

우리 러뷰어 테스타와 무려 365일 동안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러뷰어 해주세요 저희도 계속 테스타할래용 우리 사이 포에버

(사진의 케익은 리더 형님과 막내들 협찬입니다. 맛있었습니다.)

(사진)

'스케줄도 아닌데 우리끼리 따로 1주년 기념 케이크 챙겨서 해먹을 만큼 돈독해요' 과시용이었다.

-우리 애들 마음씨 어쩔 거야ㅠㅠ

-배려심와 유대감의 그룹. 오래 가자 내 별들. (보정 사진)

-낫자마자 앨범 홍보부터 생각한문대도 아픈 문대 챙겨준 멤버들도 정말 눈물 난다 러뷰어생 최고

인터뷰의 티저가 SNS에 제법 일찍 올라왔었기 때문에, '논란 틀어막으려고 변명용으로 했다'며 물고 늘어지는 것도 통할 만하지 않았다.

-빨리 예약 구매 열라고 티원놈들아!

그렇게 애초에 찻잔 속의 태풍이었던 논란은 컴백 소식에 흥분한 사람들에 의해 빠르게 가라앉았다.

박문대의 예측샷대로, '5월의 신랑'이 가진 화제성은 많이 소모되지 않고 부드럽게 테스타의 컴백까지 연결된 채였다.

그리고 이 모든 일의 당사자인 박문대는 새로운 스케줄 중에 있었다.

"오랜만이에요, 후배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