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2화]

선아현에게 무대에 관련된 협조를 요청하는 것은 이미 검증된 방법이었다.

안면만 있던 아주사 등급 평가때도 반색하며 열심히 알려줬던 놈이니까.

그러나 대화가 좀 예상과 다르게 흘러갔다.

"아, 안 돼!"

"…?"

사정을 설명하자마자 선아현이 태세를 변경한 것이다.

'이놈 설마 경쟁심리에 눈 떴나.'

좀 어이가 없어서 보고 있자니, 좀 움츠러들면서도 꿋꿋이 말을 잇는다.

"다, 다쳤는데, 그런 걸 하면 위험한데…."

아, 그거였나.

"괜찮아. 바로 연습하겠다는 건 아니야. 적당히 회복하면 할 생각이니까."

기존에 운동하던 가닥이 있으니, 일단 구상과 암기에 치중하다가 2주정도 남기고 본격적으로 실전 연습을 할 생각이었다.

내가 무슨 총상 맞고 다음 화에 바로 뛰어다니는 드라마 등장인물도 아니고, 당연히 몸 챙길 구상은 다해뒀지.

그러나 이 구체적인 설명을 추가했음에도 선아현은 영 안색이 별로였다.

"그, 그래도, 생각보다 관절에 부담이 많이 갈 것 같…, 아, 안 하면 안 돼…?"

"음…."

"이, 이미! 노래도 정말 잘하는데, 그런 것까지 안 해도…"

잘하면 아주 땀까지 뻘뻘 흘릴 기세다.

'…부상에 예민하군.'

단순히 무용 전공 출신이라 그런건 줄 알았는데, 그보다 더 필사적인 구석이 있다.

"음."

아무튼, 이대로는 답을 받아내기 어려울 것 같으니 약간 말을 바꿔볼까.

"그래. 네 말이 맞는 것 같다."

"…! 지, 진짜?"

"응. 몸 생각해서 자제해야지."

선아현의 안색이 확 펴진다.

나는 그 뒤에 슬쩍 말을 추가했다.

"그럼 장치는 잠깐만 쓰고…. 그래, 혹시 모르니까 안전한 자세 좀 물어봐도 될까."

"으, 으응!"

됐다.

선아현은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다. 나는 스마트폰으로 영상을 하나재생해 보여주었다.

"여기 힘 빼는 부분 말인데…."

일명 조삼모사 화법이다.

사실 잘 생각해 보면 난 원래 하려던 거 하겠다는 뜻이지만, 이놈 성격에 '상대가 납득했다'는 뉘앙스에 넘어갈 줄 알았다.

나는 선아현의 실전 팁 몇 가지를 주워듣고, 연습실에서 시범을 보여주겠다는 약속까지 받아냈다.

"고맙다."

"뭐, 뭘!"

그리고 선아현은 이후 콘서트를 위해 대여한 거대 연습실에 도착한 후에야 이상함을 눈치챘다.

드디어 회사가 빠릿하게 움직이는지 벌써 장치를 대여해 놨더라고.

"어, 어…."

선아현의 표정이 '?'로 도배가 되었으나, 이미 상황은 끝났다.

"이거, 그, 안 하는…?"

"알려준다며."

"그, 그렇지만…."

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뭐… 안 내키면 관둬도 돼. 강사분 오셨으니 천천히 물어보면 되겠지."

"…! 아, 아냐! 알려줄게!"

"고맙다."

그렇게 선아현의 시범까지 확인했다.

이미 전에 해봤었는지, 강사의 어드바이스가 없어도 수월하다.

그리고 느낌이 다르다.

'…확실히 차이가 있군.'

저걸 습득해야 한다.

"오오!"

중간에 난입한 차유진이 자기도 해보겠다며 신나서 끼어들다가 얼굴채로 바닥에 머리를 박을 뻔한 것을 빼면, 순조로운 진행이었다.

다만, 몇몇 멤버들이 슬그머니 묻긴 했다.

"문대야, 진료 받아봤어? 해도 괜찮다고 하신 거 맞아?"

"아, 괜찮습니다."

나는 류청우가 넌지시 묻는 말에 곧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회복하면 무리 안 가는 선에서 시도 하기로 했어요."

"…알았어. 그래도 무리하진 말고."

정말 괜찮았다. 스케줄도 다 뺐을 뿐더러, 원래 몸보다도 회복 속도가확실히 빨랐다.

'바쿠스500 덕인가.'

피로 누적 속도가 느리니 회복력에서 보정을 받나 보다.

나는 팔짱을 끼고, 차유진이 히히덕거리며 막 내려온 장치를 다시 살폈다.

'역시 그림이 괜찮겠어.'

이제야 뭘 하는 맛이 난다. 기분이 썩 괜찮았다.

콘서트가 제법 기대되었다.

"이건… 성공 기념잔이야."

"아 너무 좋아! 건배!"

박문대의 홈마는 자신의 대학원생 친구와 함께 맥주를 들이켰다.

'으아아!'

짜릿했다.

얼마 전 진행된 테스타의 두 번째콘서트 선예매를 성공적으로 끝냈기때문이다!

심지어 둘 다 성공했다.

"여기 스탠딩인 거 맞지? 서서 봐야 하나?"

"아니아니! 거기 의자 있어! 분위기 봐서 앉았다 섰다 하면 돼."

"아∼ 그렇구나!"

스탠딩 구역에 간이 의자를 주르륵 세워둔, 일명 '의탠딩'석 중 제법 앞자리의 좋은 구간을 잡은 대학원생이 밝게 웃었다.

'겨우 시간 냈다더니.'

약간 측은하게 그 모습을 보던 박문대의 홈마는, 마침 울린 자신의 스마트폰을 힐끗 보았다.

드르륵!

그리고 내용을 확인하자마자 스마트폰을 부여잡았다.

"허어어, 문대 글 올렸어!"

"헐!"

안녕하세요 러뷰어

저는 문대 (강아지 이모티콘)

이것은 오늘의 저녁밥입니다

제가 만들었어요

(사진) (사진)

청우 형이 찍어주었습니다

러뷰어도 맛있는 밥 드세요

첨부된 사진에는 땡초 된장찌개와 계란후라이가 포함된 가정식이 제법 그럴싸하게 차려져 있었다.

그리고 진지하게 상을 찍는 박문대의 옆모습을 찍은 사진까지.

'미치겠네, 진짜.'

홈마는 머리를 치고 싶은 기분이었다.

박문대는 정말 최고였다. 다만 너무 했다.

'쉬어 좀!'

쉬라고 스케줄을 빼준 걸 텐데 왜 밥을 하고 앉아있단 말인가.

게다가 사진을 다시 보니 마음에 걸리는 점들이 쑥쑥 눈에 띄었다.

대학원생은 걱정 어린 얼굴로 중얼거렸다.

"아직 팔목에 보호대 하고 있네…."

"얘 허리에도 한 것 같아. 옷에 모양 나왔어."

부상 소식을 들은 지 벌써 일주일이었으나 여전히 신경이 쓰이는 건어쩔 수가 없었다.

술자리의 분위기가 약간 가라앉았다.

"…그래도 문대 솔로곡도 막 격하게 움직이는 곡 아니니까, 콘서트는 괜찮겠지? 내가수 에서도 서서 불렀잖아."

"그렇지. 앉아서 부르겠지."

여차하면 단체 안무도 빼고 앉아서하면 되지 않겠냐며, 둘은 합리적인추측을 했다.

'많이 아쉬워하겠다.'

활동 1 년 이상 지켜본 결과, 박문대는 무대 욕심이 아닌 척 많은 타입 같았는데 말이다.

홈마는 당장 소속사를 통해서 홍삼이라도 보내야겠다고 생각하면서,통곡하고 싶은 마음을 참았다.

"…그래도 이번 콘서트 첫 번째보다 더 재밌을 것 같아! 콘서트장도 더 크고!"

"흐으음, 그, 그렇지."

대학원생은 분위기를 바꾸려 시도했고, 홈마는 발맞춰 호응하면서도떨떠름한 기분을 어쩔 수 없어 했다.

둘 다 티켓팅에 성공했다는 즐거운 상황을 직면해서 슬쩍 무시하고 있던 것이 떠오른 것이다.

'하필 고척돔…."

지난번, 13,000석을 기준으로 체조경기장에서 했던 콘서트는 이번에고척스카이돔에서 열리며 21,000석을 오픈했다.

물론 미친 듯이 기세를 불리는 테스타의 콘서트이니, 규모를 키우는건 소속사 입장에서는 옳은 선택이었다.

그러나 팬의 입장에서는 고척돔이 썩 마음에 들진 않았다.

'시야가 구려.'

차라리 체조경기장에서 기간을 늘려서 2주를 해달라며 울부짖고 싶었지만, 투어 때문에 불가능하다는 건안다.

'크흑'

일신상 사정으로 이번 투어를 전부 완벽하게 따라가긴 힘든 홈마는 맥주를 원샷 했다.

'몇 번은 그냥 데이터 사야겠지….'

술이 달았다.

그리고 가까스로 좋은 이야기를 꺼냈다.

"…그리고 콘서트 끝나면 곧 시상식 시즌이잖아. 투어 가도 애들 얼굴 자주 보겠어!"

"헉! 그러네!"

이번 테스타의 시상식 성적은 제법 기대가 컸다.

'VTIC이 불참할 가능성도 있고.'

멤버 하나가 클럽에서 터진 지저분한 사회적 논란에 엮이며, 그룹 자체의 컴백이 지연되었기 때문이다.

덕분에 VTIC은 선공개 곡만 내고 소식이 없어서 팬들이 애가 타는 것같았다.

칼같이 논란 멤버를 잘라낸 후로는 공식 SNS 등지도 잠잠하다고 한다.

심지어 멤버 생일에도 조용했다던가.

'생일자가 청려였지?'

우리 애를 은근히 먹이는 건지 아니면 친한 건지 알 수 없는 놈이지만, 어쨌든 제일 익숙한 놈이 슬쩍 떠올랐다.

하지만 순식간에 사라졌다.

'뭐 1군인데 알아서 잘해 먹겠지.'

사실 VTIC이라는 변수를 빼도 테스타의 기세는 확실했기 때문이다.

특히 박문대는 최근 상승세가 더가팔랐다.

어느 정도냐면, 요 반년 동안 새로운 홈마가 우수수 붙었다.

'대체 몇 명이나 갈아탄 거야!'

다른 그룹의 홈마도 슬쩍 말없이 갈아타는 걸 오프라인에서 목격한게 한두 건이 아니었다.

심지어 이번 콘서트에서 하필 그녀와 같은 구역을 잡은 사람도 그런 케이스였다.

'큰세진까지 묶어서 트윈 홈이었지!'

지난 첫 번째 콘서트에서 간 볼겸 슬쩍 큰세진 찍는 것 같더니, 기다림이 좋아 무대에서 엄청난 퀄리티의 아이컨택 사진을 뽑아서 익명 사이트에 풀었다는 카더라는 들었다.

그런데 정말 홈까지 열면서 그 사진의 다른 컷부터 푼 것이다.

박문대와 투 컷으로 찍힌 사진까지 함께!

'…큰세진만 찍을 줄 알았는데 문대까지 같이 운영할 줄이야.'

은근한 경쟁심리가 심장에 불을 붙였다.

이번 콘서트에 반드시 그 갈아탄 트윈 홈보다 끝내주는 문대 사진을 뽑고 말리라!

본인도 갈아탔다는 사실을 무시한채로 홈마는 굳게 다짐했다.

"나 이번에 진짜 끝내주는 컷 뽑아온다."

"아∼ 완전 좋지! 나도 보여줘!"

대학원생은 해맑게 대답했다. 그리고 새 맥주를 시켰다.

"그럼 짠!"

"짠!"

둘은 다가오는 콘서트를 생각하며,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잔을 다시 부딪 쳤다.

콘서트 첫날 당일, 울부짖으며 응원봉을 흔들다가 깨 먹게 될 것이라는 건 상상도 못 했을 때였다.

그리고 테스타의 콘서트 당일 리허설 현장.

"자, 바로 옮겨주세요!"

"예!"

공연을 앞두고 다양한 사람들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그중에는 당장 필요한 일손을 채우기 위해 급하게 고용한 일일 아르바이트 스텝도 많았다.

'아, 개빡세네.'

한 일일 스텝은 옮기던 짐을 짜증스럽게 툭 내려놓았다. 일급 7만 원보고 지원했으나, 끝없는 노동에 질린 것이다.

"…."

일일 스텝은 주변을 보다가 눈치껏 슬쩍 스마트폰을 꺼냈다. 그리고 익명 사이트에 분노에 찬 글을 올렸다.

[남돌 콘 스텝이다 질문 안받음]

: 차라리 상하차를 해라 X나 최저주면서 시키는 건 더럽게 많다

빠순이들 벌써 밖에 개많은데 다들 할 짓이 없나ㅉㅉ

'어그로 괜찮지?'

그럭저럭 흥미가 갈 만한 글이었는지 댓글이 몇 개 달렸다.

다만 좋은 이야기는 아니었다.

-ㅋㅋ상하차 해본 적 없는 새끼네

-스텝은 무슨 딱 보니 일일 알바각

-ㅋㅋㅋㅋㅋㅋ 그럼 알바한테 일안 시키냐 븅신 쉑

-빠순이=돈 씀, 글쓴이=최저 받음

'개X끼들이…!'

알바는 씩씩거리며 스마트폰 화면을 껐다.

"거기! 뭐 해요!"

"…! …예."

알바는 날카로운 지적에 눈치를 보며 건성건성 짐을 들어 옮겼다. 주변에서 바쁘게 움직이던 같은 알바들이 힐끔힐끔 쳐다봤으나, 이미 의욕은 없었다.

'그냥 추노할까.'

탈주 각을 살살 보고 있을 때, 갑자기 한쪽에서 웅성거림이 들렸다.

'뭐야?'

고개를 빼서 살펴보니, 유명한 얼굴들이 보였다.

"…!"

테스타가 리허설을 하러 온 것이다.

그들은 관계자들과 함께 통로로 바쁘게 이동하면서 여기저기 고개를숙였다.

"안녕하세요∼"

"…!"

마침 이세진이 알바와 눈을 맞추며 서글서글하게 인사했다.

잘 관리된 큰 체격과 얼굴이었다.

"가자."

"오케이∼"

박문대가 이세진을 툭 쳤다. 둘은 몇 번 더 고개를 숙이고 얼른 다시 발을 옮겼다.

"다 잘생겼다."

"우와."

"좀 신기해."

옆에서 같은 일일 알바들이 신나서 속삭였으나, 탈주 각을 보던 알바는도리어 기분이 나빠졌다.

'뭐 얼마나 대단한 일 한다고.'

박탈감이 었다.

비슷한 나잇대의 사람이 어마어마한 성취를 거두었는데, 별로 인정해주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나온 태도였다.

다만 탈주하고 싶던 마음은 좀 줄었다.

'뭘 얼마나 하나 보자.'

인성이든 실력이든, 프로그램 하나로 무명 기간도 없이 뜬 놈들이 흠이 없겠는가.

요새는 인증글 하나로도 온갖 사실을 증언할 수 있었다.

'뭐, 익명인데 잡을 수 있겠어?'

알바는 안일하게 생각하며, 그다지 건전하지 않은 즐거운 망상에 빠졌다.

그리고 한 개인의 공상과는 관계없이, 콘서트는 많은 사람의 기대와 수고 속에서 착착 원활히 진행될 준비가 끝났다.

[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 183화]

테스타의 콘서트는 묵직한 배경음 속에서 시작되었다.

쉬이이익!

순간 깜깜해진 공연장 앞, 거대한 전광판에 바람을 가르는 소리와 함께 어두운 영상이 떴다.

한밤중 소나무 숲이었다.

[….]

먹으로 그은 듯한 붓 자국 효과와 함께, 소나무 사이에서 누군가 걸어나왔다.

철릭을 걸친 류청우였다.

마치 '행차' 뮤직비디오 마지막 장면과 연결되는 듯한 구성이라는 생각이 들 찰나.

그의 뒤로 여섯 명이 함께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울리기 시작한 북소리와 세찬 꽹과리 소리.

'행차'의 반주였다.

와아아아아-!

돔을 가득 채운 이만여 명의 환호가 메아리치는 가운데, 인트로가 끝나기 전에 전광판 아래에서 실제 멤버들이 공연장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대형을 갖추자마자, 강렬한 랩 벌스와 안무가 치고 들어왔다.

-발버둥 쳐도 피할 수 없도록

오늘 납신다 행차, 하신다

팬들은 비명을 지르면서도 머릿속으로 순식간에 짧은 생각들이 지나갔다.

'행차부터 때려?'

'와 솔로곡 다 하고 마지막에 할줄 알았는데!'

첫 번째 콘서트 때도 그랬지만, 배짱 넘치는 세트 리스트 구성에 관객들은 잔뜩 흥분했다.

심지어 백스테이지 등에서 바쁘게 움직이던 스탭들도 드디어 콘서트가 시작된다는 생각에 긴장하는 동시에, 회장의 분위기에 전염되어 다소 분위기가 올랐다.

물론 모두가 그랬던 것은 아니다.

'노래 왜 이래.'

백스테이지 통로 출입 통제 업무에 배치된 일일 알바는 사람들의 고함을 들으며 인상을 찌푸렸다.

음향 스피커 소리에 관객과 안쪽 스텝들의 목소리까지 울리며 귀가 아팠다.

'개시끄럽네.'

반쯤 가려진 전광판에 간간이 멤버들의 얼굴 일부가 보였다.

"야 여기서도 좀 보인다!"

"오 잘생김."

저 생각 없는 다른 알바들처럼 재밌어하거나 감명받기 싫었다.

'연예인들 다 병원에서 관리 받을텐데 돈을 얼마나 쓰겠어?'

각도상 무대는 잘 보이지 않았으나, 뭐 뻔하게 아이돌 안무 같은 거 하고 있으려니 싶다.

다만 그 온갖 소음 속에서도 테스타의 목소리는 또렷하게 통로까지 들렸다.

'사전 녹음이겠지 뭐.'

알바는 최대한 시니컬하게 생각하며, 슬쩍 스마트폰을 만졌다.

지금쯤 한번 실시간 중계글을….

"저기요, 스마트폰 보지 마세요."

"…."

같은 알바면서 지랄은.

알바는 구시렁대며 스마트폰을 넣었다.

'조금 있다가 다 보고 올린다.'

아주 인증까지 첨부해서 올릴 생각을 하며, 알바는 불퉁하게 통로에서서 인상을 찌푸렸다.

그리고 일일 알바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든 간에, 무대 위와 아래에는 미친 듯이 공연 진행이 몰아치고있었다.

"VCR 120초!"

"다음 의상 빨리요!"

'행차'가 끝나자마자 이어진 것은 게임 127 Section) 콜라보곡 일부와 당시의 타이틀인 'Better me'였으나, 원곡이 아닌 리믹스 버전이었다.

'행차'의 흐름을 이어가기 위해 전통악기로 편곡하고 후렴 대부분을 한글로 바꿔 버렸기 때문이다.

-지금 이 순간에는

날 넘길 순 없어 절대

짐승의 아가리 같은 거대한 무대장치와 댄서들 사이에서 고음의 후렴구가 송곳처럼 찌르고 올라갔다.

그리고 풍물놀이의 상모와 유사한 흰 끈들을 이용해 매우 날렵한 댄스브레이크가 펼쳐졌다.

-Better me

수많은 댄서와 함께 끈을 하늘로 날리며, 몰아치듯 쏟아진 세곡의 공연이 마무리되었다.

콘서트다운 화려한 연출이었다.

아아아악-!

응원봉이 미친 듯이 흔들리며 중앙제어를 통해 색색으로 깜박이는 가운데, 다시 VCR이 들어갔다.

그리고 멤버들과 댄서들이 통로로 쏟아지듯 들어왔다.

" 의상!"

"아현 씨 여기요!"

"네…!"

헐떡이는 멤버들 사이에서 선아현이 후다닥 움직였다.

첫 번째 솔로곡 무대가 즉시 이어졌기 때문이다.

"아현이, 헉, 체력 좋네."

"흡, 폐활량이, 과연, 무용 전공이십니다…."

그리고 다른 멤버들이 각자 자신의 솔로곡을 되새기며 한숨 돌려야 할타이밍.

"문대야?"

"문대 씨, 괜찮아요!?"

"…후, 예."

박문대가 복도에 스르륵 기대앉아 한숨을 쉬었다.

"찜질할까?"

"괜찮습니다."

박문대는 단호하게 대답하고 땀을 닦아냈다.

'생각보다 할 만하다.'

갈비뼈는 며칠 전에 다 붙었다. 다만 '무리하진 말라' 정도의 말을 듣기는 했다.

'그거야 병원에서 당연히 할 말이고.'

누가 다 나았으니 막살아보라고 하겠는가. 박문대는 뚱하게 합리화하며 폐가 있을 법한 자리에 손을 올렸다.

'손목은… 여전히 약간 통증은 있어.'

하지만 괜찮을 것이다.

'구성을 잘 짜놨으니까.'

박문대는 확신이 있었다.

위에서는 드디어 선아현이 무대를 하는 소리가 들렸다.

-일렁이는 말결

그 목소리들 중에

네 숨소리가 들려

으와아아악!

"다들 너무 좋아하신다∼"

"…그렇겠지."

박문대도 알았다.

수면 위에서 물방울을 튀기며 움직이는 선아현의 무대는 분명 화려할것이다. 조명도 잘 썼을 것이고.

"와우! 저 가요!"

"네, 네! 이동합니다!"

그다음 무대인 차유진이 신나서 스텝의 등을 치며 뛰어갔다.

'빨리도 갈아입었군.'

진행은 순조로웠다.

뮤직비디오 티저에서의 순서대로 구성된 솔로곡 무대들은 그 순서에깜짝 놀라운 인상을 주진 못하더라도, 짜임새를 만들었다.

최종적으로 솔로곡 무대가 모두 끝났을 때 주는 여운이 있을 것이란 뜻이다.

"차유진 다음이 나…."

"잘할 거야. 걱정하지 마, 세진아."

박문대의 옆에서 긴장으로 날 선배세진의 목소리와 류청우의 격려가들렸다.

'무대 장치를 영리하게 잘 구성했으니, 저쪽도 문제는 없다.'

배세진의 무대는 회전 무대 장치와 여러 마술적 요소가 들어갔다. 아마 오늘 콘서트 무대 중 제일 비용이 비쌌을 것이다.

그러니 차유진 다음이라도 버틸 만할 것이라고, 박문대는 짐작했다.

'관객들이 신기할 테니까.'

도리어 다른 놈을 넣었으면 무대역량이 비교되는 상황에 괴로워했을 지도 몰랐다.

박문대가 슬쩍 말을 얹었다.

"맞아요, 형. 좋았으니까 걱정 마세요."

"…아, 알았어."

"아∼ 훈훈하다!"

이세진이 씩 웃었다. 그 너머에서 비하인드 컨텐츠용 카메라가 따라붙는 것이 보였다.

'…혹시라도 토하는 꼴은 없어야겠군.'

방영은 안 되겠지만, 카메라가 찍는 걸로도 상당히 민망할 것이다.

박문대는 털고 일어서서, 자신의무대를 준비하기 위해 이동했다.

그의 솔로곡 무대는 5번째였다. 시간은 넉넉했다.

'나온다.'

김래빈이 야광 불빛으로 번뜩이는 무대 조명들 아래에서 리드미컬하면서도 살짝 귀여워 언밸런스한 매력이 있는 솔로곡 무대를 하고 들어갔다.

그 순간, 찢어지는 환성 속에서 홈마가 했던 생각이다.

'이제 박문대 차례야.'

연습 겸, 김래빈의 사진을 몇 장찍은 게 제법 잘 나와서 더 손에 힘이 붙었다.

'애들이 무대가 다 좋네.'

선아현부터 김래빈, 심지어 배세진의 무대까지 재밌었다.

'문대야 가창력만으로도 찢어버리겠지…!'

자신으로부터 세 칸 옆에 박문대와 큰세진의 트윈 홈마가 앉아 있는 것을 의식하며, 홈마는 엄숙하게 카메라를 슬쩍 들었다.

마침 저 앞의 텐딩석에 있던 어떤사람의 카메라가 보안요원에게 잡히는 것이 보였다.

직전 무대에서 앞사람 어깨에 백통 올리려던 사람이었다.

'하수로군.'

걸려도 잡아떼지 못하는 모습을 보며 홈마는 반사적으로 생각했다.

그리고 이 모습에 가치 판단적인 생각을 하는 사람도 있었다.

'진짜 웃기네.'

바로 백스테이지 통로에 서 있던 알바였다.

알바는 보안요원에게 카메라를 뺏기는 관객을 보고 혀를 찼다.

'아니, 뭘 저렇게 찍어대. 쪽팔리지도 않나.'

공연을 즐기지 못하는 빠순이라며, 알바는 다소 깔보는 자세로 생각했다. 벌써 인증글 멘트 하나가 머릿속에서 뚝딱 나왔다.

-X나게 사진만 찍어대던데 콘서트가 얼마나 노잼이면ㅋ

생각하면서 히죽거리던 알바는 어깨를 으쓱했다.

'콘서트 시작하니까 이 알바 개꿀이긴 하네.'

백스테이지 통로에 접근하려는 관객 자체가 별로 없어서, 알바도 쉽게 빈둥댈 수 있었다.

그 순간이었다.

"여기 안쪽에 사람! 따라오세요!"

안쪽에서 스탭이 달려와서, 알바들을 부르기 시작했다.

뭐가 쏟아졌다는 것 같았다.

'뭐야 또.'

알바는 투덜거리며 재촉하는 스텝을 따라 발걸음을 옮겼다.

그 뒤로, 느릿하고 아름다운 VCR이 끝나고 박문대가 무대 위에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와아아아-

무대의 정적인 분위기에, 환호성은 제법 빠르게 정리되었다.

어두운 무대 위, 한 줄기 조명을 받고 있던 박문대는 다수의 예상대로 의자에 앉아 있었다.

다만 뮤직비디오 티저에서 봤던, 폐가를 감싸고 돌던 색색의 천들이 무대에서도 사방에서 뻗어 나와 의자와 박문대를 친친 동여매고 있었다.

그리고 의상은 혼례복이 아니라 가벼운 하얀 무대의상이었다.

반주도 흘러나오지 않는 고요한 무대 위.

박문대가 먼저 노래를 시작했다.

-사월 그믐날

달도 보이지 않는다

님은 오지 않고

사랑은 썩어 간다

무겁게 목소리만 오롯이 울리는 첫번째 소절이 끝나는 순간.

몰아치듯이 악기 소리가 들어왔다.

우우우우!

단조의 국악기가 살짝 잦아들 순간, 다음 소절이 이어지며, 조명에 색이 들어왔다.

붉은빛과 파란빛, 점멸하는 조명이 이상한 긴장감을 고조시켰다.

'으허억.'

홈마는 간신히 카메라를 부여잡은 채로 박문대의 목소리를 들었다.

'개잘불러.'

정말 이 말 외에는 할 말이 없었다. 홈마는 침을 삼키며 박문대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헤메코 다 좋아.'

그리고 귀로는 후렴을 달리며 몰아치는 감정적 고음을 빨아들이듯이들었다.

-그래도 기다리리

'그아아악.'

홈마는 후렴이 끝나는 순간 카타르시스에 심장을 졸였다.

'목소리만으로 이렇게!'

기분이 끝내줬다.

하지만 2절에 들어가는 순간, 상황이 변했다.

-그믐이 지나

해는 떠오지 않는다

그 가사와 함께, 박문대의 한쪽 손이 반쯤 허공에 들렸다.

마치 팔에 감긴 천이 잡아당기는 듯한 모습이었다.

'어?'

약간 기묘한 그 움직임이 박문대가 직접 움직인 것이겠거니 황급히 납득하려던 순간, 이번에는 다른 쪽팔이 각도를 달리해 올라왔다.

-님은 오지 않고

사랑은 썩어 간다

그리고 박문대는 그대로 허리가 들려 허공으로 올라갔다.

"…!"

마치 천에 이끌려서 무중력 공간을 유영하는 것 같은 움직임이었다.

의자 위로, 누워서 몸을 늘어뜨린 자세로 올라가며 박문대는 노래를 이었다.

"…어."

홈마는 저도 모르게 소리를 냈다.

그와 비슷한 얼굴이 관객석 여기저기서 출몰했다.

그리고 이것은 비단 관객석만의 이야기는 아니었다.

안쪽에서 무너진 짐을 정리하던 알바도, 정면의 모니터링용 화면을 통해 무대 전광판에 송출되던 장면을 보았다는 뜻이다.

"…억 "

알바는 짐을 든 채, 입을 떡 벌리고 화면을 보았다.

그리고 잡혀간 관객이, 왜 그토록사진을 찍으려고 했는지 느끼게 된다.

[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 184화]

박문대는 계속해서 허공으로 떠올랐다. 팔다리가 공중에 떨어지면서도 누워 늘어진 몸이 극적으로 우아한 선을 유지했다.

그리고 계속 노래를 불렀다.

-이 연심 다 녹아

기대 한 점 없을 때까지

애타고 부수어

떠도는 티끝 될 때까지

선뜩한 노랫말처럼, 정적이면서도 강렬한 퍼포먼스였다.

멍하니 그 광경을 지켜보던 홈마는, 퍼뜩 무언가를 깨달았다.

'그래서 헤드 마이크를!'

의자에 앉아 있던 순간부터 스탠딩 마이크나 핸드 마이크가 아니라 헤드 마이크를 차고 있던 것이다.

'천을 묶여서 분위기상 안 든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라, 저 미친 퍼포먼스 때문이었다.

심지어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그래도 기다리리

마지막 후렴이 몰아칠 순간.

반주는 갑자기 느린 현악기 독주로 변했다.

그 구슬픈 소리 속에서, 가수의 온몸을 동여매고 있던 천이 풀리며 바람에 따라 휘날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전광판에 흐린 밤하늘이 비치기 시작했다.

"…!"

별도 잘 보이지 않는 흐리고 어두운 밤을 배경으로 흔들리는 원색 천들.

그리고 가운데 떠 있는 흰 인영.

마치 그를 끌어올린 것처럼 묶여있던 천이 다 풀렸는데도 박문대는여전히 몸만으로 허공에 떠 있었다.

'미친.'

어떻게 한 건지 생각할 겨를도 없었다. 그 장면의 모든 요소가 극적인 대비를 이루며, 일종의 현대예술처럼 보이기까지 했다.

조명에 하얀 의상이 반짝였다.

노래는 흔들림 없이 아름답게 흘렀다.

-마침내 오신 날

참 어여쁘다 하실 날까지

타오르는 것 같던 원곡과 달리, 슬픔이 맑게 와닿는 것 같은 창법과 반주였다.

-기다리리

회장에 오케스트라의 합주 소리가 울렸다. 무대 아래에서 실제로 연주되는 소리였다.

박문대의 몸은 선율을 타고 천천히 허공에서 내려왔다.

그리고 다음 순간.

마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던 것처럼, 박문대는 얌전히 의자에 앉아 있었다.

사방으로 풀어 헤쳐진 천들이 바닥에 무늬처럼 깔려 있었다.

픽.

예고 없이 조명이 꺼지며, 무대는끝났다.

와아아아!

공연장을 울리는 비명과 탄성이 백스테이지까지 떨리도록 만들었다.

그리고 짐을 쌓으면서도 모니터링 화면을 힐끔거리던 일일 스텝들은다들 내심 감탄하는 중이었다.

직접적으로 전광판 화면을 정면에서 보니, 돈 주고 볼 만한 공연이라는 생각이 든 것이다.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던 불만 많은 알바 역시 마찬가지였다.

'실제로 보면 진짜 더 쩔 것 같은….'

하지만 모니터를 거쳐 간접적이었던만큼, 공연의 마법은 빨리 풀렸다.

'…근데, 어차피 다 장비빨 아니겠어?'

저거 다 무대 만든 전문가들이 잘한 거지, 솔직히 가수야 그냥 노래만 한 거 아닌가.

'아까처럼 라이브 아니었을 수도있고 말이야.'

알바는 애써 감흥을 무시하며, 다시 건성건성 짐을 건드렸다.

그래도 애는 쓰는 것 같으니, 저놈에 대해서는 나쁜 말을 쓰지 말아줄까, 살짝 갈등하면서.

그때, 통로 한참 저쪽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지금까지 공연 중에 들어본 적 없을 정도의 백그라운드 소음이었다.

"뭐야?"

"사고 났나?"

멀리서 작게 '야, 산소마스크!' 하고 외치는 소리가 섞여 들렸다.

하지만 곧 이세진의 공연이 시작되며, 백그라운드의 소음은 거의 들리지 않게 되었다.

'에이씨.'

뭐라도 '썰'로 풀만 한 것이 있을까 싶어 귀를 세우던 알바는 입맛을 다셨다.

하지만 잠시 후.

짐 옮기는 것에 새롭게 배정된 사람들이 주워들은 소식을 알바의 주변에서 속닥거렸다.

"뭐 장치가 잘못 눌려서 졸도했다는데?"

"헐."

"박문대야?"

"순서상 그런 듯? 막, 그럼 신호를 주지 왜 그랬냐고 스탭들 막 떠드는것 같았는데… 엿듣다 쫓겨남."

"개 아깝다."

"…!"

안 듣는 척 엿듣던 알바도 알아차렸다.

'아까 공중무대 했던 놈이 쓰러졌나 보지?!'

요새 위튜브 인기 동영상에 많이 떠서 알바도 그 이름은 알았다.

1위로 데뷔한 박문대.

무대를 마치고 내려와서야 쓰러졌다니, 어디 미담에서나 듣던 열정의 프로의식이긴 했다.

'…근데 저러고 쓰러지면 남은 무대는 어떻게 하려고?'

도리어 생각이 없는 게 아닌가, 알바는 최대한 비꼬아 생각했다.

하지만 8분 뒤.

마지막으로 류청우의 솔로곡이 끝나고 다시 단체 곡을 시작하는 순간이었다.

[번지는 Midnight

일그러진 초점이

흔들려 시간을 애태워]

모니터링 화면에 잡힌 박문대는…멀쩡한 얼굴로 자기 파트를 소화하고 있었다.

"…!"

쓰러졌던 흔적은 온데간데 없었다.

그리고 그 간극을 목격하는 것은 왠지 직접적으로… 사람 마음을 찌르는 뭔가가 있었다.

'…대단하긴 하다.'

갑자기 맥이 탁 풀리듯이, 알바는 마음이 홀가분해졌다.

저렇게까지 이를 악물고 열심히 하는 걸 보니, 도리어 열등감이 가라앉아버린 것이다.

"복귀합시다!"

"예∼"

쏟아졌던 짐을 다 정리하고, 본인이 있던 백그라운드로 돌아간 후에도, 알바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

그리고 시끄러운 공연장을 배경으로, 스마트폰을 꺼내 글을 작성했다.

[남돌 콘 스텝 중간 후기]

빠순이 개 많음 고함 X나 지르는데 시도 때도 없다.

그래도 공중에 뜨는 무대는 지렸음 혼잔데 X나 열심히 하더라

문제 생겨서 노래 끝나자마자 산소마스크 쓰고 졸도했는데 솔직히 이새끼는 킹정함

악의 없이 적은 글이었다.

그러나 댓글은 처참했다.

-ㅌㅅㅌ알바임?

-빠순아 노력이 눈물겹다

-관심 없음

-쌍팔년도에도 이런 영업은 안 했을 듯 다음 주작ㅋ

"이 새끼들이…!"

열받은 알바는 통로에서 자신의 조끼가 보이게 찍은 뒤, 의기양양하게인증샷을 올렸다.

'이제 그런 소리 못 하겠지!'

그리고 30분 뒤.

"여기 이거 누가 올렸어요?"

'허어억.'

즉시 색출된 알바는 비밀유지 위반으로 보안요원에게 끌려갔다.

촌극이 따로 없었다.

하지만 외곽에서 벌어지는 이런 사태와 별개로, 콘서트는 쭉쭉 진행되어 마침내 중간 브레이크 타임에 이르렀다.

바로 토크 순서였다.

[테스타의 두 번째 콘서트죠!]

[Enchanted ME에 참여하러 와주신 여러분,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와∼]

류청우의 진행에 멤버들이 박수를 치며 웃었다.

직전까지의 공연으로 아직 땀을 흘리거나 숨을 고르고 물을 마시는 녀석들이 대부분이었으나 그것도 나름대로 매력이 있었다.

마침 나란히 앉아 있는 이세진과 박문대를 줌을 당겨 잡으며, 카메라를 든 직장인은 무심히 생각했다.

'기왕이면 진행도 이세진 주지.'

바로 둘의 트윈 홈, 'Puppy Bear'를 운영하기 시작한 홈마였다.

'세트 리스트 유줄 보니까 유닛 무대도 없다던데.'

아쉬웠다. 슬슬 둘이 하는 무대도 찍고 싶… 아니, 보고 싶었는데 말이다.

직장인은 빠르게 견적을 낸 뒤, 그래도 흐뭇한 기분이 되었다.

'팔로워 붙는 게 단위가 달라.'

본래 운영하던 중소 기획사 출신 남자 아이돌의 팬 계정의 팔로워 수치를 6주 만에 넘겼다.

덕분에 더 간 볼 것도 없이 기존 계정 닫고 넘어왔다.

'이 맛에 찍는 거지.'

역시 인기 있는 놈들 잡는 게 맞다며, 직장인은 다분히 계산적으로 생각했다.

'특히 이세진은 롱런할 타입이야.'

마침 당사자가 입을 열고 있었다.

[아아! 혹시 오늘 공연 보시면서, 아∼ 우리 구역 너무 소외됐어! 눈도 안 마주쳤어! 하시는 분들 계신가요?]

나! 나!

여기!

우렁찬 소리가 공연장을 울렸다.

이세진이 싱글벙글 웃으며 소리가 들리는 곳마다 '여기? 여기?' 되물으며 손가락으로 포인트를 집었다.

박문대가 미미한 미소와 함께 제안했다.

[그럼 저희 인사 한 번씩 하고 진행할까요.]

[아, 훌륭한 생각이십니다∼ 스탠드업!]

[안녕하십니까!]

[우리 재밌게 보내요.]

우르르 일어난 테스타가 무대 끝을빙 돌면서 위아래로 인사를 했다.

웃음소리와 환호로 공연장이 훈훈해졌다.

직장인은 카메라를 끈질기게 따라붙이면서 입맛을 다셨다.

'복근이라도 보여주면 좋겠는데.'

한순간만 보여줬다 내려도 깔끔하게 잡을 자신이 있었다.

아쉽게도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지만, 토크는 자연스럽게 계속 이어졌다.

[공연은 재밌으셨나요?]

"네!"

직장인은 사방에서 외치는 사람들과 함께 반사적으로 대답했다가, 약간 머쓱해졌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진짜 재밌긴 했어.'

심지어 첫 번째 콘서트보다 장치도 화려하고 개인의 역량을 돋보이는구성이 많다 보니, 더 빠져들기 좋았다.

특히 박문대-이세진으로 이어지는 솔로 무대가 매우 좋았다.

극히 정적이고 예술적인 박문대의 무대 뒤에 화려하고 활동적인 이세진의 무대를 붙여놓으니 만족도가 배로 올라갔던 것이다.

'절대 내가 둘의 홈마여서가 아니라, 객관적으로 둘이 제일 잘했다고…!'

직장인은 침착하게 덕질했다.

[아, 열심히 준비했는데 정말 다행입니다!]

[감사합니다.]

[사실 저희가 즉석에서 짜는 무대도 하나 준비해 왔거든요!]

어어?

여기저기서 웅성거림이 나왔다.

'제발 헛짓하지 말아라.'

'즉석 무대' 같은 짓 하다가 숙연해지는 아이돌 콘서트를 몇 번 본적 있던 직장인은 이를 악물었다.

하지만 멤버들은 신나서 말을 계속했다.

[그전에 여러분, 이제 전광판에 문장이 하나 뜰 텐데요! YES 같으면 응원봉을 그대로 켜주시고, NO면 꺼주실 수 있을까요?]

[한번 해볼까요? 자, 꺼주세요!]

의아해하는 관객들도 있었으나, 순간 공연장 여기저기가 확 어두워졌다.

[와, 이거 무서운데요?]

[이만 명이 넘는 관객분들이 계시니, 당연히 큰 영향을 끼칠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렇긴 해.]

[사실 저도 무서우니까 빠르게 다시 켜주시면 안 될까요? …하하,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이어지는 설명은 간단했다.

한 멤버에 대한 설명을 듣고 맞을것 같다면 켜놓고, 틀릴 것 같다면 불을 꺼달라는 말이었다.

[자 그럼 문제 나갑니다… 오, '선아현은 고양이보다 강아지를 좋아한다!' 어떠신가요?]

반짝반짝

대부분의 응원봉이 꺼지지 않고 흔들흔들거렸다.

[오∼ 뭐 중앙제어 이런 거 쓸 필요도 없네요! 다들 YES시네!]

이세진이 호들갑을 떨자, 류청우가 웃으며 정답을 발표했다.

[정답은… YES 맞습니다!]

[아니, 어떻게 이렇게 잘 맞추시는거예요, 여러분!]

선아현이 쑥스러운 얼굴로 고개를 꾸벅거렸다. 멤버들이 박수를 치고관객석에서는 웃음과 환호가 울렸다.

같은 방식으로 7명의 멤버 각각에 대한 질문이 이어졌다. 관객들은 절반 이상을 성공했으나, 당연히 틀리기도 했다.

[아, 이런. 셋 다 래빈이가 단체 메시지방에서 쓰는 이모티콘, 맞습니다! 여러분, 래빈이가 이렇게 성숙한 친구예요.]

[저 수영 잘해요! 러뷰어, 혹시 이세진 수영 못할 것처럼 생겼나요?]

폭소가 이어지던 가운데, 마지막 타자가 나왔다.

박문대 였다.

박문대는 토크 내내 다소 조용했는데, 그래도 타이밍이 주어지자 부드러운 목소리로 전광판에 뜬 글을 읽었다.

[음, '박문대가 해본 요리 중 가장 많은 양은 7인분이다.' 어떨까요.]

반짝.

제법 많은 응원봉이 꺼졌지만, 과반수가 불을 켜놨다.

'멤버가 7명이니 7인분일 확률이높긴 하지.'

직장인도 켜놨다.

[정답은… 아! NO입니다]

헐!

멤버들이 아깝다며 코멘트를 하나씩 달고 난 뒤, 박문대는 다시 마이크를 잡았다.

[1인분으로 끝나는 경우가 없어요. 보통 넉넉하게 12인분 합니다.]

아아∼

관객들을 빠르게 납득했다.

'이건 우리가 잘못했네.'

'고 생각을 못 했어.'

반쯤 장난스러운 그 이해를 지나, 드디어 문답이 끝났다.

[자, 그럼… 여러분이 못 맞힌 멤버는 김래빈, 이세진, 박문대네요!]

[아∼ 조합 좋다!]

이세진이 자폭하자, 멤버들이 피식피식 웃었다.

[이 멤버들은 이제 벌칙을 받습니다!]

"…?"

"벌칙?!"

그냥 무대 전에 토크 시간 때울겸 하는 줄 알았는데, 뭔가 더 준비된 모양이었다.

[넵. 여러분.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멤버들은 우르르 일어나는 동시에, 무대 장치가 움직이며 오른쪽, 왼쪽에서 거대한 상자가 들어오기 시작했다.

[잠시 후에 봐요∼]

그리고 관객들이 정답을 맞힌 멤버들은 오른쪽으로, 못 맞힌 세 명은왼쪽으로 달려갔다.

오른쪽의 상자는 근사한 성이 프린트되어 있었다.

그리고 왼쪽은… 웬 인형이 그려진 티슈 상자 그림이었다.

"…?"

척 봐도 심상치 않은 기세에 관객들이 빵 터지며 웅성거릴 무렵, 갑자기 반주까지 흐르기 시작했다.

불길할 정도로 산뜻 발랄한 인트로였다.

[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 185화]

얼마 지나지 않아서, 무대 양쪽의 박스 중 하나의 문이 열렸다.

[TA-DA!]

관객 미니게임 승자들이 들어간 오른쪽 박스였다.

차유진이 먼저 신나게 박스 안에서 뛰쳐나오자, 다른 멤버들도 그 뒤를이어 웃으며 무대로 나왔다.

그들은 빨간 제복 같은 것을 입고 있었는데 흡사 '호두까기 인형'에서나왔을 법한 인형 제복의 형태 같아보였다.

귀여웠다는 뜻이다.

"으허허억!"

사람들이 의상에 환호하는 순간, 반주에는 어느새 멜로디가 포함되었다.

'아, 이거!'

'아∼'

많은 관객이 곡의 정체를 알아차렸다. 2000년대를 풍미했던 유명 동요였다.

다만 산뜻한 밴드 편곡을 세련되게 넣어두어, 딱 아이돌 콘서트에 어울리는 분위기였다.

좀 과하게 명랑하긴 했지만 말이다.

승리한 멤버들은 무대에 뛰어나와 여기저기 손을 흔든 뒤, 적당히 대형을 갖추고 서서 무대를 소화하기 시작했다.

딱딱 맞는 동작이었다.

-내 친구는

정말 정말 귀여워요

말은 없지만

마음이 따뜻해요

힐끔힐끔 프롬프터를 보고 하는 것같았지만, 승자팀은 노래가 몇 번 중창이 되어 웃음을 참으면서도 파트를 나눠서 썩 잘 불러냈다.

특별히 대형 변경은 없었으나, 그래도 즉석에서 팀을 맞췄다고 보기 힘든 퀄리티였다.

'귀엽네.'

다른 각도의 이세진 혹은 박문대 데이터와 교환할 생각으로, 직장인은 꽤 정성껏 데이터를 남겼다.

'무조건 차유진 찍어야지.'

단가가 제일 높은 놈을 말이다.

지극히 이벤트성에 가까운 무대에, 팬들은 큰 부담 없이 귀여움에 푹빠져서 응원봉을 흔들며 흥얼흥얼 노래를 따라 했다.

그렇게 훈훈한 분위기에서 1절이 끝났다.

[감사해요!]

[감사합니다.]

간주가 나오기 시작하자, 승자팀은 배꼽 인사를 하며 무대를 마무리했다.

귀여워!

관객석 여기저기서 환호와 웃음이 퍼졌다.

그리고 내면에서는 강렬한 예감이음흉하게 번뜩였다.

'이긴 애들이 이거면…. 진 애들은 더한 걸 하는 건가.'

'섹시다.'

'답은 코스튬이다.'

'요정 날개.'

온갖 사심이 몰아치는 가운데, 승자팀은 신나게 뛰어서 무대 아래로내려갔다.

그리고 그 순간.

지지지지지지지잉-!

갑자기 간주를 뚫고 한 줄기 일렉트릭 기타 사운드가 장렬히 울렸다.

"…?"

여기저기서 '으어?' 하는 웃음기 섞인 이상한 감탄사들이 나왔다.

'뭐야?'?'

당혹스러워하는 분위기 속에서, 이윽고 산뜻하던 간주는 순조롭게 헤비메탈 사운드로 치환되었다.

[으아아압!]

그리고 티슈 상자를 찢고 벌칙자들이 튀어나왔다.

"…I!"

"어어어!"

그들은 승자들처럼 멀쩡한 제복은 아니었다.

자기 몸 크기에 과분할 만큼 큼직한, 얼굴 부분만 뚫린 동물 인형 탈을 뒤집어쓰고 있었다.

바로 티슈 상자에 떠 있던 그놈들이었다.

뒤뚱뒤뚱 달려 나오는 그 동물 탈의 형태는 대놓고 귀여웠으나, 옷차림만은 갱스터가 따로 없었다.

반주와 굉장히 잘 어울렸다는 의미다.

"어어어어?"

공연장이 잠시 혼란스러운 사이.

세 멤버는 로큰롤 제스처를 한 채우다다다 무대 중앙으로 치고 나왔다.

흔들리는 인형 몸 때문에 잠시 갸우뚱거린 이세진은 양옆의 거친 밀침을 받아 바로 섰다.

'뭘 아는 놈…!'

직장인는 칼같이 그 컷을 잡았다.

바둥거리던 이세진은 율동 하며 간을 보다가, 적절한 타이밍에 화끈한포즈로 핸드 마이크를 들었다.

그리고 고음이 작렬했다.

-내 친구는!

정말 정말 상냥해요∼

손은 작지만

마음이 커다래요!

다만 목소리가 변조되어 있었다.

헬륨 가스를 마신 것처럼 종알거리는 목소리가 스피커에 울렸다.

그래서 더 고음이었다.

"아니!"

빵 터진 관객들이 내는 소음이 그 변조된 소리에 섞였다.

이어서 박문대가 두툼한 인형 탈의 앞발바닥으로 힘겹게 핸드 마이크를 올렸다.

-나는 친구가 좋아요∼

우리는 단짝이에요∼

자본주의 미소와 함께 화려한 오토튠이 객석을 감쌌다.

"으하하하!"

팬들은 이제 폭소하고 있었다.

직장인도 예외는 아니었다. 심지어 옆 사람이 사방을 때리지 않기 위해 응원봉을 치는 것까지 보았다.

'미친.'

그렇게 전위적일 수 없었다.

'미친!'

쓸데없이 너무 잘해서 너무 웃겼다.

그리고 당연하지만, 깜찍했다.

-단짝, 단짝

단짝 친구예요∼

친구야 사랑해

꼬옥 안아줘요∼

무슨 저주라도 하는 것 같은 저음의 목소리가 김래빈의 토끼 탈에서나왔다.

그리고 서로 안아주는 대신 등짝을 치고 앉아 있다.

덕분에 솜 덩어리를 주체하지 못하고 셋 다 넘어질 뻔한 것을, 또 서로 부여잡고 밀치면서 일어났다.

'세상에.'

후렴을 부르는 놈들이 천언덕스럽게 율동을 하는 꼴을 보며, 트윈 홈을 운영하는 직장인은 직감했다.

'이건… 이건 무조건 뜬다!'

이 개그, 이 임팩트.

실시간 트렌드와 인기 글에 뜰 미래가 벌써 선했다.

[테스타 미친 자들ㅋㅋㅋ]

[실시간 난리 난 테스타 콘서트.jpg]

'당장 프리뷰 때리고 돌아가는 길에 동영상도 짧게 떠서 올려야 해!'

직장인은 더 없이 열정적으로 데이터를 만들었다. 그리고 무대 위에서패배 팀 세 명도 더없이 열정적인 퍼포먼스를 보여주고 있었다.

인형 탈이 걸친 해골 무늬 토시와 검은 잠바 등을 아낌없이 벗어서 관객석이 던지고 있던 것이다.

참고로 종이로 만든 일회용이었다.

모양만 그럴싸하다.

"미쳤나 봐 진짜!"

"여기!"

팬들은 거의 웃다 울면서 환호했다. 모두 애티튜드만은 락스타가 따로 없었다.

-예압∼ 단짝 친구!

그렇게 화끈한 무릎 꿇기로 헤비메탈 버전 동요 퍼포먼스가 끝났다.

찢어지는 웃음과 환호 속에 뒤뚱뒤뚱 멋있는 척 퇴장하는 세 인형 탈놈들을 보며, 직장인은 부르짖었다.

'끝나자마자 업로드 간다!

'팔로워 떡상이 눈에 보였다!

그리고 막간을 이용해 바쁘게 카메라에서 사진을 골라 프리뷰를 점찍는 직장인과 달리, 그 근처에 있던또 다른 홈마의 내면은 만신창이었다.

'미치겠다.'

바로 박문대의 첫 번째 홈마였다.

그녀는 롤러코스터를 열 번쯤 탄것 같은 몰골로, 이미 박문대가 떠난 무대를 바라보았다.

사실 홈마는 박문대의 솔로 무대를 볼 때부터 이 상태였다.

'문대야 이게… 하.'

허공에 맨몸으로 누워서 떠오르며 노래를 부른다?

대체 어쩌다가 손목과 허리를 다쳤는지 너무 잘 이해되는 무대였다.

그래서 문제였다.

'너 다 나은 지 얼마나 됐다고 그걸 진짜 해…!'

저걸 수정도 안 하고 진짜 했다는게 사람 마음을 졸아들 게 만들었다.

그리고 더 큰 문제도 있었다.

'…대단했지.'

솔로 무대가 정말, 소름 끼치게 좋다는 것이다.

홈마의 모든 걱정과 싸한 예감에도불구하고 말이다.

'아티스트 보호로 공론화 힘들 것같아…'

그 무대를 좋아하는 사람이 너무 많아서, '문대만 괜찮다면 괜찮은거 아니냐'는 이야기가 대세가 되어버릴 것 같았다.

당장 본인만 해도 혹하는 중이니 말이다.

'너무 잘해서 문제라니.'

홈마는 넋 나간 얼굴로 맞은편의 VCR을 기계적으로 찍었다.

이 감상은 사실, 아까 했던 헤비메탈 동요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안 그래도 막 회복했다는 애가 숨가쁘게 단체 곡 소화하고 와서는 저무거운 인형 탈을 걸치고 뛰어다니는 걸 보니 온갖 생각이 다 들었다.

하지만 동시에, 귀엽고 흐뭇하고, 뿌듯한 건 어쩔 수 없던 것이다.

그래도 홈마는 그저 내면으로 울부짖는 수밖에 없었다.

'박문대 너 괜찮은 거 맞지?! 나중에 비하인드 뜨고 나 머리 안 박아도 되는 거지?!'

VCR의 박문대는 웃으며 몸을 돌렸다.

"욱."

"문대 씨!"

"너 괜찮아?"

괜찮다. 인형 탈 쓰고 도느라 달팽이관이 과로했을 뿐이다.

'웃기긴 했겠지.'

그럼 됐다. 사실 하는 나도 웃겼거든.

"괜찮습니다. 저 포도당 하나만."

"여기!"

스태프가 바쁘게 캡슐을 건넸다.

식염 포도당이다.

나는 포장을 제거하고 물과 함께 알약을 삼켰다. 즉시 메이크업 담당자가 붙어서 땀과 물기를 닦아냈다.

'앞으로 2분 30초.'

숨 고르고 나갈 시간은 된다. 이거지 같은 솜 덩어리도 다 벗었고.

마침 큰세진도 인형 탈을 벗어서 던지는 참이었다.

"너 숨 쉬어봐."

"멀쩡해."

호흡 곤란은 옛적에 지나갔다. 나는 혀를 찼다.

'하필 그게 그렇게 누르냐.'

내가 솔로 무대에서 준비한 퍼포먼스는 허공에 누워서 떠오르는 와이어 장치였다.

마치 천 덕에 떠 있는 것처럼 보이다가, 천이 다 풀려도 떠 있는 것으로 한 번 더 놀라움을 주는…

그런 걸 노렸는데, 잘된 것 같다.

사실 와이어라고 해도, 의상 아래허리 부근에 넓게 안전 장비를 덧대서 몸에 큰 부담은 없다.

제대로 설치만 된다면 말이다.

'틀어졌었지.'

리허설 때만 해도 멀쩡했는데, 아마 찰 때 바빠서 실수가 일어났거나정비 중에 뭔가 잘못된 모양이었다.

왼쪽 폐를 사정없이 누르더라고.

다행히 부러졌던 갈비뼈를 압박하진 않았기 때문에, 산소 부족 외엔 큰 애로 사항 없이 잘 마무리되었다.

그것도 내려와서 산소마스크 좀 달고 있으니 금방 상태 회복하더라.

'어차피 사고 없어도 산소마스크는 틈틈이 쓰니까.'

사실 류청우랑 선아현 빼면 다 쓴다. 얘네도 한두 번은 써본 적이 있고 말이다.

다만 사고는 사고다 보니, 다른 놈들이 바짝 긴장한 것 같았다.

당장 선아현이 침을 삼키며 물어보는 중이다.

"토, 통증 있다고…."

"특별히 없어. 체력도 괜찮아."

계속 놀고먹고 연습만 하느라 몸상태는 좋았다.

'팔목은… 음, 어차피 손목 과격하게 쓸 일은 거의 없지.'

이 정도는 서울 콘서트 끝나고 관리나 좀 받으면 될 것이다. 나는 어깨를 으쓱하며 턱짓했다.

"가자. 늦으면 안 되잖아. 대기해야지."

"으, 응…."

"…."

옆에서 보고 있던 류청우가 끼어들었다.

"문대야. 콘서트 끝나면 다시 이야기할래?"

"예. 좋죠."

장치 담당자 바꾸자는 이야기면 좀 깊게 대화해 보고 싶긴 했다.

그리고 다른 놈들도 한마디씩 얹었다.

"…몸, 안 좋아지면 꼭 이야기해."

"무엇보다 건강이 가장 중요합니다."

"그럴게요. 그래."

말을 안 하게 해주는 게 쉬는 데 더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다만, 내가 무슨 소시오패스도 아니고 고맙긴 했기 때문에 적당히 수긍했다.

"이동이요!"

제법 긴 VCR이 끝나고, 이제 다시 공연장으로 올라가야 했다.

와아아아-

함성.

그리고 공연장을 가득 채운 보랏빛 조명.

'첫 콘서트 생각나긴 하는군.'

그럴 만도 했다. 일부러 그렇게 구성한 것이니까.

인이어에 울리는 맑은 타악기 소리를 들으며, 나는 첫 파트를 불렀다.

-내일 만난 너를

오늘 내내 생각해

데뷔곡, '마법소년'이었다.

-낮처럼 파란 꿈을 꿔

그 순간, 관객석에서 빛나는 작은것 들이 바람을 타고 허공으로 날아오기 시작했다.

"…!"

비눗방울이었다.

수많은 둥그런 표면이 보랏빛 조명에 온갖 색으로 반짝였다.

"…."

이 많은 사람이, 나란히 비눗방울을 쏘고 있었다.

마치 첫 콘서트 시작 때처럼.

그 장면을 함께 기억하기 때문에.

[러뷰어 오늘 뭔가 보여준다!]

슬로건이 전광판에 잡혔다. 낯익은 문구가 변형되어 있다.

'재밌네.'

나는 웃었다.

'…좋네.'

아드레날린 때문에 뇌가 사라질 것같다.

무슨 약이라도 빤 것 같다.

남은 콘서트 시간은 순식간에, 쓱 녹아내린 것처럼 지나갔다.

그렇게 첫날 콘서트는 성공적으로 마무리 되었다.

여기저기서 호평이 자자했다는 소식도 들었다. 물론 콘서트를 볼 정도면 원래 테스타에게 호감이 있는 사람들이겠다만…. 그래도 제법 보람 있는 일이었다.

'좋아.'

다만, 모든 게 예상대로 흘러가지는 않았다.

"다시 고려해 보는 게 어떨까."

"…?"

멤버, 회사, 팬들이 각각 변수를 하나씩 끌고 나타났기 때문이다.

환장하겠네.

[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 186화]

나는 팔짱을 꼈다.

"그러니까… 제 솔로 무대를 수정하는 게 좋겠다는 말씀이죠."

"그래."

류청우가 굳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콘서트 첫날을 잘 마친 것을 자축할 겸, 숙소에서 적당히 특식이나 시켜 먹는데 이런 말을 들을 줄은 몰랐다.

'설마 나중에 이야기하자던 게 이거였나.'

장치 담당자를 잘라야지, 왜 애꿎은 내가 퍼포먼스를 포기해야 하냐.

그것도 혼자 하는 무대라 다른 누구한테 피해가 가는 것도 아닌데 이래라저래라하는 소리 듣는 것도 웃기는군.

나는 떨떠름하게 대답했다.

"그냥 실수한 사람 색출해서 바꾸고 계속하면 될 텐데요. 그 무대에서 특별히 부담 느낀 적 없습니다."

"넌 부담 안 느껴도, 네 손목이나 허리는 느낄 수 있어."

나는 한숨을 참았다.

"…괜찮다니까요. 애초에 못 참겠으면 안 했을 겁니다."

큰세진이 말을 물었다.

그렇다, 류청우뿐만 아니라 다른놈들도 무슨 회의라도 하는 것처럼 각 잡고 듣는 중이다.

"박문대. 우리 투어 일정 당장 잡힌 것만 3달이 넘어. 공연 횟수는 서울 제외해도 12번이야."

안다.

"너 그거 12번이나 할 수 있어? 매번 새 공연장에서 한 번도 실수안 하고 할 수 있겠냐고."

"그러니까 실수해도 괜찮았…."

"아, 안 괜찮았어."

"…!"

…선아현이다.

"문대 너 기절했잖아… 자, 잘못하면, 정말 큰일 나. 소, 손목도 아직 아픈데…."

"…."

머리가 지끈거리는군. 나는 어깨를주물렀다.

"…어차피 해외 나갈 때까진 시간이 있어. 그때 쉬면 충분히 회복 가능해."

"문대야."

류청우가 머리를 짚었다.

"네가 의사야?"

"…!"

"무슨 부상이든… 뼈가 다친 순간부터 후유증이 없을 거라곤 장담할 수 없어."

류청우가 쓴웃음을 지었다.

"내가 장담해."

"…."

이 새끼 치트키 쓰네.

나는 부상 후유증으로 최전성기도 전에 은퇴한 전 국가대표의 말에 입을 다물었다.

물론 항복 선언은 아니다.

'감정부터 잡아야 하나.'

'부상' 같은 예민한 키워드가 들어간 이상, 논리로만 설득하는 게 들어먹을 상대는 아니다.

'어느 쪽이든 그럴싸하게만 말하면….'듣고 보니 맞는 말이군' 특성은 터질 수도 있다.'

확률은 절반 이상 아닌가.

나는 적절한 구조를 하나 짜냈다.

그리고 주저하는 것처럼 말했다.

이런 식으로 호소하는 거지.

"그렇지만… 이걸 보여드리려고 오래 연습했는데요."

"…그건."

"구상부터 많이 고민하다가 만들었어요. 그리고 실제로 해보니까, 정말 반응도 좋았고…."

나는 진중하게 말을 마무리했다.

"딱 하루 하고 그만두긴 너무 아까워요. 힘닿는 데까지는 해보고 싶습니다. 부상 회복이 너무 더디면 나중에 양해 구하고 바꿀게요."

류청우의 얼굴이 살짝 어두워졌다.

'됐나.'

그러나 큰세진이 기가 찬 얼굴로 끼어들었다.

"너 실제로 장치 타본 건 2주도 안 되면서 무슨 연습을 오래 해."

이 새끼가.

"…그러니까, 구상을 오래 했다고."

"아 그래요? 너 다친 거 변명 만들려고 이거 골랐지?"

"…!"

"하루 해서 먹혔을 테니까 이제 좀 대안으로 가자. 자제하다가 나중에완전히 회복하면 해도 되잖아. 콘서트 앞으로도 계속할 텐데."

큰세진이 정색한 채 계속 말을 이었다.

"장기적으로 좀 봐. 너 이번 투어끝나면 은퇴할 거야?"

"…!"

"아니잖아."

그거야… 모르지.

계속 못 할 수도 있지.

그때, 나는 뭐에 대가리를 얻어맞은 것처럼 깨달았다.

'이걸 내가 신경 쓰고 있었나.'

이번 투어로 상태이상이 모두 끝나면, 내가 계속 박문대로 있을지 모르겠다는 점 말이다.

'그래서 이번에, 할 수 있을 때 꼭하고 싶었다고…?'

이건 너무 감상적이라 좀…. 무슨 애도 아니고.

나는 순간 떠오른 문장을 지우고더 상식적인 뉘앙스를 잡았다.

'그래. 하는 동안은 잘하자 싶었나보군'

무대는 내 생각보다 재밌었고, 보람이 있는 작업이었다. 게다가 보수까지 좋으니 나무랄 곳이 없다.

그 감각에 몰입한 상태에서 장기적 확신이 없으니, 내 기준이 좀 흐트러졌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은 든다.

그렇게 잠시 고민에 잠긴 사이, 큰세진이 쐐기를 박듯이 말했다.

"부상 후유증 계속 남아서 퍼포먼스 방해받느니 지금 딱 회복하고가."

"…."

그래, X발.

네 말도 맞다.

'내 몸 아니라고 막 쓰는 느낌도 좀 그렇긴 하지.'

어쩌면, 박문대로 계속 살 수도 있고 말이다.

나는 한숨을 쉬었다.

"알았습니다."

"…!"

"대안은 이미 있으니까, 내일 아침에 상태 보고 다시 생각해 볼게요."

조용히 듣던 배세진이 갑자기 외쳤다.

"너, 너 혼자 보지 말고! 병원 가서!"

"…음, 그래요."

어차피 내 솔로 무대이니 무시하고 강행할 수도 있긴 했지만, 이번에는 수용해 보자.

"잘 생각했어."

"내일 병원 꼭 매니저 대동해서 가고."

"그래야죠."

'이랬는데 의사가 괜찮다고 하면 재밌겠군.'

나는 답지 않게 희망찬 예측을 그리며, 내일 아침으로 결정을 유보했다.

참고로, 별 의미 없는 행보였다.

바로 그날 새벽에 콘서트 티켓 가진 사람들끼리 언쟁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그것도 제법 크게.

처음 콘서트가 막 끝났을 때까지만해도 분위기는 끝내줬다.

-얘들아 사랑해 테스타 영원해

-정신 못 차리겠어 나 왜 올콘 아니야ㅠㅠ 중콘 자리도 구했어야지 멍청아ㅠㅠ

-진심으로 모든 무대가 다 좋았다 자본 쏟은 게 철철 넘치는데 그것보다 퍼포먼스가 더 기억에 남아… 자세한 후기는 귀가 후 올릴 예정

-문댕댕 나의 자근 스윗사과떡 울보왕 또 갱신ㅠㅠ (사진)

-너무 울고 소리를 질러서 타자치기도 힘겨움 하지만 주말에도 내 자리가 있다는 게 인생 최고의 순간

물밑에서만 슬쩍 올리는 한탄 글도, 아쉬움에 애매한 반응도 거의 없었다. 그냥 즐거움의 물결이었다.

게다가 트윈 홈마의 예상처럼, 테스타의 토크 즉석 무대는 팬이 아닌사람들에게도 제법 화제가 되었다.

그 무대를 스마트폰으로 찍은 영상들은 콘서트가 끝나자마자 위튜브에우수수 올라왔다.

- 엌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현장에서 봤으면 나 울었을 듯 너무 웃어서

-옷 벗어 던지는 거 너무 웃겨 미친 거 아니냐고ㅋㅋㅋㅋㅋㅋ

-앞에서 잘생긴 애들 동요 흐뭇하게 보다가 ?됨

-아니 김래빈 원래 저런 이미지였어?ㅋㅋㅋ 상상도 못 함 개웃기네 진짜

-하필 찢고 나온 게 티슈 곽인 것도 웃음벨임

회사는 발 빠르게 SNS에 약간 위트 섞인 글을 남기며 대세에 탑승하기까지 했다.

울 테스타 모든 조합 다 소중해

Enchanted ME 투어에서의 모든 즉석 무대는 VOD 패키지에 특별 구성으로 포함될 예정입니다.

팬들은 '티원이 일을 빨리해?'라며 의구심 섞인 시선을 보냈으나, 그래도 즉석 무대를 정식으로도 다 모아볼 수 있다는 것에 안심했다.

-솔로곡들 쭉 이어보는 거 너무좋았다 마지막에 청우 끝나면서 애들 단체로 나오는 거 소름ㅠㅠ

-아현이 컨디션 좋아 보였어 날아다니더라 앵콜 때 여기저기 인사도잘하고…다만 내일은 아현이가 벌칙 받으면 좋겠다 러뷰어 친구들아 제발 틀려줘 (선아현 인사 사진)

-차유진 댄스 브레이크 진짜 살면서 한 번쯤은 생눈으로 봐야 됨

귀가한 관객들에 의해 자세한 후기가 난무하고 내일의 콘서트를 기대하는 글이 쌓이는 밤.

당연하겠지만, 박문대에 대한 글도 수없이 많이 올라왔다.

-박문대는 천사야 오늘 깨닫고 말았다

-내가 이 돈으로 봐도 괜찮을 걸까 의문이 들 세기의 대천재 퍼포먼스 다들 문댕댕 하세요

-허공에 뜨는 순간, 천이 풀리는 순간의 타이밍과 색감이 딱 문대 취향이더라 분명 문대가 기획에 참여했다는 생각이 들었음.

다치기까지 하면서 이걸 보여주고 싶었구나, 많은 생각이 들어서 오는길에 눈물이 줄줄 쏟아짐 광역버스 사연녀 됨

-솔직히 부상 남아있을까 봐 걱정했는데 진짜 무섭게 잘했음 우리 댕댕쓰 회복 빨라서 다행이지만 무리하지 말자ㅠㅠ

박문대가 우아하게 늘어진 채 공중에 떠오르는 순간을 찍은 절묘한 샷들이 온갖 각도와 버전으로 공유를 타고 SNS를 채웠다.

부상에 대한 걱정도 간혹 나왔지만, 워낙 무대가 좋았고 박문대가 태연했던 탓에 '회복이 빨랐나 보다'고 좋아하는 사람이 압도적이었다.

그렇게 믿는 쪽이 다음에도 그 무대를 실제로 볼 수 있으니, 더 편의적이기도 했다.

그러나 스르륵 여론이 넘어가려던순간.

글 하나가 발굴되었다.

[남돌 콘 스텝 중간 후기]

바로 '혼자 공중에 올라가는 무대'를 한 아이돌의 졸도를 증언하는, 알바의 후기 글이었다.

제법 빠르게 삭제되었으나, 인증사진까지 올라온 마당이니 진짜인것 같은 느낌에 캡처한 사람은 당연히 있었다.

그리고 정황을 맞춰보면 당연히 박문대가 나왔다.

-산소 마스크 쓰고 졸도…?

-심장 떨어질 것 같다

-개싸해 진짜 문대라면 그랬을 것 같아서 더 미치겠어

-창피하다 창피해 이 새끼들은 진짜 머가리가 없나 저걸 믿고 공유를태워ㅋㅋ

-돌들 콘서트 하면 산소마스크 다들 쓰지 않나 왜 저렇게 유난이지 열심히 하겠다는데 걍 즐겨 돈 내고 웬 시녀질임

-부상 회복 안 됐으면 진짜 아팠을 텐데 졸도할 정도였으면 상상이 안 돼 사진도 못 보겠음 어떡해 진짜…

-그냥 어그로 같은데 왤케 부화뇌동이지

-공식적으로 나온 이야기도 없는데 다들 좀 진정했으면… 혹시 일부러 이러나 곰머 대천재 솔로 무대견제인가;

온갖 의견이 소용돌이치며 팬들이 요동쳤다.

가뜩이나 부상 후유증을 걱정하던 사람들은 가슴이 철렁했지만, 공식적인 것도 아닌 글 하나였기에 다양한 입장이 나왔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입장은 시간이 흐르며더 심화되었다.

-이건 총공감이다

-당장 오늘도 콘서트잖아 또 하다가 부상 악화되면 어떡해 진짜 못참겠음

-제발 앞서가지 말자 또 머글들한테 조롱거리 되고 싶나

-일단 맞는 말인지는 확인하는 게좋을 듯

-긁어 부스럼… 어휴 돌이 잘하면뭐 하냐 진짜 탈빠가 답인가

소속사에 압력을 행사하려는 움직임과 회의적인 사람들의 의견이 교차하며 개판이었다.

조금 있으면 분열될 기세였다.

그리고 박문대는 아침에 일어나서이 꼴을 확인했다.

"…."

뒷골이 당겼다.

'이게 풀리냐.'

그는 '졸도라고 표현하니 심각해보이지만, 실제로는 잠시 몽롱해졌던 것뿐'이라며 투덜거렸다.

하지만 이 사태까지 오니 박문대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그래도, 관객들이 무대를 보면서 자신의 건강을 조마조마 걱정하는 건 내키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아침밥을 먹으며 인정했다.

"…그만둬야겠네."

"그, 그렇지!"

"잘 생각했어."

나는 호응하는 멤버들을 보며 덤덤히 한마디 덧붙였다.

"어. 근데 서울은 끝내고."

"…?"

속된 말로, 무슨 개소리냐는 시선이 쏟아지는군.

상관없다. 나는 꿋꿋이 말했다.

"관객들한테 설명하기 괜찮은 방법이 생각났거든. 이게 베스트야."

"문대야."

"서울 끝나면 진짜 다 회복할 때까지는 안 할게요."

내 무대를 하겠다고 내가 설득하는 꼴이 웃기긴 하다만, 어쨌든 이놈들은 마지못해 납득은 했다.

'이거 참.'

회사에 연락은 직후 바로 넣었다.

그리고 둘째 날 콘서트가 시작하기전.

회사를 통해 공지가 떴다.

[안녕하세요. T1 스타즈입니다.]

지난 금요일 테스타의 Enchanted ME 콘서트 중 '꽃 그믐' 곡의 퍼포먼스에서 무대 장치 오류가 발생하였습니다.

재설치의 위험성을 고려하여, 아티스트와의 상의 끝에 해당 곡의 퍼포먼스는 수정되었습니다.

다만 아티스트의 의사에 따라, 서울(Seoul)에서 진행되는 이번 콘서트에서는 전문가의 입회하에 변경없이 안전히 진행될 예정입니다.

그 뒤로는 '박문대는 멀쩡해'를 길게 늘여 쓴 내용이다.

요약하자면 '박문대 멀쩡한데 장치오류가 있어서 그랬어, 앞으로는 뺄게'다.

소속사도 팬들의 공격이 상당히 의식했는지, 어차피 이야기 다 도는 마당이니 장치 오류를 공개하는 것에는 동의했다.

욕은 좀 먹겠지만, 어차피 퍼포먼스를 수정해야 한다면 내 부상을 부각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예방'에 중점을 두는 게 낫다는 생각을 한듯했다.

'이러나저러나 또 장치 오류냐, 일 개못한다고 욕먹을 것 같은데.'

내가 신경 써줄 바는 아니다. 어쨌든, 담당자가 더 전문적인 사람으로바뀌었으니 이제 사고 날 일은 없겠지.

문제는 그다음에 회사에게 들은 말이었다.

-오늘 콘서트에 이번 아주사 파이널 멤버들이 보러 올 예정인데요.

카메라 들어올 예정인데, 아주 짧게 보고 가실 거라 편집 걱정 안 하셔도 괜찮고….

바로 이번 아주사 시즌4 참가자들이 테스타 콘서트를 보러 온다는 말이다.

물론 방송 컨텐츠다. 아마 직후 방영될 결승전에 '성공적인 테스타 콘서트를 보고 꿈을 다짐하는 참가자들'을 몇 컷 따 넣을 생각인 듯싶었다.

어차피 데뷔하면 이 소속사로 오기도 하니, 간을 보는 느낌도 있고.

'음, 회사의 자충수 같은데.'

사실 단순히 콘서트 참석뿐이라면 멤버가 거부하기도 애매한 건이다.

'이미 회사가 준 초대권을 뺏으라고 하기도 웃기지.'

Tnet 쪽 감정도 상할 테니 말이다.

나는 약간 고민할 뻔했다.

그러나 직후, 굳이 내가 심력을 소모할 필요도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 일도 아닌데 뭐.

'회사가 굳이 불바다를 보고 싶다면야….'

놔두자, 그냥.

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 187화]

"와 개짜증 나네."

자정이 넘은 시간, 김래빈의 개인팬은 식빵을 뜯으며 인터넷에 열중하고 있었다.

그녀가 자정 전에 다녀온 테스타의 토요일 콘서트, 즉 중간날짜 콘서트는 첫날처럼 성황리에 무사히 마무리되 었다.

-애들이 여유가 생겨서 더 좋았음멘트도 많이 쳐주고 앵콜 때도 싱글벙글 그저 행복 100%

-오늘의 벌칙조 : 선아현 차유진배세진 그리고 또 김래빈ㅋㅋㅋㅋㅋ

-러뷰어들 퀴즈 틀리려고 아주 기를 쓰던데 정말 너무하는 거 아님?

아님. 잘하고 있음 내일은 다 벌칙해야ㅇㅇ

-김래빈 토끼귀 3연발 (사진)

그 퀄리티와 즐거움에 대해서는 여전히 두말할 것 없이 여론이 좋았다.

즉, 그날의 잡음은 다른 요소들에서 나왔다는 뜻이다.

첫째는, 당연하겠지만 박문대의 무대 장치에 대한 회사 공지 때문이었다.

사과 대신 앞으로의 대책에 집중해서 쓴 입장문.

공산품 소비자를 상대하는 기업이었다면 그 방식이 혹시 통했을 수도있었으나, 엔터테인먼트 사업에서는 당연히 아니었다.

-미쳤나 봐

-진짜 애가 졸도한 게 맞았다는거네 X새끼들아

-이렇게까지 책임회피만 가득한 글 오랜만에 본다 말꼬리마다 아티스트가∼ 아티스트 의지가∼ㅋㅋㅋ돌았냐고

-장치 오류고 나발이고 서울까진 하겠다니 박문대 진짜 오졌다 막콘벌써 기대

-역시 곰머 부상 탓이 아니라 소속사가 일을 안 한 거였네ㅋ 티원이빨까지 말고 빨리 장치나 보강해 곰머 하고 싶은 무대 다 하게

-이제야 소속사에서 전문가를 붙였다는 게 믿기지가 않는다 그럼 지금까진 뭐했는데ㅋㅋㅋㅋㅋ

-그러니까 애 졸도하게 만들어놓고선 장치가 아까우니까 서울 콘까지는 시키겠다는 거야? 와우

당장에라도 트럭과 죽창을 소속사 건물에 아낌없이 보낼 것 같은 사람들부터 자신도 그 무대를 볼 수 있다는 것에 안도하는 사람들까지.

처음 루머가 퍼졌을 때처럼 다양한 반응이 또 각자 나왔으나, 이번엔 확실한 공통점이 있었다.

어느 쪽이든 소속사에 대한 평가가 바닥 이하로 떨어졌다는 것이다.

그것이 박문대에 대한 걱정이든, 소속사의 무능력과 뻔뻔함에 대한경멸이든, 하나로 수렴되며 날카로운 분위기를 만들었다.

-돈은 있는 줄 알았는데 소속 가수 안전에 쓸 돈은 없었나 봐

-티원 죽어 제발 죽어

-그냥 문대한테 회사 줘

그리고 이렇게까지 오니, 시니컬하던 사람들도 '소속사는 좀 패도 인정한다'는 식의 기류가 형성되기 시작했다.

-솔직히 머글이 봐도 이건 킹정이지?

-연습부상 실전사고 공지병크까지 삼진 아웃 크 티원 머기업 탈을 쓴X소 기획사

-다음에도 하나하나 일일이 확인하느니 지금 제대로 패는 게 옳다

김래빈의 팬도 이쪽이었다. 다만 약간의 고정관념이 어려 있었다.

'원래 소속사는 패야 말을 들어.'

어쨌든 그 모든 여론은 한 방향으로 흐르며, 콘서트만 끝나면 바로 공론화와 함께 폭발할 기세였었다.

그나마 기다려주는 것도 박문대에게 피해가 가지 않기 위해, 그리고 다른 멤버의 개인 팬들과 분쟁을 피하기 위해서였다.

박문대의 팬 중에서도 그냥 콘서트를 편하게 즐기고 싶었던 사람들이다소 불편해할 만큼 타오르는 분위기였다.

그리고 그 불 속에서 두 번째 콘서트가 시작되었다.

"그리고 다 끝났지."

김래빈의 팬이 불퉁하게 중얼거렸다.

막상 둘째 날 콘서트가 시작하고 끝나는 순간, 살벌한 분위기는 눈에 띄게 사그라든 것이다.

이유는 하나였다.

…콘서트의 박문대가 편안하며 행복해 보였기 때문이다.

물론, 무대에 엄청나게 열중하면서.

-저화질 중계로 봐도 문대 얼굴 좋아 보인다…

-앵콜에서 슬로건 받아 가는 문댕댕 (사진)

-문대 엄청 신났네 티벳 없어 댕댕뿐이야ㅠㅠ

- 어깨동무하고 울컥한 박문대ㅠㅠ 우리 사과떡 즙 넘친다ㅠㅠ (사진)

심지어 솔로 무대는 첫날보다도 더 박력이 넘쳤다.

무대 전까지 조마조마하며 지켜보던 팬들까지도, 중반 즈음에는 그여유와 기세에 날카롭던 마음이 풀릴 정도였다.

-미친미친 박문대 미친

-최고의 아이돌 떡상을 시각화

좋은 무대를 만든 뒤에 자신들을 보며 행복해하는 아이돌을 마주 본다는 것은, 그 마음에 동조하게 만드는 효과가 있었다.

완벽히 성공적인 순간을 공유하는느낌.

당사자로부터 전염된 행복은 열 오른 머리를 살짝 식혀줬다.

그래서 박문대의 팬들은 회사에 보낼 피드백의 수위를 다듬기 시작했다.

화형에서 건실한 비판 정도로.

-박문대 스페이스 총대입니다. 이번 소속사 성명문은 익명 투표를 기반으로 작성 중이며, 안전에 강조점을 뒀습니다. (초안 첨부)

-차후 또 일 발생 시에 보이콧이 어디까지 갈지 잘 짚어야 됨

-비슷한 기미라도 보이면 티원 찐빵까지 보이콧할 거임 진짜

손톱을 물어뜯을 기세로 모니터링중이던 T1 스타즈는 안도의 한숨을쉬며, 그 피드백에 대한 납작 엎드린 반응을 미리 준비하던 참이었다.

'어휴.'

'박문대 부상', '박문대 사고'와 관련된 온갖 키워드란 키워드는 다 조합해서 검색하던 김래빈의 팬은 사그라든 분위기에 코웃음을 쳤다.

'아 박문대가 이번 콘서트 즐기든 말든 소속사는 패야지∼ 왜 박문대한테 자아의탁하고 있어?'

이 기회에 소속사를 쥐어짰어야 한다고 투덜거렸지만, 그래도 내심 그녀도 안심 중이었다.

FullMoon Baby

: XX1207 '마법은 너' 프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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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해 내 별

#박문대 #TeSTAR #테스타콘 #Enchanted-ME #문댕댕 #Moondae

'…뭐, 행복해 보이긴 한다.'

앵콜에서 팬송을 부르는, 땀에 젖은 박문대의 얼굴을 보던 대학생의 표정이 흐려졌다. 전투력이 저화질 사진에 쪽쪽 빨리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직후 도로 태세를 전환했다.

'아니, 근데 행복해 보이니까 행복 못 하게 만들 뻔한 놈들을 더 패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게 맞는 거 아니야?'

씩씩거리던 대학생은, 혹시 비슷한이야기를 하는 사람이 있나 한 번더 확인해 볼 생각으로 힘차게 자신의 타임라인을 쭉쭉 갱신했다.

그리고 뜬금없이 그 글을 확인했다.

-돌출 앞 제일 좋은 자리에 카메라가 많아서 VOD 용인 줄 알았는데 ㅋㅋ 아주사4 촬영이네 와… (사진)

"…!"

첨부된 사진에는 아주사 시즌4의 로고가 선명히 박힌 카메라가 찍혀 있었다.

이날의 진정한 잡음, 아주사 시즌4 참가자들의 콘서트 관람 소식이인기 글로 공유를 타기 시작한 것이다.

팬들의 SNS뿐만 아니라, 커뮤니티 여기저기에서도 등장하기 시작했다.

[오늘 테스타 콘서트에서 목격된 아주사4 파이널 참가자들.jpg]

[아주사4에 테스타 콘 나옴?]

"뭐야?"

화룡점정은, 이것을 '바이럴을 탄다'며 기뻐한 아주사 제작진들이 언제나처럼 어그로를 끈 점이다.

[아이돌 주식회사 재상장! 시즌2 국민돌 테스타가 파이널 참가자들을 응원합니다 블링블링 콘서트는덤! (EP.14 예고편)]

바로 당일 새벽에 이 동영상을 파이널 예고편이랍시고 풀어버린 것이다.

나는 찬 맥주를 한 모금 마셨다.

내일도 콘서트가 있으니 과음할 생각은 없고, 긴장을 풀기 위해서였다.

'이렇게 됐나.'

콘서트가 끝난 뒤. 숙소의 욕조에 누워서 확인한 여론은 폭주 중이었다.

'일단 공지는 그럭저럭 괜찮았어.'

부상 후유증은 굳이 명시하지 않고 장치 고장만 공개한 것.

서울 콘서트까진 무대를 강행한것.

모두 콘서트 관객들 간의 괜한 의견 차이를 봉합해 버리기 위한 것이었다.

'박문대는 완치되었는가'를 신경쓴 사람이든 '해당 연출의 무대를 내가 볼 수 있는가'를 걱정한 사람이든 간에, 둘 다 적당히 만족하도록 말이다.

'아예 논쟁이 화두에 안 오르게 가른 거지.'

예상대로 그 화제는 주춤했다.

그리고 추가 구설수를 막기 위해, 나는 콘서트에서의 모습을 최대한 안정적으로 보여주려 노력했다.

…다만, 내 기분을 좋은 의미로 신경 쓰는 사람이 이렇게 많을 줄은 몰랐다.

박문대가 행복해 보인다는 게 이렇게까지 영향을 줄 수 있나?

"…음."

좀 당혹스럽긴 했으나… 나쁘진 않았다. 덕분에 오늘 콘서트를 좀 무리한 것 같지만.

'바쿠스500이 있으니 괜찮겠지.'

계산대로라면 내일까진 체력을 잘 회복할 것이다.

예측과는 좀 다른 방향이었지만, 소속사에 쏟아질 비난도 한 번 주춤하며 예상 범위에 안착하게 만들 수 있었고.

'이제 다른 걸 최종 계기로 폭탄 터져도 회사의 원망이 나한테 직접 안 온다.'

최종 원인이 내가 아니니 말이다.

' 아주사 시즌 4때문에 박살 나는 거니까, 소속사도 Tnet을 원망하겠지.'

그리고 사실, 그 폭탄은 이미 터지고 있다.

"흐음."

나는 Tnet이 방금 올린 아주사 파이널화 예고편을 화면에 띄웠다.

[안녕하세요 테스타입니다!]

콘서트 복장을 걸친 낯익은 놈들이 웃으며 꾸벅 인사를 한다.

어차피 죽을 거 화려하게 죽어보라고, 굳이 아주사 파이널 응원 인터뷰를 거부하지 않았다.

'그래도 최소한 선은 지키려는지 참가자들과 직접 대면하는 컷을 찍진 않았지만.'

그 덕분에 멤버 중 누구도 굳이 걱정하지 않고, 콘서트가 끝나 기진맥진한 상태로도 웃는 얼굴로 응원과 격려의 말까지 촬영했다.

근데 설마 그걸 황급히 편집해서 자정에 곧바로 파이널 예고편으로 때려 버릴 줄이야.

'평소라면 욕을 먹으면서도 화제성으로 소화해 버렸을 텐데. 안 됐군.'

타이밍이 좋지 않았다.

내 케이스 때문에 다른 멤버들의 팬 사이에서도 소속사 이미지가 극히 최하점을 찍은 순간이니까.

'소속사랑 묶어서 욕먹기 딱 좋겠어.'

대충 '콘서트 투어 홍보 겸 나오나보다' 같은 말로 비비고 넘어갈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당장 '좋아요'보다 '싫어요'가 많은 동영상 하단에는 온갖 댓글이 줄줄붙어 있었다.

-와! 콘솔 앞 중앙 자리 30석이나처먹은 프로!^^

-지겹다 아주사 뇌절 그만 좀 해

-안 그래도 자리 없어서 난린데 옛적에 손절한 프로그램이 어디서 콘서트까지 기어 들어와ㅋㅋㅋ

-ㅋㅋㅋ찐빵 보이콧한다는 말 농담으로 한 건데 찐으로 하게 생겼어요ㅠㅠ

그리고 테스타의 팬들이 소속사와 엮어서 분노한 덕에, 아주사 시즌4 참가자들은 평상시라면 도리어 먹었을 욕을 덜 먹었다.

회사 욕하는데 끼워줬기 때문이다.

-이 쓰레기 같은 프로그램에 인질 잡혀서 또 갓기들이 고통받고 있어ㅍ 너희도 다 탈티원하자

-데뷔도 안 한 애들을 남돌 콘에 보내서 환호하는 그림을 따요? 아 각 잡힌다 보내버리고 싶은 애한테 환호 편집 몰아주겠네ㅋㅋ뻔하지

-그냥 참가자들이나 한 컷 더 보여주시죠 한 장면 한 장면이 아까운 이때 남자 아이돌 보고 싶은 사람이있겠습니까?

공격당하기 싫은 아주사 시즌 4팬들은 열심히 T1과 Tnet을 함께 공격하기 시작했다.

체급이 안 맞는 데다가, 앞으로도 계속 엮일 게 분명했기 때문에 굳이 밉보이고 싶지 않아 다소 전략적인 선택이었다.

물론 기본적으로 아주사 를 보면서 Tnet에 쌓인 분노도 충분했겠지.

나는 혀를 찼다.

'…이 새벽에 전화 가고 난리 났겠군.'

소속사 꼴이 뻔했다.

나는 회사의 일반 직원들에게 잠시 동정심을 가졌으나, 내 코가 석 자라는 것을 깨닫고 그만두었다.

'그래도 이 투어만 잘 돌면 상태이상 조건은 너끈히 채울 수 있어.'

그리고 그렇게 되면, 나는….

"…박문대! 거기 있어?"

"…!"

욕실 문밖에서 부르는 소리가 둔탁하게 수증기를 뚫고 들렸다.

"음. 네."

…너무 오래 여기 앉아 있었나 보다. 나는 미지근해진 물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대충 물기를 닦아내 옷을 입고, 빈 맥주 캔을 들고 문밖으로 나왔다.

밖에 서 있던 것은 배세진이었다.

'화장실이 급했나….'

일부러 다른 놈들 잘 때까지 기다린 건데, 다른 화장실들도 이미 다른 누군가가 쓰고 있나 보다.

나는 목례하며 놈을 지나쳐 쓰레기통으로 가려 했다.

하지만 어깨를 잡혔다.

"너, 너."

"예?"

뭐냐.

배세진은 침을 꿀꺽 삼키더니, 힐끗힐끗 한 쪽을 보며 말했다.

내 손에 들린 빈 맥주캔이었다.

"술 너무 마시는 거 아니야…?"

이건 또 무슨 말이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