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6화]

배세진의 인권위 소환은 잭팟이 터졌다.

'이게 이렇게 먹혔냐.'

나는 신나게 T1을 때리는 중인 인터넷 분위기를 보며 말문이 막힐 뻔 했다.

일단 제일 잘 먹힌 건… 당연하지만, 테스타 교통사고 원인 은폐다.

[안일함이 부른 참극… 대형 엔터테인먼트사 T1의 민낯]

["교통사고가 아닌 사건이었다" 테러를 은폐한 기획사]

내가 혼수상태에서 18일 만에 회복하며 '테스타의 교통사고'가 다시 인터넷의 제일 핫한 화제로 오른 것이 직전이다.

그런데 그 사건에 비하인드 설이 있는데, 심지어 그게 극도로 자극적 이다?

음모론이 현실화된 것처럼 사람들이 잔뜩 흥분해서 달라붙었다.

기사들도 '테러', '뒷공작', '대형참사 위기' 등의 단어를 쓰며 신나게 그 여론을 부채질했다.

연예면도 아니고 사회면에서 엠바고가 터져 버리니, 아무리 대기업이라도 쏟은 물을 주워 담을 수는 없는 법이었다.

-소속 가수가 사경을 헤매는데 그저 입 막을 생각만! 캬 대기업 클라스∼

-전매니저 의도적 테러? 회사는 무서우니까 아이돌한테 지랄한 거자너 ㅅㅂ

└ㄹㅇ 면접도 안 보고 뽑았냐 이런 새끼를 1군 아이돌 매니저로ㅋ

-낙하산 X나 많았구만ㅋㅋㅋ 회사 내부 개판이었을 듯 테스타 탈모 온 거 아닌지

-'다수의 폭언으로 권고사직' -한참 눈치 못 채다가 허겁지겁 잘랐는데 보안도 ㅄ이라 X됐단 거네ㅋㅋㅋㅋㅋ대단하다 티원!

-은폐와 뒷공작에만 능한 더러운 종자들이구나 단호히 뿌리 뽑아야 나라가 사는 것이다 엄벌에 처해야 합니다

게다가 배세진이 알뜰살뜰 인권위에 찌를 수 있는 건 다 끌어모아 찔러넣은 덕에 자극 이상의 명분도 충분했다.

[대기업 계열사, T1 Stars의 노동자 인권침해 심각]

["야근 시간이 조작되었다", 폭언에 퇴사까지… 다량의 폭로]

[T1 "T1 Stars 경영 관여하지 않아" 꼬리 자르기 비판 직면해]

막말로 돈 잘 버는 인기 아이돌이 회사 갑질에 신음한다는 건 썩 공감대를 불러일으키는 요소는 아니지 않은가.

'그래도 걔넨 어린 나이에 돈 많이 벌잖아'라는 만능 답변을 만나면 기세가 수그러들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냥 '이 대기업은 쓰레기'라는 결론이 나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공통의 적, 명분이 생기면 사냥의 재미가 탁월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장마가 늦은 쾌청한 7월, 사람들은 무더위 스트레스를 신나게 T1을 패는 것에 사용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막 출범한 신생 소속사인 'T1 Stars'보다는 모기업인 T1의 인지도가 압도적이다 보니 그쪽이 신명나게 두들겨 맞고 있다.

국민청원까지 등장했다.

[T1의 인권침해 실태에 대한 조사를 요구합니다.]

물론 이런 건 그냥 물타기다만, 당연히 T1 본사는 기함한 모양이다.

'자기들도 좋은 직원 복지로 유명한 기업은 아니면서 말이지.'

솔직히 자업자득이다.

담당자들은 안됐긴 하지만, 참 재밌게 됐다.

어쨌든 배세진의 생각대로, 놈들은 내부고발이나 경쟁사의 작업으로의 심하며 색출 중인 듯했다.

테스타 사건은 누가 봐도 판을 키우기 위해 이용한 것 같은 구도가 된 탓이었다.

'…잘됐네.'

아무리 캐봐라, 나오나.

시간 낭비가 많아질수록 회사는 마비되고 그룹의 영향력은 커질 것이다.

나는 헛웃음을 지으며 스마트폰 화면을 전환했다.

이번엔 팬 커뮤니티.

[T1 보이콧합니다 (175)]

[못된 새끼들 진짜 치가 떨림 (24)]

[애들 다른 소속사 갈 순 없을까? (798)]

[소속사 때문이었다니ㅋㅋ.. (13)]

[문대 깨어나서 좋은 것이만 보고 있었으면 좋겠어ㅠㅠ (151)]

관련 글이 이 정도 느낌으로 올라오긴 했다만, 분위기가 침통하진 않았다.

당장 내가 깨어났다는 것이 워낙… 기쁘기 때문인 것 같았다.

그리고 여론 자체가 호의적이고 테스타를 살짝 빗겨 가서 크게 스트레 스를 받는 것 같지도 않았다.

'그럴 줄 알았다'는 사람이 워낙 많은 걸 보니, 팬들 사이에선 비슷한 추측이 이미 돌았던 것 같고.

'…다행이네.'

나는 화면을 문질러서 닫았다.

슬슬 글이라도 하나 올리고 싶은데, 혹시 모르니 다른 놈들과도 좀 상의한 후에 올릴 생각이다.

'생존 신고 정도는 괜찮겠지.'

…그리고, 대단히 중요한 제안도 해야 한다.

'투어는 진짜 어떻게든 간다.'

이건 나름대로 계획을 짜놨다.

나는 팔짱을 낀 채, 놈들이 올 때까지 차분히 기다리기로 했다.

그리고 오후 2시.

병실을 박차고 들어온 배세진은 흥분으로 시뻘겋게 달아올라 있었다.

"…잘된 것 같지!"

"네. 반응 좋네요."

"…!"

두 손을 틀어쥐고 사이다의 맛에 전율하는 놈을 내버려 두고 살살 내 본론을 꺼내려던 찰나였다.

"인권위 진정 결과 나오면… 이대로 소송 들어가자!"

"…!"

"증거만 나오면 승소할 수 있어! 내, 내가 변호사비 다 댈게!"

배세진은 한 번 더 액셀을 세차게 밟아보자고 강력히 주장했다.

'안 돼.'

이놈이 사이다 뽕에 너무 취했나.

결과가 좋으니 그럴 만도 하다만, 이 바닥에서 소송은 진짜 손패가 다 말랐을 때나 써야 하는 극단적 패란 말이다.

하지만 내가 입 열기도 전에 먼저 큰세진이 치고 나왔다.

'여기까진 합의 안 된 사항인가 보지.'

드디어 정신 차린 모양이다.

"형님. 그거 승소한 다음에 소속사 옮기자는, 그런 플랜이시죠?"

"…그래."

"음, 그럼 우리 T1에서 투자하는 방송사랑 프로그램은 다 못 나올 텐데, 힘들지 않겠어요?"

"…다른 방송도 많잖아. 그리고 요새는 위튜브나… 활동할 다른 방법은 많아."

배세진이 침을 꿀꺽 삼켰다.

"하지만, 지금 못 나오면, 우린 이 소속사랑 3년은 더 해야 해… 3년 후에는 또 무슨 짓을 해서 재계약하려고 들지도 몰라!"

"…."

"그러니까 지금 하는 게… 나, 나는 지금 하는 게 맞다고 생각해."

큰세진은 눈을 꿈틀거렸다. 그러나 곧 적당히 쾌활한 어조로 대꾸했다.

"소송이 잘되면 좋죠∼ 근데 지금 저희 1년 이상 활동 못 하면 커리어 확 죽는 건데요."

"…!"

"그러면… 승소하더라도 굳이 저희랑 계약하려는 소속사도 없을 것 같아서요."

큰세진은 부드럽게 말을 마무리했다.

"다른 소속사가 굳이 T1이랑 척지면서 데려올 정도로 저희가 잘나가야 하는데, 그게 안 되는 거잖아요∼"

"…."

"그냥 이걸로 소속사랑 잘 딜해서 전담팀 인력도 더 충원하고, 계약서 조항도 추가하면 좋을 것 같은데… 그건 어때요, 다들?"

배세진은 할 말이 많아 보였으나, 여러 가지 예상 답변을 떠올리고 미리 타격을 받는지 안색이 나빠졌다.

'이렇게 되는군.'

나는 머리를 짚으며 말했다.

"일단… 그럼 거수 좀 보죠. 소송 지금 당장 해보자는 분?"

배세진이 살짝 손을 들었다.

그리고 번쩍. 차유진이 손을 치켜 올렸다.

"…."

"우리가 이겨요!"

누가 미국놈 아니랄까 봐 변호사 선임 더럽게 좋아하네.

"야, 차유진. 1년 쉬는 건?"

"1년 쉬어도 우리 잘해요. 괜찮아요! 또 하면 돼요!"

아주 긍정적이고 자신감 넘치면서 현실성 없는 답변이다. 고맙다.

"그럼 소속사에 남아서 환경을 개선해 보자는 분?"

큰세진은 당연히 들었고, 의외로… 김래빈이 따라 들었다.

"회사에 훌륭한 분들도 많이 계시니, 협력하여 개선해 가면 좋을 것 같아…."

"…."

다른 의미로 참 긍정적이고 현실성 없군. 고맙다.

그럼 남은 건 류청우랑 선아현인데.

"아현이 넌?"

"나, 나는… 어, 어느 쪽이든, 다들 마음 편하고 안전하게 잘 지낼 수 있으면, 다 좋아…!"

"알았어."

선아현답다.

"…그럼 청우 형은."

"…비슷해. 마음 같아선 소송 걸어봤으면 좋겠는데… 우린 그룹이니까, 의견이 다른 사람의 커리어도 존중해야지."

류청우는 느리게 대답했다.

"문대 너는 어떻게 생각해?"

나? 간단하다.

"…당장 소송은 힘들지 않을까요."

내 투어 문제가 아니더라도 소송은 반대다.

'일이 너무 커졌어.'

그룹 문제가 아니라 노동자 인권 침해 문제로 번진 순간, 대기업은 절대 소송에서 자신들이 패소하는 케이스를 남기려 하지 않을 것이다.

테스타의 소송이 판례로 남아버리기 때문이다.

'그 뒤로 노동조합에서 줄소송 걸면 미쳐 버릴 노릇이겠지.'

그러니까 그냥 우리 눈치 보는 이때, 날치기로 챙길 수 있는 건 한탕 당기면서 우호 관계는 상하지 않는 편이 좋다는 것이다.

'회사가 테스타에게 미안해하는 구도로 가야 한다.'

실제로 미안하지 않더라도 그런 시늉이라도 하는 순간을 알차게 이용하면 된다.

하지만 배세진의 공이 있으니 이걸 대놓고 말하긴 그렇고… 약간 돌려 볼까.

"당장 내일 어떻게 바뀔지 모르는 게 여론이잖아요. 좀 더 지켜보면서, 여건이 괜찮으면 소송도 할 수 있게 자료는 모으는 건 어떨까요."

"비밀리에?"

"그렇지."

배세진은 대화를 들으며 생각에 잠긴 얼굴이었으나, 곧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알았어. 내 의견만… 주장 할 수 없지. …우리는 티, 팀이니까!"

"…."

이놈도 드디어 아주사 때 선아현처럼 또래 뽕맛을 보기 시작한 것 같다.

'뭐, 좋은 일인가.'

"Team∼ 테스타, Come on∼!"

"옮은 말씀입니다, 형!"

나는 어깨를 으쓱한 뒤, 겨우 내가 하려던 말로 돌아갈 수 있었다.

"그리고 분위기 좀 보다가 이미 잡힌 스케줄은 처리하는 편이 어떨까요."

"어?"

"왜, 왜…?"

"취소 위약금 문제도 있고, 그룹이 건재하다는 걸 좀 보여주면 분위기가 더 좋아질 것 같아서."

"…."

"너도?"

"예. 아, 물론 몸은 다 회복한 다음에요. 완치 소견 받으면."

아무 블러핑도 없는 말 그대로의 뜻이다. 넥타르 덕에 이런 말도 거리낌 없이 할 수 있군.

"음…."

"특히 투어는 이미 예매한 분들도 많으니, 되도록 도는 편이…."

"아, 안 돼!"

"…!"

뭐, 뭐라고?

…선아현이 소리를 질렀다.

나는 놈을 쳐다보았으나, 선아현은 시뻘겋게 얼굴이 변한 채로도 꿋꿋 했다.

"무, 문대는 쉬어야 해!"

"그러니까 쉬고 나서…."

"마, 많이 쉬어야 해!"

아니 무슨 말이 안 통하네.

"아현이 말이 맞아, 문대야."

"무슨 소리를 하나 했는데 투어는 무슨… 문대문대, 침대나 더 즐겨라."

"…?"

"다음 앨범 준비는 착실히 진행하여 보고드릴 테니 염려하지 않으셔도 괜찮습니다."

"형 오래오래 살아요!"

너희가 이러면 오래 못 산다.

그러나 놈들은 단호했고, 결단코 타협은 없다는 자세를 고수했다.

아무래도 18일 혼수상태의 인상이 지나치게 강렬한 나머지 이러는 것 같다.

'넥타르 소리를 할 수도 없고….'

미친 척하고 상태창 이야기를 하면 정말로 정신 병원 상담 및 입원까지 일정에 추가될 미래가 보였다.

내가 관자놀이의 통증에 시달리는 사이, 류청우가 옅은 미소와 함께 말했다.

"그리고 문대야, 이미 하반기 투어 취소 내부결재 끝났어."

"…!"

미친놈들아.

이 빌어먹을 놈들은 내 어깨를 두드리며 정답게 말했다.

"팬분들은 네가 무리하지 않고 건강한 모습으로… 가끔 글이나 사진만 올려주는 걸 더 좋아하실 거야."

"…."

"한동안은 그렇게 하자."

"그래∼ 형 말씀이 맞다∼"

"건강 회복에 주력하시는 모습 응원하겠습니다!"

그렇게… 투어는 날아갔다.

"…."

나는 놈들이 떠난 병실에 누워서, 이 사태를 복기했다.

그리고 결론을 내렸다.

X 됐다.

'관객 40만 명을 투어 없이 무슨 수로 채워.'

어디 명동이나 네버랜드에서 게릴라 공연이라도 40번쯤 해야 하냐?

대가리가 얼얼할 지경이다.

'…좋은 의도인 건 알아서 화도 못 내겠군.'

나는 몇 번 한숨을 쉬며 여러가지 방안을 짜보다가, 일단 손을 뗐다.

'관객의 조건을 더 알아봐야겠군.'

그리고, 그 전에 할 일을 하자.

나는 스마트폰을 켜서, 내 사진을 몇 번 찍어서 잘 나온 것을 골랐다.

그리고 SNS에 접속했다.

안녕하세요 러뷰어

저는 문대 (강아지 이모티콘)

건강히 잘 먹고 잘 지내고 있어요

기다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좋은 모습으로 금방 찾아뵙겠습니다

그리고 사진을 첨부해 업로드했다.

'…21일 만인가.'

좀 떨리긴 하는군.

아니나 다를까, 곧 미친 듯이 SNS 알림이 갱신되기 시작했다.

-문대야!

-고마워 정말

- ㅠㅠㅠㅠ

-잘 지내야 해 문대야 잘 먹고 푹 쉬고 잘 자고…

└또 너무 많이 자진 말고ㅋㅋㅋ

└넌 무슨 일이 있어도 내가 고소한다

-오래오래 건강하고 행복해야 해

"…."

글자였지만, 온도가 있는 것 같았고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든든한걸.'

나는 웃으며 댓글들을 살폈다.

그리고 약간 기대하는 것도 있었다.

'금방 찾아뵙겠다는 말에 팬들이 좋아하면, 이걸 증거로….'

-금방 안 와도 괜찮아 문대야 건강이 제일 중요해

-문대야 제발 몸을 소중히 해줘

"…."

말은 이렇게 해도, 아마 실제로는 직접 보고 싶을 것…이다.

그래야 한다.

'미치겠네.'

나는 뒤 머리를 휘저으며 스마트폰을 베개 옆으로 던졌다.

지잉, 지잉, 지이잉!

그러자 마치 짜 맞춘 듯이 스마트폰이 여러 번 울렸다.

'SNS는 방금 알림 껐는데.'

나는 약간 의아해하며 스마트폰을 집어 들었다.

확인해 보니… 문자다.

[(사진)]

눈에 익은 개 사진이 연달아 20장 쯤 도착해 있다.

"…."

와, 이게 반갑네.

'야 X발 뭐라도 뱉어봐라.'

어차피 뒈질 거라면 썩은 지푸라기라도 잡아본다.

[VTIC 신청려 선배님]

나는 놈에게 전화를 걸었다.

[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 237화]

청려에게 건 전화는 몇 번의 신호 음 이후 연결되었다.

다만 '여보세요' 같은 상식적인 인 사는 안 나왔다.

-살아 있네요.

이럴 줄 알았지.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습니다."

-아, 죽길 바랐다는 건 아닌데.

"특별히 꼭 살아 있길 바랐단 것 같지도 않습니다만."

내가 뒤지면 대상 경쟁자 하나가 낙오되니 개이득이라고 생각했다면 모를까.

그러나 전화 너머 목소리는 웃지 않았다.

-재시작 못 한다며.

"…."

-그럼 살아 있어야죠. 희한한 소리를 하네.

얼씨구.

이 또라이에게 비상식으로 질책당하는 상황이야말로 희한하다.

그러나 좀 유쾌한 측면이 있었다는 건 부정하지 않겠다.

코마에서 봤던 미친놈이 생명의 소중함을 이야기하다니, 진짜 시간이 약인 모양이군.

물론 리셋 버튼을 뺏겨서겠지만.

"뭐, 걱정은 고맙습니다. 어쨌든 전 멀쩡합니다."

-그래요. 그런데 왜 전화했어요?

"뭐 좀 물어볼 게 있어서."

나는 계산을 마친 후, 곧바로 말했다.

"혹시 모레나 그다음 날 오전에 시간 됩니까?"

-묻는 이유는?

간단하다.

"병문안이 가능해서."

환경상 내가 나갈 순 없으니 이놈을 불러야겠지.

전화 너머에서 그제야 웃는 소리가 들렸다.

청려는 몇 가지 딜과 조율 끝에 사흘 뒤 주말 오전에 방문하겠다는 말을 뱉었다.

앞으로의 활동 계획 때문에 거의 매일 돌아가며 방문하던 다른 놈들이 주말을 맞아 본가에 돌아가기에 기획이 가능한 일이었다.

아, 한 놈 빼고.

"멜론 언제 먹어요?"

"병원이 허락하면."

"저 물어볼래요!"

"참아라."

차유진은 주말에도 숙소에 있는 본인을 불쌍히 여겨 병실에 상주 중이다.

이놈이 다쳤다는 소리에 부모님이 입국하셨다고는 하는데, 지난주에 귀국하신 모양이다.

하긴, 직장인이 타국에 2주 이상 체류하는 건 힘든 일이다. 아무리 미국이라도 더 휴가를 잡기 어렵겠지.

나는 멜론 대신 큼직한 개량품종 귤 몇 개를 놈에게 던져주었다. 선아현이 사 온 것이다.

아마 보관성이 좋으니 식이 허락이 떨어졌을 때 바로 먹을 수 있는과 일을 산 것 같으나… 그때까지 남을 것 같진 않군.

"먹어라."

"당도 최고예요?"

큰세진한테 배웠냐.

"어."

"와!"

나는 귤을 까먹는 차유진을 보았다.

사실 이건 일종의 뇌물이다.

"…30분쯤 뒤에 누가 올 건데, 다른 멤버들한테는 굳이 말하지 말지."

"형 손님이요?"

"비슷해."

"누구세요?"

"VTIC 청려."

"오우."

차유진은 귤을 덥석덥석 삼키더니, 어깨를 으쓱했다.

"Okay∼"

됐군.

이런 건 깔끔한 놈이라 편했다. 토 안 다는 개인주의 성향이 빛을 발하는데.

"그런데 왜 와요?"

이게 귀찮아서 그렇지.

"다음 활동 관련해서 물어볼 게 있어서."

"저한테 물어봐요!"

"…오래 활동한 사람한테 물어봐야 하는 거야."

"에이."

다행히 질문 공세는 여기서 마무리되었으나, 청려가 도착하면 비슷한 상황이 반복될 건 뻔했다.

그리고 삼십 분 뒤.

"저도 들을래요!"

역시.

"가서 간식이나 사 먹어라."

"우우…."

그래도 앞에서 상대해 준 덕에 단호한 명령이 먹히는군.

차유진은 투덜거리면서 나갔다. 그래도 청려에게 한국식 유교 인사를 잊진 않았고.

"선배님 안녕하세요!"

타탕!

허리를 꾸벅 숙인 놈이 병실 문을 호쾌하게 닫고 나간다.

청려는 나가는 놈을 빤히 보다가 웃었다.

"까다로운 타입인데, 팀 분위기가 좋은가 보네요. 제어가 가능하고."

"…."

"비슷한 놈을 다뤄본 적이 있는데… 16개월 만에 스케줄을 펑크내더라고요. 음, 그게 6번째였나? 하하."

분위기 싸하게 만드는 데에 정말 재주 있는 놈이다.

어쨌든, 나는 팔짱을 끼고 본론으로 들어갔다.

"오늘 널 초청한 이유는 당연히 긴급 상황 때문인데."

"네."

"미션을 실패할 것 같다."

"…."

굳이 감출 건 없다. 고양이 손이라도 빌릴 판에, 리셋도 막힌 불발탄 정도야 적재적소에 활용 가능하지.

"이번 미션이?"

"40만 명 관객 동원."

"…."

청려는 잠시 생각이 잠긴 듯 말이 없었다.

그리고 고개를 옆으로 기울였다.

"굉장히 구체적이네?"

"…."

"어떻게 그렇게 확신하지…. 재있네."

역시.

'뭔가 눌렸군.'

상태창 이야기는 만일의 경우라도 더 미뤄야겠다.

그러나 이 정도는 구체적 조건을 안 상태에서 논의를 진행해야 때문에 어쩔 수 없다.

'조금이라도 더 정밀한 예측값이 필요해.'

투어가 취소된 이상 돌연사 확률은 끝도 없이 치솟고 있으니까.

놈이 맨땅에 헤딩하던 자신과 나의 차이가 불공평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으나, 거기서 더 발상이 나아가지 않도록 잡아야 한다.

'환기한다.'

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뭐, 구체적으로 알 수 있다는 건 나쁘지 않지. 안 그래도 미션이고 나발이고 교통사고 때문에 황천 앞까지 갔다 왔는데."

"…원래, 이 직업이 변수가 많긴 하죠."

"그래, 덕분에 활동 2년 동안 벌써 두 번이나 죽을 뻔했지."

"어, 첫째는 너."

놈이 웃음을 터뜨렸으나, 곧 약간 미안하단 듯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정신머리가 돌아온 것 같군.

개 사진 20장을 받고 건 도박이 성공한 모양이다.

'역시 약간의 부채감과… 동지의식 같은 게 남아 있다.'

내가 깨어났다는 소식에 개 사진 보내줄 정도의 호의는 된다는 뜻이다.

그래도 이 새끼가 정상은 아니니다른 생각하기 전에 빨리 넘어가자.

"어쨌든, 덕분에 투어는 취소되었고 난 병원에 발이 묶여 있지. 그런데 관객을 30만 명은 더 만나야 해."

"흠, 연말에 돔 투어를 새로 잡는 건 힘들 텐데요."

"그래."

연말연시는 대목이다. 이미 테스타가 돌 규모의 공연장은 대부분 주말 대관이 다 끝났다.

게다가 이놈에게 말할 순 없지만, 소송까지 들어가면 투어는 무슨, 올해 연예계 활동 자체가 물 건너갔고.

그리고 청려는 제일 상식적이고 고려할 법한 대안을 들이밀었다.

"비대면 공연은?"

"…그게 문제지."

나는 미간을 눌렀다.

"카운트 기준이 애매해."

"…."

내가 사고당하기 직전에 했던 팬미팅.

그 공연은 온라인으로 동시 송출되었으나, 실시간 유료 관람객과 불법 관람객은 모두 카운트되지 않았다.

오로지 현장 관객만이 '관객'으로 카운트된 것이다.

여기까지만 보면 비대면은 소용이 없는 것 같지?

하지만 또 아예 비대면을 기준으로 기획했던 몇몇 공연들은 일부 카운트된 것들도 있다.

'실시간 유료 W라이브로 진행한 컴백쇼 라이브 몇 번은 카운트됐었지.'

시청 중인 관객의 문자나 피드백이 전광판에 뜨는 구성이었다.

그리고 이 모든 경향성을 고려했을 때, 매우 모호한 기준 하나가 나왔다.

"공연 내에서… 내가 관객을 인식했을 때만, '관객'으로 인정해 주는 것 같던데."

내가 관객을 인지해야만 한다. 숫자가 아니라 그 자체를.

그 열정과 기운을.

"아."

청려가 눈을 가늘게 떴다.

"연극적 의미의 관객이었나."

"연극?"

"리액션(Reaction)의 존재도 공연의 일부라는 거죠. 음, 좀… 촌스럽긴 하지만."

"…."

나름대로 먹물 좀 먹은 삶도 살아 본 모양이다. 빠르게 개념을 설명할 줄 아는군.

청려는 턱을 쓸었다.

"어쨌든… 그럼 좀 까다롭긴 하겠는데요."

"맞아."

나는 혀를 찼다.

"실시간으로 소통이 가능한 관객을 동시에 30만 명쯤은 모아야 하는데, 힘들지."

단순히 VOD 구매가 아니라, 30만 명을 컴퓨터 앞에 동시에 붙잡아 둬야 한다.

'…횟수를 늘려도 한계가 있다.'

아마 공연 구성을 계속 바꿔서 하더라도 2회를 넘는 순간 집계되는 실시간 관람객 수치는 계속 하락할 것이다.

한계 효용과 희소성의 법칙에 따라서.

바쁜 현대인이 결제만 해둔 뒤 시청은 뒤로 미뤄서.

그리고 '하나 정도는 결제했으니 나머지는 무료로 봐도 괜찮겠지'라는 자체 발부된 면죄부를 통해서.

청려가 내 고뇌를 보더니 빙긋 웃었다.

"음, 정 그러면 VTIC 투어 게스트라도 할래요? 한두 달만 고생하면…."

"돌았나."

"하하!"

본인도 말도 안 되는 소리라는 걸 알면서 뻔뻔히도 묻는군.

VTIC 콘서트에 게스트 출연?

그야말로 지옥이 도래한다.

내가 부상에서 회복하자마자 남의 콘서트에 게스트 출연하면 테스타 팬덤이고 VTIC 팬덤이고 황천의 지옥 불처럼 달궈질 것이다.

그러나 청려는 태연했다.

"죽는 것보단 나을 것 같은데. 생각해 봐요. 마지막일지도 모르니까."

"…."

물론 VTIC은 변명거리가 테스타보단 많을 테니 버틸 만할 것이다.

'그래도 손해는 손해인데.'

그것도 완전무결 탑티어 아이돌에 편집증 수준으로 집착하는 이놈이 이런 미친 제안을?

코마 상태에서 받았던 VTIC 메인 보컬 합류 제안이 떠오를 지경이다. 나는 떨떠름하게 대꾸했다.

"왜 굳이 손해를 보려는지 모르겠는데."

"음, 미안하니까요?"

"…."

지금 나랑 농담하는 건가 싶어서 놈의 기색을 살폈으나, 기만질이나 정신 나간 분위기는 아니었다.

대신 제법 차분했다.

"내가 한두 번… 심하게 방해한 적이 있으니, 빚을 갚는다고 치죠. 어때요."

"…흠."

아무래도 이번 사고로 내가 뒈질 뻔한 꼴을 보며 이놈도 자신의 지난 행적을 뒤돌아본 모양이다.

'개 키우는 게 정말 멘탈에 도움이 되긴 하나 보군.'

그러나 저런 하책에 투자할 생각은 없다. 다시 지금까지 논의를 검토해 본다.

'내가 쓸 수 있는 자원이….'

내 능력치, 인맥, 시간, 돈….

'…돈?'

"…!"

나는 눈을 부릅뜰 뻔했다.

찾았다.

"아니, 그 방식은 안 쓸 거다."

"그럼?"

"…비대면 공연을 할 거야."

나는 단호하게 말을 끝냈다.

"전면 무료로."

"…!"

다른 한계점들은 모르겠으나, 돈으로 생기는 진입장벽은 내가 커버할 수 있다.

'콘서트 올리는 비용 정도는 댈 수 있겠지.'

안 쓰고 그냥 둔 돈이 꽤 돼서 말 이다. 남의 지원은 필요 없다.

"아, 합의금이라도?"

그러니까 이런 제안도 말이지.

나는 피식 웃었다.

"아니. 다른 걸로 받고 싶은데."

무료 공연의 가장 큰 걸림돌은 돈이 아니다.

기존 계약이다.

'테스타는 W앱과 3년 독점 계약을 했어.'

그리고 W앱은 무료 공연을 지원하지 않는다.

그러나 테스타의 온라인 콘서트 송출은 무조건 W앱을 통해야만 했기 때문에, 나는 우회로가 필요한 것이다.

"너희 플랫폼 좀 빌리자."

바로 LeTi가 해외 펀딩 업체와 합작으로 만든 전시·공연 플랫폼 말이다.

'테스타가 아니라 멤버 솔로는 계약서에 명시 안 되어 있었어.'

나머지 상도덕이나 대중 여론 문제야 공연 방식을 조절하면 되기 마련이고, 이놈 끼고 하면 훨씬 수월하고 빠를 것이다. 회사 간판이니까.

'지금은 이게 제일 필승 조합 같은데.'

아니나 다를까, 청려 놈도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좋은 생각이네요."

네놈 제안보다야 그렇지. 나는 혀를 찰 뻔한 것을 참으며 덤덤히 대답했다.

"VTIC 투어 따라다니는 것보다야 당연히 낫겠지."

"네? 하하. 당연히 그렇죠. 설마 그런 말도 안 되는 짓을 하겠어요?"

"…."

"그냥 그런 것까지도 해줄 수 있다는 뜻이었는데, 그럴싸하게 들렸나 보네."

X새끼 기만질 맞았잖아.

분명 코마에서 만난 새끼도 VTIC 메인보컬은커녕 단물만 빨아먹고 팽했을 것이다, X발.

박문대는 순간 극대노했으나, 곧 침착함을 되찾고 청려와 빠르게 세부 사항 합의를 끝마쳤다.

그리고 곧바로 회사에 연락하여 '새로운 플랫폼과의 컨택'을 심도 있게 이야기했다.

'쉽네.'

시선을 돌려 뒤숭숭한 분위기를 잠재울 수 있다는 계산속에서, 회사는 초토화된 상태면서도 제법 빠르게 오케이 사인을 보냈다.

주말을 지나 월요일 아침에 바로 결재가 떨어졌기 때문이다.

"예, 감사합니다."

물론 택도 없는 오판이었으나, 박문대는 즐겁게 그들의 오판을 용인했다.

'이대로 순조롭게 가면 좋겠군.'

이제 멤버들만 설득하면 되겠다며, 박문대는 월요일 오후 멤버들의 방문 시각이 겹치도록 조정했다.

'한 번에 논의하는 편이 좋겠지.'

그리하여 며칠 뒤.

박문대는 식은땀을 흘리며 멤버들에게 자숙과 반성의 시간을 강력히 강요받게 된다.

"박문대, 앉아서 들어."

어찌 된 일인지 멤버들은 다 관련 소식을 이미 전해 들은 상태였다.

차유진은 참지 않았기 때문이다.

"회사에 물어봤어요!"

'이놈이.'

물론 본인 업보였다.

[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 238화]

좀 당혹스럽다.

"박문대, 지금 투어 취소됐다고 혼자 콘서트 일정을 짜? 너 지금 입원 중이야. 왜 투어 취소됐는지 알잖아."

"이런 말씀 드리게 되어서 죄송하지만, 형은 여가와 일의 균형에 대하여 재고하실 필요가 있습니다!"

"…혼자 하기 전에 상의라도 해봐야겠다는 생각은, 안 해봤어?"

그러니까 그 상의의 기회를 너희가 안 주고 있다만.

나는 한숨을 참으며 상황이 왜 이 꼴이 된 건지 돌아보았다.

-…문대야, 유진이가 회사에서 들은 말이 있다는데….

찾아온 놈들이 자리에 앉지도 않고 이렇게 말을 시작하는 순간 정보 샜구나 싶긴 했다.

'그래서 이놈들이 마음껏 말하게 두고 좀 진정하면 본론을 시작하려고 했는데.'

이건 순 상소문 듣는 폭군이 아닌가. 들을수록 나쁜 놈이 되는 기분이다.

'…서운할 수는 있지.'

그래, 그건 인정하겠다.

혼수상태에 빠진 놈 때문에 활동이 올스탑 됐는데 정작 그놈은 자기 솔로 콘서트나 기획하고 있다고 하면 눈 뒤집힐 만하다.

게다가… 걱정도 하는 것 같고.

"모, 몸이 다 회복된 다음에, 그때 생각해도 안 늦잖아…!"

"그래!"

"…."

그래서 지난 18일간 '이놈이 깨어나긴 하는 건가' 같은 생각으로 복잡한 심정이었을 놈들을 고려해서 얌전히 들어줬다만….

'30분쯤 됐나.'

이 정도면 된 것 같다. 이제 슬슬 같은 말이 계속 반복된다. 나는 한숨을 쉬며 정리를 시작했다.

"일단… 오늘 만나서 말하려고 했습니다."

"아, 다 결정된 다음에?"

큰세진 이 새끼 또 이러네.

"아니, 아직 결정된 건 없어. 회사에 말한 건 그냥 아이디어일 뿐이지."

나는 관자놀이를 눌렀다.

"당장 할 생각도 아니었고. 테스타 공식 활동 재개 이후에 기념용으로 하면 좋을 것 같단 거였는데."

"…."

이건 제법 현실적으로 들리긴 하는지, 병실이 각자 생각에 잠긴 듯 조용해졌다.

나는 약간 고민하다가 뒷말을 덧붙였다.

"…그래도 솔로 이야기 다짜고짜 회사에 꺼낸 것처럼 보였겠지. 미안하다. 그리고 죄송합니다."

"…!"

나는 이어서, '그러나 그것은 낚시다'를 잘 설명하기 위해 말을 조합하는 중이었다.

하지만 류청우가 먼저 입을 열었다.

"…문대야. 넌 얼른 활동하고 싶겠지."

"…."

그렇지. 안 하면 죽어서 말이다….

류청우는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솔로 콘서트하고 싶으면 해도 괜찮아. 회사 고소… 굳이 하고 싶지 않다면 그냥 활동해도 괜찮아."

"…!"

"그런 걸로 사과할 필요는 없어."

배세진의 얼굴이 붉어졌으나, 놀랍게도 류청우에게 반박하지 않고 묵묵히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런데 네 건강은 신경 써야지. 우리가 지금까지 이야기한 건 다 그것 때문이야."

"…."

"넌 지금 무리하고 있어. 그건… 이해해 줬으면 좋겠다. 매번 말하지만."

말하는 류청우의 안색은 좋지 않았다.

아무래도 내 명치에 철 박히는 장면이 상당한 트라우마를 남긴 것 같았다.

'후우.'

원점으로 돌아오는군. 나는 깍지를 꼈다.

난 더없이 건강하며, 완치가 코앞이다.

이 불가사의한 회복력을 어떻게 납득시킬 수 있는가….

"저 건강에 신경 충분히 씁니다. 의료진 지시도 다 따르고 있고, 듣기로는 말도 안 되게 빠른 속도로 회복 중이라던데요."

"…그래서 완치하는 대로 복귀하고 싶다?"

"뭐, 전문가가 된다고 하면 고려 중이라는 거지."

큰세진이 피식피식 웃었다.

"야, 팬들이 퍽이나 좋아하겠다."

"…!"

"넌 그러면 반응이 좋을 거라 생각 하나 본데, 팬들도 너 사람인 거 알아. 혼수상태였던 사람 이용한다고 회사에 트럭이나 보내실걸."

"…."

"아, 고소를 위한 큰 그림이야? 그러면 뭐, 문대 대단하네∼"

이 새끼가 진짜.

나는 이를 악물었다.

"꼭 그런 식으로 말해야 하냐?"

"…!"

"빈정거리지 마라. 솔직하게 말하고 있는데."

사람이 X발 돌연사하게 생겼는데 자꾸 긁으니까 빡치네. 아무리 그래도 적당히 해야지.

이세진은 입을 벌렸다가, 말하지 않고 다시 닫았다. 나는 진정하기 위해 말없이 생각에 집중했다.

그리고 동명이인이 급발진했다.

"쟤, 쟤는…! 걱정돼서 저러는 거야!"

배세진이 주먹을 쥐고 튀어나왔다.

"원래! 말을 저렇게 하잖아!"

"…."

멕이는… 건가?

"마, 맞아…. 세, 세진이도 사과하고 싶을 거야, 그, 그렇지…?"

선아현이 지원 사격하는 걸 보니 멕이는 건 아니었나 보군.

큰세진은 웃음기 없는 얼굴로 바닥을 보고 있었다.

"…미안해."

"…."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내가 좀 과민했군.

상태이상 클리어 방법을 그나마 생각해 냈는데, 그걸 논의할 때까지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니 여유가 없어진 것이다.

'시비 걸려는 의도는 아니었을 테고.'

그냥 본인도 이 상황이 좀 열받으니 좀 비꽈서 깨달음을 주면 내가 정신 차릴 거라 생각한 모양이다.

'…어쩔 수 없지.'

그래, 큰세진이 아니라 다른 멤버도 마찬가지다.

내가 이 팀에 기여하고 있는 부분이 있는 이상, 그리고 교통사고가 일어난 이상 이놈들은 내 건강을 신경 쓸 수밖에 없다.

뭐, 2년이나 동고동락 합숙 생활을 했으니 정든 것도 있겠지.

그러니까, 결국 정보량의 차이다.

'내가 40만 명 동원 못 하면 죽는 걸 이놈들은 몰라.'

그러니 우선순위가 뒤바뀔 수밖에 없다.

'…이렇게까진 안 하려고 했는데.'

나는 침음을 참으며 결국 입을 열었다.

"…사실, 팬들이 좀 보고 싶거든요."

"…."

"갑자기 눈 떠보니다음 달이라잖아요. 인터넷은 난리지, 뭐라도 좀 하면 덜 불안할 것 같아서… 콘서트 이야기라도 좀 해본 겁니다."

"…그래."

"무, 문대야…."

좀 오그라드는 발언이긴 했는데, 그래도 설득력이 있는지 분위기가 축축해졌다.

'…틀린 말도 아니지.'

불안한 이유가 상태이상이라는 것만 제외하면, 저게 딱 내 상태일지도 모르겠다.

나는 약간 포기한 심정으로 계속 말을 이었다.

"전처럼 무리하게 밤새워서 뭘 할 생각은 없습니다."

어차피 바쿠스 없어서 못 하거든.

"그래도 활동은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빨리 재개했으면 좋겠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이번에는 다짜고짜 안 된다는 대답 이 튀어나오지 않는다.

이쯤이 좋겠다.

"애초에 기획하던 콘서트도 거창한 건 아니었고."

"어?"

"그냥 간단한 토크 콘서트 생각했습니다. 건강 회복한 것도 보여줄 겸. 댄스는 최소화하고요."

"그, 그래서 솔로 콘서트로…?"

"아니, w앱 계약 때문에. 그룹 명의로는 무료 콘서트 중계가 안 되더라고."

"오…."

이제 좀 말이 통하기 시작하는군.

나는 청려와 합의한 부분까지 설명을 끝냈다.

그리고 한 박자 쉬고 말했다.

"그런데 애초에… 솔로는 눈속임인데요."

"…?"

나는 피식 웃었다.

"테스타를 다 게스트로 부를 거였는데. 그럼 괜찮지 않나요."

"…!"

솔직히 뻔한 꼼수 아닌가.

안 온다는 놈이 있으면 그림이 좀 이상해지긴 하겠지만, 웬만하면 다 설득할 자신이 있었다.

그러나 한 놈이 얼굴이 시퍼레져서 외쳤다.

"고, 그럼 계약 위반 아니야?"

"아닙니다. 어디까지나 주체는 저니까."

"그래도… 사기잖아!"

"계약 조항을 잘 써먹은 거죠."

"…."

털썩. 배세진은 의자에 주저앉았다.

그리고 '욕먹을 것 같….' 비슷한 소리를 중얼거리는 것 같으나, 반대는 안 한다.

'내가 상당히 절박해 보였나 보지.'

앞에서 한바탕 말을 퍼부었으니 나름대로 자제해 보려나 보다.

아니면 언어가 덜 공격적으로 나가도록 배세진 나름대로는 정리하려 애쓰고 있거나.

물론 저 말 자체는 일리가 있다.

'이런 식으로 하면 업계에 소문 더럽게 날 거야.'

그냥 업계도 아니고, W앱은 상당히 거대한 검색엔진 회사가 운영한다. 분명 보복이 있을 것이다.

'그러니까 형태를 잘 골라야지.'

그리고 난 이미 콘서트의 형태를 골라뒀다.

이거면 보복하기도 애매한… 그냥, '다른 종류'의 공연 취급을 당할 것 같아서 말이다.

나는 웃으며 말했다.

"그리고 하나 더."

"…?"

"콘서트의 목적을 따로 만들어두고 싶은데요."

"목적?"

나는 내 발상을 설명했다.

"오."

"무, 문대는 늘 좋은 생각을 하는 것 같아…."

"정말 그렇습니다!"

반응은 썩 괜찮았다.

의자에 하얗게 불태운 자세로 앉아 있던 배세진이 안색을 회복했다는 정도로 설명하면 될까.

"…그건 괜찮은데!"

"그렇죠."

'이 정도면 반은 먹혔나.'

더는 설득 안 해도 될 것 같군. 이대로 빌드업 쭉 하다가 퇴원쯤에 확정하면 되겠다.

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이, 이제 문대, 푹 쉬어…!"

"아니, 충분히 쉬었…."

"쉬, 쉬어!"

"…."

그리고 그제야 병문안 분위기로 돌아온 놈들에게 시답잖은 근황 이야기를 좀 들었다.

"AR팀에서 문대 형의 편안한 수면 시간을 위해 기념 음원을 만들었는데… 프로그램 오류로 저장 전에 날아갔다고 합니다…."

"진짜?!"

"…마음은 잘 받았다고 전해줘라."

제법 오래.

그렇게 시간이 흘러, 곧 병원식이 올 시각이 됐다.

"식사하고 오시죠."

"그래, …벌써 그럴 시간이네."

"저는 이르게 먹고 왔으니 남아서 말벗 역할을 수행하겠습니다!"

"저도요! 과일 먹어요!"

아니, 괜찮… 뭐, 됐다.

나는 어깨를 으쓱하고 말았다.

다만, 우르르 나가는 놈 중 큰세진은 주저하면서도 끝까지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

아까 말하다 분위기 살벌해진 뒤로 계속 저러는 것 같은데.

"…다녀올게∼"

"그래."

입은 그래도 나불대는군.

…괜찮겠지.

그리고 다음 놈.

"형! 맛있게 먹…."

"넌 이리 와라."

"아으으윽!"

어딜 귤까지 받아먹고 밀고한 놈이 슬금슬금 넘어가려고.

나는 차유진의 이마를 쥐어박고 놔 줬다.

"아욱!"

그리고 놈의 눈앞에서 김래빈에게 큼직한 복숭아를 줬다.

본인이 가져온 걸 본인에게 먹이는 거라 좀 웃기게 되긴 했다만, 나도 같이 약간 집어 먹었으니 괜찮겠지.

"맛이 훌륭합니다!"

"그러게."

차유진은 축 처졌다.

"형 너무해요!"

"뭐가."

"나 다른 거 말 안 했어요!"

"뭘."

차유진이 작게 입 모양으로 말했다.

'VTIC 선배님!'

"…!"

짧은 침묵이 흐른 뒤.

"먹어라."

"와우!"

나는 놈의 입에 복숭아를 물려줬다.

일종의 뇌물이다. 앞으로도 다물고 있으라는 의미지.

그 뒤, 박문대는 순조롭게 회복하여 의료진의 예상보다도 빠르게 퇴원에 성공했다.

그리고 다시 몇 주 후.

소속사가 무시무시하게 두들겨 맞으며 인권위의 진정 권고를 받은 후, 테스타는 작은 그룹 활동을 시작했다.

바로 KPOP 합동 콘서트인 TaKon에 출연한 것이다.

물론 현장에 직접 나타난 것은 아니고, 따로 찍은 영상을 방송에만 편성했다.

그래도 사고 이후 첫 활동이었기에, 테스타의 출연은 제법 화제가 되었다.

'사랑해 테스타 우리의 마법 영원히' 같은 문구로 도배가 되는 인터넷 반응 속에서, 몇 가지 적나라하거나 무례한 평가도 빠르게 오갔다.

-폼 안 떨어졌네

-역시 돌은 살을 빼야돼 혼수상태 다이어트 최고ㅎ 벌크업 죽어

-와 각 다 맞아 연습 개열심히 한 듯 미쳤다;

-곰머 개멀쩡해보이는데?ㅋㅋㅋㅋ 망돌들 곰머보고 좀 배워 누군 죽었다 깼는데도 저런 무대하는데 니들은 눈깔간수도 못하곸ㅋㅋㅋㅋ

-티원 불매라며 테스타는 불매 안 해? 빠순이 논리 지렸고∼

└테스타는 교통사고당해서 예외임 암튼 그럼ㅋ

한 가지 확실한 것은, 테스타가 동정 어린 관심도 호감으로 소화할 만한 스타성을 잃지 않았다는 점이다.

'테스타는 다음 활동을 계속하는가', '컴백은 언제쯤 하는가', '소속사는 그대로 가는가' 따위의 온갖 말들이 인터넷을 휘몰아쳤다.

그리고 아주 뜬금없이, 한 공연 예약 플랫폼의 SNS에 공지가 떴다.

-이거 설마 테스타야? (링크)

테스타가 이용해본 적도 없고, T1과 연관도 없는 타 회사의 플랫폼.

그러나 SNS에 뜬 말은 충분히 어그로를 끌 만했다.

[뭐? 국민 주식이 무료 콘서트를 해?]

국민 주식.

몇 년 전 유행어.

몇몇 사람들이 빠르게 붙어서 떠들기 시작했다.

-국민 주식 언제적 수식어; 그냥 어그로인 듯

-아주사 다음 시즌 콘서트로 시작하는 거 아닐깤ㅋㅋㅋㅋㅋ

-해킹 아냐?

다 아니었다.

며칠 후. 해당 SNS의 그다음 업로드는 이것이었으니까.

[국민 주식의 무료 콘서트를 관람하고 아픈 아이들에게 힘을 주세요!]

[호스트 : 박문대, 게스트 : 테스타]

그렇다.

박문대가 기획한 것은 불우이웃 돕기용 모금 콘서트였다.

[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 239화]

박문대가 테스타를 게스트로 초청하는 형식의 콘서트.

이런 의문이 제기될 가능성은 있었다.

-왜 하필 박문대가 호스트고 테스타는 게스트야?

-박문대 엄청 밀어주네ㅋㅋㅋ

그러나 여론이 되진 못했다.

박문대는 이미 이 형식에서 논란이 되지 않을 방법을 알고 있었다.

'선후 관계를 뒤집어버리면 되지.'

[콘서트 중 모금된 관객분들의 소중한 기부금은 전액 장기입원 중인 소아 환우들에게 돌아갑니다.]

기부 테마를 장기입원으로 잡으면, 자연스럽게 박문대가 적임자가 되는 것이다.

'교통사고로 제일 오래 입원한 게 나니까.'

박문대의 솔로 콘서트에 기부 컨셉을 끼운 게 아니라, '이 콘서트 형식에 박문대가 제일 어울려서'로.

자연스럽게, 사람들은 기부 콘서트라는 의미가 더 강조되도록 박문대를 호스트로 내세웠다고 생각하게 된다.

[테스타, 어린이 환자를 위한 온라인 콘서트 개최]

["입원 중 많은 생각을 했다"… 테스타의 뜻깊은 기부 콘서트]

그리고 보도자료가 테스타, 그룹 중심으로 나가면 모든 게 이 구조 그대로 자리 잡기 마련이었다.

-톱스타 청년들의 멋진 행보 응원 합니다^^

-테스타 진짜 대단하구나 난 너희를 존경한다bb

-선한 영향력 참 좋아요∼ 장하다∼

전통적으로 쉽게 받아들여지는 선행에 연령대가 높은 층에서도 제법 좋은 호응을 얻었다.

관객 동원에 좋은 신호탄이었다.

그러나 콘서트보다는 자선행사의 이미지가 더 강력해지니, 이 형식 자체에 대한 꼬투리 잡기도 당연히 따라왔다.

-돈 엄청 벌었을 텐데 팬들 돈으로 생색내려고 하는 것 같아서 나만 보기 안 좋나

-기부금은 팬이 내고 기부 명의는 테스타야?ㅋㅋㅋㅋ 머리 좋네

반박은 명료하고 간단했다.

-테스타 콘서트 하루 매출이 20억 넘음..

└ㄷㄷㄷㄷ

└와 대박

└쟤네 20억 포기하고 이거 하는 거임?ㅋㅋㅋㅋ

-사고 때문에 투어 다 취소해서 손해 엄청날 텐데 대단한 거야

-셤별까들 진짜 개멍청ㅋㅋㅋㅋㅋ

자본주의 사회에서 '수익 포기' 만큼 희생을 잘 수치화하는 문구는 없었다.

팬들은 '이 콘서트가 얼마나 뜻깊 으며 다들 봤으면 좋겠는지'에 대한 홍보 글을 써서 커뮤니티와 SNS 등지를 돌았다.

그러면서도 엄청난 감흥에 젖어 있었다.

-문대야… 아 인성영업 안 되는데 진짜 온 세상에 문댕댕 천사라고 소리지르고 싶음

-투어 취소되는 바람에 팬들 못 만나는 게 아쉬워서 무료로 기획했대… ㅠㅠㅠㅠㅠ

-테슷타 이 말랑콩떡갓기들아 진짜 미치겠네 어떻게 이래

팬들은 2주가 넘도록 공포와 걱정에 휩싸여 있다가, 그 후 기적적인 회복과 회사의 비리가 밝혀지는 것까지 봤다.

게다가 성공적인 복귀와 무대까지.

물밀듯이 몰려오는 사건과 상승궤도에 팬들은 완전히 테스타의 상황에 몰입한 상태였다.

그러면서도 걱정을 접지는 못 했다.

-문대 벌써 콘서트 해도 괜찮을까? 사녹 많이 넣어서 조절 잘해야 할 텐데..

-테이콘에서도 문대 간주에서 비틀거렸어 나 솔직히 걱정돼 무리하는 것 같아

-애들 요새 덥앱도 하는데 좋으면서도 좀 그럼. 말하는 거 들어보면 다들 요새 건강 관리 강박적으로 하는 것 같고.

└ㄹㄷ활동 압박받는 건 아닌가 걱정임 티원 개X끼들 지들 욕먹으니까 애들로 이미지 쇄신해보려는 것 같고

테스타는 퍼포먼스형 남자아이돌 그룹답게 '행차'로 대표되는, 몹시 격렬한 안무를 동반한 타이틀곡도 많았다.

그리고 이런 곡들은 콘서트의 핵심 무대를 꾸미는 경우가 많다.

당연히 팬들은 막 부상에서 회복한 박문대가 그런 무대를 연달아서 해도 괜찮은지에 대해 갑론을박했다.

그러나 곧 한쪽으로 여론이 쏠렸다.

-아직 콘서트 뚜껑도 안 열렸는데 사서 걱정하지 말자

└뚜껑 열리기 전에 말해야 수정 가능한 거 아니야?

└아니 애들이 만든 세트리스트를 왜 니들이 맘대로 수정하려고 하냐고ㅋㅋㅋㅋ

-뭣만 하면 계속 안 좋은 소리 끌고 나오네 좀 즐기면 안 되나? 덕질 참 피곤하게 함

-오랜만에 공연이라 애들도 다 들뜬 것 같던데 초 치지 말자 제발...

-분위기 좋아서 이번 콘서트 대박날 듯 다들 쌉소리 그만하고 ㄹㅇㅋㅋ만 쳐라

워낙 오랜만의 공연 컨텐츠인데다 가, 소식이 전해진 뒤 대중 여론이 무척 좋았던 덕이었다. 팬들도 이 기세를 타고 싶었다.

게다가 걱정하던 사람들이 더 기분 상하는 일이 없도록, 콘서트 형식이 포함된 홍보 배너가 SNS 등지에 떴다.

[테스타와 함께하는 토크 콘서트 마음이 가는 대로]

[ 많은 참여 부탁드립니다 ]

포스터에는 무대 위 일곱 개의 스툴형 의자가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것이 보정되어 들어갔다.

-헐 토크 콘서트ㅋㅋㅋ

-설마 문대가 진행해? 문대가 진행자야?

-기부행사 느낌 갑자기 확 남ㅋㅋ

-토크 콘서트? 이거 막 강연하고 중간에 공연 넣는 거 아님?

└ㄴㄴ 아마 그냥 이야기 많이 하면서 중간중간 무대도 하는 형식이 될 듯? 솔로 가수들 자주 함

└아하 ㅇㅋㅇㅋ

격렬한 퍼포먼스 위주로 몰아쳤던 기존의 테스타 콘서트와 성격이 제법 달라 보였기에, 걱정하던 사람들도 그럭저럭 안심했다.

그리고 플랫폼의 관객 끌어모으기 전략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사람들이 '나올 이야기는 다 나왔다'며, 팬 외엔 테스타 콘서트에 대한 이야기를 재생산하지 않을 시점.

[오성이 쏜다!]

[ 테스타의 마음이 가는 대로 관객 숫자만큼 기부금이 펑펑! ]

(※실시간 최고 동시접속 기준)

기업 협찬에 대한 글이 쭉쭉 뜬 것이다.

콘서트를 딱 일주일 앞둔 시점이었다.

-왘ㅋㅋㅋㅋ 대박

-용케 티원이 숟가락 안 얹었네

└말이 씨가 됨 쉿

-동접 100만명 1억 기부 가즈아∼ㅋㅋㅋㅋㅋㅋ

-야 짜다 인당 100원이 뭐야 500원은 해주지 대기업 가오 어디 갔냐 (빨리 다른 기업도 붙어달란 뜻)

-동접만 카운트해준다고? 천만 동접으로 혼쭐 내주자

테스타 콘서트를 보는 사람 숫자에 비례해 기부하겠다는 기업의 협찬.

심지어 애매한 금액과 치사한 주의 문구 때문에 네티즌들의 흥미를 자극했다.

덕분에 인터넷 등지에서는 다시 한 번 테스타 콘서트 홍보 글이 돌았다.

[테스타 콘서트 공짜 관람에 공짜 기부 추가됨ㅋㅋㅋ]

[테스타 콘서트 약빤 광고.jpg]

[ 테스타 토크 콘 관람 시 $$전원 기부금 인당 100원 증정 ※관람 전격 무료※ 오성 털어 먹을 합법 기회 ©토요일 14시]

굳이 테스타의 팬이 아니더라도 합세하는 사람이 있을 만큼, 제법 웃긴 일이었다.

게다가 의도에 흠잡을 여지가 없었기 때문에 여론은 부드러웠다.

그래서 남은 한 가지 의문도 마찬가지로 부드럽게 넘어갔다.

-근데 비대면으로 토크 콘서트를 어떻게 하려는 거지

-사전 질문 같은 건 안 받아?

-그냥 테스타 자기들끼리 북치고 장구칠 듯ㅋㅋㅋㅋ

└ㅋㅋㅋ그것도 나름 귀여울지도?

관객이 아예 없다는데, 어떻게 토크 콘서트가 제대로 이루어질 수 있겠냐는 것이다.

아이돌은 전문 MC나 강사가 아니었다. 자칫하면 어정쩡한 결과가 나 오기가 십상이었다.

물론 박문대는 바보가 아니었기에, 청려와 플랫폼 딜을 하는 순간부터 이것에 대한 답도 차곡차곡 준비되고 있었다.

다만, 그가 이 순간 다른 종류의 고민으로 애를 먹고는 있었다.

"10분 휴식∼"

"후욱!"

벌크업, 벌크업을 해야겠다.

'체력이 안 따라와.'

나는 미적지근한 스포츠음료를 들이켜며 숨을 몰아쉬었다.

'…역시 아까운데.'

바쿠스를 쓸 수 없다는 건, 내 가용 시간이 4시간쯤 줄어든다는 뜻이었다.

모니터링을 하고, 연습을 하고, 구상을 해야 할 시간에 잠을 자야만 컨디션 조절이 가능했다.

시간이 순식간에 지나가 버렸다.

하지만 안 자면 체력이 안 따라와서 능률이 안 나왔다. 결국 원점이다.

'…운동 시간을 더 늘릴까.'

무산소로 근육을 좀 붙이긴 했는데, 솔직히 마음에 차는 수준은 아니다. 내가 대학 다닐 때 정도는….

아니, 일단 콘서트 끝난 다음에 생각하자.

이번 온라인 콘서트만 제대로 끝내면 기간 내로 상태이상은 넘길 수 있을 것 같으니, 다른 생각할 시간이 있겠지.

'홍보가 제대로 먹혔어.'

지금 인터넷 기세를 봐서는 괜찮다.

여차하면 오체투지를 해서라도 소송을 미루고 내년 초에 일본이라도 한번 다녀오면… 얼추 될 것 같다.

…그리고 이렇게 계획대로 일이 잘 돌아가니, 다른 문제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10분 끝났습니다∼ 다시 대형!"

"예압!"

나는 싱글벙글 웃으며 차유진의 등짝을 치는 놈을 바라보았다.

"…."

나는 자리에 여전히 주저앉은 채로, 놈을 쳐다보았다.

큰세진은 잠시 움찔하는 것 같았으나, 곧 여전히 서글서글 웃는 얼굴로 물었다.

"…아, 좀 더 쉴래?"

"아니, 멀쩡해."

"알았어∼"

말은 잘한다, 말은.

하지만 태도는 확실히 변했다.

선 넘기 직전까지 장난을 걸거나, 짜증 나는 상황에서 슬쩍 표출하던 표정이나 제스처가 싹 사라졌다.

대신 무슨 리액션 로봇 같은 놈만 남았다.

'처음 만났을 때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한마디로 불편하기 짝이 없다는 뜻이지.

비위를 맞추는 것 같기도 하고, 시위하는 것 같기도 하다.

그리고 언제부터 이랬는지는… 지나치게 확실하군.

-꼭 그런 식으로 말해야 하냐?

-…!

-빈정거리지 마라. 솔직하게 말하고 있는데.

병실에서 이 대화 뒤에 놈에게 사과를 받은 후로 계속 저러고 있다.

'X발.'

그러니까 기분이 상해서 저러는 건지, 미안해서 저러는 건지 구분도 안 된다는 거지.

'속 시원하게 까고 갈 놈도 아니고.'

그냥 자기 괜찮아질 때까지 저러고 있을 것 같기도 한데, 매번 무슨 의견 충돌이 날 것 같을 때마다 소통이 안 된다는 게 문제다.

-…그래서 이 둘은 선택지와 상관 없이 하고 싶은데, 어때.

-그렇게 생각하면, 그렇게 가도 좋 지∼

-넌 어떻게 생각하냐는 건데. 너 아깐 둘 중 하나만 하자고 했잖아.

-…나? 나아 뭐∼ 다 괜찮다니까? 너 편하게 해, 편하게∼

먼저 꼬리를 내리는 건지 아니면 상대하는 것만으로도 스트레스받는다고 완곡히 표현하는 건지.

어쨌든, 매번 이러니 저놈 속도 분명 정상은 아닐 거란 뜻이다.

자기 의도대로 상황 끌고 가는 걸 좋아하는 놈이 나랑 부딪힐 때만 매번 흐지부지 선택권을 버리고 있으니.

"…후."

콘서트가 끝나면… 아니, 모르겠다.

실제 갈등이 있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오히려 긁어 부스럼으로 싸울 수도 있을 것 같은데.

'그냥 시간이 약인가.'

"끝! 고생하셨습니다∼"

"야호!"

"실수 없이 완벽했습니다!"

나는 마지막 곡의 안무를 끝내며, 쓸데없는 잡념을 털어내기 위해 스트레칭을 돌렸다.

뒤에서 말 거는 소리가 들렸다.

"…문대∼ 허리 괜찮아?"

"어, 멀쩡해."

…이런 걸 보면 잘 지내고 싶은 마음은 있는 것 같은데 말이다.

뒤를 돌아보자, 큰세진은 그냥 애매한 웃는 얼굴이었다.

그리고 잠깐 서 있다가, 곧 자기 수건을 챙겨서 연습실 뒤로 향했다.

"…."

X발, 난들 어쩌라는 거냐.

미성년자 때도 해본 적 없는 대인 관계 고민을 공시 준비 3년 한 뒤 회춘하고 해야 하는 거냐고.

나는 연습실 구석의 의자에 앉아서 머리를 들어 천장을 보았다. 답이 없다.

그때였다.

"무, 문대야."

"…왜."

"저기… 내, 내가 괜한 말, 하는 걸 수도 있지만…."

슬금슬금 다가와서 말을 건 선아현이 갑자기 본론을 찔렀다.

다만 좀 빗나갔다.

"세진이한테… 아, 아직 화났어?"

"…? 아니."

저놈이 나한테 화났으면 났겠지.

그러나 선아현은 내 말을 좋은 신호로 받아들인 듯, 옆에 주저앉아서 열심히 놈을 변호하기 시작했다.

"교, 교통사고 났을 때, 세진이가 마, 많이, 열심히 했어…."

"…."

"회, 회사에 말하고… 병원에도 계속 찾아와서, 수술 이야기도 하고… 저, 정말 열심히 했어! 밥도, 잘 못 먹고…."

선아현의 설명은 세밀하고 구체적이진 않았다. 그러나 당시의 감정이 좀 묻어났다.

'박문대'가 일어나지 않을 때의 필사적인 노력들. 그리고 슬픔.

그래서 깨달았다.

"무, 문대 깼을 때, 돌아가면서 차 안에서도 세진이 많이 울었어…. 다, 다들 그랬지만, 그, 그만큼 문대를 많이 걱정했던 거라고 생각해."

내 생각보다도… 이 녀석들이 나를 많이 신경 써줬다는 것을.

말문이 막혔다.

"그, 그러니까… 조, 좋은 쪽으로도… 한번 생각해 주면 안 될까. 문대가 편한 마음으로 지냈으면 좋겠어…."

"…."

나는 힘겹게 입을 열었다.

"…알았어."

"…!"

"이야기해 볼게."

"으, 으응!"

선아현은 희미하게 웃더니, 곧 차유진의 부름에 비틀거리며 일어나서 자기 짐을 보러 갔다.

"형! 나 이거 먹어요!"

"응? 잠, 잠시만…!"

나는 잠시 그 자리에서 그대로 앉 아 있다가, 결국 결정했다.

그리고 그날 저녁.

"큰세진."

"어?"

나는 배세진에게 양해를 구해 잠시 방을 바꿨다. 반색하고 거실에서 짐 싸서 들어가더라.

"…문대?"

"그래."

그러니까 다시 말하자면, 오늘 큰 세진의 룸메이트는 나라는 뜻이다.

[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 240화]

큰세진은 좀 당황한 것 같았으나, 바로 안색을 바꿔서 씩 웃었다.

"아, 뭐 찾는 거 있어?"

"아니. 배세진 형이랑 방 바꾼 건데."

"…방을?"

"어, 오늘만."

나는 바로 놈의 맞은편, 배세진의 침대에 걸터앉았다.

"이야기 좀 하자."

"…."

큰세진의 동작에 짧은 긴장이 스치고 지나갔다.

하지만 말은 잘 나왔다.

"…음, 무슨 이야기?"

'요즘 네 태도 말이다, 새끼야'가 목젖까지 치고 올라왔지만 잘 참았다.

'싸우자는 게 아니면 그런 식으로 말하면 안 되지.'

대신 나는 깍지를 끼고 앉아서, 침착하게 해야 했던 말부터 꺼냈다.

"일단… 고맙다."

"…!"

"네가 나 못 깨어나는 동안 고생 많았다고 들었는데. 회사랑 병원을 다 상대했다면서."

나는 덤덤히 할 말을 이었다.

"따로 이야기 못 했던 것 같아서… 지금이라도 하는 게 맞는 것 같다. 신경 써줘서 고맙다고."

"…."

놈은 한 대 얻어맞은 것 같은 표정이다.

"그리고 걱정해 준 것도 고맙… 너 우냐?"

"어? 아, 아니…, 어."

큰세진은 눈이 벌게진 채로 뻔뻔하게 외쳤다.

"감동해서 그렇지∼!"

…감동보단 안도에 가까운 것 같은데.

'예상했던 반응은… 아니다만.'

역시 이놈도 이 며칠간 나름대로 마음고생을 한 모양이다.

놈은 민망하면서도 긴장이 풀리긴 했는지, 좀 덜 형식적으로 하하 웃었다.

"아∼ 좀 민망한데?"

그래, 마음이 좀 풀렸다니 다행이군. 나는 팔짱을 꼈다.

"민망할 건 없지. 그건 그렇고…."

이제 나도 들어야 할 말이 있다.

"너 혹시 나한테 빡친 거 있냐?"

"…뭐?"

"내가 무슨 말만 하면 너한테 '네가 다 맞아∼'만 듣고 넘어간 지 꽤 된 것 같아서."

"…."

나는 침대 모서리를 손가락으로 두드렸다.

이 새끼 얼굴에 다시 긴장이 빡 돌아오는 걸 보니까 좀 그렇다만, 덮고 넘어갔다가 나중에 터지는 것보단 낫겠지.

"기회 있을 때 이것도 털고 가자. 혹시 콘서트 이야기할 때 내가 일방적으로 사과받고 상황 끝난 게 억울했던 거면…."

"그게 억울했겠어?"

"…!"

"…아니, 그때 내가… 너무 생각이 짧았던 것 같아. 그냥 말조심하려다 보니 그랬던 것 같네∼"

아닌 것 같은데.

방금 이 새끼 욱해서 대놓고 공격적으로 말을 찌르고 수습했다.

나는 생각을 그대로 말했다.

"아닌 것 같은데."

"…!"

"그냥 좋게 넘어가고 싶은 건 알겠는데, 너만 의견 안 내고 참는 게 장기화되면 안 되니까 하는 말이야."

나는 한숨을 참았다.

"그러니까, 내가 팀 상황도 안 좋은데 다짜고짜 말도 없이 솔로 콘서트 기획했던 건 사과…."

"그런 게 아니라니까."

큰세진이 이를 악물었다. 그리고 결국 참지 못하고 정색했다.

"박문대, 넌 내가 무슨 소시오패스 인 줄 아냐?"

"…!"

"내가 너 솔로 콘서트 한다고 열받은 줄 알아? 팀에 문제 된다고?"

"…."

…아니냐?

큰세진은 분을 삭이는 것처럼, 몇 번 심호흡하더니 목소리를 정리했다.

"방금까지 혼수상태던 놈이 무리할까 봐 걱정한 거란 생각은… 안 해 봤냐고."

"…그 이유도 있겠단 생각은 했는데."

"생각은 했는데, 그것보다 내가 팀에 문제 생길까 봐 짜증 낸 거라고 생각한 거잖아. 아니야?"

"…."

이놈이 이렇게까지 직설적으로 말하는 건 처음 듣는 것 같다.

큰세진은 탄력이 붙었는지 이제 거의 토로하듯이 말하고 있다.

"넌 매번 그러더라. 무슨 다치거나 논란날 때마다 그래. 내가 이 일에 목숨 건 건 맞지. 그래, 나 잘하고 싶어. 근데 나도… 친구 걱정은 한 다고."

"…."

"우리 친구 아니야? 너는…. 솔직히 모르겠다. 나는 진짜 너랑 활동 못 해도 괜찮으니까 너 깨어나기만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

"…!"

"그랬는데, 너 겨우 일어났는데 거기다 대고 또 괜한 소리 해서…. 내가 안 그래도 직전에…,"

큰세진은 목이 메는지 입을 멈췄다. 나는 그 말까지 묵묵히 듣고 나서야, 왜 이놈이 그랬는지 깨달았다.

이놈은 그냥 겁먹은 것이다.

친한 친구가 죽을 뻔했는데, 거기에 싸우기까지 했으니 조심하려고 했을 뿐이다.

'자기 말실수를… 말도 안 되는 수준으로 심각하게 생각했던 거였어.'

그리고 그 정도로 박문대와 친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

나는 새삼스럽게 깨달았다.

이세진은 아직 20대 초반이다. 보통 한창 대학에서 헛짓하고 다닐 나이 말이다.

평소에 워낙 백업이 잘 들어오다 보니, 무의식중에 다른 놈들보다 엄격히 판단했다. 진짜 내 또래 직장 동료라도 된 것처럼.

자꾸 이놈의 행동을 커리어와 이득 만으로 분석하려고 든 것이다.

'이건… 내 실수가 맞다.'

좀 가혹한 짓이었지 않나.

나는 잠깐 주저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진지하게 말했다.

"알았어. 넌 배려해 주려고 했던 건데, 나도 걱정하느라 너무 삐딱하게 받아들인 거야. 미안하다."

"…아니야."

"아니긴. 그리고… 넌 내 친구 맞아. 아니라고 생각한 적 없어."

"…!"

나는 상태창과,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온갖 의문들을 떠올렸다.

"그냥 내가… 너무 여유가 없어서, 당장 성과가 급했을 뿐이야."

"…."

"미안하다. 이건 솔로 콘서트 이야기 아니고, 서운하게 만들어서 미안하다는 뜻이야."

큰세진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침대 위 이불로 물이 뚝뚝 떨어지는 게 보였다.

그래도 공기는 한결 시원해졌다.

"…후."

나는 배세진의 침대에 드러누웠다. 침대 주인이 보면 기겁할 짓이군.

그리고 생각했다.

'만화가 따로 없군….'

무슨 모험 만화도 아니고 내가 이놈과 질질 짜면서 친구 증명을 하게 될 줄이야. 세상 참 오래 살고 볼 일이다.

낯간지러운 일이었다. 그래도 의미 없는 일은 아니었다.

"…."

좀 머쓱하긴 했으나, 한결 편안해진 방 공기 속에서 우리는 한동안 침묵했다.

그리고 잠시 뒤. 겨우 진정이 됐는지, 일부러 큰세진이 쾌활한 목소리로 운을 다시 뗐다.

"아∼ 이제 진짜 민망한데."

"남의 방에서 이러는 내가 더 민망한데."

"야, 됐어. 나 혼자 울었구만!"

큰세진은 빙긋 웃었다. 엉덩이에 뿔 나기 부족함이 없는 조건이군.

"근데 문대문대야."

"왜."

"…왜 그렇게 여유가 없는데."

"…."

"내가 할 말은 아니지만, 우리가 성과 걱정할 타이밍은 지났잖아. 좀 천천히 가도 괜찮지 않나? …5년 뒤에도 이 그룹 할 거잖아."

"…하고 싶지."

이제 쉽게 인정할 수 있었다.

그래도 동시에 현실을 생각했다.

"하지만 어떻게 될진 알 수 없어. 지금 내가 하고 싶다고 그때도 할 수 있을진 모르지. 세상에는… 변수가 너무 많아."

"…."

"그러니까 5년 뒤에도 할 수 있도록,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다 해보려는 거지."

…비현실적 요소로 떡칠된 디테일은 제외했으나, 깔끔한 진실이었다.

짧게, 큰세진의 한숨과 헛웃음을 소리가 들렸다.

…헛웃음?

"문대문대, 혹시 진짜 국정원이야?"

"…?"

"아니, 너무 요원 같은 말이라∼"

갑자기 다 쉰 떡밥을 왜 또 물고 있냐.

어처구니가 없다는 얼굴로 쳐다보자, 큰세진이 킬킬 웃었다.

"너 기억상실증이라면서, 가끔 엄청 구체적으로 옛날이야기 하는 거 알아?"

"…!"

"근데 그게 묘∼ 하게 연도가 안 맞는다?"

"…!"

…그러고 보니, 지난 2년 반 동안 특별히 '박문대'의 과거를 묻는 놈들이 없어서 깜박했다.

그러니까 이건… 아무래도 내가 가끔 방심해서 '류건우' 베이스로 말하는 것 같은데.

식은땀이 흐른다.

'X발.'

그러나 큰세진은 더 캐묻지 않았다. 대신 자기 침대에 벌러덩 누웠다.

"으차∼ 뭐, 각자 비밀이 있고 그런 거지."

"…."

"그래도… 내키면 말해. 세진이 입 되게 무겁다? 이런 친구 사귈 기회 드물어요∼"

나는 반대편 침대에 누운 놈을 쳐다보았다.

저놈 성격에 상태창이니 재시작이니 하는 건 생각도 못 하고 있을 것이다. 기껏해야 진짜 나이를 속이고 있나 정도겠지.

'그래도….'

그래도, 어쩐지 마음이 좀 편해지는군.

나는 피식 웃었다.

"그래."

"…!"

"말할 수 있게 되면 할게."

상태 이상이 다 끝나고 나면, 언젠가 2박 3일쯤 술 마시며 진득하게 말할 수 있는 날이 올 수도 있겠지.

…그리고 그게 통할 수도 있고.

나는 농담처럼 덧붙였다.

"…그때까진 좀 봐줘. 협조 부탁한다."

"…."

큰세진은 복잡미묘한 생각이라도 드는지, 잠시 침묵했다.

그리고 느리게 대답했다.

"국정원 업무를?"

"야."

"하하! 오케이∼"

실실 웃으며 장난치는 꼴이었지만, 나름대로 분위기 안 어색하게 잘 마무리하고 싶었다는 걸 알겠다.

"아, 문대문대, 벌써 12시야∼ 내일 연습하려면 일찍 자야지!"

"오냐."

나는 머리를 휘저으며 불을 끄기 위해 일어섰다.

"오∼ 솔선수범해서 불 꺼주는 거 야? 일일 룸메이트 멋지다∼"

"잠이나 자자."

"넹."

동명이인 룸메이트의 방은 그대로 소등했다.

그리고 다른 말 없이 조용히 취침 시간을 보냈지만, 다음 날부터는 이놈과 어색하지 않은 느낌으로 돌아갈 것을 알았다.

부작용은 배세진이 상당히 쓸쓸한 얼굴로 거실에 복귀했다는 것뿐이었다.

…가끔 바꿔주는 걸 고려해 봐야겠다.

"의상 나왔습니다∼"

"헉."

"이, 이런 것도 괜찮을까…?"

"지금까지 경험을 고려했을 때 분명 좋아하실 것 같습니다!"

"그렇지∼"

어쨌든, 콘서트 준비는 문제없이 차근차근 잘 진행되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당일 송출 시간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박문대 호스트, 테스타 게스트의 토크 콘서트 마음이 가는 대로 가 송출되는 날.

대학원생은 오랜만에 랩실에 출근하지 않고 집의 데스크탑 앞에 앉았다.

'척척박사는 있어도 척척석사는 없다'는 궤변에 시달리며 진로를 고민하던 그녀에게 오랜만에 온 엔도르핀 타임이었다.

"아… 너무 좋아."

정말 오랜만에 마음 편히 문대를 만나는 것 같았다.

지난 지옥 같은 18일 끝에 회복한 박문대를 보면 너무 감정이 벅차서 생활이 좀 힘들 지경이었는데, 이제는 괜찮아진 것 같았다.

그냥 기분이 들떴다.

'토크 콘서트니까, 그렇게 무리하는 것도 아닐 것 같고!'

무엇보다 사람들이 다 기대하면서 신나 하는 분위기가 좋았다!

'문대도 많이 기대하고 있겠지?'

대학원생은 히히 웃으면서 그녀의 홈마 친구와 설레는 톡을 몇 번 주고받은 뒤, 콘서트가 상영되는 플랫폼에 로그인했다.

'실시간 댓글 달려면 가입해야 하니까!'

그녀에게는 약간 낯선… 덜 대중적인 플랫폼이었으나, 구성이 이용자 친화적이고 좋은 일도 많이 하는 것 같아서 가입에 거부감은 없었다.

아니, 거부감이 있더라도 이 콘서트엔 꼭 댓글을 남기고 싶었다.

'못 보겠지만, 그래도 응원하고 싶어…!'

문대가 회복되어서 정말 다행이고, 건강하게 돌아와 줘서 정말 고맙다고 말하고 싶었다.

'와, 나도 덕후 다 됐다!'

대학원생은 홈마 친구가 들으면 고개를 저을 소리를 하며, 키보드 위에 손을 올리고 콘서트가 시작되기를 기다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검은 화면에 무 지개 선이 생기며 카운트다운이 들어갔다.

-3333

-테스타 사랑해ㅠㅠ

-ㅋㅋㅋ사람 개 많네

-기부 콘서트 좋아용∼

-3!

-아아아아 청우본다ㅏㅏ

댓글이 순식간에 훅훅훅 지나가더니, 곧 화면이 다소 신나는 클래식 반주와 함께 켜졌다.

의자 7개가 올라간 공연장.

포스터와 똑같은 장면이었다.

즉, 테스타는 아직 없었다.

-오오

-테스타 어디감

-아직 등장 전?

'이제 등장인가? 문대부터겠지? 문대가 호스트니까?'

대학원생이 신나서 무릎을 치며 화면을 들여다보는 순간이었다.

갑자기, 목소리가 들렸다.

[관객 참여형 토크 콘서트에 오신 관객 여러분을 환영합니다.]

"…!"

박문대였다.

-문대문대다

-목소리만 나와?

-어디서 등장할까

"헐, 먼저 나오는 거 맞나 봐!"

대학원생이 얼른 댓글에 '문대 최고!'를 달고 있을 때였다.

[공연을 시작하기에 앞서, 원만한 진행을 위해 여러분의 선택이 필요합니다.]

공연장 뒤 전광판에 문구가 들어왔다.

[테스타는]

1. 멋지다

2. 귀엽다

"…?"

대학원생은 눈이 콩알처럼 변해 화면을 쳐다보았다.

'이게… 뭐야?'

실시간 댓글창 역시 물음표와 폭소로 가득 차는 도중.

여전히 평화로운 박문대의 목소리가 들렸다.

[키보드의 #버튼과 조합하여 번호를 실시간 댓글로 올려주시면, 전광판에 선택하신 숫자가 카운트됩니다.]

[마음 가는 대로 선택해 주시길 바랍니다.]

그 이야기를 들으며 몇 사람은 댓글창에 해당 조합을 얼른 쳐보았다.

-#1

-#2

그것이 댓글로 올라가는 순간.

실제 화면 속 전광판 문구 옆에도 숫자가 달리기 시작했다.

[테스타는]

1. 멋지다 (25)

2. 귀엽다 (31)

확실한 반영이었다.

-헐!

-야 이걸 콘서트에 쓰다닠ㅋㅋㅋ

그렇게, 21세기형 비대면 토크 콘서트가 시작되었다.

[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 241화]

실시간 댓글은 무시무시하게 불어났다.

-콘서트니까 멋짐 가자

-#1

-#2#2#2 제발 귀여운 거ㅠㅠㅠ

-이거 같이 써도 카운트 됨?

-ㅋㅋㅋㅋㅋ 진짜 웃기네ㅋㅋ

시험 삼아 다른 번호를 쳐보는 사람, 진심으로 한쪽 선택지를 미는 사람, 그리고 재미 삼아 하나를 골라보는 대다수 사람까지.

다양한 이야기들이 댓글창이 터져 나가도록 빠르게 갱신되었다.

그리고 전광판의 카운트도 빠르게 올라갔다.

[테스타는]

1. 멋지다 (2017)

2. 귀엽다 (1992)

아직 등장하지도 않은 박문대의 중얼거림이 다시 들렸다.

[음… 굉장히, 박빙이네요. 빠른 성원 감사합니다.]

[제한 시간은 3분입니다. 앞으로… 120초 남았습니다.]

이렇게 열정적으로 카운트가 올라갈 줄은 몰랐던지, 박문대의 담담한 목소리에는 당황스러움이 슬쩍 묻어났다.

'아, 너무 귀여워!'

대학원생은 두 손으로 키보드를 통통 치다가, 자신도 얼른 카운트를 올렸다.

-#1 테스타 최고!

'콘서트에서는 문대도 멋진 걸 더 하고 싶었겠지?'

대학원생은 흐뭇하게 자신의 선택을 만족해했다. 마침 1번을 찍은 사람들이 약간 더 많기도 했으니까!

하지만 그녀에겐 아쉽게도, 여기에는 허수가 좀 섞여 있었다.

일단 시험 삼아 쳐본 사람 중에 1번을 고른 사람이 많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렇게 콘서트가 시작하기 전부터 가입 후 기다렸다가 바로 접속한 사람들은… 꽤 많은 수가 아주 열정적인 팬들이었다.

그리고 고인물일수록 일반 대중과 약간 괴리된 선택을 하는 경우가 잦았다.

-당장 2 쳐라

-지금 테스타콘 보는 러뷰어들아 빨리 2번에 힘을 실어줘 #2임 얼른

-ㅅㅂ 갓기들 재롱잔치 좀 보자ㅠㅠㅠ

이미 무대 위 멋진 테스타의 모습은 수많은 데이터베이스가 있기 때문이다.

귀여운 모습의 무대는 콘서트 깜짝 무대나 SNS에서만 간헐적으로 볼 수 있으니, 이 기회를 놓칠 순 없었다.

'공식적인 귀여운 무대!'

팬들은 미친 듯이 2번을 밀었고, 그 결과.

[테스타는]

1. 멋지다 (10286)

2. 귀엽다 (15601)

압도적 승리를 거뒀다.

-헐ㅋㅋㅋㅋㅋ

-테스타의 멋짐을 모르는 당신들이 불쌍해요!

-싸ㅏㅏㅏ∼∼

-좋아 이겼다 귀여움이 세상을 이긴다!

개소리와 웃음이 난무하는 댓글은 확인할 수 없는지, 박문대의 목소리는 여전히 담담했다.

[관객분들의 선택은… 테스타는 귀엽다 입니다. 참여 감사합니다.]

다만 약간 웃음기가 섞이긴 했다.

[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는데요.]

'귀여워!'

1번이 안 된 것에 약간 아까워하던 대학원생도 2번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순간이었다.

[그럼, '귀여운'… 테스타를 만나보시겠습니다.]

그 말이 끝나는 순간, 화면이 바뀌었다.

"와."

등장한 것은… 새로운 무대였다.

테스타가 대관한 공연장의 무대는 하나가 아니던 것이다.

그리고 새롭게 등장한 이 무대는… 아주 퀄리티 좋은 유치원 공연 무대 같았다.

'판넬?'

나무와 바다, 기와집과 햇님이 그려진 무대 소품들이 아기자기 모여 무대를 꾸미고 있었다.

마치 어린이 전래동화라도 펼쳐질 것 같은 그 밝은 무대 위.

[나는… 신나게 마구 놀다 자는 게 좋아!]

원본보다 상당히 발랄한 차유진의 한글 내레이션이 들렸다.

그리고 반짝이는 헬륨 풍선들이 무대 위로 터지는 가운데, 테스타가 쏟아져 나왔다.

어린이들의 함성이 삽입되었다.

[와아아!]

달려 나온 테스타는 하나같이 어린이 전래동화 연극에 어울릴 것 같은 옷차림이었다.

나무꾼, 선비, 호랑이, 까치, 도깨비 등의 코디가 연극적으로 살짝 과장되어 귀엽게 마무리되어 있었다.

그야말로 어린이 무대.

그러나 테스타는 개의치 않고 꿋꿋하게 퍼포먼스를 시작했다.

조선 스팀펑크가 컨셉이었던 자신들의 강렬한 타이틀, 'Spring out'이였다.

-스며드는 오늘의 감각

즐겨 이 순간, 시선, 예감

지금, 예고 없이

Spring out

그 와중에 안무까지 어딘지 율동 느낌이 나도록 살짝 바뀌었다.

다른 의미로 강렬하기 그지없는 오프닝이었다.

-ㅋㅋㅋㅋㅋ야 얘네 진심인데?

-테스타 뽀짝뽀짝ㅠㅠㅠㅠㅠ

-진짜 최고다 귀여움 최고의 선택

-ㅋㅋㅋㅋㅋㅋㅋㅋ그 와중에 개잘하네 은근 킹받음

관객들은 진짜 자선행사에 나올 만한 밝고 정직한 무대에 폭소하며 댓글을 쳤다.

그러나 몇몇 팬들은 약간 아련해졌다.

-콘서트 즉석 무대 생각나네…

-우리 애들 투어 취소됐다고 이렇게라도 비슷한 느낌 내주려는 거구나 진짜 눈물난다

-애들은 귀여운데 나 홀로 벅참

그 모든 게 섞이며 실시간 댓글창은 완전히 아수라장이 되었다.

그리고 비슷한 일이 SNS와 커뮤니티에서도 반복되며, 톡톡히 광고 효과를 누리고 있었다.

-뭐야 다들 무슨 이야기 중임

-테스타가 연극해?

-무료 콘서트 보러와라 얘들아 개웃김 본격 댓글 참여형 콘서트

-뭔 소리여 대체

아이돌의 기부 콘서트 같은 것에 별 관심 없던 사람들도 호기심에 링크를 클릭해보게 되는 것이다.

그 와중에도 테스타는 무대를 제대로 해내고 있었다.

지나치게 뻔뻔하게 귀여운 척하지 않고, 약간 민망한 티를 내는 것까지 재미에 포함되었다.

-야 진짜 테스타 열심히 산닼ㅋㅋ

-정말 기부에 진심이구나 얘들아

-1번 골라줄 걸 ㅠㅠ (뻥임

그리고 이런 변칙적인 무대를 보고 나니, 사람들은 다른 선택지는 대체 뭐였을지 궁금해졌다.

-그럼 멋짐은? 대체 멋짐은 뭐가 나왔던 거야ㅠㅠㅠ

-다른 선택지 이야기 없어요?

-다음 무대나 뭐 그런 걸로 나올 듯ㅋㅋㅋㅋ

약간의 기대감을 가지고, 사람들은 이 뒤로 '정석적인' 멋진 무대가 이어질 것을 기다렸다.

하지만 얄짤 없었다.

[갈림길의 한쪽을 고르면, 다른 쪽은 갈 수 없습니다.]

[그래서 선택받지 못하는 쪽은∼ 없던 일로!]

무대가 끝난 후, 멤버들의 멋쩍은 개인 인사 뒤에 나온 말이다.

이세진이 씩 웃으며 검지를 들어서 엑스표를 만들어 카메라에 가져다 댔다.

그리고 멤버들도 어처구니가 없는지 피식피식 웃었으나, 댓글은 웃지 못했다.

-?

-진짜?

-야 그런 거 없다는데?ㅋㅋㅋㅋㅋ

[아∼ 너무 아쉽다! 열심히 준비했는데∼]

[그래도 공연은 쭉쭉 진행됩니다. 다음 선택지 갑니다!]

멤버들의 발랄한 목소리에 댓글의 사람들은 슬슬 사태를 깨달았다.

-이거 무조건 하나는 포기하는 거잖아

-야 테스타 미친자들아 기부 콘서트에 이렇게까지 해야 하냐ㅠㅠ

-다른 쪽 인터넷에 풀어주겠지? 그렇지..?

다들 '준비한 걸 그냥 버릴 리는 없다'며 이성적으로 생각하려 애썼지만, 어쨌든 눈앞에 보이는 건 깔끔히 선택지만을 공연하고 넘어가는 테스타였다.

양자택일로 끝!

덕분에 점점 투표는 과열되기 시작했다.

[이번 겨울에는]

1. 눈 내리는 겨울 바다로 간다

2. 집에서 따듯한 코코아를 마신다

다시 돌아온 투표 전광판 무대.

이제 댓글은 적극적으로 상대를 설득하기 시작했다.

-아 무조건 코코아지ㅋㅋㅋ선넘네

-겨울 바다하자 무대 개쩔 듯

-콘서트에서 밋밋한 재택근무 봐야 하냐 당연히 바다 가즈아

-숙소 나올 것 같은데 제발 코코아 해줘 제발ㅠㅠ

이번엔 총투표수가 5만이 넘는 접전 끝에, 결국 겨울 바다가 3만 표로 승리했다.

[오∼ 이런 결과!]

[훌륭한 선택이십니다.]

그리고 장면의 전환.

멤버들은 몽환적으로 흔들리는은 회색 무대 속에서, 바닥에 앉은 채로 노래를 불렀다.

음이 더 섬세하고 보컬 퍼포먼스에 맞게 편곡된 'Picnic'이었다.

-일기예보와 상관없어

널 만나고 싶은 날이야

가볍게 툭툭 걸어가면

오늘은 파란 하늘, 이야

서늘하고 아름다운 아카펠라였다.

비대면 콘서트의 장점을 살려, 부드럽게 물결치는 은푸른빛 파도가 아름다운 곡과 함께 화면을 적셨다.

클라이맥스에서 박문대가 끌고 가는 극적인 화음으로 무대는 여운 있게 마무리되었다.

-좋았다…

-아ㅋㅋㅋ 좋은 선택이었다

-테스타 곡 좋은 거 많네

재밌거나 인상 깊은 무대가 하나하나 쌓일 때마다, 사람들은 자신들의 선택을 자화자찬하거나 다른 선택지를 궁금해하며 더욱 콘서트에 몰입해갔다.

심지어 대중적이지 않은 플랫폼이 귀찮아서 그냥 위튜브에서 불법 송출을 보던 사람들도 투표에 흥미를 느껴 유입되기도 했다.

-ㅉㅉ2번 안무 영상 골라라 뮤비 오글거림 #2

-강아지 고르면 문댕, 고양이 고르면 차고영이 센터야 설마?ㅋㅋㅋ

-#넣고 올리면 되는 거죠?

-노잼

-와 이번에 진짜 박빙ㅋㅋㅋ

분탕을 치려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사실 의미 없었다.

어차피 댓글은 테스타에게 보이지 않았고, 선택지 중에 하나를 골라 숫자를 더하는 것 외에는 영향을 끼칠 것이 없었다.

다만, 그 실시간 반영과 선택이 자극적이라 대단히 재밌었을 뿐이다.

사람들은 '강아지 VS 고양이', '호떡 VS 약과', '마법 VS 야구' 등 다양한 선택지를 골랐다.

어떤 선택지는 대놓고 테스타와 연결된 쪽을 밀어주는 것 같았고, 또 어떤 선택지는 대체 무대와 무슨 상관이 있는 건지 의아하기도 했다.

하지만 무엇을 고르든 간에 무대를 보면 의문이 해소되고 폭소나 감탄이 나왔다.

-커버곡 고르는 거였구나 말랑달콤 냥냥이라 고양잌ㅋㅋㅋㅋㅋㅋ

-야구=하이파이브 맞았다 아 야구복 청우 언제봐도 대존잘ㅠㅠㅠ

-호떡ㅋㅋㅋㅋㅋㅋ ㅅㅂ먹방 VCR 돌았냐고

기발한 캡처와 GIF 파일들이 실시간으로 생산되어 SNS를 돌았다.

그리고 테스타는 중간 광고도 잊지 않았다.

[병실을 벗어나 본 적 없는 소망이에게 꿈을 이룰 내일을 선물해 주세요.]

아동복지재단과의 협력을 통해 중간중간 희망적인 느낌의 기부 요청 토크들이 들어갔다.

이것이 기부 콘서트라는 것을 환기하기 위해서였는데, 제법 효과적이었다.

기부를 몰아받는 타이밍이 정해져 있으니, 기부금이 한꺼번에 같이 터지게 된 것이다.

그리고 터질 때마다 뜨는 폭죽 효과가 쉴새 없이 댓글창을 덮으면서 동참을 부추기니 원래는 안 할 사람까지 기부하도록 만들었다.

-멋지다

-야 우리 교양 있어

-토요일의 여가생활∼ 크

그렇게 사람들이 완전히 이 시스템과 흐름에 익숙해졌을 때였다.

[이번에… 드릴 선택지는, 특별 스테이지에 관한 것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선아현의 부드러운 목소리 다음에 떠오른 전광판의 문구는, 관객들이 전혀 예상치 못한 것이었다.

[내 예상으론 특별 무대는]

1. 테스타가 커버하는 VTIC이다

2. VTIC이 커버하는 테스타다

갑자기 1군 타 그룹이 보기에 등장했다.

-?

-뭐임

-야 진짜야?

-브이틱이 여기 왜

하지만 곧 사람들은 상황을 파악했다.

-ㅋㅋㅋㅋ2번 고르면 테스타가 브이틱인 척할 듯

-아 개웃길 것 같앜ㅋㅋㅋㅋ

-VTIC스럽게 편곡한 테스타 음원 듣는 거야? 존잼이자나ㅋㅋㅋ

-혹시 테스타가 나와서 대국민 사과하나요

선택지는 누가 봐도 애교였다. 2번 보기는 찍지 말고 1번을 찍어달라고 넣어준 것 아닌가.

대부분 테스타의 팬들이 보고 있으니, 당연히 1번을 찍을 것이라 예상하며 말이다.

문제는 판이 커진 탓에 관객의 풀도 늘어났다는 점이었다.

이미 선택지 형식에 재미 들린 관객들이 이런 웃기는 먹잇감을 놓칠 리가 없었다.

-야 2번 가자

-뭐할지 궁금햌ㅋㅋㅋㅋ

-엄청 머쓱해할 듯?ㅋㅋㅋ #2

- #2 답은 2번∼∼

게다가 테스타를 놀리고 싶어하는 팬들까지 합류하며, 대세는 2번으로 기울어 버렸다.

물론 몇몇 팬들은 싸한 느낌에 안절부절 못 하고 있었다.

'이거 잘못하면 VTIC 이용했다고 욕먹겠는데…?'

'아, 이거 아슬아슬하다….'

그러나 겨우 3분의 시간.

여론이 뒤집힐 겨를도 없이, 결론이 나와 버렸다.

VTIC이 커버하는 테스타다 (71432)

2번의 승리였다.

-ㅋㅋㅋㅋㅋㅋㅋ대박

-자 테스타 어쩔 건가요∼∼

-와 진짜 2번 나왔엌ㅋㅋ

-기대한다 얘들아

그 짓궂은 기대가 최대치로 부풀어 오를 때.

[아… 이렇게 됐네요.]

[그러게요.]

대화를 주고받는 대뜸 내레이션이 흘러나왔다.

다만 아까 들었던 목소리는 아니었다.

-?

-테스타 후회하나ㅋㅋ

테스타의 팬이 아닌 사람들은 웃으며 댓글을 달렸지만, 테스타의 팬들은 약간 당황했다.

'이거….'

목소리는 테스타가 아니었다.

그리고 잠시 뒤.

화면이 비추는 무대가 바뀌는 대신, 대뜸 전광판이 열렸다.

"…!"

그리고 검은 백스테이지로부터, 4명의 인영이 드라이아이스 사이에서 걸어 나왔다.

-헐

-야 잠깐

-설마

'설마'가 맞았다.

실제 VTIC이 테스타 콘서트에 카메오 출연한 것이다.

-미친

이 기대도 안 했던 극적인 전개에, 관객 반응이 폭주하기 시작했다.