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8화]

'너무 많이 마신다'니.

나는 황당한 눈으로 배세진을 보았다.

"한 캔 마셨는데요."

혼자 마실 때 과하게 취할 만큼 마신 적은 없다.

내가 바보도 아니고, 매일 스케줄이 있는데 과음할 리가 없지 않은가. 더군다나 내일은 서울 마지막 콘서트 날인데.

그러나 배세진은 긴장한 얼굴로 대꾸했다.

"…목욕하면서 마시는 건 위험해. 그리고 오늘만 말하는 게 아니라, 너무 자주 마시잖아."

"오늘 기분 내려고 한번 마신 거지, 평소에는 이런 식으로 안 마시죠. 그렇게 자주 마시는 것도 아니고…."

"아니, 자주 마신다니까!"

배세진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리고 자기가 놀라서 힐끔 다른 방 눈치를 봤다.

'뭐하냐.'

떨떠름한 눈으로 보고 있자니, 배세진은 약간 목소리를 낮춘 채로 이야기를 계속했다.

"너 며칠 전에도 마셨잖아. 지난주에도 마셨고."

"그때도 한 캔이었는데."

"양이 중요한 게 아니야. …너, 그때 왜 마셨는데."

"뭐, 스트레스 해소 겸…."

배세진이 손을 불끈 쥐었다.

"그러니까… 너 요새 계속 스트레스 해소한답시고 사나흘마다 한 번씩 마시는 꼴이잖아!"

"…!"

"너 최근에 계속 그런다고."

배세진이 시선을 내렸다.

"…그, 미국 갔다 온 후로."

"…."

뒤통수 얻어맞은 기분이다.

"같이 방 쓰는 동안 너무 자주 봤어."

나는 배세진의 증언을 들으며, 머릿속에서 계산을 돌렸다.

'내가… 사나흘에 한 번씩 마신다고.'

맞다.

배세진 말이 맞았다. 일주일에 두번. 거의 사흘에 한 번꼴이다.

마시는 날보다 안 마시는 날이 더 많고, 아무 생각 없이 금방 마셔서 체감을 못 했다.

그러니까, 매번 '스트레스 해소'용으로 버릇처럼 마시는 것이다.

"내, 내가 계산을 좀 해봤는데, 너 상담 받을 때는 좀 빈도 줄었던 것 같거든. 근데… 그, 휴가 때 다친 후로 또 자주 마셔."

"…."

"그리고 누가 너 술 건드리면 기분 상하는 것 같고, 술 주면 좋아하니까… 내가 보기엔, 너무 의존하는 것처럼 보여."

의존.

그러고 보니, 빡센 일 생길 때마다 쉴 때 맥주를 마시는 걸 너무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지 않나.

'박문대의 몸에 들어오기 전보다도 심해.'

어쩔 수 없다.

'가성비가 좋잖아.'

시간, 노력, 금액 모두 고려해도 이만큼 편한 방법이 없다는 걸 본능적으로 알 수밖에 없다.

"좀, 다른 방법으로 스트레스 풀어보려고 할 수 있잖아. 그, 선아현도자수 같은 거 하고…."

나는 손에 들린 빈 캔을 보다가, 대답했다.

"…맞아요."

"…!"

"조심하겠습니다."

"그, 그래!"

배세진은 좀 놀란 것 같더니, 곧 힘차게 대답했다.

'…도움을 받았군.'

나는 새삼스럽게 배세진을 보았다.

"신경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뭘 큼, 내가, 이런 걸 좀 빨리 알아서…."

아마 집안 사정의 문제가 영향을 끼쳤겠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저 이거 버리고, 자러 갈게요. 더 안 마실 테니까 걱정 마시고."

"그래. 빨리 자. 안 그래도 늦었어. 음, 어, 내일 콘서트 잘해야지."

"그럼요."

나는 부엌 쓰레기통에 캔을 버렸다.

그리고 내 방에 돌아가서 침대에누웠다.

옆의 차유진은 벌써 침대에 거꾸로 누워서 완전히 잠들어있었다. 팝콘먹다 잠든 듯싶다.

'새 취미…'

스트레스 해소용 취미까지 개발해야 한다니.

그래도 이제 돈에는 구애받지 않고 선택해도 될 것 같았다. 저축액이 크니까.

'비싼 음식이라도 사 먹을까.'

차유진 침대의 빈 팝콘 봉투를 보니 반사적으로 그쪽부터 생각난다.

'양만 조절하면, 차라리 그쪽이 괜찮을지도…'

뭐 한우라도 먹어야 하나, 짧게 고민해보다가 잠이 든 것 같다.

그리고 다음 날.

콘서트 준비를 위해 오전 일찍 나가기 전, 무심코 열어본 냉장고에 변화가 눈에 띄었다.

맥주가 싹 사라졌다.

범인으로 짐작 가는 놈은 당연히 하나뿐이다.

"…."

부엌을 슬그머니 들여다보던 배세진이 내 시선을 피하다가 제법 뻔뻔하게 외쳤다.

"뭐, 뭘! 안 마신다며."

그렇긴 했지.

'진짜 의존 증상이 있긴 했나 보군.'

순간 좀 열받았다.

나는 어깨를 으쓱하고, 예정대로 탄산수를 챙긴 뒤 냉장고를 닫았다.

"그거 맛없어요!"

차라리 콜라를 마시라며 강력히 추천하는 차유진을 무시하며 탄산수를 마셨다.

지난밤 고민을 다시 떠올랐다.

'취미라…'

그런 걸 특별히 만든 적이 있어야말이지.

에라 모르겠다. 일단 콘서트나 제대로 끝내자.

"감사합니다!"

"사랑해! 사랑해요!"

"조심히 들어가세요! 우리 또 봐요!"

마지막 서울 콘서트라 이놈 저놈할 것 없이 다 감상에 젖었는지, 퇴장 멘트가 길었다.

"SEE YA∼"

차유진이 닫히는 스크린 밖으로 손을 내밀어서 흔들다가 끼일 뻔했다는 점만 빼면, 그래도 만족스러운 엔딩이 었다.

"바보야! 그렇게 행동하다가 다치는 거야!"

"나 바보 아니야! Passion 가졌어."

체력 한번 넘치는군. 곧 똑같이 체력 넘치는 류청우에게 몇 마디 듣겠다.

나는 물을 마시며 수건으로 얼굴 부근과 목을 닦았다. 여운에 잠긴놈들이 여기저기서 숨을 고르거나 떠드는 소리가 들렸다.

"문대, 너도 폰!"

"어."

그냥 대기실 가서 받아도 되는데, 오늘은 굳이 나눠주는군.

나는 스탭의 손에서 스마트폰들을 받아 나눠주는 큰세진에게 고개를 까닥였다.

이윽고 위에서 울리던 환호성이 줄어들고 안내방송이 나오기 시작하자, 진정한 놈들은 백스테이지에서 이동하기 시작했다.

"아, 오늘 왠지 더 착착 맞는 느낌아니었어요? 아니, 물론 콘서트 다좋았지만∼ 마지막이라 그런가?"

"하하. 그럴 수도 있지. 나도 좋았어."

"저, 정말… 좋았어요!"

"관계자분들의 시간 외 근무와 야간 소음 문제만 아니라면 한 곡 더 부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복도를 걸으면서 듣는 말에 반박하고 싶은 기분은 들지 않았다.

'재밌긴 했어.'

사고나 곤란한 돌발 상황은 한 건도 없이, 딱딱 맞물려 돌아가는 공연이었다.

최상의 가정이 그대로 이루어졌다고 해야 하나.

심지어 토크 때 즉석 공연도 그랬다. 약간의 행운과 우연이 맞물려서재밌는 상황이 발생했거든.

'다 벌칙에 걸릴 줄이야.'

덕분에 이긴 놈들 무대가 없어서 앵콜로 한 번 더 했다.

보니까 대놓고 벌칙 받게 만들려고 팬들끼리 모의하는 것 같던데, 아주 뿌듯해하고 있겠군.

"문대문대는 어땠어?"

"좋았지."

"오∼ 하기야 오늘도 닭똥 같은 눈물을… 켁"

다 질질 짰으면서 매번 말만 뺀질뺀질 잘한다.

얼굴에 수건을 뒤집어쓴 큰세진을 지나쳐 다시 걸음을 옮기자니, 복도반대편에서 매니저가 다가왔다.

"저, 흠흠, 문대야!"

"…? 예."

"잠깐, 잠깐 이야기 가능할까? 길게는 아니고!"

"아, 예."

음, 십중팔구 회사 이야기겠지.

음주와 콘서트 생각하느라 바빠서 잠깐 잊고 있었다만, 지금 회사는 ' 아주사 시즌 4 테스타 콘서트 출연 사태' 때문에 비상 상태 아니겠는가.

슬슬 위키에 '논란 및 사고' 항목으로 추가되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다만 왜 굳이 날 집었는지는 모르겠다만.'

뭐, 산업스파이 사건 때문에 내가 이것저것 잘 주워듣는 스타일이라고착각했을 수도 있겠군.

나는 어깨를 으쓱하며 다른 놈들에게 목례한 뒤, 매니저를 따라 이동했다.

매니저는 출입이 제한된 관계자용 주차장으로 가더니 내게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한잔 내밀었다.

"음, 일단 좀 마시고 있어 볼래?"

"그러죠."

나는 음료를 마시는 취미의 효용을 고민하면서 매니저가 본론을 꺼내기까지 좀 기다렸다.

그러나 아메리카노 한 잔이 다 작살나고 얼음만 남을 때까지 이놈이 입을 안 연다.

"…?"

그냥 어색하게 서서 괜히 스마트폰이나 들여다보는 척하는 매니저 놈을 보며, 나는 결국 먼저 입을 열었다.

"무슨 일인데요, 형."

"…아∼ 음. 문대야. 요새 고민 없니?"

뜬금없이 무슨 소리냐.

'언제부터 회사가 그런 걸 신경 썼다고.'

나는 떨떠름히 대답했다.

"뭐, 특별한 건 없습니다. 왜요?"

"아니∼ 음음, 아, 상담! 상담 같은건 다시 해볼 생각 없고?"

"…."

나는 눈살을 찌푸렸다가, 피식 웃었다.

"왜요. 멤버들이 저 상담 필요하대요?"

"…! 어, 그런 건 아니고∼ 요새 너힘들어 보여서!"

아니긴.

'태도를 보니 누가 찌르긴 했군.'그리고 그걸 변명으로 대려면, 내가 입원했을 때 하는 게 맞았을 텐데 말이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괜찮아요. 상담은 어차피 투어 시작하면 받기 힘들잖아요."

"음, 그건 그렇지. 그… 음, 그래. 그래도 필요하면 꼭 말하고!"

"예."

"…."

"…."

설마 이걸로 끝인가.

"더 하실 말씀 없으신가요."

"음… 그래그래! 이제 들어가 볼까? 문대 앞으로도 화이팅하고!"

"네."

별꼴을 다 보겠군.

나는 약간 의구심을 가지고 놈을 훑었으나, 곧 거두었다.

'회사가 헛짓하는 게 하루 이틀도 아니고.'

뭐, 어디서 말이라도 들어서 면피용 시늉이라도 하나 싶다.

나는 말이 없어진 매니저를 대동한채로 대기실로 복귀하며, 스마트폰을 만졌다.

'소감이라도 하나 올리는 게 좋지않나.'

나는 걸으면서 바로 화면에서 카메라 어플을 켰다. 그리고 셀카 모드로 돌렸다.

'이젠 이걸로도 어느 정도는 찍지.'

물론 걸음에 초점이 흔들릴 정도로 스킬이 없지도 않다.

자, 수평 맞추고.

찰칵. 작은 소리와 함께 적당한 사진이 저장되었다.

'괜찮군.'

이걸 올리자. 나는 내심 고개를 끄덕이며, 글을 작성하기 시작했다.

안녕하세요 러뷰어

콘서트가 정말 즐거웠습니다. 사흘이 어떻게 지나간 건지 모를 정도로

'아, 소개문을 빠뜨렸군.'

적다 말고 앞에 '저는 문대'를 추가하고 있으니 문득 마음에 걸리는 점이 있었다.

'음, 혼자 올리는 것보다는 단체샷도 하나 있는 편이 낫겠지.'

콘서트니, 그편이 더 와닿을 것이다. 쓸데없이 멤버를 비교하거나 빈정대는 개소리도 방지할 수 있고.

'대기실 들어가자마자 한 컷 찍자.'

마침 대기실 문 앞이 코앞이었다.

나는 버릇처럼 노크를 하고 문을열었다.

…그런데, 갑자기 눈앞에 반짝이가 비상하며 시야를 가린다.

퍼퍼펑! 퍼퍼퍼펑!

방금까지 무대에서 봤던 꽃가루와유사한… 이벤트 폭죽이다.

"…?"

정신 차리니 무슨 번쩍이는 실 따위를 뒤집어썼다.

어안이 벙벙해서 말문이 막힌 순간, 눈앞에 온갖 색의 고깔을 뒤집어쓴 놈들이 불쑥 나타났다.

그리고 맨 앞에 선 두 놈의 손에는… 케이크가 들려있었다.

초콜릿인지, 흑갈색 강아지 데코레이 엉망진창으로 올라가 있었다.

문구는… 'HAPPY BIRTHDAY'.

"생일 축하합니다!"

"생일 축하해!"

"…!"

생일?

나는 문득, 머릿속을 날짜를 계산하다가… 소스라치게 놀랐다.

12월 8일.

내 생일이다.

그러니까… 박문대 생일이 아니라, 내 생일.

류건우가 태어난 날 말이다.

"어떻게 알았…."

지금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쓸데없는 소리를 하려다가, 얼른 말을 멈췄다.

그러나 머리는 여전히 돌아가질 않는다.

이게 대체 무슨 상황이지?

"하하!"

내 꼴이 웃겼는지 큰세진이 빵 터지더니, 내 어깨를 친다.

"야, 설마 까먹었어? 너 다음 주생일이잖아!"

"그, 그때 우리가 비행기에 있다고 하셔서… 가, 같은 요일에라도, 축하하면 좋을 것 같아서…!"

"…."

아, 그랬군.

'그렇지. 알 리가 없지.'

식은땀이 다 난다. 이제야 좀 이해가 간다.

…그래도 어떻게 하필 이날을 고른건지는 모르겠다.

다 같이 벌칙을 받은 즉석 무대처럼… 우연과 행운이 겹쳐서 생긴 건지.

"그래. 그리고 콘서트 마지막 날이기도 하고!"

류청우가 웃으며 덧붙였다.

"문대가 워낙 콘서트 좋아하잖아."

"…."

"우리 열심히 준비했어요! 생일 케이크! 나랑 김래빈이 만들었어요!"

"차유진은 솜씨가 없습니다. 엄밀히 말하자면 제가 한 거나 다름없습니다."

"아니야! 나 그림 잘 그려!"

제일 어린 두 놈이 케이크 데코레이션 공을 차지하기 위해 열심히 자기주장을 한다.

큰세진이 씩 웃었다.

"어쨌든 얘 진짜 놀란 것 같죠? 서프라이즈 대성공!"

"서, 성공…!"

'맙소사.'

옆으로 슬쩍 빠져서 흐뭇한 얼굴로 보고 있던 매니저가 눈에 들어오자, 즉시 저놈의 행적을 이해했다.

"그럼 계속 뜬금없는 소리 한게…."

"에이, 요놈들이 시간 좀 끌어달라잖아∼ 어쩌겠어! 형은 오다 받은 대로 말한 것뿐이다, 문대야!"

"…."

매니저가 자신의 스마트폰을 보여줬다.

화면에는 '상담 이야기나 해보세요','좀 더 시간 끌어야 합니다' 같은 소리로 찬 단체 메시지방이 보였다.

참고로, 방 이름은 티벳문대 깜짝생일 대잔치 다.

누구 네이밍센스인지 안 봐도 알겠군.

히히덕거리던 큰세진을 보고 있자니, 놈이 웃음기를 줄이고 진지하게말했다.

"아무튼 생일 진짜 축하한다!"

"Happy birthday, bro∼"

그리고 영어와 한국어가 섞인 엉망진창 생일 축하 노래가 대기실을 채웠다.

자리에 함께 있던 스탭들도 히죽히죽 웃으며 노래를 함께 부르고 있었다.

"…."

느낌이 정말 이상했다.

'…아니.'

좋았다.

그래. 이건 좋은 것이다.

[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 189화]

생일 축하는 생각보다도 더 길게이어졌다.

솔직히 노래 부르고 나서 끝날 줄 알았는데, 대기실에서 굳이 케이크까지 다 먹더라.

"케, 케이크 입에 맞아?"

"어. 깔끔하네."

"투표를 통해 딸기 생크림 케이크를 선정한 것은 유익한 선택이었던것 같습니다. 딸기가 제철이라 통통합니다."

생일자라고 큼직하게 한 조각 받은걸 다 해치울 때까지 관련 대화가 이어졌기 때문이다.

심지어 카메라도 없었다. 그냥…정말 컨텐츠적 의도 없이 이 짓을 했다는 뜻이다.

"…."

나는 차유진이 남은 크림까지 싹싹 긁어먹은 케이크 판을 앞에 두고, 결국 이 말을 할 수밖에 없었다.

"고맙습니다. 좋네요."

"…!"

"아∼ 문대야 형 눈물 나려 그래! 세상에 티벳문대 무슨 일이야?"

"케이크 맛있기 때문이에요!"

"문대 씨 축하해요∼"

우는 척하는 놈부터 마지막 짐을 정리하다 말고 박수 치는 스탭까지 별 반응이 다 돌아온다.

'참나.'

나는 피식 웃었다.

그리고 스마트폰을 들어서 카메라 어플을 켰다.

"사진? 좋지!"

"아, 케이크 먹기 전에 찍었으면 더 좋았겠다."

"저 여기요!"

나는 빈 케이크 판을 끼고, 여섯놈과 같이 단체 셀카를 몇 장 연속으로 찍었다.

"얘들아 이제 이동해야지!"

"넵!"

그리고 매니저의 재촉에 따라 차로 이동하면서, 아까 쓰던 글을 완성했다.

안녕하세요 러뷰어

저는 테스타 (강아지 이모티콘)

콘서트는 정말 즐거웠습니다. 사흘이 어떻게 지나간 건지 모를 정도로행복했습니다. 감사합니다.

방금 깜짝 생일 축하까지 받아서 공유하고 싶은 마음에 올려봅니다.

세상에서 가장 좋은 밤 보내셨으면 좋겠습니다.

(강아지 이모티콘)

하단에 내 개인 사진과 방금 찍은 단체 사진까지 넣어서 업로드를 완료하고 나니, 어쩐지 홀가분했다.

반응은 순식간에 돌아왔다.

-미친 박문대 왔어

-ㅠㅠㅠ문대야 생일 죽하 뭐야 무슨 일이야 제발 썰 풀어죠

-아아 생축 콘서트에서 같이 하지ㅠㅠ 테스타 멈춰! 러뷰어 따돌림 멈춰!

-사랑해 문대야 콘서트 너무 좋았어 언제나 응원해 건강하고 행복한투어가 되길

-나도 문대 생일 직접 축하하고 싶었다 이것만은 진심이다 (울망거리는 이모티콘)

콘서트의 여운에 젖은, 흥분과 애정 어린 표현들.

외국어와 이모티콘들에서도 호의가 느껴졌다.

"…."

직전에 직접적으로 공유한 시간이 있어서인지 댓글 내용에서 더 읽을거리가 많았다. 나는 그것들을 살피며 천천히 새로고침을 계속했다.

간혹 개소리가 달리기도 했지만,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그러나 개소리는 아니지만, 마음에 걸리는 댓글도 튀어나오기 마련이다.

-역시 문대도 빠르네ㅋㅋ

'…문대'도' 빠르다고?'

어쩐지 뉘앙스가 이상하다.

나는 내 게시글에서 뒤로 가기를 눌러서, 테스타의 SNS 계정 첫 화면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내 글 아래에 뜬 글을 봤다.

"…!"

'러뷰어 사랑해'로 시작하는, 장문의 글이 길게 여러 묶음으로 이미 올라가 있었다.

무려 20분이나 전에.

게다가 글마다 자신의 단독 사진과 지난 콘서트에서 찍었던 비하인드의 단체 샷 첨부까지.

…큰세진이다.

놈이 뺀질뺀질한 얼굴로 내 스마트폰 화면을 힐끗 확인했다.

"아∼ 문대도 올렸구나?"

"…!"

역시 이 새끼… 보통 놈이 아니다.

'혹시 깜짝 생일 파티가 이놈이 선수 치기 위한 수작이었던 건 아니냐.'

그럴 리가 없는데도, 나는 뒤풀이 장소로 이동하는 동안 짧게 의심까지 했다.

"내∼ 친구는∼ 정말 정말 귀여워요!"

"으하하!"

차유진이 동요를 열창하는 동안 다른 멤버들이 자지러졌다.

뒤풀이를 시작한 지 딱 한 시간만의 풍경이다.

스탭들은 방금 매니저를 비롯한 몇명만 남고 쓱 귀가했다. 아마 흉흉한 회사 분위기를 다소 의식한 것같다.

그리고 남은 놈들은….

'좀 취했군.'

원래 취한 놈들 사이에선 조금이라도 취해 있는 편이 편하나, 나는 그게 불가능한 상황이다.

내 손에 들린 건 무알콜 샴페인이기 때문이다.

"너, 너! 안 돼!"

아무 말도 안 했다. 나는 귀신같이 내 주변에서 술병을 치우는 배세진을 말없이 쳐다보았다.

참고로 저 술병 이미 비었다.

"…졸린데."

그래 보인다. 술병을 베고 잘 기세다.

'슬슬 말에 맥락이 없어지는군.'

나는 과하지 않게 취한 분위기를 둘러보다가, 고개를 젓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어? 어디 가 문대∼"

"화장실."

사실 화장실은 아니고 그냥 바람이나 쐬러 나가는 거지만, 뭐든 상관없지 않나.

테라스가 옵션에 포함된 식당을 통째로 빌려놨더니 남 시선 신경 쓸필요가 없어서 편하긴 했다.

'그래도 얼굴만 내밀면 사진 찍으려고 근처에서 대기 중인 새끼도 있을 것 같긴 한데.'

상관없다. 조용히 앉아만 있을 거니까.

나는 테라스로 나오며 노랫소리와 웃음소리로 꽉 찬 공간을 잠시 벗어났다.

탁.

문을 닫자마자 찬 겨울 공기가 볼을 때렸으나, 주변에 캠핑용 난로가있어서 그리 춥진 않았다.

'비싼 값 하는 집이군.'

나는 그냥 앉아서, 조용히 밤하늘을 보았다.

"…음."

서울 밤하늘이 다 그렇듯이 별은 거의 안 보이긴 했으나, 그게 오히려 마음을 가라앉게 해줬다.

고마움과 즐거움이 가라앉은 곳을 채우는 건….

드르륵.

"저, 무, 문대야?"

"…선아현."

얘는 왜 여기 있냐.

닫은 지 얼마나 됐다고, 도로 열린문 너머로 선아현이 머리를 내밀었다.

"나, 나도 나가도 돼…?"

"그렇겠지."

애초에 나 혼자 전세 낸 것도 아니니 말이다.

"으응!"

어쨌든, 선아현은 이걸 허락으로 알아들은 건지 냉큼 문밖으로 나왔다.

탁.

다시 문이 닫히고 테라스가 조용해졌다.

선아현은 조용히 그렇게 가깝지 않은 근처에 앉았다.

"…."

묘하게, 생각나는 일이 있다.

선아현에게 핫초코 받았을 때 딱이 구도였지 않았나.

나는 무심코 입을 열었다.

"바람 쐬러 나왔어?"

"어, 어, 나?"

"응."

"그… 그것도 있고. 음, 무, 물어보고 싶은 게 있어서…."

"나한테?"

"으응."

선아현은 무릎을 만지며 잠시 머뭇거리다가, 불쑥 말을 이었다.

예상 못 한 질문이었다.

"저기… 문대는 호, 혹시. 5년 끝나면, 아이돌 안 할 거야…?"

"뭐?"

얼마 전에 무대 장치를 포기할 때 큰세진에게 들었던 말이 선아현 입에서 다시 나왔다.

다만 뉘앙스는 좀 달랐다.

…선아현은 진심으로 저걸 걱정하고 있는 것처럼 들렸다.

"나, 나한테 전에 그랬었잖아."

선아현이 고개를 살짝 숙였다.

"위, 위험할 수도 있으니까, 무대에서 무리하지 말라고. 건강하게… 오래 하는 게 좋다고."

"…!"

"그, 내, 내가 작년에, 연말 무대에서 즉홍으로 백플립 했을 때!"

선아현은 내가 기억을 못 한다고 생각했는지 상세히 당시 상황을 설명까지 해줬다.

그럴 필요 없었다. 기억 잘 난다.

'내가 그랬었지.'

무대에서 큰 부상 입을 수도 있는 짓을 무심코 하는 선아현을 보고, '압박감이 들면 좀 자기 파괴적으로 무리하는 경향이 있다'고 생각해서한 조언이었다.

그리고 그 후로 선아현은 특별히 고집을 피운 적이 없었다.

…그래.

어쩌면, 도리어 내가 그랬다.

"그, 근데 문대는… 무리하잖아. 아직 안 나았는데, 막, 와이어 쓰고…."

알콜 의존을 한번 깨닫고 나니, 이것도 인정하게 되는군.

혹시 비난인가 했으나, 그럴 리는 없었다.

"거, 건강하게 오래 하는 게 좋다고 했었는데… 혹시 문대는, 오래할 생각이 아닌 건가, 해서…."

"…."

선아현은, 의외로 날카롭게 진실을 짚어낸 모양이다.

이 모순을 어떻게 말을 맞춰볼까.

'그때는 즉흥적이라 더 위험해 보여서 그렇게 말했다', '내 퍼포먼스는 부상 위험이 그렇게 크지 않다', '이미 다 나은 것이나 다름 없다고 생각 했다'….

다양한 대답이 머릿속을 지나갔다.

그리고 어쩌면 선아현은 대강 납득해 줄 수도 있을 법한 것들이었다.

하지만 결국 한숨과 함께 나온 답은 이것이었다.

"…잘 모르겠다."

한숨이 허공에 하얗게 퍼졌다.

"하고 싶은 것 같긴 한데, 그때까지 할 수 있을지 모르겠고…."

"왜, 왜?"

이건 구체적으로 대답해주긴 힘들겠지.

나는 상황을 뭉뚱그렸다.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잖아. 막상 돌아가는판을 보니… 이 일이 장기적으로 하긴 힘든 일인 것 같아서."

"…."

선아현은 잠시 침묵했으나, 곧 고개를 번쩍 치들었다.

"사, 사실 나도 꼭, 오, 오래오래할 수 있을지는 모르는 거라고… 생각해."

"그래."

"그, 근데 그렇다는 건… 할 수도 있다는 뜻 아닐까?"

"…!"

"우, 우리가 무사히 5년을 잘 보내서… 계속 같이 할 수도 있잖아. 그,그렇게 됐는데, 혹시 문대가 지금 무리해서 그때 힘들면, 안 되잖아…."

"…."

"그, 그러니까, 우리 건강하게, 오래 하는 걸로 생각하면… 안 될까."

머리를 후려맞은 기분이다.

저쪽이… 더 합리적인 발상 같아서.

'…당연히 계속 이 몸에 있는 쪽도 염두에 두고 행동했어야 하는데.'

끝날 수도 있다는 건 끝나지 않을 수도 있다는 뜻이다.

그럼 당연히 안 끝날 경우도 대비해서 장기 계획을 세웠어야 하지 않나.

'애초에 확실한 미래가 보이는 분야도 아니니 말이지.'

당장 내일이라도 사건 터저서 은퇴할 수 있는 판에서 쓸데없는 상념에잠겨 있었군.

최근 내 태도의 비합리성이 그제야 돌출되었다. 전염병이 돈다고 노후계획을 때려치우는 거나 다름 없는 멍청한 짓 아닌가.

'분류가 딱 되는데.'

머릿속이 깨끗해진다.

만약에 상태이상을 다 끝내고도 이몸으로 살게 된다면, 장기 계획을 수립하지 않은 과거의 나를 무병장수의 꿈이 실현될 만큼 욕하고 있을게 뻔하다.

나는 결국 피식 웃었다.

"왜 안 되겠어. 되지."

"…! 그, 그치!"

"그래."

선아현은 그제야 헤헤 웃었다. 나는 고개를 들어, 다시 밤하늘을 보았다.

'5년 후라…'

그럼 재계약 문제까지 염두에 두고루트를 짜봐야 하나.

드륵, 쿵!

"와우! 추워요!"

"유진아 너 지금 반팔이야!"

"헐, 문대문대 여깄네! 화장실 간다더니 도망쳤던 거야? 정말 서운하다∼"

"…."

잠깐 그려보려던 청사진은 곧 테라스에 난입한 차유진과 다른 취객들에 의해 박살 났으나, 성과가 없던것은 아니었다.

바로 그다음 날, 장기 계획의 변수가 드러났기 때문이다.

"너희 그 식당 테라스에서 난리 치는 사진 찍혔더라. 얘들아, 형이 조심하랬지!"

"흐억!"

"근데 다들 귀엽다고 그러긴 한다. 회사랑 다 이야기해서 기사 내용도좋긴 해!"

"휴우."

매니저에게 인트로로 제법 살 떨리는 첫 소식을 전해 듣고 난 다음, 슬쩍 흘러나온 회사 내부 상황이 중요했다.

"그래도 회사가 좀 괜찮아져서 대응이 빨랐으니까 다행이지, 앞으론 더 조심하자!"

"네!"

안 그래도 아침에 올린 입장문 보긴 했다.

본부장이 직접 자기 이름으로 냈더라.

'거의 항복 선언문이던데.'

요악하자면 이거다.

-30석 증발은 저희가 정말 실수했습니다. 근데 Tnet이 깡패라 저희도어쩔 수 없었어요ㅠㅠ 빨리 걔네를 욕하십쇼. 저희 앞으로 개짓거리 안하고 테스타 케어나 열심히 할게요.

이 맥락에서 팬들을 철저히 고객으로 설정해 작성한 것이 괜한 감성팔이보다 오히려 먹혔나 보더라.

'그나마 숨 좀 돌렸겠군.'

다만 매니저의 말은 여기서 끝나지않았다.

"안 그래도 지금 인력 부족하다고 난린데, 여자애들 들어오면 그쪽으로 좀 차출한다는 말도 있고… 아,얘들아 그래도 형은 우리 테스타 매니저 계속하고 싶다!"

'오.'

이건… 구도가 좀 재밌게 잡혔다.

[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 190화]

아주사 시즌 4로 뽑히는 새 아이돌 그룹이 이 소속사로 오는 건 당연히 짐작했다.

다만 지금 상황이 좀 재밌게 되었다는 말이다.

'당연히 그쪽 용으로 새 전담 인력뽑을 줄 알았지.'

테스타도 아직 2년 차인데, 여기서 누굴 차출해 간다라.

아직 들어와서 제대로 견적 뽑은 것도 아닌 그룹을 대상으로 말이다.

"오∼ 저희도 후배 생기는 거네요! 아, 근데 새로 뽑으시는 게 아니라 우리 직원분들 가시는 건가? 어휴, 업무 너무 많아지시는 거 아니에요?"

"새로 뽑기도 하지! 근데 경력자들을 좀 분배하려는 모양이더라. 걱정마 형은 안 간다니까∼ 둘째 보낼게!"

"하하∼"

큰세진이 농담 같은 매니저의 말에 밝게 웃었으나, 크고 작은 소속사를 경험해 본 놈이니 대충 분위기 짐작했을 것이다.

'본부장이 테스타 놓고 후배 그룹을 잡았군.'

정확히 말하자면, 테스타 팬들에게 학을 뗀 것이다.

본부장 입장에서는 벌써 전임자들이 빠른 텀으로 둘이나 갈렸고, 뭣만 하면 팬들이 살벌하게 화를 낸다고 여기기 딱 좋았다.

실제로 이미 테스타 팬들은 소속사를 고깝게 보고 있기도 하고 말이다.

'거기서 심지어 멤버들도 본인 비전에 반대하는 눈치지.'

그놈의 미국병 말이다.

새로 오는 그룹도 미친 아주사 서바이벌을 거치며 충분히 팬덤이 형성된 상태니, 그쪽으로 중심 인력을 돌려서 새 비전을 꿈꿔도 이상하지 않다.

"우리 회사 요새 실적 좋잖아∼ 더 좋은 사람들 올 거야, 너무 신경 쓰지 말고!"

"넵넵!"

나는 어떻게 생각하냐고?

'개꿀이지.'

대단히 좋다.

회사도 팬들과 또 소득 없는 잡음을 만들고 싶지 않을 테니, 케어는 제대로 할 것이다.

그렇다면 본부장이 참견하지 않고 자본투자만 당길 수 있는 이 상황이베스트다.

어차피 기획이야 자체적으로 가능하니까.

'결재봇 재림인가.'

다만 마음에 걸리는 점이 하나 있기는 했다.

어느 순간 새 앨범에 제대로 투자를 안 해주고 투어만 뺑뺑 돌리려 들지도 모른다는 위험 요소.

'캐시 카우 취급당하는 거지.'

당장 이번 투어가 끝난 뒤에라도 수익을 한번 확인하면, 매출 규모 보고 본부장 눈이 돌아가 버릴 확률도 충분했다.

자기가 신경 써서 키울 다른 옵션이 생겼으니 테스타에서는 돈이나 뽑자는 식으로 나오면 곤란하다.

그럼 대책은 무엇인가?

간단하다.

'테스타에 대한 자본 투자만 포기 못 하게 만들면 돼.'

앞으로 계약 끝날 때까지 3년 반.

그동안 꾸준히 성장세를 유지하면 된다.

'더 커서 투어 규모를 더 불릴 수있다'는 경제적 측면과, '내 밑에서 소속 가수가 이토록 대단해졌다'는 명예욕적 측면을 동시에 긁어주는 것이다.

'이번 본부장 놈 성격 보면 절대 포기 못 한다.'

그러니 이번 투어 때 테스타에 대한 대외 분위기가 중요하다.

첫 장기 공백기였다. 시상식에 얼굴 비추는 것 이상으로 화제성을 관리해야 한다.

하지만 이미 빡빡한 스케줄, 국내에서 추가 활동을 넣을 수는 없겠지.

그럼 답은 하나다.

'리얼리티를 계획보다 잘 내놔야겠어.'

어차피 잡혀 있는 스케줄의 규모를 더 키우는 것이다.

'적극적으로 해봐야겠군.'

아주사 이후로 이런 결심을 해보는 것은 처음인데, 좀 자극적으로 컨텐츠와 캐릭터를 잡아보자.

"우리 후배 봐요?"

"당장은 힘들 거야."

주변에서는 차유진의 말에 대답해주는 류청우의 소리가 들린다.

그리고 그 말이 맞았다.

투어 출국이 바로 내일이었다.

호평이 자자한 서울 콘서트 이후,테스타는 바로 미국으로 출국했다.

1월에 몰린 시상식 시즌에는 금방 국내로 오갈 수 있게 가까운 일본에가고, 규모가 작으며 빨리 끝날 미국을 지금 처리하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콘서트에서의 떡밥을 다 소모한 팬들은 손가락을 빨고 있었다.

테스타 콘서트로 어그로를 끌었던 아주사 시즌 4 마지막 화가 방영된 것도 딱 그쯤이었다.

[논란•화제의 재상장! 아이돌 주식회사2… 대단원의 막 내리나]

[아이돌 주식회사 시즌4 데뷔명 '미리내(Miry-nay)' 최종 확정]

[아주사 새 시즌 우승자들, 테스타와 한솥밥?]

테스타 팬들의 날 선 반응에 Tnet도 슬쩍 발을 빼서, 테스타 콘서트는 그 자체를 칭찬하는 뉘앙스로 잠깐 등장하기만 했다.

하지만 이 문제가 아니더라도 아주사 시즌4는 수많은 구설수를 제대로 털지 못했다.

테스타의 시즌3가 워낙 잘되었던 탓에 그것과 계속 비교되다 보니, 매번 더 자극적인 구성을 들고 나왔기 때문이다.

-이번 시즌은 서바충인 나도 못버티겠다 하차

-시즌3 다시 보니 선녀네

-미친 이게 뭐야 보다가 테스타로 도망침ㅅㅂ

지나치게 가학적이고 지망생들의 꿈과 희망을 쥐어짜낸다는 비난과 중도하차한 참가자들의 증언들로 프로그램 이미지는 최악이었다.

그렇기에 프로그램의 흥행과는 별개로, 이번 시즌을 통해 출범하는 그룹에 대한 찝찝함은 대중에게 은연중 깔려 있었다.

그러니 테스타의 팬들도 당연히 깊게 엮이고 싶지 않아 했다. 데뷔 후 독자적인 이미지와 세계관을 만들어가고 있던 참이니 더 그랬다.

-끼워팔기만 하지 마라

-애들이 무슨 죈가 싶긴 한데 찝찝하긴 하네

-패 놓으니 조용해서 좋다 역시 패는 게 답이었다

그래도 몇 번의 간 보기 기사를 제외하면 특별히 소속사의 경거망동은 없었기 때문에, 아직 반감은 강하지 않았다.

그보다 얼마 안 되는 테스타의 소식에 신경을 곤두세운 팬들이 훨씬 많기도 했다.

-가요대전도 사녹하고 바로 출국한 듯 애들 얼굴 오랜만에 봤다 (퇴근길 사진)

-덥앱 좀 와줘 얘들아ㅠㅠ 요새 자체 컨텐츠도 없고 심심해…

-2X1221 뉴저지 콘 프리뷰 (사진)

-문대솔로 의자에 앉아서 올라가는 걸로 수정됐네 더 안정적이긴 한데 좀 아쉽기도ㅠ 서울콘 V0D 즉시 발매 기원

테스타는 공중파 연말 프로그램과 큰 시상식 하나만 제외하면 12월내내 한국에 없었다.

게다가 박문대의 생일 기념 짧은 W라이브 한 번 외에는 다른 이야기 없이 투어 소식만 들렸다.

자체 컨텐츠 소식도 없었다. VOD로 빠졌는지 콘서트 비하인드들도 올라오지 않았다.

당연하지만, 설레발로 걱정하는 사람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지난 KPOP 마니아 경험이 귀납적으로 알려준 추리였다.

-지금 분위기 보니 투어 내내 떡밥 없을 것 같아서 걱정인데;

-X소 새끼들 테스타 인력 빼서 신인 챙기느라 테스타 새 컨텐츠 뒷전일 게 뻔함 한두 번 겪냐

-시상식 시즌 충분히 즐겨두세요 러뷰어들아 테스타 컴백마다 국내음방에서 3주씩 보는 건 올해로 끝임ㅋㅋ

-X발 우리 애들 2년 찬데 설마 투어 뺑뺑이 아니겠지 1년 2컴백 보장하라고 X새끼들아

-슬슬 해외 위주로 활동 개편할 타이밍이긴 하지 셤별 너무 컸어

심지어는 이 정도까지 나가는 사람도 나왔다.

-다음 앨범 해외 반응 별로 였으면 좋겠다 그래야 국내에 집중할 거 아니야

└애들 프로필 달고 그런 소리 하지 마세요

└내가 셤별도 아니고 왜?ㅋㅋ 여기서 더 떠 봤자 빠질엔 하등 도움 안 됨 국내 안 들어오지 팬싸컷만 X나 높아지지 초심 박살 나지 초창기 빠들 탈덕 지름길

사실 테스타가 한두 달 이상 소식이 없던 것도 아니니 벌써 이런 말이 나오기에는 너무 이른 시점이었다.

문제는 그동안 테스타가 소처럼 쉬지 않고 일하며 매일 소식이 쏟아졌다는 점이었다.

휴가 때도 온갖 SNS와 동영상으로 전하던 소식이 뚝 끊기니, 이 짧은 무소식만으로도 동요한 사람들이 생긴 것이다.

-투어 막 시작했고 연말 프로그램까지 겹쳤는데 당연히 바쁘겠지 작작 좀 해라

└뭐래 셤별 여기저기 놀러 다니는거 다 떴는데ㅎ 출국이 투어보다 관광 목적이었나 봐ㅋ

-여기서만 하는 이야기지만… 사실 자기들끼리 놀면서 한 컷 올려주는게 그렇게 힘든가 좀 서운하긴 함

└맞아요 그 막콘 때 ㅁㄷ 생일축하도… 결국 아무것도 안 푼 거 좀 많이 그랬어요ㅠㅠ

-개판이네 돌이 그동안 너무 잘해줬나 팬질 처음 해보는 사람이 많은 건가; 별걸로 다 서운하고 지랄

그래도 연말 프로그램 출연 덕에 아예 떡밥이 없던 것은 아니었기에,이런 목소리들이 소소히 취급되던 12월이었다.

그리고 12월 마지막 날, MBS의 가요대제전에도 사전 녹화로 출연한테스타에 팬들이 아쉬워할 때.

테스타의 공식 위튜브 채널에 알림이 들어왔다.

띠링.

[(예고편) Happy New Year! 새해와 함께하는 테스타의 새 리얼리티!]

썸네일은 바닷가에서 앉은 일곱 인영의 모습이었다.

'아 드디어!'

'그래, 리얼리티 정도는 풀어줘야지, 공백긴데!'

'투어 중이니 뭐 꿀노잼 다큐 수준이겠지만 괜찮아! 떡밥이니까!'

팬들은 새해 선물에 안도하며 재빠르게 썸네일을 클릭했다.

그리고 재생되는 내용에 좀 당황했다.

'…?'

일단… 다짜고짜 웅장한 금관악기와 성악가의 고음이 몰아쳤다.

빰 빰 빰 빰 빠바바밤!

[으헉!]

[악!]

[와,]

[Oops!]

[으윽!]

그 박자에 맞춰서 테스타 멤버들이 각자 비명과 탄식을 내지르는 장면이 휙휙 지나갔다.

[…]

그리고 마지막으로, 완전히 얼어붙어서 두 손을 들고 있는 배세진의 모습이 길게 잡혔다.

바로 밑바닥에 와장창 쏟아진 아이스크림이 보였다.

-?

-ㅋㅋ잉?

-뭐얔ㅋㅋㅋ

당황하는 실시간 반응을 뒤로한채, 영상은 갑자기 침착해졌다.

인터뷰하는 테스타의 평온한 일상이 갑자기 이어 나온 것이다.

질문도 간단했다.

[아르바이트해 보신 적 있으세요?]

[이세진 : 네!]

[청우 : 부모님 가게 도와드린 정도?]

[배세진 : …아뇨. (긴장) 왜, 왜요?]

검은 화면에 흰 글씨가 떴다.

[그냥요ㅎ]

그리고 다시 전환된 장면.

캐리어를 든, 완연한 출장 중 차림인 테스타에게 제작진이 외쳤다.

[여러분! 리얼리티 찍을 준비 되셨나요? 이번 주제는 자유여행입니다!]

[이세진 : 와!]

[선아현 : 정말요?]

[그럼요! 마음껏 다니세요!]

그리고 이국적인 바닷가나 음식점에서 둘 셋씩 무리를 지어, 혹은 단체로 즐거운 한때를 보내는 테스타의 훈훈한 컷이 휙휙 지나갔다.

이 빨간 자막과 함께.

[※비용이 청구됩니다.※]

다시 검은 화면에 흰 글씨가 의미심장하게 떠올랐다.

[과연 테스타는… 무사히 돈을 벌어서 놀러 갈 수 있을 것인가!]

[유진 : 저 집 갈래요.]

[문대 : 제발 가자….]

두 손으로 눈을 가린 박문대와 차유진의 모습이 허망하고 웃기게 나왔다.

[테스타의 리얼리티 쇼쇼쇼]

[아이돌 워킹 홀리데이]

[1월 9일 목요일 1화 공개!]

당연하지만, 팬들도 예상치 못한 본격적인 대중 예능의 맛이었다.

"그래서 오늘 매출이 드디어 천 달러를 넘겨서 내일은 빚 없이 테마파크에 갈 수 있을 것 같다."

"와!"

주변에서 박수 소리가 울렸다. 멤버들이 뿌듯한 얼굴로 기지개를 켜고 하이파이브를 했다.

"이, 이거 마실래?"

"고마워."

나는 선아현이 타주는 매실 주스를 쭉 들이켰다. 꽤 뿌듯했다.

'다들 열심히 하긴 했지.'

이대로 간다면 순조롭게 빚 없이 다닐 수 있겠…잠깐.

"…."

'이거… 더는 예능이 아닌 것 같은데…?'

다들 너무 과몰입했다.

졸지에 노는 것보다 빚 탕감에 진심이 되어버린 촬영 현장을 깨닫고,나는 식은땀을 흘렸다.

'이거 어떻게 살리냐.'

안 되겠다.

아무래도 탕진을 부추겨야겠다.

[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 191화]

사실, 이 리얼리티 프로그램은 기획 되었을 당시엔 단순한 여행 및 힐링 컨셉이었다.

본부장의 미국병까지 더해지며 미국의 문물을 리액션하는 파트까지 추가되니 구성이 굉장히 뻔했다.

'일부 팬들만 보고 끝이겠군.'

딱 견적이 나오지.

잘나가는 아이돌이 힐링하는 것만 줄줄 나오는데 뭐 그렇게 오래 대중적 화제성이 있겠는가.

그러니 리얼리티 제작진들도 영 시들시들했다. 출연진 괴롭히는 자극적 그림을 뽑는 데에 이미 재미가 들린 사람들이라 그런 것 같았다.

그래서 오히려 낚기 쉬웠다.

-좀 프로그램에 굴곡이 있는 편이 재밌지 않을까요? 저희가 직접 여행비를 번다든가….

-좀 그렇죠?

바로 낚이더라.

본부장은 이미 예비 후배 그룹에 정신이 팔린 상태라 변경안을 쉽게 통과시켜 줬다.

그리고 리얼리티 제작진들은, 예상대로 '직접 돈 벌어서 논다'는 컨셉을 가장 자극적인 방식으로 재구성하기 시작했다.

…촬영 첫날 대뜸 빚 청구로 뒤통수 갈길 줄은 나도 예상 못 했단 뜻이다.

"아∼ 그날 너무 써서 그거 복구가 너무 어려웠네."

"맞는 말씀입니다. 책임감 있는 소비의 중요성을 배웠습니다…."

"그때 우리 뭐 먹었지? 랍스터?"

"랍스터와 킹크랩! 정말 맛있어요!"

"그래, 맛있긴 했지…."

차유진의 해맑은 발언에 몇몇 놈들이 아련한 표정이 되었다. 그럴 만했다.

'제작진 놈들, 일부러 비싼 코스로 몰았지.'

-아니∼ 여러분께서는 정말 어디든 가실 수 있어요!

이런 식으로 말하면서 말이다.

마치 뉘앙스가 '첫날은 마음껏 노는 게 다시 놀러 가기 위해 열심히 일할 동기부여가 될 거야' 처럼 들렸다는 게 멤버 모두의 평이었다.

그래서 첫날, 뉴저지의 휴양 도시케이프 메이에서 돌고래 보고 랍스터 먹고 특급 리조트에서 잤다.

그리고 청구된 금액이 이렇다.

"근데 4,000달러나 생으로 청구할 줄은 몰랐어."

"그러니까."

한화로 무려 450만 원쯤 되는 돈이다.

그나마 '숙소는 놀지 않아도 묵어야 하지 않느냐'며 따지고 사정해서 1,800달러로 줄이지 않았더라면 아직도 빚더미에 있을 것이다.

굉장히 충격적인 시작이긴 했으나, 지나고 보니 확실히 재미는 있었을것 같다.

진짜 그 돈이 없는 건 아니고, 예능 내에서의 배신과 충격이니 특별히 가학적일 것도 없고 말이다.

'스탭들이 다 폭소했지….'

배세진이 배신감 가득한 얼굴로 그사람들을 쳐다봤던 게 기억이 난다.

어쨌든 그 후로 소처럼 일해서 사흘 만에 그 빚을 다 갚고는, 내일 테마파크용으로 800달러나 저축을 했다.

예상 이상의 쾌거다.

'…돈 버는 게 중독적이라 너무 몰입했다.'

현금이 오가는데 그게 진짜 내 손에 들어오니 느낌이 다르더라.

중간에 한 번 더 놀긴 했는데, 최대한 싸게 놀려고 해변에서 군것질하며 뛰어다닌 게 전부라 별 임팩트는 없었을 것 같다.

'그러니 이번에는 좀 자극이 있어야 편집하기 좋겠지.'

"좋아, 내일은 계획적으로 잘 써보자."

"화, 화이팅!"

"테스타 오늘도 훌륭했다∼"

역시 내일 테마파크가 좋은 기회일 것 같았다. 저축을 모조리 쓰고 다시 빚을 지게 만들어야겠다.

놀이공원과 사파리 입장권만 합쳐도 벌써 450달러가 날아갈 테니, 남은 350달러 정도야… 인당 5만원쓰는 건 순식간이다.

'쉽지.'

이거야 차유진만 공략하면 된다.

나는 앞치마를 풀어서 개수대 옆에걸었다.

어쨌든 간에, 프로그램만 재밌게 나와줬으면 좋겠군.

테스타의 리얼리티는 주마다 에피소드 두 편이 함께 풀리는 형태로 진행되었다.

단, 유료 멤버십에 가입한 사람만 후속편을 바로 볼 수 있었고, 일반이용자는 사흘을 더 기다려야 후속편 감상이 가능했다.

돈과 화제성을 모두 챙겨보겠다는 의지가 느껴지는 미리보기 구성이었다.

그리고 그 의지는 잘 통했다.

[오늘 공개된 테스타 대환장 워홀리얼리티ㅋㅋㅋ]

테스타가 제작진들에게 공항에서부터 사기당해, 결국 무이자 무담보 대출상환 알바를 시작한 1화의 반응이 대단히 뜨겁던 것이다.

유료 멤버십 가입자 비율이 눈에 띄게 증가할 정도였다.

게다가 여기엔 박문대의 노림수가 하나 더 섞여 있었다.

그 뉘앙스는 테스타가 드디어 빚의 존재를 깨닫는 장면에서부터 드러났다.

[저희가 빌려놓은 작은∼ 아주 아담한 가게가 있어요! 거기서 수익을내시면 돼요!]

[김래빈 : 으허억.]

[류청우 : 조, 종목이 정해져 있을까요? 무슨 가게인가요?]

[그런 건 없는데요, 원가가 100달러를 넘어가면 빚에 추가합니다!]

[이세진 : 헐.]

그리고 뻔뻔한 자막이 떴다

[원하시는 거 아∼무거나 파셔도 돼요ㅎㅎ]

그런데 직후, 표정 없이 담담히 제작진의 말을 경청하던 박문대가 이렇게 말한 것이다.

[박문대 : 그럼 우리 호떡 팔자.]

[?]

[선아현 : 호떡?]

[이세진 : 문대 호떡 먹고 싶니?]

[박문대 : 아니, 뻔한 메뉴가 아니라 경쟁력 있을 것 같아서. 원가도 싸고, 맛도 좋잖아요. 호객만 잘하면 될 것 같은데… 그거야 다들 잘할 것 같고.]

설득력 넘치는 어투였다. 여기저기서 '오', '괜찮네' 같은 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데뷔 전부터 하도 뒤통수를 많이 얻어맞아서 익숙해진 아이돌들이 알아서 빠르게 상황을 납득하고 생존루트를 개척하기 시작한 것이다.

테스타가 제작진에게 너무 일방적으로 끌려다니면 지겹고 답답할 수 있다는 약점이 뚝 사라졌다.

그리고 도리어 제작진이 당황하기 시작했다.

[이세진 : 근데 파는 곳이 있을까?]

[선아현 : 근처에 한인 마트가 있지 않을까…? 뉴저지주에 한국분들 많이 사신다고… 들었던 것 같아!]

[박문대 : 어. 그리고 내가 호떡을 잘 만들어.]

[이세진 : 오∼ 자신감!]

[차유진 : I'm in! (자신감의 표현)]

[류청우 : 좋네. 아, 위에 초콜렛이나 아이스크림 얹어도 잘 어울리겠어.]

배세진까지 긴장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합의는 순식간에 끝났다.

류청우가 산뜻하게 제작진에게 대답했다.

[류청우 : 오케이. 저희 호떡 팔게요.]

[PD : 그, 그래요? 뭐 다른 건 고려해 보실 생각 없으세요? 뭐, 꼭 음식 아니어도 많잖아요∼]

[차유진 : 없어요!]

멤버의 해맑은 거부와 함께, 하늘을 보는 PD의 모습이 컷 신으로 들어갔다.

[테스타의 수많은 시행착오를 예상하며]

[수많은 미니게임을 준비했습니다.]

[하지만 결국 하나도 쓰지 못하고 한국으로 반송했습니다….]

파란 하늘과 함께 흥겨운 컨트리뮤직이 웃기게 깔렸다.

[ 테스타 호떡 가게 개점 결정 ]

[(5분 걸림)]

그렇게 테스타는 미국 해변 구석에서 호떡 장사를 시작하게 되었다…는 구성이었다.

돈, 음식, 국뽕이라는 대중성 3종을 다 잡은 선택이었다.

[저 직원 귀엽다!]

[호떡? 바삭하고 아주 맛있어.]

그리고 테스타를 모르는 외국인들에게 칭찬을 들으며 우여곡절 끝에 호떡을 파는 장면이 짧게 예고편으로 삽입되었다.

이 익숙한 예능 맛에 사람들이 못참고 유료 멤버십을 결제한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제작진 악마가 따로 없네 개웃곀ㅋㅋㅋㅋㅋㅋㅋㅋ

-ㅠㅠ테스타 놀라는 거 너무 귀엽다 비하인드도 많이 풀어주세요!

-와 아이돌 리얼리티도 이런 거하는구나 신기해 그리고 대유잼ㅋㅋㅋㅋ

-외국인 호떡 리액션? 이 맛은…

국뽕의 맛이로구나!

-이렇게 웃길 줄 몰랐다 빨리 다음편 좀

기대에 부푼 사람들의 댓글이 주르륵 달렸다.

다행히, 그 기대는 배신당하지 않았다.

이어진 2편에서는 테스타가 제법 훌륭한 팀워크를 자랑하며 가게를 운영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며칠 뒤 짬을 내서 바닷가를 보고 온 3편까지, 리얼리티는 즐겁고 빠른 템포로 진행되었다.

[너희 무슨 동아리니? 대학생? 고등학생?]

[비슷해요! 춤추고, 노래하고∼]

차유진이 씩 웃으며 반쯤 진담인 말을 하는 장면은 소위 말하는 '힘을 숨긴 메타'의 맛이 제대로 느껴지도록 만들었다.

기대했던 장면을 중실히 채운 2, 3화에 사람들의 반응은 식지 않았다.

-야 얘네 진짜 일 잘해 어디 가서 굶진 않겠다ㅋㅋㅋㅋ

-홍보용으로 해변에 시식이랑 음료 쿠폰 뿌린 거 개똑똑해 역시 이세진 천재잖아;

-청우 미국 기준으로도 핫하구나… 그럴 줄 알았다.

-호떡 아이스크림 진짜 미친놈이네 배달을 부름 미국인만 입이냐 러뷰어도 입이야ㅠ

-요리 : 박문대, 김래빈

주문 : 선아현, 차유진

서빙 : 이세진, 류청우

햄스터 : 배세진

최고의 조합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왜 배세진만 햄스터얔ㅋㅋㅋㅋㅋㅋ

└우리 햄스터 열심히 일해욧ㅠㅠ

예능형 캐릭터성이 발굴되면서, 일부 멤버들의 이미지가 다소 부드러워진 효과도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매출액 천 달러를 넘기고 테마파크에 가는 감격의 순간.

계획적으로 저축액만 쓰겠다고 결심한 테스타가 박살 나는 장면이 편집을 거치며 폭소를 불렀다.

계기는 박문대의 결심대로, 박문대였다.

[박문대 : 저거 귀엽네.]

[이세진 : 헐∼ 문대, 저런 거 사면 우리 예산 끝장이야!]

[박문대 : …그렇지. 미안.]

기념품점에서 이세진의 개그용 콩트 수작에, 박문대가 약간 시무룩하게 반응해 버린 것이다.

큰세진 뒤로 느낌표가 수없이 뜨는 편집이 들어가더니, 차유진이 끼어들었다.

[차유진 : 사요! 우리 사요!]

[김래빈 : 어?]

[선아현 : 맞아, 괜찮을 것 같아…!]

[차유진 : 또 일해요! 또 벌어요!]

[배세진 : 그,그렇긴 하지만.]

마침 류청우가 자리를 비운 상태.

차유진의 적극적인 주장에 최연장자인 배세진이 당황하는 순간, 차유진도 일부러 불쌍한 척을 했다.

[차유진 : 오늘을 즐겨요! 우리 열심히 하잖아요…]

[배세진 : …그럼, 이번만.]

[차유진 : Yeah!]

그렇게 테스타는 '이번만 사자'는 합리화와 함께 기념품점에서 쇼핑을했다.

즐거운 제작진의 자막이 들어갔다.

[당연히 이번만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

그렇다.

한번 해보면 쉽다고, 테스타는 비슷한 패턴을 거치며 온갖 기념품과 간식을 구매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결국 제작진 금융까지 손을뻗기 시작했다.

[이 정도는∼ 여러분, 세 시간만 일해도 벌 수 있는 돈이잖아요!]

[선아현 : 그렇긴 하지만….]

[차유진 : 맞아요!]

[배세진 : (혼란)]

[이자도 없는데, 뭐 어때요! 여러분, 첫 미국 여행이잖아요!]

이 수작에 넘어간 결과.

[오늘의 정산… 이야! 마이너스 1,012 달러!]

[!]

이렇게 끝났다.

[열심히 일하셔야겠네요 여러분∼]

인형과 방석, 모자를 한가득 끌어안은 테스타가 혼미한 얼굴로 숙소로 돌아가는 뒷모습으로, 4화가 끝났다.

-ㅋㅋㅋㅋㅋㅠㅠㅠㅠ애들 돈 다 털렸어 어떡해!

-여러분 이래서 대출 광고가 위험한 겁니다

-제작진 무서운 놈들 투어 컨디션 관리해준다고 하루에 7시간 이상 못일하게 하면서 빚 부추곀ㅋㅋ

└사람 밀려온다고 조금만 더 팔게해달라고 빌어도 '여러분을 위해서에요^^ 하는데 정말 그렇게 사악하게 착한 소리 처음 봄

└ㅋㅋㅋㅋㅋㅋㄹㅇ

심지어 이 테스타의 대탕진 테마파크 일대기가 끝난 주가 때마침 골드디스크 시상식이었다.

테스타가 입국하는 주였다는 뜻이다.

리얼리티 시청자들은 벌써 그날을기다리게 되었다.

조금이라도 건수가 잡히면 웃을 기회였기 때문이다.

-테스타 응원법에 호떡 추가해줘

-아 얼굴만 봐도 웃을 것 같아

-빨리 보고 싶다 얘들아 진짴ㅋㅋㅋㅋㅋㅋ

-기념품 인증이라도 하면 레전드일 듯

하지만 테스타의 국내 일정을 기다리던 것은, 비단 그들의 팬들뿐만은아니었다.

"후우."

테스타가 입국한 당일 저녁.

회사 관계자용 로비에 앉아 있던이 신인 아이돌은 테스타와 만나기를 꽤 오래 기다렸다.

'…오늘 회사 들른다고 했는데.'

테스타의 매니저로도 일했던 자신들의 매니저가 전해준 소식이니, 믿을 만한 말이었다.

아이돌은 자신의 두 손을 마주 움켜쥐며, 침착하게 생각했다.

'정신 차리자. 오늘 잘 말해야 해.'

그때, 주차장 쪽 자동문이 열렸다.

"…!"

그 뒤로 등장하는 것은… 모자와 마스크를 쓰고 있는 훤칠한 키의 남자 여럿이었다.

테스타였다.

'왔다…!'

신인 아이돌은 벌떡 일어나서 그쪽으로 달려갔다.

"안녕하십니까, 선배님!"

테스타와 같은 회사의 신인, 아주사 시즌 4에서 2위로 데뷔한 참가자는 그들에게 꾸벅 고개를 숙였다.

"네? 아아, 네. 안녕하세요."

"아, 반갑습니다."

"예! 정말 죄송하지만, 혹시 실례가 안 된다면 아주 잠깐만이라도 말씀 나눌 수 있을까요…!"

"…."

극도로 정중하고 절박했다.

상사를 대하는 신입사원의 태도가따로 없었다.

"어…."

약간 당황해서 시선을 주고받는 테스타의 사이에서, 박문대는 살짝 감탄했다.

'오.'

느낌이 왔다.

본부장 썰을 풀 것 같다는 느낌이었다.

[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 192화]

일단… 뜬금없이 등장한 아주사 이번 시즌 2위와 함께 근처 빈 회의실로 이동했다.

"정말 감사합니다!"

"…별말씀을요."

아니, 사실 감사할 상황이 맞기는하다.

스케줄 중간에 사전 약속도 없이 다짜고짜 시간 좀 빼달라는 말을 들어준 거니까.

그것도 초면인 후배 상대로.

'그나마 개인 광고 미팅이라 내가 시간이 난 거지.'

아니면 어림도 없었다.

-아∼ 문대도 같이 있어야 회의가 잘 돌아가는데!

당장 방금도 큰세진이 이런 식으로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고 있었다.

'음, 그렇다네요. 죄송합니다.'

정도만 던지면 모양새 안 나쁘게 빠져나올 수 있는 이 상황을, 굳이 피하지 않은 이유는 간단했다.

'미리 알아두는 게 편해.'

분명 테스타에게도 영향을 끼칠 제스처를 누가 취한 것 같은데, 분명회사 사람들 한번 거치고 오면 왜곡될 거란 말이지.

'직접 들어도 발 빼기 쉽다.'

어차피 같은 회사라고 해도 경쟁 관계다. 피차 같은 처지에 구체적인도움을 주지 못해도 도의적 문제는없다.

'그럼 들어볼까.'

…다만, 인사치레가 끝난 뒤 후배 입에서 나온 내용은 상상 이상이었다.

"저희… 데뷔 타이틀 가제가 '마법소녀'였어요…!"

"푸흡!"

방금 소리는 내가 아니라 내 옆에 앉아 있던 김래빈이 낸 소리다. 이쪽도 광고 미팅 상대가 아니라 시간이 났거든.

그리고 나도 뭘 마시고 있었다면 저 소리를 냈을 것이다.

'돌았나?'

저쪽 담당자가 미쳤나? 아니, 혹시오해가 있을 수도 있다.

나는 가까스로 입을 열었다.

"테스타 데뷔곡, '마법소년'과…."

"예, 예! 들으면 바로 그 곡이 생각나요. 가사도 비슷한 부분이 있고,장르도 유사해서…."

오해는 아니었군.

후배의 얼굴은 허옇게 질려 있었다.

"이미 컨셉이랑… 의상도 봤는데요, 너무, 너무 비슷하니까…."

"…."

"말씀드려야 할 것 같아서 찾아뵙게 됐습니다…."

그래. 그 부분은 확실히 알겠다.

'이거 다 같이 X 될 것 같아서 찾아온 거였군.'

하기야 이 애도 그 아주사에서 버텼으니, 테스타가 도움을 줄 거라 무작정 믿고 찾아왔을 리가 없다.

같은 소속사의 2년 차이 선배란 다분히 라이벌에 가까운 존재가 아닌가.

그러나 이런 건은 터지면 테스타도 골 아플 테니, 같이 반대해 줄 것이라 기대하고 올 법했다.

합리적인 발상이긴 했다. 다만 무작정 믿을 순 없다.

'일단 좀 더 캐내볼까.'

소속사가 무슨 생각인진 대충 짐작은 가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상황인지 좀 더 들어볼 필요는 있겠지.

하지만 내가 뭘 떠볼 것도 없었다.

나보다 먼저 김래빈이 번쩍 한 손을 든 것이다.

"혹시 질문드려도 됩니까?"

"예? 예!"

평소 이놈의 사회성을 고려해서 입을 막을까 짧게 고민했지만, 그만뒀다.

김래빈은 '마법소년' 곡에 직접 손댄 당사자니까.

그리고 예상대로 김래빈은 핵심을찔렀다.

"곡이 얼마나 유사합니까? 장르적 유사성에 더하여 컨셉에 공통 분모가있는 정도 이상입니까?"

"그… 아!"

후배가 흥분해서 탁자에 양손을 올렸다.

"아예 따온 게 있어요! 브릿지에 잠깐 들어가는 게!"

"예…?"

"'마법소년'에 그 '따라라라∼' 하는 멜로디요!"

"…!"

'마법소년'의 가장 상징적인 리프 멜로디, 칼림바로 연주되는 청량한 반주 음.

그걸 따와…?

'잠깐, 이건 표절 아닌가.'

원곡자가 저걸 썼다고 해도 저작권 문제다.

내가 알기로, 김래빈이 편곡 과정 중 저 음에 코드를 몇 개 더 찍는 바람에 변형이 일어났었다.

그래서 작곡 저작권자 명단 중에도 분명 김래빈이 있는데….

"아, 샘플링이군요."

그러나 김래빈이 담담히 고개를 주억거렸다. 후배가 입을 떡 벌렸다.

"새, 샘플링이요…."

"예. 과거부터 대중 음악사에서 무단 샘플링이 일어난 경우는 잦긴 합니다만, 그래도 최근에는 지양하는 세태인데…."

"아무튼, 넌 들은 게 없다는 거지."

"예."

"법적으로도 애매한 거고."

"그렇습니다. 정도에 따라 다릅니다만…. 실제로 법적 문제로 인정되지 않은 사례도 다수 존재합니다.

더구나 이번 경우 브릿지에 잠깐 들어갔다고 하시니, 오마주로 해석될가능성도 있습니다."

즉, 여론에 의한 도의적 문제 선에서만 해결봐야 할 수도 있다는 뜻이다.

'그러고 보니, 일단 발매한 뒤 허락받는 경우도 부지기수였던 것 같군.'

나는 혀를 찼다.

'…이거 본부장의 모험수 맞는 것같은데.'

어차피 본부장은 테스타를 통해 본인의 비전을 실현하는 건 반쯤 포기한 상태다.

그렇다면 대신 테스타를 저 신인그룹의 자양분으로 딱 한 판 거하게 써먹을 준비를 했다고 하더라도 이상하진 않았다.

'어그로를 끄는 거지.'

테스타 팬들의 화력을 역으로 써먹는 것이다.

같은 소속사 세계관으로 비벼볼 만한 애매한 선을 건드려서, 테스타 팬들의 분노까지 대중적 흥미로 소화하는 구상을 그렸지 않을까.

'말하자면, 전형적인 노이즈 마케팅이다.'

어차피 대중들은 테스타가 자체적으로 컨셉과 편곡을 맡았다는 것에자세한 관심은 없다.

그냥 이미지로만 받아들이지, 디테일을 확인하며 그룹이 정확히 어떤제작 부분에 참여했는지를 추리하는사람이 있을 리가 없다.

그러니 저 후배 그룹이 곡과 뮤직비디오를 잘 뽑아서 대중에게 인식되면, '테스타 팬들이 과했다'로 여론이 귀결되어 버릴 수도 있다.

이런 식으로.

-같은 소속사끼리 세계관 연결 흔하지 않나? 하여간 유난은… ㅉㅉ

-좋기만 하구만 작곡가랑 회사가 똑같으니까 스타일 겹치기도 하는거지 설마 테스타 혼자 다 만들었다고 믿나?ㅋㅋㅋ

-하도 난리라 무대 봤다가 입덕함 은하수즈 이제 꽃길만 걷자ㅠㅠ

그리고 '마법소년' 곡과 컨셉은 이미 한번 검증된 흥행작이다.

'반만 따라가도 반응이 괜찮을 거란 계산도 당연히 깔려 있을 거란말이지.'

일단 이 방법을 통해 저 후배 그룹을 확 띄운 후엔 본부장이 그쪽을주력으로 밀어주는 그림일 것이다.

종합적으로, 소속사만 별 손해 없이 이득 보는 구성이었다.

'어차피 화살은 저 신인 그룹한테 먼저 돌아갈 테니까 자기들이 욕먹는 부담도 덜하겠어.'

그리고 저기 앉은 후배 안색만 봐도, 저 그룹이 얼마나 이 상황이 부담스러운진 알겠다.

아주사 라는 미친 프로그램 거치면서, 저 그룹 인원들도 다 하나같이 분명 평생 먹을 욕은 다 얻어먹었을 것이다.

'그런데 데뷔해서도 욕받이 견디라니 싫을 만도 하지.'

다만 그래도 '화제성' 하나는 데뷔후에도 보장이 가능한데, 갈등도 안하고 그저 거부감만 보인다라.

'음.'

나는 다시 입을 뗐다.

"저기."

"예!"

"혹시 생각해 놓으신 대안 있을까요."

"네?"

"'마법소녀' 말고, 다른 후보가 있었는지 궁금해서요."

"…! 예!"

역시.

후배의 안색이 좀 돌아왔다. 그리고 침착한 설명이 이어졌다.

"사실 저희 멤버 중에도 원래 프로듀싱을 공부하던 친구가 있어요. 그친구 곡이 타이틀 후보로 최종까지 갔는데… 갑자기, 며칠 전에 뒤집혀서요."

이 사태만 놓고 봤을 때는 희소식이긴 하군.

"그 곡 하고 싶으시겠네요."

"…예. 그, 팀장님은 다음 앨범에 쓰면 된다고 하셨지만… 솔직히, 상황을 다 떠나서 객관적으로도 저는 그 곡이 더 좋다고 생각합니다."

음, 회사 쪽 전략이 괜찮긴 했다.

일단 데뷔로 어그로를 잔뜩 끈 다음에 다음 앨범에서 자체 제작으로터뜨리며 떡상하는 그림을 그렸나보군.

'거기에 우릴 써먹어서 문제지.'

테스타가 좀 빈정 상해도 뭐, 어쩌겠냐는 생각도 있을 것이다. 재계약이 코앞인 것도 아니고 아직 3년반이나 남았으니까.

나는 살짝 인상을 찌푸렸고, 후배는 기겁했다.

"물론 '마법소년'은 정말 대단한 명곡인데요…! 지금 저희 데뷔곡이 아류 같은 느낌이라, 그보단 원래 후보곡이 좋다는…."

"그럼요. 충분히 이해합니다."

아무래도 내 표정을 오해한 듯하다. 내가 인상을 푸는 동안, 김래빈이 불쑥 대화를 시작했다.

"혹시 원래 준비하시던 곡은 어떤곡입니까?"

"아, 약간 뉴트로풍의… 요새 각광받는 스타일인데요, 듣기 편하고 굉장히 멋있는 곡이라고 저랑 멤버들은 생각했어요!"

"뉴트로면 디스코나 신스웨이브 쪽입니까?"

"음, 아마 신스웨이브였던 것 같습니다!"

"그럼 혹시 사운드 팩은…."

직접 작업하는 건 아니라 작곡 용어에 다 통달했을 리가 없는 후배는김래빈의 질문에 점점 쭈그러들기 시작했다. 슬슬 끊어줘야겠다.

"죄송합니다. 얘가 워낙 음악 작업에 열정적이라…."

"열정적이신 거 좋죠…! 대단하십니다!"

"아, 감사합니다."

안 되겠다. 도로 신입사원으로 돌아갔군.

나는 딱딱하게 굳어서 아부성 대사를 외칠 것 같은 후배를 딱하게 보다가, 일단 분위기를 환기했다.

"일단, 왜 찾아오신 건지는 확실히 알겠습니다. 걱정되셨겠네요. 아쉽기도 하셨겠고."

"예…."

"그런데 아시겠지만, 저희도 다른 그룹의 프로듀싱에 함부로 관여하긴힘듭니다. 아직 데뷔한 지 2주년도 안 된 신생 그룹이니까요. 지금 이야기를 들어보니 법적으로 문제 삼기도 힘든 건이고요."

"…그렇죠."

후배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그리고 김래빈도 덩달아 얼굴이 어두워졌다. 임마 넌 그러면 안 되지.

'곡 문제라 이입했군.'

잠시 큰세진이 그리울 뻔했다. 나는 한숨을 참으며 말을 이었다.

"하지만 불편하신 심정은 충분히 알겠습니다. 혹시 회사랑 이 화제로 말씀해 보셨을까요."

"…해보려고 했는데, 들어주시질 않아서요."

역시 데뷔도 안 한 애들이 하는 말이 먹히려면 프레젠테이션 정도는 준비해야 하나.

"그렇군요."

김래빈이 전 소속사가 생각나는지 열심히 고개를 끄덕였다.

"슬픈 일입니다. 누구든 자유로운 발언이 가능해야 할 텐데…."

아이고.

나는 김래빈을 말없이 쳐다보았다.

김래빈은 조용히 굳었다.

좋아. 이제 말을 잘 고르자.

여기서 중요한 건, 우리도 불편할거란 사실은 굳이 언급하지 않는 것이다.

'테스타가 직접 나서서 무마시키면 나중에 무슨 말로 왜곡될지 모르지.'

테스타가 아니라 신인 본인들이 자체적으로 반대한 그림이어야 한다.

그러니, 우리 역할은 조언으로 끝낸다.

나는 팔짱을 꼈다.

"혹시 최근에 회사에서 미국 이야기 들어보신 적 없나요."

"미, 미국이요? …아, 본부장님 뵀을 때 그런 말씀을 많이 하시긴 했는데요."

"그렇군요."

미국병 아직 건재한 게 맞군.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가볍게 말했다.

"다음에 직책 높은 분 있을 때마다 이런 대화를 좀 흘려보시는 건 어떨까요."

"예?"

"마법소녀가 너무 전통적이고 흔한마니아 감성이라 미국 같은 데에선안 통할 것 같다고."

"…!"

"요새 미국에서 뉴트로 유행하니, 그 흐름이 지나기 전에 타면 아주 효과적일 것 같다는 사례도 좀 드시고요."

"직접요?"

"아뇨, 멤버들끼리 그런 대화를 잘들리게 하시는 거죠. AR 팀 직원분이나 회사 사람들이랑도 하시고."

"…."

후배의 표정에서 경악이 사라지더니 대신 침착함이 깃들었다.

"그리고, 적당히 소문 퍼졌을 때 본부장님 만나서 제대로 말씀드려보면 될까요?"

'오.'

상황 판단력 괜찮군.

나는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확신은 할 수 없지만… 준비를 제대로 해가면 통할 수도 있지 않을까요. 저희도 데뷔 때 비슷하게 했거든요."

"…."

후배는 생각에 잠긴 듯 한동안 대답이 없다가, 곧 담담히 고개를 끄덕였다.

"…네. 감사합니다."

"아뇨. 도움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예! 귀한 시간 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엇, 전화! 아, 다음에 뵙겠습니다. 선배님들!"

후배는 빠릿하게 인사하더니, 곧 울리는 진동 소리에 기겁하며 회의실을 뛰쳐나갔다.

'몰래 나왔나 본데.'

뭐, 이제는 저쪽이 알아서 할 일이다. 나는 어깨를 으쓱하며 자리에서일어났다.

"래빈아, 우리도 가자."

"예."

김래빈은 일어나서 의자를 정리한 다음에야 진지한 얼굴로 질문했다.

"후배분들의 설득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지실 거라고 보십니까?"

"글쎄. 운과 능력의 문제겠지."

김래빈은 고개를 숙이더니, 약간 우울한 어투로 중얼거렸다.

"잘 진행됐으면 좋겠습니다."

"왜. 후배들이 욕먹을까 봐 안쓰러워'?"

"그것도 일부 존재하지만…."

김래빈은 머뭇거리다가 말을 이었다.

"저희 데뷔곡을 멋대로 쓰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

"다들 수면시간도 없이 열심히 만들었는데, 그 소중한 결과물을 타인이 멋대로 남용하지 않았으면 해서… 이기적인 발언으로 들릴 수도 있겠지만, 저희 그룹의 심정이 더 신경 쓰였습니다."

나 참.

"이기적인 거 아니야."

"그, 그렇습니까?"

나는 피식 웃었다.

"어. 나도 그래."

"…!"

"우리 곡을 누가 관심 좀 받겠다고 도용하는데 좋을 리가 있나."

"여, 역시 그렇군요."

그렇다. 심지어 그룹에도 피해가오게 생겼는데, 이걸 좋다고 넘기면 호구 새끼지 않은가.

"그리고 만약에 저쪽이 성공 못 해도 완전히 회사 마음대로 흘러가진않게 작업해둘 생각이니까, 너무 걱정은 말고."

"…예!"

김래빈의 얼굴에서 시무룩한 기색이 가셨다.

"그런데 혹시 어떤 방식으로 하실 예정입니까?"

음, 밑밥이나 깔아두는 거지.

나는 그날, 다른 멤버들보다 먼저 숙소로 돌아가자마자 김래빈과 SNS에 글을 하나 업로드했다.

데뷔 제작기

(파일)

놀이공원 대탕진 화가 방영된 기념으로 초심을 돌이켜봅니다. 앞으로도 열심히 하겠습니다…

(캡처)

바로 데뷔 당시 본부장을 설득하기위해 만들었던 데뷔곡 관련 PPT 초본과 최종본이다.

참고로 초본에서 최종본까지 파일 저장목록도 캡처로 첨부했다.

'진짜-최종', '1-(1)' 이런 게 잔뜩 붙어 있는 온갖 버전의 제목이 캡처에 난무했다.

김래빈은 손바닥을 쳤다.

"알겠습니다! '마법소년'의 편곡과 컨셉, 가사가 모두 테스타의 자체 제작이라는 물증을 강조하며 공개하신 거군요!"

"어… 그렇지."

저렇게 말하니 굉장히 거창해 보이는군. 그냥 선수 치는 수작인데 말이다.

그리고 혹시 모르니 리얼리티 프로그램을 의식해 우연히 올린 것처럼 포맷도 잡아두긴 했다.

혹시라도 회사가 강행했을 경우,나중에 '테스타가 후배 여돌 저격했다'는 말이 나오는 것을 막기 위해서.

"형! 여기 PPT 템플릿을 추천해주시는 팬분도 계십니다!"

"그래."

팬들은 PPT라는 희한한 떡밥에 폭소하면서도 추억에 잠기는 것 같았다.

나는 그 반응을 중계하는 김래빈의 말을 들으며 다른 놈들의 귀가를 기다렸다.

리얼리티를 변명 삼아 SNS를 올리고 나니, 내일 시상식에서도 리얼리티 관련 액션을 좀 취하면 좋을 것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상의해 볼 만하지.'

그리고… 동명이인 두 놈에게 주의도 줘야 한다.

'괜히 티 내지 말라는 말 정도는해야 하나.'

방금 기사를 봤다.

내일 시상식에서, VTIC이 드디어 공식 스케줄을 재개한다고 하더라.

[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 193화]

골드디스크 시상식은 음원과 음반부문으로 나뉘어 양일 연속 진행되었다.

그리고 남자 아이돌은 음원보다 음반에서 강세를 보이는 경향상, 후자에 얼굴을 비추는 경우가 더 많았다.

올해는 테스타도 그 경우에 속했다.

'행차'가 포함된 앨범이 역대 아이돌 앨범 판매량 7위 이상을 팔아치우며 어마어마한 기록을 냈기 때문이다.

음원 성적도 훌륭했으나 앨범 백만장의 벽을 깬 것은 그 의미가 남달랐다.

명실상부 남자 아이돌 1군.

비록 그 위에 넘을 수 없는 벽이 있었더라도 말이다.

-그래도 대상은 안 되네 브이틱이있어서ㅋㅋㅋ 불쌍

-ToneA에서는 그래도 올해 가수상 받지 않았나? 물론 티원 시상식이라 하나 챙겨줄 줄 알았지만ㅎ

-테스타 아직 대상감은 아닌 듯 내년에 브이틱 나락 가고 나면 받을 수 있을지도

└문제 일으킨 놈 퇴출 한지가 언젠데 아직도 나락ㅇㅈㄹ 응 희망사항 안 받아 망돌 빠는 새끼야∼

└추하다 티카야

"아, 개자식들!"

VTIC의 팬은 씩씩거리며 스마트폰을 던졌다.

'개빡쳐 진짜… 범죄자 새끼 때문에 이게 무슨 일이야.'

안 그래도 능력 없어서 안 좋아하던 놈인데, 이 지경이 되니 너무 열받아서 미칠 것 같았다.

'죄 없는 우리 애들한테 피해가 다오잖아….'

일정 올 캔슬에 잠정 공백기.

연말 프로그램도 휴식 명목으로 하나도 나오지 않았다.

선공개만 봐도 컴백에 엄청난 걸 준비한 것 같았는데, 그게 이렇게까지 미뤄져서 이제야 겨우 공개를 앞두고 있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진짜 데뷔 때부터 사고 한 번 안치고 온 애인데…'

특히 한 사람의 개인팬 성향이 짙은 이 팬은 자신의 최애를 아련히 떠올렸다.

'재현아….'

바로 리더인 청려였다.

'우리 신재현이… 쉴 때도 유기견 봉사나 하는 앤데 X발 클럽 사태같은 추잡스러운 짓 엮인 놈 이끄느라 그동안 고생 많았다 진짜…'

차라리 다행이라고 생각하자고, 청려의 팬은 마음을 고쳐먹었다.

'그래. 이 기회에 어차피 하는 것도 없는 무능력자 손절했으니 넷이서 커리어 하이 찍자.'

퇴출당한 전 멤버에게 무자비한 평을 내린 팬은 SNS에 접속했다.

공백기 동안 다소 조용하던 VTIC팬들의 계정에 활력이 넘쳤다.

'다 으쌰으쌰하는 분위기네.'

이 기세가 반드시 성적으로 이어져야 했기에, 팬은 이상한 뉘앙스는 없는지 열심히 글을 훑었다.

그리고 빈자리들을 발견하고 입맛을 다셨다.

'갈아탔겠지.'

이야기를 나누던 계정 중 몇몇이 어느새 사라졌다.

곧 활동 시작하면 새 사람들로 채워지겠지만 어쨌든 탈주한 사람들이있다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다 걔네한테 갈아탄 거 아냐?"

얼마 전부터 여기저기서 떠들썩한그 그룹을 떠올리며, 팬은 오묘한 기분에 휩싸였다.

청려와 제법 친해 보이는 후배가있는 그룹.

바로 아주사 시즌 3 출신 테스타였다.

사실 그녀도 최근 그들의 리얼리티를 보기는 했다. 청려와 친한 박문대에게 조금 관심이 있기도 했고, 워낙 인터넷에서 화제였기 때문이다.

먹방부터 국뽕까지 사람들이 좋아하는 요소는 다 때려 박은 그 영상은 아이돌에 별 관심 없는 일반인과 위튜브 중장년층 시청자까지 확보했다고 한다.

-아ㅋㅋㅋ 아이스크림 올린 호떡? 이건 못 참지

-우리 훤칠한 청년들이 대한민국의 맛난∼ 호떡을 홍보하는군요 손도 야무지고 얼굴도 아주 잘났습니다 화이팅^^

-ㅋㅋㅋ박문대 매장에 나오는 노래 따라부를 때 외국인들 표정 봐 하긴 나도 케밥 썰던 먼 나라 요리사가 갑자기 한 곡 기깔나게 뽑으면 저럴 듯

-엄머머 한국인들 다 저렇게 생겼다 오해하면 어쩌나… 나는 몰라(웃는 이모티콘)

심지어는 기세에 힘입어 T1 계열쪽 케이블 방송에서 다음 주부터TV 방영까지 예정되어있었다.

'우리 애들도 그런 거 시키면 잘할텐데.'

대기업 방송사 끼고 있어서 좋겠다며, 청려 팬은 투덜거렸다.

그러나 재밌었다는 것 자체는 부정할 수 없었다. 하다못해 그냥 지나가는 장면에서도 캐릭터가 살았다.

가령 2화 후반, 첫날부터 예상치못한 판매 폭주로 갑작스러운 영업중단을 맞이하는 장면도 그랬다.

[정말 천국의 맛이네요. 이거, 아이스크림 호떡 하나 더 주문할게요. 부탁해요.]

[배세진 : 오, 오케이.]

호떡에 초콜릿을 신중히 뿌리던 배세진은 갑작스러운 외국인의 습격에 잔뜩 긴장해서 삐걱거리며 주방으로갔다.

[배세진 : 호떡… 아이스크림 호떡이 하나 더 필요한데.]

[이세진 : 헉. 형, 방금 반죽 다 떨어졌는데요!]

[!]

화면이 흔들리는 충격 효과가 배세진의 클로즈업을 뒤흔들었다.

[배세진 : 그, 그럼… 자, 잠깐.]

[이세진 : 아, 제가 말씀드릴게요! 서비스로 아이스크림이라도 잔뜩 드리죠 뭐∼]

[배세진 : …아냐, 내가 할게!]

[빠밤!]

배세진은 비장한 스포츠 응원가를 BGM 삼아 아이스크림을 하나 가득퍼갔다.

[오∼ 고마워요!]

[…크흠, 유 웰컴.]

그리고 결국 손님의 오케이 사인을 받고 뿌듯한 표정을 짓는 것으로 추가 오더 사태는 마무리되었다.

이어진 영업 점검 토의에서도 화면은 유쾌발랄했다.

[주문 폭주로 영업 중단!]

[※토의 시작※]

두둥!

[레시피 중시파]

[김래빈 : 50개 분량의 반죽을 작업하여 40개만 만들었다는 것은 숙련도의 문제입니다. 영업 종료 후 연습을 통해 50개의 감각을 익히겠습니다…!]

[한국의 인심(?)파]

[이세진 : 어차피 원가가 엄청 센것도 아닌데 좀 많이 드리자∼ 한국의 인심을 보여줘∼]

[돈이나 벌자파]

[박문대 : 무슨 말을 하든 반죽하는 손은 멈추지 마라. 일단 팔 게있어야지.]

멤버들은 자기 의견을 적극적으로내며 투닥거리면서도 사이가 좋아보였고, 서로 다른 성격도 하나하나 부각되었다.

특히 작은 실수 하나에도 깜짝 놀라서 얼어붙는 배세진과 고장 난 호떡 기계 김래빈은 귀여운 밈이 되어 돌아다니고 있었다.

확실히 연예인으로서 매력이 느껴지긴 했다는 뜻이다.

'그러니 우리 팬덤에서도 유출이 일어나지….'

하지만 그것도 오늘로 끝이라고, 청려의 팬은 생각했다.

공백기가 끝나고 컴백이 확정된 지금, VTIC은 무시무시한 속도로 또 화제성을 쭉 빨아들일 테니까!

'곡만 잘 뽑으면 하락세는 멀었어!'

오히려 멤버 탈퇴 사건의 영향으로 '얼마나 잘하나 보자', 혹은 '고생했다 응원한다'는 관심이 쏟아지고 있었다.

그리고 데뷔 후 그 오랜 시간 동안, 청려는 한 번도 팬의 기대를 좌초시킨 적이 없었다.

[띵∼ 띠리링!]

"아, 시작한다."

'12세 미만 시청자 관람 불가' 권고가 지나가는 순간, 그녀는 각을 잡고 TV로 시선을 돌렸다.

'시상식 컴백 무대 본방사수!'

미리 찍어둔 것인지, 대기석에 자리 잡는 가수들의 면면이 짧게 잡히며 지나갔다.

그리고 어느 기점을 넘긴 순간.

"헐."

테스타가 화면에 잡혔다.

물론 단순히 테스타가 나왔다고 뜬금없이 청려의 팬이 감탄한 것은 아니었다. 나올 만한 타이밍이었으니까.

다만 화면에 등장한 그들은… 놀이공원에서 산 기념 방석을 찰지게 자신들의 의자에 깔고 있었다.

철썩철썩철썩!

심지어 야무지게 놀이공원 상표까지 가려놨다.

그리고 의자에 착 붙은 그 방석의 동물 얼굴을 카메라가 굳이 아련히클로즈업 했다.

'저게 뭐야.'

문득 드는 예감에 인터넷 페이지를 열어보자 실시간 시청자들이 'ㅋㅋㅋㅋ'를 도배하며 폭소하는 중이었다.

테스타의 리얼리티를 안 본 사람들이 보기에도 그냥 뜬금없이 웃긴 장면이던 것이다.

그리고 리얼리티를 시청한 사람들은 백그라운드 지식을 공유하는 재미까지 느끼고 있었다.

-미친 저걸 여기서ㅋㅋㅋㅋㅋㅋㅋ

-뭐임 저거 사연있음?ㅋㅋ

-테스타 리얼리티에 나왔어요

-엌ㅋㅋㅋㅋㅋㅋ충동구매 천딸라 그래도 알차게 써먹네

-테스타 아워홀 강추함 호떡 팔며미국 여행 빚 갚는 한국 청년들을 보세요∼

"와…."

청려의 팬은 VTIC이 화면에 잡히길 기다리면서, 약간은 인정하는 수밖에 없었다.

저것들도 난놈은 정말 난놈들이었다.

"나 고양이 방석 쓸 거야."

"차유진 네가 고양이 방석 터뜨린거잖아! 돌고래로 만족해."

"돌고래 싫어."

차유진은 샵에서부터 김래빈의 방석을 호시탐탐 탐내고 있었다. 저꼴을 계속 보니 머리가 다 아프군.

나는 내 방석을 들어 올렸다.

"…강아지라도 써라."

"좋아요!"

차유진은 행복하게 강아지 방석을 냉큼 가져간 뒤 돌고래를 두 손으로 공손히 내밀었다.

확실히 이게 못생기긴 했다만, 어차피 엉덩이로 뭉갤 텐데 뭔 상관인가 싶다.

'후.'

나는 방석을 깔고 착석했다. 옆에서 다른 아이돌이 황급히 웃음을 참는 소리가 들렸다.

'많이 웃어라.'

시청자도 웃을 테니 좋은 징조였다.

이렇게 리얼리티 어필도 적당 선에서 괜찮게 한 것 같으니, 이젠 시상식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여주자.

자리 배치가 좀 그렇긴 하다만.

'바로 옆이 VTIC이군.'

테스타가 작년보다도 더 떴다 보니 좋은 자리를 받아서 어쩔 수 없는일이었다.

게다가 신경 쓰이는 건 청려가 아니었다. 옆자리의 이놈이다.

'저거 왜 저러냐.'

내 옆의 배세진은 대단히 비장한 표정이었다.

시상식이라 다들 상 때문에 그런다고 오해해 줄 것 같아서 다행이지,아니면 벌써 온갖 추측이 난무했을것 같다.

나는 한숨을 참으며, 만일을 위해 입 모양을 가리고 작게 말했다.

"형, 표정."

"아…!"

곧바로 배세진이 평상시의 적당한 표정을 회복했다. 확실히 배우로서의 능력은 출중한 놈이다.

'큰세진은… 뭐, 신경 쓸 것도 없군.'

실실 웃으며 차유진을 놀려먹고 있는 놈은 평소와 다를 게 없었다.

뭐, 당연한 일이었다. 나는 어제 이놈들과 나눈 대화를 떠올렸다.

-크게 신경 안 쓰긴 할 건데, 혹시라도 상황 이상하게 돌아가면 커버만 부탁하고 싶습니다.

-어, 어떤 식으로?

-음… 그냥, 보기에 문제 생길 것 같은 애매한 분위기면 적당히 말만 돌려주실 수 있을까요.

사실 능력치 분배 상 배세진보단 큰세진 놈에게 한 거나 다름없었으나, 예의상 연장자 중심으로 전달한 말이다.

-오케이∼

그리고 예상대로, 큰세진은 별다른 군말 없이 이 정도로 리액션을 끝냈다.

그러나 배세진은 이 대화에서 무슨 사명감 같은 걸 가진 모양이었다.

-큼, 그래. 걱정 마!

이렇게 대답하더니, 시상식 오는내내 무슨 학교에서 얻어맞고 온 동생 놈 등굣길 호위하는 것처럼 기합이 들어가 있다.

'저러다 본인이 사고 치는 거 아닌가.'

괜히 말했나 싶다.

그러나 신경 써주려 애쓰는 것은 기특한 일이긴 했기에, 나는 온건한방식으로 긴장을 풀어주기로 마음먹었다.

이런 식이다.

"그러고 보니 세진 형 방석에는 리본 달렸던데요."

"맞아. 세진아, 그 기니피그 캐릭터 귀엽더라."

"…뭐, 그렇긴 하지."

"네. 아, 혹시 그때 VOD 리액션 보시고 생각나서 구매하셨던 건가요."

"…!"

배세진의 얼굴이 시뻘게졌다.

여기서 VOD 리액션이라 함은 이거다.

이번 콘서트 VOD 판매 구성에 포함되어 있는, 첫 번째 콘서트 리허설에 대한 테스타 본인들의 리액션 영상.

'VOD 홍보용으로 풀 예정이라고했지.'

그리고 배세진은 그걸 리액션할 당시에 기함했었다.

나온 리허설 영상이 청자켓부터 왕리본까지의 의상을 풀장착한 유닛무대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메이킹 필름 제작진의 질문까지 나왔다.

-리본 정말 잘 어울리시네요!

-…그, 아니요.

화면의 배세진이 이러고 도망가는것을 보며 차유진이 무자비하게 폭소했었다.

음, 마침 같은 장면을 회상했는지 배세진이 버럭 소리친다.

"아니야! 그냥, 햄스터랑 비슷해서…!"

"오, 햄스터."

"내가 햄스터라는 게 아니라! 패,팬분들이 그렇게 불러주시니까!"

"기니피그는 큰 햄스터예요?"

"으으윽.''

배세진은 멤버들의 악의 없는 감탄에 그대로 침몰했다. 한동안 헤어나오지 못할 것이다.

'화목해 보였을 테니 일석이조군.'

나는 피식 웃으며 배세진에게서 시선을 돌렸다.

그러다가, 마침 입장하던 옆 테이블 놈들과 눈이 마주쳤다.

"…!"

"아! 문대 씨∼!"

지난번, 모 예능에 함께 출연했던 VTIC 두 놈이 눈이 마주치자마자 웃으며 손을 흔들어댔다.

그리고 바로 그 옆에 내 대가리를 오함마로 후려치려 했던 놈이 서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