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4화]

휴가가 끝난 후.

"왔어?"

"그래."

숙소에 복귀하자마자 김래빈의 재 택근무 관련 내용을 구체적으로 전달했다.

사실 김래빈에게는 너 혼자 힘든 일이라고 했다만, 김래빈의 유무를 조건으로 두 가지 버전의 활동 준비를 하는 것이 보통 일은 아니다.

'사실 중노동이지.'

컴백 일정이 그대로라는 가정하에 이 짓을 하려면 뻔하지 않은가.

임의로 셋이서 결론낸 것에 대해 부당하다고 항의해도 할 말 없는 상황이란 뜻이다.

물론 이놈들이 항의할 것 같진 않았고, 실제로도 그랬지만.

"…그래서, 래빈이가 재택으로 곡 작업하면서 원격으로 앨범 준비 함께하는 방향으로 이야기 마무리했습니다."

"오오."

"잘했어, 후우."

거실에 모여서 간단히 브리핑하자 여기저기서 안도의 한숨이 튀어나왔다.

휴가 동안 대놓고 묻진 못하고 돌려서 안부를 묻더니, 각자 나름대로 머리 깨지게 고민했던 모양이다.

"그, 그러면 래빈이는 할머님 곁에서… 계속 있을 수 있구나."

"그러게. 다행이다∼ 그럼 래빈이 작업물은 월, 목 밤 9시에 피드백하는 걸로?"

"맞아. 그리고 중간 연락은 되도록 실시간으로."

김래빈의 마음이 편안한 것에 집중하던 놈도 만족했고, 김래빈의 부재를 신경쓰던 놈도 만족할 타협안이었으니까.

"방법만 좀 다르지, 하는 일은 바뀐 게 없어. 이번 앨범도 다 같이 잘 만들어보자."

"화이팅합시다∼"

"화, 화이팅…!"

그 과정에서 노동량 증가 정도야 하루 이틀 일도 아니니, 자연스럽게 우선순위에서 밀려 버린 것이다.

거기서 직감했다.

'실무진들 반응도 비슷하겠군….'

유인책을 생각할 필요도 없었다는 것을 말이다.

…회사가 추가 근무 수당이라도 잘 챙겨주는지나 확인해 봐야겠다.

다만, 예외가 없던 것은 아니었다.

멤버 한 놈은 얼굴이 허옇게 떴으니까.

"…잘됐네, 김래빈."

당연하지만 배세진이다. 심지어 화제 다 지나가고 한발 늦게 반응이 나왔다.

'말 자체는 진심 같긴 하다만.'

단지 안무 동선 두 가지를 따로 익히는 미래를 상상하니 눈앞이 깜깜해진 게 분명했을 뿐이지.

그래도 놀라울 만큼 회복이 빠르긴 했다.

당장 직후에 안무 대형 논의에 배세진이 무슨 발언을 했는지 보자.

"그럼 우선 안무부터 이야기할까?"

"오∼ 인원이 다르니 아예 대형을 따로따로 구상해달라고 말씀드리는 건 어때요?"

"음… 그래도 보컬 멤버들은 최대한 동선 변화 적은 방향으로 하는 편이 낫지 않겠어?"

류청우가 대충 뭉뚱그렸지만 누굴 배려해 주려는 건지 모를 사람은 없었다.

그리고 당사자의 반응은 이랬다.

"…아니, 그럴 필요 없어. 똑같이 해."

"그, 그럴까?"

"…그래!"

"오우! 멋져요!"

"크흠."

배세진이 차유진의 호응에 은근히 기분 좋아하는 게 보인다.

'…대충 알겠군.'

저놈에게 쥐꼬리만 한 자신감이 붙은 이유를 말이다.

아마 최신 평판 덕분일 것이다.

나는 휴가 직전, 거실 구석에서 놈이 '배세진 구멍 탈출기'라는 제목의 위튜브 영상을 몰래 보고 있던 것을 회상했다.

[아주사 에서의 논란이 거짓말이었던 것처럼, 배세진은 데뷔 후 놀라운 계단식 성장을 보여주었는데요.]

[단순히 군무에서 튀지 않는 것을 넘어, 직캠에서도 처음부터 끝까지 안무 디테일을 놓치지 않는 것으로 팬들을 놀라게 했습니다.]

['성장형'을 붙이려면 이 정도는 되어야 한다는 표본이 아닐까요?]

블루투스 이어폰을 꼈어도, 그런 동영상은 워낙 자막이 큼지막해서 그냥 보이더라고.

댓글도 대부분 놀라울 만큼 호의적이었던 것 같다.

-배세진 진짜 놀랐음 예능 보니까 귀엽고 열심히 하던데 응원하고 싶어졌어요ㅋㅋ

음, 이런 댓글에 슬쩍 '좋아요'를 누르며 입꼬리를 주체못하던 배세진의 얼굴도 생각나는군.

어쨌든, 데뷔 이후 호떡 굽는 리얼리티를 거치며 대중 평판이 상승세니 본인도 긍정적인 동기부여를 받은 것 같단 뜻이다.

아마… 이번에 제대로 1인분을 해서 재평가에 마침표 찍을 결심이겠지.

'그래도 쓸데없이 무리하면 내가 곤란하다.'

활동기에 번아웃 와서 투어에 지장 가면 안 되니, 어깨에 넣은 힘 좀 빼게 해줘야겠군.

"그럼 특별히 코멘트 없이 안무 동선 의뢰는 진행하는 걸로…."

"전 좋은데요."

"어어?"

"전 동선 변화 적게 해주시면 좋겠습니다. 배려 좋죠."

나는 일부러 빤히 배세진과 류청우를 번갈아 봤다.

왜, 뭐. 나도 보컬 멤버 아니냐.

류청우가 살짝 웃음을 참는 얼굴로, 정리하는 척 고개를 숙였다.

"음… 그래. 그럼 세진아, 약간 간단하게 부탁드리는 정도로 괜찮겠어? 문대가 저렇게 말하니까."

"…그, 그러던가."

"네넵∼ 그럼 그렇게 정합시다∼"

큰세진이 눈이 마주치자 슬쩍 눈썹을 올렸다 내렸다.

놔두지 왜 챙겨주냔 식 같은데, 저것도 어지간히 한결같은 놈이다.

"회사에는 연락했어?"

"예. 촬영 일정 이중으로 부탁드렸고…."

나는 턱을 문질렀다.

"이제… 앨범 컨셉 구체화부터 얼른 진행하면 됩니다."

"…그게 아마 기간이,"

"넉넉잡아 일주일일까요."

"그래."

거실에 비장감이 감돌았다.

경험이 붙을수록 엑셀 작업을 더 기가 막히게 하던 김래빈의 빈자리가 갑자기 느껴지긴 한다.

게다가 이번 컨셉은 전체 활동 흐름에서 유독 튈 예정이어서 말이다.

명료한 정리가 필수였다.

"오늘은 빨리 관계자들 연락부터 확인하고, 내일부터 본격적으로 시작하는 걸로 할까."

"좋습니다."

"여, 열심히 하겠습니다…!"

그렇게 앨범 최종 작업이 시작되었다.

바쁜 프리랜서의 스케줄을 짠다는 것은 생각보다 번거롭고 고려할 게 많은 작업이다.

각종 관계자의 일정을 다 알맞게 짜맞추면서 프리랜서 본인이 너무 무리해서도 안 되니까.

심지어 그 프리랜서가 아이돌 그룹이라면?

고려할 건 몇 배로 늘어난다.

그래서 필요한 게 매니지먼트실인데….

'영 일 처리가 성에 안 차는 놈들이라.'

그냥 내가 감시하는 게 속 편했다.

가령 김래빈과 연락 같은 것도 말이다.

[타이틀 작업_2절 Verse_(l)]

[타이틀 작업_2절 Verse_(2)]

[김래빈 : 오늘은 2절 벌스의 랩 파트를 작업해 보았습니다. 들어보시고 더 많은 투표수를 획득한 버전으로 응답 부탁드립니다.]

[김래빈 : 언제나 감사합니다.]

김래빈은 칼같이 시간에 맞춰서 작업물을 보냈다. 나는 답장을 보냈다.

[고생했다. 빠르게 피드백 보낼게]

그러면 이걸 받아서 보통 다음날 오전 중까지 멤버들의 의견을 추합하고 AR팀의 리뷰를 받는다.

그리고 그걸 저녁에 도로 김래빈에게 보내면, 다음 연락 날짜에 또 작업물이 오는 식이다.

원래라면 김래빈이 직접 AR팀과 소통하도록 만들었겠으나… 상황이 상황이다 보니 말이다.

나는 고민하다가 문자를 덧붙였다.

[거기 있으면서 특별히 힘들거나 고민되는 일 있으면 말해]

이런 문제 때문에, 어느 정도 일 외의 융통성 조절이 필요하니까.

다행히 이번에도 고민하는 망설임 없이 빠르게 답이 왔다.

[김래빈 : 특별한 예외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습니다.]

할머님의 수술 이후 악화나 급격한 회복 증상은 없었다는 뜻이다.

'…그래도 이 기간이 너무 길어지면 안 되는데.'

답을 고민하던 찰나, 빠르게 메시 지가 연달아 도착했다.

[김래빈: 언제나 걱정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김래빈 : (이미지)]

첨부된 이미지는… 장미 그림에 '오늘을 살아가는 힘, 웃는 얼굴과 용기에서^^'라는 문구가 무지개색으로 번쩍이고 있었다.

[김래빈 : 할아버지가 보내주셨는데 문구가 정말 좋아서 공유해 봅니다. 기운찬 하루 보내시길 바랍니다.]

나는 피식 웃었다.

'오늘도 얼마 안 남았다, 이놈아.'

벌써 밤 10시다.

그래도 남은 두 시간이라도 좋은 하루 보내라는 뜻으로 알겠다.

[그래. 너도 잘 자라.]

나는 김래빈이 보내는 깍듯한 답장을 확인한 뒤, 스마트폰 화면을 껐다.

앞에서는 신발 밑창이 미끄러지는 소리가 요란하게 들렸다.

"다시 한번 가자."

"넵!"

김래빈이 파일을 올린 게 단체 메시지 방이었는데도 불구하고, 나를 제외하면 아무도 실시간으로 답장하지 못했던 이유가 여기 있다.

김래빈을 제외한 6인 안무 동선을 익히는 중이었기 때문이다.

아무도 반응 안 할 수는 없으니 내가 잠깐 빠진 거지.

"문대문대, 래빈이 곡 잘 확인했나∼ 어느 부분이야?"

"2절 도입."

"오케이∼ 끝이지?"

얼른 연습에 다시 합류하라는 뜻이다. 나는 후렴 반복구에 들어가기 전에 놈의 옆에 섰다.

"문대만 한번 보자."

"네."

곡의 전체 구성은 다 나왔고, 편곡과 일부 레코딩 관련 작업이 진행되는 중이라 가편집된 데모곡이 스피 커에서 나오고 있었다.

참고로 내가 녹음했다.

…각 파트 녹음할 때 안 헷갈리게 해준답시고 창법을 비슷하게 해줬더니, 폭소한 새끼들이 생각나는군.

-으하하하! 그거 나야? 문대 제법인데?

-저 또 해봐요! 저 해요!

-문대야, 성대모사 개인기로 해보는 게 어때?

이번에 어디 예능 나가면 일화랍시고 떠들어 댈 것 같다.

…음, 또 열받는군. 그만 생각하자.

나는 안무 동작에 집중했다.

"하나, 둘…."

안무가가 내 동작과 동선을 한번 점검한 뒤, 고개를 끄덕였다.

"잘 추네. 특히 고개 드는 거 좋아."

"감사합니다."

"그리고 이런 말 좀 그런데, 내가 듣기에도 곡 좋아. 잘 빠졌네."

앨범 발매를 앞둔 아이돌이라면 누 구든 기꺼워할 칭찬이었다.

여기저기서 밝은 응답이 나왔다.

"감사합니다!"

'재밌네.'

참고로, 이 안무가가 바로 아주사 에서 만났던 그 안무 트레이너다.

자연스러운 척은 한다만, 독설 뱉던 태도는 어디 가고 훨씬 조심스럽고 친절해졌다.

배세진이 가끔 느리게 반응하거나 실수할 때도 신경질은커녕 무시도 못 하는 모습을 봐라.

'이게 사회지.'

특히 오디션 당시엔 마음껏 폭언을 퍼붓던 선아현한테는 거의 정중하기까지 하다.

이게 썩 좋은 방식이라고 할 순 없겠다만, 역시 일할 때는 사회적 위치만큼 잘 먹히는 예절 주입기가 없다.

"…아현아, 거기 뒤로 한 번만 돌아보자."

"네, 네!"

'선아현 본인은 신경도 안 쓰는 것 같지만.'

뭐, 안무가도 쇼비즈니스 때문에 더 고압적으로 나왔던 것이니, 이 바닥에서 특출나게 인성이 나쁜 놈 취급할 필요는 없다.

게다가 제일 중요한 안무가 잘 나왔다.

굳이 이 안무가의 시안을 메인으로 채택한 이유가 있던 것이다.

'이런 스타일은 거의 처음인데.'

"1절 끝."

"고생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

여기저기 엎어지는 놈들은 힘들어 보였으나, 그리 불안해 보이진 않았다.

바쁜 것과는 별개로 차근차근 일이 잘 진행되고 있다는 안정감 덕분이다.

'좋아.'

"무, 문대야. 물."

"고마워."

나는 남은 스케줄을 머릿속에서 도식화하며 물을 마셨다.

어느 쪽이든 문제는 없다.

'그래도 김래빈이 합류하는 최상의 시나리오로 가면 좋겠군.'

이 앨범 이미지가 김래빈과 워낙 잘 어울리기도 하니까.

나는 그렇게 결론을 내리고, 짧은 휴식 시간을 알차게 쉬었다.

"10분 끝."

"넵∼"

하지만 이 과정에서 하나 계산에 넣지 못한 점이 있었다.

내가 몇 주간 인터넷을 깊이 모니터링하고 있지 않다는 것 말이다.

그리고 물밑에서는 이미 알음알음 글이 퍼져 있었다.

[김래빈 이번 활동 빠질 듯]

물론, 내가 뒤늦게야 확인하고 땅을 치게 됐다는 건 아니고.

"아현아."

"으응?"

이날 룸메이트 설득에 성공했거든.

그러니까… 위튜브에서 털복숭이만 보던 시즌은 끝났다는 뜻이다.

[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 225화]

룸메이트 설득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다.

"내가 인터넷 안 본 지 꽤 됐는데, 그동안 딱히 금단증상 같은 반응은 없었지."

"으응. 머, 멀쩡했어. 문대야…!"

"그러니까 애초에 중독이 아니라, 스트레스 해소용으로 봤던 게 맞는 것 같다."

"어, 어어어?"

"네 말대로 너무 과해지면 스트레스가 될 수도 있겠지만… 좀 쉬면서 감 잡았어."

설마 이렇게 말이 연결될 줄은 몰랐는지 선아현이 입을 못 다물었다.

"이제 스트레스 수준 되기 전에 알아서 조절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무, 물론, 문대가 잘하겠지만…"

그리고 여기서 변화구를 넣는다.

"네 덕분이다. 고마워."

"…! 아, 아니, 문대가 잘 조절한 건데 뭘…!"

"그래. 앞으로도 잘 조절해서, 스트레스 없는 선에서 모니터링할게."

끝이었다.

이후 선아현이 어째 사기당한 몰골로 멍하니 스케줄에 끌려다녔으나 곧 회복했으니 된 거겠지.

그렇게 휴식 시간을 이용한 자유로운 모니터링 재개에 성공했다.

"내일 컨셉 포토 촬영 7시부터 준비 시작하신다니까 늦게 자진 말자."

"네넵!"

그리고 오늘의 할 일이 끝난 밤.

'오랜만인데.'

나는 침대에 눕자마자 일단 관련 커뮤니티를 한번 쭉 훑었다.

과거에서부터 천천히.

일단, 초반에 몰아서 촬영해 둔 K-NOW는 케이팝 지옥캠프에서 슬슬 벗어나며 힐링캠프를 겸업 중이었다.

그 부드러운 노선 전환이 시청자들한테 제대로 먹힌 모양인데, 덕분에 테스타가 아직도 제법 점수를 따고 있었다.

-선아현 특별 무대 혼성하니까 덩치 차이 개설레 ㅅㅂ꽃사슴인줄 알았는데 엘크잖아

-ㅠㅠ 이세진을 고소합니다 관종 외국인한테도 친절해서 러뷰어를 설레게 만들었습니다

-배세 선글라스 화보 도랏다 미국 놈들아 보았냐 이게 바로 배우 출신 케이돌의 위엄이다 (사진)

일단 일반인 참가자들과 능력치와 여유가 비교되니 편집부터 뽕이 제대로 차오르게 만들어 준 것 같았다.

내 분량은 초반에 몰려 있어서 크게 변동은 없다만, 비하인드 씬이 풀리면서… 귀엽다는 말은 좀 많군.

-문대 진짜 열심히 배운다 얼마나 아이돌에 진심이면 매번 기회를 놓치지 않는다고7ㅠㅠ

-혼자 무슨 생각해 귀엽게 서서ㅠㅠ(쉬는 시간 구석 캡처)

-선배님 말할 때마다 귀 쫑긋쫑긋 하는 게 너무 귀엽다

네? 안 보인다구요? 그럴 리가 (강아지 귀 합성한 GIF 파일)

하필 그 비하인드 씬이 청려와 진행했던 특별 무대 연습 카메라라는 것만 빼면 다 좋았을 것이다.

-둘이 예능도 같이하더니 친한가 봐 무슨 라인이라고 불러야 하지 대천재명석아이돌 라인? (김칫국

'…선 넘네.'

팬이 아니라 예능 비하인드 편집이 말이다. 나는 빠르게 이 날짜 반응을 넘겼다.

그리고 검정고시.

이건 시각자료 올려준 놈들 덕인가, 의외로 다들 훈훈하다는 반응이 전반적이긴 한데….

"…?"

뭐냐 이놈들은.

-곰머 이것도 보고 있지?ㅋㅋㅋ기 싸움 오진다

왜 혼자만의 싸움을 하고 있는 건 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긁으려다 실패하고 지친 새끼들의 흔적이 역력했다.

'1승 날로 먹었군.'

…선아현의 조언이 정말 타이밍 좋게 효과가 있었던 모양이다.

나는 옆 침대로 눈을 돌렸다. 마침 눈이 마주쳐서 부르는 수고를 덜었다.

"뭐 먹고 싶은 거 있냐."

"으응?"

"야식으로."

선아현은 잠시 이게 무슨 말인가 생각하는 것 같더니, 얼굴에 '!'가 뜨며 상체를 벌떡 일으켰다.

"아, 무, 문대 야식 먹을래?"

"…."

'배고프다는 뜻을 눈치 없게 바로 파악하지 못한 또래 관계 능력 없는 나' 증상이군.

아무래도 내일 아침에나 뭘 좀 답례로 먹이면 될 것 같다. 나는 동문서답하는 선아현을 적당히 진정시키고 도로 모니터링을 재개했다.

어디 보자, 이후로는 한동안 큰 화 제는 없었다.

비활동기다 보니 가볍게 룸메이트 나 이사 컨텐츠에 대한 팬들의 반응 정도가 메인이었을 뿐이다.

하지만 최근으로 넘어오자, 물밑의 분위기가 일변했다.

인증 글로 시작되었다.

[나 병원에서 셤별 봤다 개이득]

: 배 아파서 응급실 갔다가 돌아가는 길에 주차장에서 다리 긴 남자 몇 명이 우르르 밴에서 내리는 걸 목격

비율부터 인원수까지 너무 아이돌이란 킹리적 갓심 들어서 자세히 보니까 섬별이었음 김래빈이 마스크 안 해서 확인함ㅋㅋ 허술허네ㅋ

근데 안색 나쁘던데 혹시 가족 중에 아픈 사람 있음? 딱 그 각이던데

(흔들린 사진)

연예인 사생활은 공공재라고 믿는 커뮤니티에 올라온 글이었기 때문에 아무 빈축을 사지 않고 리액션만 쏠쏠히 받아 갔더라.

나는 한숨을 참았다.

'…안일하긴 했지.'

하지만 그때 이런 일까지 고려할 수 있는 놈이 있었을 리가 만무했다.

당장 누구 임종을 볼지도 모르는 판에.

"…."

나는 그 글 이후 시점으로 두고, 검색어에 '래빈'과 '병원' 등을 적당히 조합해 넣어서 여러 결괏값을 확 인했다.

-래빈이 병원 목격담 뭐임

-관련 이야기 차단합니다 래빈이가 직접 말할 때까진 알 생각 없습니다

-애들 다 같이 가줬구나… 이런 걸 소비하면 안 되는데 괜히 눈물 난다

김래빈의 조부모님 중 한 분이 아프셨을 거라는 추측은 거의 확정적이었다.

그래도 대부분의 팬 커뮤니티에서는 대놓고 하는 언급은 금지된 상태였고.

'생각보다 빨리 퍼졌는데.'

아까 직접적인 인증 글 원본이 삭제되기 전에 널리 퍼진 탓인 것 같았다.

'회사 대응이 좀 느렸어.'

앨범 준비 스케줄을 재편성하고 언론 대응 준비하는 것에 전력을 쏟느라 이쪽을 놓친 게 분명했다.

그러니 물밑에서는 스토커 스타일의 미친 새끼들이 날뛰기 딱 좋았다.

아마 많은 이들이 궁금해하는 정보를 선점했다는 식의 이상한 우월감을 느끼는 것 같았다.

-매니저 명의로 벤 대여했네 이새끼들 지들끼리 처놀아?ㅋㅋㅋㅋ 컨텐츠 어디감 연습이나 하지 초심 어딧냐고ㅠ

-여자 안부름? 여자 안부름? 여자 안부른거 맞지 빨리 누가 좀 알아와 봐

-어카누 눈깔 때문에 휴가 다 말아먹었대 곰머 윾진이 눈깔 달래주느라 강원도행∼

-곡이 나 만들지ㅅㅂ 짜증나네

회사나 관계자에게 소식을 듣거나 휴대폰을 복사한 몇몇이 정보를 재생산하며 설치는 것 같았다.

게다가 자칭 김래빈의 팬이라고 주장하면서 온갖 억측과 말도 안 되는 트집을 잡는 새끼들까지.

-아 묘레빉 멘탈 X될 듯 정규에 이게 무슨 일이냐 시Xㅋㅋㅋ 근데 언젠간 이런 날을 줄 알았다

-설마 누구 죽은 것도 아닌데 일부터 팽개쳤냐 왜 숙소 돌아왔단 소식이 없냐고 레빉아ㅋㅋ

-레빉아 제발 커리어 우선 알지?

-아픈 가족과 시간을 보내기 위해 정규 앨범 빼버리기ㅎㅎ? 내가 어쩌다 이런 가정적인 돌을 잡았지

가관이다.

'…이쪽도 단속이 안 됐군.'

내가… 당시에 여기까지 신경 쓸 정신머리가 없어서 이 지경까지 방치한 셈이다.

"…."

X발, 그만하자. 자아비판도 시간 남을 때 해야 민폐가 아니지.

'닥치고 뇌나 좀 써라.'

즉각 쓸 만한 몇 가지 패턴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우선은 메시지방 캡처부터 공개하는 게 가장 가성비가 좋겠는데.'

김래빈의 작업물 관련해서 나눈 말 들을 일종의 컴백 예고처럼 SNS에 올려주는 것이다.

그럼 당장 김래빈의 현재 상태에 대한 억측이나, 참여 관련된 불안을 일단락시킬 수 있을 것이고….

최악의 경우에도, 효력이 있을 것이다.

그러니까… 김래빈이 이번 활동 초기에 참여하지 못한다 해도 말이다.

쓸데없이 욕먹는 일이 줄겠지.

그래도 물고 늘어질 새끼들은 나오겠지만 이번에는 깔끔하게 처리할 준비가 되었다.

'고소 예고 먼저 때려야지.'

전담팀 구성하자마자 제일 처음 할 일이다. 그리고 전담팀은 X발 내가 잠을 안 자는 한이 있어도 이번 활동 내로 구성을 끝낼 것이다.

'그 전에, 지금은 당장 할 수 있는 일부터 하고.'

나는 바로 김래빈의 작업물 관련 대화 중 가장 적당한 것을 골라 캡처했다.

그리고 단체 메시지방에 업로드 관련 동의부터 빠르게 구하려했다.

김래빈은 야행성이니, 웬만하면 지금도 깨어 있을 테니까.

[우리 작업한 내용 좀 캡처해서 올리면 좋아하실 것 같은데, 어때.]

[큰세진 : (저는 그거 찬성이에요 이모티콘)]

[차유진 : 저 나와야 해요!]

역시 안 잘 만한 놈들부터 바로 튀어나와서 반응하는군.

그리고 김래빈의 응답도 늦지 않게 도착했다.

하지만 내용이 좀 이상했다.

[김래빈 : 괜ㅊㄴㅇㄹ]

"…?"

김래빈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오타였다.

아마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를 쓰려다가 미끄러진 것 같은, 그런 흔적.

'…졸려서 실수했나.'

나는 팔짱을 꼈다. 그리고 최대한 보수적인 자세로 답장을 기다렸다.

그러나… 몇 분이 지나도록, 정정된 답은 오지 않았다.

"…."

그러니까 이건, '그' 김래빈이 오타를 정정하지 않고 연락이 끊겼다는 뜻이다.

웃을 일이 아니었다.

'예상되는 상황은….'

X 같지만, 아주 강렬한 가정부터 머리를 때렸으니까.

나는 팔을 손가락으로 두드렸다.

'…부고인가.'

만일 그 경우라면 지금 전화를 해서는 안 된다. 전화해 봤자 긴급한 상황에 방해만 될 뿐이다.

나는 간신히, 합리적인 결론을 내렸다.

'…내일 아침쯤에 확인한다.'

그때쯤이면…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다 정리되지 않았겠는가.

[큰세진 : 래빈아?]

메시지방에서는 다른 놈들이 몇 번 김래빈을 호출하는 메시지가 뜨기도 했으나, 곧 잠잠해졌다.

다들 분위기 파악을 한 모양이었다.

무슨 일이 일어났을지에 대한.

"…."

나는 최대한 합리적인 대응을… 도출하기 위해, 계속 뇌를 돌렸다.

'부고와 SNS 업로드가 타이밍이 겹치면, 안 된다.'

나는 업로드를 보류하기로 했다.

그리고 바로 스마트폰을 두고 침대에 누웠다.

"무, 문대야. 자…?"

"어."

'쓸데없는 생각 말고 취침이나 하자.'

이럴 시간도 여유도 없는 상황이다.

썩 잠이 잘 오지는 않았으나, 피곤을 수면제 삼아서 적당히 새벽즈음에는 잠들 수 있었다.

하지만 날이 밝은 후에도 김래빈에게 연락은 오지 않았다.

아침 8시가 넘은 시간.

"연락하자."

"어, 어떤 상황인지 모르니까, 좀 더 기다리는 건 어떨…

"전화할래요!"

"잠깐만. 우리 벌써 일정 늦었어. 일단 이동하면서 이야기하자."

현 상황에 대해 각기 의견을 내는 놈들로 거실이 소란스러웠다.

연습실로 출발할 시간은 이미 넘겼다. 나는 소파에 걸터앉아 고개를 젖혔다.

'망할.'

머리가 안 돌아간다.

'잠을 못 자서 그런가.'

이 추측도 핑계겠지. 바쿠스500은 잘 돌아가고 있다. 이건 피로가 아니라 내 정신상태의 문제다.

나는 숨을 내쉬었다.

'…확인해야겠지.'

…더 미루면 회피다. 이젠 정말 전화를 해야한다.

그때였다.

드르르륵!

"…!"

손에 쥐고 있던 스마트폰이 울렸다.

전화가… 왔다.

"래빈이야?"

김래빈이 맞다.

나는 생각할 겨를도 없이 바로 통 화버튼을 누르고 귀에 가져다댔다.

"여보세요."

-형!

김래빈의 목소리는….

흥분으로 밝았다.

-간밤에 하, 할머니께서 완전히 의식을 찾으셔서… 대화가 가능했습니다!

"…!"

부고가 아니었잖아.

갑자기, 머리끝까지 폭죽이 터지는 것 같은 괴상한 해소감이 치밀어 올랐다.

그리고 날뛰었다.

좋은진 모르겠다. 다만 목소리를 주체할 수가 없었다.

"그럼 바로 연락을 했어야지…!"

-죄, 죄송합니다! 새벽 중에 취침하실 텐데 방해가 될 것 같아 아침 9시까지 기다리려 했습니다…!

"…."

너무 놈다운 대답이라 말문이 막혔다.

나는 맥이 풀려서 스마트폰을 귀에서 뗐다. 주변에서 멤버들이 몰려들었다.

"김래빈이에요?!"

"괜찮대?"

류청우가 조용히 물었다.

"문대야, 내가 받을까?"

"…예."

스마트폰을 넘겼다.

와르르 몰려들어서 전화에 대고 신나게 떠드는 놈들의 목소리가 귀를 울렸다.

"래빈이∼ 목소리 좋은데?"

"어, 어때?"

나는… 모르겠다.

그냥 이상하게 개운했다.

김래빈 때문인지, 전화 때문인지, 아니면 이 망할 상황이나 상태창 탓인지는 나도 모르겠으나… 그냥 X발, 그랬다.

피로가 가신다.

'미쳤나.'

나는 헛웃음을 지으며 미간을 눌렀다.

"래빈이 오늘 저녁에 올라온대!"

"오, 날짜 딱 맞췄네∼"

그러게.

가끔은 이렇게 딱 맞는 경우도 있는 모양이다.

나는 스마트폰을 돌려받자마자 SNS에 접속했다.

'빨리 할 일이나 하자.'

머리와 손이 근질거렸다.

그날 오전.

김래빈이 박문대에게 전화를 걸어온 지 채 한 시간도 지나지 않은 시각이었다.

테스타의 SNS엔 짧은 글 하나가 게시되었다.

두근두근 (사진)

누군지 소개도 없이 대뜸 업로드된 글에는 박문대가 엄선한 정다운 단체 메시지방 캡처가 첨부되어 있었다.

-헐 얘들아ㅠㅠ

컴백용 작업의 신호탄이었다.

[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 226화]

단체 메시지방 대화 공개는 반응이 괜찮았다.

-이거 설마 컴백 떡밥이야? 타이틀 래빈이 단독 자작곡이고?

-단톡방 공지 뭐얔ㅋㅋㅋ

('이모티콘 10개 이상 도배 금지 그래 너 이세진'을 밑줄 친 캡처)

-무슨 개판이 나든 꿋꿋이 일 얘기만 하는 문댕댕 봤냐 본인이 강아지라 개판이 익숙한 거지

-아니 배세진 진짜 햄스터 이모티콘 쓰냐고 미친ㅠㅠㅠㅠ

특별히 문제 될 소재만 없으면 이런 소소하고 친근한 컨텐츠는 스테디셀러 아니겠는가. 게다가 컴백 힌트까지 있으니 재미는 확실했을 것이다.

…다만, 이걸 올리기 전 막판에 예상 못 한 검수를 받긴 했다.

-음, 문대 네가 캡처해 올리게?

-그래.

-이런 건 청우 형이 낫지 않겠나∼? 리더잖아.

-…!

-평소에 이런 거 잘 안 올리시니까 팬분들이 더 좋아할 것 같은데∼ 안 그래?

…맞는 말이었다.

안 그래도 비슷한 패턴을 몇 번 써먹은 나보다는 더 자연스럽기도 하겠고.

그래서 큰세진의 피드백을 수용해 류청우의 편으로 해당 글을 올려서 깔끔히 처리했다.

-헐 청우였네

-아 류청우 동생들 이름 뒤에 동물 이모티콘 붙여서 저장해줬어 미쳤냐고 이 남자야ㅠㅠ

결과가 좋았으니 입 닥치고 좋아하는 게 맞았으나, 내 정신머리에는 의구심이 든다.

'이걸 저놈보다 먼저 못 떠올렸다니.'

무슨 의욕만 앞서서 성급한 애새끼 같았지 않은가.

폼이 떨어진 건 아닌지 자가 진단이라도 해봐야 할 판이다.

나는 혀를 차며, 팔짱을 꼈다.

'다음 건 제대로 한다.'

물론, 그 전에 컴백 준비부터 제대로 끝내야 했다.

한 명이 따로 합류해도 차근차근 진행되도록 짜놓긴 했지만, 그래도 무대에서 서로 합을 맞추는 과정은 필수다.

그래도 나를 포함한 다른 멤버들은 중간중간 여유가 있다. 김래빈 없이 진행할 수 있는 촬영을 많이 끝내놓은 상태니까.

하지만 김래빈은 아니다.

'저놈은 지금부터 그걸 다 해야 한다.'

덕분에 김래빈은 합류하자마자 거의 툭 치면 일 얘기부터 쏟아질 수 준으로 바쁜 상황이었다.

그래도 그 와중에 인사를 잊지 않더라고.

며칠 뒤 밤, 드디어 시간이 나자마자 슬그머니 방에 찾아온 것이다.

"누나가 형과 차유진에게 전달해 달라 부탁했습니다! 제 성의도 최대한 보태보았습니다. 정말 감사했습니다."

김래빈이 내민 것은… 지역 맛집에서 구매한 약과와 호박 식혜였다. 아마 택배로 보낸 것 같다.

그런데 양이 어마어마하다.

'아무래도 차유진 취향은 확실히 알고 있었나 보군….'

둘이 다른 걸 주긴 그러니, 최소한 취향을 알고 있는 쪽의 입맛에 맞추는 게 합리적이긴 하다.

난 특별히 음식에 호불호도 없으니까.

'이걸 언제 다 먹나 싶긴 하다만.'

그래도 할 말은 해야지.

나는 거대한 보자기에 싸인 상자를 받아들었다.

"고맙다. 잘 먹을게."

"감사합니다! 누나께도 꼭 전달하 겠습니다."

김래빈이 싱글벙글 웃으며 고개를 꾸벅거렸다. 원래 인상이 살벌하고 며칠 잠을 제대로 못 잔 몰골이라 별 소용은 없었다만.

나는 약간 갈등하다가, 결국 질문했다.

"…할머님은 괜찮으시고?"

"예! 꾸준히 연락 중입니다만, 순조롭게 체력을 회복하시는 중이라고 하십니다."

다행이었다.

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앞으로는 혹시 질병 등 신체적 불편함이 생기시면, 솔직하게 말해달라고, 부탁드렸습니다…."

"잘했어."

놈의 어깨를 한두 번 두드렸다.

이제 한 번 이 과정을 거쳤으니, 언젠가 정말 김래빈이 걱정하던 순간이 오더라도 좀 더 의연하게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피할 순 없어도, 대처할 순 있겠지.'

그걸로 됐다.

나는 쓸데없는 상념을 털어내고, 놈이 준 보따리나 도로 집어 들었다.

"그럼 이건… 냉장 보관이 맞겠지."

"그렇습니다. …앗, 형! 제가 들겠습니다!"

"됐다. 어차피 받았는데 뭘."

그렇게 내가 어차피 냉장 보관이 필요할 이 보따리 내용물을 냉장고로 가져가려던 찰나였다.

"아, 그러고 보니 질문드리고 싶던 것이 있습니다!"

"뭔데."

김래빈이 따라오며 손을 들었다.

"이번 앨범 원격 작업 관련 메시지 방을 팬분들께 공개하신 이유가 궁금합니다!"

"…!"

"아직 이번 앨범과 관련된 공식 보도 자료도 나오지 않은 상태니, 제 짧은 생각으로는 혹시 유출의 위험이 있을까 걱정했습니다만…."

김래빈의 눈이 번쩍였다.

"그 리스크를 무릅쓸 만큼 어떤 효율을 예상하셨는지 여쭙고 싶습니 다!"

"…."

그런 리스크를… 생각해 본 적이 없는데.

난 약간 떨떠름하게 놈을 보았다.

'카카오톡 서버라도 해킹하지 않는 이상 곡이 유출될 일은 없지 않나.'

곡과 앨범에 지나치게 진심이라 이론상으로만 존재할 위험까지 걱정을 하고 있군.

그래도 공식 입장이 나오기 전에 그룹이 개인적으로 컴백 여지를 흘리는 게 좀 걸릴 수도 있겠다 싶긴 하다.

그렇다고 그 선 넘은 발언들을 이유로 직접 말해주는 건 안 될 일이었지만.

'가장 자극 없을 부분만 꺼내서 엮어야 하나.'

나는 차분하게 입을 열었다.

"팬분 중에 네가 본가에 있는 걸 알아차린 분들이 계셔서. 그분들 안심하라고 말씀드린 거지."

이것도 실제 이유긴 했다. 김래빈의 멘탈과 상태를 걱정하며 불안해 하는 사람이 제법 많았으니까.

물론 개소리하던 놈들이 입 닥치도록 만드는 게 1차 목적이었지만.

-ㅋㅋㅋㅋ아 니들보다 레빉이가 커리어에 더 진심이라고∼

-다 어디로 사라짐?

-니들이 패기도 전에 갓기가 알아서 잘해서 어쩌냐 패는 게 인생의 낙일 텐데ㅉㅉ

그 반응을 보니 마음이 편안했다.

'이게 정답이지.'

"그렇습니까."

하지만… 김래빈은 여전히 의아한 얼굴이었다.

"하지만 다음 주에 공식 컴백 보도 자료가 나가면 저절로 안심하시게 됐을 텐데요."

"…!"

"메시지방이 줄 수 있는 즐거움은 그때도 유효했을 테니, 그 후에 업로드하시는 게 더 안전하고 좋았을… 아, 아닙니다! 말대꾸해서 죄송합니다."

"…."

나는 망연히 생각했다.

저 말이 맞나?

맞다.

유출 리스크 같은 김래빈의 가설이 맞다는 게 아니라, 굳이 X 같은 물밑 여론을 의식해서 직접 대응할 필요가 없었다는 뜻이다.

어차피 컴백 티저 나오면 다 풀릴 일이니까.

급하게 단체 메시지방 캡처를 올리

는 건 도리어 그 개소리를 의식하고 있다는 힌트가 될 긁어 부스럼이었다.

그나마 내가 아니라 류청우가 올려서 자연스럽게 넘어갔을 뿐이다.

내 초기 판단은… 틀렸다.

"네 말이 맞아."

나는 중얼거렸다.

떠오르는 목소리가 있었다.

-하지만 너무 신경 쓰지 마요, 형. 어떻게 다른 누군가의 마음을 다 내 마음대로 바꿀 수 있겠어요?

-그건 사실이 아니고, 다들 그렇게 믿는 것도 아니잖아…!

그동안 주변 놈들이 한소리 하는 걸 들으면서 내가 필요 이상으로 여론 통제에 몰두하는 걸 인정해놓고는, 또 비슷한 짓을 반복한 셈이다.

심지어 이번엔 효용도 발생하지 않는 짓을 대가리 없는 새끼처럼 저질렀지 않은가.

뻔했다.

그냥… 가족이 죽는 상황에 비난까지 당하는 꼴을 내가 참기 힘들었을 뿐이던 것이다. X발.

"내가 과민해서 실수했다."

"아, 아닙니다! 제가 괜히 필요 없는 질문을…."

"아니, 이게 맞아."

나는 계속 중얼거렸다.

"쓸데없이 예전 생각이 나서 그랬나."

"예, 예전 말입니까…?"

"그래."

척수가 동파라도 했는지 말이 줄줄 샜다.

"난 늦었거든."

"예…?"

"내가 갔을 때 이미 다른 사람 가족들은 다 신원확인까지 끝낸 상태였어. 우리 부모님만 그 야밤까지 남아서…."

미쳤냐?

나는 혀를 깨물었다.

"혀, 형."

"괜한 소리 해서 미안하다. 아무튼, 네 추리가 맞아. 내 실수였고 큰 뜻이나 효율 같은 건 없어."

"죄, 죄송합니다…!"

김래빈은… 금방이라도 눈물 콧물 다 쏟을 같은 꼴이 됐다. 망할.

나는 짐을 놓고 이마를 짚었다.

"네가 뭐가 미안하냐."

"힘든 경험이 떠오르게 잘못된 주제를 선택하여…."

"아니지."

나는 진실을 말했다.

"내가 그때 제대로 대처하지 못해서 힘든…."

"아닙니다!"

김래빈이 말을 잘랐다.

그리고 긴장한 게 역력한 태도로 양손을 주먹 쥐었다.

"제, 제 기억상으로는 형님은 그때 학원에서 공부 중, 연락을…. 그래서 약간 시간이 흐른 후에 받으셨습니다. 맞습니까?"

"…그래."

그런 이야기까지 했었군.

김래빈은 열심히 고개를 주억거렸다.

"하지만, 학생의 본분은… 공부가 맞지 않습니까!"

"…!"

뭐라고?

나는 뒤통수라도 얻어맞는 것 같은 몰골로 놈을 쳐다보았다.

"형은 맡은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고 계셨을 뿐입니다. 그러니까, 그건… 사고일 뿐입니다."

김래빈이 침을 꿀꺽 삼켰다.

"제가 MT에 간 게, 잘못이 아니었던 것처럼요."

"…!"

"그렇죠? 무, 물론 사례는 좀 다르지만…."

그래.

너는 내가 아니다.

하지만 별개로, 나도 당시에… 최선을 다한 건 맞다.

그냥 그 최선이 턱없이 부족하게 느껴졌을 뿐이다.

그리고 내가 무슨 대처를 했든, 힘들지 않을 방법은 없었다는 것을 인정할 수 없었던 것뿐이다.

-이런 일에 능숙한 사람은 없는 거야.

내가 김래빈에게 직접 말했듯이, 이런 일에 능숙한 사람은 없다는 것을.

"…."

나는 머리를 잡았다.

충격이 거셌으나, 답은 명료했다.

김래빈을 사료로 삼아 판단하니 이제야 보였다.

'중학생이 무슨 대단한 대처를 할 수 있다고.'

난 저놈도 부고를 겪긴 너무 어리다고 생각했으면서, 더 어렸던 내 상황은 봐주지 못하던 것이다.

그러니 이젠… 재평가를 해줄 때도 됐나.

'그래. 봐줄 만하다.'

그 정도면 중학생치곤 노력했다.

"…."

어쩐지, 마음이 홀가분했다.

…오늘 수면의 질이 좋을 것 같다는 근거 없는 예감이 들었다.

"혀, 형과 제 최근 상황에서 유사한 감성적 판단을 내릴 근거는 있다고 생각합니다만…."

"그래."

그래도 이것부터 확답해 주자.

이 불쌍한 놈이 내 눈치를 보며 계속 설득을 시도하고 있었군.

김래빈의 안색이 확 펴졌다.

"…! 그렇죠! 그러니까 힘든 경험을 생각나게 만든 제 잘못입니다!"

"아니, 그건 아니고."

본인 잘못이라는 걸 지나치게 해맑게 말하고 있군. 설득이 성공했다는 기쁨 때문에 도치된 것 같다.

나는 약과와 식혜 박스를 다시 들어 올리며, 되도록 부드럽게 말을 이었다.

"…좋게 말해줘서 고맙다."

"헙!"

김래빈이 또 꾸벅 고개를 숙였다.

"저야말로 형, 정말 감사합니다. 그 동안… 형 덕분에 수많은 도움을 받으며 무사히 앨범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그건 그룹 자체에도 이득이라니까 또 이러고 있다. 이러다 끝이 없을 지경이다.

'분위기 좀 환기해야겠군.'

나는 가볍게 물었다.

"차유진한테도 그래서 답례를 준 거고?"

김래빈이 정색했다.

"아뇨. 겸사겸사 준 겁니다."

"…."

둘이 허물없이 친한 건지 서로 바보 취급하는 건지는 모르겠다만, 부디 팬들에겐 전자로 보였으면 좋겠군.

나는 어깨를 으쓱한 뒤, 약과와 식혜를 냉장고에 정리했다.

"잘 먹으마."

"예!"

참고로, 이 선물은 컴백 준비하며 당 떨어진 놈들이 하나씩 주워 먹다가 막판 체중 관리를 죽도록 해야 했다는 것만 말해두겠다.

'자업자득이지.'

…신비로운 점은 차유진은 해당 사항이 없었다는 점이다.

어쨌든, 그런 웃기는 해프닝도 잠시였다. 앨범 발매날은 시시각각 다가오는 중이었다.

첫 번째 신호는 티저 공개였다.

"뭐함?"

"안 해. 꺼져."

김래빈의 개인 팬은 이를 으득으득 갈며 기웃거리는 남동생을 밀었다.

'자기가 찾아서 보면 될 걸 괜히 인정하기 싫으니까 저 지랄이야!'

박문대에게 관심이 생겼으면 당당히 찾아보면 될 것을, 마치 자신에게 시비를 거는 것처럼 슬쩍 같이 보려는 게 상당히 짜증 났다.

물론 그걸 고려해도 현재 그녀의 반응이 평소보다 격하긴 했다.

걱정거리가 있었기 때문이다.

'김래빈 괜찮은 거 맞냐고…!'

조부모님이 쓰러져서 준비에 뒤늦게 합류했다는 사생발 정보가 알음알음 돌았었다.

김래빈의 팬은 손톱을 뜯었다.

'일단 SNS에 올리는 거 보니까 가족 문제는 더 안 커진 것 같은데.'

그래도 상대적으로 준비 기간이 짧았으니, 앨범에 김래빈 분량이 적을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아 시끄러워! 그럼 다음 앨범 분량 늘려달라고 항의하든가!'

뭐하러 사서 걱정이란 말인가!

그녀는 고함을 한번 지른 뒤, 마우스나 고쳐잡았다.

분명 자정에 뜰 것 같….

'떴다!'

[테스타(TeSTAR) '부름'(Nightmar e) Official MV Teaser]

그리고 그녀는 입을 틀어막았다.

"허어억."

썸네일이 김래빈이다!

[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 227화]

김래빈의 개인 팬은 썸네일을 확인하는 순간 얼어붙었다.

화려한 체인을 귀와 팔에 감은 김래빈이 올 나간 검은 니트를 입은 채 카메라와 요사스레 눈을 마주치고 있었다.

"으어헉!"

엄청난 분위기와 얼굴이었으나, 그 이상의 감격이 있었다….

김래빈의 팬들이 이 순간을 제법 오래 기다려왔기 때문이다.

김래빈이 센터인 활동을!

'그동안 자기들끼리 너무 해먹었지! 솔직히 김래빈보다 인기 없던 놈들도 후렴 센터 했잖아!'

매번 활동 곡마다 멤버별 파트 분량표가 나오면 김래빈은 4∼5위 사이에서 맴돌았다.

그리고 매번 그 통계를 보며 쌍욕을 퍼붓는 개인 팬들도 있었다.

'프로듀싱 멤버는 분량 독식한다고 까이는 게 국룰 아니냐고….'

왜 이런 것만 예외 사항이냐며 이를 바득바득 갈게 되는 것이다.

분명 김래빈이 정치질에 재능이 없는 것도 매력이라고 생각했으나, 속 터지는 것도 사실이었다.

하지만 결국 이 순간이 왔다!

'이렇게 생겼는데 진작 센터 시켜 줬어야지, 가자.'

개인 팬은 더 생각할 겨를도 없이 바로 영상을 클릭했다. 거의 반사적인 행동이었다.

"…."

어두운 흑백 화면.

테스타의 신곡 티저는 느릿하게 피어오르는, 뿌연 스모그 같은 연기와 함께 시작되었다.

검은 글자가 떴다.

-CALL it.

연기 너머, 검은 전선에 매달린 전등들이 뼈마디가 뚜렷한 흰 손에 의해 흔들리는 것이 보였다.

움직이는 불빛들은 흐릿한 잔상과 연기를 남겼다.

다만, 소리가 없었다.

"…?"

마치 흑백 무성영화 같은 화면비의 오묘한 장면들 사이사이, 대사처럼 오롯이 글자만 나열된 검은 컷들이 삽입된 것이다.

노래의 예고에 소리가 없다는 모순적인 상황.

-Sometimes,

It will CALL you back.

그러다 갑자기, 영상에 색이 깃들었다.

청록빛과 자줏빛으로 창백하고 화려한 전구 불빛의 색들이 깜박이며 연기를 물들였다.

그리고 그 속에서 멤버들이 하나씩 모습을 드러냈다.

하나같이 신체 부위에 체인을 응용한, 묘한 분위기의 액세서리 파츠를 구속된 듯 걸치고 있었다.

느슨한 상의, 어두운 머리카락 사이로 샛노랗거나 푸른 원색의 안광들이 번뜩였다.

각기 다른 자세의 무표정한 짧은 컷들이 교활한 느낌의 상징과 함께 강렬히 지나갔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나온 것이 바로 썸네일의 그 컷이었다.

화면을 쳐다보는 보라색 안광의 김래빈.

그런데 갑자기, 화면 밖에서 튀어나온 여섯 손이 김래빈의 몸을 터더덥 붙잡았다.

"헙."

그러나 김래빈은 태연했다.

반응 대신, 살짝 입을 열어서 뭐라 속삭였다.

[….]

하지만, 여전히 영상은 소리가 없었다. 무성영화 스타일이었으니까.

그 대신, 전처럼 다시 연달아 무성 영화의 대사 컷이 떴다.

"…!"

그리고 소리는 도리어 여기서 들어왔다.

검은 화면에 들리는, 낮고 울림이 강한 목소리와 한 옥타브 높은 미성.

-Welcome, welcome

이건 너를 부르는 소리

마치 속삭이는 것 같은, 공기 섞인 멜로디 라인에는 살짝 불길한 느낌이 스며있었다.

그리고 그보다 확실히 어필하려는 요소가 느껴졌다.

'섹시다!'

김래빈의 개인 팬은 마우스를 던졌다.

짧은 티저는 이미 끝나있었으나, 그걸로도 충분했다. 이건 누가 봐도 퇴폐 섹시 컨셉이었다!

앞에 노골적인 손 클로즈업부터 멤버들 의상까지 하나같이 전부 이번 컨셉이 나른한 퇴폐 섹시라고 외치고 있지 않나!

'이래서 김래빈이 센터였냐…!'

반박할 여지 없이 너무나 탁월한 선택에 김래빈의 팬은 책상에 머리를 박았다.

그리고 그 순간, 팬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활화산처럼 미친 듯이 반응이 번지기 시작했다.

-미친 방금 티저

-티저 뭐야

-경 테스타 테뷔 3년 만에 드디어 섹시 축

-초여름이라고 공포도 약간 섞었구나 누나 쫄보지만 괜찮아 즐겨볼게

-아니 돌앗냐고 의상ㅠㅠㅠㅠ

-래빈이 붙잡는 거 멤버들 손 맞지 6개잖아 아닐 리 없음 일단 난 그렇게 믿는다 얘들아

-이게… 섹시의 맛?

아주사 3차 팀전 준비 당시 박 문대의 생각처럼, 제대로 하기만 한다면 그만큼 강렬하고 잘 먹히는 컨셉도 드물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너무 노골적이지 않도록 예술적 레퍼런스를 섞은 티저가 약간 젠체하고 싶은 사람 마음까지도 누그러뜨렸다.

덕분에 팬 커뮤니티를 넘어 각종 연예 관련 커뮤니티에서도 티저는 한순간에 뜨거운 감자가 되었다.

[공개되자마자 난리 난 테스타 신곡 티저]

[테스타 신곡 '부름(Nightmare)' 티저 반응 모음]

[이번에 작정하고 섹시 컨셉하는 듯한 테스타 티저]

[흑발에 바디체인으로 반응 터진 테스타 멤버]

심지어 '왜 이렇게 반응이 좋은지'를 분석한 위튜브 리뷰 영상까지 뜰 정도였다.

티저만으로 이렇게 반응이 화끈한 것은 '행차' 티저 이후 처음이었다.

심지어 그때는 각 잡고 만든 8분 짜리 솔로곡 소개 뮤직비디오나 다름없었으니 비교하기도 민망할 수준 이었다.

하지만 언제나 그랬듯이 팬 커뮤니티를 벗어나자 의견이 갈렸다.

-너무 노골적이라 팍 식네

-으윽 이번에야말로 컨셉에 잡아 먹힐 듯

-브이틱도 이런 건 5년 차에나 했는데ㅋㅋㅋ 음 5년 계약이라 마음이 급했나..

-숙연해질까봐 약간 걱정

-얘네 진짜 컨셉 못 잃네 그냥 검은 수트에 섹시 컨셉만 해도 절반은 갈텐데 너무 선 넘는 것 같아

거짓말이 절반이었다.

흥분한 해외 KPOP 팬들까지 미친 듯이 티저를 클릭하며 전에 없던 히트의 조짐이 보이니 어떻게든 초를 치려는 세력이 섞였기 때문이다.

물론 정말로 취향이 아닌 사람도 있었다.

3년 차가 소화하기에는 지나치게 무겁고, 원숙한 컨셉이라는 점이 대표적인 이유였다.

-저런 건 완전 양날의 검임 소화 못 하면 그대로 조롱 밈화행인데

팬들 사이에서도 말이 나올 법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팬 대부분은 믿는 구석이 있었다.

바로 지금까지 테스타가 해온 활동 이었다.

'회사가 돈만 대면 우리 애들은 무조건 잘해!'

귀납적 추론에 가까운 그 믿음이 팬들 사이에 전반적으로 살짝 자부심처럼 깔려있었다.

덕분에 테스타는 일정에 따라 각종 컴백 전 컨텐츠를 공개하며, 반발이나 눈에 띄는 걱정 여론 없이 기대를 흡수했다.

-컨포 떴다

-ㅠㅠㅠ드라이 플라워랑 같이 찍은 화이트 컨포 진짜 최고다 박문대 이 요망한 놈 꽃인데 5월의 신랑도 생각 안남

-와 어떡하지 나 너무 기대하는 듯 안 돼 진정해

-검은 네일까지 어울리는 아이돌 지금 컴백합니다 최고의 입덕 기회

성공하면 대박이지만, 망하면 짐작 이상으로 타격을 입을 것 같은 분위기였다.

그리고 뮤직비디오 공개 당일.

'빨리 나와라.'

'당장 와.'

이미 잔뜩 기대치가 오른 팬들의 핏발 선 눈앞에, 짧고 굵은 5분짜리 뮤직비디오가 공개되었다.

드르르륵.

영상은 마치 CCTV 화면 같은 포맷 속, 하얀 침대를 화면 안으로 끌고 들어온 박문대로 시작되었다.

그가 작게 한숨을 쉬며 그 위에 눕는 순간이었다.

[후.]

침대가 푹 꺼졌다.

그리고 예고 없이 화면의 색이 검게 반전되더니 거꾸로 뒤집혔다.

툭.

그렇게 청동색 천장의 검은 침대에서 떨어진 검은 머리의 박문대는 사뿐히 금 간 바닥 위에 앉았다.

그리고 고개를 갸웃하는 순간, 티저처럼 무성영화식 고전적인 대사 컷이 들어갔다.

[…Dream?]

박문대가 미소 지으며 뒤로 넘어졌다.

Diiing-

Diiing-

Didididididididi-

경종이 울리는 듯, 묘한 리프 멜로디가 화면을 채우며 곡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잘 베어 물어,

살짝 단맛이 도는

마지막 네 생각]

특별한 스토리라인은 없었다.

카메라는 마치 놀이공원의 어트렉션처럼 이 기괴한 공간을 서서히 돌아다니며, 불쑥 등장하는 멤버들을 하나하나 비추었을 뿐이다.

그리고 멤버들이 매혹적이거나 강렬한 모습으로 등장해 자신의 파트를 소화했을 뿐이다.

다만 초점이 바뀌는 방식이 오묘했다.

휙.

카메라에 비치던 멤버가 어디선가 튀어나온 흰 손에 끌려가 사라졌다.

그리고 마치 연결 동작처럼, 스모그 속에서 그 흰 손의 주인인 듯한 새로운 멤버의 컷이 초점이 잘라 붙이듯 바뀌었다.

그 꿈처럼 혼란스러운 구성이 멤버들의 어둡고 낭창한 외양과 어우러지자, 다소 아찔하며 묘하게 자극적으로 다가왔다.

[Dreams can be horrible

그래도 지금은 아닐 테니

불러줘, 들리니

목-소리]

그리고 사이사이 들어가는 선을 많이 쓰는 안무와 과감한 소품의 의상, 보컬 디렉팅까지.

모두의 짐작대로 섹시함을 노린 컨 셉이었다. 그러나 누군가들의 걱정 처럼 너무 무겁진 않았다.

[Call- it

지금 불러봐 그 이름

꿀처럼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을

Nananananana- name.]

적재적소에 끼를 섞었기 때문이다.

창법 탓에 살짝 나른하게 들릴 수 있으나, 비트와 베이스가 도드라졌기에 끈적한 느낌은 과하지 않았다.

그것을 바탕으로 컷에서 멤버들의 캐릭터성이 때마다 툭툭 튀어나오니, 현실이 반전된 듯한 공간이 주는 기괴함이 과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티저에서 나온 섬뜩하고 나른한 무거움을 아예 무시한 것도 아니었다.

그것들은 후반 브릿지에 짧고 짙게 밀어 넣었다.

그런 종류의 즐거움을 기대했을 사람들의 만족도를 채우기 위해서.

[Welcome, welcome

이건 너를 부르는 소리]

묘한 속삭임 같은 후렴구는 똑같았다.

그리고 갑작스레 카메라 앞으로 훅 불어온 흑백 연기 속 쓰러져 질식할 것 같은 강렬한 티저 영상풍의 브릿지.

텁.

짐승이나 유령처럼 거친 톤으로 얼 굴을 잡는 큰 손. 그리고 그 손가락 사이로 번뜩이는 눈까지.

약간 관능적이기까지 한 퇴폐였다.

게다가 클라이맥스에서는 브릿지를 잊어달라는 듯 사정없이 영상미 넘치는 화려한 안무 컷을 불어 넣었다.

시선을 붙잡아 두려는 듯이.

덕분에 보는 사람이 그 아낌없이 힘을 준 요사한 광경에 완전히 집중해 마음을 뺏길 때쯤이었다.

안무가 멈추고, 곡이 뚝 끝났다.

그리고 마치 방해라도 받은 듯, 모두가 그림처럼 동시에 카메라를 응시했다.

휙.

그 순간 여운도 없이 화면이 대뜸 검게 바뀌었다.

정적 속에서 들리는 숨소리.

[허억.]

흰 라운드 티 차림의 배세진은 하얀 침대에서 눈을 떴다. 그리고 악몽에 충격을 받은 듯이 숨을 몰아쉬었다.

하지만 이내, 클로즈업되던 그 표정은 스르르 사라지며 희미한 미소로 바뀐다.

뭐에 사로잡히기라도 한 것처럼.

그리고 살짝, 땀에 젖은 귀를 한 손가락으로 느릿하게 두드리는 것으로 영상은 끝났다.

[Call me]

상징적으로 해석할 수 있으나, 직관적으로 받아들이라면 굉장히 쉬운 해석이 가능한 이 말만 남긴 채.

원초적 자극의 세트 구성 같은 뮤직 비디오였다.

-내가 뭘 본 거임

-미친놈들아

-테스타ㅏㅏㅏㅏ!

-너무 좋아서 믿을 수가 없다 아니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리고 높은 기대치가 충족되어버린 팬들이 벼락같이 글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테스타, 이번 활동도 벌써부터 대단한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는데요!"

"어휴, 감사합니다!"

이번 인터뷰어는 상당히 활기찬 사람이었다. 덕분에 잠 못 자서 죽어 가던 놈들 목소리도 덩달아 톤이 높아졌다.

그리고 덕담이 실제기도 했고.

'…이렇게 반응이 좋을 줄이야.'

뮤직비디오 공개 이후 단 반나절.

일단 곡이고 나발이고 보정된 온갖 GIF 파일이 연달아 공유되고 인기글에 올라가는 것을 보니, 이 컨셉의 힘이 느껴졌다.

곡이 뒷전이 되는 게 아니냐는 떨 떠름함이 없진 않다만, 그거야 무대하고 봐도 늦지 않겠지.

어쨌든, 현 스케줄에서는 좋은 리액션에 신난 저 인터뷰어부터 잘 상대하자.

"…그래서, 뮤직비디오와 지금 하신 이 피어싱들에도 의미가 있을까요?"

"특별한 의미는 없습니다만, 많이 뚫는 쪽이 여러 컨셉을 소화할 시 선택할 수 있는 폭이 넓어지기 때문에 꾸준히 관리했습니다!"

"그렇구나∼"

나는 인터뷰에 열정적으로 참여하는 김래빈을 힐끗 보다가, 군소리 없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영상 찍어간다고 했지.'

적당한 매체 인터뷰라 인터넷 기사를 주력으로 띄울 예정이라고 하지만, 비하인드도 관리해서 나쁠 건 없지 않나.

뭐, 그래 봤자 받고 있는 질문이 '이번 앨범에서 다들 피어싱 많이 하셨던데 진짜 뚫으신 건가요' 정도의 수위긴 하다만.

아, 마침 내 차례도 돌아왔다.

"자, 그럼 문대 씨는요?"

"저는 다 귀찌였습니다."

"그러시구나, 어떤 개인적인 신념이라도…?"

"아뇨, 그냥 아픈 게 무서워서요."

"네? 하하하!"

사실 관리하기 까다롭고 함부로 남의 몸에 구멍 내기 좀 난감해서 포기했지만, 이게 더 적절한 대답일 것이다.

"문대가 의외로 겁이 많아요∼ 공포 영화도 못 보고!"

"진짜요? 아니, 이번 뮤직비디오가 제법 오싹하잖아요, 그건 모니터링을 어떻게…?"

"예. 눈 가리고 봤습니다."

"하하하!"

다 포기한 채로 대충 인정해 주자 여기저기서 시원하게 웃어 재끼고 있다.

그래, 인터뷰 보는 사람들도 이래 줬으면 좋겠군.

사실 이런 자잘한 스케줄은 워낙 익숙해져서 큰 품이 드는 것도 아니다.

의외로 사람들이 하는 질문들이 루틴처럼 정형화된 경우가 많아서 말이다.

가장 품이 드는 건 무대와 예능.

그리고… 이번 활동에만 특수로 할 일이 있다.

'이제 시행할 때도 됐지.'

나는 아침에 확인한 '테스타 전담 팀 구성 공문'을 떠올리며 작게 웃었다.

어떻게든 끼어들어서 틀어쥘 것이다.

[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 228화]

테스타만을 위한 아티스트 전담팀 구성.

표면적으론 기획조정실에서 진행하는 것으로 되어 있으나, 실상은 본 부장의 입김도 들어갈 것이라 예상 했다.

'그놈 성향에 이런 일에 빠질 리가 없지.'

본사에서 내려온 말이라도 어떻게든 본인 입맛에 맞게 방향을 조정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래서 내가 조정 명목으로 끼어들기 위해서 한 번 더 매니지먼트실을 살살 부추기는 방법도 고려 중이었다.

거기서 깍두기 인원을 받는 한이 있더라도 빈틈을 만들어볼까 했는데….

그럴 필요가 없었다.

'그냥 해주네.'

-아, 그럼요! 당연히 테스타분들의, 음, 의견이 반영되어야 하죠….

의사 표시하는 것만으로도 전담팀 기획에 테스타의 의사가 최대한 반영될 수 있도록 하겠다는 항복선언이 나온 것이다.

'뭐냐.'

이게 대체 어떻게 가능한가 싶었는데, 알고 보니 단순했다.

이번 활동 시그널이 워낙 좋아서였다.

지금 딱 활동 한 주가 지났는데도 반응이 상상 이상이었다.

단순히 음반 판매량과 음원차트 같은 측량이 가능한 요소를 넘어서서, 체감의 측면에서 말이다.

[이렇게 하는 건가…? 테스타 부름 도전!]

[네일 따라 하기: 테스타(TeSTAR) 부름(Nightmare) | 개인 커스텀과 해석 넣었습니다!:)]

팬이 아니어도 보고 따라 하거나 언급하는 사람들이 우후죽순 생겨나고, 아이돌과 전혀 관련 없는 커뮤 니티나 일상에서 이야기 나온다.

시류 잘 타는 방송국 소속 위튜브 예능들에선 빠르게 뮤직비디오 요소를 따가서 써먹는다.

이걸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이거다.

'유행 초입이야.'

사실 무대에서만도 느꼈다.

어제 무슨 문화예술진흥 행사 무대가 공중파에서 중계되었는데, 거기 생방송 때였다.

-오오오…

다른 그룹 팬들이 유독 우리 무대를 신나서 본다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심지어 VTIC의 팬도 말이다.

그동안 다른 아이돌의 팬들은 관람하면서도 적당히 자제하며 호응한다는 느낌이 들었는데, 그런 거리낌이 없어졌다.

이미 유행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되었다는 뜻이었다.

아무리 아이돌 팬이 인터넷과 친밀한 팬층이라지만, 단 일주일 만에.

'…물론 우리 팬들 호응도 보통 이상이긴 했다만.'

쉬지 않고 인이어 안까지 들려오던 찢어지는 신음과 고함이 저절로 떠오르는군.

-끄아아악!

-으아아아아악!

이건 뭐… 컨셉 특성 탓도 있겠지.

아무튼, 전반적으로 엄청난 성적과 화제성의 폭발이 심상치 않았다는 뜻이다.

오죽하면 이 행사 엔딩 무대에 서는 새끼가 이 말로 인사를 시작했다.

-축하해요. 대상 타겠네?

-…모릅니다, 어떻게 될지.

-하하. 뭘 몰라요.

-….

-어떻게 흐를지 뻔히 보이는데.

청려는 그 말을 끝으로 무대로 올라갔다.

'X발.'

이젠 오함마로 내 대가릴 갈길 것 같진 않다만, 왜 저 새끼는 아직도 대가리에 하자가 있는가.

'개는 멀쩡해 보이더만.'

어쨌든, 저놈 솔로 성적도 그룹만큼 천상계 티어로 떴으니 슬럼프 왔다고 테스타 탓을 할 일은 없겠지.

그리고 사실… 저 말이 맞긴 했다.

'대상 받을 수 있을 것 같은데.'

이대로 논란 없이 활동이 쭉 진행 된다면, 지금까지 성적과 기세를 봤을 때 적어도 한두 곳에서는 대상 확정이었다.

'보통 부문을 2∼3가지로 나누니까 VTIC 자리를 빼도 각이 나와.'

그리고 이 모든 걸 한 문장으로 정리하자면 이렇다.

몸값이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었다.

"문대문대, 우리 이번 광고 단가 봤어∼?"

"그래."

'행차' 활동 당시 최고액의 2배였다.

소속사에서 최대한 고가에, 이미지 괜찮은 것만 쏙쏙 잘 고르는 것 같긴 하다만, 그래도 말도 안 되게 고무적인 일이었다.

'행차 때도 1군 대우는 시작됐는데 말이지.'

이제 VTIC 대항마니 세대교체 이야기까지 슬슬 신빙성 있게 나오는 것 같다.

그러니 소속사에서도 그런 생각을 한 것이다.

'장기전이 될 것 같으니, 얘네 살살 달래서 좋은 관계 유지하자'는.

그동안 재계약 여부가 불투명하니 어떻게든 5년 안에 뽑을 수 있는 등골은 다 뽑아먹으려던 기색이 어느새 쓱 사라졌다.

5년만 해 먹고 말기엔 너무 아까워졌으니까.

물론 이와 동시에 재계약 시즌까지 어떻게든 약점을 잡아보려는 개지랄이 시작될 것 같았으나, 그건 나중에 이야기하고.

일단은 테스타가 강경하게 나와도 비위를 맞춰주기 위해 소속사 직원들이 을처럼 굴어준다는 점에 주목하자.

'김래빈 재택근무 때 소속사에 진행 문제를 좀 강경하게 통보식으로 처리했던 것도 선례로 영향을 준 것 같고.'

혹시 이번엔 아예 안하무인으로 깽판칠까 봐 전담팀 문제까지 오냐오냐해준 것 같다.

그래서 전담팀 관련 그룹 내부 회의가 이 바쁜 활동기 스케줄을 쪼개서 진행될 수 있었다.

다만 별 소용은 없었다.

"일단… AR 팀 분 중에 '마법소년' 때부터 같이 작업한 분들은 오셨으면 좋겠는데."

김래빈이 손을 번쩍 들었다.

"저도 그 말씀에 완전히 동의합니다! 그리고 그분들께서도 기꺼이 오고 싶다고 하셨습니다."

"…?"

갑자기 즉석 대변인이 튀어나왔다.

"래빈아, 언제… 음, 여쭤봤니?"

김래빈이 뿌듯하게 말했다.

"사실 전담팀 소문이 돌자마자 말씀 나눠보니 오시겠다고 했습니다!"

"…."

"래빈아, 보안 문제 있으니까 조심하는 게…."

"헉, 죄송합니다! AR팀에서 먼저 화제를 꺼내시기에…."

이런 식이었기 때문이다.

이미 오고 싶어 하는 사람들은 알음알음 이야기 다 듣고 관련인들에게 어필을 끝냈다.

그리고 회사가 테스타에게 급격히 우호적 제스처를 취하려다 보니 웬만한 건 다 오케이될 모양이고.

나는 턱을 만졌다.

'이건 뭐, 암묵적으로 이미 합의 끝났군.'

그러니 기존 실무진 구성은 회사에서 안 내주고 신인 쪽으로 돌리려는 사람 달라고 떼쓰는 것 외엔 합의할 것도 없었다.

"그래, 그럼 꼭 이분들 함께하고 싶다고 말씀드리자."

"예엡."

하지만 정적이 흐를 찰나, 배세진이 눈치를 보며 입을 열었다.

"…그럼 이제 새로 취직하는 분들만 보면 되는 거 아니야? 뭐… 그, 면접 본다든가."

오, 제법 사리에 맞는 의견이다.

전담팀 삼분지 일 정도는 새 인력도 넣기로 한 건 사실이니까.

특히 매니지먼트 쪽 인력 말이다.

류청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음, 새로 오시는 분들과도 좀 알아갈 시간이 있으면 좋겠지."

다만 현실적인 문제가 있다.

내가 말 꺼내기 전에 큰세진이 먼저 입을 열었다만.

"근데 우리가 그럴 시간이 있으려나 모르겠는데∼ 그렇죠?"

그래. 맞다.

지금 이 회의 시간도 간신히 낸 판에 남의 면접 보고 있을 시간이 어디 있나.

나는 팔짱을 꼈다.

'하다못해 일 처리 스타일이 맞는지 사전 질문을 만드는 것도 시간이 필요하고….'

아.

한번 써볼 만한 방법이 떠올랐다.

나는 속으로 읊조렸다.

'상태창.'

슬롯머신을 한 번 더 돌려볼 때가 됐나 싶다.

'음, '잠은 죽어서 자는 것이다'를 한 번 더 뽑고 싶은데.'

아니면 하루를 30시간으로 늘려주는 능력이나… 뭐, 작업속도 증가도 좋다.

일단 상태 한 번 확인하고.

[이름 : 박문대 (류건우)]

Level : 19

칭호 : 없음

가창 : S

춤 : B+

외모 : A-

끼 : A+

특성 : 잠재력 무한, 탐닉의 시간(S), 바쿠스500(B), 잡아채는 귀(A)

!상태이상 : 관객이 아니면 죽음을

남은 포인트 : 1

'자연 증가가 있군.'

목을 혹사한 보람이 있는지 S-가 S가 되었다. 어쩐지 요 근래 평이 더 좋더라니.

제법 성취감이 있다는 점은 부정할 수가 없겠다.

'좋아. 그럼 다음.'

다른 변동 사항은… 레벨업은 한 번, 팝업으로 쌓은 특성 뽑기는 두 번이다.

'지난 확인 이후로 텀이 그렇게 안 기니까.'

사실 몇 달 만에 이만큼 쌓은 것만 해도 대단했다. 그만큼 스프링 아웃과 이번 활동이 인상적이라는 뜻도 되겠지.

그래서… 일단 포인트는 놔두고, 필요한 특성 뽑기나 탕진해 볼 생각 이다.

'2번 가지고 탕진이라고 부르기도 웃기긴 한데.'

지난번에는 5번 돌려서 겨우 마지막에 S 하나 먹지 않았나.

그래도 이젠 확실히 알았다.

'당장 필요한 특성 주는 거 뻔히 아니까, 잘 좀 뱉어라.'

나는 빤히 팝업창에서 반짝이는 'Click' 문구를 보다가, 팔을 드는 척하면서 눌렀다.

2번이야 이놈들 떠드는 사이에 금방 돌리겠지.

그림 속 레버가 돌아가며 칸이 색색으로 번쩍였다.

한 번씩 본 후보지들을 지나… 멈춰 선 것은 금빛 칸이었다.

B 등급.

마치 평타로 보이나, 칸 속 글자를 읽어보면 생각이 달라질 것이다.

파파팡!

['바쿠스500(B)' 획득!]

"…!"

[특성: 바쿠스500(B)]

-맑은 정신과 건강한 육체!

: 모든 피로 누적 속도 -50%

더없이 유용하게 써먹어 온 피로회복 토템이 다시 떴다.

그리고 설마 했던 팝업도 떴다.

[동일 특성 확인!]

'바쿠스500(B)'를 합성하시겠습니까?

'역시!'

드디어 이 필수 특성을 강화할 타이밍이 온 것이다…!

나는 나도 모르게 주먹을 꽉 쥐었다.

"무, 문대야…?"

"너 괜찮아?"

너무 괜찮아서 끝내줬다.

"어, 전담팀 구성한다니까 기대도 되고 기분이 너무 좋은데."

"그, 그렇구나!"

"이야 진짜 그런가 봐, 문대 이렇게 길게 대답하는 거 얼마 만이야."

변명은 그만해도 되겠고, 가자.

나는 바로 '예'를 눌렀다.

마치 로딩 중인 것처럼 상태창에 동그란 표시가 뜨는 것 같더니, 곧 화려한 팡파르가 터졌다.

[합성 성공!]

'바쿠스1000(A)' 획득!

또렷한 정신과 튼튼한 육체!

-모든 피로 누적 속도 -50%

모든 피로 회복 속도 +100%

돌았다.

'회복 옵션이 더 붙네.'

이 정도 이틀에 한 번만 자도 충분하지 않나?

확실한 건 활동에 지장 없으며 면접용 문답 만들 시간은 짜낼 수 있다는 것이다.

'장기적으로 대단한 이득이다.'

휴가 때 반동은… 뭐, 매번 그랬는데 좀 더 심하더라도 상관없다.

후유증이 있는 것도 아닌데 한 사흘 누워 있지 뭐. 아니, 회복 증가도 붙었으니 오히려 휴가 때 맛이 안 갈 수도 있겠다.

'그러고 보니 이번 휴가 때는 안 골골대고 넘어갔군.'

아마 김래빈을 케어한 것이 업무의 일종으로 처리되어 상태창이 휴가로 판단하지 않은 게 아닐까 싶다.

어쨌든, 이 수상쩍은 게임 시스템이 이번엔 이렇게 쓸 만한 걸 뱉을 줄은 몰랐다.

'좋아.'

앞으로도 이렇게 협조적이었으면 좋겠다. 이러다 뒈질지도 모르는데 이 정도는 해줘야지.

나는 만족스럽게 상태창의 업데이 트된 특성 창을 보다가, 고개를 끄 덕였다.

"문대 이젠 고개 끄덕이는데?"

"저, 전담팀 분들을 상상하는 게 아닐까…?"

비슷하다고 쳐주마.

벌써 전담팀 출범이 기대되었다.

정확히는, 출범이 불러올 효과가.

테스타의 첫 번째 매니저는 인상을 찌푸리며 출근 중이었다.

'X발.'

애새끼들이 뜨더니 건방져진 탓에 근무가 점점 힘들다.

스타병 걸리면 스탭부터 홀대한다더니, 딱 그 꼴 아닌가.

심지어 낙하산이 들어와서 자신이 일군 자리를 뺏어가고, 승진의 기회도 밀렸다.

그의 판단으로는 그린 듯한 X소 엔터테인먼트가 따로 없었다. 매니저는 이 불공정한 상황에 울분이 치밀어 올랐으나, 대응책이 없어 답답했다.

'그래도 조금만 버티면 돼.'

며칠 뒤면 테스타도 2주년이다. 그 럼 그의 경력도 곧 2년을 채운다는 뜻이다.

자릿수가 달라지니, 이걸 들고 어디 경력직으로 가볼 생각이었다.

'내가 그때 X발 다 뒤통수친다.'

비밀엄수 조항을 알면서도 괜히 한 번 큰소리쳐 본 매니저는 건성으로 회사로 향했다.

밤샘 작업을 한 탓에 테스타는 다 회사 회의실에 있었다.

하지만 로비에 들어서는 순간.

그는 뜬금없이 인사팀에 불려갔다. 그리고 날벼락 같은 소식을 들었다.

"예?"

"그러니까… 농담이 아니라니까. 내일부터 안 나와도 된다고."

해고 소식이었다.

매니저는 어안이 벙벙하게 팀장을 보다 몇 마디를 주고받았으나, 곧 협상의 여지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짐이나 빼, 응?"

그러자 바로 해고의 두려움에 눌렸던 감정이 치밀어 올랐다.

분노였다.

"아니, 팀장님. 지금 무슨… 이거 부당해고 아닙니까?"

팀장은 어처구니가 없어 더 말 섞기도 싫다는 표정이라 매니저의 분노를 더 부추겼으나, 곧 팀장이 재생하는 녹음에 뻣뻣이 굳게 되었다.

-형, 지금 래빈이 할머님 쓰러지셔서 저희 이동 중….

-뭐? 이 새벽에?

-예, '이 새벽에' 오셔야죠. 저희 지금 이동 중이니까 최대한 빨리 근처 대기 부탁드립니다.

-…어, 알았어.

그리고 끊기면서 들리는 작은 욕설.

"…."

만일 테스타가 별로 뜨지 않은 상태거나 본사에 별 커넥션이 없다면, 혹은 매니저가 연줄이 있다면 넘어갈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친해서 무례했다고 어떻게 비벼볼 수 있었을지도 모르니까.

하지만 매니저에겐 안타깝게도, 셋 다 아니었다.

"어제 아티스트 폰 클라우드 해킹돼서 퍼질 뻔했어. 알아?"

"…어어, 어."

"야, 그냥… 곱게 나가라. 어? 이거 언론 터지면 너 대한민국 떠야 돼, 지금 분위기 봐라."

회생 불가 선고였다.

매니저는 그렇게 제 발로 회사를 떠나게 되었다.

그리고 가십에 신난 AR팀에 의해 위층에서 소식을 전해 들은 박문대는 피식 웃었다.

'멍청한 새끼.'

그는 고등학교 때부터 단 한 번도 통화 녹음 설정을 해제해 본 적이 없었다.

'하나 보냈고.'

속이 시원했다.

그는 특성에 의해 쌩쌩 돌아가는 몸으로 다음 준비를 계속했다.

'…2주년.'

테스타의 데뷔 일인 6월 18일이 코앞이었다.

[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 229화]

테스타의 데뷔 2주년은 팬미팅으로 챙길 예정이었다. 고전적이지만 그만큼 재미가 보증된 방법이다.

그리고 팬미팅답게 친근한 맛이 있도록 공연장 규모가 콘서트보단 작으니, 온라인으로 유료 실시간 스트리밍도 제공한다.

'위튜브에 불법 중계가 쫙 깔릴 건 안 봐도 뻔하다만.'

하루 이틀 일도 아니니 새삼스럽지도 않다. 유료 플랫폼에서 열심히 신고하겠지.

'온라인 송출 안 하고 암표상 배 불려 주는 것보다야 낫지 않나.'

그리고 팬미팅을 보러 결제하는 숫자를 파악하는 것으로, 이번 활동의 대중성이 얼마나 팬덤으로 연결되었는지도 볼 수 있을 것이다.

양심의 소리를 잠깐만 무시하면 무료로 볼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유료 결제해주는 사람 수치니까.

그러니까, VOD와 비교해서 시간 대비 가격을 따져보면….

'…역시 콘서트값은 해야겠군.'

쓸데없는 위튜브 생각 말고 내 일이나 잘하자.

그리고 다행스럽게도 당일 팬미팅은 순조롭게 시작되었다.

-일기예보와 상관없어

널 만나고 싶은 날이야

와아아아악!

색색의 풍선들이 수없이 많이 하늘로 떠오르는 파란 오프닝 무대.

가볍고 밝게 'Picnic'으로 시작한 이번 팬미팅의 부제는 Daydream이었다.

이번 곡의 영어 부제인 '악몽'을 한 번 뒤집어 놓았다고 볼 수 있다.

'이런 연결점이 있으면 무대에 주제가 생기지.'

그걸 보는 게 또 재밌지 않겠는가.

그리고 그만큼 야들야들하고 따듯한 분위기로 진행될 예정이다.

지난 일 년간도 사건 사고가 잦았던 만큼, 팬미팅 정도는 이래도 괜찮을 것 같아서 말이다.

전체적으로 컨셉을 동화 같은 분위기로 잡아봤다.

그래서 중간에 들어가는 토크랑 예능도 나름… 귀엽게 빼보려고 했는데, 모르겠다.

중간부터 노선이 바뀌어서 말이다.

일단 시작은 무난했다.

"여러분 안녕하세요!"

"오늘, 바로 테스타와 러뷰어의 기념일이죠. Tesversary! 와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우리 재밌게 해요!"

근황 토크와 포스트잇 질문은 거의 첫 팬미팅 국룰이고, 예상 답안이 잘 엮어서 나왔다.

물론 자신 있는 놈은 애드립부터 박기도 했지만.

그래, 큰세진 말이다.

"어? '누가 제일 애교가 많나요'? 이건 봐야 알죠! 자자, 일단 다들 애교 한 발씩 준비하시고∼"

합의되지 않은 사항을 마음껏 남발 하고 있군. 팬미팅이 생방인 걸 감사히 여겨라.

나는 카메라가 들어오자, 적당히 맞춰서 최근 유행하는 애교를 뻔뻔하게 수행했다.

여기저기서 경악과 비명이 들렸다. …비명까지?

"아니 문대 씨 그런 건 언제 연습을?"

"제가 아이돌이라 잠을 안 자서요. 남는 시간에."

"아, 아아∼"

관객석에서 폭소가 터진다.

그래도 3년 차쯤 되니 슬슬 낯부끄러운 짓들도 감흥이 없어진다. 순조롭게 관종이 되고 있군.

그러나 말도 안 되는 개소리 콩트에 맞장구를 치던 큰세진이 히죽 웃더니 내 등을 쳤다.

그리고 현실을 끌어왔다.

"아니 그래도 잠은 자야죠, 문대 씨! 아, 여러분! 문대 요새 진짜 잠을 아예 안 잔다니까요?"

"…!"

"새벽에 문대 형 막 일해요! 너무 일해요!"

"제가 보기에도 이틀에 한 번만 주무시는 것 같습니다."

눈치는 더럽게 없는 놈이 이런 건 또 어떻게 칼같이 맞추는 건지 모르 겠군.

'확실히 요새 딱 그 정도로 자기는 했다만.'

바쿠스1000 덕이었다.

덕분에 면접 질문지도 빠르게 완성해서 전담팀 구성도 입맛대로 잘 개입했고, 새 매니지먼트 인력도 수급했으니 아주 만족스럽다.

'그래도 역시 상태창 못 보는 놈들이 보기엔 유별났나.'

확실한 건 심각하게 받을 필요는 없단 거다.

'괜히 '박문대는 안 자는데 왜 넌 처자냐' 같은 말에 소재로 쓰이면 골 아프지.'

우스갯소리로 넘기자. 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뭐… 아이돌은 원래 잠 안 잔다니까요."

"우우∼ 아이돌도 사람이다∼"

"우린 아이돌 아닌가요? 어어?"

장난스러운 야유 속에서 배세진이 음침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그냥 노동법 위반 같은데…."

"…."

나는 웃음 반 걱정 반으로 괴상한 함성을 지르는 관객석을 의식해 카메라의 눈을 피했다.

'바쿠스1000을 보여줄 수도 없고.'

이 와중에 큰세진이 킬킬 웃으며 선아현에게 굳이 자기 마이크를 댔다.

"자, 문대문대의 룸메이트인 아현 씨, 한 말씀?"

"…맞아요! 문대, 너무 안 자요…!"

"…!"

선아현은 꿋꿋한 얼굴로 열심히 말했다.

"건강을 위해서, 많이 자라고 말해 주시면…."

이놈들이….

자! 문대야 자!

잘 자야 해 진짜!

'…밀렸다.'

관객석의 멘트에 나는 잠시 침묵하다가, 태세를 전환했다.

"…그럼요. 농담입니다. 잘 자야죠."

"맹세해! 맹세해!"

"건강에 무리가 가지 않도록 잘 자겠습니다."

"와아아아!"

거짓말은 아니다, 거짓말은.

"그럼 여러분! 우리 잠 이야기 나온 김에∼ 혹시 저희 무슨 잠옷 입는지 안 궁금하세요?"

궁금해요!

완전 궁금해!

"이번 무대로 만나보시죠!"

부드럽게 화제가 돌아가며, 준비해 놓은 행차의 동물 잠옷 버전 퍼포먼 스가 성황리에 이어졌다.

-행촤!

사람들은 즐거워했고, 이후로도 부 상이나 실수 없이 무대와 이벤트가 쭉쭉 나왔다.

…구상한 대로, 좋은 무대를 보여 주는 쾌감은 여전했다. 다른 생각을 할 겨를이 없었다.

그리고 앵콜 전 마지막 무대.

이번 타이틀 '부름'을 클래식 편곡한 버전을 선보인 후에야 약간 생각할 여유가 생겼다.

앵콜! 앵콜!

이제는 친근해진 함성이 저 위에서 울린다.

"3분 뒤 VCR 들어갑니다!"

나는 숨을 몰아쉬며 다 갈아입은 의상을 살피다가, 그제야 지난 토크를 떠올리며 침음성을 참았다.

'앞으로 밤에 덥앱 킬 때마다 문대 코 자라는 댓글로 도배가 되겠군….'

한동안 바쿠스1000을 풀로 못 당겨쓸 수도 있겠….

그 순간 깨달았다.

"…!"

잠깐.

이거 결과적으로… 팬들이 날 감시하게 만든 것 아닌가.

그리고 말 꺼낸 놈이 누군지 생각 해 보면, 뻔하다.

'노렸군.'

나는 의상을 다 갈아입은 뒤, 메이크업 수정을 받는 큰세진을 쳐다보았다.

큰세진이 눈을 찡긋했다.

"형이 오늘 진짜 잘생겼지∼ 다 알아."

"…."

팬미팅 끝나고 보자.

신나는 밴드 사운드로 편곡한 팬송 '마법은 너' 무대를 끝으로 팬미팅은 마무리되었다.

"차 탑승해 계셔요. 저 피드백 좀 받고 얼른 오겠습니다!"

"넵."

푹 절은 얼굴을 닦고, 새 매니저의 인도에 따라 차에 탔다.

그리고 짧게 온라인 반응을 살폈다.

-오랜만에 보는 보너스 북 무대 착장이… 코디분 압도적 감사 (캡처)

-문댕댕 아이돌 드립 뭐냐 뭘 그렇게 천연덕스럽게 말해 이 말랑사 과떡강아지촉촉코야ㅠㅠㅠ 10시간 자라굿!

-2주년 케이크 커팅식ㅋㅋㅋㅋ 차고영 훔쳐먹다 걸림 (GIF 파일)

-테스타 팬미팅_토크 타아이돌 곡 메들리 (1)

'이상 없음.'

사건 사고 한 건 없이 깔끔하다. 물밑 반응은… 자제하기로 생각했으니 생략.

나는 즉시 스마트폰 화면을 끄고 입을 열었다.

"이세진."

"응?"

"너 잠 얘기 일부러 그랬지."

앞자리에서 차유진과 신나게 떠들던 큰세진이 즉시 돌아보며 씩 웃었다.

"뭘 당연한 걸 물어?"

"…!"

"아니∼ 문대가 무슨 터미네이터도 아니고∼ 잠도 안 자고 일만 해. 그러다 30대에 돌연사하는 거야!"

'안 해, 새끼야.'

오히려 처자다가 상태이상 덕에 내년에 돌연사할 수도 있다.

그러나 큰세진은 도리어 차 안을 휙휙 둘러보더니, 손을 들고 말했다.

"여기 문대가 충분히 잔다고 생각 하시는 분∼?"

"…."

"그럼 더 자야 한다고 생각하는 분?"

척척 손이 올라온다.

제법 긴장한 놈부터 당연하다는 표정까지 다양하다만, 내가 과했다는 생각은 똑같나 보군.

"그렇대∼ 단체 생활이잖아. 지켜줘 문대야!"

나는 한숨을 참았다.

그래 뭐… 걱정해 주는 건 알겠다.

"알았어."

"굿!"

어차피 전담팀 구성도 끝났으니 한동안은 봉인해도 되겠지.

'며칠 알차게 썼다.'

나는 어깨를 으쓱하며, 등받이에 머리를 기댔다.

류청우가 부드럽게 상황을 잡았다.

"그래, 문대도 그렇고… 다들 2주년까지 고생 많았어. 우리 그래도 참 잘해온 것 같아."

"저,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옮은 말씀입니다∼"

그래, 2주년. 어느새 그렇게 시간이 흘렀나.

"저 이 팀 좋아요. 우리 Teamwork 최고예요!"

"…지금까지 고마웠어. 앞으로도 그, 열심히 하자고."

"지당한 말씀이십니다. 저도 방심하지 않고 남은 3년도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제각기 감상을 떠들어대는 놈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그래, 계약이 3년 남았지.'

지금까지 온 것보다 길다. 그래도, 그 정도는 계속할 수 있다면 좋겠는데 말이다….

"…."

내가 나름대로 이 모든 게 가장 잘 풀릴 경우의 루트를 짜보려던 순간이었다.

"문대문대."

"왜."

"뭐, 하고 싶은 말 없어?"

"…? 딱히."

"으음, 그렇구나∼"

큰세진이 지나가듯이 말했다.

"그래, 혹시 생각나면 말하고."

"…."

저건… 내가 할 말이 있을 거라고 확신할 때나 해볼 만한 말 아닌가.

'이 새끼가 아무 이유 없이 이런 말을 할 놈이 아닌데.'

나는 등받이에서 몸을 일으켰다.

"너 무슨…."

그때였다.

덜컹!

차 앞문이 열렸다.

그리고 운전석에 모자 쓴 스탭이 올라탔다. 순식간에 올라탄 탓에 제대로 확인하지 못했으나, 다 제외하면 한 명만 남는다.

'매니저겠지.'

아니, 잠깐.

아까 매니저는… 검은 스탭복이 아니지 않았나.

내 옆의 류청우가 불렀다.

"저기요?"

하지만 스탭은 대답하지 않았고, 직후 차에 시동이 걸렸다.

"…?"

저 새끼 뭐야.

나는 다시 앞을 확인했다.

'…조수석에 멤버가 안 탔지.'

조수석에 짐을 몰아 둬서 다들 뒤에 탔단 말이다.

그런데 얼굴도 안 보이고 답도 안 한 채로 다짜고짜 시동을….

"…!"

이거 X발 설마.

나는 당장 옆자리와 앞자리에 속삭였다.

"다 내려."

"뭐?"

"당장 문 열라고…!"

그 순간이었다.

"형님? 김준 매니저 형님 아니세요?"

"…!"

앞자리의 큰세진이 침착하게 말을 걸어 정보를 전달했다.

그리고 그 뜻은… 저 앞에 있는 놈이, 전 매니저라는 뜻이다.

며칠 전에 통화 녹음본 덕에 회사에서 잘린.

'X발.'

아무리 생각해도 좋은 의도는 절대 아니었다.

우우우우웅!

게다가 문제는 이 X새끼가 차를 출발시켰다는 점이다.

그것도 어마어마한 속도로.

"흡,"

"형님, 형님? 잠시만… 진정하시고."

"뭘 진정해 X발!"

전 매니저가 갑자기 핸들을 놓고 뒤를 휙 돌아보았다.

끼이이익!

주차장을 나서서 달리다 말고 차가 멈춰 섰다.

이 야밤, 도로 한복판에.

'이 미친 새끼가.'

빠아앙!

심야. 바로 뒤에서 달려오던 차 한 대가 어마어마한 경적을 남기고 스쳐 지나갔다.

"…."

식은땀이 흘렀다.

지금도 차엔 시동이 걸려 있다. 지금 문 열고 내리려다가 저 새끼가 출발하면 자칫하면 입원할 부상이다.

나는 당장 뒷자리에서 앞으로 던질 만한 것이 없는지 확인했다.

당장 저 새끼 끌어내야 한다.

"너, 너희들. 어? 녹음 가지고 사람 협박하니까 좋냐? 어?"

전 매니저가 침을 튀겼다.

"나 지금 딱 답 들으러 왔으니까 말해. 이거 내 잘못이야? 어? 말 한 마디 잘못했다고 사람 자르는 게 어디…"

"제가 잘못했습니다."

"…!"

일단 저 X발 새끼를 진정시켜야

한다. 나는 바로 끼어들어서 고분고 분하게 대답했다.

"클라우드 계정에 해킹 시도가 있어서 회사에 넘겼는데, 회사에서 확인하시면서 녹음본 재생하시다가 본 것 같습니다…."

"…."

"저희가 원했던 건 절대 아니고요, 아마 전담팀 만드시면서… 회사에서 마음대로 형한테 말씀하신 거예요."

"…."

동요한다. 멍청한 새끼라 다행이다.

큰세진이 바로 옆에서 치고 들어왔다.

"형님, 저희가 강하게 주장 못 해드려서 죄송해요. 저흰 지금까지 형님이 스카우트되어서 나가신 줄 알았어요. 지금 저희 돌아가는 대로 바로 말씀드려 볼게요, 네?"

옆자리의 류청우는 일부러 입을 다 물고 있었다. 마지막에 저 매니저를 자극한 것이 본인이라는 것을 알아서인 것 같았다.

다만 손에 책을 쥐고 있다. 여차하면 던질 생각인 것 같았다.

'이번에 안 통하면 진짜 던져야 한다.'

나는 운전석의 미친 새끼의 반응을 유심히 보았다.

놈은 숨을 씩씩 몰아쉬다가, 결국 미끼를 물었다.

"…그러니까, 복직해달라, 이 말이지?"

"그럼요!"

"저희가 진짜 무조건 회사에 강력히 주장하겠습니다."

"네, 네."

분위기가 슬쩍 풀릴 기미가 보이는지, 멤버들이 열심히 말을 얹는다.

그리고 앞자리 구석에서는, 배세진이 뒤로 손을 돌린 채 112에 무음으로 문자를 넣고 있었다.

"…."

전 매니저 놈이, 슬쩍 다시 운전대에 손을 얹을 순간이었다.

'됐다.'

이대로 갓길에 세워서, 회사와 통화 좀 하게 해달라고만 하면….

그 순간이었다.

"…어?"

콰아아아아앙!

…뒤에서부터, 엄청난 소음이 들렸다.

진동과 함께.

아니, 이걸 진동이라고 불러도 되는 건가?

이건… 충격이었다.

진동과 함께 시작된 어마어마한 충격이 몸을 앞으로 튀어 나가게 했다.

'X발!'

추돌 사고였다.

그리고 그 찰나의 시간, 보았다.

부서지는 차체와 시트. 올라오는 에어백 사이로, 누군가의 머리에 부러진 부품 같은 것이 떨어져 꽂히기 직전인 것을.

날카롭고, 거대한.

'…!'

나는 생각도 없이 몸을 날려서 부품을 쳐내려 했다.

할 수 있을 것 같아서.

물론 미친 짓이었다.

푹.

부품을 잡아채는 대신, 그것은 안전밸트를 맨 내 몸 가슴팍에 꽂혔다.

충격이 가슴을 관통했다.

"허억."

그리고 모든 게 어두워졌다.

다시 의식이 생겼을 때.

검은 시야, 굉음이 울리는 머릿속 에서 작은 빛이 번뜩였다.

팅—.

금빛으로 빛나는 동그란 무언가가 검은 허공을 가르고 튀어 올랐다.

그리고 서서히 떨어지며… 윤곽을 보였다.

금색 동전.

'…코인.'

[Insert Coin]

나타난 상태창은… 투입구처럼, 코인을 삼켰다.

그리고.

"허어억!"

나는… 나는.

곰팡이 슨 모텔 천장을 보며 눈을 떴다.

2년 반 전 언젠가처럼.

"…."

아는… 잊기 힘든 천장이었,

'아냐.'

이럴 리가 없었다.

나는 고개를 들어서 주변을 살폈다. 퀴퀴한 냄새를 풍기는 담요가 발밑으로 떨어졌다.

한 번 본 그 풍경이 맞았… 아니다.

'환각인가.'

다른 해석이… 뭔가, 다른 방향으로 이해해 볼 여지가….

"그래."

나는 비틀거리며 침대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거의 기다시피 움직여서 화장대 앞으로 갔다.

그리고… 보았다.

"…!"

거울 속에 비친 것은… 박문대가 아니었다.

나였다. 류건우.

…2년 반 만에 보는 몰골.

헛웃음이 나왔다.

"아냐."

돌아와도 박문대지.

왜 박문대가 있었던 모텔방에서 내가 눈을 뜬단 말인가. 말이 안 된다. 자연스럽지 않고, 앞뒤가 안 맞는….

'상태창이 뜨고 남의 몸에 들어오는 건 퍽이나 앞뒤가 맞는 말이다, 그렇지?'

"닥쳐."

나는 화장대에 머리를 박았다.

그리고 중얼거렸다.

"상태창."

하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다시 외쳤다.

"상태… 창. 상태창, 상태창…."

뭐라도 좀….

띠링.

"…!"

눈앞에… 창이 떴다

그러나 내가 알던 상태창은 아니었다.

[이름 : 류건우 (박문대)]

-Enjoy your daydream :)-

끝이었다.

"…."

나는 침대에 등을 기대고 앉았다.

그리고 최대한 냉정하게, 최대한 합리화가 아닐 방향으로… 몇 번 더 상황을 검토했다.

그 뒤에 결론을 내렸다.

'이건… 꿈이다.'

내가 코마상태에 빠진 것 같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